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Article

2015 걸그룹 지형도

연령 이미지와 비일상성, 두 가지 지표로 현존하는 걸그룹들을 분석해본 결과, 각 그룹의 캐릭터 이미지는 몇 개의 군집으로 묶이는 걸 알 수 있다.

지난 27일 한겨레신문 지면을 통해 소개된 아이돌로지의 걸그룹 지형도는 2015년 여름 현재를 기준으로 수많은 아이돌 걸그룹들을 유형화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걸그룹의 정체성’이란 주제로 준비된 이 기획은 누가 더 잘하느냐, 누가 더 잘 팔리느냐와는 무관하게, 어떤 걸그룹이 표상하는 이미지가 무슨 의미이며 그것이 누구와 비슷한가를 파악하려는 시도였다.

한겨레신문에서 재구성한 걸그룹 지형도 ⓒ 한겨레신문
한겨레신문에서 재구성한 걸그룹 지형도 ⓒ 한겨레신문

걸그룹의 캐릭터 이미지를 파악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 ‘섹시’와 ‘청순’, ‘보컬 중심’과 ‘퍼포먼스 중심’, ‘밝음’과 ‘어둠’, ‘사랑스러움’과 ‘동경’ 등 다양한 지표들이 제안되었다. 그러나 도표로 표현하기 곤란하거나, 독자로 하여금 각 그룹의 ‘우수성’에 대한 지표로 곡해될 수 있는 것들은 가급적 제외하였다. 또한 ‘섹시’는 많은 경우 연령이나 단기적 전략과 연관되기에 한 걸그룹의 대표 이미지를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아이돌로지는 ‘연령 이미지’와 ‘비일상성’의 두 가지를 중심 지표로 제안하였다. x축의 연령 이미지는 단순히 멤버들의 실제 평균 나이만이 아닌, ‘소녀성’을 포함한 것이다. 소녀성을 정의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걸그룹 콘텐츠의 다수를 차지하는 연애를 기준으로 미성숙한 캐릭터를 표현하는 정도를 반영한 것이다. x축에서 우측으로 갈수록 ‘알 것 아는’ 성숙한 여성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y축의 비일상성은 아이돌이 흔히 갖게 되는 이상화 성향, 그리고 이를 넘어서 ‘사차원’에까지 이르는 이미지를 말한다. y축에서 높이 올라갈수록 일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별난 인물형을 표현하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일상적이고 때론 통속적이기까지 한 친숙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지표들에 의해 아이돌로지는 최대한 많은 걸그룹의 성향을 계량화해 보았고, 그 결과 비슷한 곳에 위치하는 몇 개의 군집들로 걸그룹들이 묶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래의 도표는 이 군집들이 상호 유사하게 보여주는 성향에 의해 영역을 표시한 것이다.

걸그룹 지형도

※도표는 클릭하면 확대되며, 아래 탭을 클릭하면 각 영역에 대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

A영역B영역C영역D영역E영역F영역G영역H영역
걸어다니는 디즈니랜드

알쏭달쏭 별세계 이야기를 쏟아내는 사차원 소녀들. 크레용팝의 ‘빠빠빠’와 f(x)의 ‘Nu ABO’처럼, 언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어렵다. 마이너 걸그룹들이 마니아 층을 공략하는 전략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레드벨벳, f(x), 크레용팝, 프리츠 등을 들 수 있다.

엉뚱한 소녀들

조금 엉뚱해서 더욱 귀여운 소녀들. 귀여운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은 걸그룹 정통파의 한 갈래라고도 할 수 있다. 깜찍한 매력을 노리다 보니 연령 이미지로는 중학생에서 고등학생 정도가 아직은 한계라 하겠다. 라붐, 오마이걸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영역의 중간 정도에, 통념적인 ‘요즘 여고생’의 이미지가 위치한다고도 볼 수 있다. 신비한 여고생의 몽환적 이미지를 담아낸 러블리즈도 이 근처에 위치한다.

