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노래들이 속속들이 등장하는 3월 초 신곡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보이스퍼, 솔지하니, 혜이니, 샤넌, 지민, 크나큰, 에릭남 & 웬디, 머큐리, 빌리언, 스누퍼, 미스에스, 이하이, 땡큐, JJCC, 피에스타, 양요섭 &리차드 파커스를 다룬다.
돌돌말링: 아주 오랜만에 보컬 화성을 전면에 내세운 보이그룹이 나왔다. 아마도 90년대 보이즈투멘 등의 영향을 받은 이들의 제작과 기획이 아닐까 짐작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5tion, 2집 이후의 테이크(Take), 극초반 시기의 동방신기 등 이런 콘셉트의 남돌이 없지 않았고, 다들 당시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던 걸 생각하면 보이스퍼 역시 안전한 포지션으로 안전한 출발을 했다는 인상이다. 아직은 좀 무미한 느낌이지만,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니 차차 더해질 색깔과 양념을 기대해보겠다.
유제상: 봄맞이로 등장한 남성 4인조 그룹. 계절에 어울리는 아카펠라 콘셉트를 들고 나왔는데 어색하지 않고 보기 좋다. 하나의 곡만으로 판단하긴 어렵지만 진중함 같은 것도 느껴지고. 곡 자체는 완전히 평자의 취향 밖에 있고 다소 모범생 분위기라 심심하지만, 이 정도의 퀄리티라면 인정.
조성민: '보컬 그룹'을 표방하며 데뷔한 것치고는 멤버들 음색과 창법이 너무 밋밋하고 개성이 없어서 딱히 흥미로운 '들을 거리'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곡은 근래에 보기 드물게 정말 잘 만들어진 발라드인데, 곡이 가진 특장점들을 보컬들이 하나도 못 살려서 너무나 안타까울 따름이다.
조성민: 이미 '다소니'라는 유닛으로 활동한 바 있었던 솔지와 하니가 발표한 새로운 듀엣곡. 프로젝트 디지털 싱글이라지만, 확실히 여타 정규 작품들에 비해 힘이 빠져있는 것이 상당히 신경 쓰인다. 다비치의 전성기 시절이 떠오를 정도로 진부한 곡에, EXID 때와 딱히 크게 다르지 않은 솔지와 하니의 보컬, 그리고 백아연의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가 떠오르는 뮤직비디오까지, 프로젝트의 첫 주자치곤 너무 식상한 작품이 나와버려서, 전체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게 하고 있다.
미묘: 아프리카 TV 방송을 통해 시청자 참여로 만들어졌다는 더블 타이틀 싱글이다. '참여'의 구체적인 방식은 알 수 없지만, 연주와 녹음, 믹스에 전문 인력 참여가 불가결하다는 걸 감안하면 보도자료에서처럼 "기존의 막대한 비용이 드는 음원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는 의미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대중가수와 홍대씬의 작업"이란 표현도 등장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혜이니의 '오빠 맘마'가 음식을 소재로 한다는 것까지 '홍대 여신'의 철 지난 피상성을 가져온다. 인터넷 방송으로 만들어졌으니 거기에 여혐-프렌들리-웹-컬처의 향기를 얹고, 이 모든 것을 혜이니의 준-아이돌적 애교와 상큼함으로 마무리함으로써 세 가지 상이한 문화에 대한 기획자의 성의 없는 관찰을 투명하게 전시한다. 이어지는 샤넌의 '눈물샘'은 발라드 트랙이기도 하고 뮤직비디오도 잔재주를 별로 부리지 않아 훨씬 안정적이다. 다만 샤넌이 자신의 음반에서 열심히 피해갔던 2000년대 초반 R&B의 향취는 이 곡에서 랩이 등장하는 순간 봇물처럼 쏟아진다. 시도는 좋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입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미묘: 이 곡에서는 듀엣의 주고받음도, 앙상블도 살아나지 않는다. 그건 나쁘지 않다. 이 곡은 아이돌 두 사람을 엮어 서사를 보여주기 위한 곡으로서, 전통적인 듀엣 곡이 듀오의 목소리를 활용하는 공식을 따를 필요가 없다. 