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하순 발매작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체리블렛, 세븐틴, 니엘, 임팩트, 영기스트, 노태현, 양요섭, 한승연, 준호, B1A4, 천둥, 하성운, 코코, 박우진&이대휘, 시아&라온, 로시, 네온펀치, CLC, 머스트비, 어위크를 다룬다.
미묘: 보통, 기획사가 ‘동생 그룹’을 만들 때면 이전 성공작을 고민의 출발점으로 삼게 된다. 체리블렛은 AOA가 제공하던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란 장점에 보다 아기자기하고 생기 있는 모습을 결합하려는 듯하다. 의도는 상당부분 달성되지만, 그 공식을 위한 상상력이 탁월하다고 하긴 어렵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유효한 요소들의 클래식과 트렌드를 두루 필통에 담고 거기서 설득력 있는 조합을 만들어낸 것은 분명하다. 이는 과소평가할 수 없고, 또 사실 상당히 많은 작품들이 실패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결과물로서 단단하다는 점에서도 어떤 기합이 느껴진다. 또한 악곡과 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가 사운드와 그 질감의 관점에서 표현되는 것도, 일가를 이룬 프로덕션으로서 어설픈 기획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지점이다. 다만 그 조합이 썩 새롭지 않다고 한다 해서 박한 평가는 아닐 것이다. 이를테면 가장 친근함을 노린 듯하면서 또한 가장 낡게 다가오는 게 가사이기도 한데, 어쩌면 노력의 양이나 기합만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닐지 모르겠다. 걸그룹이 조금 낡고 수수해야 친근감을 주는 시대는 지나갔거나 혹은 지나가야 한다. 세련되면서도 충분히 사랑받는 걸그룹의 사례는 이미 많다.
심댱: 케이팝이 끌어오는 세계관에 그 한계가 없다. 체리블렛은 동명의 가상 운영체제를 세계관으로 삼아 콘셉트의 차별점을 취하면서 캐릭터 설정 및 발랄한 그룹 이미지까지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트랙 리스트 역시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연상시키며 활기찬 느낌을 준다.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템포의 ‘Q&A’는 아기자기한 게임의 메인테마처럼 들리는 한편, 나긋나긋한 바람결이 느껴지는 ‘Violet’은 RPG 게임 속 한가로운 한때를, 다양한 비트로 경쾌함을 한껏 끌어올린 ‘눈에 띄네’는 타격감이 좋은 FPS 게임의 짜릿한 순간을 들려주는 듯하다. 약간의 비현실감과 함께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신선함에 눈이 간다. 그들의 산뜻한 스타트에 Discovery! 도장 꽉.
하루살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다. 기대가 낮은 탓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조잡하지는 않다. 곡마다 조금은 뜬금없는 전개들이 이어지며 기분 좋은 텐션을 유지한다. 팀의 세계관을 직접적으로 소개하는 MV도 만족스러운 비주얼을 제공한다. 이에 맞춰 호기심 많고 재능 많은 멤버들은 밝은 에너지를 내뿜는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명확하게 그려냈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풍족한 보컬 풀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FNC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여전하다. 아직 이 싱글로는 10명의 보컬로만 팀을 꾸린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 아쉽다. 딱 예상한 만큼 시원하게 뻗는 고음 외에 더 들려줄 것들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 기획사가 이제까지 보여온 것 중 가장 체계적으로 다듬은 세계관을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갈지, 또 멤버들은 그 안에서 어떻게 뛰어놀지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마노: 발매된 계절상 ‘여름날의 하루’가 테마였던 전작을 지나 이번에는 ‘한겨울의 새벽녘’에 어울리는 미니앨범을 들고 왔다. 타이틀곡 ‘Home’의 구성이 상당히 독특한데, 미니멀하게 베이스와 보컬만으로 운을 뗐다가 이후에 드롭 되어야 할 것 같은 부분에서 되레 방향을 틀어 다시금 심플-미니멀로 돌아오는 식이다. 비로소 드롭 되는 코러스마저도 드롭치고는 차분한 느낌을 주는 것 역시 신선하다고 느껴질 만한 부분. 전작 “You Make My Day”를 다루면서 언급한 적 있었다시피, 유닛별 수록곡이 앨범의 흐름을 끊고는 하는 점이 종종 팀의 약점으로 꼽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모든 수록곡이 처음부터 하나였던 듯, 크레디트를 살펴보고서야 유닛별 수록곡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정도로 매끄럽게 갈무리된 것으로 보아 앞으로 유닛별 수록곡에 대해서는 우려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쌀쌀한’이라는 뜻의 ‘chilly’와 ‘칠리소스’라는 두 단어가 자아내는 언어유희가 귀여운 힙합 유닛의 ‘칠리’, 출렁이는 뭄바톤 리듬이 관능적인 퍼포먼스 유닛의 ‘Shhh’를 특히 추천한다.
