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보다도 더 빨리 한국 음악을 기사화하는 열정적인 미국인 칼럼니스트. 〈빌보드 (Billboard)〉와 〈퓨즈 (Fuse)〉에서 케이팝 리뷰와 기사를 쓰고 있는 제프 벤자민(Jeff Benjamin)을 케이콘 LA 2015 현장에서 만났다. 한국 대중음악 평론가와 미국 케이팝 칼럼니스트가 만난 흔치 않은 인터뷰. 그가 직접 만나본 아이돌들의 이야기, 그가 전망하는 케이팝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어본다. 1편에서 이어진다.
김영대: 가장 예쁜 아이돌은?
제프: 아… 잠깐만… (한참이 지나고) 글쎄. 스피카의 지원. 참 예쁜 아가씨다. 아울러 원더걸스의 유빈과 혜림도 예쁘다.
김영대: 유빈은 직접 말을 해보면 더 매력적인 느낌일 것 같다. 전형적인 한국 여성 느낌도 아니다.
제프: 솔직히 말하면 반한 것 같은 느낌이다. (웃음) 영어도 정말 잘한다. 쿨한 태도도 맘에 든다.
김영대: 예전 기사를 보니 원더걸스에 애정이 있어 보인다. 어찌 보면 케이팝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룹인데 동시에 그만큼의 대접을 받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제프: 그렇다. 개인적으로 원더걸스의 “Wonder World”(2011)는 현대 케이팝 음악의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미국 내 케이팝의 존재감에 있어서 그들의 역할은 대단히 컸다. 〈빌보드〉가 처음 케이팝을 주목하게 된 것도 그들 때문이었다. 그들의 〈빌보드〉 라이브 퍼포먼스는 역대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심지어 아델(Adele)이나 브루노 마스(Bruno Mars)보다도 앞섰다. 앞으로 벌어질 케이팝의 흐름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고, 또 그 풍을 확립한 그룹이다. 그들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여러 일들을 겪고, 세월을 견뎌냈다.
김영대: 이제는 심지어 밴드로 돌아온다. 멤버 둘이 빠진 것도 그렇고 엄청난 변신이다.
제프: “Reboot”라는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그에 걸맞은 변신이고, 티저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단순히 80년대 사운드를 되살렸다는 것이 아니라 유치하지 않은 높은 수준의 사운드로 되살리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누구나 귀에 꽂히는 노래는 만들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주: 이 인터뷰는 “Reboot” 앨범이 발매되기 전인 8월 초에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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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대: 최근 아이돌 음악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올 초 아이돌의 최대 이슈 중 하나는 빅뱅과 엑소의 실시간 음원 쟁탈전이었다. 엑소는 2집과 리패키지를 연속 히트시켰고, 빅뱅은 시리즈로 발매된 싱글로 영리하게 맞섰다. 새벽에는 엑소가, 낮에는 빅뱅이 멜론차트의 1위를 탈환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당신은 미국 내 판매량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 것 같은데 그때 상황은 어땠는지 기억하나?
제프: 판매량만을 말하자면 빅뱅이 앞섰다. 빅뱅이 1, 2위에, 엑소가 3위에 올라왔다. 한 곡도 아니고 세 곡이 동시에 월드 싱글차트 정상을 다툰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또한 〈빌보드〉의 스태프들도 정말 놀라워했던 것은, 두 그룹의 싱글들이 역대 판매량을 모두 경신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곡들이 보여주는 음악적 완성도가 고무적이었다. 케이팝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차트에서 프리뷰만 들어도 충분히 좋아할 수 있을 만한 보편적인 매력을 가진 곡들이다.
김영대: 전반적으로 미국 내에서는 빅뱅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인가?
제프: 그렇긴 한데 앨범 판매에서는 엑소가 앞서고 있다. 물론 아직 빅뱅이 3년 가까이 정규 혹은 미니앨범을 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빅뱅이 어떤 앨범을 가지고 나와 반격을 노릴지 기대가 크다.
