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1st Listen

1st Listen : 2014.07.01~07.10

7월 1일 ~ 10일에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필진들의 단평이다. 피에스타, 타이니지, 스칼렛, 윙스, 펜타지, 루커스, 프리츠, 5tion, f(x), 100%, god, 씨클라운, 뉴이스트, 전설, 로디아, B.I.G를 들어보았다.

7월 1일 ~ 10일에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필진들의 단평이다. 피에스타, 타이니지, 스칼렛, 윙스, 펜타지, 루커스, 프리츠, 5tion, f(x), 100%, god, 씨클라운, 뉴이스트, 전설, 로디아, B.I.G를 들어보았다.

하나 더
콜라보따리
2014년 7월 2일

맛있는 파히타: 많은 기대를 받아온 팀으로서 피에스타의 지금까지 커리어는 사뭇 실망스러운 구석이 있었기 때문인지, 이번엔 확실한 섹스어필로 돌아섰다. 매우 미려하게 뽑아낸 곡은 어디 하나 걸릴 곳이 없고, 중의적으로 쓴 가사는 DIGIPEDI의 뮤직비디오와 더불어 시청자에게 프로덕션에서 의도했던 상상력을 불어넣어 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연인들끼리 스마트폰 게임을 즐기는데 한 명을 추가하고 싶다는 내용이라는 해명은 구차한 변명이지만 이 경우 변명은 구차한 편이 오히려 낫지 않은가! 다만 아이돌로서의 가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에 대한 염려는 있다.

미묘: 적당히 값싼 느낌의 흡인력 강한 곡이 결코 밉지 않다. "하난난난나, 하나 더"도 간만에 듣는 찰진 후크. 충격적인 가사에 처음엔 뜨악했지만, 정신을 추스리고 보면 한국 여성 아이돌팝의 성적표현의 마일스톤이 또 하나 놓였다는 감개무량함도 있다. '진정성' 같은 것을 걷어내고 보자면 (쓰리섬의 진정성이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불만족한 여성이 '하나 더'를 원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 또한 훌륭한 일이잖은가.

유제상: 뮤직비디오를 통해 이번 싱글의 콘셉트를 짐작하자면 "나도... 나도 벗을 거야!" 곡은 좋다만 이미 섹시 후발주자의 지분은 같은 해 데뷔한 AOA가 다 차지해버렸다.

조성민: '방송 불가 처분'은 오히려 이 팀과 노래에 아주 좋은 명분을 만들어 준 것 같다. 노래가 별로라서가 아니라, 방송에 못 나오니까 인기를 못 끌었다는, 그런 명분.


Ice Baby
지엔지 프로덕션
2014년 7월 3일

맛있는 파히타: 래퍼 민트가 하늘하늘한 파자마를 입고 쿠션을 껴안고 안무를 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조차 있었을까? 많이 당황스러운데, 의외로 노래나 뮤직비디오가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다.

유제상: 가수 하랬더니 연기자로 떠버린 도희 덕에 작으나마 지명도를 얻은 타이니지의 새 싱글. 멤버가 한 명 줄었지만 이전과 달리 차분하고 짜임새 있는 곡을 들고 나와 음악적으로 한층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찌 되었건 9개월 만의 신보를 내며 활동을 계속 이어가게 되었으니 언젠가는 정규앨범도 나오겠지.


엉덩이
퍼니컬렉션 엔터테인먼트
2014년 7월 3일

미묘: 방시혁과 가재발이 프로듀스했던 '엉덩이'는 여러 가지로 나름 역사적인 곡인데, 개중엔 성적 뉘앙스를 파렴치하게(늘 말하지만 좋은 뜻이다) 밀고 나갔던 의미도 있다. 지금에 와서 들으니 노래도 영상도 그리 강렬하지 않게 느껴진다는 점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후반의 '떼창'이나, 아무 숨결도 느껴지지 않는 힘 뺀 보컬은, 원곡이 가졌던 공격적인 천함(또 말하지만 좋은 뜻이다)을 놓치지 않고 해석한 듯하여 (취향과는 무관하게) 좋아 보인다. 다만, 바나나걸 트리뷰트 앨범이 아니니만큼 의미 찾기 이상의 흥행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솔직히 모르겠다.

