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걸프로젝트와 NCT 드림의 데뷔 음반으로 맞이하는 8월 말 새 음반 필진 단평. 두 신인 외에도, 밤비노, VX, 로미오, 박지민, 투엑스, 라붐, 스피카, 헤쎄, 효연&민&조권, 뉴이스트, 옴므, 써니힐, 마마무의 신보를 다룬다.
유제상: 누가 들어도 블락비의 'HER'가 연상되는 '너 뭐야!'가 수록된 싱글. 비트나 랩의 밀도, 멜로디까지 묘하게 비슷한 느낌을 주는데 한 곡은 재미있고 한 곡은 그렇지 않은 것은 아마도 착 감기는 후렴구의 유무나 랩 메이킹의 차이 때문이려나. 뮤직비디오는 근래 비교할 상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여성향으로, 캐릭터 확실한 웹툰 캐릭터들이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일이라지만 이렇게 취향이 아닌 물건을 꾸역꾸역 참아내면서 세 번 정도 반복해서 보노라면 힘들어 죽을 거 같다. 개강도 했는데.
유제상: 등판 간격이 짧아서 이렇게 자주 나와도 되나 싶을 정도로 소처럼 일한 로미오의 여덟 곡이 꽉꽉 차 있는 EP. 타이틀 'Treasure'는 기존 로미오의 곡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뽑혔는데, 이는 아마 이들이 나아갈 방향이 전작인 "Miro"에서 어느 정도 잡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곡은 샤이니 중기와 빅스 초창기의 가운데쯤에 위치하는데, 외국 작곡가의 곡을 레퍼런스로 삼으면서도 속도감을 높이고 곡을 더 긴박하게 몰고 가 이들과의 차이점을 만든다. 네 번째 트랙인 'Hello'도 듣기 좋은 곡이고, 그동안의 노력이 보상을 받는 걸까? Pick!을 줄 수밖에 없겠네.
돌돌말링: 구성이 알찬 EP. 타이틀곡으로 비교적 가볍고 심심한 '다시'를 고른 것은 최근 백아연이나 백예린 등이 좋은 성적을 거둔 데서 신경을 쓴 JYP 엔터테인먼트의 전략인 것 같지만, 그 곡보다 다른 곡들이 훨씬 더 박지민의 디바스러움에 잘 어울린다. 2003년쯤 그룹 아이돌 열풍이 잦아들고 비와 세븐 등을 위시한 남성 솔로 시대가 왔었듯, 지금이 가면 여성 솔로 시대가 오지는 않을까 하고 가끔 상상해보는데, 박지민은 그 조류가 오면 단연 중요한 역할을 할 것만 같다. SM의 태연 솔로 작품들이 갖는 톤이나 안정감을 좋아하는 청자라면 박지민의 새 음반도 즐겁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유제상: 1.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박지민의 이름을 달고 나온 노래 중에 나쁜 것은 없었다, 거의. '다시'도 마찬가지이다. 2. 인디 음악의 방법론을 몇 가지 가져왔다. 멜로디를 풀어내는 방식이나 가사의 내용 같은 것.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 자본의 힘이 들어갔기에 '때깔'은 좋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확실히 플러스. 아니 때깔이 좋은 것이 어느 경우에도 플러스가 아닌 적은 없었다. 4. 스타일링의 문제인데, 인종주의적인 측면을 떠나서 이러한 '백인 코스프레'가 상업적인 효용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다. 태연이 이런 부분에 있어서 확실한 정답을 보여주었고. 5. 동양인이 서양인인 척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 하시겠지만 요소요소의 디테일이 과거와는 확실히 다르다. 그리고 소비층인 앳된 여성들은 이를 확실히 좋아한다. 이는 현실이다.
