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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 2021 : 필진 대담

작년에 이어 올해 역시 팬데믹 가운데 케이팝이 고군분투한 한 해였다. 연말결산을 맞이해 신규 필진 비눈물을 포함, 아이돌로지 필진 9명이 모여 대담을 진행했다. 현재 케이팝의 경향성부터, 과거 케이팝의 아카이빙(멜론, 서울신문 기획 ‘K-POP 명곡 100’), 그리고 미래 케이팝에 대한 논의까지.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르며 케이팝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2021, 케이팝의 과거-현재-미래

작년에 이어 올해 역시 팬데믹 가운데 케이팝이 고군분투한 한 해였다. 연말결산을 맞이해 신규 필진 비눈물을 포함, 아이돌로지 필진 9명이 모여 대담을 진행했다. 현재 케이팝의 경향성부터, 과거 케이팝의 아카이빙(멜론, 서울신문 기획 ‘K-POP 명곡 100’), 그리고 미래 케이팝에 대한 논의까지.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르며 케이팝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스큅: 어느덧 2021년의 끝자락이다. 본격적인 연말 결산에 들어가기 앞서 한 해 동안 케이팝 신(scene)의 동향을, 더 나아가서는 케이팝의 과거-현재-미래를 짚어보고자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먼저 아이돌로지에서 집계한 2021년 발매작 통계(2021.12.17 기준)부터 살펴보자.

마노: 올림픽의 여파로 7월이 생각보다 비수기였던 걸 제외하면, 1년 내내 엄청나게 달렸다는 인상이다.

스큅: 7월은 확실히 발매작이 적었다. 2, 3월도 발매작이 적긴 했지만 굵직한 정규앨범들이 나와서 그러한 인상이 덜했던 반면, 7월은 정규앨범도 단 1장이라 확실히 올림픽 특수가 느껴지는 달이었다.

랜디: 팬데믹 자체는 작년과 별로 다르지 않았는데, 작년에 오래 기다린 나머지 올해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놓는다는 쪽이 많았던 것 같다. 작년에 다들 많이 어려웠구나 싶어서 짠하기도 했다.

조은재: 작년에 기다린 것도 있었고, 활로를 개척하는 방법을 1년 사이 많이 찾기도 했을 것 같다.

마노: 작년에 비하면 그나마 어느 정도 대면 활동이 활성화되어서 작년 상반기에 비하면 올해 하반기는 많이 활발했다는 느낌도 든다.

에린: 해가 끝나기보다는 빨리 내년을 시작한 인상도 있다.

스큅: 원래 언제나 연말에 발매작이 몰리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단계적 일상 회복 국면에 접어들면서 컴백 러쉬가 이어진 것도 확실히 있어 보인다. 그리고 내년 상반기에는 2월 베이징 동계 올림픽, 3월 대선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이벤트들이 줄줄이 이어지는지라 연말 특수 핸디캡을 감수하고서라도 미리미리 활동해야겠다는 느낌으로 나오는 모양이다.

케이팝의 현재: 신인 아이돌의 경향

조은재: 그런데 나만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연말에 데뷔하는 신인이 부쩍 늘기도 한 것 같다.

스큅: 연말에 데뷔한 아이돌이 다음 해에 완전히 자리매김하는 형태가 많이 두드러졌다. 올해 약진이 눈에 띄는 신인은 전부 작년에 데뷔한 신인들이었다. 올해 이렇다 할 신인이 적었기도 하거니와.

심댱: ‘빠른 데뷔 년생’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다.

아이브, 2021년 12월 1일 데뷔

조은재: 요새 그 누구에게 물어봐도 한숨 섞인 답변이 돌아오는 질문이, ‘올해 신인 보이그룹’이다.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랜디: 개인적으로는 미래소년 데뷔곡이 괜찮았다.

조은재: 그나마 미래소년 데뷔곡이 괜찮았다는 반응이 많았고, 판매량은 아마 이펙스가 높은 편이었다.

스큅: 개인적으로 오메가엑스가 의외로 괜찮았는데, 프로젝트형 그룹이라 아쉬울 따름이다. 반면 작년 말 아직 어떤 그룹일까 긴가민가 싶었던 엔하이픈, 피원하모니가 올해 좋은 결과물들을 내놓아서 차라리 이들을 올해의 신인에 올리는 게 좋지 않나 생각도 들었다. 특히 피원하모니는 주로 락을 하던 크리스천 회사(!)에서 이렇게 알앤비, 소울, 힙합을 본격적으로 잘 소화해낼 줄은 몰랐다.

에린: 피원하모니는 작년에 데뷔하고 올해 바로 미국 프로모션을 돈 활동 방향이 흥미로웠다. 물론 그 때문에 컴백을 자주 하지 못했지만, 타깃 시장을 빨리 찾은 행보가 재밌었다.

예미: 피원하모니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미국 등 해외 팬덤의 취향을 고려한 것 같다. 방탄소년단과 스트레이키즈까지 지나간 이후에 데뷔한 팀이니. 어쨌든 괜찮은 보이그룹을 데뷔시킬 만한 회사가 다 작년에 데뷔를 시킨 느낌이다.

피원하모니, 2020년 10월 28일 데뷔

스큅: 그래도 신인 걸그룹은 나름 인상적인 움직임이 많았다. 신사동호랭이와 EXID 출신 LE가 함께 프로듀싱하는 트라이비부터, 의외의 기획력을 꾸준히 보여주는 픽시, 마마무를 배출한 RBW 출신답게 탄탄한 실력을 보여준 퍼플키스, 연말에 데뷔한 빌리와 아이브까지. 흥미로운 걸그룹들이 꾸준히 나왔다.

랜디: 맞다. 올해 신인은 걸그룹이 훨씬 강세였다. 작년에 데뷔했던 팀들도 그렇고.

마노: 걸그룹이 다양하고 재밌는 결과물을 많이 보여주고 있는데 반해 보이그룹은 침체 상황이다. 작년에는 상반기에 데뷔해 일 년 동안 장기적으로 활동을 펼치면서 대중을 설득해나간 팀이 꽤 있었고, 그 설득이 어느 정도 성공적이기도 했다 생각하는데, 올해는 일찍 데뷔했다고 해서 설득력이나 당위성을 얻는 경우가 많진 않았던 것 같다.

스큅: 어쨌든 보이그룹과 걸그룹을 막론하고 작년 하반기에 데뷔한 그룹이 강세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마노: 작년 하반기가 정말 신인 데뷔 러쉬였고, 올해도 상반기까지는 신인 기근 현상이 심했다가 하반기 들어서 물꼬가 트인 인상이다.

예미: 연말에 데뷔하고 그 다음 해에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패턴일까. 스테이씨나 에스파를 생각하니 확실히 그렇다.

마노: 작년엔 엔하이픈이 딱 11월 30일에 밀린 숙제 끝내듯 데뷔했던 것과 달리, 아예 보란 듯이 그 시기를 비껴서 데뷔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재밌었다.

조은재: 사실 11월부터도 연말로 많이 보기는 한다. 원래 연말이 신인이 데뷔하기에 그다지 선호하던 시기가 아니라서, 굳이 데뷔해야 한다면 보통 선공개 싱글이나 프리-데뷔 형태가 많았다.

심댱: ‘이대로는 미룰 수 없다’인 것 같기도 하다. 우선 눈도장부터 찍는 게 낫겠다 싶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스큅: 작년에는 코로나-19로 데뷔를 미루고 미루다 팬데믹이 장기화될 것이 확실시되니 하반기에 마지못해 나왔다면, 올해는 시국이 조금 안정될 기미가 보여 데뷔를 미루고 있던 건 아닐까 생각도 해봤다. 물론 오미크론 변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맞닥뜨렸지만…

랜디: 연말 시상식들이 힘을 잃어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전엔 연말이면 다들 시상식 얘기로 바빴는데 이제는 화제성이 덜하니까…

조은재: 나는 반대로 시상식을 의식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랜디: 아 오히려 의식을 해서?

조은재: 연말에 나온 팀들이 대부분 대형 기획사 출신이다. 보통 시상식들이 10월에 집계를 끝내던 관례가 있어 11~12월을 연말 데뷔로 보는데, 이때 데뷔하면 만 1년을 꽉 채워 활동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만 1년간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펼칠 여건이 되는 레이블에서는 일부러 연말에 데뷔곡을 내놓고 연말 무대와 시상식으로 주목도 끌어내는 것 같다.