유제상: 올봄에 'Do Better'로 소소한 반향을 불러 일으킨 스칼렛의 엉뚱한 싱글. "곡명이 '엉덩이'면 설마 10여 년 전 그 '엉덩이'인가?"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이 곡은 바나나걸의 '엉덩이'(2003)를 리메이크한 곡이다. 음원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원곡의 발랄함은 많이 줄고, 잘게 분할된 드럼비트가 두드러진 심심한 곡이 되었다. 물론 원곡의 아우라 덕에 어디서든 이 노래만 틀면 'X과 XX 사이' 같은 클럽형 주점의 분위기가 난다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랄까? 아, 덤으로 소속사에서 적극 홍보하는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평자에게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꽃이 폈어요
달과별 뮤직, 소니뮤직
2014년 7월 3일

미묘: 전작 'Hair Short'은 참 괜찮은데 어딘가가 결정적으로 부족하다는 인상이었다. 그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소 의외였는데, 전작에서 개인적 취향을 강하게 벗어나던 부분들이 더 강조돼서 나온 느낌이다. 곡의 전개는 다소 심심하다 할 정도로 쿨한데 비해, 약간 우는 듯한 목소리가 "오", "요" 발음으로 더욱 강조돼서 지나치게 처량해지고 있진 않은지. 물론 그게 필요하다고 느낀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조성민: 신인 티가 많이 나던 전작 겸 데뷔작 'Hair Short'에 비하면, 짧은 기간에 꽤 주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동양풍 멜로디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도 그렇고, 피쳐링으로 참여한 배치기와의 호흡도 좋은 것 같다. 큰 이변 없이 지금의 성장세를 이어간다면 조만간 다비치와 견주게 되지 않을까.


Sold Out!
브릿지 엔터
2014년 7월 3일

미묘: 각 섹션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케이팝의 양식처럼 인식되고 있긴 하지만, 타이틀 'Hey! 아가씨'는 그 정도가 심하다. 감동적인 CCM 발라드처럼 시작해서 훵키한 베이스가 달리는 버스(verse)를 지나 부드러운 감성을 뽐내다가 갑자기 화사한 그루브의 후렴으로 빠지는 것이, 약간은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 그것만으론 결코 단점이 아니다. 후렴이 버스에 비해 폭발력이나 매력이 압도적으로 떨어져서야 맥이 빠질 뿐이지 않은가. "여러 가지 매력을 한 곡 안에 몰아서 보여준다"는 케이팝에 관한 수사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렇게 되는 걸까. 음악성™ 신화의 저주 속에서도 케이팝의 상당수가 댄스로 일관하고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유제상: "데뷔 싱글이네, 신인 남자 아이돌이 설 땅이 아직도 남았을라나" 하고 곡을 틀었더니 뜬금없이 나오는 울랄라 세션 풍의 훵키 사운드가 사람을 놀래킨다. 타이틀곡인 'Hey! 아가씨'는 신인 그룹의 첫 곡으로선 대담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곡 말미에 타성에 젖은 랩이 나오지만 이 부분이 없으면 누군가는 춤만 춰야겠지...하고 패스. 다음 곡 '홧김에'는 이별의 책임을 분노조절장애와 알코올에 돌리는 전형적인 아이돌표 발라드. 장르도 분위기도 전혀 다르지만 특이하게 두 곡 모두 CCM 냄새가 난다. 왜지?

조성민: 이런 노래는 울랄라세션 쯤은 돼야 겨우 소화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신인에게 너무 벅찬 노래를 줬다는 느낌이 영 가시질 않는다. 실용음악 학원에서 급히 데려온 느낌도 없지 않고. 이렇게 되면 비주얼 측면으로 승부수를 띄워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아직 뾰족한 대안은 없어 보여 안타깝다.


