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일~10일에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필진 단평. 이상곤&한승연, 마마무&에스나, 박지민, 인피니트, JJCC, 소녀시대, 포켓걸스, 디아크를 들어보았다.
미묘: 발라드에 관심이 덜한 나를 억누르고 음악전공자인 나를 꺼내본다면 제법 재미난 곡이다. (다소 기악적으로 움직이는) 멜로디 라인도 곳곳에서 신선함 반, 우아함 반을 선보이고, 때론 이색적인 편성을 통해 곡을 슬며시 들었다가 놓거나 장식하기도 한다. 한승연과 이상곤 각각의 목소리가 갖는 고유의 매력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 곡은 보컬리스트 두 사람을 위해 잘 쓰여진 곡이란 인상은 아무래도 들지 않는다. 서로 다른 음역에 대한 안배가 애매해 감정의 흐름이 자꾸 새나가고, 앙상블로서 듀엣의 맛을 느낄 만한 순간도 찰나 주어졌다가는 딴청을 피워버린다. 차라리 솔로곡이었다면 나았을 것이다.
유제상: 여왕의 법을 따라따라 갈 한승연의 목소리가 딱히 이상곤과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곡도 양산형 봄 발라드. 개인적으로는 감미롭게 처절한 이상곤의 목소리에 대해 어느 정도 선호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평자의 호응을 얻는 데 실패했다.
미묘: 비디오의 콘셉트만큼은 감탄이 나온다. 남성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의 여성이, 면도칼과 함께 남성의 목숨과 성을 손에 쥐는 설정 말이다. 심지어 피가 떨어지거나 손을 움켜쥐는 컷까지 들어가며 클리셰를 살짝 비튼다. 아이돌에 준하는 포지션을 감안하면 더욱 과감한 셈. 에스나와 화사가 부분부분 말하듯 리듬을 내려놓는 랩도 유혹적인 매력을 발한다. 다만 기존 발표곡들에 비해 밀도가 다소 떨어지는 감이 있다. 에스나 & 화사에 타 멤버들이 피처링한 듯한 모양새가 곡의 후반부에 들어서야 바뀌는데, 멤버들이 번쩍이듯 교차하는 것이 유난히 근사한 마마무기 때문에 중반까지 아쉬움이 있다. 후반에는 그것을 보상받기에, 이는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겠다.
블럭: 아무리 잘 만든 곡이라고 해도, 아무리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해도 같은 느낌의 음악이 반복되면 질리는 것까진 몰라도 아쉬움은 생길 수밖에 없다. 심지어 영상마저도 계속 비슷한 방향을 고집하는데, 복고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간다고 해도 그 안에서 수많은 상상력의 확장이 가능한데 그걸 모르는 건지, 알면서 고집하는 건지 궁금하다.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좀 더 영리하게 영역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유제상: 정말 취향 밖의 노래지만 평자가 싫어한다고 폄하할 수는 없는 법. 뮤지컬 풍의 곡 분위기나 "수준이 맞아야 대화를 할 것 아냐" 같은 직설적인 가사들이 아마도 이 노래를 선호하는 이들의 폐부를 정확히 찌를 것이다. 이들도 신인이건만 이미 또 다른 후배들의 레퍼런스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여튼 장하다.
조성민: 그동안 마마무에 대해서 조금 오해했었던 것 같다. 비슷한 나잇대의 다른 걸그룹보다 훨씬 원숙한 보컬을 선보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번 싱글을 들어보니 확실히 아직은 신인의 푸릇푸릇하고 어린 느낌이 난다. 에스나의 옆에 서서 이제서야 제 나이를 찾은 느낌이랄까. 어쩌면 에스나의 참여가 이런 의도는 아니었을지 싶기도. 커리어를 리프레쉬 하기에 좋은 이벤트인 것 같고, 그 이상의 거창한 의미는 굳이 붙일 필요가 없어 보인다.
