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중순에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디브레이크, 매드타운, 디홀릭, 다이아걸스, 마이비, 다이아 프로젝트, B.A.P, 아이콘, 스누퍼, 전설, 퍼펄즈, 이홍기, EXID, B.I.G, 텐텐, 유니즈의 신보를 다룬다. 매드타운과 퍼펄즈, B.I.G가 커리어를 이어가는 가운데 B.A.P와 이홍기가 새로운 모습으로 복귀하고, 소형 신인들 역시 대거 데뷔하였다. 왠지 모르게 D자로 시작하는 이름이 많은 듯한 것은 기분 탓일까?
김윤하: 곧 등장하겠다 싶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전형적인 형태일 줄은 미처 몰랐던 'EDM 아이돌'의 거친 등장. 'Scream'은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모든 대형-페스티벌형-EDM의 클리셰가 범벅이 된 싱글이다. 샘플링한 박수와 함성 소리, '터지는' 후렴구 전 흥분을 고조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멜로디컬한 브리지, 딱 예상한 곳에서 조였다 당겼다 멈췄다를 반복하는 비트, "Everybody scream" 같은 관용어구까지 참으로 빈틈없고 아낌없다. 이래서야 '국내 EDM 시장의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겠다'는 야심 찬 소개 문구가 무안해지는 엉성한 융복합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유제상: 3인조 남성그룹 디브레이크의 데뷔 싱글. 타이틀 '스크림(SCREAM)'은 복작복작 헤이~하는 시작부가 어찌 불안불안했지만 생각보다는 들을 맛이 나는 흥겨운 곡이었다. 아직 한 곡만 선보였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하긴 힘들고, 다만 (부드러운 후렴구를 감안하더라도) 생각보다 찐한 나이트 음악을 들려준 것이 인상에 남는다. 한국 이전에 중국 활동을 한 것이 그 이유가 되려나.
돌돌말링: 요즈음의 유행에 잘 맞춰 내놓은 무던한 싱글이다. 쭉 고조시켰다가 후렴에서 고의적으로 텐션을 떨어뜨리는 그 전개, 그 구조다. 디지페디가 감독했다는 뮤직비디오는 '21세기 피그말리온' 콘셉트라고 하는데, 테이핑으로 눈과 바스트 등을 가린 헐벗은 여성 사진 포스터는 좀 섬뜩했다. 후렴의 '이 무속신앙 같은 안무는 뭐지!' 했는데, 뮤직비디오에서는 아예 종반으로 치달으며 토템폴처럼 쌓아놓은 티브이들을 둘러싼다. 이 황당한 연출이 밈(meme)화 되면 인기 끌 것 같기도 하고...
유제상: 타이틀 'OMGT'은 멜로디, 가사, 비트, 심지어 뮤직비디오의 안무와 시각 이미지까지 모두 어디선가 본 듯한 것들의 집합체다. 낙차가 크지 않은 멜로디, 취한 듯한 가사, 느릿한 비트, 적당한 스트릿 패션과 팝 컬러까지 모두 기시감을 일으키는 것들뿐. 사실 섞인 결과물 자체가 나쁘진 않지만 이미 이런 것들은 다른 그룹이 줄창 보여온 것들이라, 멤버들의 매력으로 어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유제상: 디홀릭이라면 올여름에 '쫄깃쫄깃'이라는 다소 황당한 제목의 곡을 발표했던 바로 그 그룹이지... 음... 타이틀 '머피와 샐리'는 전작들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쫄깃쫄깃'의 삭막함을 되새긴다면) 그나마 대중적으로 짜여진 곡이라 하겠다. 랩 파트의 가사가 유독 유치하게 느껴지는 감이 있는데("우주의 기운" 등), 이를 제외하면 생각보다 정성스럽게 만들어져 듣기에 무리가 없다는 것은 장점. 그러나 여전히 말랑말랑한 멜로디 파트가 적고 곡이 딱딱해 '과연 흥행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은 든다. 발랄한 팀 컬러랑 다르게 왜 이렇게 하드하게 간담.
