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첫 열흘, 1월 초순에 발매된 아이돌 신작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보너스베이비, AOA, 신화, S.E.S., 일급비밀, 우주소녀, 에이프릴, MIXX, 바시티(Varsity), NCT 127, 브로맨스, M.A.S 0094, 슬옹, 트랙스, 라비, 소나무, 에이데일리의 새 음반을 다룬다.
돌돌말링: 마이비가 해체하고 마루 기획에서 내놓은 신인 그룹이다. 누구나 느낄 첫인상은 AKB48 등으로 위시 되는 일본 아이돌풍의 하이텐션 음악이라는 것. 리듬과 전개가 클리셰적이다. 그래도 케이팝 아이돌답게 일본 아이돌보다 안무는 훨씬 스포티하게 잘 소화한다. 앞서 이 장르를 한국에 이식해와서 히트한 최근 그룹으로는 역시 여자친구를 들 수 있을 텐데, 가사나 편곡, 마이너 스케일 등으로 서정성에 많은 중점을 두는 여자친구와는 달리 보너스베이비의 '우리끼리'의 정서는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오프닝 곡의 대책 없는 밝음을 더 닮았다. 교복을 모티브로 한 무대 의상과 염색하지 않은 긴 생머리를 내세우며 '학생다움'이라는 수식어로 홍보 중이던데, 이런 부분은 미리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비평을 거치며 비판받았을 부분이고, 굳이 이 부분을 집어서 언급하고 홍보한다는 점에서 '일상성을 성적 대상화 한다는 사실을 숨기려는 노력조차 안 한다'는 인상을 준다. 게으르고 눈치도 없는 기획. 두 개의 싱글을 내고 사라져간 마이비가 꿈인 것만 같다.
오요: 어느 그룹이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고 나면 그 이후 그 아류 그룹들이 쏟아져 나오고 보너스베이비의 '우리끼리'도 그 범주에 속한다. 차라리 이렇게 노골적으로 차용하는 편이 덜 민망하지만 처음 들었을 때 사실 어느 일본 2D아이돌의 곡을 리메이크라도 한 것인가 싶었다.
유제상: 6인조 걸그룹 보너스베이비의 데뷔 싱글. 많은 이들이 평하듯이 타이틀 '우리끼리'는 흡사 보컬로이드로 만든 곡과 같은, 혹은 과거 유행하던 '숫자송' 같은 것을 2배속으로 돌린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일본식 아이돌의 충실한 변용은 이미 여자친구가 완성했는데 어찌 이런 일이... 사실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멤버들의 복장도 니삭스니 멜빵치마니 이런 거 입혀놔서 애니메이션에서 본 듯한 익숙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사실이다. 좋다 나쁘다 이야기는 못 하겠고, 이런 전략이 상업적으로는 아직 유효하다는 것만 확인하고 간다.
햄촤: '마이비'를 아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보너스베이비의 '우리끼리'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의도된 질적 저하'를 눈치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혼종인 케이팝 씬에서 이제 와 일본 아이돌의 어떤 코드를 번안해서 가져온 그 자체를 두고 나쁘다 말할 순 없지만, 실제로 예산과 준비 기간, 실력 등의 부족으로 만들어졌던 맥락을 싹둑 자른 채 시각적인 이미지만으로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는 계산은 너무 무성의한 것 아닐까. 마이비가 엄청나게 뛰어난 실력을 갖췄는지와는 별개로, '심장어택'과 '또또'를 선보였던 회사에서 바로 직후 내놓은 걸그룹이 정말로 이 정도밖에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 도저히 납득 되질 않는다.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대중문화에도, 케이팝에도 방어선이라는 것은 존재해야 하며, 허들의 높이를 올리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대중이 그 높이를 낮추는 것을 허용하는 순간 후퇴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박희아: 정규 1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혹시나 하여 지난 앨범 리스트를 확인했다. '대체 왜?'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오래 기다려서 나온 1집이란 얘기. 그러나 이를 접한 후의 감상 또한 접하기 전과 비슷한 의문이 일어나서 다소 안타깝다는 소회를 밝힌다. 'Excuse Me'는 2000년대 중후반에 들리던 섹시 콘셉트의 댄스곡보다도 5~6년은 더 과거로 되돌아간 작업인데, 통속성을 일련의 콘셉트로 이어가는 것은 상관없으나 굳이 그 시절에 대입해가며 오늘의 AOA를 이해할 필요가 있나 싶다. 복고와는 거리가 멀었던 '심쿵해', 'Good Luck'이 꽤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더욱 그런 것일까. 아무튼 이 앨범은 아이돌 콘셉트에서 '복고'와 '레트로'가 어떻게 다른지 알려주는 예시가 될 것 같기도 하다. 과거의 것으로 오늘의 아이돌을 멋지게 그리는 일, 참 어렵다.
돌돌말링: AOA가 데뷔 4년 만에 첫 풀렝스 앨범을 내놓았다. 트랙리스트 대부분이 케이팝다운 EDM 비트지만 전체적인 컨셉으로는 레트로한 향취를 풍기고 있다. 용감한형제의 'Excuse Me'과 신혁의 '빙빙' 두 곡으로 더블 타이틀 활동을 한다는데, 둘을 굳이 비교하자면 '빙빙'에 한 표 던지고 싶다. 짝 붙는 브라스와 사비에서 꼭 5도 떨어지는 마이너 훅이 지난 EP 'Good Luck'과 연속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이유. 'Excuse Me'는 용형이 AOA에게 꾸준히 주었던 '주체적인 척 하나 결국은 애원하는 여성상'이 주제인데, 콧소리를 섞은 'Excuse me cuse me' 하는 코러스는 중독적이다 못해 어노잉할 정도다. 언제나처럼 좋고 나쁨이 크게 갈릴 통속성을 자랑한다. 추천곡은 SF9의 로운이 피쳐링한 모노트리의 'Lily'. 앨범의 레트로한 주제에 잘 어울리는 50년대 두왑 스타일의 곡이라, 여름이 오면 다시 꺼내 들어보고 싶다.