오히려, 마치 영화에서 두 주인공의 대사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듯, 불균형하게 오고 가는 접근이 흥미롭다. 거기에 'Call Me Baby'와 'Bae Bae'를 연상해 달라는 듯한 영어 제목 'Call Me Bae'는 정말 여러 가지로 "이것이 K다!"를 외친다. 그런데 곡의 정서와 태도는 공감과 관음 중 어느 쪽을 노린 것인지 고민하게 하는데, 내가 과연 몇 살이었다면 이 곡에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애초에 목표가 관음이었다고 한다면 내가 단숨에 고통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당돌하고 적극적인 여자 캐릭터가 스킨십을 통해 진도를 나가려 하고, 남자는 상대가 왜 이러는지조차 모르겠다며 도망다니는 모습은 하렘물 소년 만화를 그대로 가져온다. 차이가 있다면 한꺼풀 덧씌운 것이 "야하고 싶어"라는 모티프인데, 오빠를 "야"라고 부르는 것과 '야한' 것을 아재 개그로 이어 붙인다. 뮤직비디오의 마지막이 "야하고 싶어"를 다양하게 리허설하는 지민(마침 음악으론 시우민의 파트만 깔린다.)을 전시하는 데 이르면, 하긴 그런 음험한 '아저씨즘' 역시 케이팝의 정수가 아닌가 하게 된다. 지민의 당돌한 표정과 시우민의 난처한 표정이 곡의 내용에 어울리기는 하나, 매력적인 이 두 사람이 그런 표정을 원래 갖고 있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이 곡을 소비할 사람들 중에 세 명 정도는 있었을까?
오요: 185cm라는 평균신장을 내세우는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돋보이는 것은 멤버들의 목소리다. 근래에 등장한 여타 아이돌들과 달리 멤버들의 목소리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개성과 정제된 톤을 갖고 있다는 점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러나 탁월한 보컬을 잘 드러낼 수 있었을 후렴구에서 보컬 트랙들이 처참히 뭉개지고 말았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기술적 실수에도 불구하고 크나큰의 보컬은 분명 주목할 만하기에 이번 회차 Discovery로 선정한다.
유제상: 전술한 보이스퍼와 마찬가지로 이쪽도 데뷔 싱글. 남성 5인조 그룹으로 봄기운에 어울리긴 하지만 노래 자체는 아이돌의 전형에 가깝게 맞춰져 있다. 타이틀 'KNOCK'은 그룹 활동의 시작을 맞이하여 외치는 일종의 포부 같은 것을 담고 있는데 풋풋하면서 싱그러운 느낌. 여담이지만 그룹 이름에 걸맞게 멤버들이 크다. 네이버에 기록된 생체 정보에 따르면 가장 작은 멤버가 183cm... 적어도 명칭에 대한 직관적인 근거가 있는 셈이니 그룹 이름 희한하다고 비난하진 못하겠네.
조성민: 이 묘한 촌스러움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생각해보았는데, 앨범 소개 문구에 "마치 영화 음악을 연상시키는 음악"이라고 되어 있어서 무릎을 쳤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인기 남성 아이돌'이 등장해야 할 때는 한껏 힘을 준 분장에 꽤나 신경 쓴 군무를 배경으로 이런 곡이 흐르곤 한다. 일종의 '남자 아이돌' 장르 공식인 셈이다. 좋게 해석하자면 남자 아이돌의 성공식을 따른 것이라 볼 수 있겠지만, 쌓아온 커리어가 없는 신인 아이돌을 좋게만 보아줄 청자들이 많을지 의문이다.
미묘: 매우 평이하게 예쁜, 어쿠스틱 기타의 팝 넘버다. 사실 이 곡에서 특이한 부분이라고는 거의 없다. 그저 이런 류의 곡이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공식들을 모범생처럼 따르는 곡이다. 듀엣곡이 갖춰야 할 정형성 역시 빈틈 하나 없이 충실하고, 특히 후반의 도톰한 백업보컬 질감으로 고급스럽게 다져진다. 봄 노래로서 그것이면 족하다는 듯이. 흘려야 할 부분과 짚어야 할 부분을 잘 살리는 두 사람의 보컬이, 스냅샷 같이 그저 예쁜 곡을 구성한다. 웃음 섞인 웬디의 목소리가 풍부한 표정을 눈에 선하게 그려지도록 하는 것도 기분 좋다.
