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에 걸쳐 게재되는 2016년 7월 초순의 1st Listen. (①편은 여기로.) 원더걸스, 주니엘, 마틸다, 디홀릭, C.I.V.A, 제이민, 머큐리, 인피니트, NCT #127의 새 음반을 다룬다.
미묘: 감상적일 수 있는 멜로디가 몽롱한 사운드 속에서 때론 가볍게 휘날리면서 흐른다. 뮤직비디오에서 마네킹을 척살하면서도 무심한 얼굴, 바로 그것이다. 1분이 되어서야 당겨 들어가는 "Tell me why"로 시작되는 훅이 유난히 가슴에 내려앉는 것은 그래서다. 싱글에 담긴 세 곡은 내내 감정을 절제한다. 시큰둥한 얼굴로, 하지만 나직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섹시함으로, 뻔한 말이지만 '어른스럽다'. 그러면서 (유빈과 혜림이 주축을 이뤄) 늘 알고 있던 원더걸스의 조금 뻣뻣하면서 유쾌한 매력도 잊지 않는다. 곡들의 큰 틀은 분명 케이팝에 뿌리를 대고 있는데, 밴드 구성이어서 더 매력적이지만 밴드 구성이어야만 나올 수 있는 곡들인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원더걸스가 '밴드 음악'을 해야만 한다는 게 아니라, 따라갈 수 없을 음악적 혁신의 잠재력이 이 음반의 몇 대목에서 보이는 단초에 있다고 본다. 원더걸스는 정말로 '원더'가 되고 있다. (뮤직비디오의 플롯 역시 두 팔 벌려 환영한다.)
돌돌말링: 새 싱글을 처음 듣고 느낀 감상은, 원더걸스의 2막이 이렇게나 멋져서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멤버들이 함께 작곡한 노래로 컴백한 모습을 보며, 데뷔 당시 막내였던 92년생 선미가 만 14세에서 24세가 되는 동안 새삼 많은 일들이 있었고 지금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이틀 'Why So Lonely'는 여름이면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던 레게팝 장르지만 웃음기가 없다. 데뷔곡 'Irony'의 뮤직비디오가 슈퍼파워를 가진 어린 소녀들이 '니 말 하나도 말이 안 돼' 지적하고 깔깔 웃으며 바람 핀 남자친구를 혼내주는 내용이었다면, 'Why So Lonely'에는 기대에 지쳐 분노조차 서늘한 성인 여성이 나온다. 10년 동안 그들은 같은 서사도 이렇게 다르게 전달할 수 있는 그룹이 되었다. 아이돌은 '성장'을 파는 비즈니스라지만, 그게 이렇게 '원걸'이란 페르소나의 자아 획득에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분명 롱런한 인기 그룹, 그 중에도 재능 있는 그룹에서나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기념할 만하다.
조성민: 이전의 5인조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Reboot"보다도 한층 더 나른하고 몽환적인 무드가 깊어진 싱글. 철저히 미국적인 '아시안 걸그룹'을 연기하던 이전과 달리 원더걸스는 한층 더 자신다워졌고, 그것은 '소녀'는 있어도 '여성'은 없는 케이팝 씬에서 가장 독보적인 행보라 할 수 있다. 편안한 중저음의 보컬과 랩은 피상적인 이미지의 성숙뿐만 아니라 보다 더 본질적인, 콘텐츠 측면에서의 성숙을 표현한다. 여기에 멤버들의 자체적인 프로듀싱 참여에 의해 진정성까지 확보한 상태. 이제 원더걸스는 현재 케이팝 걸그룹 씬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성숙'을 노래하는 여성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햄촤: 지난 "Reboot" 앨범을 즐겨 들으면서도 이것이 표제처럼 원더걸스의 '리부트'가 맞는지 반신반의했었으나 이번 싱글에서 확실히 긍정하게 되었다. 노래를 듣던 중 무심결에 '올해 신인상은 원더걸스가 가져가는 것은 아닐까'하는 망상까지 해버렸을 만큼 지금껏 익숙했던 원더걸스와는 달라졌다. 단순히 춤 대신 악기를 연주하고, 자작곡을 부르는 형식상의 변화를 떠나 그룹이 지닌 어떤 '태도'가 달라졌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모두가 익히 아실 그룹의 스토리부터 멤버 구성의 변화, 그리고 9년의 시간을 거쳐 온 원더걸스는 무대 위에서 더는 노래를 열창하거나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추거나 하는 일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게을러진 것이 아니라 거꾸로 애쓰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는 쪽에 가까울 것이다. 이번 싱글에 실린 세 곡은 사장님이 그렇게 요구하던 '공기 반 소리 반'을 음악으로 만들어 담아낸 듯한 결과물이다. 원더걸스는 연차가 쌓인 아이돌 그룹이 자신들의 세계를 어떻게 확장하고 이어나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분명한 사례가 되었다.