오요: 이쯤 되면 용감한형제를 인정하는 단계를 넘어 '리스펙'하지 않을 수 없다. AOA의 정규 1집 타이틀 곡 'Excuse Me'에서 용감한형제는 그간 본인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뽕'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사운드를 들려준다. 그간 티아라가 K-pop 계에서 점하고 있던 독보적 위치를 이제 AOA가 계승한다고 말하기라도 하듯. (덧: '용형나잇' 어떻게 좀 안될까요, 편집장님......)
유제상: 데뷔 5년 차, 드디어 등장한 AOA의 첫 정규 앨범. 'Excuse Me'와 '빙빙'의 더블 타이틀을 앞세웠다. 'Excuse Me'는 시대를 짐작할 수 없는 에스피오나지 물을 연상시키는 뮤직비디오를 지녔는데 이게 의외의 역효과인지 뽕기 강한 하우스 비트의 음원과 어우러지며 예스러운 느낌을 준다. 이러한 기조는 '빙빙'에서도 유지되는데, 브라스 소리를 앞세우면서도 댄서블한 비트가 바탕에 깔려 이 곡이 왠지 살짝 유행을 비켜 나간 듯한 느낌을 주게 한다. 기본적으로는 기존의 AOA 곡과 큰 차이가 없지만, 캐칭한 사운드와 가사를 전달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사실 이들이 음악적으로 새로운 것을 선보일 의무는 없고, 그러한 시도는 (그것이 음악적인 이유이든, 음악 외적인 이유이든) 전작인 "Good Luck"에서 이미 수포가 되었기 때문에 방어적인 태세를 취한 본 앨범을 비난만 할 수는 없겠다.
햄촤: 무성의한 표현이라 생각하면서도 AOA의 가장 큰 무기는 어떤 '통속성'에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운데, 정말이지 오랜 시간이 걸려 나온 첫 정규앨범은 AOA의 장점을 한껏 강조한 곡들로 채워져 있다. 아마 AOA의 노래를 좋아해 온 팬들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이 앨범의 매력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Excuse Me'와 '빙빙'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들이 여태까지 선보였던 섹시와 통속성의 콘셉트가 날카롭게 갈린 양날 검 같으며, 처음엔 '또야?' 싶다가도 계절감 같은 건 일말의 신경도 쓰지 않고 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뽐내는 그 견고한 일관성에 납득을 하게 된다. 수록곡 중 'Oh Boy'에서 '남자들은 내게 빚을 졌네 다 굽신거리고 가지를 쳐내듯이 당당하게 걸어가도 막지 못해'라는 랩 가사가 유난히 기억에 남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기분이 잠시 씁쓸해졌다.
박희아: 첫 번째 트랙 'HEAVEN'은 사랑스럽고 보드라운 터치로 시작하지만, 코러스에 이르면 보이그룹 특유의 격앙된 정서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신화 멤버 개개인의 보이스와 현악의 조합, 거기에서 20년째 꾸준히 생겨나는 시너지를 본다. 분명 신화만이 내는 서정적인 울림, 거기서 오는 감동이 있기에. 반면에 타이틀곡 'TOUCH'에서는 다소 빈약한 사운드 질감이 느껴져 살짝 아쉽다. 퓨처베이스 특유의 공간감이 살아있기는 하나, 대체로 무거운 편에 속하는 신화 멤버들의 보컬과 쨍한 인스트루먼탈 사이에서 종종 느껴지는 이질감이 있다. 그래서 유독 이민우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특정 장르에 특화된 보컬이 아니라 어디든 착 달라붙듯 어우러지는 보이스가 지닌 매력이 여기서 빛을 발한다.
오요: 작년 연말 MBC 가요대제전에 나온 거의 모든 아이돌이 '토토가'에 동원되어 90년대 노래들을 부르고 있을 때 (정말 끔찍했다) 신곡을 들고나온 신화만이 유일하게 2017년을 살고 있는 아이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90년대 아이돌 노래들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던 와중에 대놓고 '이건 퓨쳐베이스다!'라고 말하는 듯한 곡이 튀어 나와버렸으니까. 본격적인 2017년이 시작되었고 다시 들어보는 신화의 13번째 정규 음반과 타이틀곡 'TOUCH'는 그러나 아쉽다. 부서지는 듯한 퓨쳐베이스 특유의 신디사이저 질감을 살리지 못하는 사운드도 그렇고 한 끗 차이로 퓨쳐베이스가 되려다 말았다. 아무래도 신화 멤버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장르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퓨쳐베이스가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의문이다. 더 아쉬운 점은 음반 전체 곡들이 하나같이 먹먹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반지하 스튜디오에서 역류한 화장실 물에 젖은 스피커를 겨우 말리고 작업한 것만 같은 그런 사운드다.
유제상: 무려 13번째 정규 앨범! 놀라운 저력을 지닌 신화의 신보다. 아무래도 대중의 관심은 타이틀 'TOUCH'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데, 곡이 참으로 신묘하다. 'TOUCH'는 정확히 이들의 전성기인 2000년대 초반의 정서를 담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예스럽다거나 유행에 뒤처져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곡을 들으면 당시를 함께 했던 (그리고 좋아했던) 평자 같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맞아, 이런 느낌이었어"란 즐거움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같은 양식을 지니면서도 곡을 최대한 동시대의 것으로 들리게 하려는 만드는 이들의 노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이 곡이 없었건만, 평자를 2000년대 초반의 마음으로 돌려놓는 이들의 신보에 Pick!을 부여한다. 리뷰를 읽고 '에이 이제 와서 신화...'하는 분들도 타이틀만은 꼭 들어보길 권한다. 없는 소리 하는거 아니니까.
