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로지 필진의 아이돌 신작 단평. 라비, 종현, 레인즈, 타겟, 프로미스9, 준호, 아이콘, NRG, 유리 & Raiden, 식스밤, VAV, XoX, 수지, 골든차일드, 레드벨벳, 느와르, 1NB, 이달의 소녀 고원, 에이시드, 보아를 다룬다.
서드: 지난 앨범도 인상적이었지만, 이쯤 되면 래퍼로서 라비 또한 다른 그룹의 래퍼들 못지않게 야망이 만만찮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제야 깨달았어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이라는 ‘Nirvana’의 메시지부터, 전체적으로 구태여 잡다한 주제를 억지로 끌어오려 하지 않고 신변잡기와 내면에 집중한 믹스테이프라는 점도 그의 성향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타고난 목소리의 매력으로 억지로 소리를 만들어내지 않는 물 흐르듯 자연스런 래핑이 쉽사리 질리지 않으면서 빅스의 음악 속에서 듣던 그의 랩과는 또 색다르다. 흥미로운 행보다.
오요: 라비의 랩도 나쁘지 않지만 그것보다도 전반적인 프로덕션이 더 돋보인다. 타이틀 곡 ‘Nirvana’의 경우 칠 베이스와 퓨처 베이스 요소를 힙합 비트 위에 적당히 뿌려 놓고 후반부 브레이크 이후 극적인 비트 스위치를 통해 흔히 말하는 ‘몽환적인 느낌’을 극대화한다. 곡의 분위기에 걸맞은 뮤직비디오 또한 인상적이며 믹스테이프 전체를 들어봐도 일관된 정서를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Nirvana’라는 제목이 공허하지 않게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조성민: 라비 특유의 리듬감에 집중하도록 설계된 곡. 라비가 수준급의 박자 감각을 자랑하는 아이돌임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라비를 다시 보게 만들 만하다.
미묘: 소품집의 곡들이 음악 소품보다는 단막극처럼 느껴졌던 건 종현이 곡 안에 담는 이야기들이 삶의 스냅샷에서 가져온 모노드라마 같은 질감을 보이기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보컬의 다양한 음색, 멜로디의 호흡 변화, 악기, 편곡 등이 모두 그 드라마의 흐름을 떠받치는 목적으로 끼워 맞춰져 있다. 물어볼 곳은 없지만, 소품집과 솔로 앨범이 만나는 비로소 만나는 지점이 이 앨범이 아니었을까. ‘환상통’이 마치 ‘View’에 보내는 어두운 답가처럼 들리는 점이 신경 쓰인다.
서드: ‘빛이나’에서 마치 악단을 지휘하듯 여유롭게 또 자유자재로 자신의 보컬을 곡이 끝날 때까지 통제하는 것이 인상 깊다. 또한 트랙마다 뚜렷한 이미지를 그리기 위해 충실했음이 감히 짐작되는, 보컬리스트로서 그의 성실함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악플에 대한 연예인 당사자의 심경을 뚜렷이, 또 냉정하게 그려낸 ‘와플’의 가사에서 느껴지는 작사가로서의 재능은 또 어떠한가. 감정을 배제한 채 들으려 해도 이렇게나 멋들어진 앨범의 다음 작품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야속하기만 하다.
서드: ‘Turn it up’은 전반부의 고요함과 후반부 댄스 브레이크의 거리감이 너무 크다. 퍼포먼스를 강조하기 위해 드라마틱한 구성을 선택한 듯하나 효과적인지는 모르겠다. 어딘지 모르게 세기말 케이팝을 연상시키는 뮤직비디오의 오프닝이 잠깐이나마 눈길을 끈다.
조성민: 허전한 사운드와 구멍투성이인 안무를 메우기 위해 멤버들이 부단히도 애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빈약한 프로덕션의 환경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음반 외적 서사로 소구할 일이지, 음악 안에서조차 ‘애쓴다’는 인상을 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미묘: 스윗튠 프로듀스의 신인 보이그룹. ‘아픈 건 미루자’는 흔히 생각하는 ‘스윗튠 곡’, ‘Tempest’는 ‘스윗튠치고도 80년대’, 그리고 타이틀 ‘Awake’는 ‘스윗튠이 힙합을…’이지만 2000년대 초반 힙합의 낡은 느낌이 지나치고 곡의 짜임새도 맥 빠지며 멤버들의 수행도 채 따라가지 못한다. 매우 많은 측면에서 스윗튠에게 기대하고 싶지 않았던 음반.