조성민: 이 곡은 의도적으로 북미권의 팝을 연상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웬디와 에릭남이 마치 미국 유학 중인 캠퍼스 커플처럼 연출된 뮤직비디오를 보면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어차피 두 사람 모두 네이티브에 가까운 영어 실력을 갖춘바, 차라리 영어 버전 트랙을 추가했어도 어색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느껴질 정도다. 바꿔 말하자면, 이 곡이 굳이 한국어로 불려지고 있는 것이 너무 어색하다. 두 사람의 보컬 톤이 전형적인 한국 가요 보컬들과 다소 다른 질감을 갖고 있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케이팝과 팝의 장르적 차이가 단지 언어에만 기인하지는 않는다는 방증.
미묘: 멤버의 성 정체성 외에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출신들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그런 '실력'이 곡과 뮤직비디오에서 충분히 드러나고 있는가는 조금 별개의 이야기인 듯하지만 말이다. 다소 집착적으로 느껴지는 섹슈얼한 가사와, 여백이 조금 너무 많은 보컬 등이, EDM이라고는 하지만 폭발하기보다 플로어에서 흘러가기 위해 만들어진 트랙과 더불어 꽤나 이질감을 준다. 그런 스타일의 음악적 가치 자체를 폄하할 일은 아니나, 보컬의 음색 외의 요소가 신선하게 다가오기에는 아무래도 조금 엉성하다 보니 케이팝 걸그룹 곡에 대한 이해가 좀 더 높았다면 하는 아쉬움 쪽으로 기운다.
유제상: 트랜스젠더로 대중에게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최한빛이 멤버로 포함된 걸그룹 머큐리의 데뷔 싱글. 최한빛의 중성적인 보컬 톤을 적절하게 써서 듣는 이의 흥미를 돋우지만 좋은 점은 그것뿐. 계속 들으면 예스러운 멜로디와 비트, 당당한 여자를 소극적인 테두리 안에서 외치는 가사에 질려버린다. 여담이지만 남자의 존재를 굳이 의식하면서 '니들이 뭔데 나를 평가해'라고 외치는 가사는 별로 달갑지 않다. 의식마저 안 했으면 싶지만, 이건 평자가 남자니까 함부로 하는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여튼 보컬 톤이 주는 재미 외에 좋게 평가할 부분이 없어서 유감이다.
미묘: 의외로 재미난 곡이다. 특히 가사를 흘려내지 않고 끊어가면서 리듬감을 살리는 "있잖아" 같은 부분이 그렇다. 훵크 기조의 사운드로 구성된 전개부에서 그런 요소들이 얄미운 분위기를 잘 살려낸다. 후렴이 친숙하기보다는 식상한 느낌을 주는 점이 아쉬운데, 기왕 곡의 표정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었다면 후렴에서 사운드 구성 역시 차라리 좀 더 댄스 가요풍으로 전환한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유제상: 데뷔한지도 제법 되었는데 묘하게 인상이 흐린 빌리언의 새 싱글. 타이틀 '있잖아'의 경우 긴박한 전주가 듣는 이로 하여금 기대감을 갖게 하지만, 노래 부분, 특히 후렴의 멜로디 파트가 지나치게 통속적이면서도 2000년대 초반(특히 디바와 같은 그룹)을 연상시킬 정도로 낡아 몸을 너무 사린 것이 아닌가 싶다. 아이돌 음악 중 EDM을 도입한 곡 상당수가 비슷한 문제에 봉착하곤 하지만, 후렴구의 통속성만은 피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김윤하: 〈후레쉬맨〉이나 〈우뢰매〉를 떠오르게 하는 오색찬란 스타일링에 VHS 영상에서 착안한 빈티지한 화면. 타이틀곡 '지켜줄게'의 뮤직비디오는 이 앨범을 통해 스누퍼가 지향하고 있는 모든 것이다. 스윗튠이 인피니트의 'Reflex'("Season 2")로 일찍이 실험한 바 있는 이 '복고풍 너머 복고'는 우리 눈앞에 스트리트 룩을 입은 소방차를 능숙히 소환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시대에 맞지도, 향수를 불러일으키지도 못한 허망한 메아리는 허공으로 산산이 흩어지고, 꾸준히 지적되고 있는 부족한 보컬 실력은 마지막 곡 'U'에서 뼈저리게 재확인된다. 기존의 촌스러움과 애틋함의 아슬아슬한 균형이 살아 있는 수록곡 '4차원의 천사'가 못내 아쉽다.
