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t Listen : 2018년 4월 초순 ②

유제상: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에 대해서는 뭔가 시청자로서 개인적인 감정 같은 것이 있다. 아이돌로지 필진으로 주제넘은 음반 평을 하면서 늘 드는 생각은 ‘이렇게 재주 넘치는 젊은이들이 인기를 얻지 못하면 어디로 가는가’하는 것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이 그들을 도와줄 것이라는, 따라서 해당 프로그램을 지지해야 한다는 어떤 의무와도 같은 감정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프로그램은 실패했고, 과거 얼굴을 비췄던 실력 넘치는 멤버들만이 남았다. 더블 타이틀의 ‘감각’과 ‘Only One’ 모두 고퀄리티고, 사뭇 진지하며, 인상이 흐리고, 별다른 흥미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 EP는 아마 프로그램의 성취보다는 확실히 우월하고, 멤버들의 능력보다는 부족한 어딘가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조은재: 현실의 이벤트를 작품 안의 서사로서 어떻게 번역하고 치환할 것인지 〈프로듀스 101〉 이후로 점점 더 치열하게 고민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제시한 답안 중에선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작품이 나왔다. ‘재데뷔’라곤 하지만, 멤버 전원이 이전에 큰 대표작이 없었기에 사실상 새로운 그룹으로 느껴지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멤버 중에선 특히 ‘찬’이 눈에 띄는데, 원래 그룹인 에이스의 다소 프랙티컬한 콘셉트보다 특유의 소년미를 살려준 이번 앨범에서 더 잘 어울린다는 인상이 있다. 이외에도 모든 멤버를 이전과 비교해 괄목하게 되는데, 그들은 그저 지금까지 잘해오던 것을 꾸준히 잘할 뿐임에도 빛을 보는 시기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무척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자본과 기획력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유제상: 편견이 생겨버릴 거 같은 그룹의 이름이나, 뭔가 조금씩 모자란 것 같은 노래 속 요소들을 모아 놓고 보면 오히려 나름 밸런스가 맞는 특이한 싱글이다. 타이틀 ‘Ganda’는 다소간의 아마추어리즘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곡의 그루브만은 분명히 잘 살려내고 있고, 두 번째 트랙 ‘Oh Yeah’는 ‘착착’거리는 비트가 듣는 재미를 준다. 개인적으로는 타이틀보다 ‘Oh Yeah’ 쪽이 더 좋았다. 뭔가 두 곡 다 북유럽 작곡가가 기획사에 샘플로 제출한 것 같은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있는데 그게 또 매력으로 작용하니 신기한 일이다. ‘Discovery!’의 여유가 있다면 부여했겠으나 이미 더 보이즈에게 줘버렸네. 죄송.

미묘: SS501 출신 멤버들의 솔로 작업들을 무척 흥미롭게 듣고 있다. 음색과 가창력으로 사랑받은 메인보컬인 때문인지, 일견 다른 멤버들보다 ‘정도’를 지키는 곡을 내놓았다는 인상이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지루하지 않는 곡들이다. ‘지구가 멸망해도’는 (매드클라운의 피처링을 포함해서) 종교적이거나 초월적인 요소들이 슬금슬금 박혀 있지만, 절박한 상황이나 서사보다는 막연한 공기만을 선사해 묘한 비현실감을 자아낸다. 어떤 의미에서 ‘세카이계’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여기에 전혀 힘들이지 않는 듯이 노래하는 허영생의 보컬이 어우러지면서,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여러 번 삼켜낸 듯한 감성에 귀 기울이게 한다.

미묘: FNC 엔터테인먼트가 개시하는 음원 시리즈 “FNC Lab”의 첫 작품. 처절한 감성, 반복을 통한 애절함의 강조, 고음 등, 어떤 의미에서 FNC의 본령인 ‘남자 발라드’를 충실하게 해낸다. 이홍기와 유회승의 보컬은 하모니보다는 선수 교대에 가깝게 만나는데, 생각보다 대조가 크지는 않다. 좋게 말하면 소속사의 레거시가 느껴지고, 나쁘게 말하면 조금 심심하기도 하다. 화음의 구사, 연속된 고음 등 목적성이 뚜렷한 섹션들이 덧대어진 데다가 작곡팀(VIP)의 욕심도 적지 않은지 변화의 과정에서 조성성이 애매하게 틀어지는 부분들이 있어 다소 산만하게 들린다.

