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순 신작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유선호, 이창민, 슈퍼주니어, 박보람&길구봉구, H.U.B, JBJ, 빅스, 휘인, 임팩트, Hyo, 핫펠트, 하이틴, 동급생, 에이핑크, 김규종, 인투잇의 신보를 다룬다.
마노: 다듬어지지 않다 못해 날것에 가깝게 느껴지는 보컬도 그렇고,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잘한다’고는 하기 힘들 것 같다. 만일에 요즘 유행하는 퓨처 베이스나 트로피컬 하우스 같은 장르였다면 이러한 단점이 더욱 두드러졌겠지만, 보컬만큼이나 풋풋한 느낌의 피아노 연주와 어쿠스틱 사운드로 적절한 절충점을 찾은 것은 꽤 영리해 보인다. 거기에 입에 꽃을 물고서 카메라 너머를 응시하고, 비에 흠뻑 젖은 앞머리를 털며 해맑게 웃음 짓고, 흰 셔츠를 입고서 갖가지 꽃이 흐드러진 정원에서 피아노를 치는 비주얼이 더해지면 그만 져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고 만다. 앞으로도 이런 류의, 한 가지 수식어로만 규정되지 않는 다양한 소년들 역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유제상: 〈프로듀스 101〉 시즌 2로 이름을 알린 큐브 엔터테인먼트 소속 유선호의 데뷔 EP. 솔직히 〈프로듀스 101〉 시즌 2를 워낙 띄엄띄엄 봐서 유선호에 대한 인상이 강하진 않다. 그냥 키 크구나... 말랐구나... 정도. 그러나 EP의 경우는 다르다. 수록곡이 모두 아침 방송에 어울릴 것 같은 상쾌하지만 차분한 노래로, 아이돌, 그것도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신으로는 아주 드문 접근법을 보여준다. 타이틀 ‘봄이 오면’이 맹숭맹숭했던 반면, 네 번째 트랙인 ‘보고 싶어’는 90년대 싱어 송 라이터들의 노래를 연상시켜 듣기 좋았다. 결과적으로는 꽤 괜찮은 데뷔작이라 생각된다. 정성도 가득하고, 팬이라면 아마 대만족 하지 않을까?
유제상: 이제 매체를 통해 접한지도 오래되어 아는 동생 같은 창민의 새 EP. 최근, 그러니까 한 일 년여 전부터 창법이 확 바뀐 듯 2AM 시절의 말랑한 목소리에서 재지하고 소울풀해진 것이 느껴지는데 이번 EP는 그런 변화가 안정화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첫 곡인 ‘결혼해줘요’부터 노련해진 그의 목소리가 훅 들어오는데 나쁘지 않다. 다만 ‘생각이 너무 많아’는 대중성을 고려한 탓인지 곡도 목소리도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 지점에 머물러 있다. 이런 류의 EP가 그렇듯 타이틀만 별로인 걸까. 아니면 평자의 센스가 이미 대중과 너무 멀어진 걸까. 여튼 비수기 시즌송 모음집으로 넘기기엔 아까운 EP.
유제상: ‘슈퍼주니어가 나오는데, 카드도 같이 나오고, 이게 뭐지?’ 하면서 무대를 바라보았던 슈퍼주니어의 신보. 무대 위의 흥은 결국 전작인 ‘Super Duper’가 아닌 ‘Lo Siento’ 쪽으로 옮겨진 셈인데, 레슬리 그레이스가 피처링한 원곡을 카드 버전과 비교해보면 원래 의도가 무엇인지 선명히 드러난다. 이전부터 주장하던 바이지만 라틴 팝은 한반도의 주민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구. 나른한 그쪽 뽕끼는 한국으로 넘어올 때 BPM이 같아도 왠지 조급해진단 말이야... 카드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원곡이 좋았다. 아니, 카드 버전이 되게 무리하다고 느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Lo Siento’에는 미안하다는 뜻이 있지...