돌돌말링: S.E.S. 데뷔 20주년 스페셜 앨범은 신곡(과 몇 곡의 리메이크)으로 가득 채웠다는 점에서 일단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가정을 꾸리며 경력이 단절된 여성 아이돌의 오랜만의 컴백이 이벤트성 셀프커버 정도로 그치지 않아 팬으로서도 몹시 기쁘다. 타이틀 '한 폭의 그림'은 그들이 과거 다수 불렀던 뉴잭스윙 힙합에 제이팝스러운 멜로디의 다른 곡들을 연상시키는데, 그래서 반갑고 편안하다. 마침 2016-17년에 뉴잭스윙이 새삼 다시 유행하기도 해서 그렇게 올드하게 들리지도 않는다. 멜로디가 도드라지게 부르는 예쁜 90년대 창법을 다시 들으니, 새삼 아이돌 창법에도 유행이 있었고 최근 몇 년간은 소리를 둥글게 만드는 어두운 느낌이 대세였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다만 유영진이 쓴 가사와 랩 몇몇 군데는 경쾌한 리듬을 따라잡지 못하고 입 안에서 다소 뭉개진다. 선공개한 'Love [story]'와 'Remember' 등의 곡 말고도 S.E.S.에 기대할만한 밝고 재지한 넘버들이 많다.
오요: 90년대를 지배했던 아이돌이 돌아오는 게 아무리 대세라고는 하지만 막상 '추억팔이' 이상의 유의미한 결과를 내놓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S.E.S.는 그러나 바다를 제외한 멤버들이 오랜 기간 가요계 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추억'에 그치지 않은 지금 S.E.S.의 음악을 들려준다. 당장 샤이니의 음반에 수록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세련된 사운드가 인상적인 트랙 ('한 폭의 그림 (Paradise)', 'Birthday', 'Hush')들이 이어지는 음반을 듣고 있노라면 단순히 '요정들이 돌아왔다'는 감동을 넘어서 S.E.S. 멤버들이 시간을 넘어와 들려주는 음악의 아름다움과 경외심마저 느끼게 된다. 다만 몇몇 급조된 듯한 트랙들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 (Life)', '그대로부터 세상 빛은 시작되고 (The Light)')과 리메이크를 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Love [story]' (믹싱을 어떻게 한 것인지 다른 곡들과 비교했을 때 보컬 질감이 너무 이질적이다) 등의 트랙이 감흥을 반감시켜 Pick!으로 선정하지는 못했지만 일청을 강력하게 권한다.
유제상: 유부녀가 둘이나 있는 원조 요정 집단이 다시 컴백하면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가장 평이한 대답. 'Remember'는 5집 수록곡이라고 해도 믿을 결과물이고, '한 폭의 그림'은 그냥 90년대 제이팝이다. 동시대를 살아온 동년배로서 이들이 엄청난 음악적 진보를 불러올 거라고 당연히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전성기의 분위기를 인위적으로 재현하리라고는 마찬가지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한 폭의 그림' 중간에 삽입된 랩을 들으면 평자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기술 발달에 힘입어 미모와 젊음을 유지할 수 있게 된 인간은 영원히 '그 순간 그대로' 머물러 있기를 꿈꾸는 걸까?
햄촤: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이라는 모 가수의 노래 가사가 떠오르는 컴백. 그저 잠시 서로의 개인사가 바빠 휴지기를 가졌던 것뿐인 듯이 아무렇지 않게 예전 모습 그대로 돌아왔다. 음악적 스타일도 여전한데, 이전까지 그들이 선보였던 음악이 그만큼 세련되었던 탓일까 아니면 케이팝 씬에 있어 실제 시공간이 더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일까, 다소 혼란스럽긴 하지만 무리 없이 2017년이란 타임라인에 안착하면서 건재함을 보여준 앨범이다. 모르긴 해도 'My Rainbow (친구-세번째 이야기)'의 가사에서 '많이 기다렸지? My love 너와 내 집으로 너무 그립던 너의 곁으로 그 약속들이 모인 자리 다녀왔어 My friend 시간을 건너'라는 구절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는 건 비단 오랜 시간 기다린 팬들뿐만은 아닐 것이다. S.E.S.의 컴백은 단순히 과거 영광의 재현이 아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걸그룹으로써 존재할 수 있다는 분명한 사례이며 많은 걸그룹에게 그들의 세계가 어떤 식으로든 지속 가능하다는 용기를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는데, 다른 곡은 몰라도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는 너무 뻔하지 않나.
돌돌말링: 스윗튠이 전곡을 맡은 신인 그룹. '학교 3부작'을 위시한다는 점에서 방탄소년단을, 파스텔톤으로 채도를 쭉 낮춘 테니스장에서 춤추는 교복 소년들이란 이미지에서는 세븐틴을 레퍼런스로 두었을 법 싶다. 스윗튠에 거의 모든 최근작에 이런 소리를 하고 있어서 민망하지만, 귀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이유는 멜로디에 힘이 없어서인 것 같다. 적소에 들어가는 귀를 끄는 악기 소스나 겹쳐 쌓아 배음이 풍성하게 느껴지는 점은 그대로인데… 전성기의 스윗튠에는 이것 말고 분명 뭔가가 더 있었고, 지금은 없다. 이런 아쉬움은 타이틀곡 'She'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발랄함을 시도하는 마이너 곡조는 반복될수록 진부하게 느껴진다. 수록곡은 오히려 타이틀만 한 기대를 안 해서 그런지 고르게 들을만하다. 스윗튠과 인피니트가 함께 하던 시절 이들의 수록곡을 좋아했던 이들이라면 반가워할 만하다. 특히 'Something Special'과 'Without You'가 그런 곡들.
