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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Listen

1st Listen : 2018년 9월 초순 ②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공원소녀, 여주인공, 소녀시대-Oh!GG, 더보이즈, 블록체인, 스펙트럼, 립버블, 오마이걸, 펜타곤, 샤이니, 데이식스의 음반을 다룬다.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공원소녀, 여주인공, 소녀시대-Oh!GG, 더보이즈, 블록체인, 스펙트럼, 립버블, 오마이걸, 펜타곤, 샤이니, 데이식스의 음반을 다룬다.

밤의 공원 part one
키위 미디어그룹, 키위팝
2018년 9월 5일
놓치기 아까운 음반

랜디: 팀 이름에 잠시 멈칫했다가, 소녀시대도 방탄소년단도 우주소녀도 성공했는데 아무렴 어때 싶다. 초반부터 착실하게 멜로우 R&B 코드를 따라가다 후렴을 별빛처럼, 산들바람처럼 처리한 딥하우스 곡. 팔로 달을 형상화한 안무도 예쁘다. 비슷한 신스를 썼던 f(x)의 ‘4 Walls’보다는 베이스를 줄여 가벼운 느낌으로 완성했다. 곡을 만든 사람들은 메이나인과 라노라는 낯선 이름의 신진 작곡가라 살펴봤더니 김형석이 수장으로 있는 키위팝 소속이었다. 일본에서 온 장신 쇼트커트의 보이시(다른 언어가 필요하다 느끼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말이기에 소통의 수월함을 위해 부득이하게 쓴다) 멤버인 미야의 존재를 논하지 않을 수 없는데, 곡을 위해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콘셉트가 아니고 본인이 원래 선호하는 모습이라 한다. 미니 원피스를 입은 다른 멤버들과 어우러져 추는 군무에서도 균형을 깨지 않으며, 오히려 신인인 공원소녀를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f(x)의 엠버가 미국발 톰보이 인상이었다면 미야는 젊은 시절 아마미 유키 같은 다카라즈카형 예능인의 향취를 풍긴다.

서드: 여러 번 앨범을 들어봐도 인상적인 곡 또는 소절이 쉽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멤버들에게 최적인 스타일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는 느낌이 드는데, 너무 안전하게만 가려 했던 것은 아닌지. 사운드에 공을 들인 흔적은 느껴지지만 뚜렷한 이미지가 남지 않아 조금 아쉬운 데뷔 앨범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Let It Grow ~ a little tree’.


왕자님 (Prince)
GR 엔터테인먼트
2018년 9월 5일

미묘: 리드미컬한 청순계 아이돌의 음악적 노림수들을, 생각보다 잘 사용하는 편이다. 곡이 일단 탄력이 붙기 시작한 뒤로는 생각보다 진행도 탄탄하다. 자꾸 단서가 붙는 것은 곡의 도입부와 후렴이 매우 약하기 때문이다. 인상이 너무 흐릿한 첫 버스는 이후에 대해 기대하기 어렵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딕션이 불분명한 섹션 역시도 확실하게 집중력을 발휘한 뒤에 등장했더라면 전혀 다르게 들렸을 것이나, 지금의 배치로는 기대감을 떨어뜨린다. 후렴은 멜로디가 아기자기한 것까지는 좋지만 조금 유치하게 들리는 것도 안타까운 사실. 그런 점들이 보완됐더라면 ‘여주인공’과 ‘왕자님’이 활자 단위에서 뿜어내는 어떤 기운과, 이에 상당히 부합하는 가사나 테마 등이 조금은 다르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몰랐니
SM 엔터테인먼트
2018년 9월 5일

