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 20일에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필진들의 단평이다. 시크릿, 위너, 테이스티, 제이스, 준호, 멜로디데이 & 이종현(씨엔블루), 태민, 카라, 오렌지캬라멜, 걸투스쿨, 제이블럭, 빅병, 차니스, 방탄소년단을 들어보았다.
미묘: 심기일전이 느껴진다. 타이틀 이외에도 대부분의 수록곡이 선명한 인상을 남기며 각기 나름 극적인 효과도 발휘한다. 좋은 '가요'들이고, 못해도 준수한 정규앨범 수록곡으로 손색이 없다. 그럼에도, 펄펄 뛰는 시크릿이라면 타이틀 'I'm In Love'가 제격. 더 펄펄 뛸 수도 있지 않나 싶은 기분도 없진 않지만.
유제상: 이단옆차기 작사/작곡의 타이틀 'I'm In Love'는 기존 'Magic', 'Madonna', '사랑은 MOVE'(잘 알려져 있다시피 세 곡 모두 강지원·김기범 작사/작곡이다) 등으로 이어진 '브라스가 두드러지는 흥겨운 곡'의 연장선상에 있다. 다만 글리치에서나 들을 법한 전자음의 삽입이나, 랩 파트에서의 변박을 통해 기존 곡들과의 차별화를 꾀한 점이 흥미롭다. 타이틀을 비롯해 수록곡들이 한층 세련되면서도 시크릿 특유의 힘찬 느낌 또한 잘 살아 있어서, 음원만으로 한정한다면 "SECRET SUMMER"는 양질의 음반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하락세에 접어든 시크릿의 인기를 다시 부흥시킬만큼의 매력을 발견하진 못했다. 오히려 예능에 나와서 능청스러운 연기를 펼쳐보이는 멤버들을 보니, 시크릿 또한 자연스러운 '걸그룹 생로병사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성민: 수려하지만, 뾰족한 부분은 없다. 타이틀곡 'I'm in Love'는 '시크릿'을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어떤 소리들을 모아둔 것에 지나지 않는 듯하지만, 정작 수록곡들이 제각각의 색깔을 가지고 '들을 맛'을 내고 있다. 그렇다보니, 타이틀곡 선정이 잘못되지 않았나 싶은 느낌도 있다. 컴백 무대에서 커플링곡으로 선보인 'U R Fired'나 'Look At Me' 같은 곡들이 차라리 요즘의 차트 안에서는 더 돋보일 수 있는 노래인 것 같다. 이제 '시크릿'의 이름 값에만 기대기에는 조금 초조해질 법한 위치에 있지 않나. 욕심을 조금 더 내보길.
미묘: 요즘의 YG는 거리에서 발굴된 거친 반항아가 스타덤에 오른 뒤 좋은 옷을 입고 큰 작품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혹은 그것을 재연하는 것 같다.) YG가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요소들을 잘게 뽑아내, 장르 색을 덜어내면서 우아하고 보수적이며 고급스러운 팝을 만들어낸다. 자수성가한 부모보다 우아한 2세 같은 모습. 같은 핏줄의 다른 태생이 보여줄 수 있는 차이점들을 기대하게 하는 음반.
유제상: 프로토타입에 해당하는 그룹이 소속사 내에 있고, 이를 바탕으로 더 반듯하고 정돈된 후속 그룹을 내세우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다만 YG엔터테인먼트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뿐(사실 그동안 YG발 남성 아이돌 그룹 자체가 안 나오기도 했다).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리얼리티 프로를 통해 다소 요란스럽게 데뷔한 WINNER는 예상대로의 그룹이었다. 말쑥한 외모와 실력은 기대 이상이었고, 음반은 무려 10트랙에 달해 양적`질적으로 과잉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풍성하다. 먼저 데뷔한 GOT7이나 레드벨벳의 경우도 그렇지만, 이제 이 정도의 규모를 가진 기획사에서 내세운 신인 그룹은 흠을 찾기 쉽지 않다. 다만 '공허해', '컬러링'의 타이틀 두 곡 모두가 너무 가라 앉는 분위기인 것은 아닌지, 그리고 가사가 지나치게 낮은 연령대를 지향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은 든다. 아마 후속작이 나오면 팀 컬러가 분명해지면서, 이러한 불만에 대한 답도 충분히 제시할 수 있겠지.