조성민: 아시아를 춤추게 했던 그룹의 저력이란. 다인원 그룹이었던 슈퍼주니어 특유의 볼륨감은 없어졌지만, 이들이 대중과 팬덤을 움직였던 힘은 단순히 많은 인원수에서만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반전체’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전보다 적어진 멤버로, 없는 멤버들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팀 자체가 갖고 있던 캐릭터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항상 고민하고 연구하는 티가 많이 난다. 그 과정의 여러 가지 실험은 그래서 매번 새로우면서도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리패키지 앨범 타이틀곡 ‘Lo Siento’ 역시 음원 자체로서의 완성도와 무대 퍼포먼스상의 완성도를 모두 충족하기 위해 두 가지 버전을 수록했는데, 어느 쪽이든 ‘아이돌 장인’ 슈퍼주니어가 의도한 그대로 훌륭하게 기능한다.
유제상: 지루함이 넘치는 양산형 발라드에, 늦봄을 노리는 시즌송이건만 셋의 목소리 조화는 크게 나무랄 게 없다. 박보람 쪽에 길구봉구가 맞춰졌다는 인상이긴 하다만. 오히려 개인적으로 이 지면을 빌어 이야기하고 싶은 건, 최근 방송을 통해 접하는 길구봉구의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거다. 지나치게 혹사라도 당하는 건지, 호흡이 짧고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는 것이 느껴진다. 〈슈가맨〉 2에 나와서 ‘너를 품에 안으면’을 부를 때였나... 여튼 몸조리 잘 하시길.
마노: 멜로디도 전혀 귀를 끌지 못하고, 미디움 템포의 사운드는 축축 처지기만 하며, 보컬도 랩도 시종일관 삐걱대며 곡과 아무런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어떻게든 화사하려고 애쓰는 사운드와 ‘쎈 언니’ 류의 랩이 미스매치를 이루는 것도 문제다. 이러고도 “‘벚꽃엔딩’의 뒤를 잇는 시즌송”이라니, ‘벚꽃엔딩’에게 미안할 지경이다.
유제상: 아니 이게 왠 H.U.B, 기억이 맞다면 지난 싱글에서 거의 1년 만의 컴백이다. 디지털 싱글로 서로 다른 버전의 ‘벛꽃피는 날에’와 인스트루멘탈을 수록. 개인적으로 H.U.B는 루이의 그룹으로 인식되어 있는데 뮤직비디오를 보니 멤버들의 개성이 이렇게 강했나 싶을 정도로 강렬하다. 다만 가장 중요한 음원이 역대급으로 좋지 않은데, 특히 여음구에 “휴~ 벚꽃 정말 싫어”라는 부분이 나올 땐 저절로 실소가 머금어질 정도. 이렇게라도 활동이 이어지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마노: 이렇게까지 대놓고 ‘스완송’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가사의 모든 단어와 모든 문장이, 뮤직비디오의 모든 요소와 장면이, 정말이지 팬이라면 (그리고 팬이 아닌 사람들까지도) 눈물을 뽑지 않고는 배길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룹이 현재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프로덕션의 악랄함까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있는 힘껏 해사하게 웃고 있는데도 그래서 오히려 한없이 슬퍼 보이는 것은 그저 기분 탓일까. “어느 좋은 날 내가 네 이름을 부를게”라는 가사를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어느 좋은 날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름을 불러줬으면 좋겠다는 것은 그저 욕심일까. 지쏭의 말대로 “또 다른 새로운 아이돌 그룹의 모델로서 제2의 역사적인 서막을 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이제 막 피어난 그들을, 이제 막 차오르기 시작한 그들을 이대로 보내기엔 너무도 아쉽고 안타깝다.
