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일 ~ 20일에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필진들의 단평이다. 샤이니, 멜로디데이, B.I.G, 임시완, 플레야, DSP 스페셜 앨범, 베리피치, ATO, 아우라, 슈티, 5tion, 앤씨아, 옥택연, 윤경(조이엘리), 바다를 들어보았다.
김윤하: 오프닝을 지나 첫 곡 'Spoiler'에서 '히치하이킹(Hitchhiking)'까지, 그러니까 잠시 숨을 고르는 곡 'Girls Girls Girls' 직전까지의 초반부는 그야말로 '숨이 막힌다'. 샤이니가 데뷔 이후 지금까지 발표한 수십 곡의 노래들 가운데 이들의 퍼포먼스와 카리스마를 가장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곡들로 엄선된 셋리스트는, 이 무시무시한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감각이 청각 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더없이 아쉽게 만든다. 십 여 년간 쉼 없이 자신들의 한계를 시험해온 케이팝 보이밴드의 경이로운 기록이 궁금한 이들이라면 체크해볼 만 하다. 더불어 어떤 곡에서건 화룡점정을 찍는 종현의 존재감이 새삼스럽다.
오요: 라이브 음반은 대개 팬서비스 차원에서 발매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팬이 아니면 들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샤이니의 라이브 음반은 그 범주를 비껴간다. 수없이 많은 콘서트를 통해 정제되고 날카로워진 샤이니의 무대를 고스란히 옮겨온 음반을 듣고 있자면 내가 그 장소에 없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안타까움과 동시에, '이렇게라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모든 에너지를 지탱해내는 샤이니의 곡들이 얼마나 훌륭한지 새삼 깨닫는다.
미묘: '성당 오빠'가 돼가고 있는 듯한 매드클라운의 랩을 이 곡에 사용한 것은 상당히 적절하다. '놓칠 것 같은' 감정을 절박하면서도 아스라하게 표현하는 것이 그의 장기기 때문이다. 이 곡도 (취향에 따라 질척거리게 들릴 순 있으나) 그런 감성을 담고 있다. 그러나 노래를 음악적 표현 수단이라고 한다면, 이 곡의 보컬 편곡과 그 구사가 그런 감정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적당함'으로서의 관습이 갖는 어중간한 힘으로 '그럴 듯'하게 만들어지는 선에서 그치는 이 곡은, 몇 번이나 끓어오를 것 같다가도 이내 감정선을 놓쳐버리고 만다.
유제상: 기존 곡들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뭔가 기합이 팍 들어가 듣기 좋다. 멜로디데이의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는 통속적인 멜로디는 그대로이지만 가사는 심플하면서도 중독성이 있고, 매드클라운의 랩이 무성의하게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전과는 확실히 다른 뭔가를 보여준다. 너무 절제되어 기계적으로 들렸던 보컬마저 후렴이 마칠 무렵 적절한(정말 적절한) 감정의 과잉을 보여주시니 역시 꾸준히 하면 는달까, 여튼 멜로디데이에 대한 선입견을 깬 곡.
맛있는 파히타: 크리스마스 싱글로 왬의 'Last Christmas'는 해묵은 선곡임이 자명하다. 하지만 B.I.G의 'Last Christmas'를 들으면 그런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다. 코러스 부분만을 차용했을 뿐, 버스(verse) 부분은 미니멀하고 재지한 힙합튠으로 세련미를 보여준다. 기타가 곁들여진 리듬은 맛깔스럽고 멤버 벤지가 직접 담당했다는 바이올린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곡에 감성을 더하고 있다. 이 곡이 굳이 'Last Christmas'를 차용할 이유가 있었을까? 이 곡의 유일한 단점은 'Last Christmas'라는 점일 것이다.
오요: 어라, 비트가 괜찮다. 그런데 어설픈 랩과 더 어설픈 보컬이 등장하며 곡에 대한 기대가 모조리 무너져버린다. 인스트루멘털 트랙을 듣는 편이 차라리 훨씬 더 즐겁다.
유제상: 왬의 전설적인 곡을 리메이크한 싱글. 평자는 이런 형태의 즉물적인 리메이크는 달갑지 않지만 일단 결과물이 안전하게 잘 뽑혀 나왔고, 곡의 유명세가 신인 그룹에 있어서는 분명 플러스 될 테니 나쁜 이야기를 하기 어렵네. 내년부터 다시 달리기 위한 전략으로는 합격점을 주고 싶다.