햄촤: 그동안 15& 활동으로 더 익숙했던 박지민이 이제 갓 스무 살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작사와 작곡에도 참여하며 자신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모습에 또 놀라게 된다. 감히 눈부신 성장이라 불러도 될까. 〈케이팝 스타〉를 시청할 땐 그녀의 파워풀한 보컬이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하는 데 오히려 단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 앨범을 들으며 스스로 바보 같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록된 다섯 곡이 모두 고른 퀄리티를 지닌 데다 곡마다 개성도 뚜렷해 만족스러운 EP. 박지민의 '21', 또 '22'는 어떨지 궁금하고 또 기대된다. 타이틀과 더불어 인상적으로 들은 곡은 'Answer'.
유제상: '꽂혀'는 최근 유행하는 뮤지컬 풍의 노래로, 브라스를 깐 위로 뭐가 바쁜지 지껄이듯 노래가 재잘대며 흘러간다. 마마무를 연상하면 오케이...는 아닌 게 후렴구가 너무 트로트 같다. 어찌 되었건 제목과는 달리 전혀 안 꽂히는 노래. 그것보다 말하고 싶은 것은 뮤직비디오의 언캐니함인데, 평상복 차림임에도 둔부를 비정상적으로 강조하는 도입부를 넘어서면 뜬금없이 근육질의 남성이 옷을 갈아입는 탈의실을 보여준다. 그 뒤 여주인공은 커피를 내리고, 근육남은 요리를 한다. 뭘 말하고 싶은 걸까나. 리뷰 전에 평자는 투엑스를 금번 회차의 밤비노처럼 섹시 위주의 걸그룹으로 생각했건만, 뮤직비디오 감상 이후에 드는 생각은 이도 저도 아닌 무언가다. 다만 이 뮤직비디오가 남성 판타지를 만족시킬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맛있는 파히타: 라붐은 늘 심기일전하는 느낌이지만 이번에도 아쉽다. 최근의 트렌드를 잘 짚어낸 통통 튀는 사운드의 '푱푱(Shooting Love)'은 애석하게도 코러스의 구태의연함에서 실망감을 준다. 그러나 앨범 전체가 텐션을 유지하며 일관적으로 달리고 있는 점은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딩동(Ding Dong)'의 거침없음이 더 마음에 들었고, 'Like U Love U (소연 with YUN of LUNAFLY)'의 청량감도 즐길만한 부분이었다
햄촤: 늘 무언가 한두 군데가 아쉬운 느낌의 라붐. 이번 '푱푱' 역시 거부감 없이 신나는 곡이지만 그 속에서 라붐만이 가진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뮤직비디오의 비주얼, 멤버들의 포지션, 의상 콘셉트와 안무 등 모든 부분이 흠잡을 데 없으면서도 한편으로 무난함에 그쳐서 팀만의 확실한 개성을 조금이라도 더 심어두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끝내 떨칠 수 없다. 고심 끝에 결국 안전한 길을 고수하고 있다는 인상. 이제는 조금 모험을 하더라도 그룹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다시 각인시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 수록곡 중에선 루나플라이의 윤과 멤버 소연의 듀엣곡인 'Like U Love U'를 추천한다.
맛있는 파히타: 〈THE IDOLM@STER〉 시리즈의 한국 프랜차이즈이자 드라마 판인 〈THE [email protected]〉 작품상의 아이돌그룹인 리얼걸프로젝트의 첫 싱글이라는 장황한 소개가 붙어오지만, 매우 담백하고 힘찬 곡들로 구성되어 있어 부담스럽지 않다. 케이팝의 클리셰가 걷어내져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있지만, 오히려 최근 케이팝 아이돌 걸그룹들이 일본 서브컬처계의 분위기를 수용하고 있는 점이 있어 한국과 동떨어진다는 느낌도 덜하다. 큰 임팩트는 없지만 자연스럽고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이 매력. 다음엔 무엇이 나올지 궁금해진다.
