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샤샤, 황인선, 방탄소년단, 얼라이크, 레이나, 신화, 성경, 김용국, 카밀라, 히치하이커, MJ & 루시, 트로피칼, 로시, 위걸스, 백현 & 로꼬, 라비의 새 음반을 다룬다.
서드: 멤버 교체를 세 명이나 거친 후 내놓은 두 번째 싱글. 무난하게 지나가지만 대중적으로 크게 반향을 일으킬 포인트는 보이지 않고 기존 걸그룹 노래의 흔적들만이 희미하게 스쳐 지나간다. “일로 갔다가 절로 갔다가”라는 후반 가사는 조금 재미있게 귀에 걸린다.
오요: 평범한 팝댄스곡으로 중간 부분 등장하는 랩이 그나마 재치 있지만, 그뿐이다. 이미 수십 번은 들어본 것 같은 기타 리프와 후렴구에 등장하는 전자음도 진부하기만 하다.
서드: 황인선의 보컬 스타일이 트렌드에 썩 걸맞지 않다 하더라도 ‘시집 가는 날’은 제목부터 가사, 뮤직비디오 등 총체적으로 올드한 기획이다. 의도적으로 90년대 스타일을 재현하려 한 듯한 인상은 주지만, 대체 뭘 위한 재현인지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그리고 굳이 더 파고들어 알아내고 싶지도 않다.
심댱: 통속성에 머리가 다 어지럽다. 제목부터가 남성 창작자의 창작물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결혼도 아니고 ‘시집’, 그리고 한 남자의 아내와 한 엄마의 딸을 제외한 여성 화자에 대한 그 어떤 것도 잡히지 않는다. 그저 식장에서 눈물 흘리는 신부뿐이다. 이승기의 ‘나 군대 간다’처럼 정말 결혼한다고 내는 곡이었다면 극단적일지라도 신선하다고 생각했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작곡가의 경험에 의해 나온 창작곡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하다 싶다. 그의 목소리에 어울리는 발라드를 하려면 굳이 이런 구질구질함을 묻히지 않아도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미묘: ‘Idol’은 방탄소년단의 출신에 대한 두 가지 시선, 그러니까 ‘세계를 점령한 자랑스런 케이팝’이란 ‘국뽕’과 ‘그래 봐야 한국 음악’이란 폄하, 그 모두를 패러디하는 듯한 곡이다. 거친 비트와 야한 멜로디의 뒤편으로 장구한 시간이 펼쳐지는 듯한 역동적인 이 곡은, 새 연작의 초반부터 도입된 색정적 와일드함을 넘치는 몰입감으로 압축한다. 동시에, 빌보드 수상 연설부터 이어지는 스펙터클을 ‘Love Yourself’라는 주제의식으로 연결해내는 곡이기도 하다. 삐딱하게 보자면 ‘북미 시장 진출이라면 아이돌인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건가?’ 할 수도 있을까. 하지만 선 굵게 짜인 더블앨범은 BTS의 성공이라는 팩션성 서사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인물의 픽션 서사를 일종의 이중현실처럼 병치해 둔다. 이 대작 속에서 그 흐름을 잡아가는 것은 트랙의 적극적으로 재배치와, ‘Trivia’ 트랙들을 비롯한 신곡들이다. 티저를 통해 먼저 선보였던 ‘Euphoria’는 퓨처베이스의 장르적 규칙들을 충실히 갖췄지만 또한 장르 음악이 아닌, 그러면서도 어떻게 들어도 방탄소년단의 곡일 수밖에 없는 트랙. 장르 음악이 팝으로 변이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는 듯해, 적어도 이들이 퓨처베이스를 다뤄온 일련의 곡들을 놓고 봤을 때는 하나의 음악적 완성을 말해도 될 것 같다. 앨범의 한복판에서 ‘Singularity’와 ‘전하지 못한 진심’ 사이에 위치한 ‘Fake Love’가 전작에서 들을 때보다 훨씬 처연하고 촉촉하게 들리는 것도 흥미롭다. 전작에서 ‘Magic Shop’의 환한 자기 긍정이란 역할을 ‘Answer: Love Myself’가 수행하며 디스크가 마무리되는 것도 근사한 결말. 느긋함과 에너지, 서정과 정념이 교차하는 커다란 중반부는 놓쳐선 안 될 멋진 대목이며, 1번 디스크의 자체적인 기승전결 중 ‘전’에 배치됐으나 음악적으로는 ‘승’을 마무리하기도 하는 ‘Trivia 轉 : Seesaw’도 두고두고 애청할 만한 트랙이다.