미묘: 정통파 발라드 취향으로, 적당한 세련미와 적당한 매력을 가진 안전한 곡. 안전한 발라드가 나쁠 것은 없지만, 이 곡과 임시완의 보컬의 만남이 좋은 조합인가에 대해서는 갸우뚱하게 된다. A파트에서 저음이 차지하는 다소 어정쩡한 존재감, 살짝 금속성으로 갈라지거나 부드럽게 뻗어나가는 보컬의 컨트롤이 보이는 애매한 음악적 표현력, 군데군데에서 들리는 의문스러운 호흡 지점 등이 아쉽다. "그래도 살고 싶어요"라는 가사와 함께 예스러운 퍼즈 톤의 기타 솔로가 나오는 순간, '미생'과 현실 직장인 라이프의 접점이 이런 것인가 싶어 다소 뜨악하게 된다.
오요: 드라마 '미생'의 OST라는 점, 그 '장그래'가 불렀다는 점을 무시한다면 과연 이 싱글의 매력은 무엇일까. 도통 모르겠다.
맛있는 파히타: 곡의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기 앞서 타이틀 곡인 '2 Love'의 믹싱과 마스터링은 심하게 잘못되었다. 울려대는 베이스와 귓전을 때리는 스네어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감상 자체가 쉽지 않다. 이 정도면 리콜해야 할 수준이 아닐까.
미묘: 지금까지 발매된 5장의 싱글 중 4장을 유심히 들으며 일관되게 느낀 것은, 다소 비관습적인 톤을 사용하는 일렉트로닉 트랙에 보컬이 어색하게 얹혀 서서히 조화를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연말을 맞아 첫 트랙과 마지막 트랙에 'Christmas'가 들어가는 무려 14 트랙의 이 풀렝스 앨범은, 첫 트랙의 강렬한 CCM 풍을 제외하면 그 인상을 대체로 이어간다. 수록곡 중 몇은 밸런스의 개선을 보이며, 제법 '노래'로서 기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기존 발매곡과 신곡을 비교해 들었을 때 차라리 기존 곡이 자연스럽게 들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한 곡을 듣는 동안은 다소 낯뜨겁고, 다음 트랙으로 넘기기도 마음 편치 않게 한다. 한 곡의 킥 드럼 소리보다 다음 곡의 일렉 피아노 소리가 더 커다랗게 튀어나오는 마스터링까지, 미안하지만 이 음반은 조금 잘못됐다는 확신을 준다. 이 프로덕션 자체가 사장님 한 사람의 에고트립이 아니려면, 적어도 정규 앨범을 발매하는 순간에는 뭔가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유제상: 기존 싱글 포함 무려 14곡이 수록된 빵빵한 앨범. 전자음에 기반을 둔 정성스러운 곡들이 쏟아져내리는 가운데, 난데 없는 크리스마스 테마가 제일 앞, 뒤 트랙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 의외라면 의외. 앨범의 구성을 논하기 이전에, 아이돌 음반에 '계절감'이라는 것이 이토록 중요한 사안이었는지를 새삼스럽게 보여준달까. 타이틀곡 '2 LOVE'의 인상이 약하다든지, 'Bump' 같은 트랙의 리믹스가 부재한 것도 아쉽다.
미묘: 2014년의 현재적 사운드라는 게 단지 악기 소리가 큰 것은 아닐 것이다. 핑클의 곡을 현재화하겠다는 포부를 담아 'White'에 '추가된' 사운드들은 대부분 곡에 녹아들지 못하고, 매번 15년 전 그대로인 곡의 풍경 속에서 덜컹거린다. 그나마도 후반부에 들어서면 존재감이 사라진 채, 그저 '큰 악기 소리'로만 남는다. 비디오로 보면 DSP 소속 아티스트들의 '떼창'이 사뭇 감동적인 스펙터클이 되는데, 믹스 밸런스가 이래서야 합창도 멀찍이서 납작하게 들릴 뿐. 반면 수록곡들은 의외로 준수하다. ZigZagNote 등의 프로듀서들이 참여한 이 곡들은 아티스트 각자의 음반에 수록될 법한 분위기와 연말연시 축제 분위기를 적절하게 조합해낸다. 시즌송으로서의 기능도 충분히 수행해내면서, 시즌이 지나도 듣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동시에 각 아티스트들의 차별성도 적잖이 보여준다. 인프라가 갖춰진 규모 있는 기획사가 제대로 만들어낸 시즌송 앨범이 가진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유제상: '베리'와 '피치'의 상징을 보유한 여성 둘로 구성된 걸그룹 베리피치의 데뷔 싱글. 기타가 메인이 되는 멜로디나 띠용띠용하는 음의 질감이 최근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 잡은 '멀끔한 젊은이가 기타 하나 둘러매고 부담 없이 부르는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의 노래'(···)를 연상시킨다. 사회 전체에 누적된 피로감 때문일까, 섹시 이후의 경향이 이런 것이리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경향을 살리고 있으면서 곡이 무겁지 않은 것도 확실한 장점. 꾸준한 활동을 기대한다.
