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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과 쇼와 가요의 병렬식 ⑤

가버린 여름을 아쉬워하며 산뜻하게 들을 수 있는 여름 같은 노래, 투개월의 ‘Number 1’과 캔디즈의 ‘이 여름 잘 지내시나요’

투개월 ‘Number 1’ & 캔디즈 ‘이 여름 잘 지내시나요’

K-pop의 최대 부흥기라는 요즘의 한국, 그리고 아이돌이 가요계의 주역이던 쇼와 시대 일본. 두 나라의 닮은 듯 다른 가수와 노래들을 나란히 놓고 살펴보며, K-pop 얘기도 해보고, 쇼와돌 가요 소개도 해보는 연재입니다. 가벼운 읽을 거리로 즐겨주세요.

오랜만에 찾아뵙는 케이팝과 쇼와 가요의 병렬식입니다! 여름 동안 업데이트가 없었지요. 이젠 가을도 저무는 것 같고 겨울 맞을 준비를 해야 할 때인데, 이럴 때 가버린 여름을 아쉬워하며 듣는 노래들도 전 좋더라구요. 산뜻하게 들을 수 있는 여름 같은 노래 두 곡을 묶어봤습니다. 케이팝에서는 투개월의 ‘Number 1’을, 쇼와 가요에서는 캔디즈 (キャンディーズ) 의 ‘이 여름 잘 지내시나요(暑中お見舞い申し上げます)’ 를 뽑았어요.

투개월 ‘넘버원’ 뮤직비디오.
캔디즈 ‘이 여름 잘 지내시나요’ 77년도 렛츠고영 무대.

‘이 여름 잘 지내시나요(暑中お見舞い申し上げます)’ 가사

닮은 점: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

‘Number 1′(이하 넘버원)과 ‘이 여름 잘 지내시나요(暑中お見舞い申し上げます)’ 두 곡 모두, 멀리 있는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태를 한 가사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먼저 ‘넘버원’을 살펴볼게요. 이 곡은 2013년 투개월 결성 2주년 기념으로 발매된 싱글로, 도대윤의 학업 복귀 이후로는 드문드문 이어가고 있는 투개월의 이름을 지속하게 해주었어요. 페퍼톤스의 신재평이 노랫말과 곡을 만들었고요. 가사의 내용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연인들이 보고 싶다는 메세지를 주고받는 내용입니다. 손편지인지 이메일인지 정확히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파트가 8마디마다 교차하는 걸 보면 양피지 파발처럼 보내는 데 오래 걸리는 매체는 아닌 것 같죠. 뮤직비디오도 김예림과 도대윤 두 사람이 투개월을 시작하던 그 시절 실제 페이스북 대화를 싣고 있으니, 아날로그보다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으로 추측하는 게 적당하지 않나 싶네요.

‘이 여름 잘 지내시나요(暑中お見舞い申し上げます)’는 캔디즈가 인기 절정을 달리던 77년도 6월에 발표한 여름 노래입니다. 어르신들이 여름철에 인사하실 때 서로 ‘서중 문안 인사드립니다’ 라고 하는 말 혹시 들어보셨나요? 요즘엔 자주 쓰는 말은 아닌데, 서중(暑中)은 여름의 아주 더울 때를 말하는 단어라고 해요. 해서 ‘서중 문안’이라는 건 여름철 건강하십니까, 잘 지내십니까, 하는 계절 인사 같은 거죠. 보통 여름에 보내는 카드나 편지에 쓰는 말이라고 하더라구요. 가사를 보시면 멀리 있는 연인에게 잘 지내냐 같은 안부 인사부터, 파라솔을 타고 날아가 만나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 물놀이하자는 것도 마다한다, 같은 소소한 안부와 감정을 전하고 있어요.