So Into U
팬 엔터테인먼트
2014년 7월 4일

오요: 5인조 보이그룹 루커스의 '기가막혀'는 데뷔 싱글로 손색이 없다. 적당히 귀를 잡아끄는 전자음 리프가 곡의 처음부터 등장하여 끝까지 일관되게 지속된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미 이런 류의 비장한-일렉트로닉-댄스-클럽튠은 대부분 케이팝 수요층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장르라는 것이다. '기가막혀'라는 곡의 제목, 짙은 스모키 화장을 얹고 검은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린 자켓 사진 등에서 읽히는 기획이란 건 "이 정도면 무난한 카리스마 보이그룹 정도의 타이틀을 가져갈 수 있겠다" 정도일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 정도 하는 그룹은 이미 차고 넘치게 많다.

유제상: 데뷔곡 '기가막혀'가 수록된 싱글. 뮤직비디오를 트니 나뭇잎 마을의 탈주 닌자 다섯이 평자를 기가 막히게 반긴다. 만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코스프레 룩, 강렬한 비트, '따라 부르기'보다는 '듣기'에 특화된 멜로디, 유독 억울함이 강조된 가사까지. 엑소, 빅스를 위시로 한 최근 남자 아이돌 트렌드의 최전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그룹.

조성민: 듣고 보는 내내 '이런 노래를 이렇게 지루하게 만들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보컬도 랩도 안무도, 그 어디에도 포인트가 없어서 도대체 뭘 듣고 뭘 봐야 하는지 잊어버린 기분이다.


人類最大難題 (인류최대난제)
팬더그램
2014년 7월 4일

맛있는 파히타: 4명의 소녀들과 사이보그(!) 한 명으로 구성된 혼성그룹(걸그룹이 아니라는 이야기) 프리츠의 데뷔곡 '인류최대난제~오에오에~'는 여러모로 기존 케이팝 아이돌보다는 제이팝 아이돌을 차용한 느낌이 많이 드는 팀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록/메탈에 기반을 둔 점은 케이팝 쪽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일본 아이돌 그룹의 요소들이 케이팝으로 많이 넘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에서 모든 요소들이 다 받아들여지진 않았고, 양쪽이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이들의 대중성은 현저히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매니아층을 무시할 수는 없다. 크레용팝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다음 세대의 아이돌이 이런 모습이면 어쩌지?

오요: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일본의 모 걸그룹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지사.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일본의 걸그룹 콘셉트를 가져오려는 시도는 많았고 (키로츠를 기억하는가) 크레용팝을 제외하면 모두 실패로 끝났다. 아무래도 SM 식의 정제된 아이돌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이러한 그룹은 그저 학예회 수준으로 느껴질 테니. 그렇다고 기존 일본 걸그룹의 한국 팬들에게 프리츠가 매력적인 선택지일까도 의문이다. 프리츠가 과연 '모에'로운가? 잘 모르겠다.

유제상: 독립영화 제목 내지는 시리즈 같은 플레이스테이션용 염가 게임의 제목을 연상시키는 프리츠의 데뷔 싱글. 유로댄스 멜로디에 따라가기도 힘들 정도로 숨 가쁜 록 비트를 깔고, 그 위에 마구잡이로 부르는 보컬을 얹은 것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느낌을 준다만 원본을 특정하긴 어렵다. 아울러 1) 싱글 커버에 보이는 이들의 광택 있는 복장과 배지, 2) 싱글명에서 인류를 언급, 3) 뮤비에서 지구 등장, 4) 그룹의 군무는 아무래도 특촬물의 그것, 5) 두 번째 곡 '걸스출동 (Original Ver.)'의 가사 "쉴 새 없이 달려가는 오늘 하루도 / 나쁜 일이 생겼어도 걱정 말아요" 등을 미루어 짐작했을 때 기획자는 분명 특촬물을 염두에 두고 프리츠를 기획한 것 같다. 도대체 왜? 라는 의문이 남기는 하지만. 덤) 이 싱글에서 이야기하는 '인류최대난제'란 도무지 정답을 알 수 없는 '여자의 질문'이란다. 아무렴, 그렇지.

