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량 관계상 2회에 걸쳐 게재되는 3월 하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3월 28일에서 31일까지의 발매반을 다룬다. 동방신기, 사무엘, 호야, 트리탑스, 서영&여름(헬로비너스), 지아이엠(G.Iam), 마마무, 이달의 소녀 올리비아 혜, 김보형.
마노: 타이틀 ‘운명’은 ‘Something’과 비슷하게 스윙재즈라는 장르를 취하고 있지만, 한껏 화려하게 으스대던 그때와는 다르게 조금은 미니멀한 모양새를 취한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세간에서 말하는 ‘개츠비적 리치함’의 무드를 계속 가져오면서도, 묘하게 ‘뽕끼’가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 고개를 갸웃하다가 은근히 돋아지는 흥에 이내 ‘아무렴 어때’ 같은 기분이 되고 만다. 미니멀하고 산뜻한 '평행선', 푸근한 온기가 느껴지는 '다 지나간다...', 15년 차 아티스트로서의 카리스마와 장악력을 느낄 수 있는 ‘Bounce’, 유노윤호와 최강창민 각각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퍼즐'과 ‘Closer' 등 좋은 트랙으로 리스트를 풍성하게 채운, 말 그대로 ‘풀렝스’ 앨범 그 자체라 하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것은 두 멤버의 연륜(이렇게만 말하면 매우 납작한 느낌이 들지만, 어쨌든)과 여유, 그리고 축적된 뛰어난 수행력 덕이리라. 동방신기의 새로운 챕터, 그다음 페이지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미묘: 화려하게 넘실대는 웰메이드 팝인 수록곡들을 듣고 있노라면, 어딘지 옛날 동방신기를 떠올리게 하는 ‘쿠세’들과 함께 ‘그래, 동방신기는 (독특한) 댄스 그룹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중에서도 ‘평행선’, ‘다 지나간다…’, ‘Only For You’와 ‘퍼즐’, ‘Closer’ 등이 톡톡한 질감으로 귀를 자극해 깊은 인상을 남긴다. ‘Something’과 ‘수리수리’ 보다 일렉트로닉 친화적인 방향성인데, 환상적이고 스타일리시하면서도 어른스러운 캐릭터를 표현해내는 세련된 방식이라 하겠다. 좋은 팝을 선보이면서 섬세하게 조율돼 들어간 의도들이 사려 깊다.
서드: 첫 트랙 ‘평행선’만으로도 이미 이 앨범에 그 이상을 바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연인 간의 관계를 그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최근 예능 등에서 두드러지는 윤호와 창민 두 사람의 성격과 성향 차이를 은유적으로 그려낸 가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긴 시간 동안 팀워크를 유지하는 두 사람의 매력이 노래 속에 담겨있다. 타이틀곡 ‘운명’은 ‘수리수리’와 ‘Something’의 궤를 잇는 듯 그간의 공백을 무색하게 하는 익숙함으로 다가온다. 또한 각자의 솔로곡 ‘Puzzle’과 ‘Closer’가 둘의 다른 개성을 잘 보여주면서도 자연스레 앨범 속에 녹아 있다. 타이틀곡보다는 수록곡에 더 귀가 기울여지는 앨범. 그중에서도 지난 활동의 희로애락이 묻어나는 것만 같은 가사의 발라드 ‘다 지나간다’가 유난히 귀를 잡아끈다.
유제상: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리 만족스럽진 않았다. 분명 ‘평행선(Love Line)’ 같은 곡을 들으면 원숙해졌다는 생각도 들고, 고루고루 할 거 다 했다는 느낌도 들지만 전반적으로 곡들이 과거의 곡들을 연상시키며 지루하다. 이것이 안정지향을 추구하는 최근 SM엔터테인먼트의 경향 탓인지는 알 수 없으나, 보아의 신보도 일본 시절을 연상시키는 것을 보면 아티스트의 의향도 어느 정도 반영된 듯.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한 곡을 꽉꽉 채운 이들의 성실함에는 경의를 표할 수밖에.
