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1일~20일에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김성규, 식스밤, 레이샤, 걸스데이, 보아, 풍뎅이, 케이걸즈, 마이네임, 샤이니, 아이유, 백아연, 엔플라잉을 들어보았다.
미묘: Draft에도 썼지만 이 음반은 로커가 만든 댄스 가수 음반의 티를 숨기지 않는다. 그것이 'Alive'의 딱히 필요하진 않은 피치쉬프트와 오토튠 같이 조금 민망해지는 순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넬 음악을 미디로 '번역'한 것과 같은 양상이다. 그리고 그것이, 넬이 갖는 찬란함과 처연함의 매력을 솔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넬을 좋아하지 않는 나의 취향을 전제한다면 "넬을 들으면서 감동하는 나"에 대한 자괴감과, "울지 않으면 이런 매력이 있군" 하는 발견을 동시에 안긴다. 김성규가 넬의 '성공한 덕후'라고 한다면, 정말 여러 가지로 성공했다.
오요: 넬의 김종완이 전곡에 작사 및 작곡으로 참여하고 프로듀싱까지 맡은 음반. 넬을 보며 가수의 꿈을 키워왔다고 말하는 성규에겐 참으로 벅차고 뜻 깊은 음반일 테다. 다만 이 음반이 넬의 또 다른 음반으로 들리는 점은 아쉽다. 성규의 다음 음반은 청출어람이라 말할 수 있기를.
조성민: 김종완 솔로 앨범이 나온다면 이랬을까 싶은 앨범이 나왔다. 물론 넬의 골수 팬들이 듣기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겠으나, 아이돌은 물론이고 주류 가요 시장에서 이런 색채를 띤 앨범이 거의 없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달까. 언젠가부터 아이돌 솔로 앨범이라 하면 필수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조금 뜬금없게도) '자아 성찰에 골몰하는 청춘상'을 그리고 있는데, 그것이 자의식 과잉으로 넘어가 거부감을 일으키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그렇기에 앨범 타이틀이 "27"이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내심은 무척 큰 우려를 했음을 이제서야 고백해 본다. 김성규의 소속 팀인 인피니트의 가장 큰 미덕이란 언제나 '돌직구'보다는 완곡한 '은유'에 있었다고 보는데, 그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난 앨범이 바로 "27" 아닐까 싶다. 윤상의 'RE:나에게'(2014)에서도 성규는 스물여섯 청년이었지만 가사와 창법을 통해 '청년 시절'을 직유하고 있었다면, "27"의 성규는 갖고 있는 가장 다양한 보컬 톤을 선보이며 바로 지금의 '스물일곱의 성규'를 보다 입체적으로 은유했다. 앨범 가득 넘실대는 신스 음은 지금 이 순간 반짝이는 청춘을 그대로 표현해내고 있으며, 어딘가 간절해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는 나타나지 않은 가사는 뭇 청춘들이 흔히 가질 법한 막연한 불안감을 포괄하고 있다. 앨범 프로듀싱을 김종완에게 일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성규로서의 진정성이 묻어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리라.
미묘: 업템포의 디스코 하우스 스타일로, 한동안 그리 많이 만나기 어려웠던 높은 BPM을 기록한다. 멜로디는 쿨한 편이나 리듬에서 배어 나오는 '뽕끼'가, '뽕'의 정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그 '뽕끼'도 포함하여 모든 것이 명쾌하기에 '나이트 댄스'로서의 안정성을 확보한다. 다만 하의를 레깅스만 입은 걸그룹이란 것을 어찌 받아들이면 좋을지 다소 번민이 생긴다.
오요: 뮤직비디오라도 있었다면 나았을 텐데 소리만으로 3분 13초를 버티기란 쉽지 않다. 생생한 육성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조악한 믹싱 탓을 하기엔 이 곡이 가진 괴로움 포인트가 너무 많다.
유제상: 무려 데뷔가 201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식스밤의 두 번째 싱글. 네이버 검색을 통해 알 수 있었던 사실은 최초 6인조로 시작, 멤버가 한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 교체되어 지금의 4인조 걸그룹이 되었다는 것. 수록곡 'Step To Me'는 디스코 기조의 요란한 댄스 음악인데, 뿅뿅 소리가 다소 과장되게 들어가 있는 것이 리듬게임의 음악 같기도 하고 그렇다. 사실 퍼포먼스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크게 기억에 남지 않을 그런 싱글.
