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새 음반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빅톤, 블랑세븐(Blanc7), 황인선, 비투비, 여자친구, 데이식스, 브레이브걸스, B.A.P, 로미오, 프로듀스 101, 이스트원(Eastone), 에릭남X소미를 다룬다.
박희아: '얼타'가 무슨 뜻인지 몰라서 주변에 물었더니, 한 남성 왈 "군대에서 많이 쓰는 말인데 어쩌고저쩌고." 비속어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를 과감하게 타이틀 훅으로 사용한 것이 조금 놀랍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사에서 특별한 매력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조금 놀랍다. 사운드가 재미있는 것과 별개로 타이틀곡 가사 곳곳에서 특별한 언어유희적 쾌감보다는 과격한 감이 강하게 풍기는 게 (본인을 포함한) 누군가에게는 부담스럽게 다가올 것 같다. 이전 앨범에 비해 자신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그림을 보다 명확하게 표현했으나, 그것이 팬들을 매혹시킬 정도로 좋은 요소인지 아니면 과하게 집어넣은 인위적인 남성성인지. 간만에 다른 리스너들의 의견이 매우 궁금해진다.
햄촤: '아무렇지 않은 척'이 신인다운 신선함을 강조한 괜찮은 데뷔곡이었다면, 'Eyez Eyez'는 본격적 출사표 같은 노래다. 짧은 기간 안에 여러 음반을 들어야 하는 입장에선 신인 그룹의 앨범이 처음부터 끝까지 크게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점만으로도 호감이 생기게 마련인데, 이번 EP를 들으며 빅톤은 첫인상보다는 훨씬 더 근사한 그룹이었구나 싶었다. 다섯 곡이 모두 개성이 뚜렷하며 보컬도 랩도 크게 흠잡을 데 없이 조화롭다. 가장 인상적인 트랙은 '아무렇지 않은 척'의 후렴구를 천연덕스럽게 변주시켜 집어넣은 '얼타'. 빅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깔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곡.
돌돌말링: 양정승이 프로듀싱한 신인 그룹. 조성모의 '불멸의 사랑' 등을 작곡한 것으로 유명한 양정승은 90년대 말부터 꾸준히 활동해온 싱어 송라이터이다. 발라드 히트곡이 많은 작곡가라 프로듀싱한 그룹도 그런 장르일까 짐작했는데, 최신 케이팝 트렌드를 충실히 반영한 댄스뮤직을 냈다. 90년대라면 네오소울에서나 들을 수 있었을 것 같은 코드워크에 트랩과 하우스가 반복해 깔린다. 무대를 확인하니 비보잉을 하는 멤버도 있는 것 같다. 첫인상이 나쁘지 않은,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그룹.
햄촤: 긴 연주곡이 첫 트랙으로 배치돼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지만 타이틀곡 'Yeah'의 뮤직비디오에선 절제된 퍼포먼스 사이에서 본격적인 비보잉을 선보이고 있어 또 인상적이다. 특별히 곡의 스타일과 어울리는 것도 아니라서 마치 1세대 아이돌 뮤직비디오에서나 보던 이미지가 떠오른다. 갤러리에서 촬영한 듯한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 등, 여러모로 공을 들였다는 느낌인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멤버들의 얼굴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
돌돌말링: 황인선이 벌써 세 번째 싱글을 냈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뮤직비디오는 소속사인 오감 엔터의 채널보다 황인선 본인 이름을 건 개인 채널의 조회 수가 각각 2만 건과 1백만 건으로 50배가량 높다. 황인선의 캐릭터는 많은 부분을 〈프로듀스 101〉에서의 '이모'에 기대고 있다. 때 지난 클럽 EDM 편곡에 트로트 같은 멜로디를 접붙인 '황야'를 듣고 있자면, 그런 캐릭터를 2000년대 거북이 등이 소화하던 댄스 트로트 같은 방향으로 가져가기로 하는 것 같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황야 황야"(발음은 [Fang-ya]) 같은 챈트를 보면 웃으라고 넣은 것 같기는 한데 그것을 소화하는 황인선의 얼굴이 너무 진지해서 웃을 수가 없다. 최근 트위터에서 키치하게 소비되고 있는 김연자의 'Amor Pati' 같은 노래와 한 장르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미묘: 근래 들어 보이그룹들이 훵크 사운드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진 듯한 인상인데, 비투비의 "Feel'eM"은 마치 '훵키-케이팝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기세 좋게 두들기는 베이스가 작정한 듯 누비고 다니는 역동적인 리듬 위에, 때론 브라스로 때론 신스로 임팩트 있게 출렁인다. 인트로 '말만 해'와 타이틀 'Movie'가 비슷한 기조 속에서 각각 좀 더 무뚝뚝한 화성과 보다 멜로딕한 접근으로 대칭을 이룬다. 멜로디라인이 상당히 고음으로 설정되면서, 감상적으로 들리기보다는 화려하게 다가오는 점도 묘수. 특히, 한껏 감상적인 듯이 흘러가다가 갑작스럽지만 안정적으로 폭발하는 'Movie'의 브리지가 오토튠 섞여 비딱한 랩으로 이어지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멤버들의 역량과 가능성, 그리고 선명한 캐릭터성이 좋은 밸런스로 짜여져 시원하게 치고 나가는 매력적인 두 트랙. 다른 수록곡들은 보다 안정지향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으나 역시 짜임새가 좋고 캐릭터도 잘 살리고 있다. (커버아트의 과도하게 솔직한 합성은 어떻게 좀 안 되는 것일까.)
