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t Listen : 2018년 4월 초순 ①

2018.04.0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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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분량 관계상 4월 6일자까지를 다룬다. EXID, 펜타곤, 오마이걸 반하나, 더보이즈, 정진운, EXP 에디션, 위너, YDPP, 배드키즈, 박보람, 텐, 브로맨스.
EXID
내일해
바나나컬쳐 엔터테인먼트
2018년 4월 2일

   

90년대를 어떤 방식으로든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거부하기 쉽지 않을 트랙이다. 심지어는 필터를 통해 당시의 ‘VHS 감성’을 최대치로 재현한 뮤직비디오의 영상미 하며, ‘여자 듀스’를 연상케 하는 패션, 해당 시대에 대한 연구의 흔적이 역력해 보이는 멤버들의 퍼포먼스와 수행력까지, ‘90년대 바이브’를 향한 최대치의 오마주 내지는 재현이 아닌가 싶다. 신나는 곡조에, 다소 대조되는 서글픈 내용의 가사를 얹은 지점까지 너무도 당대의 감성이라,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낮보다는 밤’처럼 방향성을 잘 잡은 듯 보이는데, 다음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겠다.

명쾌하고 시원하다. 뉴잭스윙을 재현하되, 걸그룹에게서 익숙한 방식보다는 ‘오빠미’ 넘치는 노선을 택한 것도 신선하다. 그만큼 눈길을 끌 요소가 많은 콘셉트이며 그것을 매우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는데, 와중에 어떻게 들어도 EXID임을 놓칠 수 없게 하는 것은 (LE의 톤이 물론 크게 기여하지만) 대단한 일.

그룹이 커리어에 있어 정점을 지나 어떤 여유로운 시기에 접어들 때, 안주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발을 내딛는 모습을 EXID에게서 보고 있다. 뉴잭스윙의 재현 또는 재해석 사이에서 조금은 단순한 편곡과 단조로운 사운드가 아쉬움으로 남지만, 데뷔 6년 차를 넘어가는 걸그룹이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하며 표현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점과 다음 행보가 여전히 궁금하고 기대된다는 든든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여느 때의 EXID 싱글처럼 정성은 가득 차 있되, 흥미롭지는 않다. 일단 레트로 컬처를 표방한 것은 알겠는데 멤버들의 일면이 너무 화려하여 분위기가 충분히 살지 않고, 또 노래 자체가 기존의 곡들과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 점은 마이너스. 다만 누가 뭐라 하든 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프로답게 충실히 수행했다. 하니 이외의 멤버들도 충분히 부각되며, 여전히 솔지가 그립지만 견딜 수 있다. 이 싱글은 그런 싱글이다.



펜타곤
Positive
큐브 엔터테인먼트
2018년 4월 2일

   
놓치기 아까운 음반

요즘 아이돌 음악에서도 이런 류의 ‘루저 정신’을 표방한 곡이 늘어나고 있는 듯한데, 타이틀 ‘빛나리’에서는 한술 더 떠서 ‘찌질이 감성’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부분을 미니멀하면서 유쾌하고 산뜻하게 풀어냈다. 충격의(?) “찌질이-머저리-거머리-겉절이” 라임마저도 따라 하게 만들고 마는 묘한 중독성은 덤이다. 무대 위에서의 재기발랄한 에너지와 천차만별의 ‘너드’ 군상을 그린 듯한 퍼포먼스는 곡의 매력을 배로 증폭시킨다. 제목 그대로 듣는 재미가 가득한 랩 유닛의 ‘재밌겠다’, 앨범 제목처럼 한껏 낙천적인 ‘함께 가자 우리’ 등 놓치기 아까운 수록곡으로 가득 차 있다. 많은 셀프 프로듀싱 아이돌 사이에서 단연 독보적인 존재감을 내뿜는다는 점에서, 이 그룹과 앨범은 분명 더 주목받아 마땅하다.

