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 특성상 빅스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려다가,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 짧게 풀어보려고 한다. 빅스는 2012년에 데뷔한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남성 아이돌 그룹이다. 2013년 세 번째 싱글 ‘다칠 준비가 돼 있어’로 본격적인 주목을 받았고 이후 구체적인 성과를 거둔다. 무엇보다 뚜렷한 콘셉트와 그에 부합하는 무대 연출이 압권이다. 극단적인 만큼 소화하기 힘든 그림임에도 그걸 잘 구현했기에 지금의 빅스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러한 콘셉트가 잘 되려면 비주얼과 안무가 큰 역할을 하지만, 멤버들에게도 굉장한 연기력과 몰입을 요구한다. 이후 ‘hyde’, ‘저주인형’, ‘기적’, ‘Error’, ‘이별공식’을 통해 빅스는 그룹만의 무기를 빨리 찾았고, 어느 정도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나는 빅스에서 박찬욱을 봤다고 말해왔다. 특정 작품과 정확하게 연결할 수는 없지만, 두 주체가 가지고 있는 코드나 세계에서의 공통점은 뚜렷하게 존재한다. 특히 박찬욱의 〈박쥐〉, 〈올드보이〉 등의 작품과 빅스의 이른바 ‘호러 3부작’을 포함한 강한 콘셉트의 곡들이 그렇다. 이는 숙명에 가까운 사랑이란 내용과 그것을 담아내는 거친 외피가 그것이다. <박쥐>가 표현하는 두 사람의 사랑과 그것을 담아내는 흡혈귀라는 소재와 화면 구성이 그렇고, <올드보이>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 신화를 연상케 하는 사랑 구조와 그것을 담아내는,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방식이 그렇다. 빅스도 이와 흡사하게 극단적인 콘셉트를 취하는데, 단순히 모티브를 차용한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곡의 흐름 – 뮤직비디오의 스토리라인 – 안무의 구성이 일관된 서사 흐름을 만드는가 하면 시각적 요소 전체를 통해 콘셉트를 선보이기 때문에 아트워크, 뮤직비디오, 라이브 무대를 모두 볼 것을 권한다.
빅스는 ‘이별공식’을 제외한 대부분의 타이틀곡 가사가 헌신적 사랑을 드러내는데, 이는 사실 아이돌 그룹 시장 내에서도 가치와 장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대부분이 피상적인 관계의 시작이나 이별 전후의 시점을 이야기할 때, 빅스는 사랑 그 자체에 모든 걸 던질 수 있을 만큼의 순정을 보여준다. 요즘 세상에 이런 이성애자 남성이 어디 있나. 그래서 빅스가 ‘남친돌’인 걸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그러한 ‘숭고한 사랑’의 테마는 박찬욱이 가지고 있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를 성스럽게, 혹은 우아하게 표현하지는 않을 뿐, ‘사랑’이라는 테마는 박찬욱에게 항상 중요한 지점이었다. 특히 〈박쥐〉,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올드보이〉에서 드러나는 사랑이 그렇다. 이들의 사랑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비극적인 숙명에 가깝다. 이러한 정서야말로 두 주체의 가장 큰 공통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굳이 위의 작품들이 아니더라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범위가 한없이 넓다. 이미 작품들을 보면서 느꼈겠지만, 두 주체는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에서도 비슷한 점을 공유하고 있다. 박찬욱은 B급 영화의 외피를 둘러쓰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잔혹하고 자극적인 부분을 끌어내 폐쇄적인 세계관을 구축한다. 흡혈귀라는 소재를 통해 빅스의 호러 삼부작과 가장 관련이 깊은 것은 〈박쥐〉다. 박찬욱 감독은 이 작품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표현하는 데 있어 절정을 보여줬지만, 그 외의 작품에서도 외형은 늘 B급 영화의 그것을 띠었다. 빅스 역시 아이돌답게 세련된 비주얼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우선으로 택하고 있는 소재들이 B급 영화에서 쓰이는 키치한 것들에 가깝다. ‘다칠 준비가 돼있어’는 흡혈귀라는 소재 자체가 같았고, 이후 ‘hyde’ 역시 선과 악의 모습을 나누면서 잔혹한 묘사가 있었다. 이는 ‘저주인형’에서 절정을 이루는 듯했다.
비극적 숙명이란 정서와 B급 영화 같은 표면의 결합은 그로테스크하고 극단적인 화면이 오가는 가운데 미묘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그 공기가 작품의 힘을 만드는 동시에 보는 이를 가두는 느낌을 준다. 박찬욱 감독의 경우 주체가 만든 시야각을 벗어나기 힘들게끔 하는 꽉 찬 미장센, 타이트한 전개가 작품의 폐쇄적 세계관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빅스는 안무와 의상, 메이크업이 특히 큰 역할을 해서, 아이돌 그룹이라는 맥락 안에서도 그 의미가 남다르다. 또한 눈에 보이는 부분이 의미를 깎아내리기보다는 작품에 대한 접근 시선을 다르게 가져갈 기회를 만들며, 그 자체로 작품의 장점을 구성하기도 한다. 다만 이는 굉장히 조율하기 어려운 만큼 섣불리 했다가는 허술함이 쉽게 드러나는 작업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간극이 큰 구성의 결합은 만드는 사람들의 높은 몰입이 요구된다.
빅스는 ‘대.다.나.다.너’, ‘Rock Ur Body’, ‘이별공식’ 등 앞서 말한 맥락과 무관한 활동을 꾸준히 선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양가적인 활동이 가능한 건, 그리고 그것이 모두 사랑을 받고 나름의 설득력을 얻는 건 아이돌 그룹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떤 형태의 예술 작품이든 어느 한쪽의 말만을 들을 수도, 또 모두의 맘에 들 수도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점을 잘 이용해 가장 자유로운 활동을 보여주는 형태 중 하나가 가장 상업적인 영역에 해당하는 아이돌 그룹의 활동이다. 아이돌은 개별 작품의 매력이 가지는 힘이 커야 활동할 때 많은 주목을 받고 또 팬덤을 끌어올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룹의 정체성이나 맥락을 어느 정도는 쌓아가는 것이 중요한데, 빅스의 경우 양가성 그 자체가 맥락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양가적 활동 중 한 축의 맥락은 이렇게 설명된다.
여기까지 꽤 심각한 척을 하면서 몇 작품 간의 공통점을 이야기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이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비틀즈 코드’ 정도의 억지를 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별의 아이돌 활동이 그 자체만으로 텍스트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고 또 이러한 텍스트 분석이 아이돌 음악 시장을 풍성하게 만드는 작업 중 하나라고 믿는다. 이러한 해석이 작품을 바라보는 데 또 다른 나름의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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