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일 ~ 20일에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필진들의 단평이다. 준케이, 타히티, 비스트, 블래스트, 마마무, AOA를 들어보았다. 이번 회차부터 새로운 필진 별민이 참여한다.
맛있는 파히타: 알면서도 당한달까, "이래도 감동 안 할래?" 하면서 100가지 트릭을 쓰는 곡이다. 스케일 크고 드라마틱한 발라드는 이젠 해묵은 것이라고 여겼는데 여전히 적중한다. 근래에는 이렇게 드라마틱한 발라드 트랙이 드물기 때문에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는 점도 있다. 좋아할 만한 여지가 있다.
미묘: 그러게, 사랑이 뭐길래 그는 이리도 애절하게 "What is love?"를 부르는 걸까. 다양하게 휘두르는 스타일에 비해 보컬이 (뮤지컬적) 과잉으로 일관한다는 점은 이색적이다. 내 취향과는 거리가 있지만 곡 자체는 재밌어서 은근 자꾸 듣게 된다.
오요: 뮤지컬을 아이돌 음악에 끌어오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그리 선호하는 접근방식은 아니다. 뮤지컬 식, 혹은 <불후의 명곡>, <나는 가수다> 식의 편곡과 곡 구성은 그저 억지 감성을 쥐어짜 낼 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준케이의 'No Love'도 그와 비슷한 느낌이다. 거창한 인트로 뒤에 허스키하게 내지르는 보컬과 뜬금없는 타이밍에 등장하는 랩까지, <불후의 명곡>이었다면 충분히 승리를 거머쥐고도 남을 곡이다. 그 뿐이다.
유제상: 곡이 4분 29초인데 쌩 뮤지컬 같은 인트로가 1분. 뒤이어 들리는 건 R&B 창법의 기타팝. 이 무지막지한 혼종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되, 간주의 구태의연한 랩이 빠졌다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어쨌든 지루한 곡은 아니다.
조성민: 개인적으로 2PM의 신인 시절부터 준케이를 눈여겨 보아왔다. 그래서 그동안 보아온 그의 장점을 하나도 부각시켜주지 못하는 이 신곡이 무척 아쉽다. 일반적인 아이돌 메인보컬의 역할과는 달리 2PM 안에서의 준케이는 힘 있는 보컬 리드보다는 전체 곡에 그루브를 더하는 파트를 담당해왔는데, 준케이의 이번 솔로 트랙에서는 준케이가 가진 장점인 그루브감이 살아나지도 않고, 혹은 여태 보여주지 못했던 폭발적인 에너지의 보컬이 드러나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곡 자체도 '아이돌그룹 메인보컬이 내놓은 솔로 트랙'으로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느낌. 차라리 <불후의 명곡 2>에 출연했던 때가 아이돌 보컬로서의 그의 장점이 더 잘 드러났던 것 같다. 직접 송라이팅을 하는 아이돌 중에서 스스로의 장점을 부각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듯한 이들이 은근히 자주 보이는데, 아직 단정하진 않을 테니, 준케이가 그런 케이스는 아님을 다음 앨범에서 꼭 증명해주었으면 한다.
맛있는 파히타: 가사만 떼어보면 "오빤 내꺼"를 반복하며 깜찍하고 귀여운 분위기를 만들어내지만, 곡의 분위기는 사뭇 도발적이고 뽕끼 충만한 성인가요 느낌까지 난다. 걸그룹이 무엇을 어필해야 하는지 잊은 느낌이다. 굳이 챙겨볼 이유가 없다.
macrostar: 숏팬츠 밑으로 속바지가 살짝 삐져나오게 입는 유행이 몇 년은 된 거 같은데, AOA도 음악 방송에서 보이더니 여기서도 볼 수 있다. 트렌드를 넘어서 정착한 건가. AOA의 이번 의상이나 동작 등을 비교해서 보면 꽤 재미있는데 유행 분석의 도달점은 나름 비슷한 듯하다.
미묘: 일단 도입부의 속삭임은 이비아가 떠오르면서 심히 부담스러운데, 직후에 서정적인 일렉트로 사운드가 나오기에 그 오글도가 더한 것 같다. 정작 곡에 들어서면 특별히 눈에 띄는 점 없는 반주가 밋밋한 가운데 연극적인 보컬 연출이 듬뿍 담겨 나름 재미가 살아난다. 그러나 후렴에 들어서면 후크를 제외한 멜로디가 다소 빤하게 늘어지면서, 점심은 아직 안 먹었지만 아무래도 지루한 인상을 남긴다.
