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 10일에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필진들의 단평이다. 제국의 아이들, 유키스, 태양, B.A.P, 크로스진, 엔소닉, 탑독, 보이프렌드, 단발머리를 들어보았다.
김영대: 커리어의 '대반전'을 이루어냈다고 평가하고픈 전작 EP "Illusion"과 비슷한 맥락의 작품. 용감한 형제, E.One 등의 익숙한 라인업이 건재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별들의 전쟁은 용감한 형제와의 완벽한 호흡을 포함해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인디 댄스, 혹은 유로팝 느낌의 촘촘한 사운드가 인상적인 '숨소리', 미니멀하게 정석적인 R&B의 프레이즈를 두루두루 선보이는 '비틀비틀' 역시 훌륭하다. 특히 멤버들의 목소리가 가장 잘 살아나는 '삐끗 삐끗'은 이번 EP가 만들어낸 가장 그럴듯한 성과이자 제국의 아이들이 음악적으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했음을 증거하는 트랙.
미묘: 남성 아이돌의 캐릭터적 매력이란 사실 대부분 양날의 검이지만, 화사함은 제국의 아이들에게서 특히 두드러지는 강점이자 단점이다. 매력이 될 수도 있으나 자칫 어떤 결여를 낳기도 한다. 이를테면 아이유가 나온다는 말은 아무도 안 했는데 왠지 아이유의 부재가 신경 쓰이게 되던 제아파이브의 무대처럼 말이다. 그런 면에서 '삐끗 삐끗'은 그 화사함을 쿨로 승화시킨 멋진 사례다. 평소의 용감한 형제보다 스네어부터 산뜻한 '숨소리' 또한 시원한 에너지로 화사한 팀 컬러를 빛낸다. 이제야 그들의 옷에 날개가 달렸다는 기대감이 샘솟는다. 그러나 '헤어지던 날'을 노골적으로 재활용한 '비틀비틀'과 '아이돌 필수요소'에 가까운 'ONE'이 주는 실망감은 어찌할까.
미묘: 다소 대중없는 유키스의 커리어를 생각하면 '끼부리지마'에서 놀랄 구석은 없다. 인트로는 "감성적인 어쿠스틱 기타로 부탁합니다"란 주문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올 법한 기타 듀오로 이뤄졌고, 표준어를 조금 빗겨간 표현을 발라드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다. 기타 배킹은 디테일한 매력이 있기는 하나 전형적이고, 부드러운 질감의 스크래치와 후렴의 스트링 연타, (듣기 좋긴 하지만) 프리코러스의 저음 보컬 겹치기 등은 조금 지나칠 정도로 90년대적이다. (심지어 스네어도 림샷이다.) 검증된 스타일의 매력을 즐기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수록곡들의 구태의연함까지 극복할 만한 강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차라리 로킹한 미드템포의 애절한 '하나'가 '아이돌적'으로 듣기 좋은 편.
김영대: 누구에게는 과잉, 누구에게는 애매한 이미지를 남긴 뮤직비디오이지만 음악만을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눈, 코, 입'이 타이틀로 손색이 없는 곡이다. 전반적으로 앨범은 다소 진중한 느낌, 가볍게 소모될 트렌드를 제시한다기보다는 음악적으로 욕심을 낸 작품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산만할 수 있는 구성을 탁월하게 잡아내 은근한 성적 매력을 뿜어내는 "아름다워 (Body)"정도를 제외한다면, 쉽게 다가온다고 느껴지는 트랙이 드물다는 것은 한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이 역시 시간을 많이 들여 공들인 음반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강점이자 함정이기도 하다. 비슷한 시기에 자기 색을 다져가고 있는 박재범(Jay Park)과의 비교는 필수적이다.
유제상: "Solar" 이후 4년 만의 정규앨범이다. 인트로를 제외하고 총 8곡이 수록되어 다소 볼륨이 부족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곡의 분위기가 일관되어 있고 기존 싱글에서 가져온 곡은 '링가 링가' 하나뿐이므로, 대중이 태양에게 기대하는 것을 충실히 보여준 앨범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앨범 내 수록곡이 전반적으로 나른하다든지, 따라서 듣는 재미가 느껴지는 '튀는 곡'이 없다든지 하는 점은 좀 아쉽다. 솔직히 이 음반을 들으면서 서울 깍쟁이 같은 GD나 T.O.P이 그동안 '얼마나 재미있는 음반을 발매했던가'란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되었다. 물론 각자의 지향점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유제상: 정규앨범 "First Sensibility"의 타이틀 '1004 (Angel)'로 연초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B.A.P가 4개월 만에 발매한 싱글. 잔잔한 기타소리를 메인으로 삼은 '어디니? 뭐하니?'와 '오늘은 꼭', 그리고 '어디니? 뭐하니?'의 인스트루멘탈이 수록되었다. 각각의 곡은 기존 B.A.P의 '힘찬'내지는 '너무 성실해서 갑갑한' 분위기와는 대척점에 있지만, 듣기 무난하며 지난 3년간의 강행군을 마치고 하나의 쉼표를 찍는다는 점에 있어서도 부족함이 없다. 솔직히 이런 싱글이 발매되었다는 점을 볼 때 이제 B.A.P라는 그룹에 어느 정도 여유마저 느껴진다. 그간 고생 많았어요.
