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 해 동안 발표된 뮤직비디오들을 아이돌로지 필진이 돌이켜 보았다. 의미 깊은 작품도, 기술적 진보가 두드러진 작품도, 새로운 시각이나 전략을 제시하는 작품도 있었다. 2015년이 고스란히 담긴, 필진이 추천하는 스물네 편의 뮤직비디오를 소개한다. 제목을 클릭하면 뮤직비디오와 필진 코멘트, 그리고 관련글을 볼 수 있다. (발표일 순)
포미닛 – 미쳐
미묘: 역할에 만족하기보다 자신의 자리에서 할 일을 찾아가는 것은 주체적인 아티스트로서의 중요한 덕목이다. 케이팝을, 포미닛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이런 작업을 해내기 때문이다.
별민: 남자에게 예뻐 보일 생각이 전혀 없지만 충분히 섹시한 여성상. 그저 ‘쎈 언니’로 퉁쳐질 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포미닛이 보여주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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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 – Paradise Lost
돌돌말링: 터부시하는 소재를 아주 골라 충실하게 영상으로 옮긴 것에 팀의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여러 번 보았지만 뱀을 형상화했다는 격렬한 안무에서는 늘 눈을 뗄 수 없다.
소녀시대 – Catch Me If You Can
미묘: 탄탄한 실력의 안무와 역동적인 포메이션 설계, 이에 연동하는 카메라. 이토록 매혹적으로 꿈틀거리는 기계로서의 입체 공간은 없었다. 헬리콥터 씬만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샤이니 – View
김윤하: 아이돌 만렙을 찍고 돌아온 소년들이 그려낸 이 가해도-및-공격성-0% 청춘 판타지 물이 선사한 청량함의 총량은, 왜 ‘이 땅이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 아이돌인지를 증명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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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틴 – 아낀다
오요: 뮤직비디오 화면 우측 하단에 자그맣게 해당 파트 멤버와 안무 샷을 넣었다. 그 외에도 화면의 프레임을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세븐틴 – 아낀다 (Part Swtich ver)
블럭: 파트가 바뀌면 헷갈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멤버한테 치이게 되는 것이다.
나인뮤지스 – 다쳐
오요: 나인뮤지스가 컨테이너 위에서 춤을 춘다. 그걸로 게임 끝났다.
인피니트 – Bad (360 VR ver)
별민: 작년에 발표된 에픽하이 ‘Born Hater’의 세로 버전 뮤직비디오에 이은 디지페디의 새로운 실험작. 아직 기술적인 한계가 있어 보이긴 했지만, 이런 실험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간 모니터 밖으로 나와주겠지…
샤이니 – Married To The Music
돌돌말링: 말해 뭣하랴. 고의로 차용한 B급 테마가 정교한 매무새로 샤이니가 구현하는 남다름을 더 화려하게 표현해줬다. 사실 나는 겁이 많아서 몇 장면은 아직도 제대로 못 본다… 그럼에도 2015년 최고의 뮤직비디오라고 생각한다.
오요: 핼러윈 콘셉트에 대한 정답을 샤이니가 이미 제시해버려서 이후 그룹들은 꽤나 난감할 것이다. 목이 잘리고 눈알이 날아가고 코가 사라져도 어색하지 않은 아이돌은 샤이니밖에 없지 않을까.
원더걸스 – I Feel You
김윤하: 무대 연출과 조명, 터져버린 멤버들의 포텐은 물론 클리비지룩, 빈티지 피규어, 폴라로이드, 샌들, 서핑, 파도, 롤러스케이트, 도미노, 폭죽, 빨대 같은 사소한 미장센 하나하나까지, 이 뮤직비디오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잘 만든 뮤직비디오 하나가 티저 영상의 뻘함과 곡의 허전함 같은 치명적인 약점들을 어떻게 덮을 수 있는지에 대한 섹시한 모범답안.
유제상: 곡이 와 닿지 않았던 것에 비해 뮤직비디오는 몇 번이고 다시 볼 정도의 중독성이 있었다. 평자가 좋아하는 80년대 레트로스펙트가 게임 〈핫라인 마이애미〉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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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스LR – Beautiful Liar
돌돌말링: 듀오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획이 아니었을까. 두 사람을 철저하게 분리해서 대비시킨 전반부와 그 경계가 혼란하게 뒤섞이는 후반부, 다 보고 나면 전후반도 분리되어 있었고 후에 혼합됐음을 깨달으며, 한 번 더 보게 만드는 구성의 매력이 있었다.
에이프릴 – 꿈사탕
맛있는 파히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소녀들의 설렘이 담긴 뮤직비디오. 근래에 본 어떤 데뷔곡 뮤직비디오보다도 정석적이다.