심댱: ‘Idol’만 놓고 볼 때는 참 복잡미묘하다. (아이돌로지에서 구태여 밝히기 뭣하지만) 아이돌은 케이팝의 큰 파이를 차지하지만, 종종 부정적으로 취급되곤 한다. 이를테면 아이돌은 상업성이 짙고 예술적이지 않은 존재, 공장식 시스템으로 강화된 인간병기로 비추어진다. 하지만 BTS는 그들의 원류인 케이팝과 아이돌을 부정하지 않는다. 빌보드와 전 세계가 주목하기 때문이든 아니든지 간에 말이다. 어쩌면 모두가 주목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더 그러쥐는 것일 수도 있지만. 사투리로 지역성을 보여주면서도 청년의 치열한 고민과 질주를 첨단 사운드에 얹어 똑바르게 보여주는 것이 필자가 알고 있는 BTS의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 올곧게 보여주는, ‘진정성’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일 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과감함에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어째선지 그들의 진정성에 의문이 든다. 기성세대에게는 놀라움을, 전 세계에는 신선함을 불러일으킬 ‘한국스러움’을 눈치껏 알아서 끼얹은 것 같다. 노림수가 빤히 보여 억지처럼 보이는 이런 모양새가, 마치 전 세계의 눈치를 보면서도 ‘I don't care’를 외치는 듯한 광경이 모순적이다. 그저 꾸준히 자기의 길을 보여주어도 모자랄 빛남인데도 이래서 케이팝이지, 라는 걸 (의도한 것이 아닐지라도) 보여주기 때문이다. “Love Yourself”로 이야기해왔던 자기애와 사랑, 그리고 젊음을 마무리하는 데 너무 반짝이를 뿌린 것이 아닌가 싶다. 당연히 그 반짝이 때문에 BTS의 스토리텔링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Euphoria’로 열고 ‘Answer : Love Myself’로 닫는 A 사이드의 구성이 자못 매끄럽다. 방탄소년단이 BTS가 되며 세계적으로 받은 주목을 아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로 인해 흔들리지 않길 바란다. 물론 잘 해내겠지만, ‘Idol’의 화자는 이런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승승장구하겠지만 말이다.
오요: “Love Yourself” 시리즈를 통해 발매한 두 장의 음반(“Love Yourself 承 'Her'”, “Love Yourself 轉 'Tear'”)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곡들만을 골라 음반을 관통하는 일관된 분위기와 정서의 흐름을 고려하여 세심하게 배치했다. 데뷔 초반 그룹이 내세웠던 힙합은 래퍼 멤버 개개인의 믹스테입으로 대신하고 퓨처 계열 전자음악과 EDM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완성된 방탄소년단 음악의 집대성이라 할 만한 앨범이다.