미묘: 여유 있는 리듬 속에서도 좋은 기세로 몰아붙이는 비트와 화려하게 연출된 신스들, 적당히 제이팝스러운 멜로디 라인 등이 인상적이다. 일렉트로닉을 사용하면서도 어쩐지 좋지 못한 것으로 보는 국내 풍토상 반갑게 느껴지는 지점들이 있다. 그러나 노래의 흐름이 전반적으로 평탄한 가운데 여러 가지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다소 애매하게 연출되어, 다소 어수선한 가운데 평탄하게 흘러가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유제상: 2012년 '다국적 아이돌'이란 차별성을 무기로 떠들썩하게 데뷔한 이래, 갑자기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소속사인 아뮤즈(アミューズ)를 따라 일본에서 활동 중이었던 크로스진이 신곡을 들고 돌아왔다. 'Amazing -Bad Lady-'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가 매력적인 곡이다. 다만 활동지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왠지 일어로 된 원곡이 있는 듯한 느낌도 들고(이는 기존 K-POP과 차이를 보이는 배경음의 활용법에 기인한다), 이 곡 하나만으로 대세를 바꾸기엔 역부족이란 생각도 들고 그렇다. 기회가 된다면 이들에게 그간의 좋은 곡들을 가지고 국내시장을 공략하지 않은 이유를 물어보리라.
미묘: '빠삐용'은 몇 대의 디스토션 기타와 오케스트레이션, 합창 샘플, 게이트 신스 등, 웅장하고 화려한 사운드를 거하게 부려 넣으며 시원한 블록버스터처럼 달려가는 곡을 만들려는 의욕이 엿보인다. 그러나 시간을 주무르는 솜씨에 있어서 의욕만큼의 설득력이 느껴지진 않는다. 단적으로 2절 후렴이 브리지로 넘어가는 순간은 끝난 곡을 굳이 더 붙들고 있는 것처럼 들리진 않는지. 업템포 R&B의 관습적인 멜로디를 그대로 뿌리면서 겉도는 브라스를 얹어둔 '미치겠네'도 아쉬움 가득. 그러나 무엇보다 보컬의 음색과 디렉팅이 곡에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유제상: 세상을 박차고 일어나라는 내용의 가사를 지닌 흥겨운 곡 '빠삐용', 바람피우는 여자친구를 의심하는 '미치겠네' 두 곡을 메인으로 삼는 미니앨범. 엔소닉은 디스코그래피가 무려 201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중고 신인으로, 활동과 관련해 이런저런 곡절이 많았다고 들었다. 다행히 듣기 좋은 곡을 들고 돌아왔지만,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는지는 잘 모르겠다.
미묘: 아마데우스의 테마로 구성된 음반에서 들릴 듯 말 듯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가 활용되는 것을, 패기라 해야 할까, 유머라 해야 할까. 사실 이 음반이 차용하는 '클래식'이란 기호가 전적으로 '어디서 많이 들어본', '유려한 긴장감'에 불과하긴 하다. 그런 막무가내가 케이팝의 결과론적인 특성의 하나이긴 하다. 그러나 민망함을 더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직접적 레퍼런스들이 사실 불필요한 음반이기 때문이다. 인트로를 제외한 세 곡 모두 위협적인 패기 속에 수시로 변화하는 랩을 선보이고, 다소 힘이 부치는 듯한 보컬마저 기세 좋게 느껴진다. ('TopDog'의 브리지가 제법 독특하게 사용하고 있는 보컬 피치쉬프트도 재밌다.) 그래서 '잔재주 FAIL'이 더욱 아쉽다.
