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일 ~ 20일에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필진들의 단평이다. 베스티, 스텝걸, 김현중, 레인보우 현영, 헨리, B1A4, 걸스데이, 제이민, 프리츠, 예아를 들어보았다.
미묘: 베스티의 곡에서 큰 설득력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는데 하필 팬송에서 취향 올가미에 걸려들 줄이야. 사운드와 멜로디가 그리 특별할 것은 없다. 하지만 가요에서 흔치만은 않은 코드진행과 디스토션 걸린 드럼이 넘치지 않는 정도의 익숙함 속에 신선함을 뿌린다. 특히 후렴에서 G가 Dm로 떨어지면서 보컬은 살짝 올라가는 순간의 현수교 같은 느낌이 매력적. 서로 다른 음색과 역량의 보컬 간의 조율이 조금 아쉽다.
유제상: 연초에 'THANK U VERY MUCH'를 부르며 배꼽 인사를 하던 베스티가 5개월 만에 복귀. 이번에는 드라마 삽입곡 같은 곡을 들고 왔다. 미드템포에 잔잔한 멜로디를 깔고 연인의 소중함을 담은 가사를 덧입힌 '별처럼'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들의 데뷔 1주년을 기념하는 곡이란다. 팬이 아닌 평자에겐 특별할 것이 없는 팬의, 팬에 의한, 팬을 위한 곡.
유제상: 춤과 훤칠한 기럭지를 내세운 5인조 여성 그룹 스텝걸의 데뷔 싱글. 비록 노래는 덜 윤색된 2NE1의 초창기 곡 같지만, 그룹이 추구하는 바는 아무래도 춤 쪽에 있는 듯하니 노래와 춤을 묶어서 평가하는 것이 더 좋을 듯 싶다. 'Step Girl'의 오피셜 뮤직비디오는 아직 유튜브에 업로드 되어 있지 않아 직캠 영상만을 볼 수 있는데, 섹시를 지향하지만 치어리더 같은 '체육 계열의 건강함'이 풍겨 나오므로 이쪽 취향이라면 즐겁게 이들의 퍼포먼스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노래만 어떻게 더 독창적인 걸로 안 될라나.
조성민: 댄스 퍼포먼스 팀이 발표한 싱글. 그동안의 팀의 경력 때문인지 새 싱글 역시 전형적인 '행사용'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나는데, 개인적으로는 행사장 풍선 옆에서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춤추고 있는 내레이터 모델이 연상된다. 이 노래에서 이 이상의 '존재의 의미'를 찾기는 조금 힘들 것 같다.
유제상: 김예림과 칸토가 합세한 호화 구성의 'HIS HABIT', 경쾌한 엘비스 프레슬리 컬러의 'Beauty Beauty', 뜬금없는 R&B 'Nothing on You', 닫는 노래 '하고 싶은 말'과 'Beauty Beauty'의 인스트루멘탈까지 총 5곡이 수록된 김현중의 미니앨범. 이제 그가 소속되었던 그룹의 이름까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솔로 커리어가 오래되었는데도, 가수 활동이 그의 연예계 활동에 있어서 무슨 이득인지 당최 모르겠다. 일례로 'HIS HABIT' 같은 곡을 들으면 후배들의 '기'에 눌린 김현중의 목소리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배우로서의 괄목할 만한 성장과 대비를 이루는 앨범.
조성민: '한류 스타' 김현중을 SS501 데뷔 초 신인 시절부터 몇 년째 보고 있지만, 단 한 번도 그의 노래를 편하게 감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의 노래를 듣다 보면 자주 '이 노래를 차라리 ㅇㅇㅇ이(가) 불렀으면...'하는 마음이 드는데, 이번 미니앨범 역시 그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피쳐링으로 참여한 김예림, 칸토, 한해의 목소리가 평소 그들의 다른 곡에서보다 그다지 강렬하지 않았음에도 노래의 원래 주인공인 김현중보다 임팩트 있게 들린다면 정말 큰 문제 아닐까. 일단 믹싱의 문제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항상 보컬이 악기 소리에 묻히고 있으며, 악기를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음색도 아닐뿐더러 음색에 맞춰 선곡을 하는 센스도 발견할 수 없다. 심지어 쓸데없이 모든 마디 끝 부분에 등장하는 특유의 비음은 몇 년째 고쳐지지 않는 '나쁜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은데, 왜 늘상 이런 단점들을 보완해주기는커녕 부각시키는 노래들만 고르는지 모르겠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나마 가장 들을 만한 트랙이 'Nothing on You'인 점을 보아, 차라리 SS501 시절에도 종종 들려줬던 어쿠스틱 기타와의 케미를 내세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보컬에 충실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퍼포먼스에 대한 지나친 욕심인 것 같은데, 김현중 특유의 뻣뻣하고 허둥대는 듯한 동작들이 안무를 살려주지 못하고, 드라마틱한 안무 전개와 연출은 자연스럽지 못한 제스처들에 의해 빛을 잃어버린다. 팬으로서 진심으로, 그가 발전하길 바란다. 곧 데뷔 10년 아니던가.
