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일~10일에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하이포, VAV, 규현, 지코, 루커스, 칠학년일반, 브라운아이드걸스, 트로피, 로미오, 라니아, 박재범, 제이하트(엔소닉), 하트비, 워너비, M.A.P6, 타히티, 빅스를 다루며, 지난 회차에 누락된 10월 30일 발매 비비디바를 포함한다.
미묘: 대단한 곡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금속성의 사운드 질감이 꽉 찬 느낌을 주는 가운데 (짧아서도 그렇겠지만) 흠잡을 곳 없는 호흡을 보여준다. 군무에 이어 각 멤버의 독무를 보여주는 안무의 전개도 납득이 가고, 그것이 곡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점도 긍정적. 그런데 남들 같으면 미니앨범의 인트로로 수록할 법한 트랙을 굳이 싱글로 발매했다는 것에서 특이점이 발생한다. 'EDM이 미래' 같은 마케터들의 농간을 (뒤늦게) 덥석 문 결과 같지는 않고, 공연에서 댄스 타임을 변용하여 멤버들을 소개하는 효과를 갖는 퍼퓸의 'P.T.A.' 같은 것을 만들어보고자 한 듯하다. 그것을 굳이 발매했다는 것 역시 특이하기는 하나, 인상적인 비디오를 만들어 홍보하고자 하는데 어차피 거기까지 왔으면 싱글 발매에 돈이 딱히 드는 것은 아니니... 같은 진행이 아니었을까. 데뷔 싱글과는 일렉트로닉 기조가 강하다는 것 외에는 꽤 이질적인 분위기를 보이는데, 향후 팀컬러를 설득력 있게 잡아 이어갈 수 있다면 이 곡이 행여 '흑역사'로 분류되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유제상: 토끼귀 메이드 페티쉬 비비디바의 새로운 싱글. 'Born To Vividiva'는 사람 목소리가 안 나와서 '이거 뭐지?' 했는데 정말 1분 38초 동안 스크릴렉스 풍의 음악만 나오고 끝난다. 일종의 티저라고 본다면 이 물건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가가 관건인데, 개인적으로는 뮤직비디오의 퀄리티로만 놓고 보면 회의적이다. 더군다나 만약 바로 다음 싱글이 'Born To Vividiva'의 길이를 늘이고 가사를 붙인 것이라면...
블럭: 예전에 임영준이 아깝다는 말을 한 적 있는데, 이제는 그냥 하이포 멤버가 아깝다고 하겠다. 더 무난한 프로덕션으로 남자다움을 강조하며 수트 비슷한 걸 입히는 안타깝고도 뻔한 공식이 하이포에까지 왔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표한다. 물론 지금까지 나름대로 괜찮은 시도를 해왔음에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지표로 드러나는 결과가 아쉬웠기 때문에 이러한 길을 택한 것 같지만, 심각성을 느낄수록 더욱 기간을 두고 깊이 있게 고민하는 게 좋은 방법인 듯하다.
오요: 보컬에 방점이 찍힌 그룹인 것 같았다가 어, R&B도 했다가 그게 아니면 강한 비트의 힙합을 끼얹은 보이 그룹도 해봤다가 이번엔 애절하면서도 비장한 댄스곡을 들고 나왔는데 여전히 노래를 잘하고 랩을 잘하는 것 외에 하이포가 대체 어떤 아이돌인지 도통 알 수 없다.
유제상: 5개월 간격으로 열심히 등판 중인 하이포의 신보. 사이사이의 랩과 비트 처리는 은근 세련된 모습을 보이지만, 정작 뇌리에 남는 멜로디 파트가 무지무지 통속적이라 곡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다 깎아 먹는다. 다른 메이저 남성 그룹과의 직접비교는 아직 무리지만, 일단 비교를 해볼 만한 수준으로 올라온 점은 고무적이라 하겠다.
오요: 케이팝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라면 역시 두텁게 보컬 트랙을 쌓아올린 후렴구일 텐데 'Under the moonlight (달빛 아래서)'는 완벽히 실패한 후렴구를 들려준다. 차라리 핼러윈 콘셉트에 맞게 안개 낀 바다 너머에서 들려오는 듯한 소리의 먹먹함과 희미함을 의도한 거라 믿고 싶다.