미묘: 그렇다. 빅신스의 유행 시기와는 별개로 이런 사운드는 일정한 효과를 담보한다. 취향을 떠나서 트랙만을 놓고 보면 딱히 큰 부족함 없이 만들어졌다. '노래'라는 음악 형식으로서도 특별히 나쁘지 않고, 나름 퍼포먼스에 대한 안배도 느껴진다. 일렉트로닉을 만들던 프로듀서를 데려와 케이팝 작곡을 맡긴 유수의 사례들 중에서는 꽤나 괜찮은 결과물이 아닌가 한다. 클럽도, 메인스트림도 아닌 지향점이라고 한다면 후렴도 대단히 참신하진 않지만 설득력 있는 편. 상대적으로 매우 엉성한 초반부의 보컬 작곡과 처리가 인상을 저해한다.
오요: 뮤직비디오라도 있었다면 나았을 텐데(2) 처음부터 곡이 끝날 때까지 지루하게 밀어붙이는 클럽튠은 귀의 피로만 더해줄 뿐이다.
유제상: 이쪽은 5인조의 여성그룹. 수록곡 'Turn Up The Music'은 기본적으로 클럽 뮤직을 표방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멜로디 파트의 분량이 적고 곡이 반복적인 구조로 되어 있어서 소구층은 확실할 듯. 작은 규모의 공연을 위주로 활동하는 그룹이라면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본다.
미묘: 상큼한 드라이브감으로 시원하게 흐르는 곡. 아이돌계가 자극 강한 방향으로 흐르다 보니 이런 곡이 타이틀로 채택되는 경우가 조금 드물어진 셈인데, 수록곡으로 삼기에는 타이틀로서의 선명함이 두드러지니 여러모로 좋은 기회라 하겠다. 훅에 해당하는 "Hello bubble bubble" 부분이 좀 덜 뻣뻣하게 연출됐더라면 좋았겠지만, 흠잡을 곳 없이 상쾌한 팝으로서 멤버들의 음색의 매력도 매우 잘 살려주고 있어 듣기 좋다. 걸스데이에게 '좀 더 달콤한 씨스타'와는 다른 노선을 기대하는 마음도 있으나, 번외작이기도 하니 잠시 잊고 즐겨도 좋을 것.
블럭: 미쟝센과 함께 한, 상업 용도의 이벤트성 싱글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좋은 퀄리티를 가지고 있다. 짧지만 간결한 곡의 길이와 구성도 좋고, 익숙한 예쁨이 가져오는 편안함을 잘 택한 것 같다. '기대해' 이전에 풀어내지 못했던 숙제를 지금 안정적으로 풀어내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별다른 자극적인 콘셉트나 극단적인 표현 없이도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팝 싱글은 어쩌면 이제 가능하지 않을까.
오요: 걸스데이 멤버들의 미모, 어느 정도 확고해진 캐릭터성, 개개인의 인지도 등에 확신을 갖고 밀어붙인 싱글이 아닐까. 즉, "걸스데이니까" 이런 곡도 잘 될 거라 생각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밋밋한 곡을 들려 보냈을 리가... 브리지라 할 수 있는 "Hello bubble bubble bubble / 나도 너를 너를 너를" 의 멜로디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그 이후 단조로운 후렴에서 맥이 탁 빠진다.
유제상: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잠시 동안의 공백을 딛고 분위기를 새로고침하는 좋은 싱글이다. 사실 개별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이제 예전 같은 걸스데이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광고물을 통해서나마 돌아오니 반갑기도 하고. 애즈원 느낌의 'Hello Bubble'은 상쾌한 멜로디가 즐겁지만 후렴구의 "버블 버블"은 조금 억지스럽기도 하다. 강요된 '팝팝' 분위기를 제외한다면 듣기 즐거운 싱글이라 하겠다.
미묘: 선명한 임팩트보다는 우아한 완결성과 품격이 두드러지는 음반으로, 그것은 강점이자 동시에 약점이 된다. 보아 작곡의 전작들도 그러했고, 이 음반의 보컬은 '보아 모창 가이드'라 해도 좋을 만큼 보아 보컬의 특징들을 뚜렷하게 강조하고 있어서, 그런 밋밋함 역시 "이것이 나다"라는 선언처럼 들린다. 퍼포머+송라이터+프로듀서로서의 보아의 정체성을 잡는 과정이라 할 수 있고, 그것에 밋밋함이 포함된다는 것은 용기 있는 선택이며, 그 결과물이 이처럼 웰메이드인 것은 대단한 성취가 아닐 수 없겠다. 아티스트로서의 훌륭한 행보라면, 향후에는 "이게 나인데?"에서 조금 더 나아간, 그 '밋밋함'이라는 아티스트 정체성에 대한 존재증명도 읽어볼 수 있길 기대한다.