미묘: 조금은 새삼스러운 곡들이지만 새삼스러움마저 신선하게 느껴질 만한 좋은 타이밍에 잘 맞춰 들어간다. 다시 듣는 ‘유리구두’와 비교하면 특히 방향성과 완성도의 확실함이 눈에 띈다. ‘피노키오’가 개중 조금 애매하지만, 가장 느끼하기 쉬운 순간인 ‘Be With You’가 ‘원피스보다 원피스 같은’ 색채로 그루비하게 몰아치면서 분위기를 바꿔낸다.
서드: 러블리즈와 여자친구가 앞서 다져 둔 ‘교복을 입은 청순 걸그룹’의 공식에 충실한, 오디션 경쟁에서 선발된 멤버들의 활기가 충만하다. 다소 뻔하다는 것이 ‘유리구두’ 때부터 조금 아쉬운 약점이지만, 데뷔 앨범임을 감안하면 흠잡을 곳이 적은 완성도다. 수록곡 가운데 ‘환상 속의 그대’가 유난히 귀를 잡아끈다.
미묘: 코드 진행이나 백업 보컬 등이 데이식스와 닮아서 재미있다. 하지만 큰 틀은 90년대에 메이저와 언더그라운드 사이에 묘하게 걸쳐 있던 ‘아마추어리즘’의 기조를 보인다. 인트로의 신스팝 향취부터, 수수하게 읊조리는 랩까지. 기운찬 신스 드럼 위로 묘하게 늘어지는 공기가 흥미로운 레이드백을 선사한다.
김영대: ‘사랑을 했다’는 그간 그들이 내놓은 어느 리드싱글보다도 간결하고 특징적인 멜로디와 훅을 가졌다. 전반적으로 개성은 유지한 채 보다 보편적인 보이밴드로 거듭나고자 하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조금 더 기다려 봐야겠지만 성공적인 방향전환이 될 것이다.
서드: 트랙을 전부 듣고 나면 아이콘이라는 그룹의 정체성에 대해서 재고해보게 된다. 어쩌면 ‘다 덤벼’ 식의 YG 스왜그보다는 조금은 여유롭게, 적당히 느긋하고 나태하게 놀고 싶은 청년들이라는 이미지가 더 잘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전반적으로 나른하고 부드러운 트랙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B.I의 솔로 ‘돗대’와 ‘시노시작’ 같은 곡들이 너무 처지지 않게끔 탄산을 뿌려준다. 꽉 찬 정규앨범으로서 나쁘지 않지만, 앞서 발표한 ‘Bling Bling’과 ‘벌떼’를 함께 수록해 두 장의 미니앨범으로 나왔더라도 좋았을지 모르겠다.
오요: 타이틀 곡 ‘사랑을 했다(Love Scenario)’는 간단한 피아노 멜로디로 시작해서 충분히 예상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다가 후렴구에서 뜬금없이 괴상하리만치 우악스러운 서브베이스를 터뜨린다. 다운 템포의 곡도 아닌데 이 정도의 서브베이스가 다소 의아하지만 의외로 엉뚱한 재미가 있다.
미묘: 훵키와 유로디스코, 뉴잭스윙을 조금 애매하게 뒤섞여 있다 싶다가, 절정으로 치닫는 랩에서 명쾌해진다. 15년 전인 2003년 NRG의 ‘Hit Song’이다. 원곡은 30년 전인 1988년 소방차의 ‘통화중’. 여전하다면 여전하고, 그것이 지금 NRG의 일이지만, 조금만 더 지금을 살아줬으면 하는 생각도 지우기 어렵다.
미묘: EDM이라기보다는 EDM 프로듀서들이 만든 팝 트랙의 전형을 따르는 편이다. 유리와 EDM 프로듀서의 조합이라면 좀 더 역동적으로 치고 나가는 형태를 상상하기 쉬운데, 화려하면서도 감성적인 곡이 나왔다. 비교적 간결한 훅이 화성 속에서 매력적인 불안을 조성해 '그다음'을 바라보게 하는데, 그것이 "I'll always find you"라는 가사와 맞물리는 점이 인상적이다.