다른 점: 정통 아이돌과 광의적 아이돌

캔디즈는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아이돌 걸그룹의 원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캔디즈 이전에도 10대 여성 가수나 여성 보컬 그룹은 존재했지만, 캔디즈는 일본 역사상 최초로 전국구 팬클럽을 탄생시킨 진짜 ‘아이돌’입니다. ‘전국캔디즈연맹,’ 일명 ‘전캔련’이란 이름의 이 팬클럽은 회원들이 사회의 중추가 되고도 남은 세월을 거쳐,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 중입니다. 이 밖에도 핑크레이디와의 라이벌 구도, 멤버들의 몸을 사리지 않은 예능 출연, 특정 멤버 푸시 및 센터 교체 등 캔디즈가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아이돌의 유산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조금씩 썰을 풀어보자면요. 70년대 들어 일본 가요계는 엔카가 서서히 지는 중에 락앤롤 등을 반영한 서구의 음악이 본격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요. 당시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섹시한 안무로 당대 전연령대에게 사랑받았던 핑크레이디와 청순하고 깜찍한 소녀 중창단 같았던 캔디즈의 라이벌 구도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어요. 2010년대 한국으로 치면 씨스타와 에이핑크 같았달까요? 또, 당시 일본 개그의 대세는 만담이나 콩트였는데요. 캔디즈는 신비주의와는 거리가 멀어서, 주말 방송 콩트에서 까까머리 가발에 코믹 연기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어요. 지금도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큰 전환점이 된 것은 역시 센터 교체일 텐데요. 데뷔 초에 수우쨩 센터로 활동했지만 큰 반향이 없자 예능에서 ‘누님 캐릭터’로 인기 있던 란쨩을 센터로 교체하며 그룹 분위기의 변신을 꾀했어요. 이 과정에서 대중들은 ‘란 파’와 ‘수우 파,’ 그리고 또 한 명의 멤버 ‘미키 파’로 나뉘어 누가 누가 좋은가를 떠들었고, 이런 입소문을 타며 본격적인 커리어에 부스트가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AKB48의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는 이런 예를 들며 ‘캔디즈가 없었으면 AKB도 없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https://youtube.com/watch?v=ImNaZ19KX3I

한편, 투개월은 이 팀을 아이돌이라 불러야 하는지 좀 애매하지요? 아이돌로지에서 이들을 언급하는 자체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줄로 알아요. 제가 주목하는 점은 이들이 TV 오디션을 통해 데뷔하면서 팀 결성 초기의 과정을 모두 대중에게 보였고, 미션을 거듭하며 합을 맞춰가는 듀오로서의 성장이 인기의 큰 요인이었다는 거예요. ‘성장’은 아이돌 마케팅의 큰 셀링 포인트 중 하나인데요. 요즘처럼 아이돌도 다양화되고 의미 역시 광역화되는 때에, 투개월 정도의 그룹은 슈스케 등을 위시해 등장했던 ‘인디 감성’ 포크 뮤지션계에서도 아이돌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최근 김예림 솔로의 행보가 데뷔 초의 포크에서 요즘엔 ‘케이팝’하면 떠오르는 일렉트로 사운드와 세련된 코디의 이미지로 많이 넘어오며 점점 더 ‘색깔 있는’ ‘아이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점점 아이돌과 비아이돌을 나누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는 케이팝 시장의 양상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가수가 아닌가 해요.

닮은 점: 그룹 서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가사

‘이 여름 잘 지내시나요’를 발표한 77년 여름, 캔디즈는 콘서트에서 별안간 해체를 선언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보통 여자아이로 돌아가고 싶어!” 라고 외친 란쨩의 한 마디는 그 해의 유행어였자 지금도 회자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해요.

“우리 여러분에게 꼭 말해야 할 것이 있어요. 미안해요! 우리, 올 9월에 해체해요. 여러분 우리 마음을 이해해주세요.

미안해요! 용서해줘요! 보통 여자아이로 돌아가고 싶어! 미안해, 용서해줘요”

음성을 들어보시면 당해 9월에 해체할 계획이었다고 하는데요. 이 벼락같은 해체 선언 이후 팬들이 하도 반대를 한 통에, 해체가 잠시 유예됩니다. ‘이 여름 잘 지내시나요’ 이후에도 ‘앙 투 트와(アン・ドゥ・トロワ),’ ‘올가미(わな),’ 그리고 공식적인 마지막 싱글 ‘되돌려드리는 미소(微笑がえし)’을 추가로 발매하며 반년여를 더 활동하게 됩니다.

