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하순 발매된 아이돌 신작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아이유, 청하, 카드, 스누퍼, 이창섭, 종현, 모모랜드, 이달의 소녀 1/3, 젝스키스, 보아를 다룬다.
최근 내부 사정으로 인해 퍼스트리슨 리뷰에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퍼스트리슨은 발매되는 모든 음반을 리뷰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당분간 주요작 중심의 리뷰로 전환합니다. 업데이트 간격 조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미묘: 유독 나이를 초월한 듯한 존재가 집요하게 나이를 노래하는 풍경. 그것이 단지 ‘K-아이러니’로 전락하지 않는 것은 갖은 풍랑을 뚫고 나온 성찰과 자기확신에 바탕하기 때문이다. ‘이지은’을 변형한 ‘이 지금’이 환상동화의 후일담 같은 시선으로 자신의 현재를 낙관할 때, 이는 “춥고 모진 날 사이로 조용히 잊혀진” 이름과의 화해, 곧 아이콘 아이유와 자연인 이지은의 맞잡은 손에서 비롯한다고 앨범은 노래한다. 그 배경으로 다른 수록곡들이 현재의 스냅샷들을 다양하게 전하면서, 앨범은 그야말로 ‘앨범’이란 존재의 정의를 확연히 충족한다. 무려 ‘아이유가 술 먹은 노래’인 ‘Blackout’, 자신감에 찬 뭉근한 섹시함의 ‘잼잼’, 그리고 사랑의 고민(‘사랑이 잘’)과 그리움(‘밤편지’), 이별을 맞이하는 다면적 태도(‘이런 엔딩’과 ‘마침표’) 등, 권유할 필요도 없이 놓치려야 놓칠 수 없는 탁월한 트랙들이다. 구석구석 숨어 아슬아슬하게 청자가 알아채 주길 기다리는 듯한 짓궂은 비틀림 역시 매혹적인 보너스이며, 또한 앨범을 ‘진정’보다는 ‘세련된 진실’에 접근하게 한다. ‘팔레트’에서 애늙은이 같은 스물다섯과 철부지이고 싶은 서른이 맞붙는 가운데, “이제 조금 알 것 같”은 자신에 대한 긍정은 ’스물셋’의 수정증보판인 동시에 묵직한 이정표다. 이미 장편 대하소설 한 작품을 채울 삶을 살아온 아이유지만, 그의 ‘진실함’이 특수성인 동시에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은 그래서다. 고통과 혼탁을 뚫고 나와 마침내 자신을 찾는 작은 미소 같은 이 앨범이 길모퉁이에서 기다리고 있다. 길 잃은 이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제공하기 위해.
선공개 곡들이 통합되지 않는 음원과, 보존하기엔 너무나 파손되기 쉬운 패키징마저 ‘바로 지금’을 강조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과잉해석일 것이다. 보존될 가치가 있는 좋은 작품이라 더욱 아쉬운 부분.
김윤하: 미니멀한 구성으로 완성된 다소 평범한 팝 발라드 ‘월화수목금토일’은 청하를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노래가 되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운 싱글이다. I.O.I의 메인 댄서 포지션과 〈힛 더 스테이지〉 출연 등으로 덧씌워진 ‘춤을 잘 춘다’는 이미지를 역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야심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그뿐, 노래는 야심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는데 깔끔하게 실패한다. 맑은 목소리 이상의 무언가를 아직 획득하지 못한 신인 가수에게는 다소 가혹하도록 무미한 곡과 보컬 어레인징이다. 선공개 곡이라는 것이 애매한 곡을 털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앨범 발매 전 기대치를 최고조로 올려놓기 위한 전략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미묘: 확실히 카드는 다소 세기말 분위기가 있다. 조금 느긋하게 내려앉았음에도 텐션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그 어둡고 매캐한 공기가 적당히 차가운 무표정을 잡아주기 때문일 것이다. “맞죠 맞죠” 같은 구절들이 때로 다소 촌스러운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도 일조하고, 느려진 템포에 맞춰 백비트를 강조하면서 센슈얼한 느낌의 밸런스도 잘 잡힌다. 전작들에 비해 폭발하는 트랙은 분명 아니지만, (사실 카드의 곡들이 애초부터 ‘폭발’하는 성향이었나 묻는다면, 차갑게 꿈틀대는 파충류 같은 매력이었다고 답하고 싶다.) 멜로디에서 남녀 멤버들이 조합되는 양상이나, 곡에 담기는 감상성의 비중 등을 비롯해 카드가 수행할 수 있는 포뮬러들의 실험으로서 충분히 유의미하다고 판단한다. (굳이) 세로로 제작된 뮤직비디오 역시 쇼트 크기의 변화나 프레임이 매력적이면서, 뮤직비디오라기보다는 음악이 곁들여진 움직이는 화보 같은 인상을 주어 이색적이다.