미묘: 세븐틴은 지금 케이팝에서 가장 마법 같은 팝송을 선보이는 팀이다. ‘Home’은 자극적인 사운드와 들썩이는 비트감, 오프닝 ‘Good To Me’에서부터 거센 파도처럼 밀려들어 오는 역동감, 고음, 다정하고 달콤한 순간과 뜨거운 감격 등, 케이팝 감상자가 원할 모든 것을 한 데 뒤섞어 휘저은 뒤, 예상치 못한 시점에서 찌르고 들어옴으로써 또 한 가지의 쾌감인 공격적 에너지마저 놓치지 않는다. 이어지는 ‘포옹’은 발라드의 필요조건을 너끈히 채우면서도 충분조건을 거세게 잡아당겨 확장해 버리고, ‘칠리’는 매우 혼란스럽지만 놀라운 집중력 속에 청자가 그저 휘말려들게 하고 만다. 다소 무거워지는 듯하던 시기가 언제였냐는 듯, 마법사의 트릭처럼 좀처럼 상상이 닿지 않는 곳에서 매우 희한한, 그러면서도 팝송으로서 물 샐 틈 없이 다져진 곡들이다. 케이팝의 현재를 보겠다면 세븐틴의 ‘음악’을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랜디: 세 번째를 맞는 “김형석 with Friends” 프로젝트의 발매곡. 앨범으로 묶은 2006년, 2011년과는 달리 각 곡이 디지털 싱글로 발매되고 있다. 원곡은 의심의 여지 없는 인기곡이지만, 2006년 같은 프로젝트에 김태우의 목소리로 실었던 버전보다도 새롭지 않다. 니엘의 독특한 보컬 톤에 의존해서 구성하려 한 듯하나 그나마도 그 보컬이 힘있게 도드라지지 못 한다. 김형석이 90년대 다른 작곡가들과 차별된 지점은 서양 팝에 가까운 음악을 구사했다는 것이었으나, 2019년에 이 곡을 듣고 있자니 전조 후렴 등의 요소가 그때만큼 신선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곡의 색채를 바꿀 만큼 멜로디나 코드를 새로 만진 것도 아니다. 바뀐 것은 리듬 정도다. 그나마도 이 정도 소스는 이제 인터넷에 너무 흔해져 버렸다. 기왕 하는 리메이크, 곡의 생명을 연장하려면 좀 더 연구해야 했고, 좀 더 파격적이어야 했다.
미묘: 스피드감 있는 하우스가 케이팝에서 종종 고급스럽고 우아한 기호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Only U’는 반대다. 페스티벌 EDM 팝 같은 거창한 구성에 약간 날라리 같은 느낌을 더해 가요적 매력을 살린다. “이 세상 모두 가라 그래”가 다분 의도적으로 노골적인 비속어처럼 들리는 연출까지, 한껏 세속화한다. 그 열쇠가 되는 것은 거의 우악스럽게 들리는 웅재와 얄쌍하기 그지없는 태호의 대조. 이어지는 ‘빛나’에서도 같은 조합에, 보다 도톰하게 감성을 실어 날리는 제업의 파트가 이어지는 대목에 감탄이 나온다. 벌써 지난 8월에 발매된 ‘나나나’와 연달아 들으면 임팩트의 음악 세계가 장르 일렉트로닉을 (90년대적) 댄스 가요와 독자적으로 결합하며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 느껴진다. 흥미로우면서 또한 좋은 ‘댄스 가요’를 일구는 행보.