마노: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드는 생각은, 사무엘에게 너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혀 놨다는 것뿐이다. 사이즈도 스타일도 전혀 맞지 않는 옷에 완전히 묻혀버린 꼴이다. 겨우 열일곱의 소년에게 ‘아빠 양복’을 입힌 것 같은 모양새랄까. 노래도 아티스트도 잘못한 것은 없다. 그저 둘이 앙숙처럼 어울리지 않을 뿐. 덤으로 수록곡이 죄다 밋밋해서 아무런 매력을 느낄 수 없는데, 와중에 사무엘의 수행력은 출중해서 더 안타깝다. ‘Sixteen’의 산뜻함과 풋풋함이 그리워질 지경. 제발 부탁하건대, 어울리지 않는 콘셉트에 젊고 재능 많은 아티스트를 억지로 우겨 넣는 패착은 그만 저지르길. 어울리는 옷을 입혀 주길 바라는 것이 그렇게나 큰 욕심이란 말인가. 그토록 많던 재능과 매력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사무엘이 무슨 죄라고.
미묘: 사무엘이 용감한 형제마저 변하게 하는 것은 꽤 보기 즐겁다. 여전히 용감한 형제 특유의 질척이는 맛이 사무엘의 음색과 썩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지만, ‘One’의 후렴의 명쾌함이 사무엘의 음색과 얼굴에 겹쳐지는 쾌감은 만만치 않다. 누군가는 부인하고 싶겠지만 용감한 형제의 ‘강점’은 멜로디 감각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수록곡 전반에서 주로 이를 쿨한 방향으로 가다듬고 보다 환상적인 질감의 편곡을 결합한 것이 꽤 괜찮은 진보를 보인다. 각 곡은 사무엘에 어울리는 팔레트를 갖추기 위한 실험체를 모아둔 듯한데, 속칭 ‘FSU’의 질감을 가미한 ‘I Can’t Sleep’도 재미있다. 오히려 아쉬운 것은 ‘One’ 뮤직비디오의 SF적 연출인데, 슈퍼마켓에서 날뛰기만 해도 눈부시던 그 빛을 깎아 먹는 듯하다.
유제상: 누가 이 잘생긴 젊은이에게 ‘듀스스러움’을 요구하는지는 모르겠으나(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One’은 시작부터 ‘이것은 뉴잭스윙의 현대적 해석이다’라는 티를 팍팍 낸다. 문제는 이런 식의 시도를 수행하려면 곡의 어느 한 부분이 캐치하여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하는데, ‘One’은 그냥 깔끔하게 잘 만들어졌을 뿐이다. 굳이 비교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 곡은 비슷한 시도를 했던 ‘오빠차’ 같은 곡이 얼마나 상업적으로 노련했는지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물론 시작부를 처음 들었을 때 이 아저씨의 마음이 조금 흔들리긴 했다. 조금.
조성민: 본인의 실제 나이와 상관없이, 사무엘이 굳이 섹슈얼한 어필을 계속해서 할 필요가 있을까 의심스럽다. 한껏 능글거리는 사운드 사이로 울리는 사무엘의 가녀린 보컬은 어떤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곡에 집중하게 만드는 긴장감이라기보다는, ‘미성숙한 인간을 이렇게 노역시키면 잡혀가는 것 아닌가’하는, 도덕적으로 사회화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양심의 가책으로 인한 긴장 같은 것이다.
마노: 단점이나 보완해야 할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플랫하고 단조로운 보컬이나, 일관적이고 유기적이기는 하지만 자칫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앨범 구성은 아쉬운 부분. 단지, 이러한 부분을 훨씬 더 뛰어난 장점을 통해 매력으로 승화시키는 면모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 오디오로는 충족되지 않는 부분을 비디오적 연출을 통해 채워 넣는 것을 보면 다음 앨범에서는 얼마나 더 좋아질지 자연스레 기대를 품게 된다. 선공개 싱글 ‘Angel’에서 그랬듯, 비디오와 퍼포먼스를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부분이 있으므로 되도록 뮤직비디오를 감상할 것을 추천한다. 자신을 한없이 기다려준 팬들을 향한 애틋함이 담백하고 진솔하게 묻어나는 수록곡 ‘점’ 역시 체크해 보길.