펜타곤의 매력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의외성에 있나 보다. 데뷔곡 ‘고릴라’를 거쳐 ‘감이 오지’ 같은 곡을 선보였던 그룹이 ‘빛나리’로 이렇게나 다른 모습을 보여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전에 없던 재치와 여유가 돋보이는데, 어쩌면 이런 ‘해맑은 자조’가 큐브 보이그룹 전통의 아이덴티티라고 봐도 좋을까. 변화하며 자신들에게 가장 잘 맞는 콘셉트와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볼 때 셀프 프로듀싱 그룹의 장점이 가장 뚜렷이 느껴진다.

최근 여러모로 선방 중인 펜타곤. ‘빛나리’는 YG 계열 남자 아이돌 그룹의 최근 노래들을 연상시키지만 멜로디는 그보다 훨씬 밝고, 가사는 힘이 들어가 있다. EP 전체로 봤을 때 멤버 개개인의 앨범 참여비율이 늘어나면서 확실히 들을 만한 곡 또한 늘고 있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 이제 역량을 키웠으니 슬슬 좀 더 날뛰어도 좋겠다만 이건 인력으로 되는 게 아니지. 여튼 만족스럽게 들은 EP였다. 캐치한 멜로디가 늘어난다면 더 즐겁겠지만서도.

이번 회차의 추천작

아이돌이 스쿨 보이를 연기하는 것이 특별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너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타이틀곡 ‘빛나리’의 배경은 학교가 분명하지만, 아이돌이 학원물에서 으레 연기해오던 ‘잘나가는’ 운동부 주장 쿨가이나, 단정하고 다정한 학생회장 엄친아 대신, 얼굴 가득 주근깨와 홍조를 담고 엄마가 사주지 않았을 리 없는 오버 사이즈의 의상을 입은 ‘찌질이’가 등장한다. 덕분에 평소 단점으로 보였던 멤버 간 신장 격차마저도 다양한 현실 찌질이가 살고 있는 학교의 리얼리티를 살려낸 것처럼 보인다. 교과서에 그은 두꺼운 형광펜처럼 깔끔하게 울리는 피아노 리프에 코믹하게 연출된 안무 동작이 눈에 들어오지만, 드라마틱한 퍼포먼스를 구성하는 능력이 뛰어났던 팀답게 무대 곳곳에 스쿨 뮤직 드라마와 같은 장면을 배치해 음악과 안무가 균열을 일으키지 않도록 했다. 전작 “Demo_02”의 인트로였던 ‘Violet’에 이어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는 인트로 트랙을 만들어낸 멤버 키노의 자작곡 ‘Off-Road’부터, 녹음 우거진 캠퍼스의 등나무 벤치가 떠오르는 ‘생각해’, “Demo_01"의 ‘멋있게 랩’을 이어가는 ‘재밌겠다’, ‘보컬 부자’로서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보낼 수밖에’와 아우트로 ‘함께 가자 우리’까지, 모든 트랙이 일정한 콘셉트와 무드를 유지하며 20여 분간 청춘의 생동감을 선사한다. 운동부 쿨가이의 트로피도, 학생회장 엄친아의 상장도 아니지만, 교실 뒤쪽에서 잉크가 얼룩덜룩해지도록 노트에 자기 이야기를 꾸준히 그려나간, 귀여운 너드의 습작 노트 같은 앨범.



오마이걸 반하나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WM 엔터테인먼트
2018년 4월 2일

   

전진은커녕 힘껏 퇴보하기만 한 콘셉트, 알러지 증상에 대한 희화화, 페도필리아적 성적 대상화, 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커녕 혐오만 조장하고 있는 메시지, 거기에 어쭙잖고 어설픈 스토리텔링이라는 요소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기세 좋게 전진하던 커리어를 졸지에 10보 퇴보하게 만든 데다가, 멤버들의 뛰어난 능력치를 낭비하고 착취하는 작금의 프로덕션을 강력히 규탄하는 바이다. 팬덤 일각에서 ‘고도의 만우절 장난일 것이다’라는 현실 도피성 가설까지 제시되었는데, 차라리 이 모든 것이 만우절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황폐해진 ‘비밀정원’을 바라보는 마음이 너무도 참담하다. 돌려내라. 살려내라.