조성민: 안타깝다. 이들이 키로츠나 i-13이나 크레용팝보다 먼저 나왔다면 지구가 어떻게 변했을지 몰랐을 일인데...


More Than Words
케이스토리 엔터테인먼트
2014년 7월 4일

오요: 설마 그 오션이 맞나 싶었다. 2001년에 5인조로 데뷔하여 꽤 인기를 누리다 (멤버 중 하나를 꽤 좋아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느 아이돌이 그렇듯 흐지부지 사라진 그룹으로 알고 있었는데 오션이라니! 최근의 기현상이라 할 수 있는 2000년대 초 '오빠'들의 귀환 붐을 타고 한국에서 다시 활동하기로 한 듯하다. (찾아보니 그간 일본에서 나름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고 한다.) 데뷔곡을 재편곡해서 들고 나왔으니 그 의도야 뻔하지 않겠는가. 아쉬운 점이라면 멤버들의 얼굴도, 이름도 전부 바뀌어서 대체 누가 누군지, 동일 인물은 맞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것이다. 30분가량 검색을 해봤는데도 정보 부족. 여전히 모르겠다.

조성민: god 등 여러 옛날 가수들의 귀환에 맞추어 '추억팔이'를 하러 나왔다기엔, 'More Than Words'는 너무 좋은 노래였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나왔을 때였던 2000년대 초 즈음을 대표할 수 있는 노래라고도 생각하기 때문에, 일단은 '반가움'만 얘기하고 싶다. 아이돌이 부르는 미디움템포 곡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불러질 필요가 있다.


Red Light
SM 엔터테인먼트
2014년 7월 7일

미묘: 복잡한 구조의 케이팝을 만드는 기존의 방식은 댄스 음악 문법의 변주에 가깝다. 즉 일정하게 흐르는 약속된 비트가 어떤 효과를 위해 늘여지거나 당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앨범의 화법은 보다 제멋대로에 가깝다. 숨 쉴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얼른 자르고 넘어가기도 하지만, 더 빠르게 넘어갈 수 있음이 명백한 지점에서도 충분히 숨을 돌리거나('MILK', '뱉어내', 그리고 수시로), 때론 아슬아슬할 때까지 반복해버리기도 한다('무지개'). 가급적 빨리 귀를 사로잡고는 아무 무리 없이 흘러가야 하는 팝의 대원칙에 수시로 칼을 꽂는 작법. '곡이 노래하는 바'라는 내부의 논리가 필요로 한다면 뭐든지 한다는 일종의 표현주의라 해도 좋을까. 팝의 범주를 넘나드는 롤러코스터가 조금 부담스러워질 만하면 등장하는 팝적인 곡들도, 이미 수차례 검증된 f(x) 프로덕션의 퀄리티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두 부류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케이팝과 f(x)가 이미 음악적 자극의 수위를 한참 올려뒀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전작들에서 절제되어 온 보컬의 표현력 또한 수면 밑에서 상당한 성장을 이뤘음을 자랑한다.

오요: 타이틀곡 'Red Light'의 경우 샤이니의 '링딩동'을 연상시킨다. '이제 에프엑스도 정통 SMP를 이식받고 '장자라인'으로 편입되는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방향성의 측면에서 대세라 할 수 있는 '에이핑크류'의 대척점에 서 있다는 점에서 어떤 자신감이 엿보인다. 콘셉트상 브라운아이드걸스의 'Kill Bill'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라고 따질 수 있겠지만 <킬 빌>과 <레옹>은 엄연히 다른 종류의 영화다! (심지어 'Kill Bill'의 콘셉트는 열화된 카우걸 아니었나.) 보통 미니앨범을 먼저 잔뜩 발매하고 거기서 싱글을 긁어모은 다음 몇 곡을 더 끼워 넣어 정규 음반을 발매하는 데 비해 바로 정규 3집이다. (무척 반갑다는 얘기다.) 다소 식상한 트랙('Summer Lover', '종이 심장(Paper Heart)')을 제외하면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어느 정도 '힙스터'와 '대중' 사이의 어딘가로 수렴해가는 것 같은 음악들로 비추어 봤을 때 에프엑스의 다음이 대강 그려지지만 속단은 금물이다.

