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우주미키, 예쁘다, 풍뎅이, 후이, 워너원, 방탄소년단, 유빈, 프로미스9, 온앤오프, 듀자매의 새 음반을 다룬다.
마노: 지난 YDPP의 싱글과 마찬가지로 탄산음료의 캠페인 송으로 발매된 싱글. 팬들이 염원하던 ‘영동포팡’ 조합처럼, 기획사도 그룹도 다른 멤버들이 조합을 이루었다는 점이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탄산처럼 톡톡 터지는 사운드 위를 사뿐히 뛰어다니는 네 명의 수행력이나 곡의 퀄리티는 안정적이고 무난하나, YDPP 때와 마찬가지로 크게 인상에 남지 못하는 모습이 아쉽다. 그때도 그랬지만, 우주소녀와 위키미키를 합친 ‘우주미키’라는 이색 조합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의의라고 하면 아무래도 좋은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뮤직비디오와 함께 감상하길 권한다.
서드: 탄산음료의 프로모션 CM 송으로는 무난하겠지만, 모처럼 우주소녀와 위키미키가 유닛으로 만난 것 치고는 두 그룹의 매력을 어떤 식으로든 이끌어내지를 못한다. 그나마 뮤직비디오를 통해 네 명의 케미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장점. 그 재미가 노래에까지 이어졌으면 좋았을 텐데.
유제상: 두 팀의 인기인들을 모아 놓고 이 정도밖에 못하냐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디지털 싱글. 두 팀의 지향점이 의외로 판이하게 다른 고로 콘셉트는 ‘소녀들의 유쾌한 일상’ 정도로 맞춰져 있는데 이게 심심하기 이를 데 없다. 음원은 위키미키가 그러했던 ‘비트가 강한 기조’를 유지하는데, 어느 하나 특기할 것 없이 심심하다. 반면 뮤직비디오는 필요 이상으로 괴기해서, 호안 코르넬라(Joan Cornellà)의 일러스트처럼 귀엽지만 기분 나쁜 분위기를 러닝 타임 내내 선보인다. 평자 입장에서는 ‘Peek-A-Boo (피카부)’의 뮤직비디오 이후로 최근 본 것들 중 가장 음험한 뮤직비디오였다. 누가 저 마이클 마이어스 좀 치워줘!
조은재: ‘여름’에 걸맞은 납량특집을 깜찍하게 재해석한 뮤직비디오 위로 ‘어흥’하고 위협하는 듯 울리는 브라스와, 위협하는 브라스를 놀리듯 불어대는 휘파람 같은 플루트 멜로디가 딱 TV CM의 감성으로 다가온다. 탄산음료를 기능적으로 설명하는 듯 연애감정으로 은유해낸 가사는 덤. 저관여 상품 광고 특유의 경쾌함을 패키지로 선사한다.
서드: 뮤직비디오를 보면, 한국이 아닌 다른 아시아권에서 케이팝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했거나, 또는 케이팝을 지향했지만 어딘가를 몹시 오독한 결과물이란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장점을 찾아 언급하는 게 리뷰어의 역할 중 하나겠지만... 애석하게도 현재로선 달리 드릴 말씀이 없다.
심댱: 그룹명부터 ‘예쁘다’라니, 한계가 분명해 보이는데 왜 이런 이름을? 싶지만 중국어 버전을 낸 만큼 그들의 패기만큼은 인정하고 넘어가겠다. 소개자료를 보니 요즘 가요의 복잡함과 화려함 대신 쉽고 신나는 멜로디를 중심으로 잡았다고 한다. 근데 보컬도 요즘 걸그룹의 창법과 톤이 아니라서 어째 그룹의 색과 어울리는 곡 같다. 다만 다음 활동은 21세기의 감성 및 트렌드와 불화하지 마셨으면 좋겠다.