랜디: 완전체보다 멤버는 줄었으나 그래서 오히려 밀도가 좋아진 느낌도 있다. 파트도 각자가 잘 부를 수 있는 음역대로 잘 나뉘었다. 1절과 2절에서 각각 태연과 써니가 비슷한 듯 다른 방식으로 불러내는 프리코러스가 일품. “Give it all to ‘me’”의 벤딩을 준 가성이 청자를 확 감는다. 현재 활동이 가능한 멤버끼리 소녀시대라는 이름을 지키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유닛으로 나왔다는 것은 미래의 재결합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몰랐니’라는 곡이 기존에 SM에서는 잘 나오지 않던 스타일의 곡이라 예외를 두기 위해서일 수도 있겠다. 2년여 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뭄바톤 같은 ‘뜨거운 튠’에는 필연적으로 뽕끼가 들어있는데(이것이 반드시 한국적인 느낌일 필요는 없다), SM은 소녀시대 전성기 때부터 적극적으로 기용한 북유럽 작곡가진을 통해 긴 시간 그런 뽕끼를 빼는 작업을 해왔다. (슈퍼주니어는 언제나 예외였다.) 이번에는 그것을 뒤집는 곡을 내놓았고, 경력이 오랜 멤버들은 그런 곡을 이제까지의 세련을 간직한 채 그들 나름의 뜨거움으로 풀어낸다.

마노: 그룹명에 관해 한 차례 작은 소동(?)이 있었지만, 우려를 상쇄하듯 어김없이 매끈하게 잘 빠진 결과물을 들고 나왔다. 어느덧 소속 멤버들의 커리어가 10년을 넘어갔다는 점을 여러모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여태껏 본체로서 도전해본 적 없던 장르의, 소화하기가 상당히 녹록지 않은 곡임에도 모든 멤버들이 안정적으로, 능수능란하게, 고르게 각자의 몫을 수행해내는 점은 물론이다. 가장 주목하고 싶은 것은 수록곡 ‘쉼표’인데, 안드레아스 오버그가 빚어낸 특유의 아름다운 멜로디 위에 얹어진 가사는 마치 멤버 본인들의 자전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지기까지 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각자의 전장을 쉼 없이 달려온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작은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 같기도 해서 별수 없이 마음이 오래도록 머물고 만다. 미처 귀 기울일 기회 없던 멤버들의 목소리가 빠짐없이 들린다는 점에서도 마음을 빼앗기고 마는 그런 트랙. 10년이 넘도록 굳건한 존재감, 커리어, 이름값에 더불어 이런 트랙을 선사해 주시는데 어찌 당해낼 수 있으리.

심댱: 공백기와 빈자리를 채우며 ‘소녀시대’만의 에센스를 뽑아낸, 능숙함이 돋보이는 기획이다. 귓가를 스치는 에스닉한 보컬 소스와 농도를 달리하는 보컬의 운용 등 ‘몰랐니’를 구성하는 요소요소는 쉽게 한눈팔지 못하게 한다. 상대에게 기회를 주는 듯하나 조급해 보이는 이 곡은 보컬이 가진 매력을 재빠르게 선보인다. 효연의 매력적인 중저음에서 유리의 촉촉한 보이스로 넘어가는 두 번째 버스의 흐름이나 앙큼한 톤의 써니와 날카로운 태연이 교차하는 브리지를 주목할 만하다. 커플링 곡인 ‘쉼표’는 긴장을 부드럽게 풀어내며 그간 쉼 없이 달려왔던 소녀시대가 잠시 숨을 돌리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소녀시대는 그대로니 안심해도 좋다는 메시지를 전달받은 것 같아 괜히 더 든든하게 들리는 싱글이다.


The Sphere
크래커 엔터테인먼트
2018년 9월 5일

랜디: 더보이즈는 언제 보아도 ‘청량하게’ ‘잘한다’. 음악도, 대인원의 군무도. 신진 기획사에서 이런 매끈한 기획이 나온다는 점에 번번히 고무된다. 발랄한 마이너 멜로디 사이로 한 번씩 메이저 코드가 딱 한 박자 ‘팡’ 하고 터질 때의 상큼함, 이런 느낌을 다른 어떤 기믹이 아니라 음악으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 더보이즈의 훌륭한 점 중 하나다. 아직까지는 데뷔 이래 간직해온 상쾌소년 무드를 전향하지 않고 그대로 가고 있는데, 빅네임들이 거의 대부분의 지분을 잠식한 지금의 케이팝 시장에서는 역시 쉽지 않은 일 같다. 흠잡을 곳이 없어서 언제든 뜨면 뜨겠지 싶은데, 또 그런 완벽함이 타깃 오디언스에게 덜 통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지금 같은 뚝심도 좋지만 MSG를 조금 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놓치기 아까운 음반

