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t Listen : 2018년 10월 중순

2018.10.1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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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위키미키, VAV, NCT 127, 앤씨아, 토니 안, 첸, 에이프릴, 정은지, 김동한, 소희, 샤플라, 이홍기, 이세흔(걸카인드), 웬디 & John Legend를 다룬다. 이번 회차부터 스큅이 필진에 합류했다.
위키미키
Kiss, Kicks
판타지오 뮤직
2018년 10월 11일

   

위키미키가 지금까지의 여타 걸그룹 사이에서 보여온 가장 큰 변별점이란, ‘당차고 당돌한 소녀’라는 새로운 소녀상을 제시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가갈까 말까’ 고민하기도 전에 상대방을 몰아세워 벽치기를 시전하는 류의 당돌함 말이다. 안타깝게도 타이틀곡 ‘Crush’는 (분명 곡 제목은 이들이 추구하는 ‘틴크러시’ 장르를 대놓고 내세우고 있음에도) 이들이 꾸준히 제시해온 소녀상을 계승하지 못한다. 엉뚱하게도 수록곡 ‘True Valentine’이 그 역할을 가장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타이틀곡 선정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싶은 의문까지 들 지경이다. 사운드나 스타일링에 큰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가사를 봤을 때 그 콘텍스트가 완전히 반대로 읽힌다면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위키미키가 지금까지 무엇을 가장 잘 해왔는지, 어떤 모습일 때 가장 빛났는지를 재고해 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당돌하게 몰아치는 위키미키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

‘Crush’는 기획 단계에서 궤도 수정을 할 필요를 느껴서 내놓은 결과물 같으나 어딘가 어중간한 선에서 멈춰버린 듯한 아쉬움이 든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통속적인 후렴 멜로디, 이전과는 달리 사랑에 빠졌음을 먼저 고백하는 가사까지 갑작스런 변화들이 조금 당황스러운 데다, 결과적으로 썩 유니크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여전히 특유의 통통 튀는 매력이 잘 느껴지는 ‘True Valentine’과 보컬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Dear.’가 대신 작은 위안이 된다.

파트가 전환됨에 따라 물음표가 차곡차곡 더해진다. 위키미키가 표방하던 ‘틴크러시’의 핵심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패기발랄함이라고 생각하는데, 핵심은 지워진 채 ‘크러시’라는 말만 공허하게 남았다. 수록곡 ‘True Valentine’이 전작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데에 희망을 걸 따름.

‘러블리 갱스터’ 콘셉트는 그들의 정체성인 틴크러시를 좀 더 대중적으로 표현하고자 던진 변화구였을 것이다. 어쩌면 이 정도가 적정선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적당함이 멋쩍게 타협한 어정쩡한 상태라면 좀 곤란하다. 삐죽거리는 이펙트와 유정의 랩이 몰아쳤던 버스에서 품었던 기대는 밝은 톤의 후렴구에서 조금 무너졌다. 가사의 애티튜드는 전작보다는 덜하지만 솔직함으로 그 맥락을 잇는다고 본다. 대중성을 뚫고 가거나 혹은 더 유들유들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전자를 더 바란다.

아이돌에게 비주얼 콘셉트가 중요한 것은 분명하고, 때로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아이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음악이나 댄스 퍼포먼스와 전혀 동떨어진 스타일은 작품의 완결성을 크게 해칠 수 있다. 블랙과 핫핑크의 강렬한 대조로 우먼 파워를 표현한 듯한 비주얼과 달리, ‘Crush’는 달착지근한 소녀 감성으로 가득한 곡조에 간결한 안무로 구성되어 있다. 후렴이 나오기 전 위협적으로 다가오던 기타 사운드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덜 뿌려진 양념처럼 잠깐 ‘센’ 향을 내다가 만다. 위키미키가 입은 펑크룩의 가죽 의상과 강렬한 메이크업도 기타 사운드와 마찬가지로 뭔가 굉장히 ‘센 것’을 하려다가 만 인상을 주고 있다. 커플링 곡 ‘True Valentine’의 당돌함이 아쉬워진다.