미묘: 유종의 미는 없다. 제 역할을 할 정도의 무난한 곡들이지만 스튜디오에서 몇 시간이나 썼을까 싶어지는 마감이다. 아무렇게나 믹스된 드럼이나 덜 정제된 보컬 에디트, 중저역이 날아간 채 갑갑하게 눌리기만 한 사운드까지. 신곡들이 보여주는 주제의식과 그 표현도 세 곡으로 나눠야 할 필요가 느껴지지 않고, 이 정도로 유사한 결이 세 곡에 담긴다면 훨씬 긴 음반이 돼야 하지 않았나 한다. 도의적으로야 어떻든 실상황에 바탕을 두고 청자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곡들이 내용적으로도 허술하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그 외에는 전작들과의 합본이어야 할 이유도 제시되지 않는다. 전작들에서 퀄리티와 꼼꼼한 기획에 감탄했기에 의외다. 새로운 팬을 끌어들일 일은 없다고 생각한 걸까? 아무튼 멤버들은 착실하게 열심히 노래하고 있는 듯해 입안에 쓴 맛을 더한다.
마노: 조향사를 표방한 콘셉트도 그렇지만,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치 탑노트로 민트와 베르가못, 미들 노트로 재스민과 장미, 베이스 노트로 머스크와 샌달우드를 넣은 향수를 소리로 빚어낸 것 같은 앨범. 타이틀 ‘향’을 비롯 대부분의 수록곡을 통해 시종일관 센슈얼한 텐션의 퓨처 베이스 장르를 풀어내고 있는데, 각 트랙의 퀄리티는 물론이거니와 훵키한 무드의 ‘Good Day’, 미디움 템포 발라드 트랙인 ‘닮아’ 등을 통해 적절히 쉼표를 찍어 트랙 간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는 점이 탁월하다. ‘컨셉돌’로 흥했던 만큼 실로 다양한 콘셉트를 선보여왔는데, 콘셉트에 그룹과 음악이 함몰되는 듯 보였던 모먼트도 있었으나 이제는 ‘콘셉트는 거들뿐’이라는 경지에 도달하지 않았나 싶다. 비주얼적으로는 물론, 오디오만으로도 충분히 향기로운 한 장.
미묘: 트랙들을 가로질러 출렁출렁 흐르는 긴장감은, 마치 케이팝의 퓨처베이스 이식이 빅스를 위한 것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좌우로 조금씩 정서의 변용이 이뤄지는데, 따로 들어보면 꽤나 다른 종류의 사운드인 ‘Circle’이나 ‘닮아’가 앨범의 맥락 속에서 지극히 매끄럽게 들리는 것은 그런 파장이 매우 효율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입증한다. 빠르게 흐르는 기체가 역동적으로 요동치는 듯한 비트의 ‘향’, 비트 패턴의 변화가 청자의 호흡을 쥐고 주무르는 ‘Silence’, 직선적으로 서정이 뻗는 ‘Trigger’를 놓치지 말길.
유제상: 작년 5월경 나와 적잖은 반향을 일으킨 “桃源境 (도원경)”의 연장선상에 선 앨범. 심지어 아쉬울까 봐 ‘도원경’도 11번째 트랙으로 함께 수록해 놓았다. 타이틀 ‘향 (Scientist)’은 ‘도원경’ 바로 뒤에 붙여 놓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비슷하다. 솔직히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지만 후렴구의 비트가 특기할 정도로 쫄깃한 점이 위안거리. 오히려 평자 입장에서는 4번째 트랙인 ‘My Valentine’이 맘에 들었는데, ‘도원경’과 비슷한 곡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타이틀과 큰 차이가 없지만 이쪽은 멜로디가 상대적으로 창의적이다. 끝 모르고 달리던 이들의 초창기가 연상될 정도. 마침 이번 주가 내겐 ‘빅스 다시 듣기 주간’이었는데, 언제고 다시 그렇게 달려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나쁜 사람 아~닌~~데~ (···)”
조성민: 지금 케이팝씬에 빅스만큼 일관된 기조로 일정 이상 퀄리티를 꾸준하게 보여주는 그룹이 또 있던가. 언뜻 투박하고 엉성한 동네 코스프레 쇼처럼도 보일 수 있었던 초반의 콘셉추얼한 퍼포먼스는 중후반을 넘어 트렌드와의 접점을 찾아가면서 다른 그 어떤 팀도 할 수 없는 아이돌판 카니발을 완성해냈다. 무겁고 부담스러울 수 있었던 오케스트레이션에서 탈피해 작년부터는 퓨처 베이스 사운드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한 것 또한 주목할 점이다. 빅스가 추구해온 판타지 세계관이 전통적인 서브컬처에서 동시대성을 가진 비디오를 지향하기 시작하면서 음악과 퍼포먼스 또한 함께 변화해왔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점진적인 변화를 거쳐오면서 큰 방황이나 혼란이 없어 보인 것은 역시 멤버들이 탁월한 재능으로 중심을 잘 잡고 있었던 덕분이 아니었을까.