스큅: 음원 자체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순전히 퍼포먼스를 위해 고안된 곡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돌 그룹의 신보라기보다 키즈 댄서 크루가 새로운 루틴을 선보이는 느낌이다. 삐죽이는 비트에 랩도 춤도 정박으로 찍어내는데, 애써 무리하지 않는 가운데 ‘스왜그’를 뽐내는 모습이 (어설프다 생각할지언정) 어색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물론 이를 ‘풋풋함’으로 추켜세울지 ‘설익음’으로 외면할지는 순전히 시/청자에게 달려있을 터.
심댱: 평범하다 못해 지루한 일상 속 특별함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히 준비한 흔적이 곳곳에 들린다. 타이틀곡에서는 마음을 늦추고 릴랙스 하라지만, 발랄한 템포에 감지되는 생기는 몸을 일으켜 즐거운 공기를 맘껏 느끼라며 부추긴다. 어쩌면 ‘생기’가 그의 EP를 잘 설명하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겠다. 수록곡 ‘Love Lock’ 가사 속 ‘Parachute’가 안식처를 향한다기보다는 활강 자체의 짜릿함을 선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그 이유일 듯하다. 한바탕 파티가 지나가고 난 후의 묘한 외로움마저 채워주는 ‘하늘별’까지 따라가면 아쉬움을 찾을 수 없다. 생기발랄하면서도 부드럽게 진행되는 쇼, 혹은 가라앉은 기분을 한 순간 끌어 올려주는 디저트가 연상되는 EP.
랜디: 입대 전 마지막 디지털 싱글. 그룹은 ‘잘 지내줘’라는 노래로 이미 활동 휴지기 전 작별인사를 한 적이 있지만, 아쉬운 듯 한 곡을 더 내놓았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 우리 다시 만나자 / 잘 지내자 어디 있든 / 가끔 안부도 묻고 그렇게 지내자” 같은 가사는 친구에게 하는 이별 노래라 졸업 시즌송 같기도 하고, 멤버들에게 하는 인사처럼 들리기도 한다. 팬의 입장에서는 연인과의 이별에 빗댄 ‘잘 지내줘’나 친구와의 이별을 그린 ‘With You’ 중에 취향에 맞는 것을 골라 들어도 좋겠다. 아이돌과 팬의 관계란 일대다일지언정 친밀한 인간 관계의 형태이고 (혹은 적어도 그것을 지향하고), 시마다 철마다 이런 인사를 챙기는 것은 아이돌팝이라는 장르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라 하겠다.
서드: ‘I Love Me’는 곡의 흐름에 따라 목소리의 힘을 배분하면서 미성의 약점을 커버해내는 테크닉이 두드러지는 곡. 여전히 보컬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한승연의 노력파 이미지와, 연인과의 헤어짐 뒤 혼자만의 생활을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를 자기애로 연결한 가사가 어우러져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스큅: 문득 13년 전 ⟨슈퍼스타 서바이벌⟩에 참가하던 준호의 모습이 떠오른다. 현재의 그는 과연 과거의 그가 바라던 모습을 하고 있을까. 본인이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앨범을 듣고 있자니 분명 그러하리라고 생각하게 된다. 굳건한 자기긍정이 읽히기 때문이다. ‘DSMN’, ‘비행기’, ‘Ride Up’ 등의 흥겨운 트랙은 물론 ‘바보’, ‘마지막으로’ 등 구차하리만치 애달픈 곡에서까지 준호의 가창은 일정 수준 이상의 조도를 담보한다. 일관되게 나타나는 신스팝의 향취 역시 앨범을 내내 밝게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한일 양국의 기발표 곡을 모은 베스트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통일감이 나타나 베스트앨범을 넘어 단일 앨범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 이전 베스트앨범 “One”과 비교했을 때 분명한 성장이 느껴지는 부분. 앨범의 기조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타이틀곡 ‘Flashlight’와 흥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드는 ‘DSMN’을 추천한다.