2020년 11월 30일 데뷔 후 6일 만에 〈2020 MAMA〉에서 무대를 꾸민 엔하이픈

랜디: 큰 회사들은 데뷔하자마자 물량 공세를 하니. 그렇겠다. 다음 해 결산 때에는 만 1년을 꽉 차게 활동했으니 좀 더 두각을 드러낼 수도 있을 것이고.

마노: 12월에 보란 듯 데뷔하는 건 “내년 신인상은 우리가 먹겠다”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했다.

스큅: 작년의 에스파, 스테이씨, 엔하이픈이 딱 그런 포지션이다.

예미: 올해는 아이브가 그렇고.

조은재: 기획사들이 시상식을 신경 안 쓴다는 건 너무 어불성설이다. 신경 안 쓰는 건 오히려 케이팝에서 멀어진 대중들이 아닐까.

랜디: 대중들이 관심이 없어진 건 TV의 영향력이 줄어든 만큼 그런 것이겠다. 레거시 미디어의 힘이 점점 빠지는 게 반영되는 부분이다.

케이팝의 현재: 지금 케이팝의 청중은…

예미: 그런데 현재의 케이팝은 케이팝에서 멀어진 대중을 별로 노리지 않는 것 같다.

조은재: 케이팝이 노리지 않는 건 없지 않을까. 리스너가 이렇게 줄어들었는데 뭐라도 노린다고 보는 게 차라리 맞을 것 같다.

마노: 오죽하면 “그렇게 됐다”가 2021년 가장 핫한 밈 중 하나가 됐겠나.

예미: 하긴 너무 노리다가 MBC 〈극한데뷔 야생돌〉 같은 기획까지 나왔다고 봐야겠다.

랜디: 케이팝은 지금 워낙 커져 있어서 그 어떤 니치 마켓이라도 찾아야 할 입장인 것 같기는 하다.

조은재: 틱톡 류의 플랫폼과 시너지를 기대하며 관련 콘텐츠를 쏟아내는 것만 봐도 어떻게든 10대를 다시 케이팝으로 데려오겠다는 근성이 느껴진다.

랜디: 10대가 가요계 유행을 주도하는 건 (미국을 기준으로 보면) 한 70년쯤 된 전통이었다. 딕 클락이 진행하는 TV 프로그램 등이 이런 유행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는데, 최근 몇 년간은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TV와 같은 레거시 미디어의 힘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예미: 공감한다. 현재 케이팝에서 틱톡을 활용하는 걸 보면 10대와 해외 팬덤을 주로, 동시에 노린 것 같다.

조은재: 그런데 10대가 지역색을 크게 타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보통 해외에서 유행하면 곧바로 국내 청소년층에서도 유행해서.

스큅: 동의한다. 다만 국내에서는 10대 주류 문화로서의 케이팝의 입지가 약해졌지만 해외에서는 이제 막 주목을 받아 시장이 성장할 여지가 많이 남아 있는 만큼, 전보다 해외에 더 시선을 두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시장 규모부터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나기도 하고. 그러니까, ‘해외 취향을 공략하다 보면 한국도 어느 정도는 자연스레 따라온다’ 느낌이랄까.

마노: 케이팝이 10대를 많이 확보하지 못하는 것은 출생률 감소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랜디: 당연하다. 인구 자체가 줄었다. 그리고 이제는 케이팝 팬덤 내 20대 후반에서 30대 이상의 비율이 꽤 높다.

스큅: 한국 기준 내 세대(90년대 중반 출생)는 반 35명 중 절반 이상이 케이팝을 좋아라 하는, 거진 주류 문화의 위상이었는데, 지금 학교 현장을 가보면 케이팝을 ‘덕질’하듯 좋아하는 건 반 25명 중 5명 정도 될까 말까인 느낌이더라. 출생률 감소와 취향의 다원화 둘 다 느껴지는 흐름이다. 해외에서는 반대로 그 취향의 다원화 때문에 케이팝이 부상한 것이겠고.

예미: 90년대 후반생인 내 세대도 한 반의 반절 정도는 케이팝을 좋아하고, 반절 정도는 전혀 관심 없이 다른 분야에 치중했었다. 그러다 2000년대부터는 출생자 수가 아예 줄어들었고.

조은재: 90년대생에게는 반절 이상이었겠지만, 80년대 중후반생 여자들에게 아이돌은 주류 문화 이상의 레거시가 있었다.

심댱: 케이팝 시장이 성숙해졌다는 말은 향유층의 나이대 역시 그러하다는 말과 다름없어 보인다.

https://www.youtube.com/watch?v=_q32h7Hu6Ns
케이팝을 주류 문화로 향유했던 90년대생 기획자들에게서 탄생한 〈문명특급〉 ‘컴눈명’ 특집

스큅: 한국에서는 〈프로듀스 101 시즌 2〉가 정말 주류 문화로서의 케이팝의 끝물이었던 것 같다.

조은재: 향유 인구도 줄었지만 아이돌의 인구도 줄어들 것 같다는 예감이 또 든다.

마노: 신인 기근 현상과 인구 감소가 결코 무관하지 않겠다.

심댱: 전에는 아이돌이 꽤 주요한 성공 모델이었지만, 이제는 유튜버도 있고 틱톡커도 있고 굳이 케이팝 아이돌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전보다 탈퇴 이슈도 많아진 것 같고.

에린: 지금의 10대들은 굳이 아이돌을 덕질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오히려 취향의 다원화 속에서 틱톡커, 유튜버의 모습을 케이팝이 흡수하는 형태들이 흥미롭더라.

랜디: 아이돌 본인들도 아이돌 말고 크리에이터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꽤 많더라. 자영업자의 꿈 같은 걸까?

예미: 옛날엔 모든 가수 및 연예인 지망생이 아이돌이 됐다면, 지금은 래퍼는 래퍼, 틱톡커는 틱톡커가 되어 있다.

심댱: 참 모순적인 게, 청소년 연예인/셀러브리티 루트에서 아이돌의 비중이 줄어든 게 청소년의 입장에서는 좋지만, 향유층 입장에서는 내심 아쉽기도 하다.

스큅: 아이돌팝이 가수, 댄서, 연기자, 연예인 지망생들을 모두 깔때기처럼 흡수하던 때는 정말 지난 것 같다.

조은재: 그래도 댄서들은 아직 아이돌로 유입되는 경우가 꽤 많은 것 같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이하 〈스우파〉)의 흥행으로 이젠 좀 적어질까 싶기도 하지만.

에린: 〈스우파〉에 출연한 댄서 엠마도 원래는 아이돌로 데뷔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댄서로 활동하고 있고.

마노: 〈스우파〉가 일종의 모범 사례 같은 것이 됐다. 아이돌이 아니어도 춤으로 주목받을 수 있다는.

조은재: 그리고 노제처럼 아이돌적인 인기를 끄는 경우까지 생겼다.

마노: 〈스우파〉 출연진 대부분이 아이돌처럼 소비되지 않나.

예미: 〈쇼 미 더 머니〉 생각도 난다. 〈쇼 미 더 머니〉가 흥행한 이후로 래퍼 하려던 아이돌의 수는 좀 줄지 않았나.

랜디: 하… 이렇게 계속 엠넷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은 싫지만…

조은재: 그런데 힙합은 그 전부터 어느 정도 신(scene)이 자리를 잡은 것도 컸지만, 스트릿 댄스는 상대적으로 너무 눈에 안 보이는 분야였다. 〈스우파〉가 물꼬를 튼 것이지 아직 제대로 주목받고 신을 형성하려면 한참 멀었다.

예미: 그건 그렇다. 기존 신이 더 가시화된 상태였다면  〈쇼 미 더 머니〉처럼 〈스우파〉 안티 댄서도 훨씬 많았을 테다. 힙합 업계에서 ‘안티-쇼미’ 담론이 비교적 큰 규모로 펼쳐졌던 것을 생각해보면 새삼 댄서 업계가 가시화되지 않았었구나 싶다.

마노: 뭐랄까, 케이팝의 저변은 작아져 가는데, 케이팝 이외의 장르에서 아이돌 팬덤의 성향이 읽히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하루살이: 모든 덕질이 아이돌 덕질화되는 셈이다.

심댱: 다들 아이돌 덕질처럼 하는 것 싫어하면서 아이템은 다 쓰는 셈이다.