쇼케이스의 ‘하더라’ 무대를 보면 8비트 게임 캐릭터 같은 움직임을 만들어내려 하는데 마치 각시춤처럼 느껴지는 대목이 있다. 이처럼 구현하려는 의도와 현실의 결과물에는 갭이 발생하게 마련인데, 그 요인으로서 여리여리해 보이는 멤버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이런 작품이 나와버리면 지금까지의 작업도 조율된 것이 아니었다는 의심 또한 하게 된다. 서정적이거나 씩씩한 내용, 참신한 콘셉트나 비주얼, 복잡하고 정교한 안무 등에 의해 ‘덮어졌던’ 아슬아슬함 말이다. 곡 자체에 크게 나무랄 것은 없고, 음반 전체가 하나의 서사를 그리는 방식도 흥미롭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의 결정은 지나치게 무책임하다.

이미 다 나온 싫은 소리를 보태봐야 무엇 하나 싶어 길게 쓰다가 전부 지워버렸다. 아무튼 그 어떤 이유도 지금, 하필, 오마이걸에게 굳이 부르게 해야 했을 합리적 근거가 되지 않는다. 오마이걸은 귀엽다. 구태의연하게 만들어진 귀여운 콘셉트를 가져다 입히지 않더라도 귀엽다. 8비트 게임을 연상시키는 칩튠 사운드까지는 괜찮다. 엄청 특별하지는 않지만 그리 나쁜 사운드도 아니었다. 그러나 ‘알러지’를 ‘허벅지를 긁는 안무’와 결부시킨 콘셉트에 동물 귀와 꼬리를 부착한 의상, 의도적으로 보컬로이드처럼 납작하게 눌러 놓은 앳된 목소리가 합쳐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Closer’‘Windy Day’, ‘비밀정원’ 같은 곡들을 통해 오마이걸은 지금 다른 어떤 걸그룹도 지니지 못한 독자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 데뷔 3년 차. 어쩌면 지금이 진짜 승부수를 띄워야 할 중요한 시기다. 그리고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는 기존의 코어 팬들 상당수의 반응과 음원 성적 등이 이미 보여주듯 썩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완전체 활동과 유닛 활동의 콘셉트는 무언가 달라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비밀정원에 심은 바나나 나무가 잘못한 건지, 아니면 WM의 판단미스가 잘못한 건지 너무도 난감한 콘텐츠가 나왔다. 아마도 언급한 모두의 잘못이리라. 이런 콘텐츠에 열일하는 멤버들은 무슨 잘못인가 싶다가도 안타깝기만 하다. 더 잘할 가능성을 보여줬던 ‘비밀정원’의 후속이 고작 이것으로 만족해야 하나? 절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저 슬픈 마음으로 ‘반한 게 아냐’를 듣겠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충격을 준 EP. 비밀정원에 심어 놓은 것이 사실 바나나였냐는 팬들의 분노나, 바나나 우유 광고송인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어처구니없었다는 성토를 잠시 뒤로 하고 들어보면, 일단 노래 자체는 기존 오마이걸의 기조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전자음이 다소 두드러지긴 하지만 양념 정도로 넘길 수 있고, 절정부의 트랜스함은 더 워쇼스키즈의 〈스피드 레이서〉를 보듯 잊혀지지 않을 정도. 이모저모 이번 EP가 30~40대 남성의 문화적 선호에 맞춰져 있는 것은 아마 이 결과물을 만들어낸 이들이 30~40대의 남성이기 때문이겠지...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가 오마이걸이 만들어낸 최고의 콘텐츠라 말하긴 어렵겠지만, 평자 개인적으로는 ‘Windy Day’와 ‘컬러링북’ 사이에는 놓을 만했다. 근데 바나나 알러지를 일으키지 않는(=바나나가 안 들어간) 바나나 우유를 칭송하는 노래면 바나나 우유 광고송으로는 부적합한 거 아닌가?



