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베리베리, 소년공화국, 슬기&신비&청하&소연, 티파니 영의 새 음반을 다룬다.
마노: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에서 새로이 선보이는 보이그룹 베리베리의 데뷔 리얼리티 예능 주제가를 담은 사운드트랙 싱글. 그룹 이름이 적잖이 난감해서 어떻게 되려나 싶었는데, 현재진행형으로 매끈하게 잘 빠진 뉴잭스윙 사운드에 캐치한 멜로디를 얹은 곡 자체는 흠결 없이 무난하다. 신인 그룹 특유의 청량한 활기가 돋보이는데, 몇 년 사이에 ‘청량-청순’ 콘셉트가 보이그룹이 꼭 한 번은 시도해야 하는 ‘필수관문’처럼 자리 잡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산뜻한 첫인상을 남겼다는 점에서 신인 그룹으로서는 괜찮은 출발.
미묘: 작정한 듯한 뉴잭스윙. “Super special”, “official”, “superstitious” 등 쉬우면서도 귀에 박히는 말장난들도 고전적인 분위기에 일조한다. 넓은 공간에 덧씌운 떠들썩한 공기가, 빈틈없고 단정한 뉴잭스윙에 시원한 질감을 더해준다. 셀프 프로듀스 아이돌이 흔해진 지금, 영상 작업을 직접 한다는 점을 어필한다는 것도 특색 있다. 다만 거기서 전생에 들었던 것만 같은 키워드 ‘비디오키드’와 ‘VHS’와 ‘90년대’로 이어졌다는 의식의 흐름이 조금은 찜찜한 구석을 남기기도 한다. 그래도 곡이 워낙 상쾌한지라 흠잡고 싶어지지는 않는다. 앞으로를 지켜보게 된다.
서드: 90년대 보이밴드 팝 스타일을 연상케 하는 흥겹고 상큼한 사운드에 뮤직비디오의 연출과 의상까지 그 시절을 복원해내려 힘을 기울인다. 보컬 파트의 음색도 랩 파트 멤버들의 목소리 톤도 썩 잘 맞아떨어져 위화감이 없다. 데뷔곡에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레트로 콘셉트를 쓰나 싶었더니 데뷔 리얼리티의 OST를 직접 부른 프리 데뷔 형식의 싱글이라고 한다. ‘컨셉돌’로 유명한 젤리피쉬다운 신선한 발상이다.
심댱: 5년의 활동을 갈무리하는 소년공화국의 마지막 싱글이다. 디스코그래피를 살펴보니 ‘Video Game’이나 ‘Hello’ 등 눈에 띄는 트랙이 있곤 해서 아쉽지만 그 마무리는 시원섭섭해 보인다. 단정한 질감의 사운드에 지난날과 서로의 안녕을 담담하게 그려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을 끝까지 응원한 팬덤, 로얄 패밀리를 위한 팬송으로 이야기를 맺는 것은 아이돌과 팬덤 사이의 아득한 관계성을 자극하는, 퍽 로맨틱한 기획이라 생각한다. 또한 리더 원준의 작사/작곡 참여로 나름의 진정성을 획득했다 할 수 있겠다. 지난 30일 마지막 라이브 공연을 끝으로 소년공화국의 활동은 무기한 중단되었지만 이제 서로의 위치에서 다시 새로이 눈에 띄는 활동을 하길 기대한다. 산뜻한 인사가 또 다른 시작을 열 수 있기를.
랜디: 이번 세대 걸그룹의 내로라 하는 춤꾼들이 모였다. 댄서형 아이돌들의 보컬 현주소를 엿볼 수 있어 재미있는 싱글. 모두들 리듬감이 좋아 캣워크 하듯 경쾌한 비트가 잘 붙는다. 멜로디의 스케일이 복잡하지 않지만 음절이 많아서 걸음을 절을 법도 한데, 본능적일 정도로 좋은 곳에만 강약을 넣어 짧은 곡에 듣는 맛을 살렸다. 이런 기획은 지금의 좋음보다도 5년쯤 뒤에 거물이 된 이들을 보며 ‘2018년의 그들이 모여서 이런 콜라보도 냈다’ 할 것만 같은, 미래적인 좋음이 있다. 출신 회사가 다른 이들이 모여 부르는 “누가 누가 누가 더 멋진(지) 누가 누가 더 빛나는지” 같은 라인은 3분이 채 안 되는 이 곡 안에서도 경쟁적 텐션이 존재함을 상기시키지만, 완성된 트랙은 네 명이 각자의 방식으로 반짝이고 있어 더 멋지다.