미묘: 보컬이 다닥다닥 붙여 빠르게 흐르다가 정박으로 꾹꾹 찌르거나 엇박으로 밀어내는 호흡이 매력적이고, 휘인의 표현력도 잘 보여준다. R&B인 척하다가 딥하우스 풍으로 흐르는 곡의 호흡도 듣기 즐겁다. 질척이지 않고 어른스럽게 걸어 나가는 곡에 꽤 통속적인 느낌의 가사가 균형점을 마련한다.
유제상: 이 곡을 들으니 마마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정말이지 선명하게 그려진다. 세련된 멜로디와 비트, 지극히 통속적인 가사, 어느 정도 관성에 젖은 노래의 만듦새, 이 모든 것은 오늘날 이들을 이뤄낸 원동력이련만, 이전 ‘매일 봐요’의 리뷰처럼 이들이 ‘포스트 브라운아이드걸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생각 또한 지울 수 없다. 다만 브라운아이드걸스가 그룹이든 개인이든 뽕끼가 상당히 강한 곡들을 가지고 활동했다면, 이쪽은 끈적함이 남다르다. 곧 리뷰될 화사의 곡도 그렇고 휘인의 ‘Magnolia’도 거의 술 게임의 벌칙이 연상될 정도의 끈적함을 자랑한다. 이것 또한 트렌드라면 따르겠습니다만... 아, 식케이의 피처링이 끝에 툭, 들어가듯 짧게 나온 건 신선했다.
유제상: 작년 말부터인가 올해 초부터인가 유독 열심히 활동하는 게 눈에 보이던 임팩트의 새 싱글. ‘빛나’는 최근의 트렌드에 충실하지만, 유독 후렴구가 왜곡되어 ‘90년대 가요를 레퍼런스로 삼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질 수 없기에 더 빛나”라고 반복되는 후렴이 뇌리에 남아, 리뷰가 끝나도 평자를 괴롭힌다. 거의 오마이걸의 “열 손가락!!” 급이다. 아니나 다를까 모 커뮤니티의 친구들도 가요 프로그램에 임팩트만 나오면 “가질 수 없기에 더 빛나”를 외치고...
마노: 물론 효연은 이전에도 솔로작을 발매했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어느 곡도 ‘솔로 아티스트 효연’, ‘퍼포머 효연’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 DJ로 전향하고 낸 첫 싱글에서 솔로 아티스트와 퍼포머로서의 모습이 오롯이 드러난다고 생각된다. 작곡과 편곡에 본인의 이름을 올렸다는 점도 그렇고 프로덕션의 많은 부분에 목소리를 낸 결과라 생각하면 당연한가 싶기도 하다. 서늘한 기조의 트로피컬-퓨처EDM 사운드와 특유의 허스키하고 드라이한 톤의 보컬이 이루는 조화도, 뮤직비디오 속에서 스포티 룩을 걸치고 여러 장소를 누비며 춤추는 모습도, 다양한 모습의 ‘자유로운 여성’을 드러내는 뮤직비디오의 메시지도 매우 근사하다. Hyo의 앞으로를 힘껏 응원하는 의미에서 Discovery!를 선사한다.
