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브레이브걸스, 세븐틴, MXM, (여자)아이들, 켄, 베리굿, 노래하는 말괄량이, 리브하이, 임팩트, 효린, 슈퍼주니어-D&E, 코코, 빅플로, Produce 48, 이달의 소녀, 업텐션의 음반을 다룬다.
미묘: 트로피컬 하우스의 자장 내에 있기는 하나 업템포로 달구던 원곡을 한층 시원하고 밝은 사운드로 바꿨다. 뜨겁고 강렬한 하우스의 여름에서, 보다 명시적인 휴양지 느낌을 내줘야 하는 여름으로 시대의 이동이 있었다고 할까. 분위기의 전환 자체는 확실하다. 뮤직비디오도 분위기가 느긋하고 가벼워진 게 밉지 않다. 그리고 비트의 시원하게 후려치는 맛이나, 선명한 훅의 히스테리컬하게 지르는 느낌은 이 곡의 여전한 장점이다. 다만 그것이 새롭게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거기서 ‘물빛 피아노’란 사실 좀 게으른 선택 같기도 하고, 색소폰은 할 말 없는데 마이크 쥐여준 사람 같은 순간들이 있다. 너무 좁은 공간에 욱여넣은 듯한 리듬의 멜로디가 멤버들의 노래를 ‘감상’할 기회를 다소 빼앗기도 하는데, 기왕 새로운 버전이라면 보다 트렌드 영합적인 방향을 취할 겸 템포도 살짝만 낮춰봤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그런 자잘한 아쉬움이 자꾸 눈에 띄는 것 역시도, 이 곡이 원래 썩 괜찮은 곡이기 때문이다.
마노: 너무 당연한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타이업된 웹드라마와 매우 많이 닮아 있다는 인상을 주는 곡이다. 제목 그대로 10대의 시선으로 그려낸 가사는 어리고 풋풋하지만 유치하거나 오글거리지 않고, 흔히 하이틴 드라마 OST 하면 떠올릴 법한 클리셰를 절묘하게 비껴간다.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도 그 자체로 충분히 캐치한 곡이다. 원작이 10대들의 뜨거운 지지를 얻은 것은 또래의 이야기를 유치하거나 뻔하지 않으면서 신선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냈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이 곡의 미덕 역시 정확히 그 지점에 있다. 원작을 보지 않았어도, 10대가 아니더라도, 일청을 권할 만한 웰메이드 트랙.
미묘: 웹드라마 수록곡이라 놓치고 넘어가기 쉽지만 정말 좋은 곡이다. 딱 기분 좋을 만큼의 레트로 질감이 오밀조밀한 리듬감 속에 현대적으로 출렁인다. 쓰라림 속에서 달콤함을 찾아내는 가사와 멜로디는 참 예쁜 십 대 아이를 떠올리게 한다. 의미와 매력, 리듬으로 꽉 차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넘치지 않는 세련된 한 곡.
조성민: 세븐틴이 원래의 디스코그래피상에서 보여주던 톤앤매너를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드라마의 테마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 드물게 잘 만들어진 OST. 발랄한 듯 심각하고, 쾌활한 듯 어두운 곡조는 그 자체로 사춘기 감성을 담아낸다. 이것이 드라마 내내 ‘한 곡 반복’임에도 전혀 지겹게 들리지 않는 이유 아니었을까. 태초부터 틴에이지 타깃 상품이었던 아이돌팝에 한해서는 ‘급식 픽’을 무시해선 안 된다.
마노: 기존 발매곡을 제외해도 12곡, 포함하면 14곡이라는 볼륨에 우선은 놀랐다. 막상 들어보니, 차려진 것은 많은데 딱히 손이 가지 않는 모양새라 조금 김이 샌다. 고만고만한 트랙이 끝도 없이 이어지다 보니 바짝 집중하게 만들기는커녕 루즈하게 늘어진다는 인상만 준다. 그나마 동현의 자작곡이면서 솔로곡인 ‘천연 곱슬’이 귀를 잡아끄는 정도(이미 팬미팅에서 공개한 적 있는 곡으로, 유명 웹툰 원작의 드라마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심지어 맨 끝에 위치한 기존 발표곡 두 곡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유기성과 흐름을 기어코 끊어 먹고 만다. 이렇게 느슨한 풀렝스를 내느니 차라리 꽉 찬 EP를 몇 장 내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흥청망청 파티장에서 듣고 싶어지는 ‘노는 물이 달라’와, 서늘하고 차분하게 무드를 환기하는 ‘Dawn’이 들을 만하다.
