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1일~31일에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히스토리, 프리츠, 슬옹, 식스센스, 카라, 헤일로, CLC, 시아, 세븐틴, CL & Diplo & Riff Raff & OG Maco를 들어보았다. 이전 회차에 누락됐던 몬스타엑스(5/14), A6P(5/20)과 더불어 6월 1일 발매된 빅뱅을 예외적으로 포함한다.
블럭: 라이머를 중심으로 한 브랜뉴뮤직 사단(사단이라는 단어도 좀 별론데 어쨌든)이 많은 부분 참여한 게 귀에 들린다. 지금까지 브랜뉴뮤직 사단이 많은 앨범을 터치해 오고, 앨범마다 그룹의 색을 어느 정도 살리고자 노력했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앨범이 시종일관 '무단침입 (Trespass)', '훔쳐 (Steal Your Heart)'처럼 센 느낌으로 통일되었다면 모를까, 다른 트랙들이 보여주는 건 웰메이드를 가장한 평범함뿐이다. 곡의 퀄리티가 나쁘다기보다는, 〈노 머시〉라는 프로그램과 주헌이 보여줬던 가능성이나 흥미로운 부분이 감소한 듯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되면 최근 등장한 다른 그룹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오요: 확실한 에이스가 있다는 것은 갓 데뷔한 팀에게 있어 큰 강점이 된다. 에이스를 중심으로 팀의 정체성을 만들기도 쉬울 뿐더러 인상을 남기기에도 훨씬 용이하다. 몬스타엑스는 (〈노 머시〉를 본 사람이든 아니든) 확실하게 멤버 주헌이 에이스인 그룹으로 보인다. 그의 장기가 랩인만큼 타이틀곡 '무단침입(Trespass)'부터 이 그룹은 힙합을 추구한다. 음반 참여진을 봐도 매드클라운, 라이머, Assbrass 등, 음반 전체를 '국내 힙합'씬에서 이식해온 듯하다. 데뷔한 그룹이 이 정도로 확실한 색깔을 갖고 있다는 건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다만 멤버 모두가 힙합을 소화해내는 정도가 달라 어떤 밀도차가 느껴진다. '무단침입'만 해도 그렇다. 랩 파트에서 쌓아놓은 긴장감은 보컬이 등장하는 순간 허물어지고 마는데 이는 앞으로 몬스타엑스가 해결해나가야 할 숙제가 아닐까 싶다.
유제상: 타이틀 '무단침입'의 뮤직비디오로 유추하자면 뭔가 시험 기간 밤샘하다 붕붕 드링크를 마신 미필들이 약간의 환각 상태에서 난동을 부리는 듯 한 그런 분위기의 그룹이다. 반복되는 가사 "이걸 범죄라 할 수 있나"가 귀에 쏙쏙 들어오긴 하지만, 이들의 번잡한 분위기가 연출된 것이라 생각되어 흥겨움이 다소 줄어든다. 공이 많이 들어갔지만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함은 덜했던 EP.
조은재: 데뷔곡 '무단침입'에서는 힙합 아이돌 특유의 패기가 돋보이는 가사가 마음에 드는데, 뮤직비디오나 무대를 보자면 빅뱅이나 방탄소년단의 신인 시절도 떠오르는 게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는 인상이 있다. 앨범 역시 팬덤 소구가 필수적인 힙합 아이돌로서의 트랙을 충실히 챙긴 와중에도 '솔직히 말할까'와 같은 트랙에 와서는 '음원 강자 스타쉽'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의지까지도 엿보여 상당히 공들인 티가 난다. 그다지 큰 이슈 메이킹을 하지 못했던 데뷔 서바이벌 프로그램 〈노 머시〉(엠넷)의 기억을 말끔히 털어낼 인상적인 데뷔작.
