아이돌로지는 밀크뮤직과 함께 아이돌 음악을 조금만 더 파보는 “아이돌 딥리스닝” 시리즈를 진행한다. 플레이리스트는 갤럭시 전용 서비스인 밀크뮤직에서 들으며 즐길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서, 아이돌 역시 예외는 아니다. 언제까지나 함께할 것만 같던 아이돌들도, 오래전 S.E.S.가 노래했듯 “시간의 벽에 부딪혀” 우리와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아니, 짧은 순간의 빛남을 노래하는 아이돌이야말로 어쩌면 시간에 가장 민감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방탄소년단의 ‘Young Forever’가 그렇듯 아이돌이 ‘시간’을 노래하는 순간은 늘 뭔가를 들키다 만 것 같은 미묘한 감상을 남기곤 한다.
돌아가고픈 시간
아이돌의 가사, 또는 콘셉트 속에서 시간이 다뤄지는 방식은 몇 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다. 우선은 추억과 후회를 말하는 ‘돌아가고픈 시간’이 있다. 이는 대중음악이라면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라 하겠다. 그만큼 많은 예가 있다. 이별에 대한 후회는 걸 그룹보다는 보이 그룹에게서 자주 등장하는 편인데, ‘집착남’ 서사가 많은 인피니트의 ‘Tic Toc’은 좋은 예일 것이다. “찰나의 꿈”이 “영원한 꿈”이 되는 빅스의 ‘기적’도, 그리움에 갇힌 심리를 잘 표현한다. 추억으로서의 과거는 아이돌 팬송에서도 종종 다뤄지지만, 90년대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이면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나요”라 노래한 에이핑크의 ‘Luv’는 매우 인상적인 순간을 남기기도 했다.
즐겨야 할 시간, 지금
다음으로는 ‘즐겨야 할 지금’을 들 수 있다. 급박한 긴장이나 시간의 제약이 곁들여져 주제를 강화하기도 하는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이라 노래하는 빅뱅의 ‘We Like 2 Party’처럼 파티를 소재로 하거나, 트와이스의 ‘Touchdown’처럼 카운트다운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기도, 이효리의 ‘10 Minutes’처럼 시간 제약을 두기도 한다. 이 역시 댄스 음악에서는 무척 보편적인 주제인 셈인데, 때론 아이돌이 담고 있는 ‘청춘’이란 상징성과 맞물려 더욱 묘한 감상을 남기기도 한다. 밤이 지나면 사라져버릴 듯한 아슬아슬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이었던 스피카의 ‘Tonight’이 좋은 예가 되겠다.
감격의 시간
조금 더 나아가면 시간이 아이돌의 특수성과 결합하는 지점들도 나타난다. 듣는 이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은 아이돌 정서의 중요한 핵심 중 하나라 하겠는데, 특히 사랑이 이뤄지는 순간의 환희를 시간이 멈춘 것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 부류를 ‘감격의 시간’이라 칭하면 좋겠다. 수없이 많은 곡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굳이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꼽겠다. 주제가 사랑인지 우정인지 모호하게 그려진 이 곡은 가슴 벅찬 몰입의 순간을 “멈춰져 버린 이 시간”이라 표현했다. 또한 레드벨벳의 ‘7월 7일’처럼 ‘감격의 시간’과 ‘돌아가고픈 시간’을 결합하는 곡들도 있다.
시간의 벽
반면, ‘시간의 벽’을 노래하는 경우도 있다. ‘닿을 듯 닿을 수 없음’은 대표적인 아이돌 정서의 하나인데, 이 간극을 시간에 비유하여 더욱 절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연인과의 엇갈림을 시계의 시침과 분침에 비유한 비스트의 ‘12시 30분’은, “고장난 시계”처럼 멈춘 시간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여자친구의 ‘시간을 달려서’는 반대로 시간의 흐름 탓에 이별을 맞이하는데, “시간을 달려”야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애절함을 더한다. 이 부류는 특히 여성 아이돌에게 묘한 지점을 남긴다. 일찍이 보아의 ‘Don’t Start Now’가 있었듯, 어린 소녀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면서도 그 부담은 피해가는 방식으로 활용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에이프릴의 ‘봄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사례인데, 짝사랑 대상을 겨울에, 자신을 봄에 비유함으로써 애틋한 거리감을 강조하면서도 ‘미래에서 기다린다’는 뉘앙스를 담아낸다.
넘어서는 시간
여기서 새롭게 파생한 분류는 ‘넘어서는 시간’이라 할 수 있겠다. 시간의 벽을 넘어서는 기적적인 만남, 그것은 아이돌이 보여주는 신화적인 환상의 절정이 아닐 수 없다. 아이유는 부르는 노래마다 시간을 주제로 하는데, 시간여행을 해서라도 사랑을 이루겠다는 ‘너랑 나’는 그 정점에 있다. 이 곡은 특히 당시 화두였던 ‘삼촌팬’을 정면으로 겨냥하여 가공할 파괴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탐정 콘셉트로도 유명한 샤이니의 ‘Sherlock’ 역시, 가사와 뮤직비디오를 살펴보면 시간을 여행하며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가는 매혹을 노래하고 있다. 엑소의 ‘12월의 기적’도, 비록 ‘기적’이 일어났는지는 모호하게 표현돼 있으나, ‘돌아가고픈 시간’을 중심으로 한 환상을 펼쳐 보인다. 반면, (물리법칙을 벗어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다시 만난 시간들의 접점’을 노래하는 S.E.S.의 ‘한 폭의 그림’은, 아이돌이 현실에서 시간의 벽을 넘어 일으킬 수 있는 감격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알 수 없는 시간
마지막으로, ‘의미불명의 시간’이라 분류해야 할 제국의 아이들의 ‘Mazeltov’가 있다. 요일 나열에서 “길어야 일년 그립겠지 아니면 한달”까지 시간을 소재로 한다는 것 외엔 의미를 알기 어렵다. 하지만 아이돌과 아이돌 팬 모두에게 ‘시간’이란 주제가 담아낼 수 있는 것들을 묻는다면, “365일 춤만” 춘다는 메시지만큼은 가장 보편적이고 공감대 넓은 이야기가 아닐까. 덧없는 존재인 아이돌들이 빛낼 앞으로의 수많은 시간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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