미묘: 일렉트로팝에 충실한 곡. 들락날락하듯 누르는 피아노의 리듬감도 매력적이지만, 어둡게 흐르는 버스와 ‘각성’의 감정을 연상시키는 프리코러스의 끝에 흐르는 쉽고 예쁜 드롭이 상당한 쾌감을 안기는 구조다. (‘Pop Ver.’도 나름의 맛은 있지만 특히 드롭은 역시 보다 높은 BPM이 ‘필요했다’고 느낀다.) 국어 버전 가사가 상대를 떠난다는 내용인 데 비해 영어 버전에선 ‘너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멀쩡한 것이 먼저’라는 메시지를 보다 선명히 한다. 주제의식의 무게에 비해 (그리고 이미 보여줬던 것들에 비해) 효연의 보컬은 사실 조금 납작하게 들리는데, 어쩌면 그것 역시 ‘sober’의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뮤직비디오는 거의 떠먹여 주듯 여성의 몸과 관련된 주제를 보여주는데, 케이팝의 클리셰가 된 폭동의 이미지로 연결되는 것이 쉬운 동시에 흥미롭게 다가온다. 아티스트로서 홀로서기의 의미와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잘 결합한 작품.
유제상: 일렉트로닉을 하겠다면서 노래가 이렇게 긴 것은 무슨 연유이며, 이제 와서 새삼스레 트로피컬 하우스는 또 무엇이며, 퍼포머로 뭔가를 보여주는 것도 없는 뮤직비디오는 또 뭔가 생각했지만, 이 모든 것이 일정한 지향점을 지니고 있어 효연이 원하는 결과물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게 한다. 그건 아마 평자보다 5~6년 선배들이 홍콩 느와르를 보고 머릿속에 떠올리던 그것, 평자 세대들이 농구할 때마다 〈슬램덩크〉를 떠올리던 그것, 이제 30대가 된 후배들이 〈디지몬〉 생각하며 눈물짓는 그것. 어느 한 시대에는 대단히 세련된 것이었지만, 지금은 예스러워 보이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동안 소녀시대 어떻게 하셨어요?
미묘: ‘위로가 돼요’는 루프에 레이어를 얹어 나가다가는 멈췄다가 다시 풀어나가(다가 글리치로 분위기 전환하)는 방식이 안정감을 준다. 네오-시부야계를 연상시켜 고전적인 느낌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말랑자두”를 비롯해 일상적 소재의 기이한 사용과 중저역이 부드럽게 두드러지는 어둑한 공기가, 이 노래와 노래에 담긴 이야기를 향해 강한 호기심을 일으킨다. 흥미롭게 따라가다 보면 노랫속의 유혹에 슬그머니 넘어가 버린다. 팝하면서도 특색이 강한 스타일리즘과 작사가 돋보인다.
유제상: 이제는 원더걸스의 “Why So Lonely”가 이들의 음악성을 성장시켰음을 인정해야 될 때인 것 같다. 그 음반의 ‘Sweet & Easy’를 유독 광적으로 좋아했던 평자 입장에서, 그 감성이 어디서 왔는지를 핫펠트의 새 싱글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이번 싱글의 두 곡은 모두 팬시한 맛으로, ‘위로가 돼요 (Pluhmm)’가 달달한 계열이라면, ‘Cigar’는 확실히 애시드한 쪽이다. 아니, 정말이지, 선미의 싱글들도 그렇지만 음악으로 원더걸스 멤버들을 높이 보는 날이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평자에게도 하는 말이지만, 다시는 핫펠트를 무시하지 마라.
미묘: 트와이스의 아주 잘못된 이식. ‘Timing’은 다양한 스타일이 빠르게 교차하는데, 브리지의 느끼하리만치 나이브한 피아노를 제외하고도, 그 어느 것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래도 타이틀곡은 관습적 멜로디에도 보컬이 똑 부러지는 느낌으로 연출되기나 했지, 어떻게든 비트를 키워 보여다 안 그래도 힘 없이 파묻히는 보컬을 더 뒤로 밀어내는 ‘달콤해’, 뭐라 이루 말할 수 없는 퀄리티의 ‘선인장’ 등에는 해줄 말이 없다. ‘우주’가 전작들에서 엿보인 실용음악과 취향을 기반으로 이뤄져 그나마 안정감이라도 있다.