유제상: 그룹 이름이 ‘예쁘다’고 곡 제목이 ‘예뻐지다’인가, 그룹 이름이 ‘예뻐지다’고 곡 제목이 ‘예뻐지다’인가. 열악한 환경에서 싱글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알겠으나 결과물이 이렇다면 가창력이고 뭐고 다 소용없지 않나. 가사는 왜 이렇게 구세대적인가. 여자가 뭐가 아쉬워서 이렇게 연인에게 목매는 상황을 겪어야 하나. 이 총체적 난국 속에 본 싱글은 중국어 버전과 인스트루멘탈 버전을 포함하고 있다.
마노: 러닝타임 내내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무한도전 가요제〉를 통해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냉면’과 같은 여름 시즌송을 노렸음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지만(심지어 부제도 ‘여름송’이다), 은유적으로 풀어낸 가사에 화사하고 시원스런 사운드가 어우러졌던 ‘냉면’과 달리 심히 1차원적이고 유치하기까지 한 가사와 엉성한 멜로디가 곡의 몰입을 저해한다. 마치 크레용팝의 어쿠스틱 버전을 보는 듯한데, 크레용팝보다도 더 심한 ‘쌈마이’ 느낌에 그만 고개를 젓고 말았다(차라리 크레용팝은 ‘고퀄의(?) 쌈마이’기라도 했지!). 비빔면의 CM 송인가 싶어 보도자료를 살펴보았는데 그조차도 아닌 모양. 차라리 CM 송이었으면 그나마 납득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서드: ‘냉면’의 아성에 정면으로 도전할 순 없으니 연상작용을 일으키는 제목에 다소 엽기적인 콘셉트로 어필해보려는 전략일까. 누군가에겐 신인처럼 보이겠지만 어느새 데뷔 5년 차. 앞서 ‘삐삐빠빠’나 비교적 최근의 ‘카마야또’만 해도 이보다는 좀 더 세련되었던 것 같은데, 아주 약간의 세심한 마무리가 아쉽다. 개인적으로 정말 궁금한데, 제작사는 이들의 노래가 어떤 식으로 소비되길 기대하는 걸까?
유제상: 시즌송 바닥의 생제르맹 백작이라 부를 만한 풍뎅이의 새 디지털 싱글. ‘면발 (여름송)’은 2000년대 초반 엽기 트렌드를 연상시키는 곡이다. 정말 단촐한 기타 리프와 드럼 비트에 “면발이 맛있다(면발면발)”을 연호하는데 계속 듣다 보면 언짢을 정도. 특이하게도 가사 속 면발이 어떤 음식의 면발인지를 특정하지 않았는데, 이는 최근 삼총사의 ‘먹어 먹어’나 달빛요정역정만루홈런의 ‘고기반찬’ 등이 먹는 방송에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것처럼 방송 속에서의 광범위한 활용을 노린 게 아닌가 싶다. 평자가 방송국 PD가 아니라 미안하네요.
마노: 몽환에 섹시와 퇴폐를 더한 콘셉트와, 중반부부터 주고받듯 흘러가는 남성과 여성 보컬이 꽤나 좋은 합을 이룬다. 곡의 무드가 상당히 눅진하고 끈적한 것과는 달리 보컬이 상대적으로 산뜻한 느낌이라는 것도 무척이나 좋은 조합. 빽빽하게 채웠던 전작들과는 달리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미니멀한 구성에 후이와 소민의 케미스트리로 여백을 채웠는데, 까다로운 음역대를 너끈하게 소화해내는 모습에는 절로 혀가 내둘러진다. 리드하기 보다는 소민에게 리드당하는 듯한 후이의 모습과, 안대 등 섹슈얼한 소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는 경연 무대를 꼭 놓치지 말길 권한다.
유제상: 펜타곤의 후이가 카드의 전소민과 함께한 듀엣곡. 그룹 활동일 땐 몰랐는데 후이의 목소리가 상당히 섹시하다. 뿐만 아니라 곡의 분위기도 전반적으로 상당히 섹시하다. 샤이니 멤버가 부르는 박재범 노래 같은 느낌... 가사가 섹스에 대한 다소 지루한 은유(진정 이런 부분에서 참신하긴 쉽지 않은 건가)인 것을 빼면 상당히 멋진 곡. 개인적으로 음악적인 장르는 전혀 다르다만 비슷한 인상을 주었던 보아의 ‘One Shot, Two Shot’과 같은 섹시함을 느꼈다. 꼭 한 번 들어보시길!