더보이즈
The Start
크래커 엔터테인먼트
2018년 4월 3일

   
놓치기 아까운 음반

느긋하게 분위기를 달구는 인트로 ‘The Start’에서, 청량한 에너지가 탄산처럼 팡팡 터지는 타이틀 ‘Giddy Up’으로 넘어갈 즈음만 해도 사실 조금 심드렁했다. 아니, 심드렁한 척했다고 해야 정확하겠다. 이어지는 ‘Text Me Back’에서 두 손 두 발 다 든 채 졌다, 순순히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90년대 영미권 보이밴드를 레퍼런스 삼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데, 바로 지금 2018년에 그러한 팀들이 데뷔했다면 이런 곡을 발표했을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상상까지 들게 한다. “내 마음 읽었다면 바로 답장 주지 않을래?”(‘Text Me Back’)하며 한껏 해사하게 웃다가, 차분하게 마음을 고백하는 ‘Just U’와 고뇌의 표정을 보여주는 ‘Back 2 U’, 약간의 비장함이 느껴지는 ‘Get It’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꽤나 매끄럽다. 퍼포먼스에서도 신인 아이돌 특유의 좋은 기세와 에너지 같은 것이 보이는데, 다소 부족한 듯 느껴지는 멤버 개개인의 수행력은 차차 보완해야 할 점이라 생각된다. (데뷔작은 아니지만) 앨범 제목처럼 산뜻하고 신선한, 소년들의 새로운 시작이라 하겠다.

놓치기 아까운 음반

공격적으로 잘 다져진 비트와 예쁜 멜로디가 팝적인 느낌을 물씬 낸다. 00년경의 프로그레시브 하우스를 연상시키는 인트로 ‘The Start’처럼 크고 넓고 축축한 공간감도 이에 일조한다. 그런 상황에서 대인원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것이 제법 근사한데, ‘Giddy Up’의 프리코러스처럼 개개인이 강하게 끌고 나가야 할 지점에서는 케이팝 특유의 ‘찌르르한 맛’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Text Me Back’이 유난히 빛나는 것도 그래서인데, 비트가 몰아쳐 주는 가운데 멤버들은 예쁜 멜로디를 전통적 의미로 가창함으로써 완성되는 곡이기 때문이다. 아쉬움이 없는 음반은 아니지만 이 한 곡으로도 충분하다.

모든 알람과 느낌표를 모아 힘차게 달려간다. 뒤에서 느긋하게 빠져 있다가 후렴에서야 전면에 나서는 기타 리프는 청량하고 맑은 분위기를 내뿜는다. ‘너를 구하러 가는 백마 탄 왕자님’ 혹은 튀어 오르는 청춘의 맑게 갠 얼굴을 ‘Giddy Up’을 위시로 계속 선보인다. 플레이리스트 내내 비슷비슷한 질감의 청량함에 물릴 즈음 트랩 비트로 환기하는 ‘Get It’이 인상적이다. “더더 새로운 게 많아”라는데 믿어도 될까. 남자 아이돌의 정공법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다음 걸음을 믿어보고 싶다.

놓치기 아까운 음반

들으면서 먼저 떠오른 생각은 ‘아, 멤버가 많구나.’ 샤이니의 경우처럼 훵키한 필링을 유지하려면 멤버가 많다는 건 사실 좋은 점은 아닌데, 아마 개개인의 멋이 살아나기 쉽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타이틀 ‘Giddy Up’이 지향한 바에 비해 그다지 신나지 않는 것은 아마 이런 이유가 있기 때문이리라. 수록곡 중에선 ‘Text Me Back’이 가장 맘에 들었는데, 제대로 레트로한 팝의 감성을 구현해냈기 때문이다. 최근 “Text Me”라는 문구가 여기저기 등장하는 것에 비추어 가사가 다소 진부하긴 하다만, 후반부 물방울 소리에서 묻어 나오는 섹시함은 필히 들어볼 만하다. 순수하게 이 곡 하나로 ‘Discovery!’를 수여함.