조성민: 태초에 듀스로 시작하여, 언타이틀도 보고, 슈프림팀도 보고, 인피니트H, JJ 프로젝트, MOBB도 본 대중의 눈에 MXM이 얼마나 특별하게 보일 수 있을까. 데뷔 2년 차, 두 장의 싱글과 두 장의 EP, 그리고 정규 앨범에 이르도록 뾰족하거나 날카로웠던 순간 없이 무난한 디스코그래피를 쌓아가는 것을 ‘성장’이라고 주장하려면 지금보다 더 강한 설득력이 필요하겠다.
랜디: 들을수록 (여자)아이들은 멤버간 보컬 케미스트리가 참 좋다. 같은 회사의 선배 그룹을 떠올려보면, 포미닛은 전체 멤버 중 철금성의 비율이 높아 리스크가 큰 조합이었고, CLC는 (엘키가 합류하기 전까지) 전체를 포괄해야 하는 승희의 부담이 컸다. 전작에 이어 이번 곡도, 매혹적이고 장식적인 톤의 민니에 뒤이어 또렷하고 힘 있는 테크니션 미연으로 텐션을 모았다가 낮은 오픈사운드 보컬 우기에서 청자의 긴장이 탁 놓이는 순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바로 후렴으로 드리블해가는 전개가 일품. ‘Latata’에서 보인 스파크가 ‘한’으로 확신이 되어간다. 의심의 여지 없이 2018년 가장 훌륭한 신인, 그리고 데뷔의 모멘텀을 이어가는 준수한 소포모어 싱글.
마노: 전작의 아성이 워낙 만만찮았기에 첫인상이 다소 시원찮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전작의 그늘에 가둬두기엔 곡 자체의 매력이 너무도 강렬하여 감히 외면하기 어렵다. 몇 번 듣는 것만으로 금세 뇌리에 박히는 멜로디의 힘이 특히 큰데, ‘Latata’에 이어 이번에도 작곡을 담당한 전소연이 얼마나 뛰어난 송메이커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조만간 모 그룹 이외의 크레딧에서도 자주 이름을 목격하게 되리라는 예감이 든다). 무엇보다 이 곡의 가장 큰 변별점이란, 데뷔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신인 여성 아이돌 팀이 여태껏 추구한 적 없는 어떤 지점을 파고든다는 것에 있다.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조만간 이 케이팝 씬에서 크게 한 획을 그을 팀이 되지 않을까 감히 예견해본다.
조성민: 여성의 중저음을 이렇게 우아하게 활용하는 아이돌팝을 듣게 되다니. 중후하게 울리는 피아노 위로 긴장감 있게 시작되는 절 구간은 이 곡이 그간의 케이팝 걸그룹들이 흔히 보여주던 것과는 전혀 결이 다른, 그러나 충분히 강력한 폭발력을 발휘할 에너지를 품고 있음을 시사한다. “널 잊으리라”라는 가사와 달리, 뒤이어 나오는 가성 파트와 같은 멜로디의 휘파람 소리는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이 곡의 가장 큰 미덕은 역시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음색으로 노래하는 멤버들의 보컬이다. 이상적인 어떤 상을 재현하기 위해 자신의 경계 밖을 향하며 불편과 불안을 감수해오던 이전의 걸그룹들과 달리, 본인들에게 가장 편안한 범주 안에서 움직이면서도, 그 영역 안에서만큼은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컨트롤하는 왕인 것처럼 충분한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지향점이 내부로 향하기에 결속력은 더 강해지고, 밀도는 더욱 단단해지며, 잠재력은 더욱 무궁무진해진다. 걸그룹 씬에 더 많은 ‘전소연’이 등장하길 기대해본다.