김윤하: ‘Face Off’는 빅스의 ‘저주인형’에서 시작해 지드래곤의 ‘Heartbreaker’를 지나 SM 덥스텝 리믹스의 익숙한 향기로 마무리를 짓는다. ‘에이스(Ace) 여섯 명이(6) 퍼펙트한(Perfect)한 무대를 보여주겠다’며 패기 있게 데뷔한 신인 그룹의 노래 치고는 너무 많은 기시감이 누덕누덕 기워져 있다. 아무리 케이팝이 근본 없는 곳에서 피어난 꽃이라고는 하지만, 클래스의 차이는 언제나 한 끗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유제상: 이쪽은 6인조 남성 그룹. 타이틀 'Face Off'의 경우 노래는 귀에 익숙한 SM 엔터테인먼트의 그것과 비슷하고, 퍼포먼스는 고전적인 마리오네트 춤이라 어디서 보고 들은 것들이 서로 마구 뒤섞여 있다. 이러한 상호텍스트성의 향연 속에서 A6P 고유의 느낌이 적은 것은 문제. 평자의 기억에 남은 것은 뮤직비디오 제일 처음 나오는 잘 생긴 청년의 얼굴뿐이니...
조성민: 어쨌든 얼굴을 각인시키는 게 신인 아이돌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일일 텐데, 자기 파트가 오기 전까지는 가면을 벗을 수 없는 퍼포먼스 덕분에 멤버들의 얼굴을 익히기도 힘들뿐더러, 다른 부분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가면 퍼포먼스를 제외하면 노래에서도 비주얼에서도 딱히 다른 포인트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 큰 문제. 아무리 아이돌이 무대 위에서 완성되는 장르라고 해도, 최소한의 듣는 맛 정도는 남겨줬어야 하지 않을까.
미묘: 전작 "Desire"가 터질 듯 안 터지는 아쉬움을 남겼다면, '죽어버릴지도 몰라'는 폭발력으로 3분여를 뒤덮어 두었다. (싸늘한 긴장이 넘치는 오프닝트랙 'Mind Game'이 주효한 것도 그런 이유다.) 비극적인 분위기 속에서 감정을 쌓는 버스(verse)를 제외하면 시종일관 강렬한 사운드가 넘치고, 그나마 후렴 자체의 길이도 긴 편이다. 듣는 이에 따라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짤막한 멜로디의 후렴은 노래보다는 퍼포먼스와 사운드가 견인하도록 설계돼 있고 일렉 피아노가 감성을 짚어주기도 하여 균형감 또한 노린다. 제목처럼 내려앉는 4번 트랙의 'Slow Down'에서야 (겨우) 한숨 돌리게 하는 구성 역시 패기 중심으로 잡혀 있다. 상업적 승패는 모르겠으되, 간만에 시원한 힘을 보여주는 음반이다.
조성민: 심플한 스타일링과 대비되는 거칠고 과장된 퍼포먼스로 팀 컬러를 갖춰가는 히스토리의 새 앨범. 오케스트라와 숨소리, 그리고 "죽어버릴지도 몰라"라는 가사 외에 다른 것은 딱히 귀에 남지 않는 타이틀곡은 전작 'Psycho'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자극적으로 들리는데, 바로 이 '자극적임' 자체만이 목표이자 존재 이유인 것처럼도 느껴진다. 타이틀곡에 비해 수록곡들은 무척 무난하게 들리는데, 멤버 솔로 트랙까지도 비슷한 무드로 유지되고 있어 앨범 전체가 그저 단조롭게 들린다.
