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 20일에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필진들의 단평이다. 종현, 크레용팝-소율, 타히티, 허니걸스, 루커스, JJCC, 지지베스트, 여자친구, 빅병, NOM, 정용화를 들어보았다.
김윤하: 이 앨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앨범의 세포 하나하나가 '보컬리스트' 종현을 향해있다는 점이다. 샤이니의 메인보컬이자 아이유나 손담비 같은 동료 가수들에게 곡을 선사한 작곡가 등 다층적 자아나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의 면면까지 강조하자면 강조거리가 한도 끝도 없건만, 앨범은 집요하리만큼 종현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인다. 그런 의미에서 앨범을 대표할만한 노래를 하나만 꼽자면 Deez와 함께 작업한 'Neon'일 수밖에 없다. 웬만한 무두질이 아니고서는 섣불리 도전할 엄두도 내지 못할 법한 이 초초고난이도 곡은, 들을 때마다 멜로디 한 음 한 음과 싸워나가는 그의 목소리에 이끌려 끝없는 미로를 헤매는 기분을 선사한다. 개인팬이라면 조금 아쉬울지 모르지만, 샤이니 멤버로서의 솔로작 연장선상으로 생각하면 선택과 집중을 잃지 않은 좋은 균형의 한 장이다.
맛있는 파히타: 작년 샤이니 태민의 솔로 앨범을 이은 종현의 솔로 앨범은 태민의 것처럼 본격적이고 진지하다. 확고한 아이덴티티를 바탕으로 앨범이 구성되어있고, 그 아이덴티티란 종현의 보컬이다. 인스트루멘탈은 목적에 부합하여 절제되어있고 마이클잭슨과 프린스 사이 어딘가쯤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종현의 보컬은 앨범 전체를 휘저으며 근래 볼 수 없었던 버라이어티를 선보인다.
블럭: 태민의 EP와 이 EP 사이의 연결된 지점까지 찾지는 못했지만, 여러 차원에서의 비교는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다행인 것은, 그 비교 지점에서 느껴지는 차이가 양쪽 모두에게 유의미하게 다가간다는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만, 앨범에서 가장 성공적이라고 느끼는 부분은 단연 프로덕션이다. 이는 이 앨범의 장점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오는 앨범이 이러한 형태로도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과 기대를 던져주기도 했다.
오요: 단지 '작사, 작곡도 하는 아티스트 아이돌'의 타이틀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정말 본인이 좋아하는 걸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샤이니의 어느 멋진 날'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종현이 본인의 작업물을 들려주던 장면이었다.) 종현의 첫 미니 음반 "BASE"는 회사가 제시한 콘셉트와 기획에서 비롯된 음반이라기보다는 종현의 취향이 한껏 느껴지는 일종의 '에고트립'성 음반이 아닐까 싶다. 단지 아이돌 솔로 음반이라고 치부하기엔 종현의 감수성과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이 예사롭지 않다. 반드시 음반 전체를 들어볼 것을 추천한다.
유제상: 'SM이 선보이는 남자 아이돌이란 무엇인가?'의 중간 보고서와도 같은 EP. 먼저 발표된 태민의 싱글이 '현 상황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같은 (창작자와 퍼포머의) 한계를 실험한 결과물이란, 종현의 싱글은 팬의 생각과 창작자의 생각이 정확히 만나는 어떤 지점에 위치한다. 그게 밀당을 거친 합의가 아니라 이심전심의 결과물인 것 같아 더욱 보기 좋다. 기존 그룹들은 노쇠했고, 그 이미지는 충분히 소모되었으며, 샤이니 또한 개별활동을 할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객체가 누구이든 SM이 선보이는 남자 아이돌에 대한 기대감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임을 예견하는 싱글.