서드: 타이틀곡 ‘All Eyes On Me’의 이상한 중독성에서 쉬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명백히 보이는 보컬의 약점과 단조로운 구조에도 불구하고, 무심한 듯 덤덤하게 부르면서도 쉬지 않고 유연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모습이나, 둔탁한 베이스와 묵직한 드럼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대비감과 조화가 이 곡의 묘한 매력을 만들어내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팬이 아닌 이들에게는 관심을 유발하기 어려운 지극히 사적인 앨범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만큼 솔로로서 표현하고자 했던 욕심들을 마음껏 부려보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앞선 Draft에서 좋은 말들이 충분히 나왔기에,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만들기엔 충분한 매력을 지닌 앨범이란 말로 평을 줄인다.
마노: 제목부터 명백히 ‘어그로’구나, 직감했다. 속는 셈 치고 들어볼까 말까. 속아주자.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조금은 의외의 잔잔한 밴드 사운드가 반겨온다. 벚꽃잎 흩날리는 봄바람 속에서 한껏 외로워하며 커플들에게 애먼 심술을 부리다가도, ‘이래서 내가 여친이 없나’하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화자의 모습에 약간의 실소와 함께 연민 비슷한 감정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10cm의 ‘봄이 좋냐??’와 같은, ‘벚꽃이 그렇게도 예쁘디 바보들아’와 비슷한 결의 ‘루저 감성’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밴드 사운드나 보컬의 가창력 같은 음악적 요소가 뒤떨어지는 느낌은 없어 꽤 편하게 들을 수 있었다. 노래가 끝나고, 과감히 다음 트랙으로 옮겨갔다. 미안하지만, 두 번은 속아주고 싶지 않았다.
미묘: 가끔 ‘무료 가상 악기만 사용해 곡 만들기’ 콘테스트가 열릴 때 보면 악기나 장비의 가격은 작곡자의 실력과 수준을 압도하지 못한다. 요즘 어벤전승의 몇몇 작업을 보면 정말 같은 사람들의 손과 귀를 거친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워진다. 헬로비너스가 절정의 가창력으로 유명한 팀은 아닐지 모르나 ‘Glow’나 ‘Runway’ 등의 싱글로 음색의 매력이 갖는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는 멤버들이다. 지향점이 불분명한 편곡과 엉성한 사운드, 대충 메워 넣듯 쓰여진 멜로디, 보컬의 매력을 살리기는커녕 약점을 노출하지 않으면 다행인 연출 등, 실망하지 않을 만한 구석이 거의 없다.
심댱: 인트로에서부터, 아니 이펙트에서부터 2000년대보다 훨씬 더 옛것이 느껴진다. “증거입, 니다”라는 랩 파트도, 반주에 녹아들지 않는 보컬도 너무도 21세기를 벗어나서, 얼른 탁월한 케이팝을 들어야 할 정도… 어디서도 레퍼런스를 찾아내긴 어렵지만, 굳이 찾고 싶지 않다.
심댱: 트로피컬 하우스는 이제 계절을 타지 않는 장르라고나 할 수 있을까? 아무튼 차곡차곡 쌓아 올라가다가 “Oh 매일 봐요” 하고 이어지는 드랍이, 마치 훅 다가와서 고백하고는 트로피컬 빛깔 소란 속으로 도망치는 귀여움을 담아내는 것 같다. 문별의 느끼함도, 솔라의 간드러지는 보컬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마마무라는 매력을 쉽게 느낄 수 있는 스페셜 싱글이다. ‘팝업’ 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유제상: 사적인 이유로 퍼스트 리슨에 떠나 있던 얼마 동안 마마무는 엄청 세련돼졌다. ‘매일 봐요’는 트렌드에 충실했던 ‘별이 빛나는 밤’에 비하면 훨씬 평자의 취향에 맞는 곡이지만(물론 이 곡이 트렌드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연코!), 출근길에 듣다가 살짝 눈물이 돌게 했던 ‘나로 말할 것 같으면(Yes I am)’에 비하면 감동 같은 것은 없어서 조금 그렇다. 이 곡을 들으니 이들이 의외로 브라운아이드걸즈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고. 여담이지만 왜 이 곡의 영문 제목이 ‘Maeil Bio’인가에 대한 편집장님의 단평이 그의 트위터에 있다. 혹시 보지 못했다면 모두 '미묘의 트위터'로 가서 그를 팔로우하자.