미묘: 보도자료에서 곡의 묘사를 글로 읽을 때는 굉장한 괴작일 것 같지만, 막상 들어보면 과감한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곡 자체는 그리 충격적이지 않다. 기타의 스케일이나 주법 등에 관심을 갖는 록/메탈 팬들에겐 곡의 진행도 괴악하게 들리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피처링 보컬이 그로울링을 하는 순간이 가장 낯선 정도일 것인데, 이 부분 역시 소녀적인 보컬과 주고받음으로써 그런대로 무난한 수위를 유지한다. 착실하게 '뽕끼'를 심어둔 멜로디의 존재감도, 다소 어수선할 수 있는 이 곡에 안정감을 부여한다. 결국 음악적으로 이목을 끌 만한 요소를 과감히 밀어붙였지만 그만큼의 성과를 거두기에는 다소 어정쩡해 보인다. 프리츠의 매력보다는 프로덕션의 정체성이 먼저라는 인상도 있다. 특유의 대충 넘기는 듯한 보컬과 그 믹스 또한 이번만큼은 어쩐지 그 매력이 완연히 살지 않는다. 전보다 역동적이면서 치밀해진 안무는 본격적이란 느낌을 주는 가운데, 오징어처럼 풀렁거리는 동작 정도가 기존의 매력을 유지하는 점까지, 프리츠는 완성체라기보다 실험을 이어나가고 있는 셈이라 하겠다.
유제상: '솔아솔아' 이후 반 년만의 컴백. 인스트루멘탈을 포함 총 네 곡이 포함된 싱글이다. 타이틀 'Crazy Cowboy'를 포함하여 이제 완전히 록 사운드(?)로 자리잡았다는 느낌. 아울러 'Crazy Cowboy'의 가사를 뜯어보면 왠지 니트로플러스의 게임 〈속 살육의 쟝고 지옥의 현상범〉이 생각난다. 안무 동영상에서의 진지한 멤버들 모습도 그렇고. 당신들 実は楽しんであったな!
조성민: 아시아권의 아이돌 걸그룹 씬에서는 이렇게 힘찬 치어리딩 스타일의 안무와 함께 과장된 밴드 사운드를 내세운 그룹이나 작품들이 종종 있어왔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작고 귀여운 소녀들'의 여리디 여린 창법과 '메탈'이 결합해야만 했던 이유는 딱 하나, 둘 다 남성 대중이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이유 밖에 없다고 본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이 장르가 일정 이상의 완성도를 갖추기란 무척 힘들다고 생각한다. 똑같이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서 칼국수와 돈까스를 섞어 먹거나, 고등어 조림을 피자에 얹어 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이돌이란 장르는 분명 마니악한 취향을 담보로 하지만, 이 불편한 조합을 즐길 수 있는 층은 일반적인 아이돌 마니아층보다도 훨씬 제한적이라고 보며, 국내에서 그 층은 그다지 큰 구매력을 갖고 있지도 않다는 점 때문에 분명 우려되는 면이 있다.
미묘: 참 여러 번 듣게 만드는 싱글이다. 보컬 실력을 과시하고 싶을 만도 한 상황이지만 블루노트를 계속 밟아가는 '말을 해줘'의 멜로디는 기량보다는 음색에 집중하는 편이고, 그것은 담담하고 매캐한 사운드와 좋은 조화를 보인다. 이 조화는 핫펠트를 참조한 듯한 'Mood Swing'에서 더욱 인상적인데, 다소 반복적인 느낌은 있으나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무겁게 웅얼거리는 베이스와 탱탱한 비트 위에 회의와 고독을 노래하는 것도 좋은 질감이다. '말을 해줘'의 가사만은 다시 한 번 생각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남는다.
미묘: 뭘 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는데 잘 구현이 되지 않는다. 한창 유행한 걸그룹 식의 '스왝'과 구어를 짜깁기해 놨지만, 작사와 작곡, 보컬의 구현 모두가 어색하다. 보다 정통파 댄스곡에 가까운 비사이드 '가면'이 훨씬 무난한 완성도에 접근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맞지 않는 옷을 무리하게 끼워 입느라 벌어진 일일 것이다. 팀에 맞는 색깔보다 유행을 베껴오는 방식이나, 그 레퍼런스가 2010년 경에 집중돼 있는 점도 문제지만, 결과물의 이 어색함에서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면 프로듀서의 감식안을 의심해야 한다고 본다.