마노: 캐스퍼 라디오 〈김앤박의 Best New K-Pop〉에서 김윤하가 언급한 “샤이니가 부르는 빅스의 ‘다칠 준비가 돼 있어’ 같지 않나”던 한 마디가 자꾸만 생각나고 만다. 이를테면 타이틀곡 ‘Right Here’는, 빅스로 대표되는 ‘비장한 구애’를 샤이니풍의 쨍한 청량-소년미로 재해석한 곡이다. 씩씩한 청량미를 내세운다는 점에서는 전작과 궤를 같이하나, ‘어차피 네 자리는 바로 여기야’라는 당차고 기개 있는 외침을 반영하듯 사운드에 묵직한 밀도가 더해졌다. 퍼포먼스 역시 촘촘한 공간감이 더해지면서 이전작보다 훨씬 멤버 개개인에 집중하기 편한 구도가 되었다(비슷한 연차의 신인 중에서 다인원이라는 점을 이렇게 제대로 잘 활용하는 팀은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보컬 수행력이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는 숙제는 남았지만, 디렉팅을 통해 어느 정도는 상쇄하고 있어 크게 거슬린다는 인상은 없다. 패기와 활력 넘치는 신인 특유의 상승세가 한껏 느껴지는 싱글. 밀고 당기는 상쾌한 리듬감이 훌륭한 ‘L.O.U’도 놓치지 말길 바란다.

심댱: 확실히 캐치하다. 두세 개의 멜로디를 골조로 해서 타이트하게 짜냈다. 멜로디는 분위기를 차근차근 고조시키다 적시에 때릴 줄 알고, 화성은 이를 전체적으로 감싸 안아 경쾌하면서도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그 중 훅인 “Woo na ×5”가 반복되면서 피라미드 대형의 군무가 움직이는 모양새는 짜릿하다. 조금 답답하게 들리지만, 이어폰으로 적당히 들을 수 있는 음질과 한두 명씩 카메라에 눈도장을 찍는 듯한 구성의 안무에서 엑소의 ‘으르렁’이 연상된다. 그러나 이들이 쌓은 이미지가 착하고 단정해선지 카운터펀치보다는 수려한 스텝이 곁들여진 스트레이트 정도로 보인다. 정석을 따르고 있는데 생각보다 치명적이지 않다. 박경의 뻔한 작법이지만 살짝 장난스러우면서도 순진한 ‘지킬게’에 마음이 살짝 녹아든다. 할 거면 좀 더 과감하게 파워 순정남이 되거나, 아니면 살짝 얄밉고 못된 구석이 있는 남주가 되면 좋겠다. 순정파 서브 남주도 좋지만 여주의 사랑을 받는 건 어차피 남주니까.


Break The Mold
AF 엔터테인먼트
2018년 9월 6일

미묘: 혹시 투자를 유치하기 좋은 네이밍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유튜브에서 검색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아쉬움을 여기에 적고자 한다. 곡에 사용된 사운드는 대체로 썩 나쁘지 않고, 그중에서도 카랑카랑한(grit) 베이스는 제법 효과적으로 활용됐다. 곡 전체의 구조가 쭉쭉 뻗기보다는 장면전환의 연속처럼 구성돼 있는데(block?) 그 연결들(chain?)은 훨씬 유기적일 수 있었다. 실은 보컬과 랩의 토막토막도 각자 흐름을 구성하기보다는 분절돼 있는 편이라 더욱, 하나의 완성된 팝송이라기보다는 짤막한 데모 영상의 음악’들’ 같다. 그것을 스타일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할 것이라면 각각의 장면이 훨씬 더 강렬하고 인상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다시 전체적인 흐름의 문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Dear my
WYNN 엔터테인먼트
2018년 9월 6일

미묘: 〈믹스나인〉으로 얼굴을 알린 멤버 故 동윤의 유작. 역시 멤버인 재한이 작사, 작곡, 편곡에 참여했다. 중량감이 잘 살아있는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팝 발라드. 1절이 지난 뒤부터 등장하는 비트에 필터가 걸려 있어 뻔한 전개를 살짝 피해가며 여전히 피아노가 활약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선택. 후반에서 신스 스트링이 너무 날 것인 데다 컴프레션이 과해 보컬 솔로가 눌리는 등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안타까운 감성을 담담하면서도 처연하게 잘 표현한 편. 팀의 입장은 아직 본때를 보여줘야 할 시점이겠지만, 회복하기 쉽지 않은 상실을 건강하게 품어내는 쉼표가 될 법한 곡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Yellow Pink
제니스 미디어 콘텐츠
2018년 9월 7일
놓치기 아까운 음반