조성민: 'YG'라는 테두리 안에서 가장 대중적인 트랙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앨범. 이런 트랙들이라면 차트를 석권하게 될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앨범만 들어봤을 때는 위너가 빅뱅보다 좀 더 대중지향적인 노선을 선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돌 키워본 티'가 안 나던 빅뱅 데뷔 초를 생각하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달라진 모습. 빅뱅과 똑같이 '3 보컬, 2 래퍼' 구성인데, 곡 안에서 보컬과 랩의 비중은 빅뱅과 정반대로 역전되어있는 점이 재미있다. 드디어 '아이돌'을 키워보려는 것 같다.
유제상: 자, 오늘은 테이스티에 대해 알아볼까요? 1. 테이스티는 인피니트가 속한 울림 엔터테인먼트의 아티스트다. 2. 2인조 남성그룹으로, 멤버는 쌍둥이인 대룡과 소룡. 놀랍게도 본명이다. 3. 2012년 싱글 "SPECTRUM"로 데뷔했다. 4. 멤버가 모두 댄스에 특화되어 있어서 라이브 무대의 춤사위가 멋지다. 다만 노래는... 음... 그렇다. 5. 이번에 발표한 'Addiction'은 힙합 비트가 깔리는 잔잔한 곡으로, 자이언티나 크러쉬가 부르는 그런 노래를 생각하면 된다. 6. 곡은 좋은데 이들에게 어울린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춤추는 쌍둥이'가 지니는 강렬한 인상을 잔잔한 멜로디로 묻어서야 되겠나 싶다. 어떻습니까? 만족스러우십니까?
조성민: 솔직히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는데, 사실 필자는 테이스티를 인피니트보다 먼저 좋아했다. '너 나 알아?'의 신선한 충격과 'MAMAMA'로 이어진 안정감은 많은 아이돌 팬들이 '쌍둥이'에 갖는 판타지를 극대화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굳이 쌍둥이가 아닌 듀오로서의 매력은 상대적으로 여타 2인조 아이돌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이 팀이, 왜 자꾸 처음 보여줬던 그 판타지를 깨고 보통의 남성 듀오가 되려고 하는지 의문이다. 각설하고, 중국 진출을 선언하며 한국에 선공개한 이번 싱글이, 그래서 중국에서는 얼마나 인기를 얻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국내에서 그렇게 큰 인기를 끌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돌아와요, '쌍둥이'로.
유제상: '록 밴드 콘셉트의 남성 아이돌'하면 떠오르는 기존 그룹이 한 둘이 아니건만, "My Serenade"를 들으면 제이스가 그들과 어떤 차별점을 지니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록 밴드 구성이 설령 '콘셉트'(이건 프로레슬링 같은 거라서 사실이 아니어도 사실인 거고, 사실이어도 사실이 아닌 거다)라 할지라도 곡에 제트 이펙트가 들어가는 건 좀 아니다 싶다. "작사/작곡 참여", "멤버 전원이 프로듀싱" 같은 보도 자료의 수식어를 뛰어 넘어, 진정한 음악성으로 승부를 거는 것은 어떨까. 그땐 <리그 오브 레전드>의 제이스보다도 이 그룹이 더 유명해지겠지.
조성민: 동네 스튜디오에서 지역구(동·읍·면 단위) 노래방 스타를 데려다가 녹음하면 이런 앨범이 나올 것 같다. 보컬이 전혀 밴드에 어울리지도 않을 뿐더러, 곡 자체도 딱히 큰 포인트나 장점을 갖고 있지 않다.
유제상: 8월 14일 한·일 동시 발매된 싱글. 타이틀인 'FEEL'은 흥겨우면서도 중간에 통속적인 멜로디 파트가 삽입된 것이 딱 일본 시장 친화적이다. 개인적으로는 2PM 시절의 어떤 음반보다 즐겁게 들었다만 이준호 개인에 대한 인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진다. 솔로 활동의 한계일까?
조성민: 2000년대 초중반 남성 솔로 댄스가수들이 이런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이것을 '복고'로 받아들여야 할까, '촌스러움'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질문을 바꿔본다. 대중들은 이걸 '복고'로 받아들일까, '촌스러움'으로 받아들일까?
유제상: 거의 2개월 간격으로 새 싱글을 내는 멜로디데이의 왕성한 생산력에 경의를 표한다. 사실 언젠가 들어본 것 같고, 아무데나 틀어도 어색하지 않으면서도, 기존의 것과는 (약간) 다른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낸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효율 위주의 모더니즘적 생산체계에 속한 이들이 이후에도 활동을 지속하리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멤버가 전원 교체된다 해도 아무도 모를테니 말이다.