마노: 힘껏 집중해서 여러 차례 들어보았는데 인상에 남는 곡이 단 한 곡도 없었다. 무려 네 조합의 유닛으로 쪼개 놓은 탓에 그나마의 집중력과 텐션이 분산되어 산란한 데다, 곡들이 하나같이 뻔하고 지루하기만 하다. 쟁쟁한 프로듀서들이 곡을 보탰지만,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라는 철 지난 유행어를 빌려오고 싶을 정도로 고만고만한 퀄리티를 보일 뿐이다. 그것이 결정적으로 앨범 전체의 퀄리티는 물론, 워너원이라는 네임 밸류까지 깎아 먹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아무렴 어떤가 싶지만서도.
유제상: 현명하달까, 지금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상업적으로 잘 판단했달까. 여튼 나와줄 때를 잘 맞춰서 나와준 EP. 타이틀 ‘켜줘’는 느린 비트의 ‘에너제틱’처럼 느껴져 일견 만드는 쪽이 게으르다는 인상도 주지만, ‘TT’와 ‘Likey’의 관계처럼 이런 방식의 곡 선정이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음을 감안할 때 곡의 기시감을 비난만 할 수는 없겠다. 뭐 나머지 곡들은, 지코 곡은 지코 노래 같고 넬 곡은 넬 노래 같다. 어떤 의미에서는 피처링 혹은 이들이 말하는 대로의 ‘프로듀싱’ 방식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차라리 모든 게 노이즈 없이 투명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그렇다, ‘부메랑’은 그다지 좋지 않은 노래였고, ‘켜줘’는 흥하는 게 당연하며, 나머지 곡은 팬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선에서 멈춰선다. 물론 이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아니, 아이돌이라는 특수성 아래 칭송받아 마땅하다. 이들의 상업적 전략을 지지하는 의미로 본 EP에 Pick!을 부여한다.
조성민: ‘워너원’이라는 이름 자체가 가진 가치를 걷어냈을 때 이 앨범이 과연 음악적으로 얼마나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커리어가 유한한 것과 디스코그래피의 퀄리티를 추구하는 것은 다른 맥락의 일이다. 보여질 시간이 짧기 때문에 완결성에 더 많은 고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오직 팬덤 안에서만 공유되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유닛으로 나누어진 수록곡으로 트랙이 넘어가면 이 문제는 더 통렬하게 다가오는데, 워너원 멤버 각자의 개성을 살려주기엔 각 유닛의 프로듀서들이 지나치게 안전한 선택을 했다는 인상을 준다. 팀의 결성 자체가 일원화된 프로덕션의 캐스팅 시스템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기투표’를 통해서였으므로, 어쩌면 워너원에게 주어진 과제는 2년간의 활동 내내 한 명의 아이돌 멤버로서의 캐릭터와 역할을 만들어내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중요한 과제가 ‘워너원’ 자체의 이름값에 가려져 간과되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번 앨범이다. 단적으로, 어떤 멤버들은 1년 전 〈프로듀스 101〉 시즌2 방영 당시의 별명을 아직도 대표 소개 문구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미묘: 원곡에 상당히 록의 문법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이를 록 버전으로 만들었을 때 ‘Rocking Vibe’란 제목을 붙인다는 게 좀 의외였다. 곡을 들어보니 납득되는 게, 록적인 요소를 강화했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록을 가미한) 힙합의 인상이 강화된 셈. 일렉트릭 기타가 곳곳에서 다이내믹한 효과를 주기는 하지만 스트로크의 질감을 살리기보다는 디스토션의 레이어를 깔아 넣는 느낌으로 믹스돼 있기도 하다. 원곡에 비해 4/4박자의 스트레이트한 느낌이 더 살다 보니 랩과 보컬의 탄력적인 그루브나 코드 진행이 성급하고 뻣뻣하게 들리기도 하는 점은 아쉽지만, 아마도 무대 퍼포먼스에서는 하등의 단점이 되지 않을 법하다. 반대로, 원곡에서의 디테일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되는 점도 있다.