계획이 중간에 엎어지긴 했지만, 캔디즈의 ‘이 여름 잘 지내시나요’는 사실 해체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곡이었어요. 캔디즈 대부분의 히트곡을 작사한 키타죠 마코토(喜多條忠)는 이 곡이 해체 전 마지막 싱글이 될 것이라는 사무소의 주문을 받고 무슨 가사를 써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고 하는데요. 처음엔 여름 인사를 보내는 편지라는 콘셉트는 같았지만, 훨씬 더 슬픈 가사를 썼다고 해요. 그러다 팬들이 사랑한 캔디즈의 밝은 모습을 마지막으로 장식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해서, 콘셉트는 유지하되 밝고 귀여운 여름 노래를 썼습니다. 단, 나중에 팬들이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캔디즈와 함께 한 시절을 떠올릴 수 있도록 “빨리 그대를 만나고 싶어서 시계를 돌리고 있어요” 라는 한 줄을 넣었다고 하죠. 노래를 그냥 들으면 시간아, 빨리 흘러라 하면서 보채는 느낌이지만, 맥락을 알고 나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뜻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투개월의 ‘넘버원’은 장거리 연애 중인 커플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실제의 두 사람이 연인 사이는 아니라 해도, 미국에 가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도대윤과 한국에서 본격적인 솔로 커리어를 시작한 김예림 둘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를 염두에 둔 곡이란 건 누구나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사실 만난 지 두 달밖에 안 돼 슈스케를 통해서 점차 가까워지는 어색남녀듀오란 그 자체에, 멀쩡한 사람도 우결 망붕을 만드는 간질간질한 매력이 있었단 말이죠! 마치 그들의 이야기인 것처럼 상상하며 듣는 것도 이 곡의 감상 포인트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도대윤 파트 뒤에 김예림이 나올 때 자연스레 조바꿈이 될 때는, 꼭 영상통화의 화면 전환처럼 느껴지더라구요.

다른 점: 재회와 이별

‘넘버원’은 비록 지금은 떨어져 있지만 재회하기를 기다리며 마음을 나누는 두 사람의 노래에요. 2절의 시작 부분에 ‘쨘 하고 나타날게 생각지 못한 어느 날 우연히 문득 뒤돌아봤을 때 그때 꼭 내가 서 있을게 / 꼭 하고 껴안을게 가장 반가운 얼굴로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해도 나는 환하게 웃을 거야’ 를 들으면, 아무리 밝은 말로 대화해도 사실은 보고 싶어하는 연인들의 애틋함을 느낄 수 있어요. 이 싱글 발매 이후에도 드문드문이긴 하지만 투개월은 활동을 이어오고 있고, 많은 팬들도 이들의 재결합을 기다리고 있어요. 김예림의 솔로 커리어가 확고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투개월로 함께 하는 김예림 도대윤 두 사람의 모습을 꼭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요. 윤사장님 듣고 있나??

한편 캔디즈의 ‘이 여름 잘 지내시나요’는 해체를 잠시 유예했을 뿐, 두 계절 뒤에 예고 대로 해산을 하게 됩니다. 팬들에게도 아쉬움을 추스르고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셈이죠. 이 반년 동안은 셋 중 한 번도 센터를 선 적이 없는 미키쨩이 센터를 선 싱글이 발매되기도 했고 (‘올가미’), 지금까지 발표했던 히트곡 제목들을 가사에 넣은 최종 마무리 싱글이 나오기도 했어요(‘되돌려드리는 미소’).