산뜻한 소녀들

위의 두 영역보다는 현실감이 있지만, ‘청순 걸그룹’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린 느낌이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마냥 두근대는 소녀의 꿈과 통통 튀는 귀여움을 겸비, ‘삼촌’이라면 그저 머리 쓰다듬어 주고 싶어지는 소녀들이다. 여자친구, CLC 등이 포함되며, 의외로 소형 기획사의 신인 걸그룹 중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웃집 소녀

소년만화에 등장할 만한 소녀들. 청순가련에서 씩씩한 활기까지, 흰 의상과 초원의 조합부터 평범하게 예쁜 이웃집 소녀까지, 수수한 여고생에서 착실한 20대 초중반까지. 사람에 따라서는 조금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으나, S.E.S., 핑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야말로 걸그룹 정통파 중의 정통파 노선이다. 베리굿, 소나무, 에이핑크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이 영역의 가장자리에 걸스데이, 스피카, 써니힐 등까지 포함할 수 있다.

앙팡 테리블

클럽에 가려고 힘 줘서 화장한 대학교 2학년. 이들의 화려한 무대에서는 ‘오늘은 제대로 놀겠다’는 결의와 활기가 느껴진다. 섹시함도, 귀여움도, 패기도 어느 정도씩은 다들 갖췄다. 특정한 매력 하나가 송곳처럼 두드러진다기보다, 두루두루 갖춘 셈. 그렇다 보니 어떤 한 가지를 보겠다면 조금 부족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이 또한 가능성이라 하겠다. 간혹 섹시 콘셉트가 부담스러운 경우도 있는 건, 이들에게 어딘지 앳된 느낌 역시 남아 있기 때문일까. ‘일반 걸그룹’이라 하면 통념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에 가깝기도 하다. 스텔라, 시크릿, AOA, 헬로비너스 등을 포함한다.

별난 누님들

확실하게 튀는 모난 구석, 그것이 때론 나이에 따라 성숙해지기까지 해서, 카리스마라 불러도 좋을 강한 존재감으로 넘치는 ‘누님들’이다. ‘사차원 이미지’와 결합하기도 하고, 그것이 잘 어울리기도 한다. 2008년 브라운아이드걸스, 2NE1 등 많은 걸그룹들이 강렬한 이미지를 선보였지만 최근엔 한풀 꺾인 추세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뚜렷하게 살아남은 이 영역의 강자는 역시 포미닛. 와썹, EXID, 2NE1 등을 떠올릴 수 있고, 귀여운 이미지가 더 강하지만 오렌지캬라멜도 포함된다.

특별한 그 여자들

이들의 퍼포먼스에는 의심이 필요 없다.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게 해주는 특별한 시간. 망설임 없이 당당한 이미지는 이들의 무대에서 카리스마마저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경력이나 나이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아이돌로서 이상화된 이미지에, 친숙한 대중성도 어느 정도 갖췄기 때문이다. 나인뮤지스, 마마무, 소녀시대, 애프터스쿨, 카라 등이 포함된다.

어디서 본 듯한 숙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해도 믿을 만한 상식적인 내용은 때로 통속적이기까지 하다. 누구라도 마음 편하게 접할 수 있고, 때론 깊이 공감할 수도 있는 영역. 그러기 위해선 ‘알 것 아는 나이’가 될 필요도 있다. 아이돌 걸그룹 세계에서는 가장 가요적이라 할 수 있는 부류다. 미쓰에이, 씨스타 등을 대표로 꼽을 수 있으며, 걸스데이, 스피카, 써니힐 등도 다른 영역과 함께 이곳에 걸쳐 있다.