랜디: 그런 사람들에게 아이돌 팬덤이란, 몰취향한 애들이라고 대상화하되 동시에 그들이 하는 게 재밌어 보이는 (그래서 결국 따라해 보는) 그런 존재 아니겠나.

심댱: 사실 재밌으니까.

케이팝의 현재: 음악 트렌드

스큅: 2021년 발매작 추이부터 신인, 그리고 케이팝 청중의 변화까지 짚어봤는데, 케이팝 음악 트렌드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다.

랜디: 재작년부터 힘 별로 안 주는 칠(chill)한 노래들이 유행인 것 같기는 하다. 팝 신에서도 흐느적거리는 노래가 유행한다. 저스틴 비버의 ‘Peaches’ 라든지.

마노: 맞다. ‘빡센’ 곡은 이제 좀 기피하는 거 같더라.

예미: 강렬한 컨셉의 향연이었던 경연 방송 〈킹덤〉이 별 호응을 얻지 못했던 것이 기억난다. 

랜디: 다들 심적으로 지쳐서 그런 게 아닐까.

비눈물: 그런데 걸그룹은 꽤 장기간 소위 ‘걸크러쉬’ 열풍이 이어지고 있지 않나. 그 이유가 궁금하다. 내가 몸담고 있는 팬덤에서는 걸크러쉬 콘셉트가 계속 이어지니 다들 지친 기색이더라.

조은재: 블랙핑크 히트의 영향이 아직 크지 않을까.

예미: 블랙핑크가 빌보드에 갔고, 에버글로우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조은재: 블랙핑크는 대형 기획사의 성공 사례고, 에버글로우와 (여자)아이들은 중소 기획사의 성공사례겠다.

심댱: 해외시장에서 K팝이 ‘퍼포먼스를 위시한 강렬한 댄스 장르’로 이해되어서 이러한 트렌드가 도출된 게 아닐까.

랜디: 그것도 있지만, 나는 러블리즈와 같은 팀이 너무 저평가 당한 영향도 있다고 본다. 민희진 선생님의 말씀대로 케이팝 유행은 정-반-합의 움직임이긴 하지만, 청순 계보를 좋아한 사람으로서는 퍽 섭섭하다.

스큅: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느낌이기도 한데, 랜디 님의 말씀에도 동감한다.

예미: 그러고 보면 위클리 ‘After School’의 스포티파이 기록이 참 대단하다. 이러한 계열의 걸그룹도 인상적인 해외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기획사들이 공유하고 있길 바란다.

에린: ‘After School’은 유튜브에서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1억 뷰, 스포티파이 누적 스트리밍 1억 회를 돌파했다. 이 기록들이 갖는 의미가 크다.

조은재: 청순/청량 계열이 확실히 퍼포먼스로 뚜렷한 인상을 남기기가 힘들다 보니 걸그룹이든 보이그룹이든 갈수록 기피하는 것 같다. 청순/청량 계열도 멜로디가 아주 좋고 퍼포먼스가 잘 짜여 있으면 히트할 여지가 아직 있긴 한데, 예전보단 확실히 어려워지긴 했다.

스큅: 그런데 그렇다고 비(非)-걸크러쉬 스타일의 걸그룹이 아예 유행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버블검 팝의 정수를 보여주는 트와이스도 해외 팬덤이 가장 큰 케이팝 아티스트 중 하나지 않은가.

예미: 트와이스는 연차가 쌓인 것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걸크러쉬로 분류될 만한 레퍼토리도 어느 정도 있긴 하다.

조은재: 트와이스도 해외 팬덤에서는 각 잡힌 군무로 인기가 많지 않나. 본격적으로 해외 팬덤 커진 게 ‘Fancy’ 이후기도 했고. 청순/청량 계열의 활로는 의외로 30초 미만의 짧은 영상의 유행과 결합하면서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30초 미만의 짧은 곡은 무거운 사운드가 오히려 부담될 수 있기 때문에. 최근에 유튜브에서 쇼츠를 좀 검색해보니 프로미스나인 ‘We Go’를 커버한 쇼츠가 많이 나오더라. 이런 것을 보면 오히려 퍼포먼스가 격하지 않고 곡이 가볍기 때문에 바이럴이 잘 되는 사례도 생기고 있어 큰 팬덤의 파괴력을 보여주긴 힘들어도 곡이 넓은 층에 어필하고 대중적으로 히트할 가능성은 아직 꽤 있겠다.

랜디: 스테이씨 ‘ASAP’ 챌린지가 유행한 파트를 보면 사운드를 정말 라이트하게 뽑았다.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치면 플루트 솔로 정도의 가벼움. 그런 구간이 바이럴을 타기 좋은 것 같다.

스큅: 그리고 이제 거기에 간결한 안무를 곁들인.

심댱: ‘ASAP’ 안무를 보면 요즘 케이팝 안무의 특징이 세로형 직캠이나 틱톡 챌린지에 특화된 적은 동선인 듯도 하다.

예미: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앨범에서도 가장 가벼운 곡인 ‘Anti-Romantic’이 틱톡에서 가장 흥했던 것이 기억난다.

랜디: ‘Anti-Romantic’도 그렇고, ‘아무노래’도 그런 톤이었다.

예미: ‘Anti-Romantic’의 작곡가는 틱톡 인기곡을 여러 개 썼던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스큅: 틱톡에서 ‘Mad at Disney’ 챌린지를 유행시켰던 샐럼 일리스다. 하지만 그럼에도 ‘Anti-Romantic’의 히트는 회사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다. 한 케이팝 틱톡커가 ‘Anti-Romantic’ 후렴 도입부에 맞춰 캐치(catchy)한 춤을 춘 게 대뜸 바이럴되어 유행으로 번진 것이었기 때문에…

투모로우바이투게더 ‘Anti-Romantic’의 틱톡 커버 컴필레이션 영상

에린: 앞서 이야기한 위클리 ‘After School’도 그러한 짧은 구간의 바이럴로 득을 본 케이스다.

스큅: 그렇게 유려하게 가는 케이스도 있고, 무거운 사운드 등을 동원한 트랜지션 포인트로 각인 효과를 주는 케이스도 있다. 둘이 어느 정도 혼합되기도 하고.

랜디: 맞다. 임팩트 있는 곡들은 나름대로 연출이 붙어서 인기를 얻기도 하더라.

조은재: 그런데 사실 ‘취향 저격’이야말로 기획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안전 노선은 결국 강렬하고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밀고 나가는 게 업계의 정설이 된 듯하다. 어떤 게 틱톡에서 잘 먹힐 곡인지 기획자나 제작자가 어떻게 아나.

랜디: 유튜브를 보면 틱톡에서 잘 먹히는 스타일을 작곡가들이 꾸준히 연구 중이긴 하다. 물론 작곡가들이 그렇다기보단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겸하는 작곡가들이 그걸 버즈워드로 많이 써먹는다고 보는 편이 맞겠지만…

조은재: 그런 공식을 연구해서 써봤자 또 막상 써놓고 보면 진부한 ‘전형적인 노래네’, ‘노린 노래네’가 된다.

랜디: 히트곡의 공식이란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나.

스큅: 블립에서 내놓은 ‘2021 케이팝 레이더 틱톡’ 시리즈 영상 중 틱톡에서 뜬 케이팝을 5갈래로 분석한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데이터에 기반해 바이럴의 양상을 분석한 것이지, ‘이렇게 하면 틱톡에서 뜬다’는 음악적인 가이드라인은 아니었다.

블립 ‘2021 케이팝 레이더 틱톡’ 시리즈 中 ‘케이팝, 틱톡과 함께 날다!’

랜디: 팬덤에서 일부러 틱톡 바이럴을 푸시하는 움직임도 있지 않나?

조은재: 신곡이 나오면 홍보 효과를 노리고 팬덤 안에서 신곡 하이라이트 구간을 잘라서 다른 유명한 아이돌 영상을 편집해서 클립을 만들거나, 유행하고 있는 다른 아이돌 노래에 맞춘 신곡 뮤비 영상 클립을 만드는 등의 흐름이 재작년, 작년쯤부터 감지되었다.

스큅: 그런 건 효력이 그렇게까지 넓고 지속적으로 가는진 잘 모르겠다. 웬만해선 팬덤 내에서 향유되는 문화 정도에 그치는 느낌이라.