조성민: '아이돌'이 처음부터 높은 완성도나 성숙도를 갖춘 작품보다는, 성숙을 향해 가는 모든 과정과 서사까지 소구하는 장르임을 고려했을 때, 과연 지금 아이돌 장르 안에서 샤이니만큼 훌륭한 가치를 가질 수 있는 다른 아티스트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동안 꾸준히 자작곡을 공개해온 종현이 마침내 발표한 첫 솔로 앨범은 태민과 마찬가지로 준수한 퀄리티를 갖추고 있지만, 그저 그뿐만은 아닌 또 다른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태민이 '오늘 밤에 나와 함께 사라져요'라고 속삭이며 '고대로 잘 큰' 소년상을 보여주었다면, 종현의 무대에는 소년은 간데없고 '네 여우짓도 참 매력적'이라며 여유를 부리는, 오직 완전히 성숙한 남자 한 명이 서 있을 뿐이다. 화려한 피쳐링 참여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색깔로도 휘둘리지 않고 전체 앨범을 자기 색깔로만 가득 채우고 있는 점도 대단하지만, 스탠드 마이크 하나를 두고 별다른 안무 없이도 눈을 쉽게 떼지 못할 만큼 무대를 꽉 채우는 볼거리를 만드는 능력은 그를 완벽한 한 명의 아티스트로 만들기에 충분해보인다. 지금 이대로도 기성 남자 솔로 아티스트들과 같은 선상에 두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맛있는 파히타: 이 기획은 분명히 작년의 소유X정기고의 흥행을 참고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의외로 쉽고 편하게 들려서 나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게다가 늘 츄리닝을 입던 소녀가 예쁘게 차려입고 노래를 부르니 완전히 다른 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 신선함도 있다. 크레용팝의 컨셉이 한계에 봉착한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이런 변신을 위해 레인보우브릿지에이전시와 콜라보레이션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유제상: 처음 듣자마자 드는 생각은 'X밍 X반 스X레오...? 여성 보컬을 내세운 모던락 비스무리한 무언가?' 와이셔츠를 반복적으로 외치는 후렴구나 반음씩 변하는 멜로디는 다소 진부하지만 그게 소율의 목소리로 나오니 또 신선하기도. 정확히 말하자면 이러한 효과는 크레용팝의 이미지와 본 곡이 대비되기 때문이겠지만... 이제 크레용팝은 적어도 개별활동에서는 각 멤버들이 원하는 음악적 노정을 향하는 걸까. 크롬 엔터테인먼트의 통 큰 행보가 돋보이는 싱글.
맛있는 파히타: 타이틀곡 'Phone Number'는 최신의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지만, 빈틈이 없고 탄탄한 보컬이 놀라움을 선사한다. 하지만 시류에 편승하려는 것으로 보이는 의상이나 안무 컨셉은 안타까움을 주고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이 느껴진다.
미묘: 꽤 오래 기다리게 한 것에 비해서는 조금 기대이하라 해야 할 것 같다. 매우 식상한 인트로 트랙과, 다소 부족해 김빠지는 2번 트랙을 지나야 3번인 타이틀로 넘어가는 루즈한 음반의 구조도 그렇다. 타이틀곡 'Phone Number'도 꼼꼼한 프로덕션이라면 놓치지 않고 조금 더 강한 몰입감을 선사할 수 있는 순간들을 몇 번이나 그냥 지나친다. 그러나 캐릭터가 살아 있는 안정된 보컬의 효과적인 운용으로 맛깔을 내며 제법 우아하게 흘러가는 순간들은 충분히 귀 기울여볼 만한 미덕을 보인다.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란 건 알지만, 보컬과 노래를 좀 더 강조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줄 기회가 있다면 어쩌면 좋았을 것이다.
유제상: 기존에 발표된 곡에 타이틀 'Phone Number'를 끼얹은 두 번째 미니앨범. 'Phone Number'는 느끼한 보컬에 느끼한 가사를 담은 섹시 지향의 곡인데, 여성 그룹임에도 느끼하단 수식어가 어울릴 정도로 남성적인 느끼함을 담고 있다. "왜 컨셉트가 이렇게 잡혔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은 아무래도 제작자들이 할 수 있을 듯한데, 그걸 취향차 정도로만 짚고 넘어간다면 조금 심하다 싶고... 모르겠다. 이게 다 EXID 때문이다.
미묘: 성숙한 분위기의 설정은 전혀 나쁘지 않으나, 보컬의 음색과 존재감이 받쳐주지 못한다. 보컬 자체가 큰 결함이 있느냐 하면 무난하고 평이하다고 하겠으나, 보컬의 편곡과 프로세싱, 믹스가 메인 보컬을 지저분하게 뒤덮어버리면서 살아날 것도 전부 죽여버린다. 의성어를 활용한 가사가 들려오기 시작하면 지난 몇 년간 아이돌팝의 기법들을 대충 주워 흉내낸 결과가 이런 것임을 절감한다.