블럭: 박지민의 최대 무기는 고음과 성량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오디션 가수가 가지는 장점 중 하나이기도 하고. 물론 박지민은 여기에 감정을 담아내는 연기와 완급조절까지 가지고 있다. 박지민은 높은 고음과 애절함을 선보이고 있지만, 그것이 이 곡의 장점이자 발목이 된다. 보컬리스트로서 가지고 있는 기량 일부분에 최대치를 두고, 나머지 부분에서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나이에 비해 여유와 풍부한 보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아쉽게 다가온다.
유제상: 푸르밀러 박지민의 첫 단독 싱글. 일단 음악 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박지민이 엄청나게 이뻐졌다, 거의 인체연성 수준으로. 이제 외모 때문에 뜨지 못한다는 말은 하기 힘들 듯. 곡은 15& 활동의 연장선상에 서 있지만 그보다는 좀 더 어둡고 차분한 분위기. 라이브에 강점이 있는 가수의 노래이니 무대를 적극 활용해야 할지도. 이젠 끝나버린 〈케이팝 스타〉 이번 시즌에서 먼저 그런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조성민: 안타깝게도 박지민은 정식 데뷔 이후 한 번도 '케이팝스타 우승자'의 그늘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비슷한 케이스로는 허각 정도를 꼽을 수 있겠는데, 오디션에서의 우승 이후 새로운 소구점을 전혀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15&의 결성과 활동은 '오디션 우승자'의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에 어느 정도 유효한 부분이 있어 보였는데, 솔로곡을 보니 그것도 역부족이었던 듯하다. 오디션 우승자도, 파워풀한 보컬을 선보이는 디바도 아닌, '박지민'부터 보여줄 기회가 만들어지길.
김윤하: 이 앨범이 가진 단 하나의 아쉬운 점이라면 소비층이 현저히 한정되게 마련인 아이돌의, 그것도 라이브 앨범이라는 점이다. 전곡을 풀 밴드 구성으로 재편곡해 무대에 올리는 것으로 유명한 이들의 공연은 이 앨범을 통해 처음으로 공연장 외의 세상에 공개된 셈인데, 첫 월드투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청춘들의 설렘과 자신감, 수십 번의 실전 담금질로 업그레이드된 멤버들의 면면 모두가 힘차고 흥겹다. 흐릿한 순간마다 느낌표를 찍어주는 김성규, 남우현 두 메인 보컬의 존재감과 집착에서 벗어난 인피니트의 색다른 매력을 만날 수 있는 ‘Inception-Can U Smile-너에게 간다’ 라인에 특별히 귀 기울여보길 권한다.
유제상: 2014년 상반기에 있었던 〈OGS Returns Live〉(캬~! 멋들어진 제목이다)를 담은 라이브 앨범. 놀랍게도 타이틀은 인피니트 1집 중에서 가장 만화영화 주제가 같은 'Tic Toc'이다(주지하듯이 '다시 돌아와'는 리듬게임 음악의 분위기가 강했다). 팬서비스 차원의 물건이지만 보통 라이브 앨범이 그렇듯 다시 듣기의 의미도 있고, 편곡 상의 이점인지 곡을 듣고 있노라면 흥겨움이 기존 버전보다 한층 더 강하게 전달된다. 어찌 되었건 즐거운 음반. Pick이 아깝지 않다.