블럭: 보아는 자신이 얼마나 우아하게 보일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우아함을 표현할 줄도 안다. 끊임없이 절제하면서도 흘리듯 터뜨리는 가운데 인상 깊었던 것은 수록된 곡이 담고 있는 결이다. 다양한 장르를 가져오는 듯하지만, 그것마저도 과하지 않게끔 표현한다. 이러한 부분을 통해 보아가 지금까지 지나온 결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착실하게 쌓아온 음악가로서의 노하우와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멋지게 나이 먹는 음악가의 모습을 봤다고 하면 너무 과찬일까.
유제상: 보아에게 뮤지션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한 앨범인 양 보도자료가 나가 있는데, 사실 평자는 보아가 이미 훌륭한 뮤지션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작사/작곡의 명의가 필요한 것이라면 이번 앨범과 같은 조치가 취해질 필요는 있겠다. 수록곡이 매우 균일하고 비슷비슷한 분위기를 내지만, 다소 지루한 점이 마이너스. 본인의 입김이 들어갔다는 전제하에서 본다면 확실히 일본에서 발매된 음반과 성격이 비슷하다. 아니, 그냥 일본 발매반을 한글화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 뭔가 칭찬할 내용이 많았는데 오히려 계속 듣다 보니 질려버려서 드라이한 평가밖에 할 수 없게 되었다. 유감이네. 덧붙여 이야기한다면, 개인적으로는 타이틀 'Kiss My Lips'보다 세 번째 곡 'Smash'를 추천한다.
조성민: 어째서인지 소녀 시절의 보아가 많이 떠오른다. '아시아의 별' 보아가 만든 앨범은, 그러나 춤 잘 추고 끼 많던 '소녀 가수' 보아 시절에 불렀던 노래들을 많이 닮아 있다. 물론 2000년대 초반보다 사운드는 훨씬 품격 있어졌고, 편곡도 분명 트렌디하지만, 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 멜로디라인 작법이 눈에 띈다. 기존 앨범에 비해 힘이 빠진 듯한 모습에 조금 갸웃하는 팬들도 있는 것 같지만, 보아 스스로 보아가 가장 사랑스러웠던 시절을 기억해내고 그 때의 자신의 모습을 '정체성'으로 여긴 듯해 오히려 반가운 지점도 있다. 물론 보아 특유의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가 없는 것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미묘: 전작 '배추보쌈'이 워낙 충격적이어서 두드러지지 않았는데, 꽤나 괜찮은 보컬을 선보인다. 과하게 무겁지 않고 적당히 소녀적이면서도 심지가 선명한 음색들이다. 마지막의 보컬 솔로에 백업을 얹은 질감도 제법 매력적이다. 보기보다 탄탄하게 만들어진 곡으로 팀파니와 기타 사운드가 나름 가슴 한켠을 찌릿하게 하는 구석도 있다. 그러나 전작의 강렬한 콘셉트와 대비하여 '갭모에'를 느끼기에는 지나친 중구난방인 듯하다. 이들의 활동 과정에서 이런 곡도 필요할 수 있겠으나, 프로덕션과 팀의 음악적 역량에 비해서는 차라리 괴악한 콘셉트만을 고수하는 것보다 더 낭비인 건 아닌지.
오요: 예전 투니버스 애니메이션 오프닝 곡풍이라 잠시 추억에 젖을 수 있어 좋았다. 멤버들의 목소리가 귀여우면서도 힘이 있어서 좀 더 매니악한 서브컬처(즉 아키하바라 지하 아이돌 계열 중에서도 좀 더 활기차고 씩씩한 응원가에 특화된 생계형 아이돌 정도)를 노려보면 좋을 것 같다.