유제상: 원곡의 인기가 채 사그라지기 전에 등장한 빠른 리믹스 버전. 사실 이런 건 앨범에 들어가는 게 맞겠지만 뭔가 이유가 있어서 따로 나왔겠지... 원곡이 록 베이스가 아닌 관계로 이런 식의 리믹스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해외 팬들의 취향을 위한 걸까? “라유소배~” 부분의 과장된 기타 소리에는 다소 실소가 나왔지만 사실 방탄소년단의 이전 리믹스도 다 이랬다. 그냥 열기를 이어가는 역할의 디지털 싱글로 생각하련다.
마노: 얼마 전 각종 커뮤니티에서 시끌시끌했던 ‘마카롱 사태’와 관련한 이야기를 빌려오고 싶다.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한 마카롱 가게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때문에 전국의 유명 마카롱 가게들이 연일 조기 품절을 기록하며 반사이익을 얻는 ‘의문의 순기능’이 일어났다. 게다가 논란의 대상이 된 마카롱 가게는 아이러니하게도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하니, 이를테면 유빈의 본작은 (상당히 모진 비유일지도 모르겠으나) 해당 마카롱 가게를 보는 듯하다. ‘시티팝 알못’의 시선으로 보아도 대체 어디가 시티팝인지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시티팝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이 싱글 덕에 시티팝에 입문하거나 ‘베이퍼웨이브’라는 개념을 새로이 습득하게 된 이들이 늘었다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문의 순기능’이 아닐까. 거기에 어딘가 석연찮은 저작권 관련 이슈까지 더해졌으니, 우아한 달콤함 뒤의 끝 맛이 꽤나 씁쓸하기 짝이 없다. 이를 통해 업계의 자성을 바란다면 다소 비약적인 결론일까. 참고로 본 단평은 필자의 댕댕이가 작성하였습니다 판사님.
미묘: 원더걸스에서 ‘유쾌함’을 담당하는 키 플레이어는 무뚝뚝한 듯 뻣뻣한 듯한 유빈이었다고 본다. 그 느낌이 그리웠던 이라면 반색할 만한 기획. 깍쟁이처럼 구는 능청스러움은 유빈의 캐릭터에 착 달라붙고, 장르의 선택은 원더걸스가 하던 ‘본토’의 시간여행의 스핀오프처럼 다가온다. 그런 기획이라면 더욱,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의외성이나 신선미가 떨어질 법한 소재를 시의적절하게 낚아챘다고 본다. 오히려 나는 오마주가 조금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보다 현재의 케이팝 식으로 까불거렸다면 맛이 더 살아났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유빈 자체가 일종의 캐릭터 배우라서 과장된 희극에는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르겠지만. 짐짓 무서운 척을 할 때도 유쾌한 애정을 불러일으키는 재능의 그에게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심댱: 원더걸스의 복고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트랙이 아닐까. 왜 유빈이, 그것도 왜 ‘시티팝’을? 이라는 물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일렁이는 몸짓과 화려하게 가져온 복고 무드를 보면 아무래도 상관없어지고 만다. 트로피컬 하우스에 지쳐가던 대중에게 ‘시티팝’이라는 신선한 장르를 알려주어서 고맙지만, 해당 노래가 엄밀히 말하자면 ‘시티팝’이 아니라는 함정이 존재한다. 이 노래, 특히 ‘시티팝’을 둘러싼 흥미와 아이러니가 다분히 대중가요적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유제상: 뭐라고 말해야 할까.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적어버리면 편집장의 검열을 피할 수 없을 터... 음, 일단 제작진 쪽이 이런 곡을 무지 만들고 싶어 했다는 의지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시뮬라시옹은 적어도 기표 단위로 성공했다. 유빈의 무대를 본 나이든 이들은 예외 없이 “저거 (1980년대 미국 가수를 모사한 일본 가수를 다시 모사한) 김완선 아냐?”란 반응을 보였으니까. 일단 보도 자료 혹은 유빈 본인의 입으로 시티팝을 언급했다는 것은 적어도 이 디지털 싱글이 베이퍼웨이브(Vaporwave) 붐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묘하게 그 지점이 평자 같은 사람의 화를 돋운다. 묘하게 해당 장르를 조롱하는 것 같은 멜로디와 가사(곡 이름을 보라. ‘淑女’다!)는 차치하더라도, 베이퍼웨이브의 시각 이미지를 전상일 시각공작단 스타일로 재현한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이런 프로젝트를 왜 진행하는지 의문이 든다. 그들은 (혹은 유빈 본인은) 정녕 유빈이 이런 장르의 퍼포머로 어울린다고 생각한 걸까?