가사에 ‘봄 첫바람,’ ‘올가미,’ ‘하트의 에이스,’ ‘상냥한 악마,’ ‘앙 투 트와’ 등 그간의 히트곡 제목들이 쏙쏙 들어가 있어요. 해당 곡의 포인트 안무들을 보는 재미도 있어요. 참고로 이 센스 있는 가사는 모모에에게 다수의 히트곡을 작사해준 아키 요코(阿木燿子) 작이랍니다. 이 마지막 싱글로 캔디즈의 역대 오리콘 최고 성적을 거두며, 캔디즈는 이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2011년 캔디즈의 팬들은 또 한 번의 큰 이별을 맞게 됩니다. 2011년 4월 25일, 캔디즈의 초대 센터였던 수우쨩 (본명 다나카 요시코(田中好子)) 이 오랜 세월 투병한 유방암을 원인으로 향년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우쨩은 캔디즈 해체 후 연예계를 떠나고 싶었지만 아픈 남동생의 병원비 문제로 다시 활동을 시작했고, 그때 만나 친해진 배우 나츠메 마사코(夏目雅子)가 인연이 되어 그의 오빠와 결혼했어요. 운명이 무심하게도, 수우쨩의 동생과 나츠메 마사코 둘 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래는 수우쨩의 장례식장에서 재생된, 수우쨩이 임종 한 달 전 녹음한 육성입니다.

“오늘 찾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 테이프를 부탁합니다. 캔디즈로 데뷔한 이래 긴 시간을 신세 졌어요. 아주 행복한 인생이었어요. 마음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란씨와 미키씨 고마워요. 두 사람을 사랑해요. 영화도 좀 더 찍고 싶었고 TV에도 좀 더 출연하고 싶었어. 계속 배우가 하고 싶었어… 계속해서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숨쉬기가 힘이 드네요… 언젠가 나츠메 마사코처럼 지지해준 여러분께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카즈씨 잘 부탁해. 그 날까지 안녕.”

뒤이어 남편 카즈씨가 오열하는 모습과 미키쨩, 란쨩의 송사까지 녹화된 영상입니다. 이날 운구를 하면서는 수우쨩이 센터였던 캔디즈의 데뷔곡 ‘너에게 푹 빠졌어(あなたに夢中)’가 흘렀다고 해요.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크고 작은 이별들을 하지만, 마음을 많이 쏟은 사람과의 이별은 특히나 힘이 듭니다. 저도 본격적으로 덕질하던, 세상 없이 좋아하던 아이돌 그룹이 해체하게 됐을 때 ‘산 사람이 이렇게 죽은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나’ 싶을 정도로 공허해지던 게 아직도 생각나는데, 실제로 자기 본진 아이돌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럼에도, 캔디즈의 팬들은 봄이면 ‘봄 첫바람’을, 여름이면 ‘이 여름 잘 지내시나요’를 들으며 캔디즈와 캔디즈를 사랑하던 젊은 시절을 추억할 수 있어요. 어찌 보면 아이돌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애틋한 사랑을 받았고, 그래서 오래까지 아름답게 기억되고 있고, 그것으로 ‘여러분께 은혜를 갚고 싶다’던 수우쨩 생전의 바람이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마치며

이제 11월이고 날씨는 점점 본격적인 가을로 치닫고 있지만, 바람 안 부는 실내에서 따땃하게 햇볕 쬐며 여름 노래를 듣는 것도 별미랍니다. 속이 튼튼하신 분들은 빙수 한 대접 떠놓고 이 두 곡 들어보심이 어떤지요 :)

돌돌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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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plies on “케이팝과 쇼와 가요의 병렬식 ⑤”

캔디즈는 이름 밖에 몰랐지만, 고별식 영상을 보며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아끼는 아이돌 혹은 스타와의 갑작스럽고 이른 이별이 그리 먼 일이 아니었음을, 제법 최근에 케이팝신에서도 존재했음을 상기하면서 가슴이 먹먹하네요….

덧. 이번 기회에 연재 글을 쭉 정독해보는데, 읽을 수록 마음이 따스해지고 돌돌말링님의 통찰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오래오래 연재해주셨으면….

부끄러운 글들인데도 격려해주셔서 감사해요 ㅠㅠ 덕분에 더 즐겁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성실 연재 해보겠습니다 0_0)9 불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