미묘: 속 깊거나 낙천적인, 건강한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음색인 동시에, 감상적인 멜로디에서 자칫 '우는' 소리가 되기 쉬운 음색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주니엘의 복귀작은 좋은 균형점을 찾아간다. '어른스러운 소녀'의 외피를 입고 있던 주니엘에게 세련된 방식의 어른스러움과 페미닌한 느낌을 함께 담아내, 보기 좋은 성장을 보여주는 곡이기도 하다. 자글자글한 퍼쿠션과 브러시 드러밍이 재지한 무드와 함께 고혹적인 공간을 연출하고, 일렉트로닉 퍼쿠션과 필터 걸린 스트링이 살짝 무뚝뚝하게 감정을 눌러준다. 그 속에서 주니엘의 보컬은 선명하게 제자리를 지키면서도, 조금은 느긋하게, 너무 무겁지 않게, 자신이 가진 표현력을 펼쳐 보인다.
돌돌말링: FNC를 떠나 처음 내는 싱글이다. 본명도 최준희에서 최서아로 바꿨다는 소식이 들린다. 요란하지 않게, 하지만 분명히, 크게 달라졌다. FNC에서 프로듀싱하는 여자 가수는 기획의 캐릭터가 비교적 평면적이란 인상을 받는데 (기본적으로 예쁘고 유약하며 귀엽거나 섹시하거나.) 이 밖에서 만나는 주니엘이 정말 반갑고 좋다. 새 노래 '물고기자리'를 들으며, 새로운 환경에선 훨씬 더 자기다운 프로듀싱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잔뜩 받았다. 고우면서도 어딘지 허무한 멜로디에서 이천 년대 초반 일본 연애 영화 같은 느낌이 난다. 파트 파트마다 멜로디가 빠짐없이 다 좋고, 달음박질치지 않아도 후렴까지 차근차근 가볍게 상승되는 감정선이 세련됐고, 안정적이다.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아직 잘 되고 있다면 이달의 홈 BGM 1위였을 것이다.
유제상: 비트며 멜로디가 평자의 구미에 너무 맞아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렵긴 하지만, 이제 주니엘이 뭘 하려는 건가가 보이는 것 같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관조하는 가사는 덜 직설적이어서 오히려 예전보다 좋아졌고, 멜로디는 기타 리드에서 벗어나 대중친화적으로 변했다. 평자가 언젠가 좋아했던 아이유의 그때 그 지점과 비슷하다고 한다면 아이유와 주니엘 두 사람 모두에게 실례겠지만, 적어도 성숙함을 가장한 소녀다움이 상업적인 레벨에서도 통용된다는 것을 보여준 점에 있어서는 두 사람이 동등하노라 말하고 싶다. 잘하고 있으니 잘해보소.
