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하순 발매된 아이돌 신작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새나의 프리데뷔, 엔티크(N.Tic), 샤샤(Sha Sha)의 데뷔 음반을 비롯해, 위키미키, 브로맨스, CLC, 트랙스 & Lip2Shot, 지오(엠블랙) & 달(S.I.S), 아이스, SF9, 김성규, 우주소녀, 서은광(비투비) & 앤씨아, 전소연, 갓세븐의 신작, 그리고 김보형, 하이틴, 알케이(Arkay)가 참여한 “Music Is for All” 컴필레이션을 다룬다. 마노가 새 필진으로 합류했다.
마노: 곧바로 이어지는 타이틀곡과 마치 한 곡인 마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인트로 트랙 ‘Lucky’로 기세 좋게 문을 열고 나면, 당차고 생기발랄한 기운으로 가득한 ‘La La La’가 청자를 반긴다. 마치 클럽에서 시끌벅적 한바탕 놀고 난 후에 가볍게 리듬을 타며 쿨다운 하는 듯한 무드의 수록곡도 그 면면이 매우 준수하다. 전작의 트랙리스트가 앨범 아트워크만큼이나 컬러풀하고 다채로웠다면, 이번에는 가운데는 모노톤이지만 배경은 쨍한 빨강으로 마감한 앨범아트처럼 음악도 강렬하지만 절제되었다고 할까. 상대적으로 차분하지만 축 처지지는 않는 디스코풍의 ‘Iron Boy’, 묵직하게 터지는 하우스 리듬이 매력적인 ‘Metronome’, 산뜻한 마무리감을 전하는 ‘Color Me’까지. 단지, 아무리 발매일 기준으로 한창 개최 중이었다고는 해도 평창 동계 올림픽 폐막을 불과 사흘 앞두고 굳이 ‘Butterfly’를 마지막 트랙으로 넣어야 했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데, 아예 선공개 곡이 아니라 단발 이벤트성 싱글로 별도 발매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만 제외하면 나무랄 데 없는 EP. 앞으로도 당당하고 당차게 달려나갈 위키미키의 미래를 응원한다.
서드: 전략 수정은 없었다. ‘LaLaLa’는 “친구하지 말자 썸도 타지 말자”, “더 좋아한 사람이 무조건 지는 거래 널 굳이 이길 생각 없어” 같은 가사가 연애관계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당당하게 드러낸다. 전작 ‘I Don’t Like Your Girlfriend’의 기조를 이어가면서도 위키미키라는 그룹의 정체성을 이대로 밀어붙이겠다는 선언처럼 다가오는 곡이다. ‘기분좋게 휘둘리는 연애’가 있다면 이런 걸까.
심댱: 잘 빠진 인트로곡 ‘Lucky’에서부터 압도된다. 기세 좋게 차오른 에너지는 끝까지 이어진다. 가사의 미덕도 짚을 만하지만, 단 한 곡도 텐션을 놓치지 않고 연출한 무드를 선사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오히려 그 점이 위키미키의 주도적인 이미지를 도드라지게 한다. 새로운 여성상과 함께 이 흥미로운 몰입감을 계속 보여주길 바란다.
오요: 얼핏 들었을 때 웰메이드 트랙이라는 인상을 주는 몇 가지 공식이 있는데 그 중 하나로 그루비한(소위 말하는 ‘땜핑감’이 좋은) 기타/베이스 리프 위에 ‘시원시원한’ 가창력을 쏟아 붓는 방법이 있다. 위키미키의 ‘La La La’는 이러한 공식에 충실한 곡이다. 후렴구의 멜로디가 다소 평이하다는 점이 아쉽다.
조성민: 데뷔 앨범에서 어쩐지 모호하다고 느껴졌던 것들이 슬슬 또렷해지고 있다는 인상. 아직까진 ‘당차고 당돌한 소녀상’이라는 진부한 설정에 머물러 있는 듯하지만, 빈약한 사운드와 산만한 안무의 간극을 메우려 애쓰던 ‘I Don’t Like Your Girlfriend’와 달리, 이번엔 좀 더 본격적인 판을 깔고 달린다.
미묘: 두 명의 무용수가 출연하는 뮤직비디오가 재미있다. 곡의 진행에 따라 무용수들의 표정과 춤선도 변화한다. 비극적이고 관능적이지만 잔잔하던 6/8 박자가, 점차 격정으로 흐르면서 페르마타에 가까운 액센트를 취해, 매끄럽게 흐르는 멜로디에 효과적인 무게중심을 부여한다.