데뷔 앨범부터 이번 앨범까지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정서를 보자면, 장르를 막론한 그 어떤 서브컬처에도 전혀 취미가 없던 사람이 ‘대충 남자 아이돌은 이런 거 아닌가’하고 기획하면 이런 게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든다. 이것을 요약해 보통은 ‘머글 감성’이라 부른다. 아이돌을 꾸준히 좋아해 온 사람들이 ‘그래, 여기선 이거지!’하고 으레 좋아해 오던 어떤 습관들에 대한 파악이 전혀 되어있지 않다는 인상. 앨범의 흐름 또한 전반부에선 다소 예스러운 듯하다가 ‘Just U’를 기점으로 시대를 20년 정도 건너뛰어 버리는데, 아무리 아이돌 팬들이 음악만을 소비하진 않는다는 합의가 있다고 해도 이 정도의 섬세도 기대할 수 없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 많은 인원 중에 ‘키 플레이어’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이 팀이 풀어야 할 숙제.



정진운
널 잊고 봄
미스틱 엔터테인먼트
2018년 4월 3일

   

전반적으로 삐걱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전작에 비해 무척이나 편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이다. 컬리지록 무드의 어쿠스틱한 사운드에 담백한 멜로디, 상실감을 담담하게 담아낸 가사를 읊조리듯 노래하는 모습이 드디어 맞는 옷을 찾아 입은 듯해 반갑다. 편곡에서 갸우뚱해지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로커 정진운’, ‘싱어송라이터 정진운’으로서의 새로운 시도라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성공적이지 않았나 싶다.

앞부분만 듣고는 장범준인 줄 알고 아티스트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몽글몽글한 기타 사운드와 나직한 보컬, 그리고 차분한 악기 소리들을, 봄기운을 해치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쌓아간다. 잘 다져진 기본기와 ‘짬’이 있으면 무엇을 해도 무난히 소화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P 에디션
Stress Remix
IMMABB
2018년 4월 3일

  

원곡의 ‘외국인 노래자랑’ 느낌은 가사의 발음과 멜로디 리듬의 조합, 단어와 발성의 조합이 유난하기 때문이었다. 패러디의 대상이 한국어인 듯해 보일 정도로. 흠결로 치부할 바는 아니지만 그것이 EXP 에디션의 ‘뾰족한 부분’이 되기에는 다소 밋밋했다. 빅룸 스타일 언저리로 리믹스하면서 보컬은 루프처럼 사용되는데, ‘낯선 발음의 목소리 샘플’은 리믹스 컬처에서 클리셰기에 더 무난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다소 피상적으로 케이팝을 담아낸 멜로디 또한 보컬 루프로서는 썩 아쉬움이 없다. 곡은 많은 요소가 쏟아져 들어갔지만 짜임새가 나쁘지 않고 기세가 좋아 산만하기보다는 즐겁게 들을 수 있는 트랙. 하지만 멜론은 비트포트가 아니니 팬 서비스로 이해함이 옳겠다. EXP 에디션만이 겨냥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를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 이 트랙이 검토점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

아무리 봐도 농담이나, 심하게 말하면 조롱이라 생각되었던 EXP 에디션의 ‘Stress’를 리믹스한 디지털 싱글. 리믹스라 그런지 나름 또박또박 발음한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한국어가 더욱 뭉개져서 알아듣기 어렵다. 강유미가 하는 일본어 수준이라고 해야 되나... 대신 음악적인 성취도는 한층 올라갔는데, 일단 ‘그냥 양산형 아이돌의 노래겠거니’하고 흘려들었던 원곡에 강렬함이 더해졌다. 사실 이쯤 되면 단순히 연구나 장난의 일환으로 보긴 어려울 정도로 곡에 이들의 진지함이 묻어나지만, 이 정도의 평도 아이돌로지니까 게재 가능한 거란 생각도 동시에 든다. 오, 우리는 왜 아이돌로지를 만든 거지?



