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신작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효정, 류세라, 성민, AZM, 워너원, 아이콘, 장문복, MXM, 마마무, 힌트, 소정, 정일훈, 장재인&수호, 수지, 수호&장재인을 다룬다.
마노: 솔로로서는 첫 행보인데, 따스한 날 꼭 맞는 새 옷을 입고 잔뜩 부풀어 외출에 나서는 모습이 눈에 선연히 그려지는 듯하다. 피아노로만 시작하다가 갖가지 어쿠스틱 악기가 화음을 넣듯 화사하게 풍성해지는 사운드도 매력적이고, 설렘과 두근거림을 노래하지만 과하지 않을 정도로 나풀대는 효정의 가창이 돋보인다. 본체인 오마이걸에서의 활동 및 이미지와 효정이라는 솔로 가수의 캐퍼시티 사이의 교집합을 절묘하게 잘 짚어낸 듯 보이는데, “사랑꾼 다 된 것 같아 / 아직 고백 못했는데”라는 고민 섞인 한숨마저도 달콤하고 즐겁다는 듯한 모습에 작은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준수한 솔로 데뷔작.
유제상: 미드 템포의 곡으로 봄 분위기를 내고, 밝은 곡의 끝맺음이 ‘드라마 OST구나’ 하는 느낌을 준다. 디스코그래피를 보니 효정은 이미 2016년 9월 크루셜스타와 함께 드라마 〈어느새 가을〉의 OST에도 참여한 바 있다. 오마이걸 멤버 전반이 노래를 잘 불러서 딱히 튀는 목소리라고는 생각 안 했는데, 의외로 노래를 잘 불러서 놀랐다. 그래서 〈복면가왕〉에 나와 김미려를 이긴 것인가...
마노: 무려 가내수공업으로 제작해 배송까지 스스로 했던 첫 미니 앨범과, 2016년에 발매한 OST 참여곡을 제외하면 사실상 첫 정식 솔로 음원이다. 편곡을 제외한 작사, 작곡을 모두 스스로 했다는 점이 눈에 띄는데, 홀로서기를 갓 시작한 아티스트들이 종종 빠지곤 하는 패착이 보이지 않아 일단은 안심이 된다. 소박하게까지 느껴지는 미니멀한 사운드 속에서 읊조리듯 노래하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편안하게 들리고, 직접 작사를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진정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온 진심을 다해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사에서처럼, 그의 느릿한 걸음 곁에서 느긋한 밤 산책을 청하고 싶어진다. 그 발걸음을 오래도록 지켜보고 싶다는 의미에서 아낌없이 Discovery!를.
유제상: 나인뮤지스 출신 세라의 싱글. 타이틀 ‘나와 걸어줘’는 애시드한 곡 분위기가 레이디스코드의 복귀 후 앨범이나 J.ae의 후기 곡을 연상시킨다. ‘필’은 피아노 멜로디가 메인이 되는 소품. 두 곡 다 류세라 작사, 작곡인 것은 전작이라 할 수 있는 “SERen:Ade”와 마찬가지니 나인뮤지스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평자를 포함하여 〈나인뮤지스: 그녀들의 서바이벌〉을 본 사람이라면 이런 세라의 모습을 상상이나 했으랴...
유제상: 가수로는 보기 힘든가 하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SM 스테이션의 형태로 만나게 되어 반갑다. SM 스테이션 시즌 1에 비해 시즌 2는 이지 리스닝 계열의 곡이 많은데, 성민의 ‘낮 꿈’ 또한 이러한 기조를 따라 잔잔한 SM식 발라드를 들려준다. 기조는 직장 동료라 할 수 있는 규현의 이전 곡과 비슷하기도 하고... 좀 더 튀는 시도를 수행해도 괜찮았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은 건지, 본인의 취향인 건지. 뭐 지금의 무난한 결과물도 나쁘지는 않다. 홍보는 SM 스테이션이 쭉 그러했듯이 여러 면에서 부족한 것 같다만.
서드: 인지도 없는 신인 그룹이 내놓는 데뷔 싱글이 흔한 콘셉트에 매몰되는 길을 피했다는 점만으로도 신선하게 다가오지만, 동시에 벌써 언제적 유행어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엣지 있게”라는 구절을 펀치라인으로 사용한 기획의 한계 또한 선명히 느껴진다. 포부가 느껴지는 가사와 약간 나른한 듯한 곡의 분위기도 왠지 서로 상충하는 이미지라 조금 아쉽다. 개선안으로서의 다음 싱글을 기대해보고 싶다.