김영대: 최근 빅뱅의 신곡과 관련해 당신과 내가 거의 같은 내용의 리뷰를 쓴 것을 보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맨정신’을 들으면 빅뱅이 이미 평범하고 전형적인 아이돌을 완전히 ‘졸업’했음이 확연히 느껴진다. ‘Loser’도 마찬가지다. 언뜻 ‘Bad Boy’가 연상되는 느린 그루브이긴 하지만 훨씬 성숙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의 최근 음악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제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각 곡이 가진 다양한 음악적 지향과 스타일이다. 앨범으로서 어떻게 묶일 수 있을지 감이 잘 오지는 않지만 각각이 훌륭한 곡들인 것은 분명하다. ‘Loser’는 올해 나온 음악을 통틀어 가장 빼어난 노래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Bae Bae’ 역시 마찬가지다. ‘뱅뱅뱅’의 경우는 어떤 부분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흥미로운 곡이다.
김영대: 엑소는 결성 당시 SM 엔터테인먼트의 궁극의 아이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닛 시스템, 음악, 퍼포먼스, 외모 등 모든 부분에서 완성판이라고 볼만큼 높은 퀄리티를 가진 그룹이다.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많은 팬덤을 끌어모은 팀이기도 한데, 중국인 멤버 세 명이 이탈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SM의 현지화 전략의 실패가 아니냐는 분석도 있고, 반대로 그들의 탈퇴와 엑소의 인기는 무관했다는 평가도 있다.
제프: 엑소의 결성과정이나 배경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들이 예외적인 것은 그룹에 대한 충성도를 강하게 결속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멤버들이 빠져나갔지만 오히려 미국 내에서 신보의 판매량은 훨씬 더 높아졌다. 이탈되는 팬 역시 거의 없었다고 본다. 음악이 역시 훌륭했다. ‘Love Me Right’은 대단히 뛰어난 팝 음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김영대: JYP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한국에서는 JYP 위기설도 나오고 있고, 다른 기획사도 마찬가지일 수 있겠지만 그들이 만든 음악에 대한 호불호도 있는 것 같다.
제프: 그런가? 솔직히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다른 어떤 기획사의 음악에 비해서도 JYP의 음악이 마음에 든다. 음악의 퀄리티에 대해 그들이 대단히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점을 늘 존중하고. 선미, 미쓰에이의 미니앨범도 모두 훌륭했고, 특히 15&의 음악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김영대: 갓세븐은 어떤가? 올해 케이콘을 와보니 미국 현지에서 그들의 인기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Next big thing’이 아닐까?
제프: 사실 음악만으로 처음 접하고 아주 인상 깊지는 않았는데 그들의 공연을 라이브로 접하고 생각이 또 바뀌었다. 공중에서 돌고 뛰는 등 엄청난 무대 연출에 “와, 이건 완전히 새로운 종류군!”하는 느낌도 갖게 되었다. JYP의 음악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사람들이 종종 잊고는 하지만 어쨌든 케이팝 아이돌도 ‘음악’이다. 그 점을 늘 잊지 않았으면 좋겠고, 나 역시 늘 그 점으로 돌아가서 생각하려고 한다. 다른 기획사가 보다 전체적인 ‘패키지’로서 훌륭한 음악을 만드는 편이라면, JYP는 늘 음악 자체의 높은 품질을 신경 쓰는 것 같다.
김영대: 싸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싸이는 현재 케이팝 씬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뮤지션이지만 가장 성공한 케이팝 스타이기도 하다. 이 아이러니야 말로 주변부의 음악인 케이팝의 위상을 증거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의 미래는 누구에게나 큰 관심이 아닐 수 없다. 한때 그의 인기와 케이팝의 인기가 관계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제프: ‘강남 스타일’을 내놓기 전에도 그를 알고 있었는데, 내게 그는 독특한 랩 뮤지션이었다. 그가 케이팝에서 가장 성공한 월드스타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날 〈빌보드〉의 편집장이 내게 한창 한국에서 인기몰이 중인 그의 새 뮤직비디오를 봤냐고 물어보길래 왜 그런가 싶었는데, 곧 세계적인 히트곡이 되었다. 싸이가 만든 중요한 변화는 어쨌건 한국 음악에 무지하거나 관심 없는 사람들을 케이콘과 같은 자리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사실 뮤직비디오는 누구나 볼 수 있다. 하지만 표를 사거나 콘서트를 찾거나 그로 인해 소비가 발생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싸이가 그 촉매제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김영대: 싸이의 미래는 어떨까? 그가 계속 미국에서 존재감을 떨칠 수 있을까? ‘강남스타일’이 성공했지만 ‘젠틀맨’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 이후로는 이렇다 할 히트곡은 없다.