오요: 스윗튠의 힘을 빌렸으나 문제는 더이상 스윗튠이 흥행을 보장해주는 수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타이틀곡 'She'는 다분히 시대착오적인데 특히 '그녀는 (중략) 말도 참 아이 아이 아이 처럼 예쁘지'라는 가사와 그 부분의 안무 (유아를 흉내 내는 여성을 흉내 내는 동작)에선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유제상: 7인조 남성 그룹 일급비밀의 데뷔 EP. 이들은 다소 진부하지만 한 편으로는 영리한 전략을 쓰고 있는데, 타이틀 'She'는 스윗튠을 앞세워 훵키한 멜로디와 비트를 들려주면서도 기존 선배들의 장점을 고스란히 취하고 있다. 들어본 듯한 음원에 본 듯한 의상 콘셉트, 본 듯한 안무와 소녀를 쫓는다는 뮤직비디오의 시각 이미지까지 모두 흔하디흔한 것들이지만 그러면서도 이전의 'ㅇㅇ만 못하다'는 생각이 선뜻 들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멤버들의 외모도 그렇고 이모저모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나는 결과물.
돌돌말링: 데뷔곡 'MoMoMo'부터 '비밀이야'를 거쳐 '너에게 닿기를'까지, 우주소녀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소녀 감성'으로 셀링 되는 이런저런 코드 위에 퓨쳐리스틱한 신스사운드를 끼얹나? 가 되었다. 유니콘이나 사탕, 레터박스를 채운 채도 높은 컬러 스펙트럼 등 '유메카와' 이미지로 가득한 뮤직비디오는 다소 산만한 가운데, 묵직한 킥과 훵키한 기타로 시작하는 노래는 일사불란하게 달린다. '비밀이야'에서의 서정성은 e.one이 이번 에이프릴의 신곡을 맡으며 그쪽으로 넘어가 버린 것 같지만, 이 팀의 1번 목표가 '우주적인 소녀의 사랑'의 구현이라는 건 이제 잘 알겠다 싶은 EP.
오요: K-pop이 세상 모든 (서브) 컬쳐를 흡수하고야 마는 장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갈수록 그 뻔뻔한 정도가 높아지고 있다. '너에게 닿기를 (I wish)'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모든 것을 흡수해버리는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 대부분 속이 텅 빈 껍데기만 내놓고 마는) K-pop의 굉장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유제상: 상승세를 타며 기분 좋게 등장한 EP. 타이틀 '너에게 닿기를 (I Wish)'은 성공적인 전작 '비밀이야'의 연장선에 있는 곡인데, 반음씩 떨어지는 후렴구 직전의 멜로디까지 흡사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계절감에 관한 것으로, '비밀이야'가 여름의 시원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면 이 곡은 겨울에 어울리는 뽀송뽀송함이 있다. 취향의 문제겠지만 '비밀이야'를 즐겁게 들은 사람이라면 이번 결과물도 만족할 것이다. 다만 이러한 안정세를 넘어서 뭔가 듣는 이를 강렬하게 사로잡는 곡을 접하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다.
햄촤: 데뷔 EP부터 우주소녀의 앨범 세 장을 들은 경험은 마치 유쾌한 순정만화의 단행본을 한 권씩 읽는 기분에 가까운데, 매권마다 장르가 조금씩 달라지는 듯한 재미도 있어 아무튼 다음 권이 궁금해진다. 실제로 동명의 만화책이 있어 더 만화 같은 이미지의 '너에게 닿기를'은 데뷔곡 'MoMoMo'와 '비밀이야' 사이에서 중간 지점을 찾은 듯한 곡이다. 유연정의 합류 이후 보컬이 한층 더 다채로와져 듣는 내내 큰 걸림이 없다. 취향만으로는 우주소녀가 다소 느린 템포의 곡을 부를 때 그 매력이 배가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이리와'가 그렇다. 캡슐(Capsule)의 음악을 언뜻 연상시키는 사운드의 '최애' 또한 데뷔 EP의 'Tic-Tock'의 연장선 같으면서도 그룹의 색깔과 잘 맞는 스타일이라 귓가에 남는다. 거의 모든 걸그룹이 그렇겠지만 결국 우주소녀가 성공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는 서브컬쳐 등 외부 다양한 코드의 총합인 그룹의 이미지와 스토리를 대중에게 어떻게 설득시키느냐 하는 점 아닐까. 다인원 그룹인 만큼 멤버 개개인의 매력을 팬덤만이 아닌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과제 또한 여전히 남아있다. 이 흥미로운 만화의 다음 권 전개를 무척이나 기다린다.
돌돌말링: 앞서 언급한 작곡팀 e.one이 이번에는 예의 서정성을 에이프릴에 몰빵해주었다. 오케스트라와 멜랑콜리한 전주로 시작하는 '봄의 나라 이야기'는 사비 멜로디가 '비밀이야'에 비해선 덜 캐치하지만, 안타까운 정서를 압축한 그 인트로로 청자를 3초 만에 사로잡는다. 오마이걸이 이 구역의 메르헨돌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 자리를 이 곡으로 빠르게 차지해버렸다. 수록곡 '지금 모습 이대로'는 여자친구 첫 EP 수록곡 'Neverland'와 구조부터 리듬, 코드까지도 거의 비슷하다 싶더니 같은 작곡팀 Zigzagnote의 자가 복제. 그 외의 수록곡들은 카라가 내던 수록곡들과 비슷한데, 카라가 같은 튠이라도 카랑카랑한 미성의 보컬들로 팬시 제품 같은 느낌을 냈다면, 에이프릴은 채원과 진솔 보컬에 들어있는 1프로의 탁성으로 곡마다 꽤 다채로운 분위기를 소화해낸다. 채경과 레이첼이 합류하며 6인으로 자리 잡은 멤버 라인업은 '이제는 바뀔 일 없다'는 듯 이전 발표곡들을 신멤버들의 보컬을 포함해 재녹음하고 리믹스해서 수록했다. 원곡보다 크게 파격적인 편곡은 아니지만, 안정적인 조합이다. 지금까지 DSP이 내놓은 그룹들은 멤버들의 목소리 톤이 이질적이라 합이 잘 안 맞는 경우가 많았는데, 에이프릴은 먼 길을 돌아 마침내 좋은 콤비네이션을 찾았다는 인상이다.
