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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과 쇼와 가요의 병렬식 ④

고의적인 농담, 혹은 모호한 경계. 자극적인 아이러니로 도발하는 가인의 ‘Truth or Dare’와 야마구치 모모에 ‘록큰롤 위도우’.

가인 ‘Truth or Dare’ & 야마구치 모모에 ‘록큰롤 위도우’

저는 지금 몹시 신이 나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두 가수의 얘길 할 거거든요! 오늘 골라본 두 곡은 가인의 ‘Truth or Dare’, 그리고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恵)의 ‘ロックンロール・ウィドウ (록큰롤 위도우)’입니다. 가인의 곡은 김이나 이민수 콤비의 곡으로, 이들이 작업한 아이유의 ‘너랑 나’를 이 연재의 첫 번째 글에서 소개한 적이 있어서 여러분께 낯설지 않을 것 같네요. 야마구치 모모에는 규현 & 오카다 유키코 편에서 동기인 사쿠라다 준코를 소개하며 잠시 언급한 적 있지요. 이번 글에서는 이렇게 앞서 던져놓았던 떡밥들을 회수해보려 해요.

https://youtube.com/watch?v=ZrdNZUUHt60
7분이 넘는 대작(!) 페이크 다큐멘터리 ‘Truth or Dare’ 뮤직비디오.
닮은 점: 반항적인 그들

먼저 가인의 ‘Truth or Dare’를 살펴볼게요. 아이즈의 가인 인터뷰에서 “내가 (혹은 우리가) 워낙 남의 말을 안 듣는다”라는 표현이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이 재미있더라고요. 남들이 뭐라 해도 하고 싶은 것은 끝까지 밀고 나간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고, 가인의 프로듀싱 팀이 지향하는 바가 ‘대중가요긴 하지만 사회 통념을 살짝 비트는 반항적 캐릭터’라는 의미일 수도 있겠지요. 또는 애초에 ‘남의 말을 안 듣는 성격’이라 저런 결과물이 나온 걸 수도 있고요. 결과적으론 그래서 식상함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Truth or Dare” 앨범에는 비방용인데도 차트 1위를 일궈낸 ‘Fxxk You’라는 훌륭한 곡이 있죠. 일단 후렴에 쌍욕(!)을 집어넣는 대범함부터 방송용 클린 버전 같은 건 만들지도 않은 점까지, 말 안 듣기로 작정한 듯한 스왝이 보입니다. 그런데 ‘Fxxk You’가 이렇게나 잘 뽑혔고 많은 사랑까지 받았음에도, 굳이 활동곡으로 ‘Truth or Dare’를 고집한 것은 이 시기의 가인의 팀이 ‘여가수를 둘러싼 소문’이란 주제를 꼭 한번은 하고 넘어가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 역시 참 말 안 듣는데 까리한 애티튜드 아닙니까. 아예 그다음 앨범에선 종교적 터부까지 터치했으니, 정말 하지 말란 거 골라서 하고 말 안 듣기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은퇴 전 마지막 출연한 〈밤의 히트 스튜디오〉 방송에서. 후반부에 전 게스트가 나와서 호응해주네요.

가사: http://doldolmarling.tumblr.com/post/120582369032/rock-n-roll-widow

야마구치 모모에는 72년에 데뷔한 이래, 청순한 소녀 가수로서는 파격적으로 섹스에 대한 암시를 담은 노래들을 불러 대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인기 가수의 궤도에 접어들고부터는 보편의 감성에 호소하는 발라드와 강한 여성을 그린 록적인 뉴뮤직, 크게 이렇게 두 개의 노선으로 활동했죠. 모모에 이전에도 아이돌은 존재했지만, 아이돌로 출발해 가창력, 표현력을 모두 갖춘 카리스마형 가수로 대성한 경우는 흔치 않아 지금도 많은 이들의 사랑과 동경을 받고 있고요. 스무 살 무렵 인기의 정상가도를 달릴 당시 결혼과 동시에 미련 없이 은퇴한 덕에 더욱 전설로 회자되고 있어요. 모모에가 역사상 처음으로 10대 나이의 비(非)엔카 가수가 홍백가합전의 홍팀 ‘토리’(여자 팀 피날레)를 맡게 해준 ‘プレイバックPart2 (플레이백 파트2)’ 등이 대표곡이죠. 이 곡을 만든 작사가 아키 요코(阿木燿子), 작곡가 우자키 류도(宇崎竜童) 부부가 ‘록큰롤 위도우’도 만들었는데요. 모모에와의 작업을 통해 일본 문화에 만연하던 순종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난, 자기 주장이 강한 도시 여성을 그려낸 곡들을 꾸준히 써냈습니다. 모모에의 차가운 표정과 매력적인 목소리를 만나 더 큰 시너지를 냈고요.