김윤하: 각종 괴이함에 시작부터 도무지 귀를 뗄 수 없었던 싱글. 평범한 도입부에 별생각 없이 마음을 놓았다가 뜬금없이 등장하는 스크릴렉스 풍 효과음과, 기침 한 번에 저세상으로 갈 것 같이 힘없는 스크래치, 원소스가 궁금한 오케스트라 사운드, 기성곡보다는 노래방에 가깝게 걸린 마이크 에코 질감에 차례로 녹다운당했다. 이런 사상누각에 과하게 과감한 섹시 콘셉트까지 얹혀지니 정말이지 듣고 보는 내내 몸과 눈 둘 곳을 찾아 헤매야 하는 결과물이 탄생해버리고 말았다. '될 만한 건 다 집어넣어 본다'는 패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추진력과 기개를 차라리 곡의 기개를 살리는 데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유제상: 오, 스텔라 등의 패퇴로 이제 왕도를 걷는 섹시 그룹은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상당히 의외다. 타이틀 '스르륵'의 경우, 중간중간 요즘 느낌을 내자고 워블 베이스 같은 걸 넣긴 했지만 기본적인 멜로디 메이킹은 대단히 2000년 전후의 느낌이다. 사실 전반적으로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으면서도 드문드문 보이는 촌스러움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요약하자면 "스르륵 스르륵 다가와~ [다가와~(에코)]" 이런 거? 아니 요즘 곡치고는 지나치게 목소리가 울린다. 의도된 예스러움을 위한 거라면 할 수 없지만서도.
미묘: '또또'는 유행어도 사용하던 전작보다는 점잖은 캔디팝(!)을 구사하면서, 대신 조금씩 까불거리는 요소들이 포함돼 다채로운 음악적 표정으로 반짝인다. "혼자 네 생각에 이히히"하는 랩이나 그 뒤로 더블링 된 목소리 같은 것들이 그렇다. 시종일관 씩씩하게 뛰어다니는 음악이 문득 리듬을 잡았다가 풀어내는 호흡 역시 매우 안정적이면서도 효과적이다. 보다 가요에 가깝게 보수적인 곡풍을 사용하는 서정적인 'D-Day' 역시 현재의 아이돌팝 문법을 조금씩 섞어 넣어 경쾌한 캐릭터를 유지한다. 매력을 어필하는 방식이 섬세해서 단번에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질 순 있겠지만, 걸그룹 팝의 모범적인 영역에서 꼼꼼하고 상큼하게 마무리된 곡들이다. 지지한다.
돌돌말링: 여름에 5인조로 데뷔한 마이비가 멤버 1명을 추가해 6인조로 돌아왔다. 데뷔 싱글에 이어 또다시 이단옆차기와 텐조와타스코가 참여했다. 이번 텀에 유독 브라스를 포인트 삼는 곡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또또'에서 가장 잘 쓰였다고 생각한다. 존재감은 있되 전면에 내세워 과시하진 않고, 멜로디가 단독으로 들어도 훌륭하다. 데뷔작 '심장어택' 때도 생각했지만, 탈색한 롱헤어의 소녀들이 운동화를 신고 챈트를 외치는 쾌활함엔 당해낼 수가 없다. 시장의 좋은 포지션을 잘 선점해가고 있는 중이다. 의상은 조금 더 예뻐졌으면 좋겠지만.
유제상: 시어하트... 아니 '심장어택' 이후로 3개월 만의 대단히 빠른 복귀. 여전히 여섯 명의 멤버들은 언캐니한 전원 금발을 하고 있고, 노래는 이번 회차의 다이아걸스처럼 2000년 전후의 느낌을 주지만, 생각보다 멜로디가 듣기 좋고 스무스한 것이 인상 깊다. '심장어택'의 경우도 그렇고 듣기 좋은 곡을 만드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것 같지만, 멤버의 개성도 한 번쯤은 생각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기도.
조성민: 뭐니 뭐니 해도 결국 아이돌의 본질은 청춘의 에너지에 근거한다. 비비드한 색감의 레고 블럭 사이에서 활짝 웃으며 힘차게 춤추는 소녀들은 너무나도 충실하게 아이돌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충분히 신나고 발랄하지만 귀에 거슬리는 부분 없이 편하게 들을 수 있는 후렴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후렴으로 이어지기 전까지 펼쳐지는 브리지 파트다. 이 파트에서 신스음은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가 창가에 팔을 괴고 달을 보며 사랑하는 이를 그릴 때 그의 눈에 비친 별빛처럼 예쁘게 반짝인다. 그 위에 기교나 꾸밈이 심하지 않게 담백한 보컬이 흐르는데, 이 부분이 묘한 설득력을 만들어 낸다. 다른 허튼 생각 없이 그저 무대 자체에 집중해 즐기는 표정의 멤버들이 팀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다.