오요: 이번 회차 퍼스트리슨을 작성하면서 '소녀'라는 단어를 (과장 조금 보태어) 수백 번 들었고, 걸그룹의 곡에서만 이 단어들이 등장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왜 걸그룹 멤버들은 소녀라는 단어로만 스스로를 호명해야 하는지. 청순 계열 걸그룹이 인기 있으니까, 라고 이러한 징후들을 읽는 것은 너무 게으른 해석일 것이다.
유제상: 에이프릴은 비슷한 콘셉트의 그룹이 너무 많아 치고 나가기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내부적으로도 그러했던지 이번에는 음악적으로 치고 나가려는 야심찬 결과물을 선보였다. 본 EP가 바로 그러한 선상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타이틀 '봄의 나라 이야기'는 계절에 맞게 차분히 가리라는 청자의 예상을 깨고 곡의 시작부터 공격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그리고 '봄의 나라에 사는 그 소녀는~'으로 시작되는 후렴구는 흡입력이 강해서 몇 번 듣지 않아도 금세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 나쁘게 이야기하면 언젠가 들어본 것 같은 멜로디이고, 90년대 분위기가 과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 정도면 승부수를 띄워볼 만하다. 스러져간 선배들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EP. 더 이상 DSP 잔혹사가 없길 바라는 마음에 Discovery!를 부여한다.
햄촤: 그 사이 멤버의 변화를 한 차례 더 겪으며 스타일 또한 사뭇 달라졌다. 타이틀곡 '봄의 나라 이야기'는 동화 같은 에이프릴의 분위기에 애처로움이 한 겹 더해져 성숙함이 엿보인다. 지난 "Spring" 앨범이 에이프릴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그려냈다고 생각했는데, 멤버 교체를 겪은 김에 전략적 수정이 더해진 걸까. 구성적으로는 다소 산만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최대한 여러 색깔을 담아보며 방향을 모색하고 있단 인상이 강한 앨범이다. 그 와중에 언뜻 다른 그룹의 색깔이 덧씌워지는 듯하다가도, 그룹의 정체성 같은 채원과 진솔의 보컬의 힘으로 결국에는 제자리로 방향을 돌려놓는다. 무엇보다 채경의 합류로 인해 전에 없던 처연함이 생겨났단 기분이 드는데, 6인 버전으로 다시 녹음한 기존 곡 중 데뷔곡 '꿈사탕'의 스페셜 버전만 들어봐도 원곡과는 완전히 다른 톤이 되어버렸다는 점이 신기할 정도. 'Muah!'는 대폭 편곡이 되었는데 6인 버전의 재녹음이 대전제였다면 원곡을 그냥 두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DSP는 덕후의 마음을 몰라.
돌돌말링: 지난 싱글 'Oh Ma Mind' 때처럼 레이드백 풍의 퓨처알앤비 비트에 보송보송한 멜로디, 그리고 일본 아이돌 같은 미숙한 보컬을 매칭했다. 하다 하다 퓨처알앤비까지 유아적인 목소리로 듣고 싶다는 건가 싶어서 조금 혼란스럽긴 한데(…) 노래 자체가 썩 잘 만들어졌고, 상기한 특이점으로 시장의 빈 곳을 잘 파고들 수도 있겠다 싶어서 흥미가 간다. 트위터에서 일본의 프로듀서 '토후비츠'가 하는 힙합 같은 느낌이 난다는 평을 보았는데, 맞아, 그쪽이 가까울 성싶다. 예쁜 힙합에 아이 같은 여성 보컬 말이다. 뮤직비디오는 'Oh Ma Mind' 때보다 단순해졌다. 성적인 함유는 쪽 빠졌지만, 의상이나 세트 구성 자체가 너무 심심한 나머지 소규모 쇼핑몰의 이미지 영상 같은 인상마저 준다. 제작비의 한계가 느껴지지만, 계속 지켜보고 싶은 팀이라 디스커버리를 달았다.
오요: 뼈대가 되는 비트와 베이스 라인에 최소한의 악기를 얹고, 멤버들의 보컬과 랩은 아직은 어설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트랙이 선사하는 청량감은 분명 듣는 이의 기분마저 들뜨게 한다.
유제상: 4인조에서 5인조로 탈바꿈한 MIXX의 두 번째 싱글. 타이틀 '사랑은 갑자기'는 알앤비 멜로디를 댄스곡에 접목한 형태인데, 최근 잘 사용되지 않는 무조에 가까운 노래 도입부를 선보여 매너리즘을 타파하려 한 점이 돋보인다. 뮤직비디오의 시각 이미지도 멤버마다 대표색을 입히는 정도로 미니멀하게 간다든지, 가사도 제목에 충실한 내용만을 전달하여 어떡해 어떡해 하는 잡소리가 없다든지 하는 것이 마음에 든다. 이 기조를 쭉 유지해주기 바란다.