조성민: 타이틀곡 ‘Idol’은 규모가 큰 스타디움 공연에 특화된 무드로, 반어적 제목답게 정교한 케이팝 아이돌식 칼군무보다는 차라리 싸이나 빅뱅과 같은, ‘인싸’들도 거북하게 듣지 않을 법한 댄스 가요의 영역 안에 있다. 뮤직비디오 후반부에 등장하는 플래시몹 군무 장면에서도 이 곡의 용도를 알 수 있는데, 해외에서 인기를 얻은 뒤 타이틀곡으로 내놓았던 ‘피 땀 눈물’이나 ‘Fake Love’와 달리, 줄곧 커플링으로 내세웠던 ‘Not Today’, ‘MIC Drop’과 궤를 맞춘 트랙. 뮤직비디오에서 ‘코리안 사이버 펑크’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베이퍼웨이브 이미지는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고민이나 걱정은 그다지 크게 하지 않고 사용된 것으로 보이고, ‘한국적임’을 강조하기엔 아프리칸 리듬이 뇌에서 다른 모든 것을 밀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이 콘서트장이든, 스포츠 경기장이든, 하여튼 ‘스타디움’에서 틀면 좋을 법한 노래. 스타디움이 야구만 하는 기 아니고요, 예를 들면 방탄이 쑈를 한다, 땐쓰를 한다, 그럼 그기서 할 수 있는 기예요.
마노: 준수한 만듦새의 트로피컬 하우스 트랙이고 멤버들의 수행력도 나쁘지 않다. 단지 두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우선은 이런 트랙은 너무, 너무 많다 못해 넘쳐나서 큰 변별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그렇다고 해서 소위 ‘괴작’을 내놓으라는 것은 아니다, 전혀!). 그리고 아무리 9월까지 더위가 이어진다고는 하지만 발매 시기가 여름 끝자락이라는 점. 모처럼의(!) 웰메이드 데뷔 싱글인데, 발매 시기가 조금만 더 당겨졌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더 좋은 차기작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사장님, 이래서 발매 시기가 중요한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미묘: 무엇보다 멤버들의 음색과 발성이 자리에 고쳐 앉게 한다. 간혹 퉁명스럽게 들릴 정도로 굵고 선명한 음색이 곡 전체에서 들려와, 이런 목소리를 가진 걸그룹을 만나는 게 얼마만의 일인가 싶어진다. 가창력에 자신 있는 듯 음색의 배리에이션도 꽤 이뤄지고, 가성이나 떠들썩한 떼창 등도 효과적으로 배치돼 질릴 틈을 주지 않는다. 다만 그런 장점이 두드러지는 만큼 약간의 음정 불안이 1%를 채워주지 못하고, 후렴의 ‘콜’에 해당하는 가성이 좀 더 시원하고 자신 있게 뻗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어쩌면 곡에 충분히 익숙해지기 전에 다소 급하게 녹음한 건 아닌지. 가장 길게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은 데뷔 직전이게 마련이니, 시즌성 트랙으로 데뷔를 끊기보다는 자기 색을 보다 확실히 드러낼 만한 기획이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하지만 비교적 느긋한 템포 위에서 역동적이면서도 싱그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최근의 트렌드 흐름에서 좋은 가능성을 찾아낸 부분이라 할 때, 팀의 강점이자 특색인 목소리를 활용할 만한 기획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약간의 안정성을 더해서 자신 있게 치고 나오는 차기작을 기대하고 싶다.
오요: 트로피컬 하우스는 이미 케이팝 아이돌이라면 반드시 한 번씩은 거쳐야 하는 장르가 되어버렸다. 트로피컬 하우스가 이렇게 사랑을 받는 데에는 여름철 케이팝에 필수적인 계절감과 청량함을 제일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 장르적 특징이 뚜렷해 대형기획사와 중소기획사 간 프로덕션 규모의 차이가 크지 않게 느껴진다는 점 등이 있을 것이다. 얼라이크의 ‘Summer Love’는 그런 배경에서 등장한 트로피컬 하우스 트랙이다. 멤버들의 보컬이 꽤 안정적인데 다른 장르의 곡에선 어떠할지 궁금해진다.