미묘: 데뷔하고 1년 반 만에 두 번째 싱글을 내는 아이돌이면 보통은 큰 기대를 걸기 어렵다. 립버블은 그 산뜻한 예외다. 무엇보다 앳된 목소리로 시끄럽게 떠들며 방방 뛰어대는 기세가 시원하다. 디스코 영향권의 댄스록을 기반으로 현대적인 신스와 아날로그 신스, 디스토션 기타를 뒤섞어 콸콸 쏟아붓는 사운드도 거침없다. 약간의 ‘사차원’ 코드도 ‘신남’의 포화상태에서 비롯되는 왜곡에 가까워 지겨운 느낌 없이 즐거움을 안긴다. 그렇다 보니 뮤직비디오의 8비트와 16비트를 오가는 게임 이미지나 ‘Sexy’ 같은 글자들도 어느 정도 유머로 받아들이게 된다. 저연령 코드의 함량이 높아서, 책임 있는 현대 사회의 성인 남성이라면 경각심을 가져 마땅한 부분도 있지만, 볼륨을 낮춰도 전혀 바래는 기색 없는 씩씩한 에너지만큼은 분명 탁월하다. 프로듀싱을 맡은 박지후와 박지환이 과거에 작업했던 밍스에게 그리움이 있는 이라면 만족 그 이상을 제공하기에 충분한 트랙.


Remember Me
WM 엔터테인먼트
2018년 9월 10일

랜디: 전작 ‘비밀정원’으로 한껏 끌어올린 오마이걸에 대한 기대감을 어느 정도 충족하는 곡. (중간에 원숭이가 있었던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확실히 상승세. 무대 위의 에너지에서 전성기로 치닫던 선배 걸그룹들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비밀정원’에 이어 ‘불꽃놀이’의 가사도 작사가 서지음의 작품. 깊고 친밀한 유대감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전작이 신중한 초대를 주제로 했다면 이번 곡은 함께 쌓은 시간의 아름다움을 기념하는 가사를 담고 있다. 연애감정 가사가 많은 아이돌 판에서 이러한 성장서사적 가사는 반복할수록 돋보인다. 전통적인 가요의 기승전결을 착실히 따른 ‘비밀정원’과 달리 이번 곡은 스트럭처에 약간의 실험을 했는데, 그 결과가 다소 아쉽다. 주제에 맞게 파티 EDM처럼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부분들이 있는데, 드롭이 나올 줄 알았던 그 자리에 바로 버스를 이어 붙여놓아 ‘응?’ 하게 된다. 뻔한 느낌을 피하려는 의도인 듯하나, 되려 김이 빠져서 임팩트 있는 전개가 되지는 못한다. 다만 가사나 안무 등 다른 요소들이 튼튼하게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괜찮은 프로덕션으로 완성되었다.

마노: “멋지고 놀라운 것”을 심어둔 소녀들의 비밀정원은 모두의 하늘정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하늘정원에서 소녀들은 ‘너’와 함께 본 불꽃놀이의 아련한 추억을 EDM 비트에 실어 펑펑 쏘아 올린다. 우선 전작서정성을 계승하는 범위 안에서, 음악 내외적으로 많은 변화를 꾀한 것이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 지금껏 없던 강렬한 비트의 음악에, 보통은 뒤쪽에 배치되기 일쑤였던 랩 파트를 앞으로 끌어오고, 거기에 걸스힙합 장르의 퍼포먼스를 얹은 점이 특히 그러하다. 오마이걸이 여태까지 시도한 적 없었던 것들을 전부 시도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그룹의 정체성을 크게 해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는 점에서(바나나라던가 비슷한 것이 떠오른다면 기분 탓입니다) ‘오마이걸다운 성장’에 대해 프로덕션이 나름 치열하고 진지하게 고민했음이 증명되는 듯하다. 성공 여부에 대해서는 약간의 물음표가 남지만, 나름대로 납득이 가는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역시나 어떤 원숭이가 떠오른다면 그것은 단연코 기분 탓입니다). 납득도 되거니와, 이번에도 빠짐없이 양질의 트랙으로 앨범을 채웠다. 지금까지 워낙 퀄리티 높은 결과물을 꾸준히 보여온 팀이었던지라 그 역치에 다소 못 미치는 점이 아쉽다면 아쉽다. 그저, 이제 겨우 싹 틔운 “멋지고 놀라운 것”을 무럭무럭 가꿔 이윽고 꽃피우는 날이 머지않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간절히.