마노: 서늘하고 차가운 곡조, 나른하고 몽롱하며 약간은 ‘섹시’한 무드, 호러 스릴러 장르에 가까운 뮤직비디오 등의 요소가 퍼즐처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이별의 아픔을 ‘나를 더 사랑하겠다’는 자기애로 승화시킨 가사가 눈에 띄는데, 이런 메시지까지 곡과 프로덕션의 요소들과 촘촘히 맞물리는 절묘함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써 모든 소녀들이 공개되었고, 대장정의 프로젝트가 일단 마무리 되었다(유닛 활동이 하나 남아있긴 하지만, 멤버 공개는 완료되었다는 의미에서). ‘이달의 소녀’가 향하게 될 다음은 어떨까. 아직은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
미묘: 마치 90년대부터 시작된 음악사 여정 같은 이달의 소녀 프로젝트다. 거의 일관되게 유지되는 미덕 중 하나는, 음악적 제스처에 관객이 압도되는 순간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는 멤버들의 역량과 성향에 걸맞은 곡을 내놓는다는 점인데, 이번만큼은 음원에 한정할 때 완벽한 최선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장기 프로젝트의 약점일까. 보아를 닮은 김립을 닮은, 살짝 못돼 보이면서 나른한 음색은 버스의 중저음에서 매우 매력적이지만 후렴에서는 (이를 기술적으로 보완하려는 노력도 엿보이지만) 다소 어정쩡해진다. “Love myself”에 “today”를 붙여넣는 감각에 가슴이 덜컹인다.
심댱: ‘Love myself today’라는 메시지를 이토록 강렬하고 아슬아슬하게 풀어낼 수 있을까. ‘너’의 변심으로 자기애로 나아가는 모습은 비감을 강화하기도, 혹은 복수를 다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가사 중 “세 번의 키스 우리의 약속들이 빛이 되던 날”은 에덴 유닛과의 합이었다면, 이후에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사랑하겠다는 메시지가 이어지면서 올리비아 혜가 좀 더 유닛 사이에서 유동적인 캐릭터로 작용할 것 같다는 추측도 하게 된다. 뮤직비디오 중 ‘타락 천사’라는 네온사인이 주는 메시지까지 포함해서, 자꾸만 해석하고 싶게 만드는 케이팝의 수작, 이달의 소녀 기획의 마무리일 것이다.
심은보(GDB): 이달의 소녀의 프로덕션은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중 퓨처베이스 부류의 음악을 선보일 때 좋은 음악을 들려주곤 했다. ‘Egoist’는 의외로 곡의 구성만 보면 오드아이 퓨처의 색에 가깝지만, 올리비아 혜의 이야기는 이별에서 시작하는 자기애에 가깝다. 이는 의외의 생각이 들게 하는데, 우선 이달의 소녀는 지금껏 이별에서 시작한 서사를 타이틀곡으로 낸 적이 없다. 그런데도 곡 자체는 전혀 어둡지 않고, 버스에서 쌓인 마이너함은 훅을 지나 드랍에서 터지며 마치 곡 전체를 대변하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지금까지의 활동을 보면, 유닛 활동이 하나 남았기에 올리비아 혜를 이달의 소녀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까지의 이달의 소녀를 살펴보면, 루나로 데뷔할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색은 상당히 많다.