에린: 일부러 자체 팬덤 내에서 푸시하는 케이스는 아직 불명확한 것 같다. 올해 케이팝 팬덤에서 주목받은 곡으로는 있지의 ‘마.피.아. in the morning’이 기억난다. 상당히 의외였다.

스큅: 퍼포먼스에 집중하는 해외 팬덤에서는 반응이 꽤 괜찮았다. 이번 마마 무대로 호감도가 더 올라간 느낌. ‘마.피.아. in the morning’처럼 퍼포먼스로 주목 받은 경우도 있고, 국내건 해외건 케이팝 전반을 좋아하는 팬덤 내에서 밈(meme)이 된 것이 일반 대중으로까지 번지는 경우도 많은 듯하다. 연초 흥행한 ‘비비 트렌드’(이달의 소녀 멤버 비비가 〈팩트iN스타〉 방송에서 레드벨벳의 ‘러시안룰렛’ 안무를 춘 것에 Migos의 ‘YRN (EZRA Remix)’를 입힌 영상이 틱톡에서 바이럴되며 챌린지로까지 번졌던 현상)도 그렇고, 해외에서는 케이팝인지도 모르는 채로 챌린지에 동참하다가 뜨는 경우가 꽤 많은 느낌이다. 앞서 말한 ‘Anti-Romantic’도 어느 정도 그러하고.

조은재: 그만큼 노래가 진입장벽 없이 잘 받아들여지고 좋다는 뜻일 테니까.

예미: 리사 ‘MONEY’도 가수를 모르면 미국 힙합 트랙처럼 받아들일 만한 곡이었다.

스큅: 리사 ‘MONEY’가 가장 흥미로운 케이스였다. 한 틱톡커가 밈을 만든 것이 사방팔방 확산된 부분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월드와이드 히트와 맞물려 나온 파생 영상들에 리사의 ‘MONEY’가 고정 BGM으로 많이 쓰인 영향이 컸다. 사실 타이틀곡은 ‘LALISA’였는데, 결국 ‘MONEY’가 흥행에는 훨씬 성공했다.

〈오징어 게임〉 장면들로 구성한 ‘MONEY’의 팬메이드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1000만 뷰에 근접한다.

조은재: 재작년쯤부터 후속곡을 프로모션 전략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듯하다. 과거에는 ‘더블 타이틀곡’과 같은 방식으로 처음부터 타이틀곡을 2개로 밀었다면, 요새는 개별 싱글의 퀄리티라든가 비중, 무게감이 상향 평준화되다 보니 ‘뭘 좋아할지 모르겠어서 다 준비했다’는 전략이 앨범 수록곡들에도 적용된 것 같다.

스큅: 사실 애초에 ‘회사에서 미는 곡’의 파워가 점점 약해지는 추세다. 틱톡 등 SNS의 힘이 세진 탓이겠다.

예미: 한국은 라디오 에어플레이의 중요성이 적으니 ‘회사에서 미는 곡’의 파워가 확실히 빨리 줄어드는 느낌이다.

마노: 중요성이 적다고는 할 수 없다. 뮤직뱅크 같은 음악 방송 순위 집계에 들어가는 방송 점수에 라디오 에어플레이도 포함된다. 팬덤에서는 아직 라디오에 신청곡 총공을 하기도 하고.

예미: 방송 점수를 늘리는 용도로는 쓰이겠지만, 히트가 안 되던 곡을 붐업시키는 용도로 쓰는 건 본 적이 없다. 미국에 비해 라디오의 중요성이 적긴 하다.

에린: 나는 이러한 후속곡 프로모션 방식이 행사가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남아 있는 활동 창구가 음악방송 활동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 좋은 수록곡을 추려서 활동하는 게 이익이기도 하니까.

스큅: 활동기를 연장함과 더불어 단일 앨범 세일즈를 늘리려는 의도도 있겠다. 크래비티,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엔하이픈 등이 후속곡 활동 전략을 계속 고수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90~00년대 가요계 양상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는데, 그보다는 해외의 음반 프로모션 양상과 비슷해진다는 느낌이다. 해외에서는 큰 볼륨의 앨범을 발매한 뒤 텀을 두고 순차적으로 여러 수록곡의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경우가 꽤 있지 않나. 혹은 반대로 마중물 격의 리드 싱글을 몇 개 내면서 정규 앨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도 하고. 이런 경우로는 블랙핑크, 청하, 전소미가 대표적이겠다.

케이팝의 현재: 2세대 아이돌의 귀환

예미: 그리고 아이돌 수요층의 연령대가 높아져서인지, 2세대 아이돌 그룹이 올해 많이 컴백했다. 

조은재: 수요층 연령대도 있지만, 그냥 군백기가 끝나서.

예미: 컴백은 많이 했는데, 예전처럼 담론의 중심에 설 만한 작품은 많지 않았다.

에린: 사실상 추억은 추억으로만 남겨두는 게 좋다는 교훈만 남긴 건 아닐까.

스큅: 사실 웬만해서는 그들도 전성기만큼의 무언가를 원한다는 인상은 들지 않고, 적당히 ‘지속가능한 활동’을 도모하는 정도인 느낌이다. 2세대 아이돌은 그룹 컴백보다는 CL, 선미, 키처럼 솔로로서 자리매김하거나 커리어를 전향해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는 경우가 더 기억에 남았다.

조은재: 솔로나 여타 개인 활동으로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경우야 1세대 때부터 유구하게 있어왔다.

에린: 개인적으로는 프로듀서로 활동을 전향한 케이스들이 흥미로웠다. 저스트비와 트라이비는 각각 방용국과 LE가 프로듀싱에 참여한 그룹이었다. 2~3세대에 걸친 아이돌이 4세대 신인 아이돌 그룹을 프로듀싱하는 것이 아이돌 활동의 연장선 같다는 인상이다.

LE와 신사동호랭이가 함께 프로듀싱한 트라이비의 데뷔곡 ‘DOOM DOOM TA’

랜디: 그러게 말이다. 2~3세대 출신 아이돌의 활로가 한 가지 늘어난 것 같기도 하다.

예미: 히스토리 출신 장이정이 작곡가 EL CAPITXN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도 생각난다.

랜디: 맞다. 빅히트 뮤직의 인하우스 프로듀서가 된 것으로 안다.

스큅: 트레이너를 넘어서 프로듀싱에까지 관여하게 된 건 확실히 최근 부상한 흐름 같다. 보아가 에스파의 S.E.S. ‘Dreams Come True 리메이크 프로젝트 프로듀싱을 맡은 것도 그러하고.

조은재: 결국 그룹으로서 꾸준히 수명을 유지하는 게 과연 얼마나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역시 아무리 길어도 5년 이상은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스큅: 2세대 아이돌의 그룹 컴백은 이제 정말 이벤트성 아닌가 싶다. 애초에 개인 활동에 훨씬 더 신경쓰기도 하고.

조은재: ‘토토가’의 좀 더 보편화-일반화된 케이스라고 봐야겠다. 그래도 10년 활동했으면 다른 커리어도 생기는 게 자연인으로서는 자연스럽지 않겠나.

케이팝의 현재: 저물어가는 3세대 아이돌

스큅: 2세대 아이돌의 귀환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3세대 아이돌은 하나둘씩 재계약 시기를 맞이하며 점차 저물어가는 듯하다. 올해 CLC, 여자친구, 러블리즈 세 그룹의 활동이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조은재: 각각 다른 이유와 형태로 흩어졌다.

마노: 더 이상 걸그룹 노래 들으면서 슬퍼하고 싶지 않다. 

예미: 나는 여자친구 해체가 가장 당혹스러웠다. 해체 발표 직전까지 활발히 활동하다가 갑자기 해체했으니까.

랜디: 걸그룹은 유행이 지금 한번 크게 바뀌었지 않나. 소위 ‘걸크러쉬’로. 그룹이 청순에서 걸크러쉬로 이미지 전환을 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대로 굿바이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에이핑크 같은 성공 사례도 있지만.

스큅: 여자친구의 경우 그래도 그러한 전환을 잘 해냈던 편인지라 더욱 아쉬움이 컸다. 러블리즈도 마지막 앨범에서 이미지 전환의 시도가 엿보였고, CLC도 그룹 콘셉트의 갈피를 잡는 데에 오랜 고초를 겪었지만 ‘Black Dress’를 기점으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기에 참 아쉽다.