미묘: 플레잉타임 내내 있는 힘껏 소리 지르고 때려 부수는 것에 감탄하게 되기는 하지만, 효과적이진 않다. 기세를 썩 나쁘지 않게 풀어내는 훅이 몇 곳에 존재하는데, 너무 뭔가를 덧대는 식으로 쏟아부으면서 밸런스가 무너지는 지점들도 아쉽다. 상대적으로 덜 악에 받친 수록곡들이 훨씬 무난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래서다. 그런데 “모두 벌벌 떨게” 만드는 강한 남자가 여성에게도 매력적이라는 건, 어쩌면 남자들의 판타지에 가깝지 않나?

조성민: 대부분의 아이돌 팝은 특히 데뷔 시점에서는 무엇을 레퍼런스로 삼았는지 추측해내기 어렵지 않은데, 가끔 이렇게 도대체 뭘 보고 잘못 해석해서 이런 게 나왔을까 싶은 작품들이 나온다. 트렌디하지도 않고, 탁월하지도 않은데, 독보적이지도 않고, 전통에 충실하지도 않다. ‘형이 여기서 왜 나와’ 싶은 데뷔곡 ‘Gangsta’의 촌스러운 작명부터, 9명이나 되는 멤버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고정 동선의 퍼포먼스, 강한 비트와 박력 있는 샤우팅 사이에 어색하게 끼어 들어간 섬세하고 여린 보컬 멜로디가 서로 전혀 섞이지 못하고 띄엄띄엄 떠다니다 만다.

마노: 다양한 영화를 패러디한 뮤직비디오가 여러모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는데, 케이팝의 현재를 간단명료하게 보여주는 예시 같아 흥미롭다. 그러나 이번 프로덕션에서 흥미로운 지점이란 딱 그것뿐이다. 이쯤 되니 멤버들의 캐퍼시티나 시장의 변화 같은 것은 아랑곳 않겠다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잘 나가고’ 있으니 아무렴 어떤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믿고 싶진 않지만, 트와이스라는 그룹의 포텐셜을 소속사가 나서서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다 못해 아예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까지 한데, 이런 데도 굳이 다음을 기대하며 희망고문을 해야 할까. 도대체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미묘: 사랑이란 게 뭔지 궁금하다는 서사나 뮤직비디오에 동의하기는 힘들다. 다만 타이틀보다도 더 가볍고 ‘전략적’인 방향이었던 수록곡들이 꽤나 변화를 보이고 있는 듯해 반갑다. ‘Ho!’, ‘Dejavu’ 등의 수록곡이 트와이스 특유의 축제 분위기를 한층 살려내면서도 유려하게 출렁이는 보컬의 강점을 잘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또한 틴팝의 달콤함에 나른하게 기대면서도 훨씬 성숙하고 세련된 맛을 보여주는 ‘Say Yes’도 놓치기 아깝다.

서드: 이제는 이게 ‘트와이스 스타일’이라는 사실을 거부하기 어렵다. 데뷔 때부터 구축해온 인기를 바탕으로 ‘대중성’이라는 모호한 시장의 흐름을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꾸준히 저격하고, 성공하고 있다. 노래 내내 “What is Love”라고 울려 퍼지는 외침은 ‘사랑이란 무엇일까’란 순수한 호기심과 기대감처럼 다가오고, 그런 화자의 태도에서 소녀시대도 원더걸스도 아닌, 차라리 S.E.S.와 핑클로 표방되는 1세대 걸그룹의 에센스마저 느껴진다. 수록곡의 퀄리티도 고르고 기존의 음악을 좋아했던 이들에게는 아쉬움 없을, 깔끔한 미니앨범이다. 다만 계속되는 뮤직비디오 속 코스프레와 다분히 ‘아재 취향’이 드러나는 영화 레퍼런스들은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조금은 아쉽고 지루한 요소다.