유제상: 나 혼자 좋아한 것이 아닌가 싶은 무지막지한 프로젝트 이달의 소녀 중 열두 번째 멤버 올리비아 혜의 싱글. 타이틀 ‘Egoist’는 이제 이들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애시드한 하우스 곡이고, ‘Rosy’는 그런 곡에 따라붙는 게임 음악 같은 그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Egoist’는 ‘Eclipse’ 계열, ‘Rosy’는 (분위기가 좀 어둡긴 하다만) ‘I'll Be There’ 계열이다. 이것도 지금까지 열심히 이달의 소녀를 좇아갔을 때나 알아먹는 이야기지만... 어찌 되었던 지금까지 50여 곡을 발표한 것만 해도 정말 대단한 일을 한 거라 생각한다. 평자 개인의 입장에선 ‘Rosy’ 같은 곡만 내주어도 꾸준히 애정할 것이고...
조성민: 이달의 소녀 프로젝트가 주목받은 이유는 12명의 소녀를 차례로 소개하는 과정에서 (처음엔 우연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필연적으로 의외성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여자 아이돌이 보여줬던 몇 가지 유형화된 모습들만으로는 12명 모두에게 각기 다른 캐릭터를 부여하기 어려웠을 것이므로. ‘배운 변태’ 디지페디가 연출하는 섹시한 코드가 나른한 곡의 무드와 완벽하게 맞물린다. ‘청순계’가 유행하는 동안 금기시되어오거나 완곡하게 표현되던 부분이 (레퍼토리 고갈 때문인지) 12번째 싱글 ‘Egoist’를 포함한 후반부 싱글들에서 비로소 활발히 활용된 점이 흥미롭다.
마노: 지난 싱글에 이어 이번에도 작사 작곡과 가창까지 스스로 해냈는데, 한껏 이국의 것에 가깝던 전작과는 달리 조금은 티피컬한 느낌의 R&B 발라드를 장르로 취하고 있다. 피아노와 단둘이서 이야기를 주고받듯 노래하다 반주가 들어오는 부분 같은 것들이 다분히 클리셰적인데, 자신의 이름을 건 1인 기획사에서 처음 내놓는 결과물인 데다 자신의 생일에 발매하는 싱글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는 의도한 것이라 하겠다. 어쨌든 뛰어난 가창력으로 곡을 장악하고 있기에 큰 단점으로 비춰지진 않는다. 그럼에도, 김보형이라는 아티스트가 가진 가능성은 이게 결코 끝이 아닐 것이라 믿는다.
미묘: 리드미컬하고 재지한 분위기로 시작해서는, 거의 약속된 것들을 지키는 것처럼 리듬감 있는 발라드 노선으로 넘어간다. 그래서인지 평범하고 익숙한 노래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착실하고 숙련된 정통파의 수법들과 침착하면서 효과적인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청자를 끌어들인다. 다소 힘에 부치는 듯한 음색으로 떨리듯 부르다, 조금의 금속성을 섞어 끌어올리는 보컬이 거부하기 어려운 감동을 찌르며, 김보형의 표현력도 잘 보여준다. 놓치고 넘어가기 아쉬운 트랙.
- 아이돌로지 10주년 : 현 필진의 Essential K-pop 플레이리스트 - 2024-05-13
- 아이돌로지 10주년 : 아이돌로지는 사랑을 싣고 (前 필진) - 2024-04-29
- 아이돌로지 10주년 : 아이돌로지는 사랑을 싣고 (미묘) - 2024-04-15
2 replies on “1st Listen : 2018년 3월 하순 ②”
동방신기는 유재상님 감상과 비슷한데, 보아 신보도 그랬지만 고년차의 대중지향이랄까요.
이고이스트는 파워보컬이 맞을라나요? 이 곡이 마지막 싱글이어야 했고, 올혜는 마지막 멤버여야 해서 그렇게 매치가 된 걸 수도. Rosy는 딱 맞더라구요, 고원도 그렇고. 완전체에서 어떤 색을 낼 건지도 궁금하지만, 그 전에 유다 같은 올혜가 어떻게 에덴 유닛을 함꼐 할 것인지
립? 아니면 희진이 불렀으면 나았을까요? 드림캐쳐 시연이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