미묘: 다소 기대하며 들었고, 기대한 만큼의 전개부가 들렸다. 1997년의 곡을 현재의 감각으로 '새로' 만들었다기보다는, 현재화하겠다는 의욕으로 '다시' 만든 형태다.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후렴에 들어서는 믹스가 조금 더 잘 된 1997년의 댄스가요로 여지없이 돌아간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7080 댄스가요 골든 셀렉션' 풍으로 일관하는 편이 나았던 건 아닐까. 더구나 조현영의 보컬은 너무 '재능이 많다.' 디바 타입이 아니라는 점만은 같을지 모르지만, 15년 동안 단 한 번도 레슨을 받지 않은 소녀 같은 엄정화와는 대척점에 있고, 딱히 그 대비를 보여주려는 의도도 안 보인다. 대체 이 곡에 어떤 조율이란 게 있긴 한가?
유제상: '몰라', '삼자대면'과 더불어 나이트클럽 세대들에겐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마스터피스 '배반의 장미' 리메이크곡. MR은 원곡의 기조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되 보컬만 레인보우 현영으로 교체된 꼴인데, 이 보컬의 차이로 인해 정말 "후회하게 될" 것 같은 당당한 아우라를 지니던 원곡이 <도전 1000곡>을 녹음한 듯한 무엇으로 변해버렸다. 역설적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디바 엄정화의 힘을 느끼게 하는 리메이크.
미묘: 이 음반은 다양한 스타일의 곡을 담으면서도 하나의 작곡가 팀을 주축으로 진행해 어떤 정서적인 일관성을 유지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 속에 고양이 같은 것이 끼어 들어간다는 점이 조금 신경 쓰이지만.) 그리곤 윌 심스와 켄지의 참여로 타이틀곡의 자격과 프로덕션의 일관성을 담보한다. 그 결과 음반은 헨리가 포함된 프로듀싱 팀이 한 덩어리로 '아티스트 헨리'의 층위를 구성하고, 찬열, 호야, 슬기 외에 윌 심스, 켄지,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헨리'를 피쳐링으로 초대한 모양새를 갖춘다. 고도의 인프라를 갖춘 기획사가 '천재 아티스트'를 입증하려는 흥미로운 방식. 입증되었는지는 조금 미지수, 그러나 일단 무척 듣기 좋은 팝 음반인 것만은 분명.
유제상: "뭐야, 저놈은 왜 스테이지에서 에어 바이올린을 켜고 있어"하며 평자를 놀라게 한 헨리의 미니앨범. 솔직히 이 앨범을 접하기 전에는 헨리를 '스트리트 패션이 어울리는 말끔한 중화권 청년' 정도로 생각했는데, 앨범을 들어보니 SM 엔터테인먼트가 그에게 거는 기대감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다. 요란한 'Fantastic'보다는 'Bad Girl'이 더 좋았지만, 이 곡을 타이틀로 냈다면 물밀 듯 쏟아지는 힙합 아티스트들과의 변별점을 세우기 어려웠겠지. 여튼 푸쉬를 받을 만한 값어치는 분명 있으니 그에 걸맞는 성과도 나오길 기대한다.
조성민: SM이 헨리에게 '천재 소년'의 이미지를 만들어주고 활동상에서 그 점을 부각시켜준 것은 팬덤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어 분명 유효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천재'가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함정을 주의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특히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충족할수록 큰 의미를 갖게 되는 대중음악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시 말해, 이번 앨범은 조금 '어렵다'. 미니 1집에 비해 전체적인 곡의 퀄리티가 상승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는데, 외려 대중에게서는 조금 멀어진 듯해 무척 아쉽다. '뭐, 헨리는 천재니까, 다음 앨범에서는 또 다른 좋은 노래를 들고 오겠지' 싶지만서도.
조성민: 정규 2집까지 가열차게 달려오고서 적절한 타이밍에 찍은 쉼표 같은 앨범인데, 아무래도 전성기를 맞은 현역 아이돌치고는 조금 큰 쉼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올 초 정규 2집의 흥행을 이어가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은 앨범. 그래도 아직까지는 나름의 색깔을 잘 구축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의미에서 성숙미가 부각되는 '잘 돼가' 같은 곡이나 정말 'B1A4스럽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물 한잔' 같은 곡을 두고 굳이 'SOLO DAY'를 타이틀로 한 데에는 기획자의 굳은 의지와 의도가 있었으리라고 믿게 된다.
macrostar: 걸스데이는 Everyday라는 제목으로 싱글을 내고 있는데 이번이 네 번째로 올해 두 장이 나왔다. (세 번째가 'Something'이 포함된 "Everyday III".) 타이틀곡 'Darling'이 약간 아쉽지만(과연 전작만큼 가능할까?) 인트로와 Inst.를 뺀 새로운 세 곡의 균형도 괜찮고, 궤도에 올라왔다는 안정감이 물씬 풍기는 게 듣기도 좋다.