유제상: 1990년대 후반, SM 엔터테인먼트의 일부 아티스트들이 북유럽 작곡가들의 곡을 쓰기 시작했다. 유감스럽게도 당시의 느낌은 '음... 외국곡...' 정도에 그쳤는데, 이는 아마 특유의 멜로디를 살리는 프로듀싱에 문제의 핵심이 있지 않았나 싶다. 즉, 곡을 만듦에 있어서 어느 한 쪽으로 분위기가 쏠려버리면 그냥 한국곡/외국곡이 되는 거다. 이에 적절한 접점을 찾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샤이니다. 그리고 이제 그 샤이니의 멤버가 경계선에 위치한 글로컬한 음악을 선보인다. 태민의 음반은 커버 이미지부터 타이틀 곡 '괴도 (Danger)' 그리고 무대 위의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이상적인 중간지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멜로디의 경쾌함은 플레이(Plej) 등의 DJ 밴드를 연상시키지만, 붕짝거리는 요란한 비트는 바로 SM의 그것이다. 이 앨범은 한국의, 외국의, 심지어는 샤이니의 곡도 아닌 '태민의 곡'을 담았다.
조성민: 국민 연하남, 그 중에서도 막내. 이 부담스럽기 그지 없는 캐릭터를 이렇게 훌륭하게 탈피하고, 또 거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해냈다. 이보다 장한 '막내'가 아이돌 역사에 또 다시 등장할 수 있을까. 확실히 SM은 아티스트의 캐릭터를 구축하고 여러 작품을 관통하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정말 탁월한 노하우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 SM의 역할을 화두에 올리기에는 이야기의 주인공, '태민'과 그의 재능에 조금 미안해질 정도. 이 끼 많은 소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상당히 많은 대중이 그가 아직 원석이었던 시절부터 완벽한 하나의 보석이 된 지금까지 그의 성장사를 지켜봐왔을 텐데, 사실 여타 아이돌은 물론이고 샤이니 팀 내에서도 이런 성장 곡선을 보인 이가 전무(그리고 아마도, 후무)하다. 그 위에서 태민은 '성장하기 전의 자신'과 '자신의 성장 과정' 모두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현재의 완벽한 아티스트로서의 모습을 모두 펼쳐보일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이번 그의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성장에 대한 자신감', 즉 '나보다 잘 큰 사람 나와봐'겠다. 다른 이들에게는 무척 버거울 마이클잭슨 오마주를 무척 성실하면서도 당당한 태도로 소화해낸 무대는, 굳이 그의 열정적인 팬이 아니라도 그의 성장사를 잠깐이라도 본 기억이 있는 이들에게는 충분히 감격적일 것이다.
타이틀곡 뿐만 아니라 앨범 역시 굉장히 오랫동안 꾸준히 공을 들여 만든 티가 난다. 그래서일까. 너무 뜸을 들였다가 내놓은 것은 아닌지 싶은 구석들이 조금 신경 쓰인다. 이런 노래들이라면, 트렌드를 선도한다기 보다는 지나가고 있는 트렌드의 막차를 타고 있는 모양새가 될 것 같다는 느낌. 그러나 트랙 간의 유기성도 무척 좋은 편이고, 전체적인 콘셉트부터 곡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치밀한 완성도 덕분에, 언젠가 지금의 트렌드를 신경쓰지 않을 수 있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다시 들었을 때 이 음반이 무척 좋은 음반이라고 분명히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미래의 '태민'은 분명 굉장히 대단한 아티스트로 성장해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그렇게 성장해왔듯이.
미묘: 'So Good', '멜랑꼴리' 같은 곡은 이 음반이 단지 카라의 빛나던 순간들을 모아 모방한 것만은 아님을 시사한다. 자칫 어린애 같아 보일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도 장수 아이돌의 성숙한 관록을 보여주고, 동시에 카라 특유의 화사함을 뿜어내면서도 그것이 예스럽지 않는 것이다. 즉 이 음반은 과거의 카라를 참조하지만 현재의 카라를 강하게 의식하고 만들어진 것으로 읽히며, 그것이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특히 타이틀 '맘마미아'가 화려한 신스 브라스로 쏘아대는 와중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건 왜일까. 종으로 횡으로 통으로 조각으로 가득 채워넣은, 잘 익은 카레 속 양파 같던 예전의 보컬 편곡에 비해, 프로덕션이야말로 새로운 카라의 앙상블에 자신이 없었던 건 아닐까.