제프: 사실 난 ‘젠틀맨’을 ‘강남스타일’보다 더 좋아했다. 비트, 편곡, 모든 면에서 ‘강남 스타일’을 능가하는 곡이라 생각했다.
김영대: 개인적으로 ‘젠틀맨’의 〈빌보드〉 1위 등극을 점쳤는데, 결과는 아쉽게 달랐다. 하지만 ‘강남 스타일’의 성과가 늘 기준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팝 음악은 그렇게 예측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제프: 당연하다. 그는 늘 재미있고 자유로운 ‘래퍼’가 되고 싶어 했던 사람이고, 그런 자신의 소신을 일관되게 밀고 가다 보면 당연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새’ 같은 곡은 얼마나 좋나? 미국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을 거라 본다. 그가 원래 잘했던 것들, 풍자적이면서 유머러스한 랩, 그런 정체성을 찾아가면 그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여지는 늘 있다.
김영대: 싸이는 어느 순간 월드 스타가 되었고, 그 명성은 이제는 힘이자 짐이다. 이제 전 세계적인 히트곡을 내지 않으면 실패로 간주되는 상황이다.
제프: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한-미 양국을 오가며 양쪽 대중들에게 모두 어필해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김영대: 씨엘은 어떤가? 곧 미국 데뷔를 앞두고 있다. 싸이 이후 최고의 솔로 아티스트가 될지도 모르겠다. 음악적 재능은 물론이고, 영어, 인터뷰 스킬, 태도 등 미국 시장에서 요구할만한 것을 갖췄다고 생각하는데. 게다가 최근에는 ‘내가 제일 잘나가’가 전국에 널리 퍼졌다.
제프: 잘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다. 곧 씨엘과 스튜디오에서 만나 신곡 관련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가장 긍정적인 것은 그녀가 스쿠터 브론(Scooter Braun)과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브론은 저스틴 비버(Justine Bieber),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 토리 켈리(Tori Kelly) 등을 데리고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음악적 재능뿐 아니라 독특한 개성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이는 씨엘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2NE1의 멤버 혹은 인스타그램 셀피 스타 정도로 알고 있지만, 그녀는 여러 악기를 다루고 곡을 쓸 줄 아는 뮤지션이며 굉장히 재미있는 사람이다. 바로 그 점에서 스쿠터 브론과 씨엘은 좋은 궁합이다. 그가 씨엘을 잘 만들어 줄 것이다.
김영대: 왜 2NE1이 아니라 씨엘 단독이었을까. 보통의 사람이라면 자연스러운 질문일 것이다.
미국 시장은 다르다, 미국 시장은
제프: 아무래도 미국에서 걸그룹은 매력이 약하다. 푸시캣 돌스(Pussycat Dolls) 이후로는 이렇다 할 그룹도 없다. 걸그룹, 특히 아시안 걸그룹이라는 포맷은 미국의 대중들에게 소화하기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씨엘은 래퍼인 데다가 영어가 주언어가 아닌 아시안 여성으로 쉽지 않은 포지션인데, 그래도 최근에는 상황이 좋아졌다. 호주 출신의 래퍼인 이기 아잘리아(Iggy Azalea)의 성공 이후로 아시안 여성 래퍼도 안될 이유는 없다는 의견이 점점 나오고 있다. 씨엘에게는 긍정적인 부분이다. 염려스러운 부분은 래퍼 씨엘은 어쨌든 한국의 ‘걸그룹’ 출신이라는 점이고, 만약 주목받게 된다면 미디어에서 그 부분에 집중할지도 모른다.