유제상: 일단 들은 느낌은 '이게 아이마슨가 하는 그거구마이...'라고 해야 하나. 평자는 오타쿠지만 우주세기 오타쿠지 〈아이돌 마스터〉나 〈러브 라이브〉는 진짜 1도 모른다. 아무로 레이가 탄 '공식 기체' 이름은 줄줄 외워도 프로듀서가 누굴 말하는지는 전혀 모른다구... 모르는 입장에서 곡과 뮤직비디오를 설명하자면 방향성을 'I.O.I 더하기 여자친구'처럼 잡았다고나 해야 되나. 더 이상 옛날처럼 숨을 필요 없이 메인스트림에서 오타쿠 파워를 풍풍 뿜어대는 게 감개무량하기도 하지만, 분명 이들의 노래를 듣고 뮤직비디오를 본 한국의 수용자는 여자친구의 '너 그리고 나'가 더 일본노래 같다고 할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변했다.
돌돌말링: 드디어, 드디어 스피카의 신보가 나왔다. 그룹이 작년 말 CJ E&M에 새 둥지를 튼 지 어언 9개월만, 마지막 완전체 활동으로부터는 장장 2년 7개월 만이다. 새 싱글 "Secret Time"은 지금껏 B2M에 있을 때 갈팡질팡했던, 예쁘고 가창력도 좋으니 뭘 해도 어울리겠지 싶었는데 끝내 완벽하게 맞는 옷을 찾지는 못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멤버 김보아의 시원시원한 가사에 외국곡을 매칭해 성공적인 파티 앤섬을 만들었다. 다섯 명 모두 걸출한 가창력을 자랑하나 톤들이 꽤 달라서 곡에 따라 충돌하거나 누구는 도드라지고 누구는 묻히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번 곡은 각자 파트가 딱 자기 것 같다. 특히 보형의 보컬에서 걸쭉함이 줄어든 게 곡에 잘 어울린다.
유제상: 평자는 마감에 밀리면 오히려 일을 못하는 타입이라 보통 퍼스트 리슨은 마감 하루나 이틀 전에 미리 작성하고 한 차례 윤문을 거친 뒤에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따라서 업로드된 파일을 수정하는 일도 없는데, 스피카의 이번 싱글이 이러한 평자의 철칙을 깨버렸다. 사실 이 앨범은 처음 이번 회차를 쓸 때 평자의 글에선 누락되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스피카면 누군가 쓰겠지...'하는 안이한 생각도 있었지만, 1년이 넘도록 활동이 없고 멤버는 〈복면가왕〉 나오고 해서 이미 기운이 빠져버린 게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Secret Time'은 이러한 선입견을 보기 좋게 비웃는 곡으로, 근래 가요계를 통틀어 보기 드문 애시드함이 소름 끼치도록 뿜어져 나온다. 스피카는 그동안 이런 곡 안 했는데 어찌 이런 일이, 하고 작곡가를 찾아보니 아니라 다를까 스웨덴 사람들. 역시 햄과 댄스곡은 물 건너온 게 좋은 건가 싶기도 하고, 이런 곡으로 다시 활동을 하다니 역시 노래를 잘하면 언제고 기회가 있구나 싶기도 하다. 뭐니뭐니해도 후렴구의 "We had a secret, We had a secret, (한 박자 쉬고) Time (빵!)"이 너무 흥겹다. 넥센에게 3루타를 허용해 결국 채널을 〈SBS 인기가요〉로 돌리게 만든 윤규진 선수, 고마워요!
유제상: 낮게 깔리는 음이 오래 지속되는 색다른 도입부로 인해 '오 새로운 도전인가'하며 반가워한 것도 잠시, 조악한 노래의 녹음 상태가 듣는 이를 경악하게 만든다. 특히 피아노 연습 앱 같은 조악한 건반 소리의 두드러짐은 누구든 질리지 않을 수 없을 터. 이번이 세 번째 음반인 데다가 '남자사람친구'가 실린 이 판은 무려 다섯 곡이나 수록된 EP인데 어찌 이런 일이... 의도적인 키치함을 노린 것 같으나 그냥 엉성해 보이는 뮤직비디오는 덤이다. 이들이 EP를 만들 당시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고 믿고 싶다.