유제상: 1. SM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은 일찍이 H.O.T.의 "Resurrection"(1998)에서 그랬듯이, 커리어 중반부에 콜라주 같은 곡을 타이틀로 내며 그 기세가 한풀 꺾이는 경향이 있다. 엘리아데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러한 SM 아이돌만의 '입문식'은, 소녀시대의 'I GOT A BOY'를 거쳐 이제 f(x)의 차례가 되었다. 그리고 먼저 '성인'이 된 선배들의 경우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이들이 맞이할 결과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리라.

2. 평자는 f(x)의 음반을 반년 정도 묵혀놨다가 듣는 버릇이 있다. 왜냐면 본의 아니게 "Electric Shock"를 그리 취급한 이후 큰 만족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들의 곡은 갓 발매된 상태에서 들으면 어떤 강박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경우야 다르겠다만 흡사 아이유처럼 '(자의/타의에 의해) 뮤지션이어야만 하는 어떤 욕망'이 이들의 곡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럼 반년 뒤에 다시, f(x) 안녕.

조성민: 타이틀곡 'Red Light'에서 보여줬던 (나름의) 파격에 비해, 앨범은 철저히 '에프엑스답다'고 느낄 만한 트랙들로 채워져 있다. 에프엑스다움을 잃지 않은 것에는 차라리 '감사함'까지 느끼고 있지만, 이렇게 되다 보니 타이틀곡 하나만 전체 앨범에 융화되지 못하고 마치 싱글로 나왔어야 할 곡이 정규 앨범에 끼어들어 갔다는 느낌까지 든다. 그리고 이번에 앨범을 듣다가 느낀 건데, 에프엑스 노래들은 동어반복을 사용하지 않고는 가사를 쓸 수 없는 걸까? "Light, Light"('Red Light')부터, "Ma ma ma milk"('MILK'), "구-구-구름 무지개"('무지개'), "You better ru-ru-ru-ru-ru-ru-ru-run"('Dracula'), "I got a Pa-Pa-Pa-Pa-Paper Heart"('종이 심장')까지...


Sunkiss
티오피 미디어
2014년 7월 7일

오요: 리더 민우의 군입대와 상훈의 탈퇴로 인해 5인조로 개편한 100%의 여름용 음반. 타이틀 곡 '니가 예쁘다(U Beauty)'는 보도자료에 의하면 "시원한 브라스 사운드와 기타 세션이 인상적"인 곡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는 흔한 편곡법 중 하나일 뿐이다. 후렴구의 멜로디가 꽤 기억에 남을 만하지만 여름의 끈적끈적함을 날리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조성민: 사심 가득 담아, 개인적으로 100%는 꼭 '떴으면' 하는 팀이다. 멤버 각각의 개성도 상당한 편이고, 보컬이나 댄스 능력도 데뷔 동기인 여타 아이돌들과 비교해서 결코 나쁘지가 않고, 어떤 면에서는 더 앞서는 면도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반드시 빛을 볼 거라고 믿고 싶다. 다만 그게 지금이 아니라서, 그리고 이 앨범으로 봐서는 더 늦춰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몹시 슬펐다. 다른 그룹에 비해 뭐 하나 빠지는 것 없는 멤버들이 왜 이 정도에 머물러 있는지는 기획하는 사람들이 생각해볼 문제일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티오피 미디어는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처럼도 보인다. 밝은 여름 노래에 이렇게 어두운 이야기를 하게 되어 무척 미안하다.