유제상: 여성 5인조 그룹 허니걸스의 데뷔 싱글. 네이버에 인물정보도 뜨지 않는 아이돌을 만나기는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가사가 한 가득인 타이틀 'Again'은 그다지 나쁘지 않지만, 초반의 긴박한 비트나 절절한 가사의 내용이 왠지 MC스나이퍼의 '민초의 난'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어 혼자 웃었다. 아이돌과 민초의 난... 여튼 생동감 넘치는 무대를 기대해본다.
미묘: 전반적으로 평은 좋지 못했지만 나는 전작도 나쁘지 않았다. 전작의 노골적인 전자음을 뒤쪽으로 조금 빼두고, 부족했던 '통쾌함'을 강화한 신곡은 정직한 발전상이라 할 수 있겠다. 후반부에서 사운드의 혼란도를 가중시키는 가운데 여러 파트로 나뉜 보컬들이 서로 번갈아가며 주고받는 것도 듣는 재미를 주는데,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던 점 역시 이 부분에서 그 정체를 드러낸다. 이 정도의 규모감과 화려함을 가진 곡을 소화하기에는 아주 조금 버거운 보컬과, 그 보컬 트랙들을 필요에 따라 죽이고 살릴 수 있는 믹스의 결단력 부족이 그것이다. 이 프로덕션에는 조금 더 재미있고 잘 만들어진 차기작을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오요: '헬스장에서 틀기에 딱 좋은 곡이겠군'이라는 감상이 들었다. 근데 그 외에 이 곡이 어떤 감흥을 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차라리 전작 '기가막혀'가 더 흥미로웠다.
조성민: 기획 단계에서 의도했던 것만큼 파워풀한 무대가 연출 단계에서 나오지 않은 듯하다. 'Break Ya'라는 패기 넘치는 제목이 무색해질 정도로 보컬도, 랩핑도, 댄스도 특별한 포인트 없이 그냥 흘러가버린다. 뭘 믿고 이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 건지 조금 궁금해질 정도.
미묘: 그간 무난하게 녹아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던 듯한 JJCC가 이번에는 조금 작정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유별나지 않은 사운드 속에 조금씩의 특이성을 미묘하게 숨겨두는 방식은 여전하나, 확실하게 힘을 드러내는 굵직한 진행이 시원하다. 흥미로운 것은, R&B 트랙에서는 그러려니 하게 되던 부드러운 음색의 멤버들이, 그 음색 그대로 강한 곡에 묻히지 않고 확실한 존재감과 함께 대조적 매력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무대 퍼포먼스도 시원하게 느껴지는데, 무대에서 보컬의 안정성이 조금 많이 떨어진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아쉽다.
오요: 뮤직비디오를 굉장히 잘 만들었다. 멤버들의 미모를 한껏 부각시키면서, 이제는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자동차 정비공+스트리트 힙합+악동+잘 노는 소년' 콘셉트에 깃발을 꽂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문제는 뮤직비디오 없이 이 곡을 끝까지 들을 자신은 별로 없다는 점.
유제상: 최근의 어떤 곡들보다도 뮤직비디오의 질이 좋다. 특별한 건 없지만 뭐랄까...이건 봐야 설명이 되는 부분. 멤버들의 춤사위도 이제 어느 정도 틀이 잡힌 것 같고. 곡도 흥겨운게 두 번째 싱글의 기세를 알리는 데 손색이 없다. 다만 장점일수도 또는 단점일수도 있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스물스물 올라오는 중국삘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마치 크로스진이 은은한 일본삘인것처럼. 이러한 느낌이 단순히 편견에서 온 것이 아님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조성민: 의외로 꽤나 꾸준히 괜찮은 작품을 내놓는 JJCC의 신보. 이 팀을 볼 때마다 조금 놀라게 되는 점은, 신인 보이그룹 중에서는 비주얼적인 측면에 이 정도로 공을 들이는 팀이 의외로 별로 없기 때문인데, 이제는 조금 흔해진 칼군무도, 요즘 유행하는 힙합 그루브도 아니지만 나름대로 곡을 충분히 묘사하고 있는 안무를 꽤 준수한 실력의 멤버들이 잘 소화해내고 있어 시각적으로 안정감이 느껴진다. 두 달 후면 데뷔한 지 만 1년이라고 하는데, 앞으로도 재키찬의 가호가 충만하기를...