맛있는 파히타: "SM과 JYP의 콜라보"라든지 효연, 민, 조권 조합은 화제를 불러올 만한 이슈임에는 분명하지만, 이미 효연과 민은 오랫동안 같이 팀업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나의 관심사는 "혼성"이라는 측면이었다. 한국에서 혼성의 팀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역할을 부여받는 등 온도차이를 내포하고 있었지만, 이 조합에서 조권에게는 전혀 온도차이를 느낄 수 없고, 세 명의 멤버가 공히 퍼포먼스에 녹아들고 있다. 스테레오타입을 뛰어넘은 섹시함을 전달하는 측면에서 이 곡은 조권의 퍼포먼스를 확실히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꼭 뮤직비디오를 보고 조권을 확인했으면 좋겠다.
돌돌말링: 이 셋의 조합이라니 너무 신선하고 좋았다! 무슨 계기로 만들어진 유닛인가 알아보려고 네이버 브이앱 영상을 찾아봤는데, 자발적으로 모인 것은 아니고 셋이 연습생 시절부터 잘 알고 지낸 사이인 데서 착안해 회사 측에서 기획을 해준 것으로 보인다. 막상 모여서도 '우리 셋이서 뭘 할 수 있지' 하고 어리둥절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세 멤버 모두 자기 그룹에 있었던 모습을 상상도 할 수 없게끔, 이렇게 예상 못 한 조합으로 묶어놓으니 캐릭터가 확 산다. 다들 아담해서 어린 〈수어사이드 스쿼드〉 같은 느낌이 났다. 또 모일 것 같지는 않지만, 다음 번이 있다면 좀 더 자기확신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JYP가 제공한 노래는 특별할 건 없었다.
유제상: 아마 저번 회차였었나 평자가 SM 엔터테인먼트의 북유럽 댄스 넘버 성애를 지적하며 어떤 사명감 운운하여 어떤 이들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거 같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 대안은?'에 대한 답을 (박진영의 손을 빌려) 당연하다는 듯이 내어 놀랍다. 'Born to be Wild'는 들으면 마냥 흥겹고, 특히 힙합 비트가 두드러진 후렴구의 긴박함은 근래 들었던 곡 중 최고인 듯. 걸그룹 유닛의 센터임을 자처하고 있는 조권의 존재감 또한 이 노래를 통해 빛을 발한다. 조권이며 민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감전당한 듯 털기 춤을 겨룰 때 '그러지 말고 같이 판이라도 내시지'했던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런 훌륭한 결과물이 나오다니. 이러니 70년대 생이면 그 지긋지긋함에 육두문자부터 나올 JYP의 피처링도 감미롭게 들린다. 진짜루.
햄촤: 2016년이 되니 SM과 JYP의 콜라보레이션 같은 걸 다 보게 된다. 아마도 '끼'라면 각자 소속됐던 그룹 내에서 빠지지 않는 세 명을 모은 프로젝트 유닛이 아닐까 싶은데 세 사람의 조합이 의외로 자연스럽고, 조권과 민은 각자의 사정으로 활동이 뜸했던 터라 유난히 반갑다. 흥겨운 후렴구만 기억에 남는 곡이라는 점이 아쉽기도 하지만 무대 위에서 맘껏 춤추는 세 사람을 보고 있으면 아무렴 어떠랴 싶은 마음이 든다. 박진영 작곡임에도 기존 JYP의 색깔과는 사뭇 다르면서 작곡자의 자아가 덜 두드러진 느낌이라 여러모로 흥미롭다. 무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청일점인 조권. 앞으로 그에게 더 많은 일거리를 주시길 바라며, 두 회사의 협업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맛있는 파히타: 10대의 어린 소년들이 무대에 서고 쇼비지니스계에 들어서는 것에 대한 비판은 늘 있었지만, 사실 꽤 오랫동안 이루어지고 있었다.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소년의 보컬은 팝씬에서는 하나의 장르에 가까웠는데, 마이클 잭슨이 그러했고,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조이 매킨타이어, 핸슨 형제들, 닉 카터의 동생 아론 카터, 그리고 근래에는 저스틴 비버가 그랬다. 어린 소년은 오히려 아이돌의 정수에 가까운 것이라는 느낌이 있다. 한국의 10대 말 ~ 20대 초의 남자아이돌이 공격적인 콘셉트에서 잠시 쉬어갈 때 자주 시도하는 소년풍의 의상과 메이크업은 다소 위화감을 주는데 비해 '진짜' 어린 소년들에게는 이런 치지(cheesy)함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 NCT 드림은 매우 적절한 지점에 놓여진 팀이다. 자연스러운 풋풋함과 더불어 장난기 가득하고 상쾌한 곡, 그리고 호버보드 안무까지 케이팝 아이돌씬이 그동안 놓쳐버린 아이돌의 정수가 여기에 있다. 더불어 이들을 포함하는 NCT의 범위는 어디까지 확장될 것인지도 사뭇 궁금해진다. NCT는 정말이지 한국에서 안 하던 것만 하고 있다.