당시 여가수 노래로서는 드물게 남자를 “애송아(坊や)” 하고 부르거나(‘플레이백 파트2’), 둘 중 누굴 사랑하는지 똑바로 정하라고 호통을 치거나(‘絶体絶命 (절체절명)’), 아니면 ‘록큰롤 위도우’에서처럼 “적당히 해둬라, 내가 니 엄마인줄 아냐” 하고 일갈하는 가사에, 많은 여성들이 해방감을 느꼈다고 해요. (그런 모모에가 결혼과 동시에 은퇴를 한 것을 두고, 일본의 여성주의 쪽에서는 아주 많이 아쉬워했다고도 하고요.)

이 노래의 탄생 배경에 대해 항간에 떠도는 재미있는 설을 하나 소개하면요. 작곡가 우자키 류도는 다운타운 부기우기 밴드라는 팀의 멤버였는데요. 당시 불과 몇 개월 차이로 먼저 데뷔한 캐롤이란 밴드의 야자와 에이키치(矢沢永吉)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해요. 야자와는 과격하고 반항적인 록스타 이미지의 가수인데요. (지금 검색해보니 무려 연관 검색어가 폭주족…) 다운타운 부기우기 밴드는 먼저 데뷔한 캐롤에는 늘 조금씩 뒤지는 ‘콩라인’ 성적이었다고 합니다. ‘록큰롤 위도우’의 가사 1절에서는 뻐기기 좋아하는 로커를 비판하고, 2절에선 밤에만 남몰래 록 싱어로 변신하는 유부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거친 야자와의 모습을 꼴 보기 싫어한 우자키가 모모에의 입을 빌어 디스 했다는 해석이 있더라고요. 은퇴 전 마지막 활동 싱글이었던만큼, 그동안 가사 속에서 우유부단한 남자들을 호령해온 에너지를 끌어 모아 폭발시키는데, 무대 보는 쾌감이 대단합니다. 마이크 스탠드를 많이 높여 고개를 쳐들고 거칠게 내지르는 보컬이 정말 멋져요.

같은 곡의 우자키 류도 버전. 메이저 편곡도 신나네요.
다른 점: 섹슈얼 텐션을 만드는 방법

가인과 야마구치 모모에. 두 가수 모두 맥락 없는 자극을 던지기보다는 컨텍스트를 충실히 쌓아 올리는 중에 풍겨 나오는 섹시함으로 주목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먼저 가인의 작업은 가사로는 화자의 생각과 감정을 직구로 던져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략의 상황을 유추만 할 수 있게 해주고, 구체적인 비주얼은 콘셉트 아트와 뮤직비디오를 통해 쌓아 올립니다. 반면에, 야마구치 모모에의 노래들은 노래만 들어도 알 수 있도록 가사가 상황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인의 곡 역시 그 자체로 훌륭한 완제품이지만, 기획 단계에서부터 멀티 소스와 연계해서 완성 되게끔 만들어졌으니 70년대의 노래와는 다른 부분이 있죠. 이는 엠티비 이후와 이전의 시대 차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Truth or Dare’의 가사에서는 뒤에서 수군거리던 사람과 면대면으로 만나 대화하면서 그를 불편하고 부끄럽게 만든다는 상황이 상상 되는데요. 이 불편한 대화, 코웃음, 그리고 그간 당한 것에 대한 리액션으로서의 조롱이 버무려져 텐션을 만듭니다. 그렇게 기를 누르는 듯하면서도, 마지막엔 “사실 모든 건 너에게 달렸죠 내가 과연 어떤 사람이 될런진”이라며, 청자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줍니다. 때로 짜증나더라도 포기할 생각은 없는, 매력으로 어필 하는 여가수와 대중의 공생관계를 나름 정리해내려는 노력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소문에 시달린 노래 속 여가수 ‘가인’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 대사의 직접 전달이죠.

‘록큰롤 위도우’뿐만 아니라 아키 요코의 가사들은 시각적 심상 단어들을 적극 활용하고, 절의 도입부에 장면을 요약해 청자에게 제시해줍니다. 예를 들면, ‘플레이백 파트2’가 “녹음 속을 내달리는 새빨간 포르셰”를 시작으로 다른 차 운전자와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장면을 묘사한 뒤 플래시백을 통해 전날 밤 연인과 싸웠던 장면으로 순식간에 돌아가는 식입니다. 이 속도감 있는 진행과 격렬한 감정의 대립, 그리고 이를 싸늘한 표정으로 부르는 모모에의 퍼포먼스에서 섹슈얼한 텐션을 이끌어냅니다. 해당 곡들로 활동할 때 모모에의 나이가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초반인 것을 생각하면, 지금 생각해도 뭐 이런 괴물급 가수가 있었나 싶습니다.