예미: CLC의 경우 그래도 최유진이 〈걸스 플래닛 999: 소녀대전〉(이하 〈걸스 플래닛〉)에 출연하여 케플러로 데뷔하게 되어 다행이다.

마노: 유독 3세대 걸그룹 중에서 재계약 시즌에 커리어가 끊긴 팀들이 많은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조은재: 3세대 이전에는 계약 만료 이전에 그룹 활동이 중단되는 경우가 워낙 많았다.

예미: 7년은 활동을 했다는 데에 의의를 둬야 하는 모양새다.

스큅: 7년 계약이 이젠 정말 최소한의 보호 장치처럼 되어버렸다는 말이 공감된다.

조은재: 2세대 걸그룹을 생각해보자면, 원더걸스와 카라는 여자친구와 마찬가지로 계약 만료 이전부터 활동 피로도가 누적돼 있었다. 소녀시대야말로 계약만료 시즌에 진통을 겪은 그룹이었고 그 다음이 씨스타, 걸스데이, 에이핑크, AOA 정도인데 이 그룹들은 그룹으로서의 커리어를 충분히 만들고 멤버 개인의 커리어를 찾아간 것에 가까워서 3세대와 큰 경향성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 듯하다.

예미: 3세대 그룹 중에는 그래도 재계약 확률이 높아 보이는 팀들이 있어서, 그 팀들이 어떻게 커리어를 이어갈지 궁금하다.

스큅: 맞다. 명맥 잇기 느낌이 강한 2세대 그룹들과는 또 다를 것 같다.

조은재: 3세대 보이그룹은 군대 때문에 진작 재계약 마쳐놓은 팀도 꽤 될 거 같다. 

스큅: 개인적으로는 특히 오마이걸과 레드벨벳의 활동 양상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그룹의 커리어가 탄탄하게 쌓여왔던지라.

예미: 트와이스는 어떤가. 그룹 체급에 비해 개인 커리어가 덜 주목받는 편이어서 향후 행보가 잘 예측되지 않는다.

스큅: 트와이스는 개인 활동을 주로 자체 콘텐츠의 형식으로 소화해서 개인 활동이 덜 부각된 측면도 있다.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하겠다. 마마무는 그룹 존속의 의지가 있어 보이지만, 어찌 됐건 개인 활동의 비중이 더 커 보이긴 한다.

랜디: 마마무는 원래도 솔로 디바 4명의 모임 같은 인상이 있었던 그룹이라 지금의 전환이 자연스러운 느낌이 있다.

조은재: 마마무는 활동 막바지쯤에 멤버별로 솔로 앨범을 꾸준히 내서 각자의 커리어를 만들어둔 게 있었고, 우주소녀도 유닛 활동에 좀 더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마노: 앞으로 완전체 활동은 정말 이벤트성 ‘두 개의 달이 뜨는 밤’ 정도가 될 것 같다.

랜디: 애초에 대인원 그룹들은 그렇게 하려고 대인원을 만들었을 텐데, 대인원 그룹 전성시대를 지나며 팬들이 점차 그룹이 찢어져서 유닛 활동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나 싶다. 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일본 ‘하로! 프로젝트(모닝구 무스메 등의 대인원 걸그룹이 있었던 거대 아이돌 팀)’의 유닛 셔플을 보며 느꼈던 건데, 가벼운 팬의 입장에서는 포켓몬 파티 새로 뽑기 같고 재미있지만, 아이돌 개개인의 커리어에 몰입하게 되면 유닛 선발이 마치 기회의 불균형이나 휴식 없는 연속 노동 같아 보여서 마음이 편치 않더라.

케이팝의 현재: 오디션 프로그램의 재부흥

스큅: 케플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재부흥 중인 오디션 프로그램 이야기도 해볼까 싶다. 올해 SBS 〈라우드〉, Mnet 〈걸스 플래닛〉, MBC 〈극한데뷔 야생돌〉, 〈방과 후 설렘〉 등 한창 열기가 식었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다시금 늘어나는 추세다. 내년에는 〈걸스 플래닛〉의 후속작인 〈보이즈 플래닛 999〉, 엔하이픈을 배출했던 〈아이랜드〉의 걸그룹 버전이 예정되어 있고, 바다 건너 일이긴 하지만 〈아이랜드〉에 참여했던 일부 멤버들과 함께 일본에서 데뷔할 멤버들을 모집하는 〈엔오디션〉도 방영이 확정되었다. 사실 〈프로듀스〉 시리즈의 몰락 이후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한국 대중의 관심도는 계속해서 낮은 상황인데, 오히려 해외 케이팝 팬덤에서 호응이 있더라. 그냥 일종의 게임처럼 널리 받아들여지는 느낌도 든다.

Mnet 〈걸스 플래닛 999: 소녀대전〉의 시그널 송 ‘O.O.O’

조은재: 〈아이랜드〉와 〈걸스 플래닛〉은 일본에서 한일전에 비견하는 국가대항전이 돼버려서 일본 팬덤이 적극적으로 투표를 했다는 얘기가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랜디: 일본인을 케이팝 그룹에 들게 하는 게 상당히 중요한 관심사가 된 것 같다. 인상적이었다.

스큅: 일종의 문화 역전 현상이다.

랜디: 지금 일본 젊은 층은 한국 문화를 한국의 과거 젊은 층이 미국 문화 소비했듯이 하는 것 같다. 10여 년 전부터 불었던 한류 열풍 때문인가… 심리적 저항감이 적은 것 같다.

예미: 공감한다. 지금 일본 10~20대는 초~중학생 시절부터 케이팝을 접했으니까.

스큅: 오디션 프로그램이 재부흥하는 데에서는 사실 인공적으로라도 아이돌 그룹에 극적인 서사를 부여하려는 시도가 느껴지기도 한다. 어찌 보면 판타지 세계관과도 궤를 같이하는 부분이라고도 생각하고.

랜디: 서사 하니 말인데, 나는 아이돌에게 중요한 서사란 음반의 판타지 세계관보다는 과거 카라의 ‘듣보돌’ 탈출기 같은 서사가 더 사람들에게 큰 어필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인공적으로 만들려다 보니… 무리한 TV 오디션 설정 등의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예미: 공감한다. 사실 현실 세계의 성장 서사가 가장 위력적이다. 그런데 서사 형성 과정에서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리스크가 너무 크다. 

랜디: 이럴 때엔 사건·사고의 진원이 된 멤버를 빨리 잘라내고 남은 멤버들이 똘똘 뭉쳐 팀을 재건하는 스토리로 가는 수도 있는데, 역시 쉽지는 않을 것이다. 만들어내야 하는 서사와는 별개로 당사자들도 정신적으로 힘들 것이고.

예미: 때로는 아이돌이 현실의 서사와 유리되는 것이 안전할 때도 있는 것 같다. 판타지 세계관이 그래서 등장한 것 같다.

조은재: 근데 그런 서사야말로 ‘좋은 노래’ 이상으로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는 거라 어떻게든 비슷하게 만들어보려고 연출하는 게 오디션인 것 같다. 〈프로듀스〉 시리즈는 어쨌든 그 게임의 주체가 한 군데가 아니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의지가 개입된 만큼 재밌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했는데, 〈아이랜드〉는 그것도 아니라서 인공적인 서사 부여에 어색함이 느껴졌다. 아이돌 성장 서사는 오히려 사후에 팬들이 경험을 재구성하면서 형성하는 것도 큰데, 그것을 데뷔 단계에서 얹고 시작하려니까 자꾸 개연성이 떨어지는 연출을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시도하는 것 같다.

랜디: 그런 서사의 재구성이 역주행 이후 팬덤의 주요 할 일 및 떡밥이 되기도 하는 건데…

비눈물: 맞다. 요즘은 오디션 아니면 브레이브걸스와 같은 “역주행”으로 성장 서사를 다 대체하는 것 같다.

스큅: 역주행도 어찌 보면 후견적인 서사 메이킹 아니겠나.

브레이브걸스 ‘롤린’ 역주행의 신호탄이 된 유튜브 채널 ‘비디터’의 댓글모음 영상

조은재: 정리해보자면 어느 정도 규모 있는 회사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 서사를 인공적으로 만들고 싶어 하고, 중소 이하 영세 기획사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리드할 여력이 안 되니 역주행 서사에 공을 들이고 있지 않나 정도일까.

마노: 적절한 요약이라고 생각한다.