마노: 난폭하리만치 쏟아지는 힙합 비트 위를, 검은 킬힐과 검은 수트로 무장한 CLC가 거침없이 내달린다. 마치 ‘너’를 위해 차려입은 검은 드레스는 유혹을 위한 전투복이라는 듯. 랜디의 말대로 ‘아, 이번에야말로...?’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반갑게까지 느껴지는 과감한 변신. 하지만 아쉽게도 앨범 수록곡이 간만의 기세를 이어가지는 못 하고 있다. 다소 힘 빠지는 수록곡들 사이에서 그나마 ‘To the sky’가 눈에 띄는데, 라이브 현장에서 다 함께 방방 뛰며 즐겁게 노는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괜찮은 방향 전환이기는 하지만 아직껏 팀 컬러가 명확히 보이지 않는 것은 조금 위기일지도 모르겠다.
미묘: ‘Black Dress’는 공격적이고 매력적인 테마를 제안하지만 이에 결합한 멜로디나 훅은 조금 맥이 빠지고, 테마를 향해 진행되는 전개부도 ‘조이는 맛’이 부족해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다만 CLC의 곡과 콘셉트 소화력만큼은 멤버들의 탁월함이 어디에 있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인상적인 방향 전환이지만, 산만하고 관습적으로 백화점을 차린 수록곡의 면면을 비롯한 음악적 디테일이 큰 아쉬움을 남긴다. CLC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EP라면, 이미 여러 번 보여준 ‘큐브는 할 수 있다’ 역시 곧 뒤따르길 기대한다.
서드: ‘CLC의 단발 걔’라는 말이 소소하게 유행될 정도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멤버 장예은이 두각을 드러내는 점도 그렇고, 어떤 식으로든 팀에게 환기가 필요한 시점에 적절한 한방으로서의 스타일 전환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그룹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색깔이 뚜렷하지 않다 생각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모든 걸 검정으로 칠해 놓고 그 위에서 다시 그려 나가는 분기점이라 생각하면 앞으로의 행보 역시 기대가 된다.
오요: 한마디로 몹시 혼란스러운 일렉트로 하우스 트랙이다. 정돈되지 않은 소리 요소들이 넘쳐나는데 충분한 긴장감을 전달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빈약한 빌드업, 매너리즘이 느껴지는 조잡한 다운템포의 댄스 브레이크 등이 진부하게 뒤엉긴다.
마노: ‘걸그룹 데뷔조 멤버’(보도자료에서 이렇게 칭한다) 새나의, 일종의 프리데뷔 싱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컬 톤이나 음색이 무척이나 풋풋하고 싱그러운데, 가창력이 폭발적이거나 원숙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곡과 썩 어울린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다. 조금은 앳된 보컬이 봄바람처럼 살랑이는 멜로디 위에서 나비처럼 나풀거리는 가운데, 쟁글대는 일렉 기타와 낮게 퉁기는 베이스가 산뜻하면서도 마냥 가볍지는 않게 곡을 받쳐주고 있다. 그러고보니 어느덧 한 걸음 가까이 다가온 봄을 실감하게 하는, 큰 ‘한 방’은 없지만 꽤나 듣기 편한 트랙.
미묘: 평이한 곡을 만들기가 쉽지만은 않다. 평범한 미성의 보컬인데 안정감이 부족하고, 곡과 사운드에 영 달라붙지 않는다. 초조하게 듣고 있노라면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백업 보컬이 공간을 더 헝클어 놓는다.
심댱: 청아한 듯 톡 쏘는 목소리가 귀를 잡아챈다. 다만 믹싱 단계에서 더 신경 썼더라면 훨씬 완성도 높은 트랙이 되었을 것 같아 아쉽다. 백보컬이 종종 어긋나게 들리거나 단조롭게 들린다. 그럼에도 안무 버전과 아이컨택 버전, 그리고 댄스 커버 등 새나에 거는 연출이 많은 것으로 보아, 소속될 걸그룹에 기대하게 된다. 다들 그렇겠지만, 신경 쓴 만큼 더 잘될 것 같은 그런 인물이다.