VAV
Senorita
A Team 엔터테인먼트
2018년 10월 11일

   

제목부터 대놓고 ‘Senorita’인데, 아니나 다를까 곡 역시 요즘 유행하는 전형적인 라틴팝의 모습을 하고 있다(이쯤 되니 최근까지 유행하던 트로피컬의 자리에 라틴팝이 자리 잡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라틴 리듬에 스패니쉬 기타 리프를 얹고, 가사 사이사이 “Senorita”, “Mamacita”, “Viva la vida loca” 등 짤막한 스페인어를 넣어 누가 들어도 라틴팝임을 모를 수 없도록 배려(?)했다. 곡도 곡이지만 뮤직비디오나 퍼포먼스를 봤을 때 특별히 모자라는 부분은 없어 보이는데, 그렇다면 역시 문제는 (어느덧 3년 차인데도 불구하고) 이들만의 변별점을 아직까지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 아닐까. 꾸준히 ‘준수’한 디스코그래피를 선보이는 것도 좋지만, 이만큼 잘하는 그룹은 이미 넘칠 정도로 많다.



NCT 127
NCT #127 Regular-Irregular
SM 엔터테인먼트
2018년 10월 12일

   
이번 회차의 추천작

NCT가 너무 ‘어렵다’는 불만에 대한 대답처럼 들리는 앨범. 대부분의 수록곡이 생소한 청감을 주지 않는다. 사실 곡들의 전개는 뮤지컬처럼 변폭이 크고 굽이가 많으며 새로운 구석도 많은데도, 멜로디가 달콤하고 자극의 호흡이 절묘해서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한다. 특히, 좋은 기분으로 흥겹게 들을 수 있는 앨범의 전반부에서 친화력을 발휘한 뒤, 심화 과정으로 넘어가는 형태로 구성됐다. 그래서 ‘Interlude : Regular to Irregular’가 흥미로운데, 조금 지나치고 낯 간지러운 드라마타이징인가 싶다가는 이내 반전을 일으킨다. 이어지는 ‘내 Van’에서 본격화하는 스토리는 동양의 메트로폴리스에서 아이돌로 활동하며 꿈과 악몽을 오가는 NCT 127이라는 실존인물을 직접 서사화한다. (BTS의 그것이 자연인과 아이돌, 그리고 가상의 인물이 겹쳐지는 구성인 것과 대조된다.) 아주 구체적인 스토리보드를 꾸리지 않아도 되면서, 동양 또는 케이팝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이들에게 케이팝이 갖는 ‘새로운 팝’으로서의 측면을 어필하는 전략인 듯하다. SM에서는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dope’를 들려주는 ‘내 Van’, 퓨처하우스의 싸늘함을 달콤함으로 담아낸 ‘Replay (PM 01:27)’, 곱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고즈넉하게 울리는 ‘나의 모든 순간’을 추천한다.

이번 회차의 추천작

앨범 소개글에서 자부하듯 준수한 곡들을 유기적으로 엮어낸 앨범. 그러나 이 유기성이 그들이 의도한 대로인지는 잘 모르겠다. “NCT 2018 Empathy” 앨범 때부터 느꼈지만 세계관을 내세운 스토리텔링이 곡을 앞선다. 차라리 세계관 설명을 지우고 사운드에 집중할 때 ‘Regular’와 ‘Irregular’의 구분이 더 와 닿는 편. (아예 ‘Regular-Irregular’를 시각적으로 풀어서 콘셉트로 잡은 오피스 이미지와 서울 뒷골목 사이버펑크 이미지를 앨범 패키지, 뮤직비디오, 무대 등에서 더 드라마틱하게 대치시켰다면 설득력이 한층 올라갔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타이틀곡 역시 빼어나지만 노골적인 북미 타게팅이 케이팝의 첨단을 점하던 NCT 127의 ‘네오’함을 살짝 흐리는 게 아닌지 우려가 되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건 세계관이 아닌 그를 통한 서사요, 해외의 호응이 아닌 그를 이끌어낼 개성임을 잊지 않았으면. 그러나 Pick을 주기에는 결코 모자람 없는 앨범이다. 로컬리티를 적극적으로 표방한 것이 흥미로운데, 북미 대중의 구미를 자극하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NCT 중국 유닛 공개를 앞둔 시점에서 팀의 차별성을 다지려는 책략으로 보인다. 시간성에 기댄 ‘네오’라는 세로축에 ‘씨티’라는 공간성의 가로축을 덧대어 그룹의 기반이 더욱 단단해진 느낌. 부드럽게 침잠하는 ‘Knock On’과 아릿한 뒷맛을 남기는 ‘내 Van’을 꼭 들어보길 청한다.