미묘: 데뷔 리얼리티 〈액션 느와르〉의 테마곡이라는 프리데뷔 디지털싱글. 아스라한 감성을 드러내는 곡에 커다란 드럼과 넬 풍의 일렉트릭 기타 아르페지오를 넣어 균형을 잡았다. 멜로디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전혀 통제하지 않은 킥의 공진과 기타, 그리고 트렌디함을 노린 듯한 신스 리드까지 한 데 뭉쳐 너무 산만하기만 하다.
미묘: VAV의 곡들은 늘 준수했지만, EP로 모아놓고 들으니 생각보다 다채롭게 느껴진다. 4곡의 신곡이 어느 때보다 케이팝에 충실해서 더 그런지도. 전자악기들이 스타일리시한 공간을 만들고 훵키를 가미한 곡들인데, 평소의 팝적인 멜로디를 슬쩍 더 가요적으로 만들었다. ("우우후"가 들어가기만 하면 가요적으로 느껴지는 건 용감한 형제의 유산일까.)
미묘: 수지가 ‘성숙’을 그리는 방식이 재미있다. 거창한 주제를 제시하거나 가슴 섬뜩한 선언을 해버리는 건 아니지만, 썩 ‘좋은 취향’의 곡들로 클래식하게 꾸리면서 미묘하게 어른스러운 태도를 가사 속에 심는다. 약간의 연극적인 설정이나 연기로 ‘대학로 느낌’을 슬그머니 가져오거나, 간단한 은유를 깊게 끌고 나가는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시대감각을 다소 아슬아슬하게 하거나 90년대 초반 느낌이 조금 노골적인 순간들도 없잖아 있지만, ‘좋은 가요’를 통해 어른스러운 모습을 선보이는 것만은 멋진 일. 아이러니가 달콤한 ‘나쁜X’도 놓치지 말길.
서드: ‘Holiday’나 ‘SObeR’를 제외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와 다른 수록곡들은 ‘90년대 발라드’의 어떤 에센스에서 ‘질척임’을 걷어낸 것 같은 멜로디와 구성인데, 거기에 수지의 목소리가 마침표를 찍듯 설득력을 만들어내어 문득 시간을 뛰어넘어 발매된 앨범은 아닌가 싶은 착각마저 든다. 여하간에 듣기 편하면서도 다채롭다는 것을 미덕으로 꼽을 수 있을 곡들로 채워졌다. 피아노 연주와 보컬만으로 이뤄진 ‘잘자 내 몫까지’를 들으면 수지 보컬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미묘: 오히려 타이틀곡 ‘너라고’가 (필경 가요적 친숙미를 위해) 다소 애매해진 듯도 한데, 미니앨범의 기조는 ‘록을 통해 드러내는 청춘’으로 보인다. 남성적 진지함이나 공격성, 시끌벅적함, 우악스러움 등이 아닌, 화사함과 화려함, 청량함을 담아내는 방식으로서의 록이 흥미롭다. 개중엔 음악 자체로는 익숙한 경우도 있지만, 지금의 골든차일드가 부르기에 의미를 갖는 부분도 있는 듯하다.
김영대: ‘Bad Boy’의 흐느적거리듯 여유로운 리듬, 짧고 중독성 강하며 임팩트 있는 멜로디의 긴밀한 조화는 최고들이 빚어낸 작품에서만 느껴지는 깔끔함이 있다. 성숙한 보컬마저 근사하게 맞물려 도무지 흠을 잡기 어렵다.
서드: 리패키지 앨범의 첫 트랙인 ‘Bad Boy’는 티저에서 보여주었던 이미지와는 달리 조금은 예상을 깨는 이미지의 부드러운 곡이다. ‘피카부’의 잔상이 남아 있지 않았더라면 타이틀곡으로서 가능할까 싶은데도 특유의 분위기와 뮤직비디오, 의상과 콘셉트로 빈 구석을 채워가면서 기획으로 곡을 완성해내는 SM의 노하우가 빛을 발한다. ‘Automatic’과 데뷔 시절 ‘Be Natural’의 어떤 연장선에서 느슨하면서도 어딘지 음산한 구석이 있는 레드벨벳의 색깔이 ‘Perfect’라는 앨범 제목의 수식어처럼 완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결과물이다.