서드: 타이틀곡 ‘불꽃놀이’는 EDM 사운드나 랩 파트의 비중 등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도 뚜렷하지만, 수록곡 전반에서 이전과는 달라진 화자의 태도에 주목하게 되는 앨범이다. “사랑이란 모험이야”(‘메아리’), “아마 어느새 빠져 헤어나올 수가 없을 거야 이제 시작하니 잘 봐 놀라울 거예요”(‘우리 이야기’) 같은 가사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조차 수줍어하던 소녀의 이미지는 더는 보이지 않으며, 앞으로도 되돌아갈 것 같지 않다. 오마이걸 디스코그래피의 최고를 갱신해줄 만큼 인상적이진 않지만, 오마이걸의 전진이 계속되리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미니앨범이다.

놓치기 아까운 음반

심댱: 오마이걸의 정수를 보여준 ‘비밀정원’에 이어 하늘에 심은 정원, ‘Remember Me’다. 화사하면서도 씩씩한, 여리면서도 의지적인 이미지가 불꽃놀이처럼 화려한 디테일을 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작은 성년이 된 아린을 들어 성숙한 이미지를 선보였다면 이번은 음악적으로 성숙함을 표현했다. 버스에서는 중저음역을 가진 비니와 미미를 활용해 화려하면서도 단단한 느낌을 주고, 프리코러스에서부터 아련함을 내비치며 오마이걸스러움을 담아냈다. 수록곡에서는 유아를 주목할 만하다. 타이틀곡에서 예쁘고 아련한 느낌을 주던 보컬이 ‘메아리’에서는 툭툭 내던지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힘이 느껴지는 ‘Twilight’에서도 선명히 빛난다. 보컬의 쓰임이 전에 비해 적극적이고 다양해서 듣는 즐거움이 있다. 소녀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고 상대와의 추억을 찬찬히 펼쳐보는 얼굴에는 담담한 인상이 자리한다. 그녀의 더 멋진 성장을 기대하며, Discovery를 남긴다.


Thumbs Up!
큐브 엔터테인먼트
2018년 9월 10일

랜디: ‘빛나리’로 보인 유머러스함이 이제는 이 팀의 색깔이 되어가고 있다. 연애 스캔들로 멤버 상황에 변동이 있었다만, 직후 발매된 노래는 전작보다도 깔끔한 모양새다. 속담이나 옛날 가요에서 따온 코믹한 가사는 몇 년 전의 한국 가요 씬이라면 인디뮤직에서나 볼 수 있었을 텐데, 팀 멤버가 직접 프로듀싱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큰 매력이기에 기성 작곡가들보다 실험적인 도전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일단은 넓은 마음으로 들어줄 지지기반이 분명하니 작곡가의 입장으로서는 큰 힘이 될 것이다. 노래의 가사를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주는 블루컬러 일용직 코스튬과 함께 듣고 있자면 이게 방탄소년단의 ‘고민보다 Go’ 같은 곡보다 좀 더 한국식 YOLO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들의 유머러스함을 오래 보고 싶다.