유제상: 멤버가 무려 여섯. 이름에 통일성이 없고, 그룹 이름도 부르기 힘든 브이에이브이. 타이틀은 'Under The Moonlight(달빛 아래서)'. 이런 인상들과 무관하게, 멤버들의 외모는 화려하고 뮤직비디오는 매끈했다. 전체적으로 빅스의 방법론이 다수 차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적당히 음산한 타이틀과 멤버들의 콘셉트가 어우러져 좋아하는 사람은 확실히 좋아하는 그룹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렇게 간단히 이야기하기엔 변수가 너무 많지만도.
미묘: 발라드엔 아무래도 관심이 없는 나지만, 이수영의 '스치듯 안녕'을 닮은 이 곡의 라인이 파고드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성시경에 대한 규현의 강점은 발라드 보컬의 유려한 색감을 중심으로 건조할 정도로 담백한 질감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이라 보는데, 몇몇 프레이징이 유독 성시경을 연상시키는 이 곡에서 그 강점 역시 상대적으로 두드러진다. 브리지 이후 끝날 듯 끝나지 않고 더, 더 밀고 나가는 구조가 매력적인데, 바로 이 부분에서 건조한 담담함과 절제된 격정 사이를 오가는 진폭이 근사하다.
돌돌말링: '밀리언 조각'이 포함된 미니앨범 "다시, 가을이 오면"이 나온지 얼마 안 됐는데 또 싱글을 내놓다니, 발매 시점이 조금 의아했다. 어디 OST나 광고 음악 타이업인가 찾아봤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작편곡 크레딧을 보니 하광훈의 Zigzagnote더라. 단지 그의 이름값 때문에 발매를 급결정한 노래라기에는 지나치게 평이한, 예상 가능한 전개의 고전 스타일 발라드다. 차라리 "다시, 가을이 오면"의 수록곡을 후속곡으로 활동하는 건 어땠을지. 규현이 멜로디를 쓴 '안녕의 방식'이 참 좋았는데 말이다.
돌돌말링: 딱 이번만, 음악적인 리뷰는 다른 필진 분들께 맡기며, 나는 이 음반에서 '돌덕'에게 가장 의미 있는 한 줄을 집중 리뷰하려고 한다. "경고했어 내 팬들 향해서 빠순이라 나불대면 뒈져" 본래 부심 있는 장르 출신이 아이돌을 하면은, 기존의 장르 팬들과 아이돌을 통해 신규 유입된 이른바 '수니'들의 텐션으로 아수라장이 된다. 블락비로 데뷔한 이래 아이돌이냐 힙합이냐를 꾸준히 질문받아온 지코의 팬덤도 예외가 아니었을 텐데, '날(feat. Jtong)'을 통해 지코는 여성 팬들을 우군으로 선언하고 그들에 대한 모욕에 경고를 날린다. 실질적인 소비 집단인데도 '어린 여자들'의 취미란 이유로 쉬이 무시당해온 아이돌 팬들에게 이만큼 역사적인 펀치라인이 있을까.
오요: 지코는 정말 물이 올랐다. '날 (feat. JTONG)'에서 몰아치는 랩은 위악적이라기보다는 현재 지코가 얼마나 자신에 차있는지를 보여주고, 또 그 자신감이 공수표가 아님을 확실히 증명하고 있다. 'Boys And Girls (feat. Babylon)'은 힙합과 팝이 팽팽하게 균형을 맞춘 트랙으로 보컬 멜로디는 사실 진부하지만 지코의 랩이 역시나 곡을 살린다. 이 정도의 수준과 긴장감을 유지한 채 앨범 단위의 큰 그림을 지코가 그릴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또 그래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유제상: 상당히 공이 많이 들어간 노래를 가지고 나왔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아름다워요'는 (다른 곡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랩 파트 등에서의) 다소 낡은 느낌을 주지만, 그 낡음이 듣는 이에게 안정감을 주는 방식으로 기능하고 유려한 멜로디가 이를 도와 가요의 이상적인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만든 쪽에서도 곡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지 인스트루멘탈을 포함 총 세 곡의 '아름다워요'가 수록된 것이 눈에 띈다. 세 번째 싱글인데 이제 루커스가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릴 만한 기회가 아닌가 싶다.