유제상: 삼인조 여성 그룹 식스센스의 데뷔 싱글. 인스트루멘탈을 제외한 수록곡 둘은 소녀시대의 곡을 레퍼런스로 삼았음이 분명한데, 'Barbie Bunny'는 'I GOT A BOY'와, '가면'은 '소원을 말해봐'와 흡사하다. 적은 인원임에도 소녀시대의 곡을 염두에 둔 것이나 그것도 지금은 유행이 지난 두 곡을 참조한 것, 타이틀보다 '가면'이 더 좋았다든지 하는 수없이 많은 의문을 남긴 데뷔 싱글.
김윤하: 카라가 아니었다면 굳이 귀 기울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동시에 카라이기 때문에 설득 당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아직 남아 있는 앨범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짝궁 같던 작곡가와의 결별과 멤버 교체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사랑스러운 펑키함을 잃지 않은 노력을 높이 사고 싶다. 걸스데이의 리즈 시절을 함께 나눴던 작곡가 남기상의 ‘I Luv Me’에서 박규리와 허영지의 듀엣곡 'Peek-A-Boo'까지의 라인이 남기는 뒷맛이 상큼하다.
미묘: '이제 와서 과도기?'라는 느낌이다. 'Cupid'를 제외한 음반의 나머지 부분은 대략 'Lupin' 시기를 전후한 카라의 색상을 기조로 한다. 음악적 욕심이 추가된 것은 느껴지지만 여러 마리 토끼를 잡기에 'Starlight'나 'I Luv Me'는 자꾸만 조금씩 삐걱거린다. 곡의 힘으로 탄탄하게 끌고 나가던 과거에 비해 보컬이 두드러지는 것은 사실인데, 이 또한 보컬의 성장을 보여주겠다는 의도의 구현보다는 사운드가 겉돈다는 인상이 강하다. 다소 무뚝뚝한 목소리를 곳곳에서 활용하는 'Cupid'가 카라의 '성숙'을 외로이 수성하고, 짜릿하기보다는 은근한 '뽕끼'를 통해 이를 어느 정도는 매력적으로 이뤄낸다. 하지만 큐피드나 "In Love"를 비롯한 언어적 빈한함까지, 굳이 카라가 자신의 성장을 부정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지우기 어렵다. '여리여리하면서 사랑스러운 아가씨들'이란 카라의 매력도 좋지만 말이다. 내부적 평가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으나, '맘마미아'와 "Day & Night"는 충분히 근사하게 시간을 멈춘 작품이었다.
오요: 타이틀 곡 'Cupid'에서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중간에 등장하는 랩이다. 개인적으로 걸그룹 곡에 랩을 집어 넣는 건 썩 좋아하는 방법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가창이 약한 멤버의 분량 확보 이상을 보여주는 경우가 별로 없기에) 카라의 경우 이제껏 꽤 효과적으로, 곡의 분위기를 만들어가기 위해 랩을 활용해왔다고 생각한다. 허나 이 곡에서만큼은 랩을 아껴도 되지 않았을까. 그전까지 탁월한 보컬과 사운드가 곡을 이끌며 카라 특유의 '뽕끼'를 극대화시켜 왔는데 갑자기 텐션을 확 떨어뜨린 랩이 대체 왜 나와야 했던 건지, 어떤 의도에서였는지 궁금하다. 그 외에는 흠잡을 데가 없다. 카라만이 할 수 있는, 카라 만의 곡이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듣게 된다.
유제상: 기대한 것보다는 확실히 빠른 컴백. 수록곡은 기존 카라의 앨범과 대동소이한 것으로 채워져 있으되 타이틀 'CUPID'만은 실로 완벽한 제이팝이다. 반음씩 내려가는 후렴구는 평자가 좋아하는 멜로디이지만 뭔가 진부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한층 아름다워진 허영지를 볼 수 있다든지, 박규리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날카로워졌다든지 하는 디테일과 함께 조용히 흘러갈 EP. 정말이지 묵직한 한 방이 너무도 아쉽다.