조성민: 보보의 원곡은 약간의 퇴폐미마저 느껴질 정도로 애절한 면이 부각되었던 곡으로 기억하는데, 리메이크 버전은 이상하리만치 명랑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회한, 한탄, 자괴 등이 녹아 있던 원곡에 비해, 리메이크 버전은 곡 제목이 ‘늦은 후회’였다는 것도 잊게 할 정도로 밝고 단정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원곡을 기대했던 이들은 햇살에 뽀송하게 마른 담요 같은 리메이크에 당황할 만도. 켄의 깔끔한 보컬은 흠잡을 데 없고, 새롭게 해석된 곡과도 어울리지만, 아무래도 원곡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어딘가 어색하게만 들릴 법하다.
랜디: 전작들을 들으면 분명 노래를 못하는 그룹은 아닌데, ‘풋사과’는 감상 내내 보컬 트랙이 노래에 방해가 된다. 보도자료가 이 곡을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이란 키워드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을 보며, 그걸 마케팅으로 쓰려 하다니 시대가 변하고는 있구나 싶다. 하지만 그 키워드를 전혀 충족하지 못하는 수동적 섹스어필로 가득한 뮤직비디오에 실망하게 된다. 보컬 디렉팅에 실패한 이유도 이것일 것이다. ‘진취적이면서 수동적으로 섹시하게’는 ‘심플하면서 화려하게’, ‘모던하면서 클래식하게’ 같은 진상 주문과 다를 바 없으니, 노래를 소화하는 베리굿 멤버들도 별수 없었을 것. 최초 프로듀서였던 고 주태영의 빈자리가 더없이 아쉬워진다. 수록곡 중에는 파트를 건너뛰며 변주되는 리듬이 흥미로운 ‘Give It Away’, 편안한 무드로 불러내 타이틀보다 훨씬 좋은 결과물을 얻은 ‘나와 나의 날’을 추천한다. 멤버인 고운의 자작곡이기도 하다.
마노: 풀렝스 앨범의 모범적인 나쁜 예가 있다면 바로 이 앨범이 아닐까. 우선은 타이틀곡부터 ‘풋사과’로 가능한 질 낮은 비유를 모조리 가지고 온 듯한 가사에 이마를 짚지 않을 수 없었다(신형과 빨간머리앤 콤비는 ‘과일 3부작’이라도 완성할 셈인 걸까. 적어도, 이 둘이 이전에 작업한 버스터즈의 ‘포도포도해’는 유치하게 들릴지언정 질이 낮지는 않았다). 앨범 흐름도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데, 처연하고 축축한 발라드 트랙 ‘다시 꿈꿀 수 있을까’에서 비슷한 무드의 ‘그놈의 사랑’까지는 매끄럽게 넘어가는 듯하더니 2절 코러스부터의 뜬금없는 업템포 전개로 아연실색하게 하는 식이다(도대체 언제 적의, 중반까지 발라드인 척하다가 ‘갑자기 분위기 댄스곡’이 되어 버리는 트랙이란 말인지!). 다양성이란 결코 유기성과 일관성을 잃으라는 말이 아닌데, 일단 닥치는 대로 차려 놓으면 풍성해 보이기는 하겠지만 그 속에 실속이 없으면 무슨 소용일까. 동화적인 색채의 ‘Mellow Mellow’ 같은 트랙이 아깝게 느껴질 지경이다.
조성민: 사장님의 저질 성희롱조 농담에도 웃어줘야 하는 여직원의 비애를 아이돌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느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만하시죠.
미묘: 작년에 데뷔한 노래하는 말괄량이가 4인조로 재편됐다. (여담이지만 영문명이 Singing Girls다.) 어쿠스틱 중심의 사운드는 자극이 적어 듣기 편안하다. 그런데 곡 자체는 구태의연한 편이다. 흥미로운 건 편안한 곡들이 곧잘 띠는 구태의연함보다는 저예산의 댄스곡들이 흔히 주는 구태의연함에 보다 가깝게 들린다는 점이다. 이들이 꼭 아이돌이라기보다는 팀명의 질감처럼 보다 가요적인 그룹이라고 할 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90년대까지의 기획사 주도형 보컬 그룹이 갖는 어떤 특별한 장점을 시장 내에서 또는 음악적으로 살리고 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멜로디라인은, 일정한 도약이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과하게 반복되는 등, 작곡 초심자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패턴을 따르기도 한다. 크레딧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데, 의아하다.