미묘: 보도자료에는 빅룸 스타일이라고 하지만 빅룸의 사운드를 가져온 보다 고전적인 댄스 가요에 가깝다. EDM과 케이팝의 결합에서 이제는 익숙한 그런 조합. 오히려 주목하고 싶은 것은 2010년 전후의 강렬한 걸그룹 공식을 고스란히 가져온다는 점인데, 무대에 오르는 여성 댄서의 언어를 파편화하여 담은 가사가 특히 그렇다. (쇼케이스 영상을 보면 마스크를 쓴 멤버도 있다.) 뿜어지는 듯한 베이스가 신경질적으로 긁고 다니는 것도, 어두운 긴장감을 자아내다가 후렴이 잘게 두드리듯 풀어나가는 것도 기세가 좋다. 각 보컬의 음색도 제 매력을 잘 보여준다. 구조적인 랩 파트 이외에도 랩이 조금씩 감초 역할을 한다는 점 또한 2010년 경의 방식인데, 그것이 보다 또렷하게 찔러줬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보컬 트랙들의 처리가 타이틀보다는 못한 'So Tight'에서도 비슷한데, 앰비언트 풍의 인트로가 힙합으로 이어졌다가 일렉트로팝에서 함께 만나는 재미있는 구조를 가진 만큼 보컬의 기세가 더 중요해지는 곡이기에 조금 더 아쉽다.
미묘: 일단 뮤직비디오 후반에 굳이 시바견까지 등장하는 걸 보니 "씨아이브이에이"라는 (대체)표기에 대한 미련이 어지간히 남았다는 건 잘 알겠다. 원곡인 디바의 '왜 불러'는 그 당시 기준으로도 매우 가요적인 멜로디였는데, 이를 재해석함에 있어서 화성을 과감하게 바꿔 넣고 길게 풀어나간 것은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동시에 그로 인해 'EDM적'인 흐름이 강화되기도 한다.) 후렴에 대응하는 드랍을 만들어 놓고, 후렴이 드랍에 얹히기도 하고 후렴이 드랍을 구성하기도 한다. EDM과 가요를 접목하는 또 한 가지 방식인 셈이다. 전체적으로 굉장히 떠들썩하고 트랙도 갖은 요소로 꽉 차있는데, 일단 분위기 자체를 전달하는 데에서는 성공적인 듯하다. 어쩌면 테마가 되는 원곡이 워낙 인지도가 높아 이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자동적으로 집중도가 생기는 점도 있을지 모르겠다. 바꿔 말하면, 누군가에게는 이 곡의 복잡다단한 구조와 편곡이 정신 사납게 들릴 수도 있겠다. 곡 자체로서는 이벤트성 싱글의 기준을 적당히 상회하는 특이한 트랙으로 판단한다.
햄촤: 〈프로듀스 101〉 참가자였던 윤채경과 김소희가 합류함으로써 산소 호흡기를 달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음악의 신〉 두 번째 시즌. 설마 했던 대본이 현실이 되어 C.I.V.A의 데뷔 싱글이 결국 발매되었다. 룰라의 멤버 채리나가 속했던 디바의 히트곡 '왜 불러'를 리메이크한 것은 계절에도 걸맞은 좋은 전략인데, 방송의 맥락을 차치하고 듣더라도 과하게 우스꽝스러워지지 않은 준수한 댄스곡으로 편곡되었다. 김소희와 윤채경의 음색이 곡의 시원한 이미지와 매우 잘 맞아떨어져 원곡과는 또 다른 색깔을 즐길 수 있다. C.I.V.A라는 팀이 1회성 이벤트로 그치기엔 아쉽다는 감정이 들 정도로 귀가 즐거운 싱글.
김윤하: 따뜻하고 고운 발라드 카테고리에서 가장 돋보이는 노래들을 만들어 온 작곡가 심은지와 뮤지컬 활동을 통해 가창력을 담금질해 온 제이민의 만남으로, 흠잡을 데 없는 팝 발라드가 탄생했다. 어쿠스틱 악기들과 현악의 앙상블도 안정적이고, 특히 뮤지컬 활동을 통해 노래에 깊은 감정선과 기승전결을 입히는 방법을 터득한 제이민의 목소리가 기분 좋다. 노래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노래 속 익숙한 그 집 앞이 눈앞에 그려진다. 좋은 만남이다.