유제상: 1. 풍뎅이는 여성 삼인조 그룹. 2013년에 데뷔해 6장의 미니앨범과 싱글을 발표했다. 2. 놀랍게도 멤버의 이름은 빨강, 파랑, 노랑. 이런 식의 작명이라면 평자는 필명을 유강사로 지어야 된다. 3. 수록곡 '역전'은 거북이 풍의 노래. 거북이 노래에서 터틀맨의 랩이 빠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4. 라이브를 보지 못했으니 단정은 금물이지만 멤버들의 솜씨가 상당히 좋아 보인다. 괴한 콘셉트가 오히려 이를 널리 알리는 데 방해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5. 조악한 뮤직비디오에 대해 한마디 하려 했으나 이만 줄인다.
조성민: 사뭇 비장하게 울리는 드럼 소리와 함께 여린 목소리로 외치는 파이팅 넘치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만화풍으로 연출된 뮤직비디오는 캠페인송과도 같은 곡의 분위기를 한껏 부각하고 있는데, 여기에 멤버들의 동요적인 창법까지 더해져 '아빠 힘내세요'를 연상케 한다. 듣는 이들이 힘을 얻었다면 그걸로 이 싱글의 의미는 충분한 것 같다.
미묘: 케이팝을 공부해 그 특징들을 버무린 듯한 곡들 중에서는 그나마 작곡 면에서 그럴듯한 후렴이 아닐까 한다. (브리지의 에너지 축적도 다른 부분에 비해 그럴듯한 편.) 다만 바로 그 후렴의 훅마저 다른 부분들과 마찬가지로, 사운드적으로 살아나지 못한다. 멤버들의 가창력의 문제라기보다는 믹스 과정에서 할 수 있는 무수한 일들을 하지 않고 넘어간 이유가 신경 쓰인다. 성의 부족과 불필요에 의한 선택 중 어느 쪽이 나은 것인지 말하기 어렵다.
오요: 뮤직비디오라도 있었다면 나았을 텐데(3) 세상에는 귀여운 (척하는) 목소리만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유제상: 1. 케이걸즈는 여성 사인조 그룹. 2013년에 데뷔해 한 해 한 장씩 3장의 싱글을 냈다. 2. 멤버 외양이 걸스데이를 연상시킨다. 긴 머리 누나, 오리 보컬, 동그란 래퍼, 혜리... 이들의 캐릭터까지 비슷한지는 확인불가. 3. 노래는 데뷔 초에 대부분의 걸그룹이 내는 그런 무엇. 굳이 특이점을 찾자면 메인이 되는 신스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4. 조악한 뮤직비디오에 대해 한마디 하려 했으나 이만 줄인다.
미묘: 지금까진 왜 이러지 못했나 싶다. '딱 말해'는 냉정한 색감의 멜로디가 훵키한 사운드와 함께 시원하게 흘러가면서도 중간중간 매력적으로 비틀어놔 찰기와 애교도 놓치지 않는다. 전작 '너무 very 막'의 뒤를 잇는 경박한 제목/훅 "딱 말해" 역시 멜로디라인에 찰떡처럼 달라붙어 있어 강한 인상을 남기고, 환상적 색감의 리프레인("오늘 잠이 오겠습니까")도 라인이며 호흡까지 완벽하다. 전작에서 아쉬움을 남긴 스튜디오에서의 약점 또한 매끄러운 마감으로 보완하고도 남음이 있으며, 비사이드로 수록된 상쾌한 '사랑해 My Girl'과 달콤한 레이드백 '잠을 너무 못 잤나봐' 역시 흔한 보이그룹 수록곡의 치졸함으로 빠지기 딱 좋은 장르임에도 세련되게 마무리한다. 곡들의 설득력이 충분하다 보니 딱히 필요는 없었을 듯한 인털류드 'Ooparts'마저, 흔한 보이그룹 인털류드들과는 조금 다른 공기를 선보여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훌륭한 싱글이다.
유제상: 이쪽은 성장형 아이돌이란 수식어를 붙여도 무방할 듯. 싱글마다 곡과 프로모션의 퀄리티가 올라가, 급기야 다른 상위권 그룹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인다. 싱글에 수록된 다섯 곡 모두 크게 흠잡을 데가 없으며, 특히 타이틀 '딱 말해'의 중독성은 상당하다. 상대적이고도 일시적인 남성그룹의 휴지기에 등장하여 적지 않은 인지도를 확보할 수 있을지 관심이 간다. "오늘 잠이 오겠습니까 아아아아..."