유제상: 디스코 비트의 전형적인 복고풍 곡. 솔직히 타히티는 '몰라몰라' 이후로 (<최고다 이순신> 종영과 함께)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곡을 떡하니 들고 나오니 당황스럽다. 곡에 대한 평은 '왜 이제와서...?'로 정리될 수 있을 듯. 다른 분들의 평도 비슷할 것이다. 내일 점심을 걸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조성민: 전작 'Love sick'에 이어, 티아라가 독점하고 있던 '뽕끼 가득한 EDM'의 영역을 가져오려는 시도로 읽어도 될까. 꽤 유효한 구석도 있어 보이지만, 전작과 마찬가지로, 대담한 콘셉트와 가사에 비해 안무 연출은 조금 심심한 편이다. 티아라의 최근작인 'No.9'이나 '나 어떡해'와의 큰 차별점도 드러나지 않아 자칫 '아류' 느낌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지진 않을까 우려되는 면도 있다.
오요: 인상 깊은 곡이 단 한 곡도 없다는 점에서 대단하다면 대단한 미니 앨범이다. 타이틀 곡 'Good Luck'은 'Shadow (그림자)'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전자음의 사용은 지저분하기만 하며 멜로디는 어디서 들어본 것만 같다. 차라리 이어지는 'Dance With U'가 펑키한 전자음 덕에 타이틀곡으로 더 적합하게 들린다. 'History'와 '이 밤 너의 곁으로'를 제외한 전곡을 멤버 용준형이 작곡하였다. ('Shadow'도 용준형의 곡이다.) 곡을 직접 쓴다는 사실로 가산점을 받는 건 예전에나 가능했던 일. 비스트라는 그룹과 용준형의 곡이 최상의 시너지를 내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유제상: 여느 때보다도 광포한 사운드가 돋보이는 댄서블한 곡이 셋, 조용조용한 곡이 셋, 어펜딕스 같은 곡이 하나, 총 7곡이 수록된 미니앨범. 카세트 테이프 시절의 A면/B면을 연상시키는 앨범 구성이 다소 낯설기도 하고, '아름다운 밤이야', 'Be Alright' 같이 귀에 쏙 들어오는 곡이 없어서 아쉽기도 하고 그렇다. 팬들을 만족시키기엔 무리가 없겠으나...
조성민: 대중들이 비스트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전작 "Hard to love, How to love"에 비해 조금 안일한 해석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차라리 선공개곡이었던 '이젠 아니야'가 타이틀이었다면 어땠을까. 비스트는 분명, '보는 음악' 위주였던 아이돌 시장에서 손에 꼽히게 '들을 만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팀이다. '비가 오는 날에'와 같은 발라드 트랙을 히트시키는 아이돌은 굉장히 드물며, 이것은 곧 비스트가 갖는 큰 무기이자 대중들이 비스트에게 기대하는 지점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보는 음악으로의 전환을 시도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비스트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다면, 안무 구성이나 비주얼 디렉팅이 좀 더 치밀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비스트가 안무 면에서 그다지 주목받는 팀이 아니었고, 'Fiction'이나 'Shock' 등 히트곡에서 보여준 포인트 동작 몇 개를 제외하면 그 동안 발표했던 댄스곡들도 퍼포먼스보다 음악적으로 어필되어 왔다. 굳이 기존에 갖고 있던 장점을 포기해가면서까지 노선 변경을 시도해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자꾸만 생긴다. 'Midnight Sun' 이후로는 이런 실수가 없을 줄 알았는데...
미묘: 아무리 응원곡이라지만, 믹스부터 다시 하고 와주기 바란다.
유제상: 세상 참 재미있다. 고도화된 케이팝의 세계에서 아직도 이런 음반이 나올 수 있고. '오 대한민국', '원 샷'과 각각의 인스트루멘탈을 포함 총 4곡으로 구성. 순간 칩튠인가 의심했을 정도로 조악한 '오 대한민국'의 인트로가 인상 깊다(?).
조성민: 무려 롱테이크(!)로 연출된 이 뮤직비디오가 향후 이 팀의 흑역사가 될 것이라는 데에 필자의 아이돌 팬질 인생 전부를 걸 수 있다. 부디 이 흑역사를 오래오래 곱씹을 수 있는 장수 아이돌이 되길 바란다. 제발.
*편집자 주 :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6월 25일 현재 삭제 상태다.