마노: 매장에서 흘러나올 것 같은 곡 분위기와, 커버아트 하단에 있는 모 기업의 로고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 관련 정보를 찾아봤다. 아니나 다를까, 리브하이가 해당 기업의 향기 브랜드(곡 제목과 이름이 같다)의 홍보모델이고, 브랜드의 로고송이 바로 이 싱글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런 역할과 기능에 매우 충실한 것은 장점이라면 장점일까. 단지, 한 번 들은 것만으로 이미 매장에서 쇼핑까지 끝낸 기분이 드는 곡이라 굳이 수고를 들여 또 찾아 들을 것 같은 기분은 들지 않는다.
미묘: 딥하우스의 향취가 꽤 본격적인데, 그래서 새벽 공기같이 축축한 분위기가 그윽하다. 세상을 적대하면서 상대에게 매달리는 절박한 감성의 가사 내용도 곡의 무드를 타고 한껏 쓸쓸한 느낌을 내는 게 상당히 잘 어울린다. 이를 매우 가요적인 멜로디 감각으로 잘 살려내면서도 불필요한 과장은 없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다. 내던지는 듯한 랩이나 비트와 감성을 조합하는 방식 등은 방탄소년단이 감성적인 퓨처베이스를 활용하는 방식에서 힌트를 얻었을까? 다만 역시 가요로서의 임팩트는 약해질 수밖에 없는데, 이를 의식하면서 딥하우스 느낌으로 풀어낸 것이 “너너너” 샘플인 듯하다. 하지만 듣는 이에 따라서는 까실까실하기보다는 다소 비호감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기우도 드는 부분. 지금 임팩트의 색깔이 무엇이냐를 논하기는 무색한 것도 사실인데, 그와 별개로 꽤 좋은 느낌의 곡을 내놓았다. 임팩트라는 틀에 담을 수 있는 것들을 새롭게 갖춰나가는 데에 기여할 수도 있는 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랜디: 여름마다 늘 내던 그 음악을 다시 가져왔다. 편하고 즐거운 멜로디에 브라스로 채워서 흥을 부추기는 제2, 제3의 ‘Loving U’ 혹은 ‘I Swear’다. 클리셰가 아니라 말할 순 없겠지만, 몇 해의 여름 동안 씨스타로 학습된 귀에는 원래 있던 곡처럼 쑥 들어온다는 것이 장점. 이만큼의 썸머송 레거시를 세워놓은 씨스타를 리스펙트하는 의미에서 군말 않고 감사히 듣고픈 곡.
미묘: 낙천적이고 명쾌하면서도 친근하게 감겨 오는 멜로디, 적절히 치고 올라오며 템포를 잡아주는 베이스가 기분 좋다. 다이너, 스케이트파크 등 서버비아를 배경으로 편안하면서도 흥겹게 펼쳐지는 뮤직비디오도 즐겁다. (다만 (타국의 (기호화된)) 일상이 뮤지컬적 장면으로 변화하는 초반부의 짜여진 역동감이 후반까지 이어졌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효린의 보컬은 가볍고 매끄러우며 상쾌한 매력으로 노래를 지배할 수 있다는, 댄스 가수로서 굉장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 특성을 십분 발휘한 곡이라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랜디: 유닛 부자 슈퍼주니어에서 가장 팝적인 목적점을 가진 D&E, 그리고 트로피컬한 ‘요즘 노래’로 가득 채워 돌아온 이들의 두 번째 미니앨범. 데뷔한 지 10년이 넘어 이제 현상 유지만 해도 건재하다는 찬사를 받는 입장에서 포기 않고 계속해서 트렌드를 업데이트한 음악을 하려고 한 점이 고무적이다. 둘 다 퍼포먼스를 잘하는 멤버들이라 무대를 보는 재미가 있다. 이번 곡은 직접 작사 작곡한 동해 그 이상으로 은혁이 곡 특유의 산뜻하고 라이트한 느낌을 잘 소화하고 있다. 워낙 은혁 춤의 특징이 신체를 가볍게 쓰는 방식이기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는 듯. 그리고 이것은 여담인데, ‘머리부터 발끝까지’는 케이팝을 즐겨 듣는 외국어권 사람들이 잘 아는 표현 중 하나다. 그만큼 케이팝 가사에 많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익숙하다는 말도 되지만 너무 흔하게 쓰인다는 말도 되니, 가사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케이팝 창작인들은 참고하시라.