조성민: 양식은 80년대에서 가져오려고 했던 의도가 다분해 보이지만, 뜯어보면 80년대 시티팝보다는 90년대 한국 가요에서 기원한 것이 더 많아 보인다. 수수하고 담백한 유빈의 음색은 청량하면서도 감칠 맛 나는 포인트를 만들어내는 시티팝의 창법보다, 차라리 90년대 엄정화, 김현정 등의 댄스 팝에 더 어울려 보인다. ‘힙한’ 이미지를 가져오고 싶었다기엔, 이 계열의 이미지를 선미가 선점하고 대히트하면서 ‘힙’하다기보단 차라리 ‘트렌디’해진 양상으로까지 보인다. 〈언프리티 랩스타 2〉의 유빈이 ‘시티팝’을 선택했을 땐 그만한 설득력이 필요했을 텐데, 과연 그 설득력의 기저에 무엇이 있었을지 궁금해진 기획물.
마노: 멜로디가 아닌 내레이션으로 시종일관 진행되는 인트로 트랙에 잠시 당황했다. 분명 멜로디를 입힐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어쩐지 만들다 만 듯한 느낌에 찜찜함을 느끼다가도, 산뜻한 상큼함이 넘치는 ‘너를 따라, 너에게’부터 좋은 기류를 끝까지 잘 끌고 가는 모습에 이내 납득하게 된다. 멤버들의 성장세와 더불어 전반적으로 프로덕션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 간다는 인상. 단지, 전반적으로 나쁜 퀄리티는 아니지만 어딘가 결정적으로 ‘조이는 맛’이 부족해 보이는 타이틀 ‘두근두근’ 대신에 명랑하고 활기찬 기운으로 가득한 ‘22세기 소녀’가 타이틀이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눈에 띄는 성장세에 Discovery!를 선사한다.
유제상: 이트라이브의 힘을 빌려 완전체 이전의 모습을 적당히 보여버린 이달의 소녀와 대조를 이루는 앨범. 사실 아이돌 문화라고 하면 일본 대중문화의 그림자를 완전히 떨치기 어려운 편인데, 이는 70년대생이 마지노선이라 할 구세대들에게 이상한 저항감을 불러 일으켜버린다. 그것이 어떤 방식이든 결과물에 부정적으로 개입하게 되는데, “To. Day”는 그런 그늘이 없는 결과물이다. 이 앨범은 전래 없이 일본풍인데, 퀄리티가 높을뿐더러, 이제 동시대의 일본 아이돌은 이런 곡을 더 이상 부르지 않는다. 이제 중국에서는 전래되지 않는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과 같은 외래 음악의 한국적 재현 사례랄까. 특히 ‘두근두근’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노라면 이들이 일본식 서브컬처에 대해 얼마나 높은 이해도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점멸하는 고양이, 거대 고양이, 클로즈업되는 소녀의 얼굴... 상업적 성취와는 별도로 케이팝 씬에서 이 정도의 결과물이 나왔다는 게 정말 흥미롭고 또 자랑스럽다. 그런 고로 Discovery!
조성민: 팀워크도 제법 좋아졌고, 눈에 띄는 키 플레이어들도 생겼다. 멤버들은 분명 성장하고 있는데, 지향점이 좀 더 잘 만들어진 여자친구(특히 학교 3부작)에 머물러 있는 것은 무척 아쉽다. 단지 제이팝 ‘아이도루’를 번역해오는 것보다 더 본격적이고 더 괜찮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인상. 타이틀곡 ‘두근두근’의 제목 그대로의 ‘두근거림’도 좋지만, 커플링 곡 ‘22세기 소녀’의 활기와 패기는 이대로 묻히기엔 너무 아깝다.