조성민: 'CUPID'의 진행은 이전 카라의 타이틀곡들에 비해 어딘가 가볍고 힘이 빠진 듯한데, 그에 반해, 혹은 그 덕분에 어느 때보다 파워풀한 멤버들의 보컬이 돋보인다. 어딘가 억지스러워 보일 정도로 보컬을 부각시키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도 드는데, 특히 'Starlight', '그땐 그냥' 등의 트랙에서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물론 멤버들의 가창력이 전보다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자신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도 있지만, 그동안 카라 음악에서 보컬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조금 생경하게 들린다. 마치 홍원기 감독의 작품을 오마주한 듯한 디지페디의 뮤직비디오도 분명 콘셉트나 안무와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인상이 있는데, 이것이 모종의 실험인지, 아니면 그저 기획자의 판단 미스일 따름인지 궁금해진다.
유제상: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지난 1년간의 앨범 발표를 거치며 이번 EP는 메이저 그룹의 그것과 퀄리티가 거의 동등한 수준이 되었다. 특히 타이틀 '니가 잠든 사이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보이그룹의 그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홍보에 사용될 돈을 음반 퀄리티에 몰빵한 걸까. 일청을 권한다.
조성민: 뮤직비디오가 '총체적 난국'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어차피 이거 보는 사람 전부 다 여자일 텐데, 도대체 왜 멤버들을 '어젯밤 잠깐 마주친 같잖은 꼬맹이'로 포지셔닝 했을까. 하나도 안 멋있고, 하나도 안 귀엽다. 데뷔한 지 1년이 채 안 된 신인이 갑자기 이런 콘셉트를 여유롭게 소화할 수 있을리가. 이미 틴탑 등 여러 남자 아이돌이 충분히 써먹은 레퍼토리이기도 하거니와, 이런 콘셉트로 팬덤에 어필하는 데에 크게 성공한 아이돌을 여태 한 팀도 보지 못했다. 이성애 소구의 실패는 대중성 결여로 이어질 것이고, 팬덤 어필 역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콘셉트라 여러모로 하지 말았어야 할 기획으로 보인다.
미묘: '첫사랑' EP가 팀 고유의 색깔을 보여주기보다는 프로덕션의 방향성을 천명했다면, 이번에는 지금 이 팀이 할 수 있는 것을 탐구한다. 이를테면 마지막의 발라드 '어쩌죠'는 CLC가 적어도 표면적으로 지목하는 2008년 이후 세대 걸그룹들에 비해 꽤나 과거의 정서를 보여주는데, 묘하게도 보컬의 음색이 이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호평도 많지만 'Hey-yo'가 보여주는 설익은 공기는 의도와 실수 사이를 살짝 표류한다. 이런 약점이 두드러지는 것은 이어지는 세 곡의 설득력이 높기 때문이다. 'Lucky'와 '숨바꼭질'은 취향의 차이는 있겠으나 힘 있는 댄스음악의 미덕과 소녀풍 걸그룹의 화사함을 간직한 채로 걸그룹 음반의 정형성에도 충실히 기여한다. '궁금해'는 별스러운 귀여움과 보이시한 씩씩함을 동시에 짊어지고 기세 좋게 달려나가는 곡으로, 레퍼런스와 현재의 조류, 팀 컬러의 모색 사이에서 훌륭하게 다져진 결과물이다.