케이팝의 과거: 멜론X서울신문 ‘케이팝 100대 명곡’

스큅: 역주행 이야기도 나왔으니 이번에는 케이팝의 과거를 반추해볼까 한다. 올해 멜론, 서울신문 공동 기획으로 ‘K-POP 명곡 100’ 결산이 있었다.

조은재: 장장 5개월에 걸친 프로젝트였고, 추천사를 엮은 단행본도 곧 출간된다고 한다.

스큅: 〈아이돌로지〉에서는 나(스큅), 조은재, 랜디 3인이 선정위원으로 참여했다. 참여하신 분들, 참여하지 않으셨던 분들 모두 최종 100곡 리스트를 보고 든 생각이 있을까?

에린: 리스트가 곡 단위로 만들어지다 보니 필연적으로 조명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생기는 듯했다. 

조은재: 곡 단위라서 까다로웠던 게, 히트곡이나 대표곡을 다수 보유한 경우와 하나만 보유한 경우 유불리가 달랐다. 물론 히트곡/대표곡이 많았음에도 결국 1위를 한 보아의 ‘No.1’도 있었지만.

스큅: 대표적으로 불리했던 아티스트가 씨스타였다. 대표곡이 많을뿐더러, ‘나혼자’ 류와 ‘Touch My Body’, ‘Shake It!’ 류로 그 갈래도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에. (결국 ‘나혼자’ 한 곡이 71위로 랭크되었다.) 대표곡이 많더라도 케이팝 산업 내 아티스트가 가지는 위상이 막대한 경우 여러 곡이 한꺼번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보아, 방탄소년단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뚜렷한 히트곡/대표곡이 있진 않지만 그룹 자체의 의의가 있는 경우에도 좀처럼 조명받지 못했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드림캐쳐와 카드(KARD)가 그랬다.

씨스타 ‘나혼자’, 멜론X서울신문 ‘K-POP 명곡 100’ 71위

에린: 또 하나는, 2021년에 작성된 리스트라서 그런지 리스트가 케이팝 1~3세대까지의 흐름을 정리해 놓은 텍스트라는 인상을 받았다.

마노: 아무래도 3.5세대나 4세대까지 고루 아우르긴 역부족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스큅: 있지 ‘달라달라’ 정도가 랭크되긴 했지만, 스트레이키즈,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 4세대 아이돌의 동향은 리스트에 잘 담기지 못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스트레이키즈의 ‘神메뉴’를 높은 순위로 밀었었다.

조은재: 4세대 아이돌은 아직 활동 연대가 길지 않아서 벌써 판단의 영역에 들어와야할까 싶기도 하다.

마노: 3.5~4세대는 아직 레거시가 없어서 리스트에서 보기 어려웠던 것 같다. 산업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그 파급력이 다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경우도 있지 않나.

스큅: 동감하면서도, 나는 오히려 이런 리스트에 올라감으로써 레거시가 입증되는 부분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하신 분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조은재: 4세대는 아무리 일러도 2018년에 시작했다고 보는데, 3년이면 사실 한 그룹이 전성기를 다 보내지도 못할 시간이긴 하다. 아직까진 동향파악 정도만 가능할 것 같다. 그리고 우리처럼 동시대성을 갖게 된 사람들은 더더욱 시간적 괴리가 필요할 것 같고.

스큅: 시간적 괴리가 우리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웃음) 어쨌든 아직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겠다 싶다. 꼭 3.5~4세대 아이돌의 비중이 적어서만은 아니고, 조금 보수적인 리스트이긴 했다. 보수성 자체는 물론 필요했다고 본다. 해외 매체에서 ‘케이팝 n대 명곡’ 류의 기획을 하는 것을 보면 케이팝의 역사성이 많이 간과된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았기 때문에… 역사와 전통을 감안하는 방향으로 리스트가 갈 테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내 기대보다는 조금 더 보수적이었어서 아쉬웠을 뿐.

조은재: 역사성을 챙기다 보면 지면 할애의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봤다.

에린: 확실히 케이팝 100의 리스트를 연도순으로 보게 되면 역사성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예컨대 케이팝의 반항 이미지가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 그 뿌리라던가.

스큅: 곧 발매될 단행본에서도 100곡을 순위가 아닌 연도순으로 아카이빙했다고 들었다. 분명 역사성을 중시한 텍스트임은 틀림없다. 또 한 가지 최종 결과를 보며 든 생각은, 선정위원들이 생각하는 케이팝의 경계가 저마다 너무 달랐다는 거다. 개인적으로는 ‘벚꽃엔딩’이 100곡 안에 든 것이 당황스러웠다. 에픽하이 ‘Fly’, 엄정화 ‘초대’, 박지윤 ‘성인식’ 같은 경우 아이돌팝을 중심으로 통용되는 케이팝에 꼭 들어맞는 케이스는 아니지만, 케이팝과 주고받은 영향을 생각하면 들어갈 만한 아티스트들이었고, 곡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벚꽃엔딩’은…

예미: 공감한다. 아이돌팝의 맥락과 반대에 있어서 잘 된 곡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조은재: 사실 ‘벚꽃엔딩’을 꼽았던 입장인데도 많이 당황했다. 내가 ‘벚꽃엔딩’을 꼽았던 이유는 리스트 안에 포크/밴드 음악이 너무 없어서였다. ‘벚꽃엔딩’이 정은지 같은 포크 계열 아이돌 솔로와 상통하는 지점도 있다고 생각하고. 밴드 아이돌로는 클릭비, 데이식스도 리스트에 꼽았는데 순위에 들지 못했다.

스큅: 여담이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난 정은지가 소위 ‘탈-케이팝’을 했던 것으로 보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하긴 한다.

조은재: 그리고 ‘벚꽃엔딩’은 〈프로듀스〉 시리즈의 레거시를 강화하는 밑바탕이 됐던 ‘K-오디션탄생설화’ 〈슈퍼스타 K〉 시리즈의 파생 팀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화제성이 사그라들기 전에 재빠르게 내놓은 곡이기도 했다.

버스커 버스커 ‘벚꽃엔딩’, 멜론X서울신문 ‘K-POP 명곡 100’ 90위

에린: ‘케이팝 100대 명곡’이라는 리스트를 선정하면서 빅뱅의 곡이 두 곡만 선정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룹에 대한 평가가 바뀌는 상황이 반영되었다고 본다.

조은재: 따지자면 빅뱅도 히트곡이 많은 그룹이었기 때문에 앞서 말했던 것과 같이 불리한 지점도 있었다.

마노: 굉장히 강경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빅뱅은 아예 후보 단계에서 강력히 제명을 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사회적 이슈를 초래한 멤버가 속한 팀이기 때문에 아예 재평가의 여지를 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 점에서 무척 유감이었다.

조은재: 나도 빅뱅은 윤리적으로 고려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겠다 싶은 두 곡이 리스트에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예미: 거기에 멤버 솔로곡 두 개도 들어가지 않았나.

에린: 태양 ‘눈, 코, 입’과 지드래곤 ‘삐딱하게’가 포함되었는데, 정말 추리고 추렸다는 인상을 받았다.

스큅: 많은 선정위원들이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것 같다. 역사적인 영향력을 인지하면서도 현시점에서의 재평가를 담아내려 한 선정의 변들을 읽으며 그를 많이 느꼈다.

빅뱅 ‘거짓말’, 멜론X서울신문 ‘K-POP 명곡 100’ 19위

케이팝의 미래: 메타버스와 NFT

스큅: 지금까지 케이팝의 과거와 현재를 짚었다면, 이제 케이팝의 미래에 대해 논해보면 어떨까 싶다.

예미: 하이브를 필두로 엔터사들이 팬덤 플랫폼이나 NFT, 메타버스 같은 IT기업 느낌의 신사업을 벌이는 동향에 대해 얘기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근데 IT 계열의 신사업을 발표하면 진짜 투자자가 늘어나나?

비눈물: 게임 회사 쪽에선 투자설명회에 저 키워드를 넣기만 해도 주가가 치솟는다고 들었다.

스큅: 사업적인 측면은 사실 잘 모르겠지만… 결국 작년에 부쩍 늘어난 팬덤 플랫폼 장사 내지는 버블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 찾기. 그런데 메타버스의 경우는 사실 회의적이다. 아뽀키, K/DA, 펜타킬 같은 가상 아이돌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겠지만, 현존하는 아이돌과 얼마나, 어떻게 연동이 될 수 있을지 아직은 회의적이다. 근본적으로 무엇이든 가능한 가상세계에 굳이 제약이 다분한 현실의 존재들을 오롯이 연동할 이유가 있을까? 무엇이든 가능하니 굳이 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는 쪽일까.