맛있는 파히타: 데뷔 전 몇 곡을 이미 발표하면서 기대감을 키워온 팀이다. 별로 아이돌적인 문법이 보이지 않아서 아이돌로 분류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데뷔곡인 'Mr. 애매모호'의 뮤직비디오만 해도 "뮤지션이 만드는 뮤지션"을 표방하고 있어서, 아이돌이라기보다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가이드하고 군기 잡는 후배들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단 그런 분류를 제외하고 나면 기대감을 갖게 하는 퀄리티 아티스트라는 것은 분명하다. 개인적으로는 멤버 화사의 섹스어필이 꽤 눈에 띄었다. 보컬그룹 형태의 걸그룹이, 쇠락 중인 걸그룹 씬에서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면 이 그룹은 상당히 괜찮은 출발을 한 것 같다.
유제상: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이러면 아이돌 음악이 아니잖아.
조성민: 브아걸이나 써니힐, 스피카 등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는 듯하지만, 비주얼 전략은 앞선 보컬 중심의 걸그룹들보다 훨씬 탄탄하게 기획된 느낌이다. '눈에 띄는' 팀이 되는 것에는 성공한 듯. 데뷔 단계에서 이 정도 합격점을 받는 팀이 최근에는 무척 드물었던 것 같은데, 앞으로가 기대된다.
macrostar: 어색함이 확 사라졌다. 역시 아이돌 그룹은 1등을 하고 봐야 한다. 갑자기 미를 기대하게 되었음.
미묘: Draft에서 나는 '단발머리'가 현명한 가교역할을 한다고 적었다. 이는 이 미니앨범의 전반에 관해서도 대체로 마찬가지인데, 'Joa Yo!"와 '내 반쪽'이 보다 '걸그룹스러운' 버블검에 가깝다면 '말이 안 통해'는 김도훈 프로듀스의 과거를 연상시킨다. 타이틀곡 주위에 양쪽으로 뻗어 있는 이 다리는 전략적으로 일리 있는 선택이다. 그러나 음반 단위로 듣고 있자니 '흔히 보이는 특정색'에 대한 피로감이 조금은 있는 것도 사실.
조성민: 전작 '짧은 치마'와의 연계를 가사와 음악, 그리고 무대 연출과 안무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을 보아, (그리고 이 팀의 소속사가 팀별 자기복제가 심한 편인 FNC인 것을 감안해 보면,) 앞으로도 팀의 색깔은 쭉 이런 방향으로 이어질 듯하다. 그러나 확실히 '이것이 AOA의 색깔이다'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결정적인 특징들이 아직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는 느낌이다. 아직은 '용감한 형제 노래 + 각선미를 강조하는 포인트 안무' 정도가 이 팀의 특징의 전부인 듯하다. 더 큰 문제는, 나름 야심 차게 기획했을 법한 초기 콘셉트('천사'가 등장하는 세계관이라든가, 장르를 기준으로 나눈 '블랙/화이트' 유닛 활동 등)가 점점 무색해져 간다는 점이다. 걸그룹 중에서는 이 정도로 확고한 콘셉트와 '세계관'을 등장시킨 사례가 거의 전무했는데, 그런 특장점이 사라져가는 것은 무척 아쉽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팀 컬러를 모두 '용형 스타일'로 고착화시키는 용감한 형제의 저력을 무시하기는 꽤 힘들어 보인다.
미묘: 두 수록곡 모두 구성은 괜찮은 편. 의무감에 들어가는 악기 없이 리듬 악기 위주로 편성하면서 꽤 효과적으로 곡의 오르내림을 만들어낸다. 단음 위주의 멜로디로 가요로서의 '예의'만 갖춘 뒤 보컬의 화성으로 포인트를 준 점, 감상적인 보컬이 (역시 예의상) 등장했다가도 너무 느끼해지기 전에 빠르게 빠져나가 버리는 점도 재밌다. 'Kick Kick King'은 라이밍이 다소 오글거리지만 타이틀보다 랩에 더 치중하고 있다. 힙합 씬에서도 힙합의 옷을 입은 가요가 흔한 판국에, 비트와 랩에 확실히 무게를 둔 점은 '아이돌 힙합'으로서 높게 살 만한 부분. 그러나 역시 비트가 충분히 살지 않으면서 오락가락하는 믹스의 균형이 참 아쉽다.
유제상: 월드컵 특수에 맞춰 급조되었음이 분명한 "오! 대한민국"과 불과 이틀 차이를 두고 발매된 싱글. 기대와는 다르게 멀쩡한 첫 곡 'Git It Girl'이 나왔지만 당황하지 말고 다음 곡을 빡. 두 번째 트랙 'Kick Kick King'은 앞 곡의 쎈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키며 '블래스트'라는 팀명에 당위성을 부여해준다. 자의식 과잉의 가사가 다소 걸리지만 이만하면 훌륭한 데뷔 싱글이라 할 수 있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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