닮은 점: 관객모독

저도 대중의 한 명이지만, 대중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어떤 사안에는 열심히 의견 개진을 하지만 어쩔 땐 쉽게 자기 의견을 버리기도 하고, 열광하는 데에도 등을 돌리는 데에도 근본적인 원인 파악을 하려면 많은 공을 들여야 합니다. 저 같은 소시민이야 대중 앞에 설 일이 없지만, 늘 그 시선들을 받아야 하고, 자유롭고 싶어도 관심이 끊겨서는 안 되는 연예인이란 직업은, 특히 대상화되기 쉬운 여성 가수는 이것을 어떻게 자기 삶과 연관 지어야 하나, 혹은 분리시켜야 하나 고민이 많을 거예요.

‘Truth or Dare’는 소문에 대한 노래입니다. 김이나와 가인이 참여해 그전 해에 발표된 또 다른 작품, 아이유의 ‘누구나 비밀은 있다 (feat. 가인)’에서 고민한 그것을 다른 컬러로 확장했다는 느낌이죠. ‘누구나 비밀은 있다’에서는 “비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강변하고 있습니다. ‘사실 너희는 아무 것도 몰라’ 같은 자세에서, 쉽게 술렁대는 대중을 향한 가벼운 혐오감도 느껴집니다. 한편, ‘Truth or Dare’은 그보다는 덜 노골적인 듯하면서도 좀 더 복잡한 의미의 냉소가 넘칩니다. “우리 아무 일도 없던 걸로, 안 들은 걸로 해요”하는 라인의 목소리가 마치 애원하듯 들리는 반면에, ‘Truth or Dare’의 화자는 ‘네가 알고 있는 것이 틀렸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너희의 오해를 이용하겠다’라는 태도입니다. 게다가 나중에 ‘저쪽이 먼저 꼬리 쳤다’라는 찌질한 주장도 들을 법한, 숨소리를 많이 섞은 목소리로 유혹하듯 노래하고 있어요. 상기한 아이즈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가인 본인은 “감정 표현을 더 디테일하게 살리려”는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네요. 이 노래를 처음 듣고 열광한 이들은 다른 대중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해 가사에 공감했을지 모르겠지만, 곧 자신도 그 대중의 한 명일뿐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거에요. 팝 컬처 중에도 대상화 끝판왕인 여성 가수를 보는 우리의 무의식적 훑어보기, 그 시선의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가사와 콘셉트, 퍼포먼스 모두에 뒤섞은 것이 이 곡의 아이러니의 미학입니다.

‘록큰롤 위도우’도 아이러니 하면 빠지지 않는 곡이죠. 이 곡은 모모에가 결혼하기 전 마지막으로 활동한 싱글이었는데요. 당장 몇 달 뒤에 새 신부가 되는 가수가 노래에서는 밤마다 비밀리에 집을 나서는 주부 로커를 연기하며 “남편은 죽었습니다, 좋은 사람이었죠” 같은 얘길 하는 게 아이러니가 재미있어요. (신랑 될 미우라 토모카즈(三浦友和)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무 것도 안 했는데 가상죽음잼…) ‘곧 남의 아내 될 여자’인 모모에가 ‘원한다면 유부녀라는 자기 상태도 뒤집어 연기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혼 선언으로 흥미가 떨어진, 아름다운 여가수를 보는 시선들에 대한 조롱이기도 하고요. 또, 곧 화려한 무대를 버리고 자연인으로 돌아갈 모모에에게 아키 요코와 우자키 류도 부부가 선사한, 무대에 서서 “사우팅 하는 것이 엑스터시”였던 시절을 잊지 말라는 선물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점: 고의적인 분명함, 또는 경계의 불분명함