가상 케이팝 퍼포머 아뽀키의 데뷔곡 ‘GET IT OUT’

조은재: 기본적으로 스타 마케팅은 위험성을 담보하기 때문에 아티스트 본체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파생 콘텐츠를 가공하는 사업은 그래도 사업 안정성 측면에선 꽤 설득력이 있겠다.

예미: 팬덤 플랫폼의 경우는 미디어 관련 대학 수업에서도 다뤄질 정도로 자리가 잡힌 것 같다. 

조은재: 팬덤 플랫폼은 자체적으로 콘텐츠 개발과 시너지가 나서 자리를 잡은 거 같다. 하지만 NFT는 아직 모르겠다.

랜디: 나도 아직은 모르겠다. NFT 자체는 보증서 같은 거고, 그 보증서의 복제가 불가능할 뿐 원 콘텐츠 서버가 터지면(!) 보증서만 남아 나부끼게 되는 기술이 아닌가. 여태 이해한 바로는 그렇다.

심댱: NFT는 말씀처럼 보증서이긴 한데, 원 콘텐츠의 서버가 터져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거기다 NFT 소유자가 리셀(re-sell)한다고 해도 원작자에게 수익이 돌아가기 때문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주목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랜디: 개인적으로 아직 NFT가 유효할 만한 시장은 명품 시장뿐인 것 같다. 요즘 KREAM 같은 명품 중고 거래 앱이 핫한 걸 보면 가치 있는 물건을 되사고 되팔며 복제 불가능한 보증서가 필요한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올해 있었던 하이브 브리핑 때 NFT 사업 예시로 포토카드를  드는 것을 보며 아리송했다. 포토카드 시장은 팬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소액 시장인데, 여기에 복제 불가능 코인을? 하면서 말이다.

NFT 포토카드를 언급했던 ‘2021 HYBE BRIEFING WITH THE COMMUNITY’

하루살이: 개인적으로 실물 보증서 역할도 회의적으로 본다. 실물의 도용이나 표절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도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지 않나.

에린: NFT로 거래될 만큼 포토카드의 가치가 명품만큼 상승하나. 포토카드가 시간이 지나면 값이 올라간다고는 하지만, 몇백만 원에까지 이르는 것도 아니지 않나. 랜디 님이 말씀하셨듯 NFT가 명품시장에서 유효한 이유는 오리지널리티가 중요한 명품은 시간이 갈수록 값이 몇 배로 뛸 가능성이 높아서인데,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상당히 물성이 중요한 케이팝에서 NFT로 사업을 한다고 해도 큰 이익으로 굴러갈까 의문이다.

랜디: 포토카드는 연예인에게 무슨 일이 생기냐에 따라 가격이 요동치는 점도 있고…

조은재: 의외로 사람들은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얼마나 소액으로 근근이 굴러가는지 잘 모르고 엄청 큰 기대를 하더라. 엔터 업계는 무슨 아이템을 어떻게 잡든 간에 기본적으로 돌고 있는 돈의 단위가 너무 소액이라 큰 재미를 보기가 어려운 구조인데…

예미: 그렇게 기대하게 만들어야 투자 유치가 가능한 것 같다.

랜디: 기대감이 투자를 만드는 것도 맞지만… 나는 애초에 그런 식의 신기술 버즈워드 ‘뽐뿌’에 몹시 회의적이다. 연예 산업계가 미디어 노출이나 화려한 이미지 탓에 유독 그런 블러핑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또 한 가지, NFT는 현재 대부분 가상 화폐 이더리움으로 거래되는데, 이더리움 거래 자체에 발생하는 탄소량이 어마어마하다. (디지코노미스트의 에너지 소비지수에 따르면 이더리움의 단일 거래 탄소발자국은 이산화탄소 37.29kg로 추정된다. 이는 유튜브 시청 시간 6215시간의 탄소 발자국과 같다. BBC 기사 발췌) 이런데 실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마치 친환경인 것처럼 오도하는 경우도 보인다.

하루살이: 이더리움 같은 작업 증명 블록체인이 어떻게 친환경이란 말인가? 작업 증명 알고리즘이 아니더라도 분산원장 기술은 필연적으로 메모리와 에너지를 낭비할 수밖에 없다.

예미: 이런 팬덤이 아닌, 팬덤의 생리에 무지한 투자자를 유혹하는 전략들이 언제까지 유행할까 모르겠다.

마노: 정작 소위 ‘팬덤 장사’를 하고 있는 자들이 팬덤 자체나 관련 현상에 대해 심각하게 무지해 보여 심히 우려된다. 그리고 그런 점이 굉장히 유감이기도 하고. 좀 나쁘게 이야기하자면 ‘관심은 별로 없지만 돈은 뜯어가 주겠다’는 의지가 너무 투명하게 보인달까.

심댱: 내가 상대적으로 NFT를 호의적으로 보는 건가 싶은데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NFT는 막을 수 없는 트렌드라고 생각한다. 이더리움 채굴 프로세스 중 작업 증명은 분명 환경적인 이슈가 있지만, 지분 증명이라는 대체재가 있어 이쪽으로 새로운 물꼬가 트인다면 우려가 잠식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아직 작업 증명이 우세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팬덤 장사’를 하고 있는 이들도 팬덤을 아주 등한시 하진 않을 것이다. 최근 발행된 팩플레터를 보면, 하이브의 김정현 아메리카 프로젝트 리드는’NFT는 아티스트 IP를 강화할 수단’이라며 일축했다. NFT는 온라인 콘서트처럼 기존의 오프라인 상품과 병행하는 온라인 상품이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브레이브걸스는 업비트 NFT에서 두 차례 NFT를 판매하기도 했고(최근에 발행된 것은 1분 만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컬렉션에서는 강혜원의 NFT 콘텐츠 판매를 시작했다. 아직 NFT의 개념이 낯설게 느낄 수 있겠지만, 이번 NFT 붐으로 케이팝 시장이 공략할 영역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싶다.

케이팝의 미래: 케이팝과 환경 문제

마노: 잠깐 이야기가 나왔지만 케이팝과 환경에 대해서도 더 얘기해볼까 한다.

랜디: 최근 스브스 뉴스에서 이런 영상이 나왔다. “수십 수백 장 앨범깡…? 덕질도 친환경으로 하자는 K-POP 근황”. 영상 속 단체 ‘케이팝 포 플래닛’이 최근 활발히 활동 중이다.

심댱: 케이팝 포 플래닛은 9월 14일 강원 삼척의 맹방해변 훼손을 막기 위해 ‘#SaveButterBeach’ 서명운동을 시작한 바 있고, ‘K-엔터 사업,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다’ 간담회에서 ‘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 캠페인 참여 1만 명의 서명을 주요 엔터테인먼트사 관계자에게 전달할 예정이라 밝혔다.

스큅: 업계에서도 이러한 조류를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 크지는 않지만, 앨범 패키징에 친환경 소재를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분명 있다. 위클리의 경우 그룹 세계관 자체에 환경 이슈가 엮여 있어 앨범 디자인에서도 친환경 소재를 쓰려고 노력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청하도 포토카드를 제외한 앨범 패키징 전체를 친환경 소재로 제작했다 밝혔고.

조은재: 결국 또 팬사인회 얘기가 안 나올 수가 없는데, 사실 팬사인회야말로 정말 대안이 없는 문제다. 굳이 대안을 만들자면 사인회를 공연 같은 이벤트로 만들고 정가 티켓을 발행하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 사실 이렇게 하면 앨범 판매량이야 줄어들고 과소비도 줄어들겠지만, 팬들이 소비할 돈은 결국 똑같을 것이다. 사인회처럼 전체 팬덤의 인구에 비해 소수만이 참석할 수 있는 공연은 결국 정가가 아닌 암시장가에 의한 암표가 발생할 거고, 암표 가격은 결국 수요와 공급 곡선에 의해 책정되기 때문에.

랜디: 그래도 재화 낭비를 줄이는 게 중요하긴 해서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케이팝이 시장에 내세울 만한 강점이란 압도적인 음반 판매량이기 때문에 당장에 포기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은재 님 말씀처럼 암표가 발생하는 리스크가 있더라도, 결국은 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싶다.