김윤하: 이젠 사뭇 흔해진 복고풍 펑키 사운드인가 슬쩍 흘려 들으려는 찰나, 백그라운드에 깔리는 소리들이 심상치 않아 황급히 크레디트를 뒤져본다. 한국음악 좀 들었다면 모를 수 없는 강수호(Drums), 이태윤(Bass) 같은 국내 정상급 세션들의 이름에서 리얼 브라스까지 꽤나 신경 쓴 구석이 엿보인다. 첫 곡 'Temtation'에서는 세상에 닳고 닳은 요부처럼 굴다 타이틀곡 '랄랄라'에 들어서는 순간 느닷없이 소녀로 변해 포니테일을 좌우로 휘두르는 멤버들의 모습에도 잠시나마 호기심이 인다. 그리고 이 바닥은, 가끔 그 호기심이면 모든 게 가능해지는 그런 곳이다.
미묘: 콧수염 아저씨들을 좋아하는 록 아저씨의 엉망진창 기획일 거라 생각하고 들었다가, 생각보다 너무 준수해서 깜짝 놀랐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신인임이 분명하다. 탄탄한 연주로 이뤄진 훵키한 사운드에 (구식) 오케스트라히트가, '어른의 록'을 부르는 '계집아이' 목소리와 묘한 밸런스를 유지한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이 음반이 훨씬 더 멀리 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주어진 사실에 가까운 이 목소리를 상반되는 사운드에 잘 묻혀놓은 것 이상으로 더 충격적이고 신선한 음악을 만들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MRJ: 이 곡의 사운드는 너무나 멋지다. 베이스라인이 훌륭하고, 7~80년대 미국 록, 훵크와 R&B를 연상시킨다. 인트로만이 아니라 곡 전체에 걸쳐 전면에 등장하는 관악기 섹션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블루스브라더스와 시카고를 떠올리게 한다. 깔끔하면서도 타격감이 살아 있는 드럼, 업비트의 분위기, 타이트한 리듬 기타에 훵키한 베이스와 브라스까지. 케이팝에서 이런 사운드를 더 많이 듣길 기대하게 된다. 신인답지 않게 무척 성숙한 사운드를 가졌으며, 앞으로 예의주시하게 될 것이다. 지지베스트에게 무척 관심이 간다.
유제상: 여성 4인조 그룹 지지베스트의 데뷔 싱글. 네이버에 인물정보도 뜨지 않는 아이돌을 만나기는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2). 자료사진에서는 분명히 소녀풍의 교복이나 트레이닝복을 입었던 것 같은데, 수록곡은 모두 노골적인 흑인음악이라 조금 놀랐다. 빅밴드, 브라스, 훵키사운드, 이런 것들이 다시 사회의 주류로 받아들여진게 얼마만인지... 라고 혼자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대중의 호응을 얻기에는 아직 무리. 다음 싱글을 기다려본다.
김윤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여러 면에서의 노림수였다 싶은 대혼란의 티저 영상을 지나 우리를 찾아온 건 '의외로' 멀쩡하며 준수한 타이틀곡 '유리구슬'이다. 익숙한 학교종 모티브에서 그보다 더 익숙한 후렴구 멜로디, 브릿지에 들어가기 전 '후예~'하며 스쳐 지나는 스캣, 발차기 안무까지 우리가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걸그룹들의 모든 요소를 버무려 부르마까지 입혀 낸 패기에 정말이지 할 말이 없어진다. 케이팝이란 근본 없음에 근본을 두고 있는 장르다 주장해온 과거에 역공이라도 당한 기분이다. 개인적으로 스윗튠의 뒤를 잇는 '복고 아이돌팝'의 강자라 생각하는 이기용배의 존재감에 눈길이 간다.
미묘: 처음 티저를 보았을 때 나는 "그들이 S.E.S.를 훔칠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S.E.S.의 팬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라고 적을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 막상 '유리구슬'의 악곡은 에이핑크를 참조한 부분이 많고, 또한 오리지널이라 봐도 좋을 부분들도 있다. 즉 티저에는 소녀시대를 연상하고 경악할 수 있는 부분들을 전략적으로 넣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이쯤 되니 차라리 유쾌해지기도 한다. 인트로를 포함하여 (그렇다, 인트로마저 근사하다) 수록곡들은 모두 딱 좋은 정도의 '빤함' 속에 모두 상당한 완성도와 매력을 가진, '좋은 아이돌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Neverland'는 아이돌 레퍼런스들을 충실히 소화한 뒤 시원한 청량감과 귀여움으로 멋지게 뽑아냈다. 이 점이 다시 나를 갈등하게 한다, '유리구슬'을 슬퍼해야 할지 흥미롭게 들으면 될지.