미묘: 후렴은 다소 무난하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특별히 약점을 흘리지 않는다. 브리지는 랩이 다소 약하게 들리기는 하나 금속성 강한 베이스의 음색이 듣기 좋다. 그러나 버스(verse) 부분은 지나치게 조심하다 긴장을 놓친 기색이 역력해, 특히 시작 부분 40초 이상 루즈하게 흘려보내버리는 게 아쉽다. 신인의 영화 삽입곡이 갖는 페널티 같은 것이라 생각해볼 수도 있을까.
미묘: B파트의 멜로디가 조금 뻔하지만 후렴으로 넘어가는 순간의 연출이 제법 매력 있다. 보컬도 안정되었고, 두어 가지 음색의 매력도 평범하게 살리며, 편곡 스타일도 제자리를 잘 지킨다. (보컬 솔로는 취향에 따라 다소 과잉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아마도 지금까지 아우라의 이름으로 발매된 곡들 중 가장 완성도 있는 곡인 듯하다. 또한 그 중 가장 무난한 곡이기도 한데, 그 무난하지 않음이 특출남으로 빛난 적은 아직 없었다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의 곡들이 음악적으로 이 정도의 균형만 잡아줬어도 그에 대한 평가는 확연히 다르지 않았을까. 다만, 영어 발음과 여전히 중학생 같은 뮤직비디오는 조금 참아줬으면 싶다.
미묘: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이 음반의 보도자료가 무척 흥미로우니 읽어봐주기 바란다. 그러나 이전 곡의 보도자료를 이미 읽었다면 그럴 필요는 없다. 같은 문서기 때문이다. 곡 자체는 프랜차이즈 까페에서 한 철 섞여 틀기에 큰 무리는 없지만, 정규곡을 이렇게 만들었다면 아마 조금 더 긴 글이 필요했을 것이다.
미묘: 제목과 커버아트로 인해 긴장한 것에 비해서는, 오케스트레이션이 강조된 느긋한 분위기의 곡 자체는 반갑기까지 할 정도로 편안하다. 그러나 오케스트레이션이 깔리고 멜로딕한 랩이 얹히는 6/8 박자의 R&B 발라드는 너무 2000년대 초반을 그대로 가져와서 다소 낯뜨겁고, 보컬의 믹스 상태도 '베테랑'답지 못한 수준이다.
맛있는 파히타: 평이할 수도 있었던 곡이었지만 편곡이 한 번, 그리고 앤씨아의 보이스가 또 한번 이 곡을 들어올렸다. 보사노바로 시작하지만 담백함은 이내 화려해지고 터져줘야 할 때 기운차게 터져주는 상큼함, 그리고 다시 기분을 가다듬으며 다시 한번 상승하며 기운차게 달린다. 변화가 많은 곡임에도 앤씨아의 보컬이 능수능란하게 곡을 리드하고 있어 지난 곡들에서 보여준 포텐셜이 진짜였구나 하는 인상을 받는다.
미묘: 의외로 무척이나 재미난 곡이 나왔다. 글리치한 어쿠스틱 기타를 비롯해 케이팝에서 들을 수 있는 온갖 기법과 스타일을 총망라하기라도 하는 양, 정말 다른 분위기로 느닷없이 치닫길 이어가는 흐름이 매순간 유쾌한 물음표를 띄우게 한다. 마무리마저 급작스러운 것도 재미있다. 필터를 적절히 사용해 몽글몽글하게 굴러다니는 질감의 사운드가 주종을 이루는 가운데 때때로 조금 칼칼해졌다가 다시 빠지곤 하는 섬세한 호흡의 조절이 인상적이며, 부담스럽지 않은 무게감의 보컬이 갖는 천진한 색채감도 잘 어울린다. 정규반으로 내기에는 다소 과감한, 시즌송의 시즌의 즐거운 발견.