오요: 전곡을 스윗튠이 맡았다. 인피니트의 최전성기를 함께했던 '그때 그 스윗튠'의 사운드에 충실하다. 문제는 타이틀 곡 '지켜줄게(Platonic Love)' 뿐 아니라 다른 수록곡들까지 너무 노골적으로 인피니트의 곡들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결정적으로 인피니트에게 있었던 일종의 '뽕기'가 스누퍼 멤버들의 보컬과 랩에는 결여되어 있고 이는 치명적으로 곡 매력을 반감시킨다. 스누퍼만의 매력이 무엇인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유제상: 타이틀 '지켜줄게'는 노래도 그렇고 뮤직비디오도 그렇고 노골적으로 복고풍을 추구하는데, 사실 양쪽 다 때깔이 그다지 좋지 않다. 곡은 뉴키즈온더블록 풍인데 이들 특유의 그루브함이 빠져있고, 뮤직비디오는 (나쁜 의미로) 빈티지하다. 사실 복고가 단순한 과거의 모사가 아니라 동시대의 콘텐츠로 받아들여지려면 디테일한 면에서 세련됨을 숨기고 있어야 되는데(사실 원더걸스의 'I Feel You'가 이를 잘 보여주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무언가를 놓친 것 같다. 그렇다고 코믹함을 추구한 것은 아니기에 더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평자의 입장에서는 그냥 옛날 '같은' 느낌만 받고 간다.
조성민: 복고풍 아이돌팝으로 크게 히트한 바 있었던 어떤 제작자는 '요즘 애들도 이런 거 좋아할까' 하면서 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지켜줄게'가 만약 같은 의도로 제작되었다면, 이에 대해 '요즘 애들은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할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다. 뮤직비디오 후반부에 갑자기 수트 의상으로 화면이 반전되는 부분에 가서는 더더욱 도대체 이 곡의 어디에서 복고 팝의 매력을 느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전체 앨범을 들어보면 스윗튠이 최근에 프로듀스했던 보이그룹 중에서는 그나마 곡 소화력이 좋은 편에 속하는 듯한데, 스윗튠의 곡 자체가 원래 소화하기 어렵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 팀 역시 결국 '탈-스윗튠'의 과제를 하루빨리 풀어야 할 듯싶다.
유제상: 정신차리고 보니 2인조가 되어버린 미스에스의 새 싱글. 걸그룹치고는 여전히 랩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지만 그뿐. 노래 자체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심심하다. 잔여 멤버들에겐 나름 실력파의 이미지가 있는데 이를 좀 더 살려보는 게 어떨까나.
김윤하: 레트로 소울에 대한 타고난 이해는 보컬리스트 이하이를 지금의 위치까지 이끌어 온 가장 큰 원동력이다. 3년의 장고 끝에 선보인 "SEOULITE"는 그런 이하이의 매력이 빛바래지 않았음을 대중에게 안심시키는 동시에, 이 앨범이 그 목소리가 찾은 종착역이 아닌 긴 여정 위에 선 작품임을 부드럽게 설득한다. 정통 발라드에서 힙합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수록곡들은 '엄선되었다'는 단어를 절로 떠오르게 만들고, 위너의 송민호, Incredivle, DOK2 등 각 곡에 알맞은 피처링 선정도 부담 없다. 리듬과 '밀당을 하는' 이하이의 고혹적인 목소리가 돋보이는 'Official'을 놓치지 말 것.
조성민: 거의 잊어가고 있었는데, 거미가 원래 YG 소속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예전보다 좀 더 담백해진 이하이의 보컬은 딱 거미를 닮아있다. 그만큼 성숙해진 이하이는 이제 잘 만들어진 가요 음반 하나를 충분히 이끌어갈 역량을 가진 가수임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흥에 취해 제멋대로 뻗어나가던 보컬은 적절한 절제를 통해 깔끔하고 세련된 기교를 갖춘 보컬로 자리 잡았고,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성숙해서 스스로도 컨트롤하기 버거운 듯했던 음색은 점점 제 나이를 찾아가는 듯 편안히 느껴진다. 공백이 길었지만, 이 정도면 길었던 공백기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설득력이 있다 하겠다. 최근에 YG에서 나왔던 대형 레이블 특유의 '공장제 트랙'이 아닌 곡들로 채워져 있다는 점도 꽤나 반길 만하다.