김영대: 오히려 음악은 크게 걱정할 부분이 아닐 것 같다. 좋은 스태프가 함께할 것이고, 무대 매너 등은 이미 검증되었다. 개인적으로 싸이 이후 최초의 〈빌보드〉 싱글차트 입성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제프: 음악만 좋다면 다른 문제는 다 해결될 것이다. 케이팝 최초의 ‘라디오 히트’ 싱글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김영대: ‘강남 스타일’은 정확히 라디오 히트라고는 할 수 없었으니까. 미국 FM의 폐쇄적인 플레이리스트 시스템이 비주류들에게는 큰 관문이다.
제프: 타이밍이 안 좋았다. ‘강남 스타일’의 유튜브 인기가 정점을 찍을 무렵 정작 라디오 플레이가 되지 않았으니까. 뒤늦게 나오기 시작했지만 이미 인기가 한풀 꺾인 뒤였다. 지금이라면 능히 1위가 가능했을 거라 본다. 그 당시 ‘강남 스타일’보다 좋은 곡이 몇 곡이나 있었나? 마룬5(Maroon 5)의 ‘One More Night’이 그렇게 오래 1위를 할 만한 곡이었나 의심스럽다. (웃음) 60년대만 해도 진짜 좋은 곡을 DJ가 주관적으로 선곡하고 홍보하는 게 가능했다. 이제는 똑같은 곡 다섯 곡이 한 달 내내 돌려 나온다. 씨엘이 그 장벽을 뚫을 수 있다면 너무 다행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러지 못한다고 해도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김영대: 걸그룹의 기세가 높다. 씨스타, EXID, AOA, 에이핑크에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까지. 어느 때보다도 많은 걸그룹이 케이팝 씬을 장악하고 있는 듯싶다. 양적으로는 물론이고 전체적인 곡의 완성도도 많이 올라갔다고 할 수 있고… 그런데 동시에 무언가 빠졌다는 생각도 있다. AOA나 에이핑크를 생각하면 퍼포먼스 등에서 물론 흠잡을 데 없지만 캐릭터나 음악적인 개성, 각각이 가진 뭔가 독창적인 것들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 에이핑크의 ‘Remember’에 대해서 트위터로 아쉬움을 표했는데 그런 맥락이었나?
제프: ‘Remember’에만 국한해 말하자면, 콘셉트가 조금 어색했다고 말하고 싶다. 곡도 좀 부자연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고, 특히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풍선을 든 이미지 등은 이미 20대 초반인 그들의 나이 등을 생각했을 때 너무 작위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걸그룹의 섹시나 노출에 대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룹들이 너무 정형화되는 것은 문제다. 당신도 그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 자연스럽게 섹시한 것이 아니라 억지로 섹시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별로다. 신나는 음악, 멋진 퍼포먼스도 좋지만 어쨌든 이 음악을 부르는 주체는 젊은 여성 혹은 소녀다. 그들의 자신의 입장에서 어떤 식으로 스스로를 나타내고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섹시는 위험하지 않다
김영대: 그럼 이야기가 나온 김에 걸그룹의 노출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가 보자. 당연히 현재 아이돌은 매년 더욱더 ‘섹시’해지고 있고, 섹시 콘셉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노출이나 섹시함도 분명 하나의 콘셉트고 음악적인 표현일 수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아까 말했듯 뭔가 정형화되는 문제도 있다. 영혼 없는 섹시함이라고 할까? (웃음) 그리고 어쨌든 아이돌은 철저히 10대들의 음악이다. 이러한 측면을 생각할 때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제프: 글쎄… 내가 뭐 누구의 아빠도 아니고…(웃음) 걸그룹의 노출이나 섹시 댄스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결국 무언가를 어딘가에서 배우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나? 조금은 유연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그들의 노출이나 댄스는 무대 위나 콘셉트에 국한된다. 그 외의 부분에서는 오히려 더 예의 바르고, 착하고, 바른 행실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많지 않나?
김영대: 바로 그 점인데, 한국의 아이돌이 미국과 다른 점은 악동스럽거나 다소 외설적인 이미지가 실생활과는 거의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해보면 오히려 한국의 아이돌은 ‘건강한’ 편에 속한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제프: 정확하다. 미국이나 영국을 보면 무대 위에서 외설적인 행동을 하고, 카메라를 때리고, 욕설 같은 것을 하는 팝 스타들이 많다. 물론 여자 아이돌의 노출은 ‘대상화’된다는 점에서 남자 아이돌과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남자도 옷을 찢거나 복근을 보여주거나 하는 것도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리스너가 그렇게 바보는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도 그들에게도 판단력이 있고, 때로는 그들을 존중하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룹 퍼포먼스, 케이팝은 왜?