서드: 멤버 신우의 자작곡으로 입대 전 팬들을 향한 마음을 담은 곡이다. 커버 이미지에도 실린 것처럼 “바나들은 일상 속에서 어떤 순간에 우리 생각을 하나요?”라는 신우의 트윗에 달린 팬들의 멘션을 바탕으로 작사한, SNS를 활용한 아이디어와 그것을 완성한 실행력이 돋보이는 곡.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세 사람의 주고 받는 보컬과 후렴의 하모니가 듣기 편안한 곡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진다. 녹음실 풍경과 팬미팅 현장이 수록된 뮤직비디오까지, 팬들에게는 여러 모로 값지고 벅찬 선물이 될 듯하다.
랜디: 미스틱 엔터테인먼트와의 전속 계약이 끝나고 진짜 홀로서기를 시작한 천둥의 첫 디지털 싱글. 음반 제목을 “Thunder MIX Vol. 1”이라고 붙인 것을 보니 이런 개인작을 자주 소개할 모양이다.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본인이 작사작곡을 했다. 다이아토닉 코드 진행이지만 목관 신스 리프와 리버브를 많이 넣은 드럼이 곡을 끌고 나가며 단순한 음계가 오히려 청량한 꿈처럼 들리게 처리했다. 작년까지 한 회사였던 정진운도 드림팝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던데, 서로 교류하거나 영향을 주고 받은 건지 궁금해진다. 젊은 아티스트의 꾸준한 창작을 응원한다.
서드: ‘잊지마요’는 솔로 앨범 발매 전 먼저 디지털 싱글로 내놓은 곡이다. 워너원의 멤버이자 동료인 박지훈이 피처링했다. 부드러운 두 사람의 음색이 특별한 대비 효과를 만들기보다는 곡 안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편안함을 준다. 심플하게 전개되는 사운드 속에 곡 전반을 아우르는 베이스라인이 인상적.
심댱: 워너원 이후의 활동에 대한 불안감 한 스푼을 데코로 올려놓은 줄 알았건만, 솔로 앨범 선공개 곡이다. 담백하게 구사하는 메인 멜로디 사이사이 휘파람처럼 산뜻한 더블링이 곡의 분위기를 너무 처지지 않게 한다. 절절한 사랑 노래의 외피를 하고 팬덤만이 알아챌 수 있는 작은 힌트를 남겨놓은, 팬송 형식을 빌린 글루미한 듯 깜찍한 트랙. 혹시 힌트가 궁금하다면 2분 55초부터 유심히 들어볼 것.
스큅: 키즈 아이돌 그룹을 마주하며 착잡한 기분을 자주 느끼게 되는 건 ‘키즈’가 ‘아이돌’을 하기 때문이 아니다. 어린이들 역시 나름의 주체성을 지닌 아이돌 문화의 향유자이기에 그들이 아이돌을 하는 것 자체를 삐딱하게 바라볼 이유는 없다. 문제는 제작자들이 ‘키즈’를 ‘아이돌’로 내보낼 때 납작하디납작한 고정관념을 두 배로 덧씌운다는 것이다. ‘톡톡’은 분명 콘텐츠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키즈’와 ‘아이돌’에 대한 고정관념의 배합만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이를 단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두 조합으로 가능한 최악의 경우의 수를 피했다는 데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키즈’라는 점을 방패 삼아 내세우는 낮은 퀄리티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모모랜드를 베낀 곡 구성과 조악한 녹음 마감 상태는 한숨이 나올 정도. 발매 자체에 의의를 두는 활동이라면 아무렴 어떤가 싶지만 결국 이렇게 쓴소리를 남긴다.
서드: 두 사람의 사이를 향초(캔들)에 비유한 사랑 노래로 “너와 나의 캔들 이건 우리 스캔들/이제 혼자가 아닌 옆엔 사랑하는 팬들”이란 가사에서 팬송 형태의 노래임을 엿볼 수 있다. 이대휘의 높은 미성과 박우진의 중저음 랩이 잔잔한 톤임에도 지루할 틈 없는 대비효과를 만들어내고, 후렴에서 특히 그 매력이 살아난다. 앞으로도 가끔씩 피처링을 해줬으면 싶은 조합.
