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효성 ‘Good-Night Kiss’ & 이와사키 히로미 ‘성모들의 자장가’
꽃 피는 가정의 달 5월, 모두들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이번 달에는 무슨 얘기를 할까 하다가, 저의 쇼와돌덕으로서의 고충을 하나 털어놓아 보기로 했습니다. 이번 달의 노래 두 곡은 전효성의 ‘Good-Night Kiss’, 그리고 이와사키 히로미(岩崎宏美)의 ‘성모들의 자장가(聖母たちのララバイ)’입니다.
닮은 점: 자라 자라 하는 노래
두 노래의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공통점은 역시 자장가를 테마로 한 가요란 것이겠죠? 사랑하는 이에게 부드럽게 편히 잠들라고 청하는 여가수의 목소리가 몹시 달콤한 것이 특징입니다. 두 곡 모두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연인이 지켜보는 곳에서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환경이라면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곳은 아마도 조용하고 안전한 실내일 거예요. 화자와 연인 둘이서만 있는 가정의 가사야 많지만, 이 두 곡은 단지 자장가를 모티브로 한다는 것만으로도 청자를 타인에게 방해 받지 않는 가상 공간으로 초대합니다. 장르부터 분위기며 화자가 반복하는 메시지며 사뭇 다른 두 곡이지만, 단둘이 있는 공간에서 애정을 강화하리란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네요. 후후…
닮은 점: 표현력이 좋은, 고전적인 문법의 가수
전효성과 이와사키 히로미를 함께 떠올릴 때에, 두 가수의 ‘안정성’ 혹은 ‘보수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일단, 둘 다 표현력과 전달력이 아주 훌륭한 가수죠. 전효성은 시크릿 활동으로 안정적인 무대 장악력과 부담스럽지 않은 섹시 콘셉트 소화력을 이미 입증한 바 있어요. 날카롭지 않은 보이스톤이 부담 없이 여러 장르의 곡에 녹아 드는 것도 유리한 포인트고요. 솔로로 서기에 라이브와 퍼포먼스 실력도 준수하고, 댄스 실력 역시 시크릿 내에서도 손꼽혔죠. 특히 ‘섹시’라는 키워드를 노리는 솔로 여가수는 많지만, 전효성은 현아나 가인과는 또 다른 나름의 입지를 굳혀가는 듯 합니다. 일단 예쁜 몸매라는 천혜의 스펙이 있고, 화려하기보다는 단정한 이목구비가 오히려 메이크업을 했을 때 여러 가지 느낌을 내기에 좋아요. 최근에 컴백한 ‘반해 (Into You)’도 그렇고, 케이팝 하면 떠오르는 매끈한 댄스 스킬, 일정 수준 이상의 가창력, 그리고 서구권과도, 옆 나라 일본과도 조금 다른 분위기의 섹스어필. 이런 요소들을 ‘정석대로’ 모두 소화하는 몇 안 되는 드문 인재라고 여겨져요. 반면, 안정적이지만 그만큼 지나친 파격에는 도전하지도 않는 아쉬움도 있고요.
이와사키 히로미, 애칭 ‘히로링’ 역시 쇼와시대 여가수의 정석 중의 정석, 교과서 같은 가수입니다. 어릴 때부터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던 히로링은 74년에 당시 인기 TV 오디션 프로였던 〈스타 탄생! (スター誕生!) 〉에 출전해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75년도에 본격적으로 데뷔했어요.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내용의 두 번째 싱글 “로망스 (ロマンス)”가 대박이 나면서 그 해 신인상을 휩쓸고 〈홍백가합전〉에도 출연합니다.
이후 귀여운 열일곱 살의 마음을 어필한 ‘센티멘탈 (センチメンタル)’, 멜랑콜리함을 알아가는 열여덟 살을 그린 ‘사추기 (思秋期)’ 등의 곡들이 계속해서 히트하며 ‘외모도 예쁘고 가창력도 훌륭한 가수’라는 이미지를 얻었고, 지금까지 쇼와 시대의 디바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롱런하고 있어요.
70년대는 쇼와 가요에 일명 ‘뉴뮤직 (new music)’이라 불리는, 기존의 엔카와는 다른 세련된 요소들을 소개하는 장르가 메이저로 등장한 시기였습니다. 지금 제이팝이라고 부르는 노래들의 시초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히로링의 작품들은 일본 가요가 기존에 가져오던 엔카적 특성들을 고수하는 편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히트곡의 멜로디나 구성이 엔카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았고, 80년대 들어 뉴뮤직을 조금 시도하긴 했지만 파격적인 선은 아니었어요. 히로링 활동곡의 주된 가사관은 주로 70년대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작사가 아쿠 유(阿久悠)의 작품인데요. 사랑과 신뢰, 향수 등 고전적인 미가 흐르는 시적인 가사를 많이 썼습니다. 어찌 보면 엔카의 미덕을 소녀 가수답게 소화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다른 점: 기획,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히로링은 한 가지 이미지를 차근차근 다지며 데뷔한지 40년이 넘도록 한결 같은 이미지로 사랑 받고 있습니다. 한 번의 이혼 정도를 제외하면 개인사적으로도 스캔들이 많지 않았고요. 따라서 기획으로 이미지 반등을 노린다든지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반면 전효성은 2013년 일명 ‘민주화 발언’이 커리어에 가져온 여파가 엄청났죠. 문제가 되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은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전효성 개인을 그 사이트 헤비 유저로 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맥락 상으로 보면 ‘정말로 몰라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지요. 어느 쪽이어도 본인에겐 치명적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커리어에 영향이 있다는 것은 거의 불공평하게 느껴질 정도예요.