유제상: 리더 성은지, 보컬 고유경, 랩 이예진, 보컬 배수현으로 이루어진 실력파 4인조 걸그룹(이상 앨범 소개에서 발췌) AZM의 데뷔 싱글. 곡 자체는 최근 유행을 따라 미드 템포에 세련되고 흥겹지만 중간중간 예스러운 랩(“절대 눈을 땔 수 없게~” 등)이 흥을 깰 때가 있다. 뮤직비디오는 확실히 한 세대 전의 물건으로, 음원뿐만 아니라 시각 이미지 전반이 흥행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신인 걸그룹의 처지로 보았을 때는 다소 심각한 상황. 라이브에 강세라는 평이 있던데 좀 더 이들의 활동을 지켜보아야 할 듯.
마노: 트랙 자체는 분명 나쁘지 않다. 큰 흠결 없이 무난하다는 뜻으로도 읽힐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이 ‘나쁘지 않음’이 전작과의 상대성으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과, 워너원이라는 네임밸류를 고려했을 때 그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코 긍정적인 평가라고 보긴 힘들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그룹인지를. 일단은 선공개 곡이라고 하니 본격적인 결과물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또 한 번 프로덕션의 무능과 게으름을 증명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유제상: 주변 사람들에게 컴백 시기에 대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서 이미 컴백한 것 같은 느낌마저 주는 워너원의 선공개 디지털 싱글. 북유럽 트랜스의 비트와 멜로디 기반에 파티곡 느낌, 후렴구의 합창까지 기존 워너원 히트곡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색다를 것은 없지만 신기하게도 그간 발표한 주요 곡들처럼 퀄리티가 일정 수준 이상이라는 것은 강점이 될 듯. 남은 건 여기에 오빠들의 멋진 모습을 끼얹는 건데, 이건 굳이 평자가 말할 필요가... 뇌리에 오래 남는 ‘한 방’은 없지만 아마 그건 선공개 디지털 싱글이라 그런 것이겠지. 기대감을 높이는 본래의 역할은 충실해 해낼 거라 본다.
서드: 아이콘의 노래를 들을 때 묘하게 종종 힙합보다는 국악에 가까운 리듬감이나 멜로디를 느낄 때가 있는데, ‘고무줄다리기’ 또한 좋은 예시다. 케이팝 퍼포먼스가 뮤지컬 지향일 때도 많지만, 아이콘은 그보다는 마당놀이의 케이팝적인 버전 같다. 사랑하는 이들 사이의 감정싸움을 고무줄이라는 매개체 하나에 비유한 가사 또한 엄청난 신선함은 없지만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곡의 분위기에 녹아든다. 힘주지 않고 잔잔한 듯 흘러가는 곡이지만 계속해서 듣는 이의 흥을 돋우는, 어쩌면 아이콘의 강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노래 중 하나가 아닐까.
유제상: ‘사랑을 했다’로 귀신같이 부활한 아이콘의 후속곡. ‘사랑을 했다’가 그러했듯이 과한 비트나 랩이 없어서 힙합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는 것이 신기하다면 신기하다. 안무에 있어서는 드레이크나 위켄드 등이 보이는 자기 흥에 겨운 무언가를 보여주는데, 그게 또 아이돌 그룹의 군무로 펼쳐지니 색다른 맛을 준다. 개인적으로는 이들의 가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상황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진 않더라도 뭔가 먹먹한, 눈물이 날 듯 말 듯 그래서 더 슬픈 감수성이 상당히 잘 담겨 있어 역시 조홍이 이야기했듯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홍이 누구냐고? ☞검색
심댱: 생각보다 멀쩡하다는 인상이 계속된다면, 그건 장문복의 이미지일까 아니면 선입견일까. ‘곡성 2018’에서는 “췍” 그 자체의 여린 목소리의 시그너처 랩이 이어진다면 ‘Red’에서 ‘겁먹지마’까지는 팝에 적절히 안배된 피처링 스타일의 랩을 선보인다. 주로 〈프로듀스 101〉 시즌2에 함께 참여했던 연습생과 함께한 트랙이 많다. 아직도 계속 ‘우리 편’을 모으고 ‘우리 편’의 무대를 선보이는 것을 보면, 어쩌면 장문복은 좋은 프로듀서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마지막 ‘힙통령’까지, 그냥 넘기면 안될 것 같은, 심상치 않은 느낌의 EP.