햄촤: 케이팝 특히 걸그룹 씬의 물결이 잠시도 멈추지 않는 격류와 같다면, MIXX는 마치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보인다. 데뷔 싱글 때도 그 유난히 눈에 띄는 '패기 없음'이 신경쓰였는데, 이쯤 오면 제작자의 복안이 무엇인지 궁금해질 정도. 모두가 2배속도 모자라 3배속 댄스를 향할 때 믹스는 느긋하게 풍경을 구경하듯 전진하고 있는데 그 특유의 느림이 매력적이다.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 통 알 수 없긴 하지만.
오요: 중국 자본이 투입된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데뷔 싱글의 질이 무척 안타깝다. (언제적 유행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덥스텝에 기반을 둔 댄스곡이라면 분명 날이 서 있어야 할 소리 요소들과 보컬들이 죄다 뭉그러진다. 믹싱과 마스터링에 좀 더 후하게 투자했어야 했다. 모 그룹 뮤직비디오의 '파쿠리*'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뮤직비디오는 언급하기조차 민망할 수준이다. * 파쿠리 : 도둑질이란 뜻에서 유래한 표절의 일본 은어
유제상: 처음 뮤직비디오를 틀고 드는 생각이 '헉, 뭐가 이렇게 많아'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시티는 12인조 그룹이었다. 사실 물량 공세 자체는 놀랄 것이 없건만 유독 이들이 많아 보이는 것은 원형을 유지하며 추는 이들의 안무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곡은 이제 나온 것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행에 지난 것이지만, 그런 만큼 후렴구의 통속성도 강해 아마 이들에 대한 애정이 생긴다면 따라 부르기도 쉽지 않을까 싶다. 보도자료를 보니 퍼포먼스에 일가견이 있는 것 같은데 이후의 활동을 기대해본다.
박희아: SMP를 주입하는 방식은 역시 1. 정공법 2. 정공법 3. 정공법뿐. 시대에 따라 퍼포먼스 주체가 바뀌고, 리듬과 멜로디가 더욱 세련되어져도 그 색채는 변하지 않는다. 'LIMITLESS'가 지닌 의미는 '무한'이고, 이에 한문 표현을 섞어 '무한적아'라는 말을 붙이는 방식은 SM엔터테인먼트만이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랑스럽게 할 수 있는 시도다. 그리고 이건 명백한 SM 팬덤용 정공법이고. 이들은 최근의 음악 시장에서 들을 수 있는 값비싼 소리들을 쓰지만, 여전히 'SMP'라고 부를 수 있는 특별한 장르를 호명한다. 뮤직비디오에는 미국 힙합, 할렘/뒷골목, 1990년대~2000년대 초반을 떠오르게끔 하는 아이템 및 VHS 비디오 질감이 들어갔다. 그렇다면 2017년의 SMP, 그 뒤에 숨겨진 히든카드는 뭘까. NCT 127은 “가까이 와 내게 보여줘 봐 너의 fantasy를 / 내가 아주 친히 예뻐해 줄 테니까 / 넌 나를 두려워해야 해 내가 그걸 원해”('Baby Don't like it') 같은 가사를 거침없이 읊는다. 도회적인 이미지 뒤에 숨은 섹슈얼함에 주목하게 된다. 엑소 로고에서 세 발쯤 더 나아간 극도의 미니멀함, 그리고 그 안에 숨겨뒀던 섹시한 무언가가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 지금.
오요: 타이틀곡 '無限的我 (무한적아; Limitless)'를 듣는 순간 다시금 SMP가 얼마나 훌륭한 음악 장르였는지 깨닫게 된다. 회사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어야만 하는 그룹의 타이틀 곡 제목으로 '무한적아(그것도 한자로!)'를 낙점해버리는 기개도 대단하거니와 본인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듯한 켄지의 둔탁한 킥과 묵직한 베이스 라인, 웅장하게 화성을 쌓아 올리는 타이밍과 그를 일순 무너뜨리는 전자음까지 여러모로 SM이 사활을 걸었구나, 라는 인상을 받았다(개인적으로 '으르렁' 전야의 '늑대와 미녀 (Wolf)' 시절 엑소가 떠올랐다). 타이틀곡에서 유감없이 드러내는 에너지가 끝까지 이어졌다면 Pick!도 충분히 가능했을 텐데 엉성한 미디엄템포 R&B ('Back 2 U (AM 01:27)', 'Baby don't like it (나쁜 짓)')와 진부한 팬송 ('Angel')이 전체 음반의 일관성을 해친다. 그 와중 근래 아이돌 팝이 퓨쳐베이스를 차용한 가장 탁월한 예라 할 수 있을 만한 '롤러코스터 (Heartbreaker)'가 선명히 돋보이기에 그 아쉬움이 더 크다.
유제상: 타이틀 '無限的我 (무한적아;Limitless)'는 NCT의 장기라 할 수 있는 퓨처 사운드로 시작하지만, 결국 후렴구에 이르러서는 SM 고유의 색채를 드러내고 만다. 풀어내는 방식은 다르지만, 왠지 전성기에 접어들던 동방신기의 곡들(예를 들면 'O-正.反.合.' 같은 것)을 연상시키는데, 곡의 분위기가 널을 뛰면서도 지속적으로 긴박한 감정을 전달하는 것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분명한 것은 NCT 이름으로 나온 기존의 곡들과 비교했을 때 훨씬 대중적인 결과물이라는 것. SM은 YG의 분위기를, YG는 SM의 분위기를 닮아가는 현실 또한 흥미롭다.