미묘: 착잡한 마음은 그리 기복이 크지 않은 구조 속에서 담담하게 흐르다가, 계속 이어질 것만 같은 마무리로 멈춰선다. 하지만 평온한 노래이지만은 않다. 후렴의 도입부는 꽤나 애절하고, 이어지는 멜로디는 레이나가 너무나 편안하게 불러내지만 성큼성큼 도약해 내려갔다가는 올라오며 감정을 깊숙이 훑고 간다. 이를 너무 과장하지 않은 것에서 이 곡이 갖는 세련미와 위로의 메시지 모두가 어우러진다. 그것은 분명 미덕이지만, 반주의 리듬이 다소 너무 편안하진 않은지 하는 생각도 든다. 곡의 리듬감이나 질감도 소품으로만 느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곡의 흠결이라기보다는, 작사 작곡에 참여하고 매끄러우면서 깊이 있게 노래를 불러낸 레이나에게 조금 더 많은 귀가 기울여졌으면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마노: 신화의 미덕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고개를 들어 이 앨범을 들으라 하겠다. 20년째 현재진행형으로 장수 중인 유일무이의 아이돌 그룹이 현역으로서 건재할 수 있는 것은, 무리하게 ‘젊은 척’하지 않되 그럼에도 트렌디함을 잃지 않으려 끊임없는 업데이트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잘 관리된 ‘중년돌’(이들이 어느덧 40대에 접어들었다니!)로서의 원숙함을 유감없이 과시하는 점에서 신화라는 그룹의 진가와 존재 의의가 드러난다. 데뷔 20주년 스페셜 앨범으로 기획된 이 앨범 역시 그 맥락에 있다. 음악은 매끈하고 트렌디하게 잘 빠졌지만, 신화의 정체성과 역사를 무너뜨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가지런히 잘 정돈되어 있다. ‘칼군무’나 아크로바틱한 안무는 없지만, 대신 그 자리를 ‘으른섹시’와 노련한 원숙미로 가득 채웠다. “난 겪을 만큼 다 겪었는데/네 앞에서만 아이가 돼”라는 가사를 대체 세계 어느 보이밴드가 이토록 ‘진정성’ 있게 소화할 수 있단 말인가. 신화라는 그룹의 현재는 물론, 과거와 미래까지 엿볼 수 있게 하는 한 장. 그리고, 단언컨대, 이 씬은 물론 전 세계 어디에도 신화의 이름을 대체할 그룹은 없음을 철저히 증명해내는 한 장.
서드: 파격적인 변화나 모험은 없되 무리를 하지도, 억지를 쓰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신화의 노련함을 발견한다. 천천히 나긋나긋하게, 그러나 지루하지 않게 신중히 상대를 유혹하는 이미지의 ‘Kiss Me Like That’은 나이가 들어가지만 굳이 이를 감추거나 젊어 보이려 애쓰지 않는 신화라는 그룹의 색깔과 닮아 있다. 지난 ‘Touch’는 장르가 완전히 그룹의 색깔에 녹아들지 않은 인상에 순전히 개인적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망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그새 또 다른 옷을 맞춰 입듯 자신들의 멋을 고수하면서 그 속에서 꾸준히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이 매번 신화의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동력이다. 혹자는 신화에게만 과한 의미부여를 하는 게 아니냐 반문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단 한 번의 마침표도 찍은 적 없는 1세대 아이돌인 동시에 최초의 ‘중년돌 그룹’이 되어가고 있고 그 점에 주목하게 될 수밖에 없다. 판을 뒤집어 놓기보다는 시시각각 뒤집히는 판 위에서 무너지지 않고 지속하는 법을 신화는 꾸준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심댱: ‘현역 아이돌’이나 ‘현재성’이라는 단어를 피하며 무언가 다른 것을 찾으려 했지만 20년이라는 세월을 무시할 수 없었다. 사실 그 시간이 있기에 신화의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니까 말이다. 이번 앨범에는 아이돌이라는 위치에서 해낼 수 있는, 상상의 여지가 인상적이다. 과하지도 않고 질척이지도 않는 매혹은 단순한 백그라운드에도 꿈틀거리고 ‘상상하는 레벨의 끝을 보여주겠다’는 가사는 그저 장난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타이틀곡이 가진 절제미와 관능은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수록곡 ‘Level’에 주목하고 싶다. 판타지를 실현해주는 대상이 바로 아이돌임이 잘 드러나며, 그 명제를 너무도 잘 아는 사람이 이를 발현하기에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쇼를 더욱 화려하고 멋지게 이끌어내는 능숙함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신화가 구현하는 감각에는 안정이 느껴져 그저 편하게 환상을 누려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대로 아이돌을 “겪을 만큼 다 겪었는데”도 말이다. 너무도 근사한 아이돌 판타지에 감동하며 pick! 을 남긴다.