블럭: 시간이 지날수록 CLC가 표방하는 지점 같은 건 조금씩 느껴진다. 'Hey-yo'에서 가져가는 분위기나 '궁금해'에서의 랩 등 이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요소들이 앨범 전반에 배치되어 있다. "병", "환자"와 같은 단어나 가사 속 화자의 톤도 같은 접근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컨템포러리 사운드를 구현하거나 세련된 인상을 주려면 지금의 작품보다는 훨씬 더 트렌드에 민감해야 하고, 오히려 다른 그룹의 음악보다 겁 없이 한 발 더 나가야 한다.
조성민: CLC는 멤버 간 역할 분담의 밸런스가 잘 갖춰진 팀인데, 이번 앨범에서 특히 그 점이 잘 드러나있다. 현아(포미닛)의 신인 시절을 보는 듯한 장승연을 중심으로 하는 퍼포먼스가 상당한 안정감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메인보컬 오승희가 곡을 힘 있게 리드하는 와중에 장예은의 랩이 적당한 감초 역할을 해주고, 손과 최유진도 곳곳에서 적절한 포인트가 되어준다는 점이 그렇다. 이전 싱글 'Eighteen'에서는 조금 밋밋하게 들렸던 보컬들도 이번 앨범의 경쾌한 곡들에는 잘 녹아 들어가는 것을 보니, 앞으로의 발전도 기대해볼 법하다.
미묘: 솔직히 말하면 시아가 이제 그만 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무거운 음악의 미덕을 모를 리 없고 앨범으로서의 완성도를 지향한 점도 훌륭하지만, 절박함이 가득한 앨범이 부담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다. 팬들의 마음의 건강도 생각해 줬으면 한달까. 그런 점에서 이번 리패키지에 담긴 'X Song'의 디스코 훵크 버전은 반갑다. 리듬을 잡았다가는 풀어놓는 비트와 브라스, 사포처럼 까끌거리는 보컬의 힘, 그리고 그것이 이 흥청망청한 무드와 결합해 자아내는 어딘지 모를 유쾌함도 즐거움을 안긴다. 2절의 짧지만 시원한 환호에 이르면, 그야말로 짜릿하다. 들을 때 약간은 각오를 해야 했던 앨범 전체를 향해서도 조금 편안한 접근을 허락해, 정성 들인 앨범을 새롭게 듣도록 한다.
김윤하: ‘아낀다’를 처음 듣고 떠오른 건 슈퍼주니어의 데뷔 곡 ‘Miracle’이었다. 12명과 13명이라는 다소 부담스러운 멤버 숫자와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예의 불만을 단번에 상쇄시키는 상쾌한 보이 팝. 유명 작곡가가 아닌 멤버가 직접 쓴 곡이라는 점과 멜로디에서 비트로 옮겨온 중심축까지, 지난 10년 간의 국내 아이돌팝의 변화상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 같아 더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보컬 유닛, 힙합 유닛, 퍼포먼스 유닛이 나뉘어져 있는 탓에 'Ah Yeah’나 ‘Jam Jam’처럼 다소 이질적인 트랙들도 수록되어 있지만, 세븐틴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 무난하게 녹아 드는 것도 장점. 지켜볼 만한 신인의 탄생이다.
미묘: '아낀다'는 무척 인상적인 곡이다. 약간의 익살을 더해 탄력적으로 끌고 나가다 B파트부터 청량하게 뻗으며 싱그럽게 폭발하는 후렴, 곧이어 기타를 활용해 걸음을 다잡는 것까지, 잘 조여진 매력이다. 오프닝 'Shining Diamond' 역시 시원한 맛이 좋은데, 후렴의 후반이 다소 엉성하게 마무리된 듯하다. 이런 허점은 좀 더 힙합에 집중하고자 하는 'Ah Yeah'와 'Jam Jam'에서 더욱 커지는데, 제법 본격파로 거친 맛을 내려고는 하지만 조금씩 에너지가 새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산뜻함이 강점인 음색이 전면에 드러나면서 아무래도 힘이나 찰기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런 어수선함과 '아낀다'의 매력 사이에는 취향이 개입할 수 있겠으나, 다음 작업에선 보다 정돈된 완성도를 기대한다.