유제상: 뻥 안치고 그룹 이름 때문에 리뷰했다. 그랬더니 사내 목소리가 나오네? 게다가 밴드 스타일이네? 거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본 급의 반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뮤직비디오를 확인해보니 멤버가 엄청 많다... 음원으로만 말하자면 전형적인 보컬 그룹으로 생각되지만 ‘Feel Good’은 밴드 스타일의 흥겨움도, 보컬 그룹이 지니는 아기자기함도 느낄 수 없는 곡이었다. 다만 아직 데뷔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더 좋은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 리뷰를 수이 마무리할 수가 없기에.
랜디: 공들인 흔적이 귀에 들리는 아름다운 스트링 발라드곡. 에이핑크가 지금껏 구현해온 클래식한 (자칫하면 고루해질 수 있는) 그 느낌을 섬세하게 풀어냈다. 그룹 색 자체가 리얼 악기에 잘 어울린다. 메인보컬 은지의 실력이 워낙 유명하지만, 리드보컬들의 실력도 탄탄한 팀이다. 이 곡은 남주가 1절을 사실상 이끌어가고 있는데, 어려울 수 있었을 부분들(첫 마디부터 스케일의 거의 모든 온음을 한 번 이상 건드리고 가는 유려한 A파트나, 빌딩부터 후렴까지를 끊지 않고 한 호흡으로 처리한 파트 등)을 안정적으로 소화해냈다. 서브보컬들은 어떠한가. 나은의 경우, 비주얼 센터는 노래가 다소 부족할 것이란 편견을 깨고 놀랍도록 성숙해진 보컬을 들려주고 있다. 특히 2절 초반은 베이스가 적으면서 약간의 비성이 있는 파스텔톤인 초롱의 파트와, 그보다는 베이스가 있으면서 맑은 소리를 내는 나은의 파트가 연속으로 나오며 좋은 시너지를 낸다. 이 곡은 억지로 밝은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되는 노래이고, 그 점이 각 멤버 목소리의 장점을 한층 더 끌어내고 있다. 팬송이지만, 팬들에게뿐만 아니라 일반에게도 널리 사랑받을 만한 수작이다.
미묘: 편안한 팬송에 적당한 양념을 가했는데, 작곡도 편곡도 다소 심심한 편. 그러다, 후렴으로 넘어가는 조바꿈이 시간을 잡아끌면서 귀를 사로잡는다. 브리지 이후의 전개는 (곡 전체에서 이뤄지는) 단조와 장조의 병존을 꽤 매력적으로 풀어낸다. 멜로디라인 자체의 부하를 조금 줄이거나 차라리 스케일을 더 키웠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랜디: 2005년 SS501로 데뷔해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김규종의 첫 정규 앨범. “Play in Nature”란 제목으로 내온 세 장의 싱글을 모았다. 강하지 않은 주제이지만, 담아낸 톤이 고른 점이나, 하려는 이야기가 분명하게 전달되고 있는 점에서 아티스트와 프로듀서의 성실함이 엿보인다. 모든 곡은 작곡팀 ‘어깨깡패’의 작사와 작곡, 편곡으로 이루어졌다. 가요 씬에서는 보기 드문, 생태적인 감수성을 녹여낸 편안한 가사가 의외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미묘: 전작의 점잖음이 밉지 않았지만, 이번은 ‘레트로 퓨전’이라기에는 조금 그냥 예스럽게 들린다. 비주얼과 곡의 시대감각이 썩 좋지 못한 궁합을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유행어나 의성어 등을 너무 들이대서이기도 할 것이다. 이는 백스트릿보이즈 풍의 ‘2U’, 조금 촐랑거리는 ‘Be Bop Baby’ 등의 수록곡들이 썩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서 더욱 심화된다. ‘Snaspshot’의 쏘아붙이는 것도 아니고 찍어 누르는 것도 아닌 애매하게 뭉친 가사의 리듬처럼, 다소 구차하게 들리는 구석들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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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ply on “1st Listen : 2018년 4월 중순”
그 조급해지는 뽕끼가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요. 저는 카드 버전이 더 좋았네요. 특히 무대에서의 소화력은 카드 노래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더군요.
‘위로가 돼요’ 는 홍보만 잘 되면 인기 많을 노래 같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