햄촤: 언뜻 동방신기의 '왜'를 연상시키는 비트로 웅장하게 시작하는 '무한적아'는 '빛은 암흑 속 퍼질수록 강해져 가'나 '들리니 우리는 하나가 돼' 같은 가사만 보아도 SMP의 전통을 그대로 지키는 듯 보이지만, NCT U 때부터 지금까지 태용과 마크를 중심으로(사견이다) 한 이 프로젝트가 기존 SM의 보이그룹과 차별되는 지점은 바로 보컬 멤버가 아닌 이 래퍼 두 명이 계속해서 곡의 테마를 끌고 간다는 것이다. SM 보이그룹의 아이덴티티 같은 '유영진 류 보컬'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어딘지 무리를 하면서까지 기존과는 다른 체제를 고집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복안이 있을 것이다. 하긴 태용은 센터에 세우지 않기에는 너무 매력적인 마스크이며, 마크의 랩은 아껴두기엔 너무나 큰 낭비다. 퍼포먼스는 선배 그룹들의 SMP를 떠올리면 극도로 미니멀한 사운드처럼 정적이기까지 한데, '소방차'의 텐션과는 달리 의도된 이 심심함이 과연 어떤 식으로 대중에게 받아들여질지는 잘 모르겠다. 정작 앨범 전체를 들어보면 어느 장르에든 최적화될 수 있을 만큼 준비는 갖춰진 그룹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아직은 케이팝 씬의 지도 안에서 이들이 어떤 좌표를 차지할 수 있을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음악 자체는 복고적이지 않은데 어째서 뮤직비디오에서 자꾸만 레트로로서의 90년대 질감을 재현하려 하는지는 다소 난해한 구석이 있다. 의미보다는 그저 시각적인 효과에 가까워 보이긴 하지만.
오요: 브로맨스라는 팀명은 어찌저찌 이해가 간다고 치자. EP의 트랙리스트를 훑는 순간 한숨부터 나온다. '삼년째 백수', '예뻐서 고마워', '어장관리'까지 안 봐도 뻔한 전형적인 생활밀착형 한국 남성의 자기연민 서사로 가득한 곡들을 들으며 어떠한 공감도 어떠한 감흥도 생기지 않는다. 타이틀곡 'I'm Fine'이 그나마 앨범을 통틀어 유일하게 설득력 있는 곡이지만 그뿐이다.
오요: 비록 걸그룹 곡들이 천편일률적인 모티브와 주제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개별 곡들의 수준 자체는 고르게 높아 적어도 듣는 그 순간에는 즐거운 기분이 된다. 그러나 보이그룹의 경우 작년부터 주제(까지도 아니고 적어도 소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으며 곡에 대한 어떠한 고민도 느껴지지 않는 결과물을 들고나오는 경우가 급격히 많아졌다. MAS 0094도 그중 하나다.
오요: 아무리 슬옹 본인이 작곡에 참여했다고는 하지만 공동 작곡자가 두 명이나 더 있고 편곡까지 다른 이가 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도 면에서 여러모로 의아하기만 하다. 특히 중간부터 등장하는 스네어 소리는 최근 들었던 여러 소리 요소 중 가장 조악하다. 심지어 스네어 박자에 맞춰 노이즈가 터지는데 제발 의도한 거라고 믿고 싶다(무슨 의도인지는 알 길이 없다). 심지어 노이즈에 패닝이 걸려있는지 오른쪽에서만 들리는데 그것도 부디 필자의 장비 문제이길 바란다.
오요: 만약 트랙스가 SM Station처럼 매달 싱글을 하나씩 내놓는 팀이라면 이 곡도 대강은 수긍이 갔을 것이다. 그러나 거의 5년 만에 내놓은 신곡이 이렇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전 곡 중 가장 최신은 2012년 드라마 무신 OST로 사용된 곡 '하늘아'이다.) 비주얼 락으로 시작했던 밴드라고 하더라도 락 발라드를 할 수도 있고 그게 전혀 문제 될 건 없지만 적어도 어떤 방향성 정도는 제시해 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트랙스의 '길(Road)'이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딘지 잘 모르겠다.
박희아: 2016년 빅스가 낸 세 장의 앨범에 대해 칭찬하면서 라비의 역할이 상당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랩을 꽤 잘하기도 하지만, 보이스와 플로우가 특이하여 미니든 풀렝스든 앨범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 나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래퍼들과 함께 랩을 하면 이런 장점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 EP에 래퍼 피처링을 쓰지 않았으면 했지만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수록곡 'Rose', 'Ladi Dadi'는 래퍼의 EP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보컬이 주가 되어버린 느낌을 줘서 유독 아쉬움이 크다. 빅스 앨범 때나 빅스 LR 앨범 때나 그는 상당히 괜찮은 래퍼였는데, 여기서는 도리어 피처링진이 포커스를 받는 것 같아 괜히 씁쓸하다. 자신을 더 부각할 수 있는 송폼과 트랙 구성을 고민해보면 어떨지. 'Lean on me'를 추천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아쉬움이 있지만 일단 라비가 누군지, 무엇을 잘하는 래퍼인지 알 수 있는 곡이다.
오요: 이 점을 먼저 짚고 넘어가자. 라비의 첫 솔로 음반 타이틀곡 'BOMB'의 뮤직비디오 일부 장면이 여성 혐오적이며 여성을 상품화고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에 대해 소속사 젤리피쉬 및 라비 본인의 사과가 있었으며 뮤직비디오에서 해당 장면은 삭제되었다. 여성 혐오와 관련하여 그간 아이돌 팬덤에서 아이돌 컨텐츠 내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 제기와 공론화는 꾸준히 있었으나 아티스트 본인이 직접 이에 대해 인지하고 후속 대책까지 제시한 경우는 처음이다. 다른 K-pop 아티스트 및 관계자들에게 유의미한 모범 사례로 남길 바란다. 좀 김이 빠질 수도 있지만 아쉽게도 정작 음반 자체는 전곡을 다 들어봐도 평이한 힙합 음반이라 특기할 만한 내용이 별로 없다.