미묘: 꽤 기분 좋은 결을 보여주는 대목들이 있다. 이를테면 트로피컬 하우스에 대한 피로감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마림바를 래칫으로 담아낸 ‘Rum Dee Dee’. 과하게 특별한 것을 하려 하기보다는, 트렌드에 맞추는 것도 뒤처지는 것도 크게 중요치 않다는 듯한 느긋한 모습이다. 다만 느긋함이 과한 것인지 목소리의 어딘가가 조금 맥 빠지게 들리기도 한다. 장르적, 감성적 집중도 역시 유닛의 EP에 대한 기대치보다는 낮은 편. 물론 이제 와서 슈퍼주니어의 유닛이 웬만한 아이돌의 유닛보다는 독자적인 아티스트의 활동상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다정한 느낌의 화성감으로 퓨처베이스를 산뜻하게 풀어낸 ‘여름밤’은 이미 서늘해진 날씨에도 잠시 마음을 내맡길 만하다.
마노: 코코소리라는 그룹으로 보여준 일련의 이미지와 피처링의 마이크로닷이 일견 매칭이 되지 않아 잠시 당황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편안하면서도 산뜻하고 사랑스러운 팝 넘버인 데다, ‘잘 어울릴까?’ 잠시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둘의 케미스트리도 좋다. 제목부터 달콤한 러브송을 표방하고 있지만, 몸서리가 쳐지고 손발이 오그라들도록 사정없이 단 느낌이 아니라 적당히 입안에서 살살 녹는 종류의 달달함이라 듣는 내내 기분이 무척 편하다. 무엇보다, 이제서야 비로소 코코라는 아티스트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지금까지 편협한 무언가에 갇힌 나머지 미처 목소리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일 수도. 반성의 의미로, 그리고 이 매력적인 트랙을 그냥 지나치지 말아 달라는 의미로 Discovery!를 선사한다.
조성민: 깔끔하고 산뜻한 R&B 팝. 케이팝에서 쉽게 보기 힘든 사랑스러운 커플 댄스를 보게 되어 기분이 좋아지는 가운데, 코코의 보컬과 마이크로닷의 래핑 또한 훌륭한 케미스트리를 보여준다. 더 많은 무대에서 보고 싶은 작품.
미묘: ‘거꾸로’는 바나나라마를 연상시키는 베이스라인이 다프트펑크를 염두에 둔 듯한 훵키한 후렴으로 빠진다. 베이스의 톤이 상당히 애시드하고 전체 사운드의 중심에 큼직하게 위치하는데,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대체적인 사운드가 조금씩 맥 빠져 있기도 하지만, 디테일이 살아있는 베이스가 너무 큰 자리를 차지해 다른 요소들을 잡아먹는다. 심지어 사운드도 애시드라서 공간을 더 어지럽히는 듯하다. 그야 일렉트로닉 만지는 사람들 중 애시드 베이스 싫어하는 사람 거의 없지만 모두가 모든 곳에 애시드 베이스만 사용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나. 아이디어 자체는 재밌는 편이지만 조율이 크게 아쉽다. 수록곡 중 ‘니 친구’가 다이시댄스 시절 튠의 모든 것이라서 솔직히 좀 듣기 고통스러운데, 보컬 촙 신스만 새로 얹는다고 새로워질 리가 있나.