유제상: 사실 팬의 입장에서는 다소 착잡한 음반이다. '숙녀가 못 돼' 이후로 신곡을 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불과 1년도 안 되어 멤버를 새로 뽑아 판을 내다니. 카라를 계속 볼 수 있어서 기뻐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전과 다른 인원 구성에 낯설어해야 하는 걸까. 타이틀곡 '맘마미아'는 예의 씐나는 만화영화 주제가 풍으로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다만 곡의 제목이나 가사의 내용, 후렴구 멜로디가 통속적이어서 다소 '몸을 사린 구석'이 있다. 그럼에도 이후 카라 활동에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은, 곡의 구성과 멤버의 퍼포먼스가 기존 5인조와 비교해 차분할지언정 힘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재밌게도 첫 트랙 'LIVE'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 "예쁘게 Review 해줘요 Preview" (...) 분부대로 했습니다.
조성민: 카라는 어디로 가는가. 현존 상위권 인기 걸그룹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벌써 두 번의 멤버 교체를 겪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이 앨범은 이해가 될 듯도, 안 될 듯도 하다. 카라 초창기부터 꾸준히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니콜과 좋은 보컬로 성장하고 있었던 강지영의 부재, 그리고 카라의 인기를 견인했던 스윗튠과의 결별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싶기도. 새 멤버 영지가 대체로 좋은 평을 듣고 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카라만의 색깔을 유지하겠다'는 고집은 오히려 악재로 작용하기 쉬워보이고, 이 앨범은 그 점을 경고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될 것 같다.
미묘: '까탈레나' II가 아니라, '아빙아빙' II. 평가를 거부한다.
유제상: '까탈레나' 후속곡 콘셉트인데 두 곡의 시간차가 거의 반년이나 되다 보니 열기를 이어갈 수 없는 점은 마이너스. 언뜻 보면 비슷한 곡의 등장으로 인해 식상함을 주는 것 같지만, '나처럼 해봐요'는 '까탈레나'의 성공 요인 - 반복적이며 호소력 있는 멜로디, 주술적인 후렴구, 호기심을 자극하는 뮤직 비디오의 시각 이미지, 일정한 시간차를 둔 재미있는 춤 - 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 무성의한 곡이다. '숨은 그림 찾기'나 '월리를 찾아라' 콘셉트의 뮤직 비디오를 보고 있노라면 입가에 조소가 뜰 정도. 왜 이렇게 됐지?
유제상: 네이버로 검색하면 경력에 멤버 탈퇴 사항이 빼곡한 걸투스쿨의 새 싱글. 데뷔가 무려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그간의 곡절을 짐작케 한다. 곡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쌩 클럽 음악으로, 초창기 스퀘어푸셔(Squarepusher)를 연상시키는 전주나 노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훅을 통해 아이돌답지 않은 그룹의 특이성이 느껴진다. 대충 나와서 "예~예~ 오빠 최고 최고~"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은 점수를 줄 순 있겠다만, 콘셉트를 이렇게 하드하게 잡은 이유가 궁금하긴 하네.
조성민: 뮤직비디오가 마음에 든다. 그런데 아직은 정확히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건지 조금 아리송하다. 그래서 내심 기대되는 부분도 있다. 앞으로 뭔가 재미있는 것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
유제상: 솔로로 나왔다는 것은 분명 소속사가 해당 가수의 실력과 비전을 높게 샀다는 것일 터. 아마 제이블럭도 키 크고 잘 생긴, 노래 잘하고 춤도 잘 추는, 거기다 음악적 재능도 있는 가수 지망생 중 하나였을 것이고, 그래서 솔로로 데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혼자 전선(戰線)에 섰다는 것은 모든 영광과 상처 또한 홀로 안아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는 그의 시원한 기럭지를 보며 쾌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반면 누군가는 'BABY BABY'를 들으며 흐느끼는 비음에 곤란함을 표현할 수도 있다. 역시 이번 경우 또한 '인상적인 후속곡을 기대한다'는 평이한 말로 글을 마무리할 수 밖에 없겠다.
조성민: 위에 '제이스' 신보에 썼던 평을 반복하고 싶다. 그런데 노래 자체는 제이블럭이 더 못한다. 이럴 거면 춤을 아주 잘 춰야 했는데, 춤 역시 기본기가 부족한 상태에서 안무만 단기간에 열심히 익혀온 느낌이 난다. 슬프다. 다음에 다시 만나요, 제발.