유제상: 경쟁 관계에 있던 타 걸그룹의 부침 속에 홀로 선 걸스데이의 신보. 완급 조절을 위한 세 번째 곡 'Look At Me'를 제외하면 모두 드라이빙 뮤직으로 채워져 있어 휴가 가며 듣기에 딱이다. 딱히 눈에 띄는 곡은 없지만 전선(電線)을 타고 전해져오는 이들의 열의와 성실함이 오늘의 위치를 증명해주는 앨범. 멤버 모두 이 영예를 좀 더 누리시길.
조성민: 1세대 여자 아이돌 이후 2000년대 초중반쯤에 등장했던 여러 걸그룹들의 여름 노래들과 그다지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 트랙들로 구성되어있다. 가요를 그다지 예민하게 분석해가며 듣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앨범이 샤크라나 쥬얼리, 슈가 노래들 틈에 끼어있어도 큰 이질감을 느끼지 못할 확률이 높다. 차라리 싱글로 발매했어도 상관없었을 것 같은 느낌.
조성민: 제이민은 SM 소속의 가수 중에서, 사람들이 ‘SM 아이돌’에게서 바라는 어떤 것들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전형성으로부터의 탈피가 곧바로 참신함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모던록과 발라드로 가득 찬 이 앨범은 SM이 추구하고자 (한다고) 하는 ‘음악적 다양성’에 바쳐질 제물로는 분명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사실, 참신함과 식상함을 넘어, 이 앨범은 충분히 ‘들을 만하다’. 그러나 ‘SM에서 발매한 모던록 앨범’이라는 점 외에, 딱히 두드러지는 특징은 보이지 않는다. 준수한 만큼 독창적이지 못한 느낌. 신인의 신보에 이 정도 기대를 걸게 되는 것도 사실은 ‘SM이기 때문’ 아닐까. SM이라면 분명 단순한 ‘아이유 or 주니엘의 대항마’, 그 이상을 만들어 낼 터.
미묘: 전작의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는 것은, 신인인 점, 시즌송인 점, 또한 일본의 과격한 콘셉트 아이돌들도 그렇게 한다는 점을 감안할 만하다. 익숙해진 신스 사운드와 그런대로 참신한 운용으로 시원한 느낌과 별스러운 이미지, 재미를 함께 살리고 있다. 보컬이 믹스와 다소 겉돌거나 음정이 종종 나가는 점도 '장르적 특수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보컬의 처리는 아무래도 의문이 남는다. 음색 차이에 따라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존재감, 단선적인 편곡과 섹션 처리 등은 프로듀서의 보컬 활용 실력을 심각하게 의심하게 된다. 게다가 최종 믹스가 때때로 울어버리고 있는 점까지 고려하면, '의도된 저퀄'은 아니지 싶다. 아무리 시즌송이라곤 해도, 프로덕션이 곡과 팀을 망쳐서야 될 말인가.
유제상: 해석 불가의 난삽함이 돋보인 전작 '인류최대난제~오에오에~'와 비교했을 때 좀 더 직설적인 프리츠의 새 싱글. 멜로디와 음원의 구성이 물 건너 보컬로이드 곡과 유사해 이들이 어떠한 지향점을 지니는지가 더 분명해졌다. 물론 보컬로이드 곡을 주로 듣는 사람이 한국 아이돌 음원을 들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역시 2D보다는 3D지?
조성민: 내가 만약 이들의 담임교사였다면 이토록 훌륭한 여름방학 숙제에 기꺼이 100점을 주겠다. 다만 이들이 중·고등학생이 아니라는 사실이 유감스럽다.
유제상: 1. 멤버수가 많아서 놀랐다. 2. 싱글 제목이 '국보(國寶)'의 영문 번역이라 놀랐다. 3. 뮤비를 보며 '여자 아이돌 뮤비를 만드는 템플릿'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하고 놀랐다. 이러한 점들을 제외하면 크게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무난한 데뷔 싱글.
조성민: 역시 신인인 BTL의 소속사에서 나온 신인 걸그룹의 데뷔 싱글. 한 해에 남녀 아이돌 그룹을 동시에 데뷔시켰는데, 두 팀 다 꽤 무난한 출발을 한 것 같다. 다만 전형적인 남자 아이돌의 문법을 택한 BTL과 달리 예아에게서는 여자 아이돌임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이지 않은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8명의 멤버들이 열을 맞추어 추는 ‘칼군무’라든가, 이성에게 어필하는 데에 영 관심이 없어 보이는 ‘Up N Down’ 뮤직비디오의 내용 등이 그렇다. 재밌는 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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