조성민: 다른 1세대 아이돌들이 속속들이 돌아오는 가운데서도 신화가 유독 돋보이는 이유는 역시 ‘현재성’에 있겠다. 단절된 적 없이 쌓여온 신화의 디스코그래피는 신화가 어느 시대의 아이돌과 경쟁하더라도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가 되었다. ‘신화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함과 동시에 현시점에 가장 유행하는 사운드와 비주얼을 찾아와 갈아입는 것은 케이팝 아이돌 역사 20여 년 중에서도 신화밖에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20주년 스페셜 앨범 “Heart”는 현세대 아이돌이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법한 세련된 케이팝으로 채워져 있지만, 결국엔 신화가 제일 잘 소화할 수밖에 없는 곡들로만 잘 배치되어 있다. 20주년 기념 앨범에서도 여전히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연인’으로 남아, 오래 알고 지내서 가장 편안하지만 절대로 구질구질하거나 구차하진 않은, 로맨틱하게 “Kiss me like that”이라고 말해주는 아이돌이라니. 일부러 하고 싶어도 이렇게 이상적일 순 없겠다. 음악과 무대에서만큼은 언제나 ‘현역’인, 이제 겨우 스무 살인 신화의 창창한 앞날을 응원하고 싶다.
미묘: 작사 작곡 편곡에 모두 참여하며 싱어송라이터를 표방하고 있는 성경의 셀프릴리즈 데뷔 디지털싱글. 서글픔과 비장함을 질척이지 않게 담아낸다. 보컬도 과장되지 않고 담담하지만 여차할 땐 꽤 호소력 있는 느낌을 내주기도 한다. 다만 담담하기보다는 뻣뻣하게 들리는 몇 대목은 상당히 아쉽다. 너무 ‘Hear and now’로 들리는 제목이자 훅인 ‘Here and now’도 그렇다. 역동적인 사운드 속의 침착한 보컬리스트는 과잉의 미학인 케이팝에서 언제라도 환영이지만, 당당해서 담백하다기보다는 뭔가 덜 열려서 택한 차선책처럼 들리기도 한다. 속생각이 많을 것처럼 들리는 음색에서 꽤나 가능성을 엿보게 되기 때문에 더 아쉽기도 하다. 후렴의 사운드는 살짝 밀린 비트의 그루브와 부글대는 워블 신스가 제각각은 매력적이지만 좀 더 깔끔한 풍경을 그려도 좋았을 것 같다.
마노: 담백하고 슴슴한 보컬과 무리 없이 어우러지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세피아 톤의 트랙들로 앨범을 채웠다. 〈프로듀스 101〉 시즌 2 시절부터 김용국이 각광을 받은 이유란 그의 따뜻하고 아련한 음색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일관적인 색채의 곡들 역시 어디까지나 그 음색을 담담히 편안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흔히 ‘불금’으로 대표되는 금요일 밤이라는 소재를, 어쿠스틱 기타와 첼로를 이용하여 쓸쓸하고 차분하게 풀어낸 것도 흥미로운 지점.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톤이어서 편안하게 릴랙스된 기분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겠으나, 자칫 단조롭고 심심하게 비춰질 수 있는 점은 매력이면서 동시에 단점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요즘처럼 빽빽한 사운드로 넘쳐나는 씬에서 이 미니앨범이, 김용국이라는 아티스트가 가진 변별점이 확실하다는 건 분명하다. 말랑말랑 촉촉한 이지리스닝 계열 트랙 ‘Be with you’를 놓치지 마시라.