조성민: 작년 초에 있었던 월드투어 앵콜 콘서트의 라이브를 모은 인피니트의 첫 라이브 앨범. 영상 시대에 등장한 오디오뿐인 라이브 앨범은 그저 팬서비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큰 자부심을 가지고 공들여 제작한 티가 난다. 오직 콘서트에서만 들을 수 있는 밴드 편곡을 드디어 대중에게도 공개했는데, 인피니트의 히트곡과 대표곡을 인피니트 음악의 큰 축인 밴드 사운드로 모아두었다는 점에서는 '베스트 앨범'의 역할도 하고 있는 듯하다. 시기적으로 "SEASON 2"가 나오기 직전 마지막(물론 진짜 마지막은 "The Origin"이었지만)으로 선보였던 인피니트의 'SEASON 1' 음악이라는 점을 고려해보았을 때, 성장 서사 중 한 프레이즈를 마무리한 보이그룹이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교보재가 되겠다. 우현과 인피니트H, 인피니트F의 신곡 공개가 다음 활동에 대한 예고편이 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좀 더 '마무리'에 방점이 찍힌 느낌이랄까. 인피니트 음악의 큰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지지는 못했던 제이윤의 곡 'Tic Toc'이 앨범 타이틀곡으로 선정된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
미묘: JJCC의 용기 있는 평범 노선을 지지해왔지만, 이번은 입맛이 쓰다. 지지부진한 R&B에 존재감만은 강한 전기기타, 가요 래퍼보다 딱히 뛰어날 것은 없는 가요 랩과 무던하게 얹히기만 하는 배리에이션까지. 예스럽거나 뻔하거나를 반복하며 흘러가 버린다. 평범하게 파고드는 전략도 좋지만, 특히나 전작 '질러'에 이은 곡으로서는 너무 아무 정체성 없이 파묻혀 가려는 건 아닌지. 어떤 의미를 갖는 릴리즈가 됐든, 근사한 곡을 만들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조성민: 리메이크의 방식이 촌스러운 것은 둘째치고도, 노래 자체가 멤버들의 보컬이나 랩을 전혀 살려주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깨끗한 미성에 잔 기교 없는 창법만이 무리 없이 소화해낼 수 있는 '꽃밭에서'를 부르기엔 멤버들의 보컬이 아직 너무 역부족인 것이 크게 드러나 버렸다. 음악 방송의 라이브 무대에서는 심지어 정훈희 선생님이 직접 등장하기도 했는데, 이들이 원곡자를 대하는 방식이 음원에서나 무대에서나 어색하기 짝이 없어서 민망해 죽는 줄 알았다.
김윤하: 걸그룹 끝판왕이라는 국내 입지와는 달리 파워풀하고 완벽한 퍼포먼스로 일본 팬들의 시선을 잡아온 이들로서는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지는 한 걸음. "Catch me if you can"이라는 반복되는 속삭임을 제외하면 코러스 전체를 멜로디가 아닌 EDM 비트로 채워버린 과감한 구성이 돋보인다. 이는 마치 ‘I Got A Boy’의 댄스 브레이크가 확장/진화되어 곡의 메인 테마를 먹어버린 듯한, 혹은 라이브의 하이라이트 같은 이미지를 전달하는데 그 거침없는 박력에 나도 몰래 반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ick 버튼을 붙이지 않은 건 함께 수록된 비사이드 넘버 ‘Girls’와의 다소 미묘한 밸런스 때문이다.)
미묘: '노래'로서는 다소 허전한 후렴이 마치 포미닛의 '미쳐'에 대한 대구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더 많은 세공과 위압적인 프로덕션, 상냥한 웃음이 소녀시대의 응답이라 할까. 서정적인 앤섬 풍의 B 파트가 솔로와 겹쳐질 때는 어쩔 수 없이 이마를 치고 만다. 지속적으로 이동하는 카메라가 8인의 대형을 루빅큐브처럼 돌려가면서 멤버 한 명 한 명을 소환한다. 그렇게 각 블록이 뽑히듯 튀어나오는 순간의 임팩트는 매우 강렬하다. 익명의 멤버가 아닌, 각각의 캐릭터와 존재감을 확보한 소녀시대 멤버들이기에 가능한 것일 터. 누군가의 말처럼 요즘 SM은 인풋보다 아웃풋이 강한데, 충분한 인풋이 있을 때의 아웃풋은 이런 것일까. 개인적으로 가장 격하게 다가오는 것은 써니와 티파니가 두 개의 기둥을 이뤄 앞으로 펼쳐져 나오며 태연, 윤아, 서현으로 이어지는 2절 B 파트.