위너
EVERYD4Y
YG 엔터테인먼트
2018년 4월 4일

   

작년의 히트곡들과 맞붙여 놓으면 언뜻 아이콘의 성향으로 다시 접근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소속사의 전략적 필요- 블랙핑크나 ‘Really Really’의 ‘팝송 노선’ 같은-를 떠나 생각하면 YG의 레거시와 이를 섬세하게 배반하는 구석들의 병립이 눈에 띈다. 이를테면 ‘애 걔’는 YG식의 발라드처럼 들리다가도 YG에서 들어볼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나아간다. ‘Air’나 ‘Special Night’도 작년의 위너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지만 앨범의 색조와 교묘히 맞물리면서 전혀 다른 기조를 선보인다. YG의 새 세대가 열린다면 바로 지금이 아닌가 하는 기대를 갖게 하는 앨범이다. 이 조심스러운 대결의식에 작은 지지를 보낸다. 남성상에 대한 리뉴얼 역시 고대하면서.

20대 남성 화자의 끓는 듯한 로맨스와 일상이 돋보이는 위너의 정규 2집이다.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 팝적인 접근은 “ㄱㄱ”, “ㅇㅇ” 같은 초성과 구어체 가사를 통해 흥미롭게 들린다. 철렁철렁한 허슬은 Mino에게 많이 빚진 듯한데, Mino의 솔로곡 ‘손만 잡고 자자’를 들으면서 느낌표가 켜졌다. “남자의 본능” 운운하는 가사를 삼키고 듣는다면 귀엽고 섹시한 사내의 내적갈등을 들을 수 있으니 추천한다. 어쩌면 지루한 ‘하하하쏭’ 같은 ‘La La’를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이유는 이처럼 거리낌 없는 젊은이의 속내 때문일지도 모른다. 종종 한국식 발라드의 터치가 돋보이는 케이팝 트랙은 이 앨범이 가요와 월드뮤직에 한 번씩 담금질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남자의 뜨거운 사랑을 표현하기에 부족한 것 같은 앨범의 통일성을 애매하게 흔드는 것 같아 아쉽다. 그럼에도 휘청이는 듯한 ‘사치’ 등 빛나는 트랙이 있어 재미있는 앨범이다.

위너가 잘하는 것을 위너가 하고 있다, 이전의 곡보다는 더 느려졌다, 솔직히 타이틀만 들으면 이게 언제 발매한 건지, 위넌지 아이콘인지도 헷갈린다, 이런 이야기들을 늘어놓기 쉽지만 앨범 전체로 봤을 땐 충만함을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인프라의 럭셔리함 탓인지 사운드 자체가 뿜어내는 힘은 해외 유수의 음반 못지않으며, 곡 전반이 일정 퀄리티 이상을 유지한다. 딱 ‘이거다’ 싶은 곡이 없어서 굳이 ‘Pick!’을 부여하진 않았지만, 이 음반을 계속 듣고 나서 한 달 뒤의 평자가 내릴 평가는 지금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시간이 좀 더 지나야 훨씬 긍정적인 평을 받을 앨범.