서드: ‘Friday n Night’은 첼로와 어쿠스틱 기타의 조화가 마치 영화 OST 같은 느낌을 주는 가운데 김용국 특유의 나른한 보컬이 얹힌 모양이 썩 나쁘지 않다. 아직 그룹 속 그의 모습이 더 익숙하지만 앞으로의 솔로 활동에 기대감을 갖게 하는 곡.
오요: 김용국은 발라드와 미디움 템포로 채워진 이 음반 내에서 한 번도 고음을 내지르거나 가창력을 과시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넘쳐나는 소리를 걷어내고 간결한 어쿠스틱 기타와 비트 위로 그가 부르는 노래는, 각종 가요 경연 프로그램이 만들어 낸 ‘뛰어난 가창력이 곧 좋은 음악’이라는 인식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랜디: 셀프 프로듀싱 걸그룹이 또 등장했다. 〈댄싱나인〉 출신의 한초임이 직접 꾸리고 참여한 3인조 그룹 카밀라의 데뷔 싱글. 슈퍼주니어의 신동이 디렉팅한 뮤직비디오도 화제를 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 50초가 더할 나위 없이 좋으나, 안정적인 랩 버스 뒤에 따라오는 메인 보컬의 톤이 앞선 두 사람과 어우러지지 않아 곡의 집중도가 부웅 뜬다. 후렴 전 파트를 반반씩 나눠 부를 수 있는 묵직한 보컬이 딱 한 명만 더 있으면 좋았을 텐데. 후렴 역시 메인보컬인 정유나의 목소리를 가장 주된 소스로 썼으나, 곡의 무게감에 비해 지나치게 가볍고 뒤를 날리는 스타일이라 적절한 해소가 되지 못하고 있다. 후렴을 안정적으로 꽉 잡았더라면 저음역대의 한초임과 정유빈으로 출발해 곡의 분위기를 확 바꿔버리는 정유나의 톤도 곡의 텐션 빌더로 써먹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좋은 곡인데, 더 완성도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안무와 비주얼도 훌륭한데, 음악이 아쉬워 굳이 적는다. 대규모 자본 없이 맨땅부터 시작한다는 그들이기에 격려의 의미로 디스커버리를 붙인다.
마노: 기괴한 키치함을 표방했던 히치하이커의 전작들을 생각하면 다소 김빠지는 결과물일 수도 있겠으나, 애초에 뮤직 페스티벌의 테마곡으로 기획된 싱글임을 상기하면 당초의 목적에 매우 잘 부합하는 트랙이다. ‘이쯤에서 빌드업이 되어야 하고 여기선 드롭이 되어야’라는 일종의 기대심리를 결코 배신하지 않는 곡 구조를 취하고 있되, 보컬을 사정없이 비틀고 뒤집어엎으며 말초신경을 사정없이 자극하는 부분에서 ‘역시 히치하이커’라는 생각이 들 만하다. 써니, 효연, 태용 세 피처링 멤버들 역시 래핑과 챈팅(chanting)의 경계를 넘나들며 각자 제 역할을 충실히 잘하고 있다. 분위기를 고조시킬 파티 넘버로 손색이 없는 트랙.
미묘: 편하게 쓰인 듯, 편하게 흘러가는 R&B. 그러나 편안하게 흘려 넘겨도 될 법한 분위기에 비해 멜로디는 제법 질감의 기복을 그리고 있어서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찰랑찰랑한 어쿠스틱 기타의 질감이, 다이내믹이 크지 않은 가성을 잘 받쳐준다. 루시의 랩은 피처링에 가까운데, 실력이나 음악적 효과보다는 조금 왈가닥 같은 소녀의 캐릭터를 보여준다. 남성의 가성 보컬과 툴툴한 여성 랩이라는 조합이 신선한데, 그것에 비해서는, 아티스트 운용은 다소 안전하게 들린다. 두 사람 모두 꼭 서로가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다.