NCT 시스템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NCT 127의 첫 정규 앨범. 아직도 왜 NCT U가 아닌 NCT 127이 미국진출을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말이다. 127을 필두로 NCT의 시스템을 가볍게 소개하는 정도로 해석된다. 아무튼 꿈을 매개로 한 세계관에 걸맞게 트랙 리스트는 현실에서 꿈에 빠져드는 것처럼 매끄럽게 흘러간다. 현실에서 꿈에 접어드는 순간-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풀어주는 ‘Interlude’가 가장 인상적인데, 현실과 꿈을 연결하는 그 아슬아슬함 사이에 맞닥뜨린 NCT의 일기장 같은 내레이션 때문일 것이다. 이어지는 ‘My Van’ 역시 충격적이어서, 현실에서 꿈으로의 여정은 반짝거리며 노래하던 아이돌이 무대에서 내려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밴에 몸을 싣는 과정처럼 들리기도 한다. 두 가지 버전의 ‘Regular’를 해석하자면 모두 화려하고 세련된 아이돌 팝이지만 한국어 버전은 격렬한 안무에도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아이돌 자아를 뜻하고, 영어 버전은 자연인의 야심일 수도 있을 것이다. ‘Regular’를 기점으로 그들의 세계관과 시스템이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 그리고 이를 수행하는 멤버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지는 한 장이었다.



앤씨아
I'm fine
제이플래닛 엔터테인먼트
2018년 10월 13일

   

애잔한 정서를 풀어내는, 대체로 평이한 곡. 그래도 후렴에서 확실하게 날아오르고, 버스에서도 필요할 때 정확히 쉬어 주기 때문에 결코 나쁘지가 않다. 품격이 있으면서도 아련하게, 깊이 있게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주로 편곡의 몫인데, 2절 버스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듣노라면 역시 멜로디의 힘이 아쉽기는 하다. 시무룩한 듯한 앤씨아의 음색의 울림만큼은 놓치기 아깝다.



토니 안
HOT Knight
신음악 공작소
2018년 10월 13일

   

토니안이 성공한 아이돌이자 실패한 아이돌 제작자라는 점을 가장 잘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곡. ‘토니안’이라는 아이돌이 언제, 어떻게, 왜 인기를 얻었는지 생각해보면 나올 수 없었던 곡이다. 라이브 무대에 맥락 없이 등장시킨 피처링 또한 ‘실패한 기획’이라고 봐야겠다. 인간이 모든 방면에서 재능을 가질 순 없는 법.



백일의 낭군님 OST Part 3
Stone Music Entertainment, 팝뮤직
2018년 10월 16일

   

신승훈이 이전에 언급했던 발라드의 단계라는 게 있다. 애잔-애틋-애절-처절이 바로 그것인데, 첸의 ‘벚꽃연가’는 그중에서 애틋한 발라드라고 할 수 있겠다. 사극 OST 작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흔한 OST로 넘길 수 있지만 첸의 차분한 감정전달을 언급해야 할 듯하다. 첸의 장점인 폭발력 있는 고음은 완만한 곡의 흐름에 맞게 절제되었고, 선명한 보컬 톤은 부드럽게 풀어내어 벚꽃이 흩날리듯 조심스럽고 아련한 정서를 전달했다. 드라마틱한 요소로 활용되던 보컬에게 다소 단조롭고 밋밋할 수 있겠으나 오히려 그의 새로운 강점을 발견하게 한 트랙.