미묘: 소녀시대 등의 걸그룹들이 응원가 류의 트랙을 연달아 내놓으며 일종의 국민 공공재로 자리 잡던 시기가 'Believe'에서 강하게 연상된다. (이렇게 들어보니 당시 그 기류의 선대에 이 노래가 강하게 참조한 god의 '촛불 하나'와 H.O.T.의 '빛'이 있었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런 류의 곡들은 대체로 해당 그룹이 '바로 그 그룹'이란 선언과도 곧잘 연관된다. 그런데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이 음반의 보컬이 지난 몇 년간 드문드문 시도돼 온 '로리 보이스'를 극대화해놨다는 점이다. 이미 보여준 보컬의 기본기보다 한참 무너진 발성은 분명 어린이 가창을 시뮬레이션하는 일본 서브컬처의 방법론에서 온 것이리라. 초등학교 졸업 직후를 의미하는 듯한 이름의 칠학년일반은 이제 이 곡을 통해 팀 성격의 본격화와 일종의 안정세를 선언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조금은 무서운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단은 이런 노골적인 전략이 어디까지 통하는지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곡 자체는 예쁘장해서 음악적으로 부담을 주진 않고, 'Always'와 더불어 이들에게 잘 어울리기도 한다.
돌돌말링: 칠학년일반은 갈수록 아웃풋이 좋아진다. 듣기 편한 아이돌팝을 추구하는 것은 일본 걸그룹들이 위기 때마다 내놓는 안전 전략을 따르는 것 같은데, 뮤직비디오의 만듦새 같은 데서 점점 안정화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소규모 기획사 아이돌들의 고군분투란 것 자체는 마음을 복잡하게 하지만, 노래만큼은 편안하게 들린다.
미묘: 내게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미덕은 걸그룹에게 흔히 기대되는 '마냥 즐거움' 뒤에 묵직한 무기를 능청스럽게 숨겨두고 있다는 점이다. 가사든 음악이든 거침없이 달려나가는 '웜홀'의 어마무시한 섹슈얼 코드나, 'Wave'가 노골적으로 슬픈 표현들을 사용하면서도 감정이 뭉근하게 깔려 들어가도록 하는 우아함 같은 것이 그렇다. (앨범 전체에 '왜 이렇게까지?' 싶을 정도로 깔아놓은 이공계 코드들도 그래서 더 재미있다.) 〈언프리티 랩스타〉같은 얕은 직설로 떨어져 버리는 'Light'가 실망스러운 것은 그래서다. 수록곡 대부분 훌륭한데도 뭔가 시원하지 못한 것 역시 마찬가지의 이유다. 타이틀인 '신세계'는 그나마 작지 않은 위안이 된다. '아브라카다브라'의 주술적 미래를 대조적으로 리뉴얼하는 듯한 미래주의 속에서, 보컬리스트들의 존재감과 사운드스케이프가 좋은 조화를 보인다. 브라운아이드걸스가 이보다는 조금 더 타이트하길 바라는 것이 과욕이라면, 기대해도 될 아티스트는 정말 몇 남지 않을 것이다.
조성민: 이 앨범은 아무리 봐도 '어렵기 위해 어려운' 느낌이 강하게 난다. 과학이나 수학 용어들을 대거 차용해온 가사도 그렇지만, 몇 번을 들어도 곡 안에서 어떤 맥락을 파악하기가 어려운 타이틀곡 '신세계'도 그렇다. 미셸 공드리의 비디오를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난해함이 느껴진다. 문제는 여기에 지나치게 철학적인 내용의 가사가 섞여있다는 점이다. 미장센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했던 공드리의 작품과 달리, 이미 충분히 어렵게 연출된 음악에 심오함을 의도한 언어까지 사용함으로써 작품만으로 충분히 즐기기 힘들게 만들었다. 전체 앨범 내에서 가인의 색깔이 너무 크게 부각되어 있는 것도 눈에 띄는데, 그동안 멤버 간 밸런스를 훌륭히 유지해왔던 브아걸인지라 이 부분이 그다지 좋게만은 보이지 않는다.
미묘: 활달했던 전작 'Kiss & Goodbye'와 거의 동일한 사운드를 구사하지만, 느린 템포의 R&B성 트랙으로 바뀌면서 보컬 트랙들의 운용이 훨씬 정돈된 듯하다. 안정감이 생겼다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 반면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레벨의 랩이 느린 곡에서 좀 더 오글거리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프로덕션은 빠른 곡을, 팀은 느린 곡을 소화하는 능력에 각각 주안점을 둔다면 좋지 않을까.