랜디: 작년부터 프리데뷔 싱글로 대중과 만난 로시가 드디어 정식 데뷔 미니앨범을 발매했다. 신승훈의 프로듀싱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그답게 전 수록곡에 신승훈의 이름이 보인다. 본인의 데뷔 적부터도 뛰어난 송라이팅 능력으로 주목받은 신승훈은, 이만큼이나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가 손댄 모든 음악에 그 특유의 지나침 없는 서정을 담아낸다. 시그니처가 슴슴함이라니 이렇게 모순된 특징이 있을 수 있나 싶지만, 다른 가수를 프로듀싱 할 때에 간 안 한 밥 같은 그 무던함이 오히려 신인의 목소리를 부드럽게 포용하고 있다. 윤종신이 김예림의 첫 싱글을 냈을 때 ‘나 윤종신 곡이다’ 하는 느낌으로 가득하던 것과는 또 대비되어 흥미롭다. 멜로디가 무난해서 매 곡이 장르 클리셰처럼 들릴 위험이 있기는 하나, 김이나나 원태연 등이 붙인 가사가 곡마다 각자의 색깔을 더하고 있어서 편안하게 오래 들을 수 있겠다. 다만 타이틀곡 ‘Burning’은 굳이 트로피컬이 아니어도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 케이팝 가수를 내려면 댄스를 안 할 수는 없을 것이란 판단이었겠지만. 너무 신승훈의 얘기만 한 것 같아 로시에게 미안한데, 신승훈이란 이름은 만일 그늘이 되더라도 비교적 나긋하고 투명한 그늘일 테니, 금방 자기 실력만으로도 주목받을 수 있을 거라 전하고 싶다.
마노: 분명 젊고 재능 많은 아티스트이긴 하나, 두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다. 우선은 (많이 언급되었다시피) 누군가의 ‘뮤즈’라는 말이 자칫 신인 아티스트에게 그늘과 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 또 하나는, 굳이 꾸며 부르지 않아도 뛰어난 가창력을 충분히 알 수 있는데도 묘하게 기교를 부리는 듯한 부분이 자꾸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특히 ‘Stars’ 같은 과거에 공개된 곡들에서 유독 그러한 현상이 심하다). 이미 그 자체로 빛나는 음색과 가창력을 가지고 있는데, 꼭 굳이 ‘잘 부르는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을까. 좀 더 담백하게 불렀으면 좋지 않았을까 아쉬워지는 부분이다.
심댱: 작년 11월에 공개된 프리싱글 ‘Stars’에서부터 눈여겨보았던 로시의 데뷔작, “Shape of Rothy”다. 발라더가 기획한 아이돌은 어떨지 뚜껑을 열어보니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함이 느껴진다. 소울풀한 보컬을 가진 여성 솔로, 바로 이하이가 차지했던 공간에 노크를 하는 듯하다. 블랙뮤직이 확연히 느껴지는 그보다는 더 가요적인 접근으로 다가온다. 이것이 연한 라떼인지, 아니면 밍밍한 커피우유일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말이다. 공기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라 음을 누를 때나 영어를 발음할 때 매력적이다. 수록곡 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바로 그 점을 강조한 트랙 같은데, 중간중간 등장하는 영어에서 그 의도가 읽혀 살짝 유치하지만 깜찍한 캐릭터에 설득된다. 다만 연상되는 인물이 있는 만큼 뚜렷한 차별점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소개된 것처럼 신승훈의 뮤즈나 ‘언뜻 이하이’가 아니라 정말 앨범명처럼 ‘로시의 형태’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미묘: 메이크스타의 ‘응용편’ 같은 데뷔 기획에 하우스룰즈의 프로듀스, 기대감이 높아질 만하다. 결과물에서 확인하게 되는 건 역시 좋은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케이팝을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이다. 하우스룰즈의 강점은 가요에서 살짝 비껴난 감성과 청자를 압도하지는 않는 그루브라는 나름의 균형점이다. 신인 걸그룹의 데뷔 타이틀곡은 그런 성향에 가볍게 들어맞을 만한 것도, 팔만 걷어붙인다고 달성될 만한 것도 아니다. 수많은 ‘노오력’이 엿보이지만 그중 뭔가를 해결해주는 것은 딱히 없다. 곡은 산만하고, 어정쩡하고, 사운드가 노래를 잡아먹지만, 확실하게 임팩트를 주지도 않는다. 이 모든 것은 결국 톱라이너로서의 하우스룰즈가 하우스를 해야 할 사람이라는 뻔한 사실을 가리킨다. 그 외에, 3번 트랙이 곡목 표기를 조건으로 유튜브상에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라이선스라는 점 등 미디어 활용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가 눈에 띈다. 아쉽지만 대부분이 ‘소통’, ‘소셜’ 같은 키워드 프레젠테이션 용도를 넘어설 만한 본격적 시도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음악과 전략 모두 보다 많은 고민이 수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를테면 우선 2010년형 가사를 쓰지 않는다든지 말이다.