김윤하: 정해진 성공 비결이라는 걸 도무지 찾을 수 없는 비선형 누적물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지만 그래도 그나마 검증된 방법을 찾아보자면 아마 남들보다 ‘반보’ 앞설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으로 네 번째 미니 앨범을 발표하는 스누퍼의 경우는 그런 의미에서 매번 사람을 참 안타깝게 만드는 그룹이다. 작곡가 그룹 스윗튠, 복고 콘셉트, 해당작을 통해 새롭게 시도한 트로피컬 하우스 사운드까지 일관적이고 꾸준하게 반보 늦은 선택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릿곡 ‘Hide And Seek’과 타이틀 곡 ‘Back:Hug (백허그)’는 깔끔하게 잘 빠진 트로피컬 댄스곡이지만, 그저 그뿐이다. 수록곡들 역시 평범 이상을 어필하지 못한다.
미묘: 스윗튠의 트로피컬 하우스라기에 큰 기대를 가졌다. 트로피컬 하우스에 원래 애매하게 배어있는 뽕끼의 포텐셜이, 야시시한 뽕끼 마스터 스윗튠을 만나 어떻게 폭발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Hide And Seek’은 훅에서 바로 그 느낌이 장렬하게 꿈틀거려 기대를 어느 정도는 충족시키지만, 정작 노래 부분에선 스윗튠이 늘 하던 그것이다. ‘Back:hug’ 역시 같은 기조인데, 후렴과 훅에서 워낙 스윗튠이 늘 하던 그것 중 유로 디스코의 색채가 워낙 강렬하다. (“오롯이 느껴”에서 갑자기 두터워지는 스네어는 일종의 신호탄이다.) 트로피컬 하우스와의 조합을 더 듣고 싶다는 아쉬움을 느낄 때쯤, 훅의 “Want you hear now”가 보여주는 머리를 쥐어뜯고 싶을 지경의 야시시함 앞에 그만 ‘우리 튜니 하고 싶은 것 다 해요’를 외치고 만다. 그러고 보면 이 미니앨범의 즐길 거리는 아마도 상반되는 두 종류일 것이다. 나와 비슷한 포인트, 또는 ‘내 여자의 여우짓’의 가사에 각각 항마력을 담금질하는 것 말이다.
김윤하: “Piece of BTOB”는 얼마 전부터 본격-아이돌-보컬 그룹으로 확실한 포지션을 정한 듯한 비투비가 매달 한 곡씩 멤버들의 솔로곡을 선보이는 디지털 싱글 프로젝트다. 첫 번째 주자는 메인 보컬 이창섭으로 무난한 선택이군… 싶은 찰나, 사람을 조금 놀라게 한다. 장르 공식에 충실한 본격적인 팝-록 사운드에 무려 자작곡. 뛰어나게 새롭거나 신선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닿을 수 있는 영역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는 보컬 겸 작곡가의 안정감이 느껴져 편안하다. 곡의 후반, 애드리브를 이어가는 절정부에서 자신이 가진 보컬 상한선의 하이노트를 자신 있게 찍는 이창섭의 패기에 슬며시 미소 지었다.
김윤하: 직접 진행을 맡은 라디오 〈푸른 밤 종현입니다〉의 작사작곡 프로젝트 코너를 통해 소개되었던 곡들을 모았던 첫 번째 소품집과 달리, 두 번째 소품집은 종현이 바쁜 활동 틈틈이 이런저런 기회를 통해 선보였던 곡들과 정규 앨범에 수록하기에는 색깔이 다른 곡들을 모은 일종의 비사이드(B-Side) 앨범 같은 인상을 전한다. 물론 자루의 형태와 준비 과정만 다를 뿐 안에 담긴 내용물은 같기 때문에 해를 더해 갈수록 여유로워지는 싱어송라이터 종현의 최근 관심사와 성장을 살펴보기에 적절한 자료라는 점에서 전작과 흐름을 같이한다. 한편 개인적인 취향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앨범에서도 지난 소품집과 비슷한 인상 하나를 받았는데, 종현의 목소리와 표현력이 가진 주파수가 ‘엘리베이터 (Elevator)’나 ‘놓아줘 (Let Me Out)’처럼 다소 과하고 스모키한 감정표현이 필요한 곡들과 가장 잘 맞아떨어진다는 점이다.
오요: 종현의 두 번째 소품집인데 전작을 들으며 느꼈던 안타까움-종현 정도라면 대하사극도 너끈히 해낼 수 있을 텐데 왜 ‘소품집’ 정도로 만족할까 하는 규모에 대한 불만-이 여전히 남는 앨범이다. ‘Inspiration’에서 합을 맞췄던 프로듀서이자 전자음악가 Imlay가 타이틀 곡 ‘Lonely’ 및 여러 수록곡에 참여하여 지난 소품집과는 또 다른, 야심 찬 사운드를 들려주지 않을까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야기 Op.2”는 그저 잔잔하게, 무리하지 않고 흘러간다. 사운드 전반과 보컬의 운용에서 다소 욕심을 부려도 좋았을 부분에서는 힘을 빼고 소리를 놓아버리고, 오히려 절제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과도한 꾸밈이 넘친 것도 아쉬운 점 중 하나다.