마노: 라인업이 공개되었을 때부터 많은 화제와 기대를 불러모았던 컬래버레이션 싱글. 산뜻하고 단정하게 정돈된 브라스 사운드 사이를 경쾌하게 사뿐사뿐 거니는 네 명의 보컬과 랩은 과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씬에서 상당히 ‘짬’이 쌓인 멤버들과 상대적으로 연차가 짧은 멤버들이 공존하고 있음에도, 모두가 탄탄한 수행력을 보이는 것은 물론 의외로 합도 훌륭하다. 제각기 소속사가 다른 네 멤버들이 ‘SM 필터’를 입고 한 그림 안에 서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 일회성 기획으로 그치기엔 꽤 아까운 조합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하다못해 연말 시상식 등을 통해 무대를 볼 수는 없을지 설레발 섞인 기대를 품어본다.
서드: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들이 현실에선 불가능한 꿈의 선수 조합을 게임을 통해 만들 듯이, 아이돌 팬들에게 꿈의 리그를 현실화해주는 SM 스테이션의 순기능이 다시 한번 발휘된 싱글. 목소리를 그림처럼 볼 수 있다면 아마도 같은 화풍이었을 슬기, 청하, 신비 세 사람의 고음이 힘있게 질주하는 사이사이로 중저음의 소연의 랩이 교차하며 무게감을 달아준다. 언뜻 단순한 구성의 곡임에도 간결하다 못해 감질날 정도로 본론만 쳐낸 편곡이 더해져 청음의 만족감이 최고조를 찍는다.
마노: ‘너네 엄마가 불장난하지 말라고 가르치지 않았든?’ 하며 신랄하게 톡 쏘는, 전 애인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가 인상적인 티파니 영의 새 싱글. 곡은 미국 시장을 겨냥하여 발매되었는데, 뮤직비디오는 철저히 케이팝의 작법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반갑게도 동료인 효연과 수영이 찬조 출연을 했다). 최근 들어 커진 케이팝의 영향력과 더불어 미국 내 아시아계 인사들의 활약상이 맞물리며 티파니 영 역시 씬에서 상당히 좋은 존재감을 발하고 있는데, 추후 발매될 결과물이 더더욱 기대된다.
미묘: 티파니가 미국에서 어떤 활동을 할지 궁금한 시선 앞에 꾸준히 관심을 유지시키면서, 어쩌면 케이팝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점들을 하나씩 건드려보는 듯하다. 케이팝의 기본 멘탈리티가 “(좋은 모습) 보여드리기”라고 할 때, 티파니는 하고 싶은 것을 자신에 맞게 해내는 법을 테스트해 나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꾸준히 만만치 않은 여성 캐릭터를 연출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케이팝이 아니다’라고 해야 할까. ‘결국 미워할 수 없다’는 느낌은 익숙한 소녀시대의 티파니 같기도 하지만. 곡 전체에 걸쳐 거만한 듯이 남성을 비꼬는 내용, 그러면서도 애정을 표현하는 아이러니 등은, 한편으로 뮤지컬 넘버 같기도 하고, 팝에서는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케이팝이라고 보자면 조금 낯선 태도여서 흥미롭다. 나른하게 칼칼한 목소리가 주는 과하지 않는 섹시함도 인상적.
심댱: ‘Over My Skin’까지 유보했던 판단을 슬쩍 내려보게 만드는 흥미로운 싱글, 티파니 영의 ‘Teach You’다. 상대를 쿡쿡 찔러대다가 진득하게 설득해보는 등 캐릭터가 선명히 그려지는 멜로디와 달콤살벌한 가사는 어째선지 케이팝스럽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짧은 시간 내에 모든 것을 담아내는 케이팝의 드라마틱함을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소녀시대로 대표되는 백그라운드를 자신만의 개성으로 가져가는 영리함은 티파니 영을 그저 지나치지 못하게 만든다. ‘Teach You’가 포함될 그의 풀랭스 앨범은 어떤 모양과 색깔일지 궁금해진다. 그때까지 기대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싱글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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