에이프릴
the Ruby
DSP 미디어
2018년 10월 16일

   
이번 회차의 추천작

다른 그룹들처럼 ‘걸크러시’로 전환하기엔 그간 에이프릴이 보여주었던 색깔과 방향이 너무 다르기에 콘셉트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소극적으로 내디딘 한 발이 만든 결과물 같다. ‘예쁜게 죄’는 처음엔 조금 당황스럽지만 들을수록 매력이 많고 중독성도 분명히 있는 곡이다. 다만 멤버들의 시원시원한 보컬을 좀 더 살릴 수 있도록 편곡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점이 어디가 곡의 정점인지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 전반적으로 노래가 단조로 흘러가 후렴에서도 상승보다는 하강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후렴구에서라도 조성 또는 비트에 변화를 주어 흥을 돋우는 전략을 취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앨범의 완성도는 높다. ‘Oh-e-Oh’나 ‘Love Clock’은 그동안 에이프릴의 다른 앨범 수록곡을 통틀더라도 손에 꼽을 만한 곡들이다. 그룹의 장점들이 한껏 담겨 있으니 팬들과 팀에 어떤 식으로든 관심이 있는 분들은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케이팝 씬에서 곡이 흥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종종 퀄리티보다는 타이밍의 문제다. 적절한 시기에 한 방이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지만, 기왕 다른 색깔을 보여주기 시작한 김에 다음번엔 좀 더 과감한 그리고 적확한 DSP의 한 수를 기대해보고 싶다. 지극히 사적인 응원의 마음을 담아 Pick!을 달아본다.

놓치기 아까운 음반

오직 케이팝에서 맛볼 수 있는 (길티-)플레저. 노래에서 내내 읊조리듯 “실수”로 만들어진 것 아닐까 싶을 만큼 허무하고 괴이해도 결국 그 속에 흐르는 ‘뽕끼’에 두손 두발을 다 들게 된다. 어쩐지 오렌지캬라멜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립스틱’과 ‘방콕 시티’ 사이 지점에서 몽롱하게 톤다운을 시키고 블러 처리를 하면 ‘예쁜 게 죄’가 되지 않을까. 그나저나 이 노래를 부른 게 에이프릴이라니. 당황스럽긴 해도 썩 나쁘지 않다. 오히려 천연덕스럽게 노래를 소화하는 멤버들에게서 전에 없던 생동감이 느껴질 정도. 대대적인 방향 전환인가 싶지만 ‘손을 잡아줘’ 당시 서브곡이었던 ‘띵’에 온도 변화만 준 것 같기도 하다. 이전과 비슷한 스타일의 수록곡들과 이음새도 매끄러운 편. 절묘하다. 치밀하게 계산하고 내놓은 결과물인지는 솔직히 모르겠으나, 이쯤 하면 에이프릴의 재발견. 상쾌하게 내지르는 수록곡 ‘Oh-e-Oh’는 출근길에 듣기를 적극 추천한다.

‘예쁜 게 죄’는 ‘트와이스가 이런 거 하지 않나...?’라고 조심스럽게 끼워 놓은 트랙. 하지만 아니다. 트와이스는 이런 것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에이프릴이 트와이스가 하는 것들을 할 필요도 없다. 전작의 흐름을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차라리 타이틀 곡이었을 법도 했는데, 갑자기 노선을 틀어버린 것은 확실히 음악적 측면이라기보단 ‘마케팅 전략’에 의한 결정이었을 것 같아서 씁쓸하다.