예미: 음반 판매 수익은 회사로 가지만 암표 값은 회사에 귀속되지 않는다는 것도 회사 입장에서는 주저할 만한 이유일 듯하다.

에린: 그나마 가능한 방법은 팬사인회나 성적 집계에 디지털 앨범 구매를 포함하도록 구조를 바꾸는 거 아닐까 싶긴 한데…

마노: 냉정히 말하자면 디지털 앨범이라는 것도 사실 효용성이 매우 낮아 보이긴 한다.

예미: 스트리밍과 환경오염 이슈도 있다.

마노: 그렇다. 스트리밍도 따지고 보면 기후 위기에 악영향을 주는 요소니까.

랜디: 맞다. 이미 시장이 스트리밍으로 옮겨가기는 했지만… 나는 그래서 아직 음원 구매를 고집하고 있긴 한데, 이제는 음원 살 곳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또, 음원과 음반 구매는 아티스트에게 비교적 많은 비율이 돌아가지만, 스트리밍은 아티스트 수익 배분이 너무 적다는 문제도 있다. 팬들은 단지 음악만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를 응원하고 앞으로의 활동을 지지하고 싶은 것이라 스트리밍으로는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예미: 최근에는 그나마도 스트리밍만 되는 사이트가 늘어가는 추세다.  한국이 음원 다운로드가 워낙 저렴하던 나라라 디지털 앨범 구매가 아티스트에게 큰 수익을 주지 못하기도 했고.

조은재: 사실 이 문제가 정말 전체 아이돌 팬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문제냐 하면 또 아니기도 하다. 암표가 생길 정도로 인기가 많은 아이돌이 있는가하면 팬사인회 정원이 미달되는 아이돌도 분명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누구를 기준으로 과열 여부를 결정하고 제재를 해야 되는지도 생각해야 하는데… 팬사인회 과열 양상을 과연 정책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그러한 편차 때문에 전체적인 문제의식 공유부터가 쉽지 않기도 하고.

마노: 생각을 안 할 수 없는 주제이긴 하나, 은재 님 말씀대로 아직 전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있지 않기도 하고, 그렇지만 외면할 수는 없는 문제고, 그렇다고 대안이 뾰족하게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어렵다. 답답하긴 한데 정말 마땅한 대책이 없다.

랜디: 자원 과소비를 낳는 대형 회사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개선점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앞서 말했듯 팬덤 주도로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문제 같다. 회사들이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고 바꿔야 할 부분이라 본다.

조은재: UNIVERSE 앱의 예시를 들어볼까 싶은데, UNIVERSE에서 진행하는 팬사인회나 팬미팅은 가상 화폐로 가상 응모권을 사서 응모하는 방식이다. 다른 건 기존 팬사인회랑 방식이 똑같은데 실물 앨범 박스가 남지 않는다는 점이 좋더라. 물론 기존에 스타 마케팅을 앞세운 브랜드에서 광고 모델을 대상으로 개최하던 팬사인회나 팬미팅 등의 이벤트(펩시 콘서트 등)와 진행 방식 자체에 큰 차이는 없었지만, 응모권을 사고 당첨되는 원리가 음반 팬사인회와 가장 유사하다.

마노: 상당히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랜디: 어떤 의미로 음반 판매 팬사인회에서 한 단계 나아간 미래 버전 같기는 하다.

케이팝의 미래: 단계적 일상 회복 시기 케이팝은…

스큅: 마지막으로 단계적 일상 회복 (소위 ‘위드 코로나’) 시국 케이팝의 동향에 대해서 얘기해보면 좋을 것 같다. 온라인 공연과 오프라인 공연이 병행되기 시작했고,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 투어의 빗장도 풀리고 있다. 방탄소년단, NCT 127, 몬스타엑스, 에이티즈, 베리베리, 트와이스 등이 북미 투어 계획을 발표했고, 이미 투어에 돌입한 이들도 꽤 있다.

에린: 북미 중심으로 해외 투어가 풀리기는 하는데, 오미크론 변이를 봐서는 북미 투어를 해도 되는지 정말 회의적이다. 지금 북미 투어를 계획하고 있는 그룹들이 각 주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방역수칙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큅: 오미크론 변이가 터지기 전에 해외 투어 확정 소식들을 다 알렸던 건데, 지금으로선 또 좌초될 수도 있겠다 싶다. 몬스타엑스가 참여하는 아이하트라디오 징글볼 투어의 마이애미 공연은 코로나 상황으로 아예 취소되기도 했다.

에린: 또 한국에서 오프라인 공연 보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원래 공연은 예측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느끼는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에 기반한 환희가 중요한데, 코로나로 인해서 관객이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힘들어지니 오히려 이제는 공연 기획에서 예측 불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겠다고 느꼈다.

예미: 공감한다. 음악방송 방청을 갔는데 소리를 못 지르니 2열인데도 신이 안 났다.

마노: 나도 콘서트를 갔는데, VCR이 플레이되고 멤버들이 등장해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야 할 때에 조용히 박수만 치고 있으려니 흥이 잘 안 나더라.

조은재: 원래 공연을 즐겨오던 팬덤이랑 아닌 팬덤 분위기 차이도 꽤 있더라. 코로나 시국 중에 데뷔한 그룹의 경우 확실히 팬덤이나 멤버들이나 분위기 환기가 됐던 게 컸다. 그냥 모여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흥이 나고 분위기 타는 건 확실히 있다.

2020년 4월 데뷔해 2021년 11월 첫 대면 팬미팅을 가진 크래비티

에린: 그렇다. 소리를 지르며 느끼는 그 환희는 즐기지 못하더라도, 같은 공간에서 다 같이 모여서 무대를 보았을 때 와닿는 충만함은 있더라. 어쨌든 박수도 무대에 대한 피드백이기 때문인지 퍼포머와 관객의 연결성을 느끼는 데에는 오프라인 공연만이 답이라고 느꼈다.

스큅: 함성 소리를 녹음해가서 틀 수 있게 해줄 순 없을까. 강도 조절 기능도 넣어서.

조은재: 진지하게 생각해보자면, 그를 빌미로 그냥 소리 지르는 사람도 생길 수 있기에 결국 금지될 것 같다.

예미: 음악방송 무대 영상이나 온라인 콘서트에 응원법을 녹음해서 튼 회사들은 꽤 있었다.

랜디: 그런데 되게 티 나지 않나… 시트콤에 삽입하는 가짜 웃음 느낌이 난다 (웃음)

조은재: 나름 자연스럽게 잘 넣는 곳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대부분 가짜 웃음으로 도배돼버린 무대…

스큅: 결국 실시간 피드백이 아니지 않나. 원하는 때에, 원하는 강도로 지르는 함성이 아니니.

마노: 맞다. 실시간으로 실물을 영접하는데도 ‘악!!!’ 하며 단전에서부터 북받치는 느낌은 없다는 게 못내 아쉽기만 하다.

조은재: 결국 국내 공연부터 충분히 활성화되는 게 순서겠다 싶다. 해외 투어는 아직까진 리스크가 큰 것 같다. 베리베리처럼 해외 현지에서 확진되면 아티스트에게 심적인 타격도 클 텐데.

랜디: 한국 내가 방역 상으론 좀 더 안전할 것 같기는 한데, 방역 강도를 유지한답시고 케이팝 공연을 계속 못 열게 할 것 같기는 하다.

스큅: 모쪼록 아티스트도 팬도 마냥 소진되는 상황이 무기한으로 계속되지는 않길 바랄 뿐이다.


지금까지 케이팝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짚어보았다. 올해 발매작을 비롯해 세대 교체, 기후 위기,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일상 등 대담을 통해 다양한 사안을 주목할 수 있었는데, 이들이 교차하면서 드러나는 모순은 케이팝 산업의 유기성을 잘 보여주는 것만 같다. 케이팝은 다양한 장르와 사람의 혼합으로 하여금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시너지를 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케이팝은 올해 안팎으로 많은 성과를 이루었지만, 연말까지도 쉬이 놓을 수 없는 찜찜한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순이 케이팝의 한계점이라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케이팝은 앞서 언급한 유기성을 바탕으로 조금 더 나은 선택지를 찾아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대담으로 포착된 모순은 산업의 한계점이 아닌 앞으로 더 큰 성장과 성숙을 그러모을 수 있는 뜨거운 변환점이 되길 바라며, 내년의 케이팝을 기대한다.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