블럭: 개인적으로는 레퍼런스가 아무리 세게 보여도 작품에 레퍼런스를 향한 열망과 정성이 담겨 있으면, 특히 그 레퍼런스를 꼼꼼하게 연구했다는 생각이 들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편이다. 하지만 이 미니 앨범은 어딘가 애매한 구석들이 있다. 무엇보다 어느 한 그룹의 초기 정체성을 보고 배웠을 때 가장 큰 위험부담은 '그다음'이다. 다음 걸음마저도 따라갈 것인지 혹은 또 다른 레퍼런스를 찾아 나설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지금'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다음'이 기대되지는 않는다. 내가 느낀 애매한 구석들은 맛있는 파히타님의 글에 잘 담겨있는 것 같아 링크로 대체해본다.
MRJ: 내게는 곡과 비디오 모두 초기 소녀시대를 연상시키는 영리한 마케팅 기법처럼 느껴진다. 아니, 연상시킨다기보다는, 디지털 클릭 퍼커션 이펙트와 의상, 카메라 쇼트까지 사실상 클론이라 해야 하겠다. 나는 소녀시대가 수년간에 걸쳐 음악적 진화를 거듭한 최근의 곡들을 더욱 즐겁게 지켜보았기에, 초기 소녀시대의 사운드를 특별히 아끼진 않는다. 그래서, 아이콘이 된 그룹에 대한 귀여운 트리뷰트로 보아야 할지, 혹은 아주 끔찍한 도둑질로 보아야 할지 분간이 가지 않는 이 곡을 놓고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유제상: "지난 아이돌 데뷔곡의 장점만 대충 베끼고, 긴 생머리에 미니스커트 교복 입히고, 그룹 이름은 '여자친구'로 해야지" 같은 노골적인 결과물을 시장에 출시하는데 장애물이 오직 '창작자로서의 양심' 하나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이렇게 노리고 만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콘텐츠 제작 현장은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런 노골적인 결과물이 비록 진부하다는 평가는 받을 수는 있을지언정 무성의하다는 비난을 받을 수는 없는거다. 왜냐하면 적어도 이 그룹은 '동시대적인 색기'라는 최소한의 차별점은 가지고 있으니까.
조성민: 태초에 H.O.T.가 있어 후대의 모든 아이돌 보이그룹의 모티브가 된 것처럼, 걸그룹 역시 선배 그룹을 안팎으로 답습하며 성장해온 것이 지금의 형태 되겠다. 그러나 모방을 통해 한 단계 진보하는 것과 그저 도용해오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는데, 여자친구의 신보는 그 경계에 아슬아슬 걸쳐있어 그다지 편하게만은 볼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앞서 맛있는 파히타 님의 칼럼 '유리구슬, 그리고 다만세'에 언급된 대로, 이 팀은 분명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분명 콘셉트란 어떤 이미지들의 나열이고, 이미지는 본질과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본질과의 괴리 여부를 떠나 이미지를 나열하는 방식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여자친구가 차용한 '스쿨 걸' 콘셉트는 그동안 꾸준히 봐왔던 이미지들의 나열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나열의 방식에서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 채 파편적인 이미지만 둥둥 떠다니고 있다. 이것은 이들 작품에서 사용된 언어에서 더 잘 드러나는데, 1차적으로 파악되는 언어인 가사에서는 모호한 상황 설정과 작위적이고 상투적인 어휘의 반복으로 집중이 방해되고 있고, 미니멀리즘과 귀차니즘의 경계에 있는 듯한 의상과 소품은 소녀 특유의 섬세함과 큰 거리감을 보여 또다시 몰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게다가 안무는 조심스럽게 '표절' 이야기를 꺼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소녀시대의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를 모방하고 있다. 이미 논란(?)이 되고 있는, 클라이막스 부분의 발차기 안무를 빼고도, 한 손을 들어 사선으로 내리긋는 동작이나, 건반 소리에 맞춰 한쪽 무릎만 올리며 이동하는 동작, 한 손가락을 펴서 앞쪽으로 들어 올리는 동작, 양팔을 옆으로 뻗어 올려 손을 맞잡는 동작 등은 정확히 '다시 만난 세계'에서 가져온 동작들이다. 이러한 몇 가지 판단착오는 이들의 목표가 아이돌의 정도(正道)라 할 수 있는 '판타지 세계로의 초대'가 아니라 단순한 '이미지의 전달'에 그쳐있는 데에 기인한다. 다시 말해, '소녀들의 이야기에 몰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녀임을 알림(혹은 과시함)'이 목표인 것이다. 물론 이런 단순한 명제가 강력한 메시지는 될 수 없음을 대중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꽤 긴 역사를 갖고 있는 아이돌 장르에서 긴 시간 사랑받아온 작품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끌어들여 집중시켰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어설픈 모방작이 어떻게 설득력을 잃었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단순 이미지의 나열이 위험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멤버 고유의 개성과도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무작위로 긁어온 이미지들을 이어 붙여 멤버 각자의 본연의 매력과도 별개로 존재하는 콘셉트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작품을 공연하는 사람들조차도 설득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와 닿을 리가 없다.