블럭: 13인조라는 대형 그룹이 또 생겼다기에 우려가 컸지만, 다행히도 그룹은 좀 더 확실한 자기 색을 가지고 있다. 주축이 되는 멤버와 아직 많이 가려진 멤버들 간의 간극이 크기는 하지만, 그것마저도 나는 인원이 많은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장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계범주의 손길이 곳곳에 느껴지는 타이틀곡 '아낀다'는 세련된 보컬 라인이 마음에 든다. 힙합 유닛은 그야말로 미개봉 상태에 가깝지만, 어쨌든 많은 부분을 멤버들이 어느 정도 해냈다는 점에서 이 EP가 스타트를 끊는 차원에서는 긍정적인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라이브에서의 표정이나 에너지가 많은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오요: 이 그룹이 데뷔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기 때문에 ('프리-데뷔' 시스템이라고 하는데 SM Rookies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최근 사실상 하락세를 타고 있는 플레디스이기에, 세븐틴의 데뷔 음반에 대해 반신반의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타이틀곡 '아낀다'를 듣는 동안 그런 내 우려가 얼마나 쓸데 없었는지 절절히 깨달으며 무릎을 꿇고 말았다. 도입부의 펑키한 기타 리프와 더불어 그루브 넘치는 베이스 라인이 확실한 곡의 중심이 된다. 이어지는 랩은 신인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설프지 않을 뿐 아니라 곡 안에서 확실하게 제 기능을 하고 있다. 브리지-훅의 전개 또한 군더더기 없이 탁월한 멜로디 하나와 그를 뒷받침하는 코드 진행, 악기의 구성이 참 맛깔스러워서, 갓 데뷔한 보이그룹만이 전달할 수 있는 청량함(1st Listen에서 이 수식어를 참 오랜만에 쓰는 것 같다)과 넘치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 곡의 작사, 작곡, 편곡을 멤버 우지가 맡았다는 점도 충격적이다. (아니, 막 데뷔한 아이돌이 이런 곡을 프로듀싱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긴 말 할 필요도 없이 이 곡 하나만으로 이번 회차 Discovery!
조성민: 걸그룹을 방불케 하는 청순함과 아기자기함이 넘치는 뮤직비디오부터, 한껏 발랄한 동작들로만 가득찬 무대 퍼포먼스, 그리고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아낀다"는 외침까지, 소년다운 에너지로만 가득 차있다. 백코러스에서 자꾸만 작곡가인 계범주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점이 조금 신경쓰이지만, 그 역시 소년 특유의 발랄함을 표현하는 데에 잘 어울리는 데다, 보컬 멤버들의 실력이 워낙 좋아 아무튼 편하게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최대 장점인 듯하다. 걸그룹에 이어 보이그룹 씬에도 '청순' 콘셉트가 유행할 줄이야.
김윤하: 작사, 작곡, 편곡에서 피처링 진까지 국내 시장은 (당연히) 고려하고 있지 않은 이 싱글을 국내에서 발표된 다른 곡들과 같은 선상에 놓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기준을 국내에 두면 어쨌든 '다른', 잠재력이 느껴지는 곡이라 할 수 있을 테고, 해외에 둔다면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한 맛보기 식 싱글이라고 밖에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오요: 한 철 반짝인 줄 알았던 베이퍼웨이브(vaporwave)가 계속 변종을 양산하며 의외로 오래 지속되고 있긴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Doctor Pepper'는 지루하다. 콜라보레이션도 아니고 그저 세 명의 랩을 이어 붙여놓은 것 같은 어정쩡한 곡이 나오고 말았다. 특히 CL의 랩이 많이 아쉬운데 이 정도 비트 하나 씹어 먹지 못하는데 과연 미국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다른 두 명이 더 잘했다는 것도 아니다.) 잘 모르겠다.