유제상: 장문복이 단순한 이슈 메이커가 아니라, 한 명의 래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EP. 타이틀 ‘Red’를 비롯하여 일곱 개의 수록곡 모두가 상업적으로 잘 다듬어져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장문복의 랩은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 아마도 보정을 거쳤으련만 유독 그가 읊는 파트는 피처링에 비해 소리가 작고, 발음이 불분명하며,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경향은 타이틀인 ‘Red’에서 두드러지는데, 노래와 랩 파트의 퀄리티 차이가 분명하여 곡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헷갈리게 한다. 본인이 추구하는 음악과 본인의 강점이 불일치하는 것이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다.
유제상: 〈프로듀스 101〉 시즌 2 출신인 임영민, 김동현의 두 번째 싱글. 이들은 아이돌 그룹으로는 최근 보기 힘들어진 2인조 구성인 것도 그렇고, 노래의 구성도 그렇고 묘하게 제이워크 같은 전 세대 아이돌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었다. 이번 싱글은 이런 생각이 짙어지는 데 일조하는데, 일례로 타이틀 ‘식어버린 온도’의 말하듯 끼어드는 랩들은 2000년대 초반 감성 그 자체다. 다소 의아한 것은 곡의 세련된 분위기로도 순수한 듣는 즐거움으로도 ‘Love Me Now’ 쪽이 타이틀인 ‘식어버린 온도’보다 월등히 낫다는 점이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와버린 걸까.
마노: 앨범 전체를 타고 흐르는 차가운 무드가 ‘배드애스(badass)’ 풍의 캐릭터와 꽤 잘 어울린다. 마냥 뜨겁고 열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인 라틴풍을 이렇게 서늘하고도 에너제틱하게 소화한 사례가 있었나 싶다. 허무한 정서를 특유의 그루브로 이끌어가는 화사의 솔로곡 ‘덤덤해지네’와, 중독성 있는 후렴구가 매력적인 ‘Rude Boy’를 놓치지 말기를. 마마무가 여름에 피울 꽃은 어떤 향기일지 궁금해진다.
심댱: 앨범 제목처럼, 노란 꽃은 ‘화사’하게 피어난다. 부드러운 꽃잎처럼 각 트랙 간에 만들어지는 그루브가 인상적이다. 화려한 라틴 리듬으로 ‘별이 빛나는 밤’이 수놓아지다가 ‘덤덤해지네’로 별도 잠든 작고 까만 밤이 그려진다. 그리고 이내 ‘Rude Boy’와 ‘칠해줘’로 공간을 확장한다. ‘별 바람 꽃 태양’이라는 마마무에게는 어색한 모양새의 설정을 매치하지 않아도, 좀 더 거칠어도 좋았을 것 같은 첫 번째 프로젝트 앨범이다.
심댱: 훵키와 뽕을 같이 녹여냈던 ‘탕탕탕’을 레퍼런스로 삼은 듯한 ‘팡팡팡’이다. ‘워키토키’에 비해서 시원하게 들리고, 디스코 풍으로 흥겹다. 다만 요즘 잘 쓰지 않는 “뿅뿅뿅”이라든가 “콩콩콩콩” 등 의성어를 너무 정직하게 부르는 등 의도한 것으로 듣고 싶은 촌스러움이 존재한다. 티아라보다는 열화 버전인데, 이미 ‘탕탕탕’에 설득되어버렸다면 ‘팡팡팡’도 웃으며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유제상: 음원을 틀자마자 리듬 게임 음악 같은 게 나와 순간 당황했다. 멜로디는 평자가 좋아하는 (오타쿠스러운) 어떤 전형에 가깝지만 문제는 이들의 노래 실력. 가급적 모든 이들이 한 번씩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배려한 것 같은데, 멤버 간 실력 차이도 현격하거니와 노래를 못 부르는 멤버가 너무 많다. 음원에 이런 문제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게 저예산스러워서... 여담으로 이들은 ‘탕탕탕’이라는 노래를 작년 3월에 부른 바 있다. 3음절이 좋으신 건가. 참고로 ‘탕탕탕’은 완전 트로트라 ‘팡팡팡’과의 괴리감이 장난 아니다.
마노: 단 두 곡이지만, 소정이라는 아티스트가 얼마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화해낼 수 있는지 증명하는 듯한 솔로 데뷔 싱글. ‘Crystal Clear’에서 서늘하게 휘몰아치다가, ‘Stay Here’에서는 따스하게 내려앉으며 겨울과 봄이라는 대조적인 두 계절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타이틀 ‘Stay Here’를 듣고 있자면 켈틱 우먼(Celtic Woman) 같은 류의 음악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신성하고 신비로운 느낌이라든가 일종의 경외감 같은 것이 닮아 있다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소정 특유의, 까슬한 목소리 결과 풍성한 울림 끝에 묘한 허무감이 깃드는 음색이 오래도록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더 많은 곡을 들을 수 없다는 점이 흠 아닌 흠이라 하겠다.