케이팝이 월드뮤직과의 동기화를 이루면서 동시에 어떻게 차별화되고 있는지 누군가 묻는다면 그 예시로 들려줄 수 있을 좋은 레퍼런스. 2010년대 후반에 유행하고 있는 가장 익숙한 소리들이 모여있는데, 동시에 케이팝에서만 찾을 수 있는 특징들이 불쑥 나타날 때마다 생경하기보단 차라리 신기하고 흥미롭다. 이를테면, 솔로를 제외한 모든 트랙에서 칼같이 4명 멤버 전원을 위해 일정한 비율로 구획된 보컬 파트라든가, 굳이 포메이션을 맞춰 소화하는 군무 구간이라든가, 음악에 비해 지나치게 패셔너블한 수트 같은 것들.



YDPP
Love It Live It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브랜뉴뮤직
2018년 4월 5일

   

시작부터 80년대 ‘롤러장’의 공기가 훅 끼쳐온다. 신스를 전면적으로 배치한 레트로 사운드가 인상적이지만, 상대적으로 흐릿한 인상의 멜로디에 평이한 후렴구, 단조로운 곡 구조 탓에 무언가 ‘감칠맛’이 부족하게 느껴져 아쉽다. 팬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영동포팡’ 조합이 성사되었다는 점이 큰 의의라고 하면 아무래도 좋은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펩시는 캠페인송을 잘 뽑는 역사가 있어온 브랜드인데, 이번에도 역시 그저 CM 정도로 소비되기엔 아까운 싱글을 뽑아냈다. 워너원이나 JBJ와 비교해 이 유닛이 특별히 부족한 점을 찾을 수 없다. 딱 하나, 메인 댄서가 없다는 점 정도?



배드키즈
딱하루
Zoo 엔터테인먼트
2018년 4월 6일

   

자꾸만 과거를 소환해서 미안하지만, ‘귓방망이’의 충격이 여간한 것이 아니었기에 처음 곡을 들었을 때 (방향 전환을 시도하기 시작한 지 꽤 됐음에도) ‘이젠 꽤 멀쩡한(?) 노래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만 것이 사실이다. 또 흔한 트로피컬이지만, 화한 청량감으로 퍼지는 사운드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멤버들의 수행력 역시 큰 부족함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정말 문제 삼고 싶은 것은 뮤직비디오인데, 멤버들은 정말이지 ‘열일’하는데 아무리 좋게 봐줘도 대놓고 만든 ‘노래방 영상’으로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아무리 저예산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정말 최선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묻고 싶다. 이게 정말 최선이었어요?

멤버들의 들고 나감이 공무원 시험 스터디 그룹을 연상시킬 정도로 현란했던 배드키즈의 디지털 싱글. 활동 초반의 강렬함은 사라진 지 오래, ‘딱하루’는 흡사 성숙해진 이들을 상징하는 노래인 듯하다. 퀄리티로는 누구도 흠을 잡을 수 없는 양질의 노래이지만 이들만의 컬러 또한 약해졌다. 노래를 반복해 들으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대중은, 그리고 나는 배드키즈에게 무엇을 원했던 걸까?



박보람
말려줘
더블킥 엔터테인먼트
2018년 4월 6일

   

사실 곡 자체는 크게 새로울 것이 없다. 몹시 납작하게 표현하자면 박보람이 이전에 비슷하게 시도한 바 있는 흔한 ‘이지 리스닝’ 계열의 곡인데, 주목하고 싶은 것은 가사다. 짝사랑이라는 소재를 다룰 때 보통은 독백의 형식이거나 짝사랑하는 상대를 상정하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다소 특이하게도 동성의 ‘여사친’과 술잔을 기울이며 ‘너무 보고 싶어서 술김에 고백할 것 같으니 제발 말려 달라’는 내용을 주정처럼 칭얼대고 있다. 자칫 청승으로 빠지기 쉬운 서사를 산뜻하고 담백하게 풀어낸 것이 제법 신선하긴 하지만, 피처링이 굳이 필요했는지에 대해서는 약간 의문이 남는다.