유제상: 평자는 크리에이터가 아니니 단적으로 이야기하긴 어렵겠지만, 솔직히 이쯤 되면 반짝이는 재능이 있는 건지 그냥 트렌드에 따라가는 건지 이도저도 아닌 건지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어느 시점에선가 YG 소속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아트토이 마냥 겉보기만 이쁘고, 크게 널리 향유되는 것도 아니면서, 치러야할 가격이 비싼 것으로(물론 이것은 일종의 메타포다) 다뤄지고 있다는 거다. 평자는 그런 게 싫다.
김윤하: 극한까지 끌어올렸던 ‘힙력’을 표준 수준으로 내리고 나니 확실히 재미가 덜해졌다. 한편 그런 ‘힙’ 스카우터를 제거한 뒤에도 "A" 수록곡들은 "M"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팩트가 떨어지는 인상인데, 이는 한 달에 두 곡씩 네 달 동안 앨범 수록곡 전부를 조금씩 공개해나가는 YG와 빅뱅의 사상 유례없는 시도가 안고 있는 의외의 복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두 곡의 노래를 통해 톱스타 빅뱅과 자연인 빅뱅을 대비시키는 방식을 "D"까지 이어갈지도 궁금해진다.
미묘: 폭발적인 에너지로 달려나가는 '뱅뱅뱅'은 빌드업 끝에 "총 맞은 것처럼"을 거쳐 텅빈 공간으로 떨어진다. 기존에도 빅뱅의 곡들이 어느 정도 보여주었던 구성이지만, 듣는 이를 욕구불만 상태로 몰아가는 정도를 따지자면 이번은 더하다. '병맛'이라고도 일컬어지기에 모자람 없는 이 장난스러운 위악은 일종의 '츤'으로서 빅뱅의 뒤틀린 매력을 강화한다. 예전과는 달리 후반부에서 확실하게 달림으로써 미운 감정마저 해소하는 '데레' 역시 보여준다. ("네가 보고 싶어 죽겠어"라며 내려놓는 다음 트랙 'We Like 2 Party'는 또 어떤가.) 누구도 아닌 빅뱅의 곡이기 때문에 웬만해선 자주 들어볼 것이라, 기나긴 '츤'이 후반 업비트에 대한 기대를 더욱 크게 쌓을 수 있으리라는 계산도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까지 유사한 구성의 곡들이 퍼포먼스의 자리를 비워둔 것이었다면, 이번엔 듣는 이의 감정을 위한 빈 자리다. 경험과 계산으로 조율된 섬세한 공학의 '츤데레' 변증법이라니, 더욱 미워할 수 없다.
오요: 누가 GD에게 EDM은 이제 끝났다고 말 좀 해줬으면 좋겠다. '뱅뱅뱅(BANG BANG BANG)'의 급작스럽고 강박스럽기까지한 분절 구성과 'WE LIKE 2 PARTY'의 어쿠스틱 기타도 그렇고 언제부터 빅뱅의 곡들이 이리 도식적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 곡들이 2012년 "ALIVE" 음반에 실렸다해도 아무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찹쌀떡이 익살스러웠던 'BAE BAE'가 더 듣기에 재미있었다. 아직 "K"와 "E"가 남은 듯하니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겠지만, 굳이 '다섯 명의 빅뱅'을 고집해야할 이유가 있는 건지. 각자 하던 걸 더 잘할 수 있는데 아쉬움이 크다.
유제상: '뱅뱅뱅'은 딱 대중이 빅뱅에게 원하는 그 무엇이다. 만드는 쪽에서는 후렴구를 미니멀하게 가고 싶어했던 것 같은데, 이제 슬슬 듣는 쪽도 배려해야 하니 적당한 선에서 멈춘 기분. 사실 평자는 'FANTASTIC BABY' 이후의 모든 빅뱅 활동이 다 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의 분위기를 다시 살린 이 싱글은 반갑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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