블럭: 우선 전작보다 훨씬 나아졌다. 가장 성장한 부분은 용감한 이단 호랑이의 곡을 소화하는 면모다. 전작에서 빅병의 네 구성원이 보여준 것은 그저 '형돈이와 대준이'가 가진 캐릭터를 따라하기 급급해 답습한 것이라면, 이번에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주체적으로 곡에서 목소리를 낸다. 랩을 뱉는 방식도 그렇고 비주얼도 그렇고 여러모로 성장했기에 다음 작품... 아, 아니다. 그냥 많이 좋아졌다고.
오요: 빅병의 첫번째 싱글 'Stress Come On!'은 곡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에 비해 의외로 심심한 곡이었다. 두번째 싱글 '오징어 된장'에서 빅병은 과연 명예회복을 할 수 있을까. 일단 프로듀서 용감한이단호랑이 (정형돈, 데프콘)가 그룹 '형돈이와 대준이'를 통해 꾸준히 선보여온 강렬한 힙합 비트 위에 펀치라인이 넘쳐나는 갱스터 랩을 얹으며 그룹의 정체성을 갱스터 힙합으로 잡아가는 모양새가 나쁘지 않다. 근래 나온 아이돌 곡들 중 가장 공격적인 랩을 들려주는데, "난 못생겼다고 생각 안 해 만일 내가 오징어면 진짜 오징어면 / 너네들은 문어냐? 너네들은 광어냐? / 너네들은 도다리냐? 너네들은 도대체 나보다 뭐가 낫냐!" 등의 랩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탁월하다. (이 리뷰를 진지하게 읽으시면 안 됩니다.)
조성민: 이렇게 훌륭한(?) 작품이 나오는데, 어떻게 이들에게 '1절만 하라'는 타박을 할 수 있겠는가. 정말 놀라운 것은, 겨우 두번째 싱글인데도 멤버들의 랩핑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점이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대단한 행보일지도 모르겠다, '형돈이와 대준이'에게도, '육덕, 왕콩, 혁띠, 돌백이'가 아닌 '비투비 육성재, 빅스 엔, 혁, 갓세븐 잭슨'에게도.
미묘: YG 엔터테인먼트의 사이트에서는 MR을 제거한 음원을 판매하고 있다. 이를 보통 '아카펠라'라고 한다. 'MR 제거 방법' 같은 것은 제법 알려져 손쉽게 해볼 수 있는 작업이지만 음질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온다. 반면 정식 아카펠라 음원은 해당 음원을 이용해 제대로 된 퀄리티의 작업을 할 수도 있고, 국내 정상의 기획사에서 작업한 보컬 트랙을 뜯어보는 교육적 목적으로도 훌륭한 자료가 된다. 빅뱅의 'Fantastic Baby'의 MR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이런 곡이 자꾸 나오면 YG조차 아카펠라나 MR 음원의 판매를 중단하는 것은 아닐지 심히 걱정된다. 훌륭한 프로듀서 똘아이박과 피터팬은 이 곡에서는 한 일도 없어 시간 여유도 있을 것 같은데, 자기들이 자리 잡았다고 사다리 자르지 말고 한국 음악계의 발전을 위해 힘 좀 써주셨으면 한다.