정은지
혜화(暳花)
플랜에이 엔터테인먼트
2018년 10월 17일

   
이번 회차의 추천작

세 장의 미니앨범을 통해 정은지가 여태껏 보여온 음악적 세계에는 “80년대, 멀리 보면 70년대까지도 아우를 수 있을 것 같은” ‘올드함’이 그 기저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다소 나쁜 의미, 이를테면 ‘촌스러움’과 동의어였다고 하면, 이번에 정은지가 가져온 신보는 ‘정감 있는’, ‘그리운’, ‘클래식한’ 느낌으로서의 ‘올드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골목길 코너를 오래도록 지켜온 노포를 우연히 발견한 것만 같은 안정감과 반가움을 앨범 전체에서 느낄 수 있다. 모든 곡의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직접 프로듀싱에 참여했다는 점이 ‘진정성’을 담보해주는 것은 아닐지 모르나 앨범 안팎의 온도 차와 간극을 줄이는 데는 확실히 큰 기여를 하지 않았나 싶다. 지금까지는 특유의 따스한 음색에 곡의 온도까지 높아서 앨범 내내 답답함을 감출 수 없었다면, 이번 미니앨범은 곳곳에서 언뜻 스쳐 가는 서늘한 공기가 적절히 환기를 해주며 정은지의 목소리에 끝까지 집중하여 귀 기울일 수 있게 배려한다. 일상의 소음을 음악의 영역에 가져온 발상과 동화적 상상력이 번뜩이는 가사가 재미있는 ‘상자’, 어른스럽고 블루지한 표정이 돋보이는 ‘신경 쓰여요’는 특히 일청을 권한다.

“혜화”에 이르러서야 정은지가 드디어 올드하게 들리지 않는다! 어딘가 산뜻한 느낌에 크레딧을 확인해보니 정은지가 전체 프로듀싱에 참여했다고 한다. 비슷한 제목의 ‘혜화동’이 건드리는 정서와 비슷한 듯 다른데, 미니멀한 구성에 정감 어린 그의 목소리가 툭 얹어지니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온다. 발랄한 멜로디에 동화적인 상상이 담긴 ‘상자’와 스물여섯이라는 그의 나이가 느껴지는 ‘신경 쓰여요’에 일청을 권한다. 정은지의 조금은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이번 회차의 추천작

정은지의 가장 큰 무기는 '평범함'이다. 정확히는, 평범한 것처럼 보이는 데에 탁월한 재능을 쏟아붓고, ‘완벽한 평범함’을 연출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은지의 특장점이다. 발군의 가창력을 지니고 있고, 연기력 또한 출중하며, 그 어떤 방면에서도 큰 흠을 잡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티스트인데, 정은지는 한 번도 이것을 전략적으로 앞세우거나 과하게 자랑하려고 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그것들이 보고 듣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까 봐 최대한 편안함을 추구해왔다. 그리고 이런 애티튜트는 정은지라는 아티스트를 고유한 영역에 안정적으로 놓이게 한다. 애써 강렬해지지 않아도 본연의 재능으로써 강렬함을 소구하는 것. 이것은 그토록 화려함을 자랑하는 케이팝 씬 안에서는 아직 정은지밖에 해내지 못한 영역이다. 담담하고 소탈하게, 하지만 똑 부러지게 적어 내려간 가사는 정박자로 떨어지는 리듬 안에서 뚝심 있게 버텨내는 힘을 보여준다. 천하장사 정은지가 슬쩍 건네준 청춘의 배터리.



김동한
D-Night
위 엔터테인먼트
2018년 10월 17일

   