미묘: 그래, 이제는 메탈 기타를 제대로 활용하는 아이돌팝 트랙이 나올 때가 되었다. 'Young, Wild & Free'는 특히 후렴에서 기타가 리듬을 찌르다가는 흘리는 호흡이 템포와 멜로디 라인에 효과적으로 조응하면서 역동적으로 출렁이는 공기를 만들어낸다. 가사나 보컬 파트들이 때로 조금 오글거리기도 하지만, 팀의 정황이나 곡풍을 감안할 때 납득 가능한 수준. 브리지에서 기타만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랩이 마치 한 박자를 건너뛴 듯이 아슬아슬한 것도 인상적이다. 보컬의 배치 역시 사뭇 효과적인 버스에 비해 프리코러스가 조금 관성적인 것이 아쉽다. 인털류드 격의 'Monologue'가 2번 트랙에, 타이틀인 'Young, Wild & Free'가 3번에 배치된 미니앨범의 구성이 이색적인데, 로킹한 기타가 주도하는 곡들을 연달아 배치하기 위한 선택인 듯하다. 탱탱한 뉴잭스윙 트랙인 'Take You There'가 확실히 매력적인 동시에 이질적이어서 벌어진 현상으로 보이는데, 결과적인 음반의 모양새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나 역시 수긍이 가는 타협점이다.
조성민: 힙합의 애티튜드에 강렬한 밴드 사운드, 그리고 체조를 방불케 하는 격한 퍼포먼스가 결합된 것이 지금까지의 B.A.P 무대였다. 이 조합이 상당히 큰 설득력을 만들어냈던 것에 비해, 여타 팀들이 이를 아이덴티티로 삼은 경우는 무척 드물었다. 힙합 아이돌 붐 속에서도 B.A.P의 공백이 크게 느껴졌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겠다. B.A.P는 B.A.P만 할 수 있는 것을 일찌감치 찾아두었다. 긴 공백 이후의 작품에서 우려되었던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는데, 많은 아이돌이 공백을 의식해 무리한 시도를 하다가 본래의 정체성마저 잃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우려가 기우였다는 듯 B.A.P는 너무 태연하게 B.A.P다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심지어 수록곡들마저도 지금까지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이전 작품들과의 충분한 연계성을 띠고 있다. 이 정도면 금의환향까지는 아니어도 충분히 반가운 귀환이라 할 만하겠다.
미묘: 이를테면 빅뱅의 경우는 명목상은 다섯 장의 싱글이었지만, 아이콘은 "워밍업"(이라 쓰고 선공개라 읽는) 트랙까지 포함하면 이미 세 번째 릴리즈인데도 여전히 한 장의 앨범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나쁘게 보고 싶진 않고, YG가 굉장히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취향저격'에 비해서는 힘을 보여주는 트랙들이고, 꽤 고급스러운 터치를 보여주는데, 이제 데뷔하는 신인치고는 지나치게 조로하는 것만은 경계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리오너라'는 기존 YG 트랙들이 보여주던 꼭 그 정도의 '아저씨 코드' 함량을 유지하면서 막연하게나마 아이콘의 색을 드러내는 데 성공하고 있는 듯하여 희망적으로 보인다.
김윤하: 지난 회차에 소개되었던 로미오의 'Target'과 함께 스윗튠의 '회생튠'을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더없이 기쁘다. 차와 포는 물론 마지막 카드로 여겨졌던 나인뮤지스와도 결별하며 위태로움을 넘어선 위기상황에 직면한 듯 보이던 이들의 재기포인트는 '초심'이다. 카라나 인피니트 등 기존 단짝 그룹들의 성공이 끼친 영향으로 사운드의 확장에만 전념하는 듯 보이던 이들은, 신인 그룹들과 함께 새로운 호흡을 맞추며 초기의 '소박하고 단단한' 매력을 다시 찾았다. 덕분에 그간 잊고 있던 '90년대식 친숙함'이 다시 전면에 나서며 '스윗튠 사운드'의 설득력을 높인 건 덤. 특유의 인트로와 이어지는 타이틀 곡 '쉘 위 댄스'의 에누리 없는 훵키함, 입구에서 바닥까지 어쨌든 꽉 채우는 사운드에 맞춰 돌처럼 단단하게 다져 담은 보컬 어레인지 모두 풋풋함이 살아있어 좋다.