유제상: 이렇게 검색하기 힘든 단어로 그룹 이름을 지은 경우, 일단 소속사가 현재의 엔터테인먼트 환경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없음을 짐작하게 된다. 노래는 나쁘지 않지만 이런 힙합/R&B 계열의 곡을 내놓는 아티스트가 워낙 많다 보니 이들이 우위를 점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열악한 환경을 딛고, 비슷한 성격의 곡을 더 많이 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으련만.
미묘: 아직은 보이그룹 트렌드가 묵직하고 공격적인 노선에 있는 와중에, 로미오가 청량한 화성감과 일렉트로닉의 에너지를 조합하는 방식은 꽤 인상적이다. 그것은 과거 SS501을 위시한 '얄쌍한 보이그룹'의 공기를 연상시키기도 하나, 사운드의 운용은 그간 아이돌이 가요를 극복해온 역사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Present'는 이를 보다 미래적인 댄스팝으로, '너만 보여'는 로맨틱한 힙합비트로 구현하고 있어 듣는 즐거움이 크다. 타이틀 'Target'의 인트로에서 비트가 맥빠지는 것을 비롯해 부분부분 에너지가 새어나가는 마감의 디테일이 아쉽지만, 이 음반의 방향 설정에는 찬성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블럭: 사실 로미오라는 그룹보다 스윗튠에게 먼저 눈이 갈 수밖에 없는데, 다섯 곡 중 세 곡을 맡은 스윗튠은 (타이틀은 공동작업이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어떤 것을 제일 잘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했을 때 퍼포머와 곡이 잘 맞아 떨어지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스윗튠의 곡이 가진 색채와 로미오라는 그룹이 워낙 잘 맞기 때문에 기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지만, 특유의 밝고 화사한 느낌을 마음껏 살린 덕분에 데뷔 때보다 훨씬 좋은 모습을 선보였다고 생각한다.
유제상: 비교적 최근에 활동했다 싶었는데 어느덧 반 년이 지나버린 로미오의 새 EP. 5곡으로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고 온 데다가 곡의 퀄리티 또한 가볍지 않다. 타이틀 'TARGET'은 샤이니를 연상시키는 팝적인 곡이지만 적당히 지를 때 지르고, 빠질 때 빠지는 맛이 있어 들을수록 흥겹다. 벼르고 별러서 나온 EP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신보.
조성민: 올해 데뷔한 신인 남자아이돌 중 '주요 그룹'으로 꼽힐 만한 팀들은 전부 두 번 정도 앨범을 발매했는데, 세븐틴의 '아낀다 - 만세', 몬스타엑스의 '무단침입 - 신속히'의 연타를 생각해보면 로미오의 '예쁘니까 - Target'은 어딘가 '약하다'. 앨범은 스윗튠의 지휘 하에 과거 '스윗튠 보이즈'였던 인피니트, 보이프렌드 등의 초기작과 별다른 차별성 없이 흘러가고 있는데, 스윗튠의 색깔을 이겨내고 자신들만의 개성으로 앨범을 채울 힘이 멤버들에게 없거나, 기획자가 이 부분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윗튠이 아이돌 인큐베이터의 역할을 잘 해내는 팀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지만, 인큐베이터가 왜 인큐베이터인지 고려해보고 협업해야 하지 않을까.
유제상: 실로 오랜만의 신보. 안 나온 지 벌써 3년 가까이 되었나 생각하니 세월이 참 빠르게 느껴진다. 기존 노래들도 그렇지만 'Demonstrate'는 곡의 퀄리티와 무관하게 멤버들이랑 참 안 어울리는 곡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노래는 실연자가 신이 나서 마구 저지르는 맛이 있어야 되는데, 실황 무대를 보면 그렇지 못해 아쉽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섹시를 구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블럭: 박재범은 더는 아이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동료에 대한 배려나 작품을 구성하는 방식, 이제는 정말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는 랩, 여전히 잘하는 보컬까지, 보스로서의 매력이나 래퍼, 보컬로서의 매력 등 기술적 면모부터 아우라까지 갖춘 다재다능한 플레이어다. 지금 씬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 중 한 명으로 꼽아도 이견보다는 동의가 더 많을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이 앨범이다. 꽤 많은 트랙 수의 정규 앨범이고 트랙마다 다소 다른 스타일을 구사하기도 하지만, 그 많은 곡의 장점을 살려내고 집중할 수 있는 포인트를 끊임없이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단점은 어느 정도 상쇄되는 듯하다. 그나저나 박재범 앨범을 아이돌로지에서 다루는 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미묘: 여러 대의 기타들이 겹쳐지면서 리드미컬하게 찰랑이는 느낌이 잘 살아있어 기분 좋게 흐른다. 가사에서 "돈츄노" 레벨의 영어가 함량이 높아 근질거리는 점이 조금 서운하다.