서드: 보컬과 랩이 교차되며 전개되는 익숙한 형식의 발라드지만, 2인조 유닛으로 각각의 파트에 100% 집중해 완성도 면에서 크게 아쉽지 않다. 특히 랩을 맡은 라은의 작사 실력이 돋보인다. 상대적으로 화제성이나 주목도가 낮았던 그룹이기에 대중이 놓쳐왔을지 모를 멤버들의 실력을 어필하기 위해 나름대로 강구한 기획으로 보이는 좋은 시도.
랜디: 신승훈의 2010년 이후 멜로디 작법을 돌아보면 90년-2000년대와는 달리 보폭이 좁은 음계의 반복이 많다. (그의 과거 히트곡들에는 5도 이상의 도약이 많았음과 대조적이다. 본인이 그것을 편안하게 부를 수 있는 탁월한 보컬이기에 나타난 현상일 것 같다.) R&B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진행인데, 음절을 많이 넣어서 가사가 들어갈 폭이 넓고, 따라 부르기 쉽다는 게 특징이다. 단조로운 채터링처럼 처리할 수도 있지만, 신승훈이 로시라는 보컬리스트를 발굴한 것에는 이런 단촐한 라인을 특유의 톤과 창법으로 ‘요즘 케이팝처럼’ 살릴 수 있어서라는 의미가 크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멜로디는 쉬워야 하지만 소화하는 가창자는 신승훈 자신만큼이나 좋은 보컬이어야 한다는 조건 말이다. ‘다 핀 꽃’ 역시 3-2-3-2 반복되는 음계다. 여기에 김이나의 섬세하게 다듬은 가사를 얹었다. OST 참여 등으로 조용한 반향을 얻고 있는 현재, 시대를 대표하는 가요 보컬이 점찍은 후계자의 약진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심댱: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듯한 포근한 시선, 문단처럼 긴 호흡을 가진 가사, 가장자리에서부터 서서히 채워지는 스트링과 밴드 세션. ‘Stars’와 ‘술래’를 잇는 신승훈 발라드는 귀에 쉽게 안착하나 그것이 로시에게 딱 맞아떨어지는 옷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발라드 특유의 아릿한 맛을 선보이는 젊은 퍼포머가 흔치 않기에 이 기획은 로시의 컬러를 구축하기에 적절하다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구름’을 비롯한 OST에서 로시는 화사함도 곧잘 구사하기에 이것이 최선인지 자꾸 물음이 남는다. 과감하거나 더욱 우직한 선택, 혹은 그 이상이 필요한 때라고 보인다.
서드: 꽤 인상적이었던 데뷔곡 ‘Moonlight’ 이후 오랜만에 미니앨범을 내놓은 네온펀치. 타이틀곡 ‘TicToc’은 청자에게 최면을 거는듯 현란하게 쏟아지는 사운드가 귀를 혼란시키는 노래로, 불꽃놀이를 눈앞에서 들여다보는 듯한 뮤직비디오와 함께 감상한다면 이미지가 더욱 강렬하게 전달된다. 멜로디의 구성 자체는 크게 낯설지 않으나 노래가 흐르는 내내 예측하기 어려운 사운드의 활용 덕에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감이 만들어지는데, 서사보다는 리듬감과 운율을 중시한 가사 역시 효과적으로 곡을 귀에 각인시키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독특한 동작의 안무도 곡과 잘 어울린다. 수록곡 또한 다채롭다. 상대적으로 조금 부드러운 비트와 멜로디의 ‘Like It’과 발라드 넘버 ‘Goodbye’, 또 마지막 트랙 ‘My Friends’는 복고적인 사운드에 멤버들의 개성 있는 음색이 어울리는, 90년대 아이돌송을 들어온 이들에게는 친근감 있게 다가올 곡이다.