유제상: 기존에 발표한 '난 좀 달라'와 '미쳤나봐'의 장점이 섞인 곡. 전자가 하이틴의 상큼함을, 후자가 노래의 유려함을 추구했다면 '후후후'는 양자가 어우러져 있다. 앤씨아의 곡은 전반적으로 양질의 멜로디를 들려주는 장점이 있는데, 이건 아마 그녀에게 거는 스태프들의 기대를 반영한 것이리라. 이런 시점에서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어도 될 듯한데...
미묘: 코러스 이펙트로 음정이 아슬아슬한 신스는 예쁘지만, 특별한 장점이 느껴지는 곡은 아쉽지만 되지 못한다. 보컬의 음역에 대한 안배도 썩 좋지 못하다는 인상. 연말의 깜짝 선물이라 허용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이왕이면 이것보다는 좀 더 기대하고 싶다.
오요: 뻔한 시즌송. 아무래도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의 흥행을 염두에 둔 듯한 싱글이다. 딱 그만큼이다.
미묘: 잔잔한 트레몰로의 스트링과 브라스가 깔아 놓은 공간 위로, 적당히 유쾌한 울림을 갖는 보컬이 느긋하게 흐른다. 꼭 적당한 배합으로 힘을 넣고 빼는 것도 맛깔스러워, 유려한 흐름을 선보인다. 스탠다드 재즈로서 흠잡을 데 없다. 다만 아쉬움 역시 같은 곳에서 비롯되는데, 안전한 것을 잘 수행해내는 것 이상은 그리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곡의 발매가 의외라면 시즌송의 계절임을 감안해야 할 것인데, 그렇다면 재즈홀에서 연주되기보다 전파나 음원으로 감상될 곡으로서, 조금은 덜 밋밋하게 만드는 용기를 내보아도 좋지 않았을까. 어찌 되었든 윤경의 보컬이 갖는 매력과 힘은 여실히 보여주는 바, 앞으로를 기대해 본다.
유제상: 여성 3인조 그룹 조이엘리 소속 윤경의 첫 싱글. 조이엘리는 CCM 느낌의 '그리움의 눈물', 재지한 '그 때 말해줄께요' 등 아이돌치고는 다소 묵직한 곡을 부르는 그룹이었다. 웃음기가 빠진 마마무랄까. 이런 식의 정공법을 택할 수 있는 게 놀랍기도 하지만, 추억의 미드 <사랑의 유람선>(The Love Boat)을 연상시키는 윤경의 곡을 들으니 이들이 얼마나 진지한 자세로 현 상황에 임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취향을 떠나서 아이돌 음악의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이러한 시도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낼 수 밖에.
미묘: 예스러우면서도 평범하고 안전한데, 그 안에 이 곡의 미덕이 있다. 어쿠스틱 사운드나 편안한 목소리가 포근한 정서와 뻔하게 자동 연결되기 때문이 아니다. 서서히 끌어 올려지는 애잔함이 결코 폭발하지 않고 펼쳐진다. 강렬하고 시원한 보컬을 드러내고 싶어지고도 남을 순간마저 애써 누른 절제의 결과로서 편안하게 흐르며, 이야기하듯 '노래'를 중심에 두고 건축된 편곡이, 무덤덤하거나 맥 빠지지 않는 감정의 깊이도 함께 담아낸다. 그것으로 인해 이 노래는 감정선을 뻗어나가며 마음을 파고든다. 수수한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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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plies on “1st Listen : 2014년 12월 중순”
아이돌로지의 신곡에 대한 평가가 전적으로 음원에 대해서만 집중되어있는데, 뮤직비디오 구성이라든지, 댄스(공중파방송무대, 직캠) 방식 등등 음원 외적인 부문에 대해서도 소감이나 평가가 이루어지는 다각적인 접근방식도 볼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는 음악 자체에 대한 평가만으로 만족하는 독자입니다! 음악 외적인 평가는 비교적 보기 쉽기 때문에, 순수하게 들리는 것 만으로 평가되는 게 반가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