미묘: '#너로 만든 노래'의 칼칼함과 영어 제목 'A Song for You'의 클래식함이 엇갈리는 게 재미있다. 피아노와 로터리 오르간이 깔리는 6/8 박자의 고전적인 사운드를 구가하면서도 후렴에서는 각 파트가 넘어갈 때마다 화성적으로 걸리적거리는 아슬아슬함이 매력적인 곡.
미묘: 지난 7월 20일 발매된 "전체 차렷"을 놓치고 리뷰하지 못한 것에 심심한 사과를 표한다. 밀리터리에 이어 이번엔 경찰이라니 꾸준한 절도에의 추구(라고 해두자)가 인상적이다. 그에 비해 곡은 상당히 껄렁한 분위기로 연출되어 있는데, 그 일환으로 무척이나 껄렁한 랩이 이색적이다. 화성적 질감은 (왠지 "우리 단둘-이"가 들리곤 하던) 전작보다 가요 색을 조금 덜고 힙합 느낌을 내고 있는데, 다듬어질 여지는 더 많이 노출되는 듯하다. 전작이 아무튼 안정감을 주었던 것은 "전체 차렷"이 인상으로든 가요적 느낌으로든 기둥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손들어, hands up"이 그만큼의 지배력을 보이지는 못하는 것이다. (물론 한 프레이즈에 의존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상이한 파트들을 기워 넣는 방식에서도 확실하게 장면전환을 하든지 자연스럽게 이어가든지 결단력을 보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다음 싱글은 혹시 소방관을 기대해도 될까.
미묘: 사정없이 드라마틱한 구조를 보이는 곡. 다소 변조된 피아노 소리가 구석구석에서 균형과 일체감을 잡아준다. 그에 비해 (마침 피아노도 유난히 두드러지는) 버스(verse) 부분이 감정을 상당히 강조하고 있어 다소간 과잉한 느낌이 없진 않다. 오히려 후렴은 보컬의 처리가 다소 무난하게 되어, 모자라진 않으나 크게 튀지는 않는 가요의 느낌을 내준다. 재밌는 것은 브리지인데, 2절 후렴이 끝난 뒤 새로운 멜로디 테마가 제시되다가는 "내가, 내가"로 반복되는 파트가 이어지면서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고 감정이 쌓여나가는 연출을 보인다. 반복적인 외침이 피로감을 줄 수는 있겠으나 몇 번 듣는 선까지는 제법 인상적인 대목.
오요: 단적으로 말해 "Storm"은 데뷔 싱글이 가져야 할 덕목들, 이를테면 강렬한 인상, 멤버들의 실력 자랑, 확실한 콘셉트, 신인의 패기 혹은 상큼함 등, 그 어느 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미묘: 특히 EXID 이후, 나사 하나 잘못 꽂힌 듯한 분위기의 곡을 내놓는 걸그룹들이 많은데, 개중 두드러지는 매력의 곡이다. 묵직하게 공진하는 베이스와 덥(dub) 질감의 샘플들, 꽤나 맛깔나는 랩과 융단처럼 연출된 백업보컬의 조화가 볼거리 많은 사파리를 이룬다. 애교와 히스테리 사이를 오가는 듯한 "Skip, skip, skip, skip"의 리듬감 역시 그럴듯하다. 동요를 차용한 브리지가 시효를 넘겼다는 점이 아쉽지만, 그것 역시 타히티와 이 곡에 어울리기는 한다는 점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블럭: 한국형 뽕 댄스 치고는 괜찮은 구석이 있다. 특히 사운드 소스나 소리를 구성하는 방식, 공간감의 활용이나 악기 선택, 심지어 멤버들 음색까지 세련된 구석이 있다. 하지만 결국 이 곡을 끌고 가는 것은 후렴에서 등장하는, 시쳇말로 '뽕끼'라 부르는 그것이다. 나름대로 정도의 선을 조절했다는 인상은 들지만, 오히려 촌스러운 구석을 완전히 제거하고 더욱 세련되게 갈 수 있을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웠다.