미묘: 다소 의외인 것은 비트가 굉장히 크게 믹스돼 있다는 것이다. 묵직하게 찌그러질 듯한 비트를 살리고 싶었다면 그 마음은 이해하는데, 랩과 후렴의 보컬 레벨 비중을 보면 딱히 '가요필'을 줄여주는 효과를 위해 의도된 것 같진 않다. 가사의 재치도 그저 예능에서 흔히 나올 법한 대사 정도, 곡의 흐름도 첫 스케치로 끝까지 가져간 수준. 이 정도면 과거 한때 유행했던 개그송에 비춰, 저퀄리티로 승부하는 '병맛' 말고 그다지 두드러지는 장점이 없다. 그마저도 훨씬 독한 '병맛'을 우리는 얼마든지 알고 있다. 그저 예능이려니 생각하고 보면, <무한도전>이 종교화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조성민: 이럴 수가. 좋다. 그렇다. 아이돌은 원래 이런 맛에 좋아하는 것이었다. 아직 인지도가 부족한 신인 그룹 멤버들의 조합으로 이런 괄목할만한 시너지를 내다니. 형돈이와 대준이가 정말 히트제조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딱히 그들의 다음 작품에 큰 기대가 생기지는 않는다. 짧으면 매년 명절, 길면 격년 정도의 주기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이런 이벤트를 만들면 재밌을 것 같다.
미묘: 라틴 기타와 강한 리듬의 조합 자체에는 죄가 없다. 그러나 그 조합에 프로덕션 스스로도 자신이 없다는 것은 어쿠스틱 버전으로 '음악성'을 살리려 한 점과, 그 두 가지 버전을 공식 뮤직비디오에 붙여 놓았다는 점이 잘 보여준다. 그러나 어쩌랴, 댄스 버전은 힘이 없고, 어쿠스틱 버전은 (의도했을) 고혹적인 느낌이 살지 못한다.
유제상: 힙합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빵빵한 첫 정규앨범. 같은 중2병 콘셉트(WARNING!: 절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상업 콘텐츠에서 중2병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라도 빅스가 웹툰 풍이라면 방탄소년단은 게임 풍인데, 첫 트랙부터 뿜어져 나오는 흥겨운 비트가 <아스팔트>나 <갱스터> 시리즈 같은 스마트폰 게임을 연상시킨다. 일반적으로 '게임 같다'는 표현이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긴 어렵겠지만, 방탄소년단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들의 노래는 게임처럼 즐겁고, 게임처럼 다음 스테이지를 기대하게 한다. 곡의 양적·질적 풍성함이 이들을 'Level Up'시켜줄 좋은 앨범이다.
조성민: 이미 '탈아이돌'급인 랩몬스터를 제외하고서도, 제이홉과 슈가의 랩 실력이 그 사이에 또 성장한 것 같아서 흥미롭다. 하지만 동급 여타 그룹들에 비해 월등한 실력의 래퍼를 둔 반면, 보컬의 힘이 지나치게 약하다. 그러다보니 거의 모든 곡들을 래퍼들이 리드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7인조 빅뱅'을 보는 느낌도 있다. 다시 말하면, 멤버별 역할상의 밸런스 조절이 필요해보인다. 어떤 곡에서는 랩을 듣고 싶어서 보컬 파트를 스킵하게 될 정도였는데, 이 정도면 아이돌로서 조금 위험한 수준 아닌가 싶다. 보컬 멤버들을 위한 솔로/유닛 곡을 싣는 센스라도 발휘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번 컴백무대는 못 본 척해줄 테니, 타이틀곡을 다시 선정했으면 좋겠다. 전체 앨범 안에서 타이틀곡의 존재감이나 맥락성이 너무나도 약하다. 얼마 전 에프엑스 신보에서, 타이틀곡 'Red Light'이 너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 나머지 수록곡과 지나친 이질감을 보였다고 평했는데, 이 앨범의 타이틀곡 'Danger'는 전체 앨범으로부터 이질감이 느껴질 뿐만 아니라 존재감조차 약하다. '힙합성애자'나 'Rain' 같은 수작들이나 '핸드폰 좀 꺼줄래', '이불킥'과 같은 귀여운 곡들을 실은 음반의 타이틀곡이 'Danger'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차라리 '호르몬 전쟁'이 타이틀곡이 되는 것이 전작 타이틀곡이었던 '상남자'와의 연계성도 있었을 것 같다. 이렇게 좋은 곡들로만 가득 채운 음반이 타이틀곡 선정 미스로 감점 당하는 것은 너무나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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