미묘: 케이팝의 중대한 특성이란, 청춘이란 대가를 지불하여 얻어내는 완벽성이라 할 수 있다. 영미권의 보이밴드에게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것인데, 그들에게서 '자연스러운' '스타의 기질'이 강조된다면 그 또한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 음반은 그런 완벽성이 성취된 뒤, '스타의 기질'과 청춘 역시 조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포스트'이다. 이 이야기는 향후 더 자세히 나눌 기회가 있을 것이다.
MRJ: 샤이니로서는 큰 변화를 시도한 곡이다.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준수하게 해내는 팀이다 보니 새로운 시도를 듣는 것이 신선하다. 샤이니의 음반이 나올 때마다 아크로바틱에 가까운 보컬 기교를 기대하게 되는데, 이 곡은 화려한 기교 없이 평이하면서도 탄탄한 보컬을 선보인다. 그런 이유에 트랙 전반적으로 느긋한 필링까지 있다 보니 처음 들을 때는 다소 무난하게 느껴지지만, 주의 깊게 들어 보면 음악적 디테일에 신경을 쓰는 섬세한 보컬에 금세 감탄이 나온다. 샤이니는 거의 뭐든지 우수하게 해내는 그룹이라 이번 변신도 반갑기만 하다. 예전 곡들을 더 선호하는 나로서도 무척 즐겁게 들은 곡. 나의 더 상세한 곡 분석과 리뷰는 다음의 비디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편집자 주 : 한국어 자막이 포함돼 있다.)
오요: 꽤나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아이돌이 '이제 뭘 더 보여주어야 하나'라는 질문에 안타까운 해답을 내놓으며 미끄러지는 모양새를 많이 보아오지 않았던가. "Odd"는 해답을 제시하는 음반은 아니다. 오히려 '뭘 꼭 보여주어야 하나?'라고 말하는 듯하다. '콘셉트' 없이도 샤이니는 충분히 좋은 음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여실히 느껴진다. '콘셉트'보다 사운드의 일관성이 더 돋보이는 음반으로, 훌륭한 칠웨이브 트랙 'Odd Eye'에 이어 'Love Sick'을 지나 딥하우스와 가요 사이에서 탁월하게 균형을 맞춘 'View'까지 초반부의 흐름이 매력적이다. 앨범마다 샤이니는 이전에 도달했던 어떤 지점을 돌파한다. 제발 오랫동안 아이돌 해주었으면 한다.
조성민: 앨범을 처음 듣고 '팬들이 참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팬들만 좋아할 앨범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동안 샤이니와 샤이니의 음악을 좋아했던 사람들이라면 얼마든지 편하게 즐길 수 있을 앨범이라는 의미다. SM 특유의 초국적성이 가장 돋보이는 앨범이라는 느낌도 있는데, 꼭 프로듀서 크레딧을 보지 않아도 가사 언어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한국 아이돌'이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 11 트랙의 풍성한 볼륨 안에서 샤이니가 기존에 해오던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라이트하고 팝적인 분위기를 일관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다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점을 꼽자면, 물론 샤이니 멤버들의 소화력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듣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지만, 전형적인 'SM 트랙'처럼 느껴지는 아우트로 '재연'이나 최근 SM에서 나온 앨범들에 거의 항상 등장한 듯한 '이별의 길'과 같은 R&B 발라드곡은 샤이니만의 독보적인 색채를 표현하는 데에 약간 방해가 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있다.
미묘: 한쪽 눈을 가리고 일루미나티의 상징 전시안을 보여주는 (더구나 겹쳐진 세 개의 손가락은 3을 상징하고 있다!) 커버아트가 무시무시하다. (농담이다.) 간결한 멜로디와 익숙한 패턴의 아르페지오가 익숙하게 결합하지만, 리듬을 살짝 바꾸거나 백업 보컬을 '짠'하고 (이것은 '짠'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삽입하고 멜로디라인을 아주 가볍게 퉁겨주면서, 듣는 재미와 사뿐한 느낌을 함께 가져간다. 마냥 산뜻한 '소녀 팝'이냐고 한다면, 유난히 가깝게 녹음된 보컬이 숨소리를 섞어가며 허스키와 미성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고, 관조적 어조가 다소 전통적 향취를 내는 가사의 심중도 제법 묵직하다. 메인 멜로디와 백업 보컬이 결합하면서 음색이 더욱 강조될 때, 아이유가 갖는 경계선상의 위치가 더욱 매력적으로 살아난다.
