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대 : SMP에 최근 몇 년간 섞여든 이 정체불명의 형식미, 이를테면 하나의 짧은 주제가 다른 주제로 쉼 없이 대체되고 반복되고 다시 뒤섞이는, 이런 단/분절과 혼종의 프리즘은 청자로 하여금 사운드와 반복되는 메시지에 길들여지게 함과 동시에 비평의 여지를 최대한 허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괴팍한 장치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돌팝에서 비슷한 종류의 아방가르드 일렉트로 팝 콜라주(참고로 어떤 사전에도 나오지 않습니다)을 시전했던 ‘I Got a Boy’와의 비교는 피해갈 수 없다. 사운드의 대조를 통해 의도를 구현했던 소녀시대의 경우와는 달리, ‘Red Light’은 음원의 배치나 사운드의 밀도감을 좀 더 ‘논리적’으로 전개시켜 이런 스타일을 다루는 SM의 진화된 테크닉을 감지케 한다. f(x)가 소녀시대보다 훌륭한 재능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겠지만 단지 이 곡으로만 시선을 고정한다면 근 몇 년 SMP가 작당해온 궁극의 사운드 – 한때는 혹시 아이돌팝의 미래가 아닐까 기대했던 – 즉, 무정형성이 품은 보편성을 성취할 가장 적합한 틀인지도 모르겠다.
미묘 : 나는 이 곡을 두 개의 각도에서 이해한다. 뮤직비디오보다는 무대에서 더 부각되는 첫 번째 각도는, 그간 f(x)에 대한 보완이다. 청중을 향해 어필하기보다 자기들끼리 재밌게 노는 듯한 박제된 공간으로서의 f(x)의 무대는 아이돌의 ‘어떤 정의’에 입각한 은밀한 실험이었다. (부정하기 힘든 멤버들의 외적 매력이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에너지가 바깥으로 충분히 뻗어 나가지 못하는 한계도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 곡은 ‘Nu-ABO’가 청중을 향해 발산하도록 만들어진 발전형이다. 또 하나의 각도는 아이돌이 ‘힙’을 잡아먹는 현장이 여기 있다는 것이다. 여느 때보다 길게 늘어선 구조와, 후렴보다 은근하고 강렬하게 파고드는 작은 프레이즈들(“변화의목껶-쨔가되는거-야”), 방언이 터진 듯한 보컬의 오버랩 등은, 이제 더 이상 ‘팝’이라 부를 수 없을 것만 같은 지점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팝적이지 않음을 팝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힙이라 할 때, 아이돌이 힙을 추구한다는 근본적인 모순이 낳는 이 기묘함은 힙과 팝을 또 다른 차원으로 밀고 나간다.
조성민 : 올 초에 나왔던 2NE1의 ‘Come Back Home’과 이 곡을 각 팀이 서로 바꾸어 불러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Red Light’의 컴백 무대를 보면 , 데뷔 이래로 한 번도 이 정도로 비장미가 느껴지는 안무를 소화해 본 적이 없는 팀이어서인지, 안무 동작 자체는 한층 파워풀해졌음에도 어딘가 부족함이 느껴진다. 반면 2NE1이 ‘Come Back Home’에서 가사는 세상천지에 이렇게 불쌍한 여인이 또 있을까 싶도록 처절한데 무대 위에서의 모습은 광선검만 안 든 미래 전사 그 자체였던 것을 상기해보면, 분명 이 곡과 상보적인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장르 때문인지 곡 자체가 f(x) 멤버들의 음색과 썩 잘 어울리지 못하는 느낌이 있고, 특히 “Ay Ay It’s a Red Light Light”과 같은 부분은 좀 더 그루브를 살려줄 수 있는 보컬이 필요했을 것 같다. SM 아이돌이 꾸준히 채택해오던 문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부분에서는 여지없이 안정감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한번 더 보여준 것 같다. 자칫 그저 그런 노래가 될 뻔했지만 후렴의 라틴풍 멜로디로 이어지는 전개 덕분에 곡 전체에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유지되는 것은 다행이고, 그 부분이 워낙 강렬해서 계속 듣게 될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 그러나 작품에 사용된 모든 종류의 언어와 기호로 이미 충분히 강렬한 여전사를 노래하고 있는데, 눈빛은 북 치는 꼬마 병정이었던 ‘첫 사랑니’ 때와 마찬가지로 한껏 아름답기 바쁘다는 느낌이라 어쩐지 계속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f(x)는 항상 아름답다. 신의 함수를 미천한 인간이 어찌 감히 풀려 하겠는가. 아름다움만으로 충분하다면 더 할 말은 없지만…
유제상 : 공적인 평 – 고양이 눈, 안대, 군복, 미니스커트, 고스로리, 그 외 소녀들의 l’imaginaire에 위치하는 상징들. 초경, 성장, 불안함, 갑작스런 라틴 비트, 통속적인 멜로디로 부르는 노래, 다시 워블 사운드, 고양이 눈, 무너지는 집, 가요 순위에 신경 쓰지 않겠다는 젊음의 오기의 핑계의 자기방어.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로 만들어 낸 서브컬쳐의 집합체. f(x) 안녕.사적인 평 – 결과물만 놓고 보면 이런 거 브라운아이드걸스도 했잖아!
Draft 코너는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의 타이틀곡만 빠르게 리뷰한다. ‘Red Light’가 수록된 f(x)의 “Red Light” 앨범에 관한 필진들의 단평은 7월 1일~10일 발매된 다른 신작들과 함께 1st Listen : 2014.07.01~07.10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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