Chapter 8
싸이더스 HQ
2014년 7월 8일

미묘: '하늘색 약속'은 그야말로 반가운 곡이다. 과거와의 연결고리들을 계속해서 던져주는 와중에 쿨해진 스타일과 유쾌한 현재의 심경으로 멤버들의 성장을 느끼게 한다. '옛날 기분'을 느끼면서 듣고 있다 보면 시원할 정도로 큰 곡조의 변화가 또한 과거와 오늘의 차이를 되새기게 한다. 그렇게 "바로 '그' god가 돌아왔다!"는 가슴 벅찬 회포를 한껏 푼 뒤, 중반부부터는 좋은 '가요'를 선사하는 god로서 날개를 편다. 꾸준히 여러 가지 과거를 호출하긴 하지만, god 특유의 유쾌한 캐릭터 덕인지, 추억팔이라면 학을 떼는 나에게도 크게 밉지 않은 수위를 유지한다. 그것은 멤버들의 성장에 맞는 옷을 현재적으로 잘 맞춰 입은 덕분. 그러나 전반부의 회포 파트가 조금 지나치진 않은지. 첫 두 트랙의 어색한 오케스트레이션은 '그 시절'에도 이것보단 나았고, 대충 버무린 과거들이 질척거리기만 해, 데니의 기세 좋은 랩이 나올 때에야 비로소 속이 시원하다. 금세 등장하는 5번의 인털류드도 따로 들으면 귀여운 데가 있지만 이 시점에서는 솔직히 지친다. 이 세 트랙을 빼고 들었을 때의 이 앨범이 수려하기에 더욱 아쉬워지는 부분.

조성민: 오빠들이 행복하면 그걸로 됐어요. 이런 앨범은 내고 싶어도 못 내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테니까요.


나랑 만나
예당 엔터테인먼트
2014년 7월 23일

미묘: 누가 들어보라고 해서 들어보게 되었는데, 의외로 만족스러웠다. '나랑 만나'의 후렴에 짧고 가볍게 깔리는 백업보컬이 메인보컬과 주고받는 것이 재밌다 했더니 신사동 호랭이와 Caesar & Loui의 작품. 808 스네어가 "토토토토.."하고 굴러가는 느낌이나, 날카로운 신스와 기타의 격정적인 조화 속에 가끔씩 금속성의 퍼커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좋은 질감의 배합을 선보인다. 보컬 또한 열정적인 창법과 주술적인 분위기, 청량함을 오가는 것이 매력적으로 조합돼 있어 풍성한 흐름을 만들어낸다. 2번 트랙에서 4번 트랙으로 가면서 점진적으로 달콤한 R&B로 향해 간 뒤 그 흐름 그대로 댄스튠으로 이어지는 앨범의 짜임새 또한 인상적이다.

조성민: 2012년 아이돌붐 때 데뷔했던 팀들 중에는 딱히 주목받지 못해오던 팀이었는데, 지난 싱글 '암행어사' 이후로 나름 감을 찾아온 것 같다. 마치 인피니트의 'BTD'처럼, 제2의 데뷔를 보고 있는 느낌도 있다. 수록곡들의 퀄리티도 생각보다 상당히 좋은데, 나만 이렇게 느끼는 건지 궁금하니까 많이들 들어봤으면 좋겠다.


Re:BIRTH
플레디스
2014년 7월 9일

미묘: 참 희한한 일이다. 남들 하는 것 다 하고, 그것도 무척 그럴싸하게 하는데 대체 왜 이리 귀에 잡히질 않는 것일까. 이기, 서용배, 멜로디자인 등의 프로듀서진도 아낌없이 완성도 있는 곡들을 제공했고, 백화점 풍이라고는 하지만 중반부까지는 충분히 납득하고도 남을 수준이다. 보컬이 조금 밋밋하다는 느낌은 있지만, 미드템포 곡들도 분위기를 깨지 않고, 달리는 곡들은 강렬한 사운드를 쏘아대며, 그러면서도 댄서블한 비트에 꼭 적당한 수위의 감성을 실어주기도 한다. 이 정도 매끈한 앨범을 흔들흔들 듣고 있다 보면 마음이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 법도 한데. 왜일까. 이 음반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이단옆차기의 곡이 마지막 트랙으로 수록됐다는 점...?