김영대: 한국 아이돌 음악의 특징은 그룹 퍼포먼스다. 너무 당연한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왜 유독 케이팝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생각하나? 미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는 오히려 트렌드의 역행에 가깝다. 음악 산업은 80년대 이후로 급격히 보수화되었고, 안정된 성공과 수입을 위해 특정 개인에게 투자를 집중시키는, 소위 말해 ‘몰빵’이 주된 전략이었다. 그러나 케이팝은 그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제프: 정말 좋은 질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지만 한국 특유의 유교적 문화가 그룹에 더 맞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미국의 문화에서 개인이 아닌 ‘팀’의 개념을 앞에 두고 팝 그룹을 운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측면이 있다. 특히 예술적인 측면에서 집단이 아닌 개인의 욕구를 우선시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김영대: 그래도 90년대에 보이밴드의 전성기도 있었다.
제프: 그렇지만 대부분은 결국 리더나 특정 멤버에게 인기가 집중되고, 그런 식으로 각자의 솔로 활동으로 귀결되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웠다. 그런 면에서 미국 산업에서는 보이밴드 혹은 걸그룹을 위험한 투자로 간주하는 것이다.
김영대: 바로 그 점이다. 어떻게 유독 한국에선 성공적이고 영향력 있는 보이밴드, 걸그룹을 이렇게 지속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가 하는 것. 가령 미국에서는 제2의 뉴키즈(NKOTB)나 제2의 엔싱크(N’Sync)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한국을 보면 H.O.T. 이래로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한국 기획사들이 노하우를 확보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까?
제프: 그렇다. 내가 보기에 한국의 아이돌은 팬덤이 원하는 바를 반영하는 점에 있어서 훨씬 섬세하게 접근한다. 리더, 막내, 외모담당, 댄서, 래퍼 등… 사실 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좀 황당한 개념이긴 하지만, 각각의 멤버를 모두 개성 있게 만들기 때문에 생명력이 길 뿐 아니라 팬덤을 확보해 나가는 데도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룹 내 최고의 가수나 래퍼에게 인기가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팬덤 역시 이런 아이돌 그룹의 개성 있는 구성에 익숙해지고 기대감을 품기 때문에 한 그룹의 팬이 다른 그룹에도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잡식성의 올인원 패키지
김영대: 나는 70년대 후반에 태어났고, 그런 우리 세대에게 팝은 곧 미국 대중음악을 의미했다. 우리에게 한국 음악의 세계적인 부상과 인기, 그리고 당신처럼 외국인들의 한국음악에 대한 관심은 신기하면서 동시에 낯설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음악의 아류로도 볼 수 있는 한국 대중음악, 케이팝에 미국 팬을 비롯한 세계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신이야말로 이런 생각에 반박할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웃음)
제프: 글쎄.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케이팝이야말로 현대 대중음악에서 궁극의 ‘올-인-원’ 패키지라고 생각한다. 바꾸어 말하면 케이팝 아이돌 음악은 트렌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끌어와 그것을 최대치로 다듬어 매력을 극대화한다. 연예산업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것들을 전방위적으로 갖춘 것이다. 빼어난 노래 실력, 브레이크 댄스, 랩, 화려한 뮤직비디오, 군무… 이런 것들이 모여 하나의 완벽한 엔터테인먼트로 탈바꿈한다.
김영대: 동시에 멤버 개개인이 품은 매력적인 성격도 중요한 부분이다. 멤버 개인에 대한 충성심으로 팬덤이 유지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제프: 그렇다! 미국에서는 찾기 어려운 부분이다. 아까 말한 ‘아류’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면… 케이팝을 미국 팝의 아류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요새 팝 음악에서 과연 ‘오리지널’한 것이 얼마나 있는지 확실히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케이팝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늘 연구해 그것들을 끌어모아 세련되고, 흥미롭게 조합하고, 사람들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음악이다.