서드: 흔한 이별 노래처럼 보일 가사도 소정이 부르면 그 너머에 다른 의미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신비함이 음색에 있다. ‘Stay Here’는 그의 음색으로 서서히 물드는 듯한 노래의 흐름과 뮤직비디오 시작부에서 유리창에 맺힌 서리가 서서히 녹아내리는 이미지가 마치 처음부터 하나인 듯 잘 맞아떨어진다. ‘Crystal Clear’ 또한 잔잔했던 물결이 파도로 변화하는 이미지가 곡과 잘 어울리도록 구성되어, 단순하지만 자연스럽게 가수와 노래의 매력을 시각적으로 어필한다. 단 두 곡이라는 점이 아쉽지만 부족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심댱: 파도처럼 강하게 부딪치고 맞서는 분위기의 ‘Crystal Clear’를 지나 다다른 미지의 세계, ‘Stay Here’. 단 2곡뿐이지만 소정에게 몰입할 여지는 충분하다. 겨울과 봄의 경계를 노래했다고 하는데, 봄의 여신보다는 S.E.S.와의 약한 연결고리가 존재하는 정령 정도는 되지 않을까.
유제상: ‘Crystal Clear’는 시아(Sia)가 선보이는 건조한 팝을 연상시키고, 타이틀 ‘Stay Here’는 이보다는 훨씬 희망찬 분위기의 곡이다. 전반적인 곡의 기조는 레이디스코드의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성숙해진 분위기가 과거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이러한 성숙함은 소정의 보컬 톤에서 더욱 크게 느껴지는데, 어디서 수련이라도 받고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음색이 남다른 건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제 대중적인 인기와 무관하게 어떤 경지를 향해 가는 걸까. 꾸준한 활동을 기대한다.
마노: 힙합인 줄 알았는데 록이었다. 그러고 보니 타이틀곡 제목마저 ‘She’s gone’이다. 개러지 록의 무드를 떠올리게 하는 기타 리프가 묘한 긴장감을 조성하다가, 후렴구에서 때려 부술 기세로 쏟아져 내리는 기타와 베이스와 드럼 비트 사이를 아무렇지 않다는 듯 여유롭게 누비는 정일훈의 목소리는 능청스럽기까지 하다. 앨범 전체를 타고 흐르는 것은, ‘나 이제 이 정도쯤은 그냥 할 줄 아는데?’라는 듯한 자신만만함과 패기. ‘자뻑’과 ‘스왜그’의 미묘한 경계선에 놓인 그 자신감이 싫지 않고, 이내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모든 수록곡이 꽤나 잘 빠져 있고, 두 피처링 멤버도 각자 제 몫을 충실히 해내며 곡은 물론 주인공 아티스트와 좋은 케미스트리를 보인다. 특히 임현식이라는 보컬의 재발견을 위해서라도 첫 트랙 ‘얘기 좀 해요’는 놓치지 않길 권한다. 듣기 즐거웠던 만큼 트랙 수가 적은 것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질 정도. 왠지 이것이 정일훈의 최대치는 아닌 것 같아, 자연스레 다음을 기대하게 된다. 그야말로 예기치 못했던 발견이라는 뜻으로, 그리고 빨리 다음을 보고 싶다는 약간의 칭얼댐을 담아서 Discovery!를.
서드: ‘She’s gone’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과잉되지 않고, 능력을 백분 발휘하면서도 자의식이 넘치지 않는다. 장르와 스타일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 비투비라는 그룹의 매력이라면, 정일훈의 솔로 역시 래퍼라는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재능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남들이 하지 않은 것’보다는 ‘뭘 하든 잘 하는 것’에 더 중심을 잡은 앨범의 매력을 느끼는 동시에, 비투비의 음악을 들으며 내가 가장 매력을 느끼던 순간들에 정일훈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는다.