유제상: 평범한 대중이라면 ‘지겹다’는 말을 하는 게 정상이려나. 다만 뮤직비디오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의 노래는 ‘우아하게’나 ‘Cheer Up’의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놀랍게도 2015년 이후로 일관되게 이런 활동을 유지해오고 있다. 캐릭터로 매력 발산하는 그룹인 만큼 활동이 끝났을 때, ‘아 좀 더 보고 싶다...’는 수용자의 마음이 생성되는 것도 당연. 그런 생각으로 ‘What is Love?’를 보고 듣는다면 식상함은 부차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노래가 이것보다 더 좋을 수 있을 것이고, 분명히 JYP 내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노래가 있을 것이나, 상업적인 논리 앞에서는 하나 마나 한 이야긴 게지.

미묘: 보이그룹 씬의 힙합 수용이 조금은 변화하는 듯한 분위기 속에, 건민 X 희도는 20세기 초의 음악 같은 피아노를 묵직하게 깔고 더욱 커다란 비트로 흐른다. (라비의 작업이다.) 고난과 의지의 표현이 MC 스나이퍼를 연상시키는 점이 (반쯤 농담이다) 꼭 그래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흥미롭고 신선하다.

조성민: 얼핏 흔한 힙합 듀오인가 하고 듣다 보면, 묘하게 귀를 잡아당기는 특이한 흐름의 멜로디가 신경 쓰여 끝까지 듣게 된다. 어딘가 묘하게 인디 느낌이 나는데, 좋은 프로덕션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나온 싱글이라기보다는, 정말 해보고 싶어서 만들어본 믹스테잎에 가까워 보인다. 2000년대 ‘국힙’ 감성을 이어가면서도 신선한 곡을 듣고 싶다면 추천.

마노: 좋은 점보다는 아쉬운 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만다. ‘봄이니까 산뜻하게! 아무튼 풋풋하게!’를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하지만, 흔한 트로피컬 바이브를 또 가져온 타이틀 ‘너에게 물들어’는 크게 인상에 남지 못하고, 수록곡들도 일관적인 색채를 유지할 뿐 ‘한 방’은 부족하다. 두 멤버의 수행력 역시 풋풋함을 넘어서 미숙하다고까지 느껴지는데, 그러한 점을 음악적 장치로 보완할 수는 없었는지 의아해지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이 앨범에 끝내 마음이 가고 마는 것은, 마치 연필로 꾹꾹 눌러쓴, 서툴지만 진솔한 마음이 느껴지는 편지를 엿본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마냥 설레는 마음을 그러모아서, 고민을 거듭해가며 예쁜 단어를 모으고 모아 정성 들여 써 내려간 러브레터를 본 것 같아 결국은 작게 미소 짓게 된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설렘, 그리고 찾아오고 만 이별의 순간까지 눈부시고 아름답게 그려낸 소년의 서사를 그러고 보니 전에 본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이런 조심스럽고 예쁜 마음을 대체 어떻게 마다할까.

조성민: 이 팀에게 독보적인 부분이라고는 두 멤버의 얼굴뿐인 듯하다. 보컬도 랩도 설익었는데, 곡이 그것을 충분히 커버해주고 있다는 느낌은 안 들고, 빈틈이 너무 많이 느껴진다. 잔뜩 힘이 들어간 뮤직비디오에 비해 무대 퍼포먼스는 어쩐지 허전하다. 아무리 봐도 두 멤버만으로 완결성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프리데뷔 유닛의 느낌이 더 강하다.

마노: ‘어쩌다가 갑자기 직장인이 된 것인가’하는 반 우스개가 팬덤을 중심으로 확산되기도 했는데, 농담 섞어 말하자면 ‘맞춤형 출퇴근송 컬렉션’으로 보이기도 한다. 월요일 아침을 겪어본 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가사 내러티브 속에서 무려 출퇴근길에 첫눈에 반하는 서사를 넣은 것은(‘Monday Blues’), 직장인이 되긴 했으나(물론 농담이다) 와중에 아이돌 특유의 ‘판타지성’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히기도 한다. 전작보다 한 톤 다운된 듯한 일관적인 채도에, 다양한 색채의 곡들이 듣는 재미를 충족시키는 한 장. 전작의 발랄함과 떠들썩함이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나, 어딘가 어른스러워진 모습을 지켜보는 것 역시 즐거운 일이다. 일과를 마친 금요일 저녁, 흥겹고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Vroom Vroom’과, 주말 오후의 햇살을 만끽하는 연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한 ‘Playdate’, 제목처럼 느지막하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소파 위에서 한껏 퍼진 채 듣고 싶은 ‘Lazy’ 등이 귀에 들어온다. TMI지만 제 취향은 ‘화수금토일’ 입니다.