조성민: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정말 오래 고민했다. 그리고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실제로 '문제가 없다는 문제'에 봉착했던 몇몇 아이돌들은 결국 스스로 문제를 만들곤 했는데, 이런 케이스를 보면 그런 '스스로 문제를 만드는' 것이 아주 틀린 선택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들고... 여튼, 듣고 보는 내내 생각이 굉장히 많아졌다.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작품이 '수작'으로 꼽힐 리는 당연히 없다.


The Legend
JK스페이스 엔터테인먼트
2014년 7월 9일

오요: 얼핏 평범한 케이팝 곡으로 들릴 수 있는 여지가 많으나 뜬금없이 붕하고 터지는 베이스가 범상치 않다. 보컬을 최대한 배제하고 들어보면 꽤 잡다하게 재미있는 소스가 많이 있는데 식상한 보컬 멜로디가 죄다 뒤죽박죽을 만들어버리는 형국이다. 차라리 인스트루멘탈 트랙이 훨씬 들을 만하다.

유제상: 그룹 이름은 '전설', 데뷔곡은 '미련이 남아서'의 줄임말인 '미.남.'. 좋다, 마초한 평자에게 이 정도의 패기는 허용범위 안이다. 뮤직비디오는 아마 파주 출판단지일 것으로 생각되는 모던한 건물을 배경으로 삼고 저예산의 정수를 보여주는데, 그나마 훤칠한 멤버들의 외모가 보는 이의 위안이 된다. 힙합 비트의 사랑 노래를 타이틀로 삼은 것이나, 눈에 확 띄는 잘 생긴 외모가 한국보다 일본을 주무대로 삼는 몇몇 아이돌 그룹을 연상시키는데, 이들의 추후 활동이 궁금하다.

조성민: 충분히 좋은 노래와 무대인데, 괜히 타이틀곡의 제목에 장난쳐놓는 바람에 좋지 않은 선입견이 생겼다. 무대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을 짧게 남기자면, 데뷔 초의 빅스가 떠오른다.


I Got A Feeling
ATC 미디어
2014년 7월 9일

미묘: 사실 국내 일렉트로닉 씬에 이런 식의 릴리즈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로디아는 본인들이 곡을 만드는 일렉트로닉 뮤지션이다.) 그러나 일렉트로닉이 케이팝을 의식하고 움직이며 케이팝을 역수용하는, 그리고 아마도 케이팝에 관심을 둔 해외 시장을 노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오리지널 버전이 일렉트로팝의 범주에, 타이틀인 Tastix Remix가 본격적인 클럽튠에 해당하는데, 그중에서 클럽튠 쪽을 타이틀로 잡았다는 점도 재밌다. 케이팝과 '일렉트로닉'이 어떻게 다른지 도통 모르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이 음반을 들어보라고 하고 싶다.

조성민: 영어 발음이 좋다는 것은 확실히 알겠다. 사실 이렇게 본격적인 일렉트로니카가 '아이돌'의 범주에 속할 수 있는지 아직 약간 확신이 없다.


안녕하세요
GH 엔터테인먼트
2014년 7월 9일

유제상: 타이틀 '안녕하세요'의 충격적인 가사로 인해 이미 인터넷에서 '국뽕돌'의 영예(?)를 얻은 비아이지의 데뷔 싱글. 힙합 비트에 한국의 자랑거리를 실어 나르는 곡은 이전에도 많았지만, 아이돌의 데뷔곡으로 매우 드문 경우임은 분명하다. 이 곡에서 한국의 자랑거리는 강남 스타일, 한글, 인터넷 속도, TV, 자동차, 인천공항, 케이팝, 아리랑, 무궁화, 태권도, 김치, 떡갈비, 불고기, 삼겹살, 김밥, 떡볶이, 비빔밥, 삼계탕, 그리고 비아이지의 멤버들(···)이란다. 스테이지에서 보이는 기대 이상의 활달한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부디 이 분위기로 쭉 이어가시길.

조성민: 개인적으로 했던 말 반복하는 것에 굉장히 큰 스트레스를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얘기는 꼭 해야겠다. 아무리 쓸 게 없어도 가사를 이렇게 쓰진 않았으면 좋겠다.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