유제상: 최근의 빅스를 보면서 느끼는 건데 도대체 재작년 말 ~ 작년 초에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PTSD를 겪는 커츠 대령처럼 모은 인원이 HIGH 해져 버린 걸까? 라비의 'BOMB'은 생각보다 더 '쎄고', 어떤 면에서는 징그러우며, 뮤직비디오 또한 이런 측면을 충실히 뒷받침하고 있다. 랩이 주인 곡이니 열심히 랩을 하고 있는데, 목소리는 아이돌의 그것이건만 들려주는 방식은 분명히 다르고, 특히 후렴구는 대단히 흉포하게 왜곡되어 있다. 여러모로 (방법론은 다르다만) 거대 서사를 들려주는 본진의 앨범을 연상시키는 결과물. 평자는 다양성을 증진한다는 점에 있어서 대단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모든 사람의 시선이 다 평자 같진 않을 터. 결과물 자체에 대한 불호이든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 것에 대한 불호이든, 분명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햄촤: 지난 빅스의 앨범을 들으며 라비의 랩이 예상외로 곡에서 큰 비중을 갖고 흐름을 이끄는 인상을 받아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사견이긴 하나 좋은 래퍼의 첫 번째 조건은 좋은 목소리와 발성이라 생각하는데, 그 점에서 라비는 여느 보이그룹의 래퍼와 견줘도 아쉬울 것이 없는 듣는이의 집중력을 잘 유도하는 낮으면서도 선명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 아마 랩을 좋아하는 누구라도 부담 없이 즐길 만한 앨범 아닐까. 과잉된 자아 발현도 없고 굳이 '래퍼로서'의 자신을 대중에게 인정 받으려는 제스처 없이 전반적으로 여유가 느껴져 좋았다. 자신을 향한 모 그룹 래퍼멤버의 디스에 대한 응답처럼 보이는 '아 몰라 일단 Do The Dance'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굳이 정면으로 반박하기보단 딴청을 피우듯 하던 대로 살겠다는 태도가 흥미로우면서도 어딘지 트위터 같은 SNS상의 중얼거림처럼 느껴져 (좋은 의미의) 헛웃음이 나오기도.
오요: 타이틀곡 '나 너 좋아해?'는 꽤 강력한 싱글이다. 확실히 곡의 엑센트를 찍어주는 시원한 메인 기타 리프와 고른 보컬의 힘이 돋보이지만 어쩔 수 없이 2017년을 맞이한 걸그룹의 굴레-귀여움과 무해함-을 놓칠 수 없는 듯한 몇몇 소리 요소들(특히 치어리딩 같은 보컬 연출은 도무지 지지할 수 없는 선택이다)이 이 곡의 매력을 반감시켜 평범한 걸그룹 송이 되고 말았다.
유제상: '넘나 좋은 것'으로 기대감이 한껏 높아진 가운데 나온 의외의 결과물. 타이틀 '나 너 좋아해?'는 굳이 말하자면 마마무 식의 곡인데, 도입부가 강렬하고, 두 개 이상의 곡을 이어 붙인 듯 곡의 전반부와 후반부 분위기가 다르며, 화음을 중시하는 듯한 짜임새를 지니고 있다. 평자는 뭔가 실력파임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듯한 인정욕구 넘치는 이런 곡 구조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어찌 되었던 결과물은 말쑥하게 뽑혀 나왔으므로 시장의 판단을 기다려야 할 듯. 사실 '넘나 좋은 것'이 지닌, 무언가에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정통파' 분위기가 지속되길 바랐던 평자 입장에서는 실망감이 컸다.
햄촤: 소나무가 이렇게 좋은 보컬을 가진 팀이었나. 새삼스레 깜짝 놀란 앨범. 첫 트랙인 '내 맘대로 해'는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 지루한 편곡이 아쉽지만 Daft Punk의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를 연상시키는 후렴구가 인상적이었다. 타이틀곡 '나 너 좋아해?'는 지난번 '넘나 좋은 것'에 비하면 강력한 한 방이 조금 부족하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여전히 보컬과 랩 파트의 균형을 잘 조율하며 끌고 나가는 소나무 특유의 장점이 살아있는 곡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트랙은 '오렌지 카푸치노'. 다소 항마력을 요구하는 가사는 차치하고서라도 근래 들어 이렇게 웅장한 동시에 엉뚱한 노래가 있을까 싶은데, 호불호는 분명하게 갈리겠지만 일단은 일청을 권해보고 싶은 노래다. 소나무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오요: 이런 곡을 들을 때마다 꼭 하게 되는 생각이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비슷한 질문인데, 이런 곡들이 계속 꾸준히 나오는 이유는 대중들이 이런 음악만 좋아하고 듣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이런 음악밖에 없으니까, 이런 곡만 만드니까 이런 음악만 듣는 건가? 아무래도 전자 쪽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뭐가 되었든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듣기 괴로운 평이함과 어설픔을 모두 겸비한 곡이다.
유제상: 벌써 1월 중순이라 시즌송을 내기에도 한참 지났다든지, 멜로디가 진부하여 언젠가 들어본 것 같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굳이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심각한 것은 이 싱글이 무려 이들의 이름이 들어간 다섯 번째 결과물인데도 불구하고 사운드적으로 조악하기 짝이 없다는 점이다. 타이틀 'White Snow Day'를 듣고 있노라면 이들의 가창력과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배경음에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작년 8월에 나온 첫 미니앨범의 타이틀 'Chu'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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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ply on “1st Listen : 2017년 1월 초순”
오요님
여성혐오를 주의할때긴하지만
음반리뷰를보러들어오는곳인데
누군가를 계속 혼내시는기분이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