돌돌말링: 회사에 소속된 배우 라인의 연장으로, 이 신인 남돌 그룹의 셀링 포인트는 '장신의 미남들'인 듯하다. 사전 정보 없이 처음 들었을 때 이 신스로 꽉 채운 청량감이 익숙하다 싶었는데, 역시나 스윗튠이었다. 그 정보가 입력되고 나니 인피니트의 몇몇 수록곡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신인이고, 가사 역시 서툶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바로 떠오르는 다른 그룹이 있다 보니 가창이라든지 안무를 비교하게 되더라. 이것을 털어내는 것이 현재로서 중요한 미션이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케이팝 씬의 가창 및 안무 소화 능력들이 워낙 상향평준화 되기도 했고. 그렇지만 곡 자체는 데뷔곡 삼기 좋은 예쁜 노래다.
미묘: 레이드백이라면 레이드백이지만, 늘어지기보다는 나름 힘 있는 퍼포먼스를 담보하는 괜찮은 R&B 트랙. 사운드의 구성도 칠아웃 스타일의 신스 스트링과 또랑또랑한 기타, 그리고 자잘하게 배치된 신스들이 각자 신선한 라인을 연주하면서 듣기 좋은 조화를 이룬다. 이는 보컬 트랙들에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2절에서 랩과 보컬이 꽤 다른 공간감으로 트리트된 채로 짧게 짧게 대화하며 튀어나오는 것이 듣는 재미를 준다. 화성진행도 그렇지만 뻔하지 않은 곡을 만들겠다는 의욕이 괴이한 곡으로 흐르지 않은 채 고급스럽고 우아하게 마무리되었다.
미묘: 리듬단의 탄탄한 질감이 매력적인 버스에 뽕끼를 담보하는 후렴. '위아래'의 모델을 답습하고자 하면서도 이를 벗어나고픈 욕망의 대결이 엿보이는 듯한 아슬아슬함이 은근히 기분 좋다. 퍼펄즈의 강점이 파워풀 보컬에 더해 보컬의 디테일한 맛도 조금씩 선보이는 데 성공하고 있다. 레퍼토리가 많지 않음에도 벌써 동어반복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콘셉팅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동시에 아이돌과 보컬 그룹 사이의 적정 모델을 찾는 과정에서의 고충도 느껴진다. 그 고민을 지쳐 내려놓은 듯한 뮤직비디오는 큰 아쉬움이지만, 무대 퍼포먼스 등을 통해 퍼펄즈의 뚜렷한 매력을 보여줄 수 있길 기대한다.
조성민: 아이돌의 주 타겟층인 10대 청소년들보다는 왠지 30, 40대 주부들이 더 곱씹어볼 듯한 가사는 2000년대 초 신드롬을 일으켰던 왁스를 떠올리게 한다. 보컬이 강조되는 '누님' 콘셉트라는 점에서는 마마무나 에일리 등의 아이돌과 같은 선에 놓일 법도 하지만, 확실히 이미지상으로는 그중에서도 가장 원숙한 누님이라 해야할 것 같다. '걸그룹'으로 자칭하고 있지만 어쩐지 다른 아이돌 걸그룹과 비교하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그래서다. 이 점은 퍼펄즈가 데뷔할 때부터 어렴풋이 느꼈었는데, 이번 싱글로 생각이 굳어졌다.
조성민: '요즘도 이런 노래가 나오나' 싶은, 바로 그런 노래가 나왔다. 유행에 반 박자 늦으면 촌스러운 거지만 한 박자 이상 늦으면 레트로라고 본다. 허스키한 보이스로 열창하는 록 발라드에, 대사까지 삽입된 2000년대풍 드라마타이즈드 뮤직비디오는 확실히 요즘 보기 드문, 거의 10년쯤 전에나 유행하던 '옛날 감성'이다. 너무 익숙한 것이어서인지 아주 좋게도 나쁘게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그렇구나' 싶어진다. 이홍기는 여전히 좋은 보컬이고, 록 발라드를 잘 부른다.