심댱: 어떤 곡을 들어도 기분 좋은 그루브는 앨범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포문을 여는 인트로 곡 ‘얘기 좀 해요’는 임현식의 보컬에 Discovery를 붙이고 싶을 정도로 산뜻하게 다가온다. ‘멋진 구두’는 말 그대로 몸을 움직이게 하는 댄스곡의 미덕을 확실히 해낸다. 첫인상은 왠지 GD의 ‘This Love’와 비슷했지만, ‘멋진 구두’를 신고 타는 ‘She's gone’은 또 다르게 들린다. 파괴력 있는 록 사운드와 함께 건들거리는 안무는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이게 Pick이 아니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유제상: 랩이 현란하다거나 스킬이 눈에 띄는 것은 아니지만 목소리 톤과 딕션이 좋아 깔끔하게 들리는 것이 장점이라 하겠다. ‘She's Gone’은 묵직한 피아노 소리를 배경에 까는 곡의 구성이 전통적이어서 다소 레트로한 느낌을 주지만, 앞서 말한 장점과 결합하면서 가요에서의 랩 수용에 대한 긍정적인 예로 비춰진다. 얼마 전 발매된 라비의 신보처럼 유머러스한 재기를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라면 아이돌 출신 래퍼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충분히 보여준 사례가 아닐런지.
마노: 두 아티스트가 각자의 스테이션을 통해 싱글을 함께 발매한다는 기획이 흥미롭다. 거기에 스토리성을 가미하여 곡과 뮤직비디오가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었는데, 기획사 간 컬래버레이션에서 상당히 유의미한 예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피아노와 보컬 두 명이라는 구성이지만 단출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고, 뻔하게 흘러갈 듯하다가 식상함을 절묘하게 비껴가는 멜로디 위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좋은 합을 보인다. 첫 만남의 설렘이라는 다소 뻔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표현 방식이 과하지 않아 듣기 편하다는 인상. 듣기 전까지는, ‘장재인과 수호라고?’ 라며 물음표 섞인 반응을 보이다가도, 곡이 끝나갈 즈음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된다.
심댱: 프리코러스부터 애써 밝음으로 포장한 듯한 만남의 시작. 아기자기함와 블루지 사이를 오가는 피아노 위에 얹어진 장재인과 수호 보컬의 합은 성긴 듯 촘촘하다. 가슬가슬한 장재인의 탁음이 종종 귀에 걸리지만, 화음으로 빚어낸 아슬아슬함은 두 화자의 조심스러운 만남과 어울린다. 나쁘지 않은 시작이다.
마노: 능수능란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피아노와 단둘이서만 곡을 오롯이 채우는 수지의 목소리에는 묘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느낀다. 다소 거칠게 느껴지는 숨소리마저 불면으로 가득한 밤의 한숨인 것만 같아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담담함 속에 작은 아픔을 품은 목소리가 왠지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아, ‘잠이 안 와서 네 꿈도 못 꾸는’ 밤이 되면 이 노래를 베개 삼아 오지 않는 잠을 청하게 될 것 같다.
서드: 지난 앨범 수록곡 중 꽤 인상 깊게 들었던 ‘잘자 내 몫까지’에 이루마의 피아노 연주가 더해졌다. 거기에 숨소리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디렉팅된 듯한 보컬과 편곡으로 수지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음악방송 활동이 적어서인지 다른 여성 솔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언급이 덜 되는 느낌이지만, 수지의 보컬은 듣는 이를 단숨에 몰입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는데 아직 그의 매력을 미처 캐치하지 못한 분들에게는 이 곡의 일청을 조심스레 권해본다.
마노: 스테이션의 존재 의의와 방향에 대한 답이 이것이라면, 조금은 납득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왜 LISTEN이어야 하는지, 왜 SM 스테이션이어야 하는지, 왜 둘의 컬래버레이션이어야 하는지 제법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불과 하루를 앞두고 발매한 ‘실례해도 될까요’와는 사뭇 다른 서늘한 공기 속에서, 이미 식을 대로 식어버린 감정을 공허하게 풀어놓는 둘의 목소리는 싸늘하기까지 하다. 전작에서는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던 장재인의 까슬한 목소리도 한결 잘 어우러지는 듯하고, 특유의 깨끗한 음색을 이번에는 공허함과 서늘함으로 승화시키는 수호의 곡 수행력도 인상적이다. 그러고 보면 사랑의 시작이나 ‘가장 좋은 시간’을 노래한 적은 많았어도, 그 끝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풀어낸 적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권태에 대한 흔한 투정이나 성토가 아니라, 일말의 기대마저 모두 사라진 씁쓸함과 위태한 관계에 대한 접근법이 꽤나 신선하다. 두 뮤직비디오를 연이어서 감상하길 강력히 권한다.
심댱: 장재인의 묘함과 모호함이 초장부터 귀를 사로잡는다면, 수호의 공허한 차가움은 귀를 서서히 잠식한다. 사실 이들은 만남보다 차가운 변심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조합 같다. 지난겨울 스페셜 앨범 수록곡 ‘Stay’에서 감지했던 수호의 서늘함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Discovery를 붙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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