김영대: 이유를 불문하고 어쨌든 ‘먹힌다’는 것.
제프: 바로 그 점이다. 예전처럼 서구에서 먹힐 만한 것을 찾는 게 아니다. 일본 시장, 다른 아시아 대중, 유럽과 남미 대중의 취향도 연구하고 반영한다. (과거의 아이돌 음악처럼) ‘어린 소녀’ 취향에게 호소하는 범주를 뛰어넘는 것이다. 더 큰 사고이다.
김영대: 한때는 케이팝이 제이팝에 이은 또 다른 아시안 팝일 뿐이라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고, 주변부의 본격적인 반란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지금은 보다 현실적인 눈으로 전망할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케이팝이 당장은 이 추세를 유지할 거라고 본다. 적어도 마땅한 ‘대체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더 멀리 가기 위해
제프: 한가지 할 수 있는 말은 현재의 상황을 너무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중음악 산업은 현재 세계 8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중음악 산업은 늘 가변적이다. 당장 내년에 누군가가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와도 이상할 게 없다. 케이팝 기획사들에게 바라는 점이 하나 있다면 다양한 시도에 더 문을 활짝 열어놓았으면 하는 것이다. 멈추어 있지 말고 사람들이 왜 이 음악들에 열광하는지, 사람들이 그들을 주목하는 그 핵심과 본질은 무엇인지 더 탐구해서 반영해야 한다.
김영대: 그래서 트렌드라고 하지 않나. 멈추면 밀려난다. 구체적으로 제시할 만한 새로운 흐름이랄까, 대안이랄 것이 있을까?
제프: 글쎄… 이런 말이 어떨지 모르겠지만(웃음)… 미국 내의 게이 커뮤니티에서 케이팝의 인기가 엄청나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다. 특히 걸그룹의 인기가 대단하다. 정확한 한국의 정서는 모르지만 한국 내에서 이 점이 터부시될지도 모르겠다. 절대 엮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김영대: 게이 커뮤니티? 발상의 전환이다. 한편으로 70년대 말에 흑인 게이 커뮤니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디스코나, 시카고의 하우스 음악 씬 등이 연상되기도 한다. 생각해보니 샤이니의 ‘View’도 장르적으로 잘 통할 만한 곡이다. 아이돌들도 그런 뉘앙스를 미묘하게 활용하는 느낌이다. 팬픽도 유사한 맥락이고.
제프: 소녀시대 같은 그룹이 게이 클럽에 나타난다고 그림을 그려보라. 만화 주인공 같은 여덟 명의 여성이 그들 앞에서 공연을 펼친다고… ‘세상에…’ 아마도 다들 미쳐버릴 것이다. 내 트위터 팔로워 중에도 상당수의 게이들이 있다. 어쨌든 이런 것은 정말 하나의 예일 뿐이다. 다양한 무대와 기회와 가능성이 널려 있다. 그런데 정작 기획사들은 그런 것들을 과감하게 시도하려고 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 말로는 ‘글로벌’이 되고 싶다고 하지만 정작 ‘글로벌’한 마인드를 갖추지 않은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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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대: 케이콘을 와보고 느낀 점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케이팝과 아이돌의 모든 것에 목말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프: 바로 그 점이다. 왜 다들 소극적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퍼포먼스와 음악도 중요하지만 그냥 이곳에 와 팬들을 만나고 인사해주는 것만으로 엄청난 효과가 있다. 앞으로 조금 더 적극적인 자세로 다양한 곳에 진출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으면 한다.
김영대: 긴 시간 인터뷰였다. 같은 저널리스트를 인터뷰하기는 또 처음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프: 그러게. 살짝 어색하긴 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내 글을 읽고 반응해 주는 한국의 독자들이 있다는 것이 영광스럽고 고맙다. 〈빌보드〉와 〈퓨즈〉를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흥미롭고도 심도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 제프 벤자민에게 감사한다. 제프 벤자민은 〈빌보드〉와 〈퓨즈〉, 그리고 자신의 트위터 @Jeff__Benjamin를 통해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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