New Heroes
SM 엔터테인먼트
2018년 4월 6일

   

단 한 곡이지만, SM에서 텐이라는 아티스트에게 걸고 있는 어떠한 기대치 같은 것이 엿보이는 듯하다. 아직은 ‘궁예’에 지나지 않는 것이긴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나올 것이라 예상되는 솔로작에 대한 리트머스 내지는 전조 같기도 하다. 차라리 독립 예술 영화를 한 편 본 것 같은 화면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소품을 이용해 프리스타일로 춤을 추는 텐을 보고 있으면 알 수 없는 경외감마저 느껴진다. 그의 나이나 연차 등을 고려했을 때, 본격적인 결과물이 어떨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즐겁게 기다리고 싶다.

SM식의 탁월한 팝이구나, 하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보컬이 텐이라면 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사실 노래 자체에서 어떤 감흥을 찾아내기는 어렵지만 뮤직비디오를 보면 비주얼의 나열과 텐의 몸짓으로 설득되는, SM이 가장 잘하는 SMP의 2018년형을 확인할 수 있다. 스테이션 시즌 2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데서 오는 자신감은 그가 바로 SM의 새로운 영웅이라고 역설하는 것처럼 보인다. NCT 중에서 ‘뭔가’가 있는 루키인 텐이 인상적인 싱글.

다소 교과서적인 슬로건 사이에서 춤추는 텐의 퍼포먼스가 약간의 괴리를 만들기는 하지만, 그만큼 댄서로서 텐의 서사가 잘 녹아있는 싱글이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개인적인 취향까지 반영하자면, SM 레이블 전체 역사에서 슈퍼주니어 은혁 이후로 가장 춤을 잘 추는 멤버 아닐지. 언젠가 솔로 앨범이 나온다면 가장 기대될 멤버.



브로맨스
오 나의 계절
RBW
2018년 4월 6일

  

어쿠스틱 기타가 중심이 되어 화사하게 부르는 노래들이 넘쳐나는 시즌. 다소 역설적이지만, 이들의 프로덕션이 어쩔 수 없이 간직한 ‘애절함’에 대한 애착이 차별화를 이룬다. 애절하기에 진솔한, 그래서 로맨틱한 감성은, 곡의 무대가 재현하려다가 차마 한 걸음 물러서고 마는 90년대 아카펠라 그룹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멜로디가 아주 뻔하게 흐르려 할 때마다, 가사의 글자 수 때문이라는 듯이 충격적이진 않은 방향전환을 이루곤 하는데, 이 역시 곡을 덜 뻔하게 만들어준다. 나쁘지 않은 이지리스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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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zanzy

    오마이걸이 쌓아온 모든 것이 한 번에 무너진 느낌이라 충격적이었는데 평이 참 속 시원하네요 늘 잘읽고있습니다

  • exid는 tvxq 때와 마찬가지로 유제상님 의견에 동감. 왜 레트로를 하는지 설득력이 없으며 재해석이 아닌 재현에 그친 것이 아닌지. 물론, 멤버들은 충분히 잘해주고 있습니다만.

    펜타곤의 경우 수록곡은 흥미를 못 느끼겠습니다만, 타이틀곡의 매력이 그것을 상쇄하기에 충분. 여러모로 큐브가 방향을 잘 잡아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하는.

    더보이즈는 스트레이키즈 때와 마찬가지로 조성민님의 의견에 절반 정도 동의. 데뷔앨범은 Jaden Jeong이 a&r을 맡았음에도 재미가 없더군요. 이번에도 퀄리티가 있는 트랙으로 채운 건 알겠는데 피상적으로 다가와요. 마지막 트랙은 좋게 들었어요. 앞 트랙들의 색깔과는 다른.

    Black on Black에서 저지클럽비트에 텐의 독무는 무언가더군요.

  • 바알원의 첫번째 문제는 곡 자체의 문제라 생각. 어쩌면 곡이 별로라서 묻힌 게 다행일 수도

  • Pingback: [Trans] Idology Review on WNNER’s 2nd Album ‘EVERYD4Y’ – W's InnerCir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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