마노: 아, 이것을 두고 진정 혼돈의 카오스라고 하는가 보다. 들으면서 내내 ‘제발 하나만 해, 하나만!’이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도입부에서는 드디어 초창기의 ‘다크다크’한 트랙스로 돌아오려나 싶어서 내심 기대하게 하다가, 이후로는 퓨처 EDM식 빌드업과 랩, 힙합 리듬, 막판에 갑자기 훅 치고 올라오는 기타 리프가 마구 뒤섞여 이게 도대체 뭔가 싶어진다. 요소들이야 그렇다 쳐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것들이 전혀 조화롭지 않으며 각각이 완전히 따로 놀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소속 아티스트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는 것이 SM 스테이션의 의의라고 하지만, 이건 좀 해도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말이다. 이런 ‘아무 음악 대잔치’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 기획을 굳이 꼭 이어갈 필요가 있는지 시즌을 넘어갈수록 의구심만 점점 더 깊어진다. SM 스테이션이라는 브랜드 자체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그나마 영어 버전이 조금 더 듣기 편한 것은 무슨 연유인지.
심댱: 인터넷 BJ로 데뷔했다고 해도 지오는 분명 좋은 보컬을 가지고 있다. 안쓰럽게 들리는 화자의 고백 후에 청자의 곤한 밤을 기원하는 잔잔함도, S.I.S의 달과의 매끄러운 호흡도 근사하다. 단조로운 게 아니라 단출해서 더 좋은 구성, 그리고 보컬에 기대어 discovery를 남긴다.
미묘: 마이너 걸그룹 시장에 힙합 기반의 강렬한 콘셉트가 회귀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힘있게 꾹꾹 눌러 가기 좋은 스윙 리듬, 뽕끼를 챙기되 비교적 무표정한 멜로디를 많이 사용한 점 등이 인상적. 그러나 배음 강한 신스의 활용이나 몇 번의 분위기 전환이 조금 뻔하게 느껴지고, 사운드 속에서 좀 빈약하게 들리는 보컬은 후처리와 멜로디 설계가 아쉽다.
오요: 다소 진지한 분위기였던 이전 싱글들과는 전혀 다른 레트로 디스코를 들고 나왔다. 아직 그룹의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이전과 전혀 다른 장르의 곡과 콘셉트를 선보일 필요가 있을까 싶다. 더욱이 이미 레트로 디스코에 기반을 둔 케이팝 트랙이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Mamma Mia’로 SF9만의 특별함을 느끼기는 다소 역부족이다.
조성민: 콘텐츠 제작자들은 ‘야민정음’을 단순한 유행어로 소비하는 것에 어느 정도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시간을 거꾸로’, ‘Midnight Road’와 같은 괜찮은 트랙들을 두고, 캐주얼한 사운드와 비장한 음색의 보컬들이 섞이지 못해 부딪히다가 결국 화해하지 못하고 끝나버리는 ‘Mamma Mia’를 타이틀곡으로 선정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소년이 언제나 장난스럽고 재기발랄해야 한다고 믿는 것 또한 편견이다.
미묘: 〈소년 24〉 출신의 상욱, 승후, 진서에 리드보컬 지온이 가세한 신인 보이그룹. 달콤하고 나긋나긋하다고는 하지만 상당히 ‘페미닌’한 접근인 듯하다. 상냥한 곡풍은 걸그룹 기준으로도 나이브한 편이고, 안무 역시 힘과 기세의 틈새로 조금씩 가미한 ‘섹시’한 동작들이 보이그룹 의 흔한 그것과는 질감의 차이가 있다. 잘 된 작품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특이하다. 비주얼계의 퇴폐미가 케이팝 표백을 받은 듯한 지온의 외모도 ‘케이팝에서 이런 얼굴을 본 적 있나?’ 싶어지는데, 다른 분들에게는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해진다.
마노: 서늘하게 가라앉은 공기를 품은 록 사운드와, 김성규의 카랑카랑하게 일직선으로 울려 퍼지는 보컬은 여전히 잘 어울린다. 트랙 각각의 퀄리티도 좋다. 김성규의 곡 수행력 역시 탁월하다. 단 하나 아쉬운 것은, 이 앨범이 김성규의 것인지 김종완의 것인지 헷갈린다는 점. 아무리 전곡을 한 사람이 작곡했다고 해도, 연차도 디스코그래피도 꽤 쌓인 솔로 아티스트만의 고유한 색깔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은 조금 치명적이지 않나 싶다. 단점이라곤 그것 하나뿐이어서 더더욱 안타깝다. 수록곡 중 ‘머물러줘’와 ‘끌림’이 귓가에 오래도록 머문다.