오요: 작년 가장 돋보인 케이팝 앨범 “Perfect Velvet”에 타이틀 곡 ‘Bad Boy’ 외에 두 곡의 수록곡(‘All Right’, ‘Time To Love’)이 추가되었다. ‘Bad Boy’는 최대한 힘을 빼고 소리를 덜어낸 다음 확실한 몇 가지 요소만으로 곡을 구성한다. 묵직한 베이스가 뼈대를 만들면 그 위로 ‘그루비한 신스 멜로디’가 가지처럼 뻗어 나간다. 아주 잠깐씩 등장하는 후렴의 사이렌 소리가 곡에 재미를 더하지만 앨범 내의 다른 곡들에 비하자면 단촐하게 느껴지는 사운드 구성이다. 오히려 이런 선택 덕분에 ‘피카부 (Peek-A-Boo)’에서 들려준 분위기-위험하지만, 익살스럽고 다소 어두운 심상이 ‘Bad Boy’에서도 이어진다는 인상을 받는다. 추가된 수록곡들 또한 마찬가지로 최대한 기존의 수록곡들과 비슷한 기조를 유지하려 하지만, ‘Bad Boy’만큼 효과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는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미묘: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해서 달이 예쁘다고 하는 가사는 나쓰메 소세키의 일화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 나긋나긋하고 무디한 R&B인데, 보컬이 왜 이렇게 불안정하고 주눅 들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전작들을 봐도 딱히 노래를 못하는 팀이라고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에 더욱 의아하다.
서드: 고원의 ‘One & Only’는 ‘이달의 소녀’ 프로젝트 중에서는 보컬로서 어필하는 매력은 가장 떨어지지 않나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여진의 ‘키스는 다음에’와 더불어 멤버들이 발표한 곡 중에선 가장 ‘아이돌 팝’ 같은 매력이 있다. 또한 그룹 안에 속했을 때 그의 목소리가 어떤 기능을 하게 될지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는 노래다. 다만 여태까지 멤버 개인에게 찰떡 같이 맞아 떨어지는 이미지와 콘셉트를 만들어줬다면, 이번에는 이브부터 시작된 마지막 ⅓ 유닛의 큰 그림을 위해 약간의 희생을 감수한 인상도 있다. 츄와 듀엣으로 부르고 김립이 참여한 ‘See Saw’는 셋의 목소리의 조합이 꽤나 매력적인 트랙이다.
오요: 오드아이써클 이후 공개된 이브, 츄에 이어 고원까지 ‘에덴’을 키워드로 고딕 콘셉트를 선보이고 있는 이달의 소녀다. 이쯤 되면 서브컬처 대부분의 테마를 흡수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그 양상과 전개가 얼렁뚱땅 식의 차용이 아니라 세계관을 바탕으로 체계적이며 설득력 있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미묘: 최근 마이너 걸그룹들이 꽤 서정적이고 우아한 곡들을 내놓는 경우가 늘었다. 에이시드 역시 같은 방향을 고른 것일까 싶지만 결과물은 좋지 않다. 보컬과 랩 모두 뻣뻣한 점도 있지만, 청승 가득한 멜로디가 간만에 듣는 노래방 스트링에 실려 어떻게 해도 수습하기 어렵다.
김영대: 여간해서는 그 맛을 살리기 쉽지 않은 훵키한 리듬이지만 그저 여유롭게 타고 논다. 자칫하면 모멘텀을 쉽게 끌어올리기 쉽지 않은 형태의 곡 구성임에도 톤을 능숙하게 옮겨가며 곡의 빠른 흐름에 탁월하게 대응하는 모습에서 경험과 실력을 느낄 수 있다.
서드: ‘내가 돌아’는 최근 보아가 보여준 경향에서 파격적으로 방향을 전환했다는 인상은 주지 않는다. 조금 더 경쾌하고 쉬워진 것은 분명하고 무대 위에서 여유롭게 퍼포먼스를 소화하는 보아만의 매력 또한 여전하지만, 조금은 더 가볍고 트렌디한, 소위 ‘요즘 걸그룹’ 같은 사운드 속에서도 같은 가사와 퍼포먼스를 보아만의 스타일로 완성해내는 실험을 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지극히 개인적 아쉬움도 생긴다.
- 아이돌로지 10주년 : 현 필진의 Essential K-pop 플레이리스트 - 2024-05-13
- 아이돌로지 10주년 : 아이돌로지는 사랑을 싣고 (前 필진) - 2024-04-29
- 아이돌로지 10주년 : 아이돌로지는 사랑을 싣고 (미묘) - 2024-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