미묘: 사실 ‘네가 원하는 대로 꾸미지 않고 진짜 내 매력을 찾겠다’는 메시지 자체는 고전적인 테마에 속한다. 거기서 ‘탈코르셋’을 직접 연상시키는 일종의 마니페스토를 주술처럼 던져대는 것, 또한 그것이 무대 의상과 상반되는 지점은 ‘어그로’라 볼 여지가 있다. 누군가를 도발하려는 의도라기보다는, 맥락과 순간의 부조리가 크게 중요치 않은, 또는 그것이 인상을 강화하는 케이팝 특유의 작법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 부조리까지 포함해 곡은 친절하지 않은 긴장을 강하게 끌어올린다. 후렴의 멜로디는 귀에 ‘꽂힐’ 정도의 힘을 지녔지만 귀에 ‘감기지’는 않는데, 이 역시 곡의 메시지에 부합한다고 한다면 다소 과한 해석일 듯하다. 다만 이미지를 던진 이후 귓속에도 맴돌게 하는 효용 측면에선 아쉬움이 없지 않다. 분명한 것은 성인층의 지배력이 높은 케이팝 시장에서 중년층 리버럴의 입맛에 부합하게 소화됨으로써 고전이 된 테마가 ‘불편함’을 기조로 변주되는 독특한 시점이란 사실이다. 누군가는 ‘잘못된 도발’에 불과하다 생각하겠지만, 케이팝이 청자를 도발하는 수법의 변천사는 아직도 한창 진행 중이다. 이후의 수록곡들은 한결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탄탄하고 찰기 있는 팝송들이다. 푸근함과 카랑카랑함 사이를 누비는 베이스 위로 매끄러운 보컬 화성이 펼쳐지며 감정선을 여기저기로 실어나르는 R&B ‘Breakdown’이나 뜨거운 걸음으로 귓속을 점거하는 EDM ‘Show’가 특히 놓치기 아깝다.
서드: ‘Black Dress’로 이미지를 변화한 CLC가 선택한 굳히기 기술은 (여자)아이들의 소연이 작곡한 ‘No’였고 대중의 반응과 성적 면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한 번 들으면 귀에서 떨쳐내기 힘든 강렬한 도입부와 랩 파트에서 승연과 예은의 원투펀치 이후 예상 외의 느슨한 느낌으로 전개되는 후렴이 ‘No’의 독특한 중독성을 만들어내는 요인. 수록곡 라인도 탄탄한데, 그중 ‘Like It’은 타이틀곡 감으로도 손색이 없을 노래다. 예전 ‘어느 별에서 왔니’ 같은 CLC의 밝고 신나는 곡을 좋아했던 팬이라면 마지막 트랙 ‘I Need U’ 또한 놓치면 안 될 트랙.
스큅: ‘A’와 ‘딱 좋아’ 시절의 갓세븐, 혹은 작년 인기를 끌었던 아이콘, 펜타곤 류의 재기발랄한 보이팝을 표방했는데, 좋게 말하면 무난하고 나쁘게 말하면 관성적이다. 기계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곡 구성은 무난함의 울타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는다. 퍼포먼스는 율동을 넘어선 무언가를 기획해 보려다 만 듯한 어정쩡한 인상만을 남기며 곡을 상회하기는커녕 어설픔을 더욱 노출시키고 만다. 멤버들의 부족한 기본기도 큰 문제. 차라리 아예 율동스러운 안무로 귀여움을 어필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다. “떠오르는 말이 뻔해 그저 서투른걸 어떡해”라는 가사가 곡 전체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이미 훌륭한 프로토타입이 있는 상태에서 굳이 뻔하고 서투른 새 선택지를 고를 이유가 있을까.
서드: 통통 튀는 발랄한 음악에 화사한 의상, 어렵지 않은 안무 등 강하게 이미지를 어필하기보다는 쉬운 접근성과 상큼함에 중점을 둔 기획의 데뷔곡. 노래 또한 약간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 익숙하고 팀만의 뚜렷한 콘셉트도 보이진 않지만 완성도가 낮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모든 요소가 적당해 보이는 곡. 최근 보이그룹의 경향이 ‘빡세고 어두운’ 이미지보다는 ‘상큼하고 쉬운’ 이미지 쪽으로 많이 데뷔하는 추세인데 그 사이에서 얼마나 두드러지는 경쟁력을 지닌 팀일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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