레드벨벳 – Dumb Dumb
맛있는 파히타: 이미 포스팅한 바 있지만 아이돌이 자기를 초월해 아이돌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은 발상의 대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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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틴 – 만세
별민: 2015 아이돌, 특히 신인 그룹 판도를 이 팀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만세’ MV는 세븐틴이 왜 슈퍼루키가 될 수밖에 없는지 설명하는 영상이다. 설득되진 않아도 설명은 충분할 것이다.
러블리즈 – Ah-Choo
별민: 텀블러에서 퍼온 듯한 아기자기한 영상미에, 후반의 마이너 전조 파트에서는 차가운 톤으로 바뀌는 화면까지, 소녀의 감정선을 영상 언어로 충분히 묘사해냈다. 사랑에 빠진 소녀가 한없이 따뜻하고 밝기만 할 거라고 상상한다면 오산.
오마이걸 – Closer (안무 Top ver)
http://music.naver.com/artist/videoPlayer.nhn?videoId=100172
오마이걸 – Closer (안무 Top ver), 2015년 10월 6일
블럭: 좌우 동선을 중심으로 한 안무에서 무대 앞뒤를 다 쓰는 안무로 넘어온 것이 하나의 기점이라면, 이 영상은 그걸 또 한 번 뛰어넘는 중요한 기점이라 생각한다.
트와이스 – Ooh-Ahh하게 Teaser 7 정연
블럭: 티저로도 입덕이 가능하다는 증거.
아이유 – 스물셋
돌돌말링: 그렇게나 많은 말을 만들어낸 앨범과 곡과 뮤직비디오가 모두 한 사람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면 감탄하게 된다. 메타포로 가득하지만 해석이 어렵진 않다. “인사하는 저 여자 모퉁이를 돌고도 아직 웃고 있을까 늘 불안해요” 그 불안을 껴안고도, 아이유는 이런 것을 계속해서 만들어낼 것이다.
별민: 아이유가 매력이 있는 이유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녀의 눈치를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쪽으로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맞춰봐”라고 싸늘하게 뱉는 아이유의 얼굴은 2015년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하기에 충분했다.
f(x) – 4 Walls
맛있는 파히타: SM은 재귀(recursion)에 꽂힌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과는 다시 원인으로 돌아온다. 꿈과 환상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유제상: 이 뮤직비디오 말고 다른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마지막에 찻잔을 잡아낼 때 느껴지는 전율이란…
브라운아이드걸스 – 신세계
유제상: 사실상 뮤직비디오가 없으면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곡. 무대에서 볼 때 한없이 어색한 보깅도 뮤직비디오 안에서는 우주의 일부가 된다.
엑소 – Lightsaber
미묘: 길쭉한 형광등과 샹들리에, 구질구질하지만 밝은 편의점과 우아하지만 어두운 호텔, 선명한 이태원 지번 표지와 당연하다는 듯 ‘무기’를 맡기는 펍, 휴대폰처럼 장식을 매단 라이트세이버. 평행과 모순으로 이세계를 환유한다.
방탄소년단 – Run
돌돌말링: 정확히는 I NEED U – 화양연화 on stage Prologue – RUN의 3부작 전체를 꼽아야 할 것이다. 룸펜즈는 드라마타이즈도 잘하더라. 상반기에 I NEED U만 봤을 때는 죽음이란 이미지에 천착한다는 인상이었는데, 이후 두 영상이 이어지며 그것들이 전부 체호프의 총이었다는 걸 깨달을 때가 즐거웠다.
맛있는 파히타: 젊은이의 소외와 반항의 이미지를 이렇게 잘 보여줄 수 있는 팀은 많지 않다. “화양연화” 1, 2 앨범과 더불어 2016년 가장 놀라운 발견
오요: 이 뮤직비디오가 끝날 때 뮤직비디오에 참여한 모든 스태프들의 이름이 올라온다. 그 점만으로도 기억할만하다.
러블리즈 – 그대에게
맛있는 파히타: 함께하지 못한 소녀를 기꺼이 초대하는 빵떡이의 미소만으로 백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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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eplies on “결산 2015 : ④ 올해의 뮤직비디오”
레드벨벳 Automatic이 없다는 점은 조금 아쉽네요ㅠ 올해 나온 뮤비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뮤비라… 에프엑스 4walls 마지막에 찻잔 잡을때의 전율은 저도 완전 동감합니다. 신희원 감독님 사랑해요!!
4walls 첫소절을 어떻게 구성할지가 가장궁금했었는데… 아주 잘하신듯..
노래와 영상이 탱고를 추는 커플댄서처럼 잘 어울렸던기억..!
오마이걸 closer는 안무 버전 말고 뮤비를 넣어야 되는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