마노: 황현과 모노트리 사단이 처음부터 끝까지 앨범에 관여한 점이 눈에 띈다. 꽤나 기세 좋게 달려나가는 하우스 리듬에, 마치 멜론 소다 위 아이스크림처럼 톡 얹어진 색소폰 소리가 인상적인 타이틀 ‘Complete’이 귀를 잡아끈다. 상쾌한 무드의 ‘Fly Me To The Moon’까지 적절히 텐션을 가지고 가다, ‘아침’부터 갑자기 축 처지더니 마지막 발라드 트랙 ‘스물네 번’까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앨범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점이 아쉽다. 타이틀 ‘Complete’과 대척되는 ‘Incomplete’을 부제로 내건 ‘나 말고 다’가 그나마 기억에 남는다.
미묘: ‘Fifty Fifty’와 ‘나 말고 다’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퓨처 계열의 사운드로 이렇게까지 밋밋할 수 있는지 놀랍기 때문이다. 수록곡들의 면면은 아이돌 보이그룹으로서는 밋밋한, 그래서 무난하고 편안한 가요의 영역에 한 발을 걸친다. 자기주장이 약한, 어디서 틀어 놔도 튀지 않을 곡들이라고 할까. 그래서 청순 계열 걸그룹 앨범의 수록곡들을 듣고 있는 기분도 든다. 당장의 흥행에는 약점이 될 만도 하지만, 마냥 맑고 무해하며 선량한 느낌이 밉지 않다. ‘착한’ 팝 발라드인 ‘스물네 번’에서 그런 성격이 가요적으로 발휘된다면, 꽤 우아한 분위기로 억제된 ‘나 말고 다’는 기승전결을 납작하게 누른 클럽뮤직의 특성에 역설적으로 가서 닿는다. 흥행을 차치하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오히려, 첫 두 곡의 활기가 다른 방식으로 발휘된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흥미로운 EP. (여담이지만 “너에게만 오픈소스야”라는 가사가 재미있다. 특정인에게만 오픈인 것은 근본적으로 오픈소스가 아니기 때문인데, 이런 것이 또한 케이팝의 맛이리라.)
심댱: 전작보다는 좀 더 날카롭고 그래서 저돌적으로 보인다. 야심이 슬쩍 내비치는 두 번째 걸음. ‘Fly Me To The Moon’도 역시 곡이 가진 힘이나 멜로디가 돋보이지만 ‘Complete’에서 휘몰아치는 색소폰이 타이틀곡이 가져야 하는 ‘빡셈’에 부합하는 것 같다. ‘아침(Good Morning)을’ 기점으로 텐션은 차차 화사하게 풀어져 귀를 쉽게 잡아채고 부담없이 놓아주는 앨범이라는 인상이 잡힌다. 참고로 ‘나 말고 다(Incomplete)’는 부제부터 타이틀곡의 반대항으로 자리 잡고 있는 트랙인데 화사한 지질함을 듣고 싶다면 추천한다.
미묘: 모 유명 영화평론가 겸 소설가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의 듀자매. 어쿠스틱 기타 중심의 반주로 사뿐거리는 달콤한 포크 팝인데, 이런 스타일의 곡은 템플릿화 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곡은 템플릿의 요점을 정확히 캐치해 적절히 활용한다. 의성어를 활용해 가볍게 던지고는 느긋하게 여백을 둔다든지, 후렴이 부드럽게 흐르는 듯 구성된다든지, 의도적으로 조금은 동요적인 멜로디를 구사한다든지, 사운드도 적당히 찰랑찰랑하면서 가볍게 잡혀 있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마지막 후렴의 반복은 아이디어의 고갈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적당한 페이드아웃도 나쁘지 않다. 두 멤버의 목소리는 제법 흡사한 결을 보이지만 차이 역시 비교적 선명하고, 테크닉이 뛰어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 질감과 연기가 준수한 편. 나긋나긋하고 애교스러운 노래만 한다면 아쉬울 음색이지만, 곡에는 상당히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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