유제상: 우와~ 'Let's Party'는 듣자마자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하는 완벽한 2000년대 초반 분위기의 복고풍 댄스곡이다. 20대였던 평자가 2000년대 초반에 나이트로 가서 되지도 않는 말로 옆 테이블에 추파를 날렸을 때가 저절로 떠오르는(*그런 적 없습니다.) 그런 곡. 물론 이런 복고 분위기는 의도되었다고 생각되지만, 아직 유튜브에 뮤직비디오의 티저 밖에 없는 걸 보면 그냥 센스가 낡은 건가 싶기도 해 진위를 파악하긴 어렵고... 여튼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되는 곡이지만, 평자는 호에 가까웠다는 글을 남긴다.
김윤하: 알려진 대로 "Season 2"(2014) 앨범에 히든 트랙으로 수록되어 있던 곡이자, 2년 마다 돌아오는 여름 브랜드 공연 〈그 해 여름〉의 테마송이다. 특정 계절을 주제로 한 인피니트의 노래들을 들으면 늘 '어쩜 이렇게 한국다운 계절송일까' 생각하곤 했는데, 이번 싱글 역시 마찬가지다. 어쿠스틱 기타와 박수 소리로 시작되는 MT스러움에서 지방 어딘가의 펜션에서 촬영되었음이 분명한 뮤직비디오까지, 노래는 곳곳에서 사느라 잊고 있던 우리의 실제 '그 여름'의 기억을 소환한다. 곡은 다소 평범하지만 손에 닿을 듯 가깝게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노련미만큼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조성민: "Infinitize"(2012)에 수록되어 있던 '그 해 여름'의 연작. 오랜만에 돌아온 스윗튠과의 콜라보가 반가울 이들이 꽤 많을 듯하다. 랩 파트가 긴 편이라 루즈해진 듯한 감이 있지만, 일종의 장면 전환을 하듯 곡의 흐름을 환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 나쁘게 느껴지진 않는다. 이전의 '그 해 여름'에서는 기타 반주 위에 흐르던 멤버들의 합창이 돋보였다면, '그 해 여름 (두 번째 이야기)'는 콘서트용 릴리즈라는 용도에 맞게 좀 더 음악적 어필에 신경 쓴 듯, 한층 성숙해진 멤버들의 보컬 아래로 예의 그 묵직한 밴드 사운드가 흐른다. 화려하고 풍부해진 음악만큼 'She's Back'이나 '하얀 고백' 등의 기존 시즌송에 비해 더 다채로워진 화면의 뮤직비디오를 보자면,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여름은 소년의 계절이다.
햄촤: 인피니트와 스윗튠의 조합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상쾌함이 있다면 이런 걸까. "Hey, hello 기억하고 있니 그 여름 안에 만들던 추억 Hey, hello 난 너만 보였어 너에게 나는 어떤 기억이니"란 가사에서도 읽히듯 단순한 사랑노래가 아닌, 팬들과 그동안 함께했던 시간들을 추억하는 노래다. 그룹의 초기부터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던 작곡진과 어느덧 중견이 된 아이돌 그룹, 그리고 꾸준히 같은 자리를 지켜온 팬들이란 세 요소가 어느 한 곳 어긋나지 않고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는, 여름밤 바닷가에 피운 모닥불 같은 노래. 팬도 아닌데 노래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설레는 건 왜죠.
김윤하: 타이틀곡 '소방차'는 꽤 인상적인 곡이다. 어딘가 어둡고 반항적인 것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하는 SMP의 분위기를 이어가면서도 기반을 기존의 록에서 힙합으로 자연스레 옮겨오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앨범의 수록곡들 역시 '아이돌은 총천연색'이라는 기존의 틀을 깬 무채색의 연장선에서 각자의 매력을 자랑한다. 이것이 'Neo'라면 충분히 그럴듯하다. 하나 우려스러운 건 이것이 이미 활동을 개시한 NCT U를 비롯한 다른 NCT들과의 변별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껏 공개된 단 두 개의 유닛 안에서도 대중에게 남은 건 태용의 하드캐리 뿐인 이 시점에서 의문의 농도는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다.