ML: '아라리오'에서 풍악을 끌고 들어와 블락비 이후 노래방이 사랑할만한 아이돌 팀으로 입지를 굳히려나 싶었으나, 그 괴상한 흥겨움이 싫었는지 풍악은 폐기하고 클래식을 들고 왔다. 수많은 놀림과 짤방을 만들어내고 이제는 단물이 빠진 '쥐짜르트' 코스프레와 르네상스 남자 복식을 흉하게 흉내 낸 의상, 엑소 이후 은근슬쩍 한 번씩 다해보는 초능력자 설정으로 범벅이 된 타이틀곡의 뮤직비디오는, 뒤늦게 인터넷 유머를 발견하고 즐거워하는 중년들의 단체 카카오톡방 같다.
유제상: 뜬금없는 클래식(을 다룬 영화) 콘셉트로 인트로부터 사람을 놀라게 한 미니앨범. 힙합 비트에 가상 스트링 소리가 들어가면 일단 성질부터 내고 보는 평자 같은 사람은 절대 피해야 할 곡이 다섯 개나 들어있다. 아쉽네. 난장 분위기의 '아라리오 (Arario)'는 꽤 재밌었는데.
미묘: 화사함이 장점이자 단점인 제국의 아이들과 '스윗튠의 아이들' 인피니트는 각각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장기를 찾아가고 있다. 다른 수록곡들에 비해 타이틀 '너란 여자'는 나름의 색깔을 보여주고 보컬 연출도 꽤 효과적으로 이뤄졌으나, 선명하게 매력을 보여주기엔 다소 어정쩡하지 않은지. 그 외의 수록곡들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스윗튠에게서 기대하는 기본값 이상을 그리 보여주지 못하는 점, 보컬 역량의 부침이 자주 노출되는 점 등이 그렇다. 이런 약점들을 벗어나진 않지만, 산뜻하면서 애절한 'Alarm'은 (다소 뿜기는 "멍-청-아-" 같은 대목을 비롯해) 한 번쯤 챙겨 들어볼 만한 트랙.
유제상: 거친 아이돌 판에서 보이프렌드가 의외로 선전한 것은 아마 곡이 좋았기 때문이리라. "Obsession"은 이러한 평자의 믿음을 지속시켜준다. 훵키한 멜로디의 'Back It Up'과 'DENY' 두 곡을 추천.
김영대: 플레이보이 버니(Playboy Bunny)를 가져오다니, 역시 크롬 엔터테인먼트다운 발상이지 싶다. 어쿠스틱 기타와 왜곡된 일렉트로닉 음원들이 만나면서 다소 몽롱한 분위기의 댄스 비트를 만들고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퍼포먼스에 특화된 곡이라 평가하긴 어렵다. (이런 애매한 비트에 완벽한 관능미를 뽑아낼 수 있는 퍼포머가 몇이나 될까?) 전반적인 흐름이라든지 멜로디가 점층적인 편곡 구성, 잔잔한 래핑 등 나름의 완성도를 담보하는 곡이지만 반짝거리는 포인트 하나가 아쉽다.
macrostar: 검정색 미니마우스 콘셉트, 빨간색 리본 머리띠와, 가라앉아 있는 노래 사이의 간극이 매우 신경 쓰인다. 페티시 계열의 의상과 아이템들(가죽끈, 비닐 치마 등등)이 비전략적으로 배치된 점 또한 신경 쓰인다.
ML: AOA의 지민이 자동 연상되는 멤버 유정이나, 용감한 형제 곡의 인상을 줬다 슬며시 시치미 떼는 곡을 보면, 단발머리란 기획이 어디서 단초를 얻었는지 알 듯하다. 렌탈 스튜디오와 파주 아웃렛의 어딘가를 오가는 단출한 뮤직비디오는, 묘하게 각이 안 잡힌 안무와 잘 안되는 인터넷 쇼핑몰의 피팅 모델 같은 멤버들의 외모와 어우러져 묘한 순박함을 풍긴다.
유제상: 사실 이들을 TV에서 먼저 만났는데, 솔직히 크게 인상적이진 않았다. 그 이유는 타이틀 'No Way'가 걸그룹에 썩 잘 어울리는 곡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이 처한 상황은 쌩 클럽곡을 타이틀로 들고 나온 나인뮤지스를 연상시킨다. 단발머리에게도 '휘가로 (Figaro)'처럼 기사회생의 기회를 주는 곡이 주어진다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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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plies on “1st Listen : 2014.06.01~06.10”
보이프렌드 리뷰에 보이프렌드가 아니라 제국의아이들이라고 써있네요
제아, 인피니트와 비교한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좀 불분명하게 쓴 모양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