전작 ‘Sunset’보다 사운드의 여백이 늘어나서 그런지 보컬의 양감이 뚝 떨어져 버렸다. 공간감과 밀도를 어느 정도 갖춘 ‘내 이름을 불러줘’ 바로 뒤에 위치해 더 두드러진다. 홀로 노래를 이끌기엔 아직 완전히 영글지 않았다는 인상. 과감한 안무와 무대 매너도 미숙함을 되레 강조할 뿐이다. 물론 이 풋내가 김동한의 매력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수록곡 ‘Tipsy’가 그 예시) 유효기간이 긴 매력은 분명 아닐 터. 〈프로듀스 101〉 이후 JBJ를 거쳐 솔로에 이르기까지 너무 급하게 활동을 밀어붙이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되면서도 빨라진 시장 순환주기를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인가 싶다. 연차가 쌓이면서 자연스레 나아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이 미니앨범을 만든 사람들 중에 ‘솔로 가수 김동한’의 가능성을 확신한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문제는 그 ‘확신하지 못한 사람’ 중에 김동한 본인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김동한이 잘하는 것을 얼기설기 엮어 김동한이 잘하지 못하는, 혹은 할 수 없는 것들을 가리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보인다. 무엇이 소년의 자신감을 꺾었을까.



소희
Hurry up (Feat. 볼빨간사춘기)
후너스 엔터테인먼트
2018년 10월 18일

   

후렴에서 확 스텝업하는 전개는 시원하다. 이는 프리코러스가 주효하기 때문인데, 찰랑거리며 느린 걸음을 걷는 기타의 리듬과 기대감을 자극하는 멜로디는 그야말로 볼빨간사춘기가 가장 잘하는 바로 그것이다. 이에 비해 버스는 ‘되는대로 댄스곡’을 익숙한 디테일들로 메우려 하고, 후렴은 청하의 일련의 곡을 썩 좋지 못하게 모사한다. 기왕 언급했으니 말이지만 소희의 목소리는 청하에 비해 탄성이 있고 애교스러운 질감이 섞인다. 그건 장점이지만 비트의 질감이나 뻔한 오르간, 흐름이 강한 가요적 멜로디 등에 조합됐을 때 낡고 빛 바래게 들릴 만도 하다. 단적으로, 바로 이어지는 후렴 후반의 “Hurry up oh na na na” 부분만 해도 그런 인상은 훨씬 덜하다. 좀 더 치밀한 고민이 아쉬운 트랙.

볼빨간사춘기와 협업을 시도한 것은 현명했다고 본다. 소희의 보드랍고 통통 튀는 음색과 기민한 퍼포먼스를 모두 살리려는 방편이었으리라. 다만 볼빨간사춘기의 존재감이 소희를 덮어버린 것이 문제. 퍼포먼스를 함께 보면 조금 덜하지만, 노래만 들어서는 볼빨간사춘기의 곡을 소희가 커버한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솔로로서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분명 읽히기에 더욱 아쉽다.



샤플라
ShaFLA No.1
바인 엔터테인먼트
2018년 10월 18일

   
놓치기 아까운 음반

요즘 걸그룹이 보여주는 이미지를 정말 정말 납작하게 보자면 섹시, 소녀, 걸크러시 정도일 것이다. 샤플라는 그 대신 ‘고혹’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성숙하고 세련된 미감의 곡을 얼마나 오랜만에 본 건지 모르겠다. 곡의 분위기에 압도되지 않고 제 기량을 펼치는 보컬은 여유가 넘친다. (여자)아이들처럼 걸그룹의 모습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약간 호들갑스러운 기대를 걸어본다. 샤플라, 기억해도 좋을 이름이다.

놓치기 아까운 음반

자본이 퀄리티의 전부를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주는 싱글. 곡의 만듦새도 꽤 정교한 편인데, 멤버들의 실력 또한 곡과 충분히 좋은 호흡을 보여준다. 브라운아이드걸스와 마마무의 초기작들이 떠오르기도.



이홍기
DO n DO
FNC 엔터테인먼트
2018년 10월 18일

   

〈프로듀스 48〉 선생님, 아니 이홍기의 두 번째 미니앨범이다. 치타와 함께 가벼운 스윙을 추는 듯한 ‘I Am’을 시작으로, 트렌드와 피처링으로 감싸진 이홍기가 있었다. ‘Cookies’는 솔직히 ‘다른 사람도 하니까’ 하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그가 록발라드 외에도 시도할 것이 많다는 신호탄처럼 읽힌다. ‘홍스타 크루’와 함께 초반 플레이리스트를 새로운 모험으로 장식하고, 마지막 두 트랙은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모습으로 마무리했다. 모험과 안전 사이에 가장 균형 잡힌 선은 수록곡 ‘모닥불’인 듯하다. 틀을 조금씩 깨면서 어색해 보이지 않게 고민한 흔적이 느껴진다. 적어도 이런저런 시도로 어른스러운 이미지의 보컬이 약간은 영(young)해 보이니, 일정 부분은 성공한 게 아닐까.