돌돌말링: 쇼와시대에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안무를 하던 '히카루겐지'라는 남자 아이돌그룹이 있었다. 쟈니스 특유의 뽕삘 노래를 주로 불러서 딱히 취향은 아니지만, '어린 소년들이' '안무를 맞춰' '롤러스케이트를 탄다'는 요소 자체에 아이돌 무대의 어떤 이데아 같은 게 존재했다. NCT 드림은 히카루겐지의 이 이데아를 뽑아다가 더 좋은 노래, 더 좋은 춤을 매칭했다. 누구든 어떻게든 반응할 수 밖에 없겠다. 조카뻘인 나이가 나를 조금 심란하게 하긴 하지만, 이들 또래의 리스너들에게는 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기대가 된다. 수만옹, 드디어 해내셨습니다.
유제상: 'Chewing Gum'은 일단 SM산 밝은 댄스뮤직의 기조를 지니고 있다. 그러면서도 NCT라는 브랜드가 지닌 '긴장감'이랄까, 하여튼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두려운 기분이 잘 살아있어 '아, 이런 식으로 그룹을 전개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듣는 이의 머릿속에 들도록 만든다. 이렇게 각 그룹을 전개하고 보니 SM 엔터테인먼트가 그리는 케이팝의 미래가 무엇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두 번째 트랙으로 실린 'Chewing Gum'의 중국어 버전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덜덜덜.
햄촤: 얼핏 샤이니와 f(x)의 초기 이미지를 섞어놓은 듯, 처음엔 과하게 가볍지 않나 싶다가도 이내 반복적인 후렴구가 입에 붙는 매력이 있는 곡. 평균 연령이 어리다는 점을 강조하는 유닛인 만큼 굳이 기교로 보컬을 꾸미지 않는 것이 인상적인데, 자칫 미니멀한 반주와 더불어 허전하게 들릴 수 있는 사운드를 촘촘하게 쌓아 올린 화음으로 풍성하게 만든 세심함이 돋보인다. 또한 NCT U와 127에 이어 이번에도 활약하고 있는 마크가 눈에 뜨인다. 상대적으로 무거운 곡이었던 '일곱 번째 감각'이나 '소방차'에선 그의 랩이 가볍게 숨통을 터주는 듯한 역할이었다면 거꾸로 이 곡에선 앳된 목소리들 사이에 중심을 잡아주는 듯한 반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차후 계속될 NCT의 프로젝트 속에서 어떤 종횡무진 활약을 보여줄지 더 기대하게 만든다. 예상치도 못했던 세그웨이를 이용한 퍼포먼스까지, 하여간에 NCT 프로젝트는 올해 케이팝 씬에서 가장 흥미로운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맛있는 파히타: 언젠가부터 뉴이스트, 그리고 소속사인 플레디스가 본격적인 팝을 추구하는 것을 느끼고 있다. 특히 뉴이스트의 전작인 "Q is." 앨범은 그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상적인 앨범이었다. 새 EP인 "Canvas"는 그런 면에서 전작을 잇고 있는데 유려한 팝/일렉트로닉 트랙들이 크게 무리하지 않고 전반적으로 좋은 팝의 분위기를 잃지 않는 느낌이다. "Q is." 앨범과 더불어 뉴이스트가 어떤 음악을 하는지 규정하는 듯하다.