미묘: 전작의 매력이었던 천진함과 싱코페이션, 놀이공원 분위기는 일단 유지. 다만, 어떤 노림수도 없이 그저 행복하고 들뜨는 만큼 그대로 쏟아내겠다는 듯한 화사함으로 재무장했다. 에버랜드보다는 롯데월드 느낌이란 생각도 들지만, 아무튼 놀이공원 분위기 역시 아예 놀이공원에서, 아예 퍼레이드 포메이션으로 뮤직비디오를 찍어버렸다. 너무 밝고 맑아서 CCM이나 캠페인송처럼 들리기도 한다. (“예수의 사랑 어마어마해 / 자랑할만큼 감사해”...?) 그러나 그 과한 나이브함이 또한 ‘이렇게까지 솔직한 소녀’를 표현하는 데에는 제격. 후렴의 반주 역시 스트레이트하게 마구 두들겨댄다. 그런 해맑은 외양 뒤에서 멜로디에 은근히 우수가 섞여 들어가는 점 등은, 역시 전작에 이어서, 공들였지만 공들이지 않은 척하는 세공이 느껴진다. (그러나 후렴에서 스트링이나 신스가 뒤에서 조그맣게 꼼지락거리는 것은 그다지 효과적인 것 같지만은 않다.) 특정한 종류의 저연령 이미지를 강화하는 조합이라는 점은 마음에 걸리는 부분. 반면 매력을 전개하는 방식이 ‘집체’로서의 접근에 가깝다는 점은 최근의 경향 속에서 반가운 부분.
돌돌말링: 지난 퍼스트리슨에서 “Love & Live”의 첫 타이틀곡 '지금, 좋아해'에는 혹평을 했는데, 리패키지의 '알 수 없는 비밀'에서는 실망을 철회해야겠다. 댄스 혹은 발라드가 주가 되는 케이팝 씬에, 드럼이 전혀 없는 미디움템포 곡이라는 존재가 조용하지만 두드러지는 한 발짝이었다. 가사나 멜로디가 만드는 서정성 속에 탱고 멜로디의 간주가 치고 들어올 때 아, 하고 감탄하게 된다. 다소 부족한 안무 소화 능력이 '지금, 좋아해'에서는 이달의 소녀 1/3의 발목을 잡았다면, '알 수 없는 비밀'에서는 오히려 이들의 차분한 중창단적 매력을 돋보이게 한다. 이달의 소녀는 솔로 프로젝트는 퀄리티가 고른데 그룹으로 뭉치면 기획의 콘셉트에 편차가 있는 것 같다. 완전체가 기다려지면서도 동시에 조금 걱정이 되는 이유이다.
미묘: YG 엔터테인먼트가 젝스키스를 영입한 것은 탁월한 비지니스 감각이나 수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적어도 이 앨범이 말하고 있는 것은 그렇다. 아이돌 기획사가 어떤 이상의 존재를 설정하고 움직인다고 전제하면, 지금의 젝스키스는 어쩌면 YG가 꿈꾸는 궁극의 일면을 단호하게 보여준다. 아무런 제약도 없이 마음껏 신파이고 싶은 정통 가요와 서태지와 아이들 시대에서 단 하루도 넘어가지 않는 달력이라고 할까. (그나마 김건모의 데뷔곡 인용이 진정 정당할 수 있는 첫 기회를 포착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YG 양념의 신파 가요 그 자체다. 차라리, 빅뱅의 자아가 너무 커져서 시킬 수 없었던 재고 처리라고 하는 게 어떨까. 무절제하게 부어 넣은 스트링 속에 마냥 울어대는 ‘아프지 마요’나, 지드래곤이 가장 직설적일 때보다도 얕은 아이러니의 ‘슬픈 노래’에서 무엇을 건지면 좋을까. 20년 전보다 돈 냄새 가득한 사운드 정도일까. 이 곡들을 들려주고 빅뱅의 열화 카피로 들리는지 빅뱅의 완성형으로 들리는지 묻는다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니, 리트머스지로서의 기능은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과거 곡 리메이크(보도자료의 ‘리마스터’란 표현은 정확히 틀린 말이다)가 포함돼 있으니 1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돌아왔어요’ 시기를 넘길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곤 하나, 돌아와서 뭘 하는지 언제 보여줄 것인가 궁금했더니 이런 것이라면 너무 잔혹하지 않은가. 젝스키스의 레거시를 밑장빼기로도 모자라 테이블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요: 보아와 켄지의 조합에 설레이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비록 싱글 앨범이나 정규 앨범의 형태가 아닌 SM 스테이션을 통해 공개된 싱글이라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여전한 켄지 특유의 서정과 그것을 풀어내는 보아의 설득력 있는 보컬이 반갑기만 하다. 보아의 컴백을 더 간절히 기다리게 만드는 트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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