서드: 그룹 활동 때와는 다른 보컬 운용에 대해 스스로 어떤 식으로 의식하고 작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백현만의 예민한 음색 사이사이 ‘이렇게 편안한 이미지의 보컬이었나’ 싶은 부드러움이 교차하는 매력을 발견한다. 그러고 보니 발라드곡을 부를 때와 아닐 때 그의 보컬이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을 오고 갔다면 이번엔 그 중간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인상도 든다. 로꼬와의 목소리 대비감도 좋아서, 과하지 않은가 싶은 사운드임에도 피로감을 느끼지 않고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게 되는 매력이 있다.
조성민: 엑소나 첸백시에서는 쉽게 느끼지 못했던 백현 보컬의 장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곡. 어쩌면 백현이 데뷔 이래 불렀던 모든 곡에서 보여줬던 장점들을 모아둔 곡일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데뷔 7년 차의 능숙함까지 더해졌으니, 가수 백현의 커리어에는 꽤나 중요한 포인트가 될 듯한 싱글.
심댱: 두 사람이 보여줄 것 같은 그림 그대로 그려낸다고 해도 탁월하다면 괜찮다. 타코처럼 짭짤한 라비의 랩에 꿀처럼 달콤하게 흘러가는 양요섭의 목소리를 찍어 먹으면 이런 건가요. 여름의 끝자락에 접한 단짠단짠 케이팝 조합이었다. (그냥 편하게 쓴 곡에 이렇게 구구절절이 해석하는 것도 일종의 케이팝처럼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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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ply on “1st Listen : 2018년 8월 하순”
방탄소년단 신곡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견해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은 당연히 하고 있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심댱’님을 제외한 나머지 필진분들의 의견에 도저히 공감이 안 가네요. 이번 ‘IDOL’이란 곡은 방탄의 역대 최악의 곡이라 해도 좋을 만큼 ‘뻔하고 속보이는 기획(한국적인)’에 너무나도 예측가능하고 익숙한 멜로디라인(워어우워우워우, 덩기더럭쿵더더덕)을 가졌다고 보거든요. 게다가 가사도 ‘손가락질 해,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네 나를 욕하는 너의 그 이유가 뭐든 간에’라며 과거의 논란을 세탁하는 듯한 뉘앙스고요. 특히 미묘님의 평론글은 평소의 분석가다운 냉정한 태도와는 달리 굉장히 무언가를 의식하시는 듯한 인상을 많이 받습니다.
요즘 방탄에 대한 평론가분들의 글을 보면 이제 그들은 ‘성역’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9294&bigcateidx=19&subcateidx=71&view_tp=1) 평소 냉철하던 평론가분들이 방탄이라는 거대한 상징 앞에서는 모조리 그 냉철함들을 내려놓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아마 제가 보지 못하는 방탄의 가치들을 평론가분들의 명민함이 발견하신 거겠죠? 그렇게 믿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