이세흔(걸카인드)
Vibe On
넥스트레벨 엔터테인먼트
2018년 10월 19일

   

걸카인드 이세흔의 솔로 디지털싱글이자 자작곡. 쓸쓸함이 묻어나는 이세흔의 음색이나 창법은 분명 매력적이라, 피아노를 중심으로 강한 비트를 넣은 R&B가 제법 그림이 나온다. 다만 비트와 신스가 피아노 및 보컬과 딱히 조화를 꾀하지 못해 빛이 바랜다. 그저 덧대어져 있을 뿐, 특히 비트는 곡의 흐름을 주도하지도 않는 채로 때로 비트 쪼개기가 감상을 방해하기도 한다. 간혹 비트와 피아노 사이에 밸런스 조절이 있기는 한데, 보다 적극적이고 꼼꼼한 편곡이 아쉽다. 채워 넣기 식으로 쓰여진 인상을 남기는 버스도 곡에의 집중도를 해치며, 매력 있는 보컬이 종종 작곡을 위한 스케치 녹음처럼 들리는 점은 크게 아쉽다. (그리고 걸카인드의 음반에서도 그렇지만 제발 보컬 튠을 조금만 더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 일부 구간에서 약간씩의 엇나감이 감상을 너무 해친다.)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헤이즈병’이라는 게 유행한다고 들었는데, 그 인스타그램의 1분짜리 클립들을 서너 개 모아서 엮으면 ‘Vibe On’의 뮤직비디오가 된다. 곡 또한 그 인스타그램에 링크된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들어봄 직한 곡이다. 아직도 ‘홍대’가 이토록 ‘힙한 느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공간으로 다가가는지는 잘 몰랐는데, 그래도 유효하긴 한 모양



웬디, John Legend
Written In The Stars
SM 엔터테인먼트
2018년 10월 19일

   
놓치기 아까운 음반

성사된 것이 사뭇 신기할 정도의 조합이긴 하지만, 애석하게도 보컬의 합이 썩 훌륭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두 싱어 모두 평소의 창법을 상당히 내려놓고 서로에게 많이 맞춘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엄청난 케미스트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아닐까. 깊고 풍부한 공간감과 최소한의 악기 구성으로 두 보컬을 오롯이 빛나게 하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데, 두 주인공 역시 서로에게 최대한 발맞추며 성실히 각자의 몫을 수행하고 있으나 묘하게도 ‘한 끗’이 아쉬워지고 만다. 아쉬운 와중에도 반짝반짝 우아하게 빛나는 웬디의 보컬이 싱글의 존재 의의를 강력히 증명하는데, 작정하고 ‘팝송’에 가까운 트랙을 이 정도로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상 만능 아닐까. 웬디가 부르는 곡을 더 많이 듣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깊어지는 가을 밤하늘의 별을 세며 멍하니 사색에 잠기기 좋을 그런 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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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챈사랑

    조성민님은 에이프릴의 봄의 나라 이야기 같은 곡을 좋아 하시는지 변화를 썩 좋아하지 않는 것 같군요.. 하지만 이전 미니앨범이랑 비교 했을때 오히려 과감한 변화를 줘서 성공적이라고 보는데..

    • ㅇㅇ

      상업성과 무관한 소위 고상한 음악 평론하겠다고 만든 집단도 아니고, 아이돌 음악을 평론하겠다고 모인 집단에서 마케팅 측면에서 감점을 주다니 놀랄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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