미묘: 〈프로듀스〉 시리즈의 중간평가 EP가 갖는 가치는 크게, 중상위권 참가자들의 기량을 확인하고 이들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는 일, 그리고 트렌드에 살짝 어긋나는 프로듀서들의 욕심이 반영되어 방송의 화제성을 타고 시장이 이에 슬쩍 끌려간다는 데 있다. 후자의 경우 이번 EP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는데, 이 기획이 3년째 반복되면서 나름의 정형화가 이뤄지기도 했고 다들 안전한 곡이 아니라면 ‘같은 곳에서’ 같은 곡을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여름 시즌송의 클리셰를 뭉텅이로 끌어오지 않았다면 이 EP가 어떤 곡들이 되었을지는, 말을 아끼겠다. 안전한 걸그룹 팝도, 시즌송도, ‘같은 곳에서’도 아닌 곡으로는 영광의얼굴들이 주축이 된 ‘IAM’이 유일한 셈인데, 묵직하게 날카로운 베이스의 운동감이 멜로디의 리듬감과 함께 좋은 느낌을 낸다. 서두에서 언급한 전자의 목적이라면 각자의 픽이 다를 것이고 그 가치를 무시할 순 없겠다.
마노: 김이 새다 못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결과물. 이쯤 되니 차라리 선공개 싱글이 나았다 싶기까지 하다. 프로덕션이 지금껏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해왔던 것은 무엇이었나 싶다. 그렇게 정성 들여 한 명 한 명 소개해 놓고는, 막상 모았을 때는 개성과 재능을 모두 납작하게 눌러놓은 모양새다. 거기에 뮤직비디오의 화면 가득한 관음적 시선과, 12명이라는 다인원을 활용할 생각은 있는 건지 의심스러워지는 안무, “남자는 조심 조심 조심” 같은 시대착오적 대사를 내뱉다 끝내는 김밥이니 만두니 수능이니 하는 단어를 끝도 없이 열거하는 가사에 이르면 대체 무엇을 위한 ‘완전체’인가 싶어진다. 지금까지의 이달의 소녀 프로젝트가 그토록 흥미로웠던 것은, 다채로운 매력과 재능을 지닌 12명의 소녀들에게 각각 캐릭터를 부여하고 그에 꼭 맞춘 풀패키지를 선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것을 납작하게 보정한 보컬 톤과 테니스 스커트라는 몰개성으로 표백해버렸으니, 지금껏 쌓아온 공든 탑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만 셈이라고 하겠다. 유달리 빛나던 일부 멤버들의 존재감마저 무참히 지워버리고 나니 남은 것은 그저 흔하고흔한 걸그룹일 뿐이다. ‘완전체’에 그렇게 큰 의미부여를 하며 기대하게 해놓고는 이런 결과물이라면 가히 대중을 향한 배신이라고 해도 그리 모진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안일하고 게으른 프로덕션 탓이다. 어디까지나 의도에 의한 것이었다면 그것도 나쁘지만, 12명을 채 다 보여줄 여력이 되지 않아 결국 1명으로 퉁치고 만 것이라면 그것 역시 나쁘긴 매한가지. 기획자의 편협한 틀 안에 갇혀버린, 철저히 객체화되고 타자화된 채 전시되는 소녀는 이제 제발 그만. 뭄바톤 리듬이 매력적인 ‘열기’와 같은 놓치기 아쉬운 트랙이 그나마 이 미니앨범의 존재 의의를 증명한다.