미묘: 중역 위주의 상당히 부드러운 사운드 위로 보컬이 안착한다. (‘Thursday’의 EP와 피아노가 더 영롱하게 들린다면 그 탓이다.) 음반이 진행되면서 (금요일에 해당하는) ‘Vroom Vroom’에 이르러 비로소 사운드는 확 밝아진다. 그리곤 마지막 ‘휴일 (Lazy)’에서 두터운 보컬 화성을 쌓는다. 스토리라인도 그렇지만 음반 전체를 음악적 스타일과 사운드로 조율해 적극적인 감상을 유도하는 점이 재미있다.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어른스럽고 유려한 팝송에, 보다 친근하게 다가오는 보컬의 매력을 발견하기 좋은 미니앨범.

서드: 일주일을 주제로 곡마다 각기 다른 요일의 기분을 그림을 그린 듯이 표현한 콘셉트가 신선하다. 조금은 늘어지는 듯한 ‘Monday Blues’부터 조금은 익숙한 엑소 스타일처럼 다가오는 타이틀곡 ‘花요일’을 지나 개성이 뚜렷하면서도 흐름이 어색하지 않은 구성이 돋보인다. ‘첸백시’라는 유닛의 색깔 또한 지난번에 비해 확고해졌다. 세 멤버의 목소리의 조합이 마치 한 잔의 아이스커피처럼 귓가에 향기를 남기는 기분을 선사한다. 상사 얼굴만 떠올려도 스트레스받는 출근길에는 ‘Vroom Vroom’을, 주말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는 ‘휴일’을 꼭 한 번 들어보시길. 봄을 지나 늦여름까지도 두고두고 듣고 싶은 미니앨범이다.

심댱: 첫 곡부터 ‘花요일’까지는 살짝 당황스럽다가 ‘Thursday’부터는 ‘아, 엑소는 세련된 음악을 하는 그룹이었지’라는 생각에 익숙해진다. 이전 활동 곡 ‘Hey Mama!’와 같은 반짝이는 캐치함을 찾기는 어렵지만, 차근차근 음을 쌓아가는 과정만큼은 흥미롭다고 할 수 있겠다. 브리지와 마지막 후렴구의 배리에이션은 가볍게 흥얼거릴 수 있는 음악이라는 인상을 남기지만 확 매력적으로 와 닿지 않는 것이 꼭 화요일 같다. 다만 ‘Thursday’의 흐드러지는 가사와 섬세한 SM식 R&B 리듬에는 쉽게 기대게 되는데… 이게 SM이라서 줄 수 있는 편안함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Thursday’에서 ‘휴일’, 그리고 다시 ‘Monday Blues’로 돌아오는 흐름을 추천한다. 목요일부터 미끄러지듯 달려 맞이한 주말, 그리고 다시 도달한 꿉꿉한 월요일의 조화가 매력적이다. 질주송으로 일컬을 수 있는 ‘Vroom Vroom’, 화사한 팝 트랙 ‘Playdate’는 엑소가 보여주던 일련의 트랙을 연상시키며 본 그룹과의 차별화에 의문점을 남긴다. 조금 아쉽지만, 더 멋진 그림을 향해 천천히 내딛는 걸음으로 보고 싶은 첸백시의 두 번째 EP.

유제상: 첸백시의 이름으로 나오는 곡들은 엑소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섹시하다’는 생각을 늘 했는데, ‘花요일 (Blooming Day)’은 그러한 생각이 굳어지는 데 확실한 역할을 할 것 같다. 최근 트렌드를 따라 멜로디의 흐름은 예스럽지만 확실히 이쁘고, 가사는 순정만화 캐릭터의 언어를 옮긴 것과 같으며, 애시당초 제목에도 꽃 화자가 들어가 있으니. 타이틀을 제외하면 재지한 ‘Thursday’가 평자의 취향에 맞았으니, 평소 평자의 취향과 자신이 어느 정도 맞는다고 생각하는 독자님들은 이 곡을 꼭 찾아 들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