미묘: 로커가 만든 가요 또는 ‘댄스 팝’에서 곧잘 들리는 부조화가 있다. 록이 아닌 요소를 ‘끌림’이나 ‘Till Sunrise’에서와 같이 과장되게 차용하거나 직접 인용에 가깝게 가져오는가 하면, ‘Sentimental’, ‘뭐랬어’처럼 록 밴드의 언어를 전자악기로 ‘번역’하게 되기도 한다. 곡에 따른 기복은 있으나 이런 부조화는 적당한 생경함을 제공해 매력점이 되기도 한다. 또한 그것은 김종완의 ‘내가 낸데’가 아님과 동시에, 김성규가 가진 목소리를 선보이기에 괜찮은 토양이 된다. (그가 로커 출신 전권형 프로듀서들의 전형적 파트너처럼 아름답지만 납작한 팔레트를 가졌다고 상상해 보라.) ‘머물러줘’와 ‘True Love’는 상기한 장점들이 잘 조율된 트랙들이다.
오요: 여전히 김종완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김성규의 새 솔로 앨범이다. 언제쯤 김성규만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이쯤 되면 아티스트 본인에게 애초부터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일종의 체념마저 든다.
조성민: 단순히 크레딧에 참여율이 낮아 보인다고 해서 아티스트가 그의 앨범에 대한 책임을 방기했다고 볼 순 없다. 그의 말마따나, 훌륭한 뮤지션이 모두 싱어송라이터였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독립적인 앨범으로서의 오리지널리티를 찾기 힘들다는 점에 있다. 세 번째 솔로 앨범 치고는 나이브한 면모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김종완의 이름으로 채워진 크레딧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완벽히 동일한 두 요소 사이에선 극적인 개연성이 발생하기 힘들다. ‘True Love’는 ‘너여야만 해’의 후속작이라기엔 지나치게 똑같다. 따라서 김성규 신보에 ‘성장’과 같은 서사를 기대한 사람은 아마 무참히 배신당할 것이다. 디스코그래피 사이에서 발생하는 텐션을 다시 찾아오는 것이 가수 김성규에게 주어진 과제 아닐까. 부디 그동안 참여했던 타 아티스트의 싱글이나 ‘지워지는 날들’과 같은 발라드 트랙에서 대안을 발견해 내길.
미묘: 환상적인 세계 속에서 절박하지만 의지 굳은 캐릭터를 선보인다. 오밀조밀한 사운드와 재지한 화성, 80년대 팝스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던 듯한 로맨틱한 향취 등이 애니메이션 분위기를 잘 살리면서 우주소녀의 변별점을 마련한다. 다채로우면서도 무리 없이 구성한 수록곡들도 탄탄하며, 보다 거만하게 한 발 뒤로 물러서는 듯한 엑시의 래핑도 매력적이다.
서드: ‘꿈꾸는 마음으로’는 그룹의 핵심 정서라 할 수 있는 ‘힘찬 서글픔’이 잘 드러난다. 애니메이션이라도 보는 듯 2D 감이 한껏 풍기는 뮤직비디오와 함께 지금 우주소녀만이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담은 우주소녀다운 곡이다. 다만 곡이 가진 웅장함에 비해 퍼포먼스가 아주 조금 심심하게 다가온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요: 꾸준히 만화적 세계에 기반을 둔 곡과 콘셉트를 선보이고 있는 우주소녀다. 이번 싱글도 그에 충실한 모양새인데 그런 것보다도 상당히 성실하게 만들어진 곡이라는 점이 인상깊다. 특히 조바꿈이 상당히 많이 진행되는데 사실 이러한 조바꿈으로 얻은 효과가 그리 크지는 않아도 (전체적인 톤에는 큰 변화가 없다) 공을 많이 들인 곡임은 틀림 없어 보인다.
조성민: 마법소녀를 보고 자란 세대에겐 이 곡을 부정할 재간이 없다. 뮤직비디오 화면에 짙게 칠해진 애니메이션 필터를 제외하고도, ‘꿈꾸는 마음으로’는 정확히 20세기 말 전후로 일본 서브컬처를 향유해온 세대를 겨냥하고 있는데, 특히 도입부에서 한껏 얇게 울리는 드럼 사운드는 완벽히 ‘덕후 저격’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까지 들린다. 앨범 수록곡 또한 일정한 ‘애니메이션 OST’ 무드를 유지하는데, 마치 통일감 있지만 디테일은 모두 다른, 섬세하게 연출된 우주소녀의 무대 의상을 보는 기분이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 아닐지.