미묘: '소방차'는 좋은 곡이다. 말을 보탤 필요가 거의 없다. SM에서 나온 힙합 트랙이니까 슬슬 보컬이 나올 것 같다고 생각할 때쯤, 마치 음정을 심하게 잘못 찍은 것처럼 시작하는 해찬의 랩이 나오는 대목이 즐거운 배신감을 안긴다. 훅의 "Firetruck"이 "소방차"로 변하는 것도 재미있다. 난폭하게 휩쓸고 가다가 훅이 브레이크로 작용하는 것, 그것이 후반으로 갈수록 (퍼포먼스를 염두에 둔 채) 거시적으로 '빌드업'해 가는 것도 매력적이다. NCT가 그룹보다는 브랜드라고 할 때, 설정된 세계관의 '느낌적 느낌'을 전하던 NCT U의 릴리즈에 비해 이번은 NCT가 뭘 하는 브랜드인지를 본격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그 맥락에서, 동양인 소년들이 1세계 백인 중산층 여성을 구원한다는 뮤직비디오의 테마는 어쩌면 효과적일지도 모르겠지만, 부디 다시 생각해 줬으면 한다.
블럭: 디플로(Diplo)를 대신해 런던 노이즈(LDN Noise)가 나섰다... 고 말하고 싶은 타이틀곡은 랩을 상당히 잘 썼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특히 지금까지 SM의 랩을 생각하면 더욱). 게다가 타이틀곡임에도 대부분이 랩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니 놀랍다(물론 SM답게 소리는 지른다). 게다가 타이틀곡이 너무 좋은 나머지 다른 수록곡은 준수한 퀄리티를 지녔음에도 무난하게 느껴질 정도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성공적인 데뷔라고 생각하며, 워낙 열린 형태의 다음 행보가 준비되어 있어서 음악적인 방향을 기대하기보다는 '이걸 토대로 다음에는 무엇을 할지'가 기대된다.
조성민: '소방차'의 뮤직비디오와 퍼포먼스를 보고 있자면 의문을 한가득 얻게 되는데, 일단 곡의 구성과 화면 전환 등, 작품을 구성하는 구간들이 지나치게 산만해서 일정한 맥락을 느끼기 굉장히 힘들게, 한마디로 분열적으로 구성되어있다. 히스테릭한 사운드와 색감에 비해 가사의 메시지는 단순하고, 파워풀한 안무에 비해 화면 연출은 어딘가 나른하고 무기력하다. 3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곡 안에 굉장히 많은 것이 들어가 있는데, 그것들이 효율적으로 제시되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얼핏 방탄소년단의 '불타오르네'도 떠오르는데, 방탄소년단 특유의 기합과 에너지가 NCT 127에게는 없어서, '불타오르네'를 먼저 접했던 사람이라면 조금 허전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곡이 워낙 복잡하게 디자인 돼 있어서 멤버들의 면면에 집중하기는 조금 힘들지만, 마크의 랩만큼은 낭중지추처럼 귀에 꽂히니 추천할 만하겠다. '소방차'를 포함한 앨범 수록곡까지 다 듣고 나면 어쩐지 테크노 장르에 천착(혹은 집착)하던 시절의 SM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기분 탓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햄촤: NCT 127의 정식 데뷔곡인 '소방차'는 이미 시장에 꽤 많이 자리를 잡은 '힙합 아이돌'이란 파이에서 SM이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몫을 챙기겠다는 일종의 선포처럼 보인다. 뮤직비디오의 다소 공격적으로 보이는 이미지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일곱 번째 감각'으로부터 확장된 듯한 SM표 퍼포먼스만큼은 눈을 뗄 틈이 없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힙합 색깔이 강한 만큼 SM에서 데뷔했던 그 어떤 그룹보다 랩의 비중이 돋보이는데 특히나 'Mad City'에서 마크의 랩은 귀가 번쩍 뜨일 만큼 발군이다. 서울을 기반으로 한 NCT 127의 데뷔로 인해 아이돌 그룹의 세계에서도 연고지 개념이 활성화될 수 있을지 아직 장담은 할 수 없겠지만, 서울 시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준비 정도는 미리 하고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소심한 설레발을 보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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