미묘: '사슬'의 도입부는 빅스에게서 익숙히 기대할 법한 어둡고 드라마틱한 분위기지만, 후렴에서는 갑자기 쿨하게 돌변한다. 거의 명랑할 정도의 후렴은 그러나 나무랄 데 없이 단단한 매력을 자랑한다. 스탠다드 팝 발라드에 가까운 '지금 우린'을 비롯해 실제로 명랑해버리는 'Heaven' 등, 제법 넓은 스펙트럼의 곡들이 연잇는다. 10번 트랙에 '기적'이 나올 땐 마음이 놓일 정도. 설마설마했던 '이별공식'까지 빅스의 '본편'으로 포섭해버리는 듯한 이런 욕심은 그러나 꽤 설득력이 느껴진다. 가장 눈에 띄기로는 역시 빅스 음악의 시그니처 같은 라비의 적극적인 활약이지만, 음반 전체는 차라리 솔로 가수의 음반을 듣는 듯한 '목소리'의 상징적 일관성을 유지한다. 백화점식의 구성이 산만하지 않은 것은 그 덕일 것이다. 물론 빠질 것 없이 든든하게 마감된 수록곡 각각의 매력도 크게 한몫한다. 어쩌면 조금 느리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빅스는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빅스는 역시 달리는 곡이 근사하다. 'Maze', 'Spider' 같은 곡들이 그렇다.
블럭: 빅스는 이제 퀄리티나 완성도로 따졌을 때 어느 정도 상위권의 궤도에 오른 것이 확실함을 보여주는 앨범이다. 라비가 꽤 본격적으로 앨범 전체에 가담했는데 그것이 정규 단위의 작품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뿐더러 괜찮은 프로덕션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자극은 줄이고 퀄리티를 끌어올린다는 것이 분명히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빅스라는 '컨셉돌'이 이토록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은 다른 팀보다 조금 더 어려운 과정이었을 것이다. 타이틀곡 이상으로 다른 수록곡들이 좋으므로 앨범 전체를 들어볼 것을 권한다.
오요: 빅스는 참 타이틀 곡을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이벤트 성 트랙이었던 '이별공식'을 제외하면 데뷔 싱글 "SUPER HERO" 부터 "Chained Up"까지 타이틀 곡들을 관통하는 정서와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자기복제 혹은 대박 공식을 답습하지 않는 태도가 대단하다. '사슬'은 특히 파트 간 낙차가 인상적인데, 베이스 라인과 리듬 파트로 간결하면서도 묵직한 1절을 지나 멤버들의 목소리가 겹쳐지며 그에 조응하는 전자음이 공간을 확 메운다. 랩 부분을 브리지 앞뒤로 나누어 배치한 것도 감정의 고조 측면에서 효과적인 장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곡 후반부 후렴구가 반복되는데 살짝 코드를 비틀어 곡의 사운드 스케일을 확장시켰으면 어땠을까 싶다.
조성민: 사실 초커라는 아이템이 이렇게 단체로 착용할 만큼 범용적인 아이템은 아니다. 여섯 멤버들 중에서도 꽤 잘 어울리는 멤버가 있는가 하면, 영 어울리지 않아서 오히려 거북한 느낌을 주는 멤버도 있다. 이것은 퍼포먼스에도 똑같은 원리로 적용되고 있다. 타이틀곡 '사슬'의 퍼포먼스는 그동안 빅스만이 선보여왔던 드라마틱한 구성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가뜩이나 멤버 간 큰 격차를 보여왔던 춤 실력을 보완하기는커녕 더욱 부각시키는 몇몇 동작들은 마치 딱 '초커'를 보는 듯하다. 기승전결의 스토리와 그에 맞춘 곡의 진행 및 구성이 돋보였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사슬'은 뚜렷한 내러티브 없이 그저 막연히 '섹시함'을 내세우고 있는데, 덕분에 음악과 비주얼과 퍼포먼스 등 모든 요소들이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가고 있어 산만한 느낌까지 든다. 이제 수트를 입는 팀은 너무나 많고, 빅스만큼 컨셉츄얼한 팀도 너무나 많아졌다. 이런 와중에 정규 앨범의 방향성과 색깔이 흐려져버린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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