심댱: ‘이 작은 공간 속에서 큰소리로 외쳐보는 노래’라는 설정이 인상적인데, 만일 이 노래의 배경이 코인 노래방이라면 더 처량하고 슬플 것 같다. 이 노래는 듣기보다는 부르기에 더 적합한 듯하다. 울먹이는 듯한 서은광과 깨끗한 앤씨아의 조화,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스케일은 한국인의 정서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특히 브리지에서부터 마지막 후렴구까지 이어지는 고음이 실로 노래방에서 부르고 싶은 도전곡처럼 들린다. 애절함과 고음 테크닉을 잘 살릴 수 있다면 부르고 싶은 곡.
마노: 이제는 인공지능이 작곡까지 하는 시대가 되었다. 정확히는, 인간이 곡의 길이, 장르 등의 디테일을 지정해주면 그 안에서 인공지능이 음을 만들고 작편곡을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영국의 인공지능 스타트업 Jukedeck과 한국의 엔터아츠가 협업하여 런칭한 AI 음악 레이블 A.I.M에서 발매하는 첫 음반으로, 스피카 출신 김보형과 하이틴, 〈프로듀스101〉 시즌2 출신 김용진, 정동수(Arkay) 등이 참여했다. 타이틀곡 ‘Moonlight’의 경우, 글쎄. 멜로디라인이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멜로디가 꽤나 까다롭게 느껴지는 것이 인공지능인 탓에 보편적인 인간의 음역대까지는 고려하지 못한 것일까 싶기도 하다(반쯤은 농담이다). 사운드도 왠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와중에 그나마 김보형이 걸출한 보컬로 곡을 ‘캐리’하고 있다는 생각만 든다. 하이틴과 김용진이 호흡을 맞춘 ‘Digital Love’는 상대적으로 꽤 듣기 편한데, 두근거리는 사랑을 표현한 상큼한 사운드에 하이틴의 풋풋한 보컬과 김용진의 경쾌한 랩이 상당히 좋은 합을 보이고 있다. 손아름과 정동수가 가창 뿐만 아니라 작편곡에도 참여한 ‘Our Voice’는, 단조로운 멜로디도 그렇지만 두 사람의 목소리가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고 겉돌기만 한다는 기분이 든다. 흥미로운 기획이긴 한데, 성공적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 드는 EP. ‘음악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기획의도에는 어느 정도 부합하는 듯도 싶지만.
마노: 멤버들의 가창력도, 악곡 자체도 거슬림 없이 준수하다. 콘셉트도 크게 튀지 않고 무난하다. 문제는, 그것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심하게 무난하다는 것이다. 크게 모난 것도 부족한 것도 없는데, 굉장히 무색 무취 무미한 그런 느낌. 어디선가 많이 본, 봤어도 너무 많이 본,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안일하기 짝이 없는 프로덕션으로는, 확실히 눈도장을 찍어야 할 신인에게 어떠한 힘도 줄 수 없음을 모를 리도 없는데 말이다. 답답해서 크레딧을 살펴보니 맙소사, 신사동호랭이였다. 이런 따분하고 고리타분한 ‘양산형 걸그룹 팝’은 이제 슬슬 그만두실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시그니처 사운드와 자기복제는 엄연히 다르다.
미묘: 신사동 호랭이가 ‘그냥 했을 때’ 나오는 최소한과 최대한을 함께 보여주는 트랙이란 생각이 든다. 곡으로서, 아이돌 콘텐츠로서 갖춰야 할 기본을 충족하고, 너무 심하지 않은 뽕끼와 훅을 갖고 있다. 다만 곡의 흐름이 좀 더 정리됐다면 훨씬 효과적일 수 있었던 곡이라고 보는데, 느긋하게 조이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듯 빠르게 치고 넘어가는 호흡이 상당한 쾌감을 예고하지만 다소 어수선한 가운데 에너지가 새어나가고 말기 때문이다. 보기보다 성숙한 풍의 음색들이 종종 귀에 띈다.