미묘: 이 EP의 곡들은 이달의 소녀가 첫 싱글부터 보여준 미덕, 그러니까 걸그룹 클리셰를 이용하되 살짝 변주하면서 제법 어른스러운 테이스트와 ‘음악의 힘’을 활용하는 태도를 간직하고 있다. 이를 단계별로 보정하는 데에서, 타이틀 ‘Hi High’와 선공개곡 ‘favOriTe’이 여타 수록곡과 갖는 온도차가 설명될 것 같다. ‘Hi High’는 무대 위에서 다인원이 자극을 제공하며 보컬을 중심축으로 선명한 임팩트를 남기는 데에 힘을 주고 있는 듯하다. (수록곡들은 사실 솔로곡이어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하이에너지보다는 (일본에서 말하는) ‘테크노팝’의 질감이라든가, 다소 무리수 같은 가사 등의 요소 역시 보다 명시적으로 별난 자극을 더하려는 의도였을 법하다. 그렇게 조금은 과한 집합체다. 시원한 질주감이나 역동적인 맛, 아기자기하거나 섬세한 요소들은 제각기 매력적이어서 ‘이것만은 좋다’는 감상을 남기기도 하지만, 이들이 충분한 시너지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다인원 그룹의 타이틀로서 작동하기 위한 요건들을 이달의 소녀의 복잡미묘한 세계와 결합하는 데에 아직 건너야 할 산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성인 남성의 눈에 비친 여고생의 피상적 기호들인 김밥, 수능 같은 가사는 분명 가장 눈에 띄는 패착이자, 그 산의 높이와 등반자의 현 위치를 가늠하게 한다. 묵직한 EP가 서서히 열리며 서스펜스를 제공하는 ‘favOriTe’은 적어도 음원만으로 들었을 때 그 집중력이나 밀도, 팝으로서의 가치 등에서 과소평가된 감이 있다.
조성민: 똑같은 교복, 똑같은 테니스 스커트인데, 어째서 어떤 팀은 ‘이상’으로 읽히고 어떤 팀은 ‘왜곡’으로 읽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뮤직비디오의 영상 언어를 활자로 옮겼을 때, ‘Hi High’는 이달의 소녀를 주어로 하지 않는 문장들로만 이루어진 글이다. 화자가 자의로 발화한 것이 아니라, 청자가 화자로부터 듣고 싶은, 혹은 들어야 한다고 규정한 어떤 언어들을 담고 있다. 어느 순간 ‘불쾌한 골짜기’ 현상을 체감하게 된다. 케이팝 아이돌, 혹은 전체 팝 문화 자체가 그렇게 아티스트 자체를 사물화, 객체화하여 셀링해오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순수한 역할극만을 남겨놓은 어떤 퍼포먼스를, 음악을 매개로, 혹은 음악 자체로 소구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 또 다른 작품들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요컨대, 이달의 소녀는 사람이 아니라 캐릭터이고, ‘존재’가 아니라 ‘역할’만 하도록 주문받았고, 그 결과가 ‘Hi High’의 뮤직비디오다. 윤리성에 대한 지적은 물론이거니와, 이것이 시장 논리에 의해서도 반박될 수 있는 시도라는 점은 꼭 짚어야 할 것 같다. 쇼비즈가 가장 큰 이슈를 만들었던 순간들은 가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작은 균열 그 틈으로 현실로 끌어내려졌을 때, 혹은 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이상(理想)으로 상정된 가상으로 넘어갈 때였다.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관련된 모든 ‘현실’을 제거해버렸기 때문에 이 이상의 파괴력을 보이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쇼비즈 이벤트에 대한 역치가 충분히 높아진 대중들을 설득하기엔 너무 순진한 정공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대중은 이달의 소녀가 무려 2년간 선보인 티저 공개에 대한 역치 또한 높아져 있겠다.
미묘: ‘So Beautiful’은 장르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곡인데, 반주는 딥하우스와 투스텝, 퓨처베이스를 오간다면 멜로디는 듀크와 샤이니를 오간다. (딥하우스를 한다니까 샤이니의 ‘View’를 거의 고스란히 가져온 점은 솔직히 좀 심했다. ‘View’가 역사상 최초의 딥하우스인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변화가 짜릿한 쾌감을 준다기보다는 ‘별 게 다 나와’에 가깝기는 하다. 하지만 멤버들의 목소리는 각각 선명한 차이를 보여주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래서 재미있게 들을 만한 곡이기는 하다. 여담이지만 보도자료에는 두 곡을 각각 ‘업텐션만의 아이덴티티를 잘 살림’과 ‘업텐션만의 색깔’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런 문장이 케이팝의 보도자료 양을 채우는 장식이란 건 알지만 업계 전체에서 좀 지양해줬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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