기획 측에선 아마도 전효성의 인기의 근원을 남성향 서브컬처 쪽으로 보는 것 같은데요. 이는 전효성의 캐릭터와 가능성을 너무 작은 타깃 마켓에 국한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한 줄 요약 하면, ‘전효성은 잘났으니 여덕에게도 떡밥을 달라’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시크릿 활동 초반 마르지 않은 전효성의 이미지는 여성 팬들에게도 환영 받았고, ‘여자 아이돌은 말라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이긴 바디피겨는 44 사이즈가 아닌 많은 여성들에게 자신감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남성 타깃의 노림수가 너무 오래 가느라, 자칫 ‘섹시하긴 한데 다른 건 잘 모르겠는’ 가수가 될까 봐 조금 걱정이에요. 더불어, 문제가 됐던 발언이 남초 인터넷 서브컬처 사이트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해당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가는 것은 대중으로 하여금 그 때를 무의식 중에 상기시키는 효과가 있어서 손해가 아닐까요. 기꺼이 섹슈얼 판타지의 대상이 되겠다는 의지도 때로 섹시할 수 있지만, 전효성의 기획은 그렇다고 보기엔 기백이 조금 부족한 느낌이지요? 전효성은 여성의 섹시함을 이미 잘 이해하고 있는 가수고, 그것을 좀 더 입체적으로 만들려면 가수 개인이 무대 위에서 고군분투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요.
다른 점: 이것은 노림수?
전효성의 ‘Good-Night Kiss’는 사실 가사에 큰 의미를 둘 만한 곡은 아녜요. 단순화한 표현을 반복적으로 씀으로써 노린 효과는 그저 듣기 좋은 케이팝을 만들겠다는 것 외의 의미는 없었겠죠. 음율을 적절하게 맞추고, 퍼포먼스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많은 복선을 깔지 않은 평면적 이미지가 오히려 다이내믹한 사운드에 겉돌지 않아 감상을 돕습니다.
“Good night kiss 넌 너무 달콤해 잘 자요 애기”
“코 잘도 자는 너”
이런 라인에서 유아적인 느낌을 가미해 조금 더 각별한 연인 사이를 표현하려는 노력 정도가 보일 뿐입니다. 전효성 본인도 인터뷰에서 이런 가사가 “너무 오그라드는 것이 아닌가 했다”, “평소에는 그런 말을 못 쓴다” (티브이데일리 2014년 5월) 라고 밝힌 걸 보면, 때로 유치해지기도 하는 연인 관계란 것을 그려낸 게 아닌가 싶어요. 한 마디로, ‘이건 이런 맛에 듣는 곡’이란 점을 감추지 않는다는 거죠. 어쩌면 이런 것이야말로 서프라이즈보다는 ‘너 나 우리’가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는 좋은 케이팝의 평균값이 아닌가 해요. 이단옆차기는 특히나 가수가 기존에 갖고 있던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에 강점이 있는 작곡 팀인데요, 전효성의 첫 솔로 활동곡인 이 곡은 대중들의 ‘수비범위 내’에서 작업물을 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모들의 자장가’도 의미는 다르지만 작자의 노림수가 느껴지는 가사를 담고 있습니다. 이 곡은 아쿠 유가 아닌 작사가 야마가와 케이스케(山川啓介)가 썼습니다. 당시 인기리에 방영 중이던 〈화요 서스펜스 극장 (火曜サスペンス劇場) 〉의 엔딩 테마로 1절만 만들어진 곡이었는데요, 그래서 평소 우아한 은유가 넘치던 히로링의 기존 작품들과는 좀 다른, 특별판 같은 곡이었지요. 그런데 이 곡이 의외로 대박이 나면서 2절이 추가되어 정식 싱글로 발매된 거고요. 히로링의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이미지에 기댔지만, 전작들보다는 ‘남성들이 듣고 싶은 얘기를 서비스 해주는’ 꽤나 노골적인 가사입니다. (덕후의 마음은 섬세해서 노림수가 노골적이면 모에함을 느낄 수 없다고욧!)