마노: 한차례 폭풍이 있고 난 직후인지라 어떻게 되려나 했는데, 펜타곤은 펜타곤이었다. 타이틀곡 ‘청개구리’는 피식피식 웃음 짓지 않기 힘든 장난기와 말장난으로 가득한데, 곡 구조적으로나 사운드적으로나 여러모로 전작 ‘빛나리’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전작이 워낙 흥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방향 설정이라고 보아야 할까. 단지 묘하게 훨씬 더 노골적(?)으로 ‘동요틱’해진 부분이 느껴지는데(실제 우리가 아는 동요를 일부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자조적인 유머 코드를 가져왔으되 전체적인 짜임새는 세련된 팝의 그것이었던 ‘빛나리’와는 달리 어딘가 거친 ‘날 것’처럼 느껴지고 마는 부분이 다소 아쉽다. 타이틀곡을 지나니 그런 아쉬움이 어느 정도는 상쇄가 된다. 타이틀곡에서 미세하게 느껴지던 상쾌한 기운을 한껏 끌어모아 흥겹게 폭발시키는 ‘저두요!!’, 실제로 스케이트보드를 타듯 그루비한 질주감을 자랑하는 ‘Skateboard’, 해맑은 긍정으로 가득한 ‘Thumbs up!’ 등 깔끔하고 준수한 트랙으로 가득해 감히 외면하기 어렵다. 마냥 밉지만은 않은 이 장난꾸러기 너드들의 미래를 조금 더 지켜보고 싶은 마음.

심댱: ‘빛나리’의 너드 콘셉트에 약간의 변주를 준 ‘청개구리’다. 밉다기보다 귀여운 장난꾸러기 캐릭터에서 펜타곤의 길을 찾은 것 같다. 엉뚱하지만 유쾌한 소년들을 보는 것은 언제 보아도 즐겁다. 다만 트랙마다 슬픔이 약간씩 드리워져 있어 어딘지 모르게 서글프다. 말만 그렇지 말썽부리지 않는 착한 친구가 함께해 달라고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컴백 전 이슈를 아주 완벽히 떨칠 수가 없어선가, 어렵게 띄운 분위기와 팬덤의 환상을 다시금 재편성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읽혀서일지도. 얄궂게도 애이불비(哀而不悲)가 스치지만 ‘밤에 비가 내리면’의 서정적인 멜로디와 ‘Skateboard’의 기분 좋은 질주감을 포기할 수 없다. 슬픔과 즐거움이 동시에 존재해서 쉽게 넘길 수는 없는, 오묘한 느낌의 EP.


‘The Story of Light’ Epilogue
SM 엔터테인먼트
2018년 9월 10일

미묘: 조금 새삼스러운 이야기일까. ‘View’‘1 of 1’의 세련된 화사함과 샤이니의 근작이 갖는 확연한 뉘앙스 차이가 있다. 그것의 정체가 어느 때보다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신곡 ‘셀 수 없는’이다. 육감적인 패턴이지만 쿨하게 절제된 비트는 시간의 속도감을 묘사하는 듯하고, 반복적인 후렴의 멜로디는 마치 확신하기 두렵지만 내릴 수밖에 없는 결론을 몇 번이고 되뇌이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 회고와 사색의 우아함이 돋보이는 트랙. 그리움과 긍지, 미련과 보람이 뒤섞이는 달콤쌉싸름함이 10주년을 맞이한 샤이니의 자기고백인 듯하다. ‘데리러 가’의 인트로가 들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물씬 드는 ‘All Day All Night’를 필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근조근 들려주는 듯한 “The Story of Light”의 전곡이 매끄럽게 조율돼 이어진다.


Beautiful Feeling
JYP 엔터테인먼트
2018년 9월 10일

마노: 빗방울처럼 예쁘게 흩뿌려지는 피아노와 물결처럼 나긋나긋하게 찰랑이는 기타가 상쾌하게 문을 열고, 넓은 공간감 속에서 단단한 드러밍과 보컬이 쌓아 올려지며 곡은 점점 드라마틱해진다. 굳이 전작을 언급하자면, 데뷔곡 ‘Congratulations’와 분위기적으로 유사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데뷔 3주년 기념 팬송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는 의도된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잔뜩 일그러진 냉소와 고뇌로 가득했던 데뷔곡과는 달리 마냥 착하고 예쁘게 들린다는 점이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점이다. 잠시 여백을 주었다가 드러밍으로 툭 치고 올라오며 펑, 터뜨려 올리는 코러스는 그 누가 들어도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곡의 가장 큰 미덕은, 팬송의 형식을 하고 있되 듣는 이를 팬덤만으로 특정하거나 제한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콘페티가 어지러이 흩날리는 공연장에서 온 마음을 모아 목청껏 합창하는 엔딩 씬의 벅참을, 누군가에게는 어떠한 애틋함을 선사할 웰메이드 팬송이자 러브송.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