‘새 신부가 부르는 과부 노래’라는 ‘록큰롤 위도우’의 작위성은 이보다 고의적일 수가 없습니다. 모모에의 결혼 자체가 큰 뉴스였으니까요. 모모에와 배우 미우라 토모카즈는 일하면서 연애하고 결혼에까지 골인한 케이스인데요. 원래 미우라는 모모에의 첫 주연 영화에 상대역으로 출연했다가 이 커플의 인기가 너무 많아져 이후에도 방송가와 프로덕션에서 계속해서 붙여준 짝꿍 배우로, 일종의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사이였습니다. 쇼와 시대 아이돌가에서는 이런 것이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모모에의 필모그래피가 총 13편인데, 데뷔작을 제외하면 나머지 12편에서 모두 미우라와 연인 사이로 출연했으니 70년대 일본 사람 중에 이 ‘골든 콤비’ 커플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거예요. 그런 미우라와의 결혼 발표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모모에는 아버지가 없었던 탓에 어릴 적부터 돈을 벌어야 했고, 스타가 되고서부터는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고 합니다. 일설에 따르면 어릴 때 가족을 버린 아버지가, 모모에가 스타가 되자 다시 나타나 돈을 요구했고, 모모에는 일련의 다툼에 지쳐 은퇴를 결심했다고도 합니다. 더불어 불행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자 하는 열망도 강했을 거라 보입니다. 위에서도 모모에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시각들이 많았다고 적었지만, 어린 나이부터 쇼비즈계에 있으면서 온갖 어려움을 겪은 본인에게는 인기란 버려야 한다면 단호히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나 싶어요. 다만 아이돌 여가수의 위상을 모모에가 많이 올려놓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결혼과 출산 뒤에도 계속 활동하는 아이돌이란 성취는 ‘포스트 모모에’라 불리운 마츠다 세이코가 해냈지요. 아무튼 이렇게 고의성이 분명한 덕분에 ‘록큰롤 위도우’는 별 다른 오해 없이, 누군가에겐 맥락이 분명한 하나의 조크로, 누군가에겐 모모에란 퍼포머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읽힐 수 있었을 거예요.

‘Truth or Dare’는 그보다 까다롭습니다. 일단 뮤직비디오가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띄고 있는데요. 이 거대한 농담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이즈의 인터뷰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가사 속의 여성은 ‘쉬운 여자’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을 저격하긴 하지만 그런 얘기를 하면서도 매력 어필을 잊지 않는 ‘언행불일치’ 캐릭터입니다. 그러나, 이를 ‘언행불일치’로 본다는 것은 ‘매력을 뽐내는 여자=도덕적으로 문란한 여자’라는 등식이 기저에 깔려있기에 가능합니다. 사실 일상 속에서 인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그를 찬양하는 이들이 찬양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일일까요? 오히려, 도덕적 실패는 그것을 뒤에서 험담하는 쪽에 있지요. ‘매력을 뽐내는 여자’라는 상식의 영역과 ‘문란한 여자’라는 정죄의 영역 사이에는 거대한 회색지대가 존재합니다. 그 많은 스펙트럼을 한 번에 건너뛰는 논리의 비약이야말로 가인의 ‘Truth or Dare’가 저격하는 지점입니다. ‘나는 당당하고 매력적인 여자이고 그걸 뒤에서 비난하는 너희 따윈 개의치 않겠다’라는 맥락으로 읽으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언행일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을 알쏭달쏭 애매모호하게 처리한 이 기획에 유일한 고의성이 있다면 그 지점이 아닐까요.

마치며

대상화되기 쉬운 섹시 여가수라는 직업에 주체성을 담는 작업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런 현상과 사례들을 관찰하는 것을 즐기는 입장에서, 항상 한 번쯤 정리해 텍스트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오늘은 숙원 사업 하나 해낸 것 같아서 뿌듯하네요.

아이돌은 본래가 판타지에 그 뿌리를 두고 있고, 사람들이 아이돌을 보며 느끼는 관음적 즐거움을 자본화합니다. 좋든 싫든 관심이 돈이 되는 성 상품화 산업인 거죠. 그래서, 제가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읽었던 미묘 님과 아밀 님의 대화는 양측 모두에 귀 기울일 가치가 있습니다. 아이돌이란 산업 자체에 과연 성평등적으로 온당한 가치가 있는가, 우리가 이들을 소비하는 방식 자체가 성해방과 정반대의 방향이 아닌가 하는 아밀 님의 말씀은 타당합니다. 그러나 아이돌 팬인 저로서는 아이돌 비평 역시 세상과 관계한다는 믿음으로 그 안에서 꾸준히 좋은 사례를 발굴하는 일의 바람직함에 주목한 미묘 님의 시선에 좀 더 기대고 싶더라고요. 물론 아밀 님이 지적한 대로 “그것을 소비하는 우리의 ‘기쁨’은 대개 반여성적인 욕망에서 출발한다는 전제를 가감 없이 인정해야, 무언가에 과도하게 전복적인 의미를 부여할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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