이 도표를 통해 걸그룹들의 ‘정체성’을 상호비교할 수 있다면, 감상자의 취향도 조금은 진단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 멤버에 대한 호오가 없는 ‘올팬’이라면, 예를 들어 라붐이 마음에 들 경우 오마이걸도 괜찮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혹은, 여자친구와 프리츠는 좋은데 스피카는 마음에 안 든다면, 그는 소녀적인 이미지에 더 끌린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이 도표는 2015년 현재의 상황을 표현한 것이기에, 각 걸그룹의 이미지도, 개인의 취향도 변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카라의 경우 데뷔 초부터 최근까지 아래의 도표와 같이 이미지를 바꿔 왔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걸그룹 지형도 : 카라의 예
걸그룹 지형도 : 카라의 예

지표 선정의 어려움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어떤 지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각 지표가 상호 의존성을 갖기도 쉽다. 예를 들어 어린 이미지의 그룹이 섹시 이미지를 선보이기는 곤란한 식이다. 본 지형도에서 선택한 연령 이미지와 비일상성이란 지표 역시 일정 부분 상호 의존성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결과를 재차 관찰하면, 우리가 흔히 걸그룹의 매력으로 꼽는 성질들이 지형도 안에서 어느 정도의 경향성을 갖는 것을 알 수 있다. ‘귀여움’, ‘청순’은 연령 이미지와 결부되기 쉽고, ‘카리스마’와 ‘친숙함’ 등은 비일상성과 연령 이미지가 함께 작용하는 편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대략적인 방향으로 표현하자면 아래의 도표와 같다.

걸그룹 지형도 - 지표간 관계성

한편, 지형도 속 몇 군데의 빈칸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나올 만한 건 이미 다 나왔다’고들 하는 아이돌 씬에서, 어쩌면 이것은 소위 블루오션일까.

걸그룹 지형도 - 블루오션?

블루오션 A : 여중생 일상물

이미 만화 등의 매체에서는 흔한 장르가 된 그 영역이다. 평범한 어린 소녀의 아주 평범한 이야기 말이다. 문제는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위험할 수 있다는 점과, 학업 위주로 채워진 한국 중고생의 평범한 일상이 동경과 공감 사이에서 어떻게 어필할 수 있는지 하는 것일 터이다. 어쩌면 캔디가 그럭저럭 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것일까.

블루오션 B : 특별한 스무살

귀여운 엉뚱함이든, 일상 탈출의 퍼포먼스든 선명하게 특별할 것. 그러면서도 천방지축 소녀보다는 성숙하거나 아슬아슬할 것. 평범하지도, 과하게 ‘사차원’적이지도, 소녀적이지도, 수수하지도 않은 어떤 것. 데뷔 초기의 현아, ‘손타킹’ 시절의 가인 등이 이곳에 위치했었다고 할 수 있다. 혹은, 레이디스코드 역시 이 언저리가 아니었을까.

블루오션 C : 미친 20대 중후반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마치며

넘쳐나는 걸그룹 씬에는 수많은 ‘정통 걸그룹’과 ‘변종 걸그룹’이 존재하고, 이들의 매력도, 개성도 각기 다를뿐더러, 하나의 걸그룹이 가진 이미지 역시 무척 다양하다. 이를 단 두 가지 지표로 제한하여 분류하는 일은 각 그룹의 개성을 평면화하여 지나친 단순화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앞에서 지적했든 본 지형도의 지표 역시 상호의존성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이는 현재 이 자료가 갖는 한계이며, 이를 고정적인 결과물로 인식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러나 수많은 걸그룹을 유형화하고 이들의 상호 관계를 상대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씬 전체를 관찰하는 데에 있어 일정 부분의 유용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본 작업은 향후 개선의 여지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다른 지표들을 비슷한 방식으로 적용하는 과정을 거쳐 보다 완전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015 걸그룹 지형도의 자료 조사 및 제작에는 김윤하, 맛있는 파히타, 미묘, 박준우, 별민이 참여했다. 남은주 기자가 종합한 한겨레신문의 기사에는 본 지형도에 김윤하, 미묘, 서정민갑, 하박국의 코멘트도 포함돼 있다. (“포화상태라고요? 걸그룹 생태계는 ‘다양종 진화’”)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

3 replies on “2015 걸그룹 지형도”

흥미로롭네요 계열화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인 티가 나네요 퍼가요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다만 레드벨벳은 디즈니랜드 같은 컨셉의 행복 아이스크림 케이크 그리고 그 반대선상에 있는 비 내추럴 오토매틱 등 두 정체성을 가진 그룹이라 저렇게 말하긴 조금 어려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