조성민: 동글동글 귀여운 피아노 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노래는 자연스럽게 듣는 사람을 미소 짓게 만든다. 듣는 입장에서 아이유에게 압도되는 부분이 바로 이런 것이다. '좋은 날'이나 '분홍신' 등을 보면 악기 소리를 압도하는 파워 보컬리스트이면서 동시에 '마음'과 같은 곡에서는 최소한의 악기만으로도 충분한 조화를 이루면서 노래를 편안하게 꽉 채우는 보컬을 구사할 줄 알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이유에 대해 '듣는 이를 소녀로 만들어주는 보컬'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이번 싱글에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미묘: 톡톡한 질감의 사운드와 유려하게 미끄러지는 코드워크의 조합이 매력적이다. 적당히 상상력을 자극하면서도 어떤 감정인지 단번에 와닿는 '이럴거면 그러지말지'라는 제목과, 가사에서 해당 내용을 정직하게 풀어내는 것도 미련을 남기지 않는 명쾌함이다. 작곡 면에서 '뻔하지 않은 곡'을 만들고자 하는 욕심과 그것의 성취가 엿보인다. 보컬리스트의 호흡에 대한 안배가 덜컹거리는 몇 군데가 조금 아쉽고, 랩이 꼭 필요했는지도 의문이지만, 무척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는 싱글.
블럭: 자작곡이라는 점도 좋고, 그래서인지 완벽하게 매끄럽진 못하고 군데군데 까실까실한 느낌도 있지만, 안정적인 코드 진행과 곡 구성을 가지고 있다. 자칫 평범하다고 느낄 수 있는 내용이지만 무엇보다 가사가 가진 디테일도 좋고, 자신만의 표현법이라는 게 어느 정도 있는 듯하다. 곡에서 가장 굉장한 건 백아연이라는 음악가가 가진 존재감이 전면으로 확 드러난다는 점이다. 다만 본인이 직접 쓰고 불렀으니 본인 음색과 음정에 어느 정도 맞춘 것 같긴 한데 조금만 더 여유 있었으면 더욱 편하게 접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든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굉장히 좋은 곡이다. 더 재미있는 곡을 더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긴다.
맛있는 파히타: 엔플라잉의 데뷔곡 '기가 막혀'는 굳이 록밴드라는 형식을 통해 내놓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록이라는 라벨을 붙이기에는 너무 동시대의 댄스뮤직처럼 들린다. 일렉트릭 기타가 록을 만들지는 않는다.
블럭: 엔플라잉의 문제점은 모든 곡의 랩을 이노베이터가 썼다는 사실도, 랩을 표방한다는 사실도 아니다. 씨엔블루가 초기에 가지고 있던 부분을 답습하면서 이미지만 살짝 틀어낸 게 엔플라잉의 전부처럼 느껴진다는 점이 문제다. 또한 이 밴드에게서 랩이 가지는 메리트가 조금 다른 외적 면모를 차용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것 역시 문제점이다. 익숙함 이상의 식상함이 한 레이블에서 계속 나온다는 게 나는 별로 재미가 없다.
유제상: 힙합과 록 밴드 스타일이 섞여 있어서 린킨파크나 림프비즈킷 같을 거라 기대했던 평자가 바보였다. 노래는 이미 FT아일랜드나 씨엔블루를 통해 질리게 들은 그것이고, 차이점이 있다면 단지 랩이 양적으로 많다는 것인데, 그게 그렇게 별나게 들리진 않는다. 특이점은 오히려 멤버들의 외모가 눈에 띌 정도로 말쑥하다는 것인데, 여기서 평자가 뭐라 떠들어대든 곧 상당한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늘 그래 왔지. 소녀의 비명을 부르는, 잘생긴 남자와 기타 소리 비스무리한 것의 뒤섞임...
조성민: 멤버는 바뀌었는데 음악은 바뀌지 않았다. '엔플라잉 1집'이 아니라 'FNC 신인그룹 1집'의 느낌이랄까. 초기 FT아일랜드나 씨엔블루와 차별성을 주기 위해 랩 파트를 조금 길게 배정한 듯한데, 그 점이 듣는 입장에서는 그닥 특별하게 와 닿지 않을 듯하다. 심지어 앨범 소개 문구도 씨엔블루 데뷔 시절과 상당히 유사한데, 특히 '네 명으로 구성된 신예 밴드로, 국내 데뷔 전부터 일본 인디즈에서 활동하며 음악적 기량을 갈고 닦았다'는 문구가 데자부를 일으키고 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지금 이 모습으로 충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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