유제상: 한창 'Everything Needs Love' 부르던 시절의 보아가 생각나는 곡. 적당히 클럽 분위기가 나지만 그다지 흥겹지 않고, "Catch Me If You Can"이란 가사의 발음이 훅으로 적절한지에 대한 의구심도 든다. 축축 처지는 분위기의 또 다른 수록곡 'Girls'는 정말 에러.
조성민: 듣자마자 떠오른 것은 보아의 미국 데뷔 앨범이었다. 왠지 그 앨범에 들어가 있어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은 소녀시대'를 과시하기에도, '앞으로도 소녀시대'를 기대하게 만들기에도 2% 부족해 보이는 싱글. 이번 싱글에서 빠진 것은 멤버 한 명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 아니었을까. 한일 동시 릴리즈였음을 고려했을 때는 비주얼 이미지의 측면에서 일본에서의 첫 오리지널 싱글이었던 'Mr. Taxi'의 연장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Mr. Taxi'에는 있었던 특유의 뽕끼 있는 멜로디가 본격 EDM인 이 곡에는 없어서 해외에서는 이 곡을 과연 어떻게 들을지 조금 궁금해진다. 한편 커플링곡인 'Girls'는 '영원히 소녀시대' 그 자체라서, 팬서비스 싱글이라면 차라리 이게 타이틀곡이었어도 좋았을 듯하다. 소녀시대의 발라드 트랙들만 따로 늘어놓고 봤을 때도 적어도 탑3 안에는 들 듯한 곡인데, 좀 더 주목받게 해도 좋지 않았을까.
미묘: 모델들로 이뤄진 걸그룹이 몇 번인가 있었는데, 곡과 비디오의 만듦새는 개중 가장 나은 듯하다. 보컬도 디렉팅이 잘 됐다기에는 조금 엉성한 순간들이 있으나 적어도 녹음과 믹스를 흠잡을 것은 없다. 간혹 괜찮은 보컬이 느껴지는 파트도 있다. 곡 자체는 메이저 지향은 분명 아니나, 아이돌로지가 괴작으로 뽑았는데 나름 '언더그라운드 히트'했던 배드키즈의 '귓방망이'를 만든 팀이 그때의 공식 그대로 다시 만들었으니 나름의 활용성과 중독 루트가 마련돼 있으리라. 곡에 다소 싼 맛이 나고 어이없게 하는 부분이 있는 것도 이와 관련해 이해가 된다. 사진 커뮤니티와 레이싱 모델, 행사(와 어쩌면 인터넷 방송까지)가 맞물리는 점이 흥미롭다. 비디오는 "긴 머리도 잘랐어"라 노래하는 멤버가 머리가 길다는 점이 재미.
유제상: 이 싱글은 생각이라는 것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홍진영처럼 생긴 여성 4인조. 노출이 심한 복장. 뽕기 강한 코리안 클럽뮤직. 몸을 비비 꼬는 안무. 안무 없으면 머리 매만짐. 다시 몸을 비비 꼬는 안무. 나 버리고 떠난 너도 똑같은 여자 만날 거라는 저주의 가사... 이것은 만드는 쪽의 고민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고민은 실질적인 매출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라는 판단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크다.
블럭: 기타를 중심으로 한 힙합 리듬의 곡을 듣고 그냥 흔하다고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 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정체성도 어느 정도 보이고, 가사나 소화하는 컬러가 뚜렷해서 좋다. 조금은 철 지난 스타일이 사실이긴 하지만 괜찮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으며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의 변경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오히려 계속 2000년대 초, 중반의 느낌을 고수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유제상: 위의 포켓걸스와는 완전 정반대로 이쪽은 생각이 너무 많다. 드라마 예고편을 연상시키는 뮤직비디오도 그렇고(더군다나 그 내용은 국가적 재난과 관련되어 있다), 추상적으로 희망을 노래하는 가사도 그렇고, 담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아 오히려 결과물이 단순한 기성품 중의 하나로 보일 정도. 이들을 다룬 기사 제목 중 하나가 "걸그룹은 꼭 청순 혹은 섹시해야 하나요?"던데,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이것보단 나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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