마노: 마치 칭얼대듯, 어리광부리듯, 시쳇말로 ‘찡찡거리는’ 듯한 보이스톤이 권태기를 성토하는 가사와 퍽 잘 어울린다. 징징대는 톤이지만 크게 듣기 거슬린다는 인상은 없고, 제목처럼 관성적이고 지루한 무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끌고 가면서도 그 안에서 ‘표정’이 쉴 새 없이 바뀌는 덕에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곡의 주도권을 확실히 쥐고 시종일관 능수능란하게 화자를 연기해 나가는 전소연의 곡 장악력은 분명 발군이다. 단지, 전소연이라는 아티스트가 발산하는 특유의 에너지를 좋아하는 리스너로서 뭔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다음을 기대해본다.
미묘: 어딘지 인디-DIY 같은 질감으로 수다스러운 듯 풀어나가는 전개가 그야말로 ‘재미있다’. 심플한 모티프로 지루하지 않게 호흡을 조절하며 종알대듯이 랩을 들려주는 곡. 〈언프리티 랩스타〉에서부터 전소연이 너무 ‘당돌한 어린이’ 이미지 하나만으로 밀어붙인다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마치 문 손잡이 하나만 갖고도 몇 시간을 혼자 놀 수 있는 어린이 같이, 자신만의 다소 유치하지만 엉뚱하고 세세한 세계를 표현하는 듯한 방향성에 납득이 간다. 캐릭터에 밀착하면서 여느 여성 래퍼들과 확연히 다른 ‘목소리’를 들려주는 래핑도 인상적. 전소연의 성장에 많은 기대를 걸게 한다.
미묘: 프리코러스의 끝에 보컬 화성을 대뜸 후려치는 순간, 너무 즐거워 터지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장난스러운 피치시프트 보컬 샘플 모티프, 효린과의 대화가 완벽한 배색을 이루는 유려한 보컬 파트, 탄력적으로 사방을 찔러대는 훵키 비트의 후렴, 다양하고 다이내믹하며 화려하게 짜릿하다. Discovery는 ‘선공개 곡이라고 함부로 봤다가는 큰 호통을 들을 것이야’라는 의미에서.
심댱: 갓세븐이 펼치는 힙합 비트에 맞춰 효린의 아이돌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랜만에 곧 다가올 신보의 선공개 곡이라고 하는데, 시그니처와 같은 기계음과 그루브가 마치 데뷔 초를 연상시킨다. 갓세븐 최초의 컬래버레이션 작업이라는 사실과 함께 그간 들어왔던 갓세븐의 노래 중 캐치한 편에 속해 신보의 톤이 어떨지 기대하게 된다.
오요: 3월 초에 발매되는 새 앨범의 선공개 싱글로 효린과의 호흡도 훌륭하거니와 그다지 과하지 않은 선에서 적당히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R&B 팝이다. 이 정도 수준의 곡이 선공개라면 곧 발매될 앨범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 아이돌로지 10주년 : 현 필진의 Essential K-pop 플레이리스트 - 2024-05-13
- 아이돌로지 10주년 : 아이돌로지는 사랑을 싣고 (前 필진) - 2024-04-29
- 아이돌로지 10주년 : 아이돌로지는 사랑을 싣고 (미묘) - 2024-04-15
3 replies on “1st Listen : 2018년 2월 하순”
미묘 씨, 엔티크의 앨범을 평할 때 멤버 지온의 외모 발언은 평가와 전혀 상관이 없는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의견 고맙습니다. 글에서의 외모 언급은 해당 멤버의 인상이 매우 독특해서 눈에 띈다는 취지이며 그렇게 쓰여졌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의 외모를 평가하거나 지적하는 내용이 아님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따진다면 아이돌 ‘관상’의 스펙트럼이 넓어질 수도 있는 지점이라 흥미롭게 본 편입니다.) 분명 이는 음반에 대한 평가와 전혀 무관한 부분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없지 않은 부분이지만) 아이돌 음악에 관한 담화에 대중에게 비치는 이미지나 흥행 등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여 조심스레 언급될 수 있는 영역이라 보았으며, 특히 신인급 아이돌의 경우 눈길을 끌 기회나 이야깃거리가 제공되는 것 역시 아이돌 음악 웹진이 담당할 수도 있는 기능이라 생각했습니다. 타인의 외모를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것은 품위 없고 폭력적인 행동이라는 데에 동감합니다. 우려하시는 바를 알 것 같습니다. 더 조심하겠습니다.
답글 달아주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