미묘: 확실히 '위아래' 이후 노를 젓고 있는 곡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보다 원론적인 차원에서 이를 반복, 발전시키고 있다. 곡의 구조는 어느 때보다 복잡하게 분산돼 있는데, 프리코러스에 해당하는 랩에 남성 랩을 추가한 뒤 반복하여 몇 배는 길게 느껴지도록 하고, 뒤에 이어지는 보컬 파트도 '위아래'와 매우 유사하지만 일부러 끝을 살짝 더 늘려준다. 후렴 뒤 정화의 보컬로 넘어갈 때도 시간차를 두어 이질감을 강화한다. 후렴은 '가요'보다는 차라리 CM송 같은 '덩어리' 느낌이지만 꽤나 칼칼한 사운드의 훵크 질감이 훵크 답게 '끝도 없이 이어지는 듯한' 기분이라 듣기에 즐겁다. 정화의 보컬 파트가 비디오를 포함해 곡 전체에서 매우 이질적인데, 그것이 (역시나 이질적이게도) 너무 신인 느낌인 것은 아쉬운 일이다.
돌돌말링: 아무리 다른 디테일을 찾아보려고 해도, 전체적인 스트럭처가 '위아래'와 너무 비슷한 것이 감상을 방해한다. 'Ah Yeah'도 그랬는데 말이다. '위아래'의 인기 요인은 인트로의 캐치함이나 눈을 끄는 안무였으면 모를까 예의 스트럭처가 아니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직 보여줄 게 많은 것 같은데, 좀 더 올라가야 멤버들도 골고루 주목받을 텐데 하는 탄식이 나온다. 한편, 브리지에 말소리 같은 정화의 보컬을 넣기로 한 건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톤이 독특해서 배치하기 까다로울 것 같은데 전작들보다 훨씬 부드럽게 녹아들었다.
유제상: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겠지만, 평자는 EXID를 '원 히트 원더'라고 생각한다. 'Ah Yeah'가 나올 때도 그랬지만, 'HOT PINK'를 듣고 나서는 이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분위기를 유지한 상태에서 지명도 있는 멤버가 팀의 상승세를 지속시켜주는 것도 상업적으로 중요하겠지만, 뭘 들어도 '위아래' 같아서야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미묘: '준비됐나요'와 '밤과 음악 사이'에서 번쩍거리며 두들겨대던 B.I.G는 어디로 갔나. 평이해도 너무 평이한 곡이다. 랩 파트에서 슬쩍 지나가는 스터터 이펙트 정도가 그나마 귀를 잡아두지만, B.I.G도 마르코도 이것보다는 더 머리를 들이밀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악명 높았던 데뷔 싱글 '안녕하세요'마저 어쨌거나 인상을 강렬하게 남기는 것만은 확고했건만.
미묘: 참 인상적이다. 아날로그 신스처럼 사용되는 신스들과 먹먹한 공간감이 무척 인디 록 느낌을 내고, 토닉으로 시작해 상승하는 화성진행의 후렴은 ('로리'한 보컬과 더불어서) 애니송처럼 들린다. 작곡의 완성도든 사운드의 질감이든 풋풋함이 지나쳐 미숙한 느낌인데, 그것이 또한 묘하게 '아이돌적'인 구석이 있다고 할까. 동아리형 아이돌이 있어 이런 곡을 냈다면 응원하고 싶을 것이다. 성공가도와는 거리가 있다고, 차후에는 꼭 달라질 필요가 있겠다고 할 수밖에 없겠지만, 정말로, 재미있는 곡이다.
미묘: 시부야계로 통칭되는 음악의 여러 요소들을 가져와 생활감 있는 걸그룹을 만들고 싶었다는 것은 알겠다. 그것이 소규모 기획사에서 시도되었을 때 메인스트림과의 거리감이나 행사 분위기에서의 흥행성 등에는 의문이 있기에 더욱 흥미롭다. 키로츠의 기존 곡들을 재사용했는데, 당시보다 지금 시점에서 신선함이 있는 '내용'인 부분이 있다. 다만 음악의 퀄리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의미 없이 까불거리기만 하는 베이스, 노래방 같은 신스, 노이즈마저 더욱 노래방 같은 보컬 사운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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