블럭: 보통 나는 곡이 좋아야 글을 쓰고 곡이 싫거나 할 얘기가 없으면 안 쓰는데, 이 곡은 너무한 게 아닌가 싶다. 물론 'Fantastic Baby'에 들어간 사운드 소스들 중에서 정말 독특하다고 느껴지거나 유행 아닌 소리가 없기는 하지만, 빌덥 타이밍부터 전후 구성까지 곡의 틀 자체가 비슷하니 이쯤 되면 황당하다. 레퍼런스야 당연히 있을 수 있다. 뻔한 게 안전하고 먹히니까 그런 공식을 쓸 수는 있다. 하지만 하나의 곡을 그대로 가져와 버리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무엇보다 곡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건 빅뱅이라는 멤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트렌드를 잡고 한 판 놀 수 있게 깔아주는 트랙(이라고 말하기에는 'Fantastic Baby'가 2012년에 나왔다)과 '웃기지마'의 차이는 그저 가사를 한 번 비틀었다는 것 외에는 딱히 없다고 느껴진다.
유제상: '누난 예뻐', '너야 너 (You It You)'에 이은 엔오엠의 세 번째 싱글. 뭔가 부족해 보였던 이전 싱글에 비해 클럽 음악을 표방한 '웃기지마'는 확실히 기합이 들어가 있다. "듣던가 말던가, 우린 거하게 춤판 한 번 때린다" 같은 패기가 와썹 생각도 나게 하고, 단 한 곡밖에 없어 디스커버리를 주진 못했지만, 개인적 성향상 이번 회차의 탑은 단연 이들의 싱글이다.
김윤하: 소란스러웠던 시작과 다소 뻔했던 역사에도 불구하고 데뷔 이후 정용화가 싱어송라이터로서 꾸준히 성장해 왔다는 사실은 어떻게든 부정하기 힘들다. 씨엔블루의 일본 활동이 가시화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그의 대중 친화적 송 라이팅 능력은 편안한 팝 사운드를 만드는 데에 최적화 되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 곡을 꽉 채운 이 솔로 앨범이 그 자신감의 당당한 발로가 아닐까 싶다. 다만 밴드라는 보호막을 걷어내고 나니 그의 노래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물론 단점마저도 도드라져 보인다는 점이 아쉽다. 완성도가 높기엔 너무 순진하고, 눈에 띄기엔 과히 성실하다.
미묘: 씨엔블루의 정체성을 말하라면 나는 발라드 그룹이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멋진 날'은 이해가 가는 행보이다. '정통 발라드'로서 나쁘지 않고, 상당히 매력적인 자리들을 훑으며 그리는 멜로디 라인과, 드럼의 질감을 톡톡히 살린 점도 듣기 좋다. 다만 (발라드가 아닌) 록커로서의 정체성을 가져가는 다른 곡들이 충분한 설득력을 담보하는지는 의문이다. 각각의 곡 멜로디에 신경을 쓴 것이 귀에 띄지만 록은 보다 '사운드'와 앨범에 관한 것일 터이다. 그런 점에서 각 곡의 지향점이 심히 오락가락하며 하나의 음반으로서의 유기성도 저하하는 이 앨범의 구성은 곳곳에서 다양한 취향의 사람들에게 다양하게 찜찜함을 남길 만하다. 이를테면 콜드플레이가 21세기를 망쳤다고 확신하는 나에게도 그렇다. 그런 지엽적인 취향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록커-싱어송라이터의 앨범이라면 콜드플레이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납득할 수 있는 맥락이나 애티튜드를 기대하는 것이 맞으리라 본다.
조성민: 적당히 레이드백(laid back) 된 느낌이 나쁘지는 않은데, 계속 듣다 보면 너무 느긋한 건 아닌가 싶은 기분이 든다. 약간의 완급 조절은 더 들어갔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이 정도는 그냥 취향의 문제일 것도 같아서 큰 문제로까지는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 한 번 듣기에는 거슬림 없이 편하다는 점 때문에 누구에게나 나쁘지 않은 인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강점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정용화니까 만들 수 있는 앨범이라는 인상이 강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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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plies on “1st Listen : 2015년 1월 중순”
싱글 아니라 EP 혹은 미니앨범으로 정정하는게 옳지 않을지요. 싱글은 말그대로 B면 트랙까지 해서 많아야 서너곡인데, 태민이랑 종현은 그렇게 말하기엔 볼륨이 많아요.
미니앨범 전체가 아닌 타이틀곡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사용된 것으로 이해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