오요: 동시대 가장 새로운 음악 장르의 특징만을 뽑아와 어떻게든 케이팝으로 가공해내는 점은 케이팝의 장기였다. 그러나 최근 발매되는 케이팝 곡들을 듣다 보면 공통적으로 조급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최근 많은 케이팝이 레퍼런스 삼는 양대 장르-전자음악과 힙합이 쏟아져 나오는 속도를 케이팝이 따라잡기 버거워진 건 아닐까. 뉴이스트의 다섯 번째 미니앨범 "Canvas"는 분명 재밌는 전자음악 음반이라 할 수 있지만 자세히 트랙들을 뜯어보면 완성도 높은 전자음악이라 하긴 어렵다. 휘발성 높은 전자음악 요소들 중 그나마 귀에 오래 남는 몇 가지 소스와 기법(앨범 전반에 걸쳐 과도하게 사용된 사이드체인이 특히 그러하다)을 급하게 부린 결과 수많은 소리들이 잡다하게 엉켜버렸다. 거친 붓질로 너무 많은 색들이 한꺼번에 쏟아진 캔버스를 보는 기분이다. 물론 그런 그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원전을 깡그리 무시하고 닥치는 대로 뜯어와 내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조립하는 데서 오는 통쾌함 같은 것도 분명 이 음반에 존재한다.
돌돌말링: 옴므의 신곡이 디지털 싱글로 나왔다. 방시혁과 방탄소년단의 랩몬스터가 함께 프로듀싱한 곡이라고. 별도의 비트 없이 건반 리듬으로만 끝까지 끌고 가는 3분 미만의 소품 같은 곡이다. 멜로디는 방시혁이 여태 옴므나 에이트 등을 통해 소개한 풍과 비슷하고, 가사는 랩몬스터의 영향력이 많아 보인다. 발라드에 붙이기는 조금 어색한 단어 셀렉션인데 그게 짧고 단순한 곡을 사뭇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지점도 있다.
오요: '베짱이 찬가', '백마는 오고 있는가' 같은 그룹의 대표곡이 분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레 아예 다른 장르로 돌아왔지만 그닥 어색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뛰어난 가창력 덕분에 그간 해온 곡들과 다른 장르의 곡이라 해도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멤버들 덕분이다. 그러나 곡만 들었을 때 과연 이게 써니힐인지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의문이다. 써니힐 정도의 경력을 자랑하는 걸그룹의 새 음반을 들으면서 자꾸 다른 아티스트의 이름이 떠올라 괜히 미안해졌다.
돌돌말링: 마마무가 콘서트 〈MOOSICAL〉에서 선보인 유닛 곡 'Angel'과 'DABDAB'으로 음원을 발매했다. 아이돌 그룹의 유닛 활동이란 주로 대인원 그룹이 취하는 전략이지만, 마마무는 네 명이라는 적은 멤버 안에서도 보컬 라인과 래퍼 라인으로 나눠 각각 6/8박의 슬로우템포 R&B와, 스윙 애들립을 루프로 돌리는 힙합곡을 발표했다. 이번 싱글은 솔라-휘인, 그리고 문별-화사이지만, 네 명 멤버들 모두 퍼포먼스 실력이 훌륭해서 어떻게 셔플해도 좋은 조합이 나올 것 같다. 두 곡을 한 싱글로 꼭 함께 들을 필요는 없다. 두 곡에 연속성은 없고, 그냥 각자 독립된 분위기의 악곡들이기 때문. 'Angel'과 'DABDAB' 모두 보컬 파트의 비율, 랩의 비율 정도를 제외하고는 완전체 마마무일 때와 비슷한 노래들이라서, 유닛이라 해서 딱히 색다르거나 낯선 느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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