다만 이런 가사관은, ‘여성의 대상화’를 공고히 하고 편견을 반복하는 내러티브라 제 귀엔 편히 들리지 않더라고요. 제가 글 초반에서 언급한 쇼와돌덕으로서의 고충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아무래도 지금보다 옛날이고, 그 중에서도 이 곡은 특히 가부장적인 가치관에 기댄 곡이라 ‘쇼와 가요니까 듣는 거지’ 싶죠. ‘힘들게 사회 생활하는 남성을 어머니처럼 감싸주는 여자친구’라니 이런 구시대 클리셰 중의 클리셰를…!
“아 할 수만 있다면 다시 태어나 당신의 어머니가 되어 나의 생명까지 내주어 당신을 지키고 싶어요.”
“나에게만 보여주었던 그 눈물, 그 날부터 결심했어요 당신의 꿈을 뒷받침하며 살기로.”
“어느 날 당신이 나에게 등을 돌려도 언제나 멀리에서 당신을 바라볼 성모.”
이 정도면 노림수가 부담스러울 정도 아닌가요? 진지하고 묵직한 멜로디라 ‘이 가사를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하는 갈등도 생깁니다.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니 뭔가 보편성을 건드린 것 같기는 합니다만, 분명 그 시대의 여성들도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가치를 생산하고 공들여 삶의 기반을 유지했을 텐데 이 ‘성모’상은 대체 어디에서 등장한 건지. 감격적인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조금 섬뜩하게까지 들리는 이 가사는,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 어떤 ‘대상’으로서 역할 수행을 한다는 위화감을 줍니다.
‘개인의 대상화’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입으로라도 한번 더 말할 때에 재가동 되는 젠더 불평등이란 개인의 자기다움을 대단히 무시합니다. ‘남자는 외로움을 타고 아이 같으니까 여자가 엄마 같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감싸주라’는 말은 일견 남자를 낮추고 여자를 성숙하게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여자의 행동 범위를 ‘희생의 아이콘 어머니’라는 프레임 안에 가두어버리죠. 그 사람의 속성이란 오직 여자인 것만도 아닌데. 그리고 여자라는 속성이 정형화 되어있는 것도 아닌데. 한번 눈을 감고 성별 생각 않고 그냥 ‘사람이다’ 하고 들어보면, ‘아무런 이유 없이 호구처럼 받아주기만 하는’ 캐릭터죠.
또, ‘남자는 철이 없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것 자체가 자기 편하자고 자신의 성인으로서의 존엄을 손쉽게 포기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철은 본인이 알아서 들었어야지, 미성숙한 자기 감정에 대한 책임을 당연하게 반려자나 여자친구가 지게 하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하잖아요. 여친은 엄마가 아닌데. 심지어 엄마에게도 ‘이런 나를 받아만 주는’ 감정 노동의 의무를 지워선 안 되는데 말이에요. 좋은 가수와 좋은 노래지만, 이런 노림수에는 ‘No’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좀 거국적으로 떠들기는 했습니다만, 저 역시 고백할 것이 한 가지 있어요. 젊은 시절 누군가의 가상 여친 나이 즈음의 히로링이 부른 ‘성모들의 자장가’는 불편한데요, 더 나이를 먹어 중년이 된 히로링이 부른 버전에서는 저도 묘한 안식감이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 감정을 갖는 스스로를 돌아보면, 나 역시 망할 자식놈이라 “엄마에게 안겨 어리광부리는” 심상을 떠올릴 때 감동이란 걸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에게 그런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몹쓸 짓인 줄 알면서도, 저 역시 이타적이고 조건 없는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이것은 남녀 가릴 것 없이, 빚진 자식이라면 모두 같겠지요.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이를 통해 반추해야 할 방향은 ‘그 희생이 개인에게 마땅히 짐 지울 일이 아니었음을 인정하는 것’이겠죠. 그래야 같은 짐을 다음 세대의 아내 될 사람에게, 혹은 같은 사회를 같이 살아가는 여성 사회구성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요.
마치며
야생동물은 먹이사슬 상위 포식자가 아닌 이상 편하게 드러누워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하죠. 잠이란 것이 나를 무장해제하는 일이기에 그럴 거예요. 잠자리에 듣는 노래인 자장가를 불러주는 사람이란, 나와 정말 가까운, 내 자는 모습을 허락해도 되는 사람이란 뜻이겠지요. 아이돌이 ‘자장가’를 부른다는 것에는 그렇게 ‘듣는 이의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가겠다는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청자로서 가수가 듣는 사람과의 사이의 거리를 줄여보려는 시도는 항상 웰컴이지만, 섬세한 덕후의 좌심방 우심실에 입주하시려면 이런 미묘한 불편함이나 아쉬움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히로링의 노래야 흘러간 가요가 되었다고 하지만, 전효성은 아직도 커리어가 창창하니 좀 더 기대해보고 싶습니다.
- 1st Listen : 2017년 4월 하순 - 2017-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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