유제상: 일단 걸그룹의 외형을 갖춘 자들이 부른 트로트 중에서는 가장 뽕끼가 센 곡이 아닌가 싶다. 다만 분명 멤버들의 목소리는 트로트의 그것이 아니고, 중간에 "호잇" 같은 소리가 심심찮게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오렌지 캬라멜이 업계에 미친 폐해가 만만찮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런 애매모호한 콘셉트의 그룹이 젊은 가요 프로도 나오고 성인 가요 프로나 〈전국노래자랑〉도 나오면서 영역만 한없이 확대하는 것 같은데, 이들도 그럴려나 하니 먹고 사는 일이라지만 좀 너무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튼 평자 입장에서 매력을 느낄 요인은 거의 없었다.
오요: 내가 알던 그 JJCC가 맞나 싶어 다른 뮤직비디오들까지 돌려보았다. '질러(Fire)'와 '어디야'에서 선보인 악동 이미지가 나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만큼 재미를 못 본 것인지 전략을 180도 선회하여 로맨틱한 연하남 콘셉트를 들고 나왔다. 파스텔 톤 의상에 파묻힌 멤버들은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 힘들며 (적어도 지난 곡들에선 멤버 개개인의 인상은 뚜렷했다) 그에 화답하듯 사운드조차 죄다 짓이겨져 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이라면 꽤나 곤란하다.
조성민: 그다지 주목받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 JJCC는 꽤 괜찮은 트랙들을 꾸준히 발표했었다. 그것들이 일관성이 없고 팀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가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게 안타깝지만, 그래도 곡이라든가 시도 자체는 항상 좋은 편이었다. 어쨌든 다양한 시도를 하기 때문에 한 번쯤은 이렇게 꽤 괜찮은 수작이 나오는 것이기도 하리라. 어쩐지 기합이 꽤 들어있는 보컬 사이로 트랙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신스 음과 기타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2011년의 인피니트가 떠오른다.
블럭: 트랙의 퀄리티나 앨범 구성 측면에서 전작들보다는 좋아진 감이 있지만, 굳이 아직도 섹시해야 하는 이유가 특별히 있었던 걸까? 성장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각 멤버가 가진 정체성이나 캐릭터는 여전히 죽는 감이 있다. 하지만 재이, 린지의 가능성을 좀 더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보컬로서의 역량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예능 출연의 중요성이 실감 나서 씁슬하면서도 아이러니하지만, 어쨌든 음악을 하는 피에스타는 여전히 기대하는 만큼 조금 아쉽다.
돌돌말링: 과거 피에스타가 가졌던 미덕이 여러 가지 있었다: 스포티하고 탄력적인 퍼포먼스, 재이를 필두로 멤버들의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서 오는 산뜻한 이미지, 예지의 랩 등. 레이블 분리와 함께 섹시 노선으로 급선회를 하며 예고되었던 일이긴 하지만, 이번 EP에서는 그 과거 미덕들이 대부분 사라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나마 긍정적인 시도를 해보는 예지의 랩은 좋게 들리지만, 그것 하나로 하드캐리 하기엔 'Mirror'라는 곡 자체에 너무 힘이 없다. 통속적인 멜로디는 중독성으로도 향수로도 연결되지 못하고, '하나 더'나 '짠해'에서 보여준 섹시 콘셉트를 설득하려는 노력도 없다. 결정적으로 이번 달에 출연한 〈주간 아이돌〉에서 말했듯, 안무가 너무 늦게 나와서인지 피에스타의 절대적 강점인 매끈한 퍼포먼스가 그만 어설퍼져 버렸다. 멤버들은 고군분투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더 안타깝다. EP의 제목은 "A Delicate Sense"라지만, 무엇을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건지 모호하기만 하다.
김윤하: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중인 리차드 파커스와 비스트 양요섭의 듀엣 프로젝트 "이야기"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안일함의 아련한 향기가 감싸고 있는 묘한 프로젝트다. 이젠 흔해진 인디 뮤지션과 아이돌 가수의 만남을 무척 이례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보도자료와 평이한 악곡, 물음표와 느낌표를 번갈아 떠올리게 하는 음반 커버도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프로젝트의 중심인 두 사람의 도통 붙지 않는 합이다. 리차드 파커스와 양요섭, 심지어 피처링의 노블레스까지, 노래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이 노래를 '함께' 부른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명확한 매력을 지닌 두 보컬리스트의 만남이 남긴 흔적치고는 너무나 희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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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plies on “1st Listen : 2016년 3월 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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