박희아: 일련의 발라드 무드에서 벗어난 게 확실한 타이틀곡 'Movie'는 이들이 보여줄 수 있는 장난스런 에너지의 집결체다. 이전에 발표했던 댄스곡들과 특별히 다른 곡 흐름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처럼 일훈과 민혁의 랩 파트에 유난히 힘이 들어가 있는 식의 구성 또한 비슷하다. 하지만 이 곡의 제목이 'Movie'라는 점에서 추측할 수 있듯, 타이틀 곡과 앨범이 전체적으로 재미있는 까닭은 모든 멤버들에게 '신나는 순간'이 허락되었다는 점 덕분이다. 뮤직비디오도 그랬지만, 코스프레로 장식한 마지막 방송 무대는 이 팀의 존재 가치를 확실히 설명해준다. 하지만 앨범 수록곡인 '빨리 뛰어'의 코러스 가사는 정말이지 너무도 아쉽다. 비투비가 매 앨범을 발표할 때면 종종 수록곡 가사에서 아쉬운 부분을 발견하는데, 이번에도.
햄촤: 비투비만의 시그니처 스타일 같은 화음과 리듬의 '말만 해'를 시작으로 뮤직비디오에서 패러디된 영화 장면을 찾아보는 것만으로 쏠쏠한 재미를 주는 'Movie'로 흥겹게 이어지고, 상대적으로 잔잔한 'About Time'과 '언젠가' 사이에 독특한 가사가 인상적인 '빨리 뛰어'가 끼어있어 전체적으로 지루할 틈 없이 균형 잡힌 EP로, 비투비에게서 기대하는 거의 모든 요소를 충족시켜주는 앨범.
김윤하: 가요계 '소녀붐'을 이끌었던 여자친구의 새로운 2막이 반가운 건 단지 교복이 제복으로 바뀌고 꽃다발 대신 총이 등장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변화이지만, 가장 주목하고 싶은 건 이들이 학교 3부작을 통해 스스로 쌓아온 '파워청순' 수식에서 '청순'을 버리고 '파워'를 택하는 다소 과감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다. 앨범을 통해 걸팝이 보여줄 수 있는 생기와 다채로운 표정을 쉼 없이 연출하는 멤버들은 연출된 수줍음도 과장된 섹시함도 아닌 그룹 여자친구만이 지닌 에너지와 건강함으로 튼튼하게 빛난다. 타고난 건강미에 몽환을 더한 첫 곡 '바람의 노래'가 여러 의미로 한층 특별하게 다가온다.
미묘: 지금까지는 맹렬한 곡을 열창하는 일이 많았다면, 이번에는 기세를 상당 부분 반주에게 위탁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여자친구 보컬의 다소 담백한 성질이 과거보다 두드러진다. 최근 걸그룹 음반의 인트로가 조금씩 화려해지는 경향 속에 위치한 '바람의 노래'는, 보컬의 담백함이 자칫 밋밋함으로 다가오기 쉬운 곡이다. 조금 더 찰기 있는 보컬로 구사됐다면 곡으로서의 완성도가 배가됐으리란 상상을 하게 하는데, 여자친구에게 있어 이 담백함은 팀 이미지를 결정짓는 요소이기도 하기에 쉽게 판단 내리긴 부담스러운 영역이겠다. 다만 현악이 열심히 움직이는 디스코 풍의 화려함이 여백을 메우는 것 또한 분명하겠다. 'Fingertip'이 비트의 부피감과 후렴 멜로디의 단선적인 전개로 잔뜩 힘을 준 것과는 달리, 수록곡의 대부분은 반주를 통해 맹렬한 공기를 만들어내고 보컬은 거의 여과 없이 담백하게 담아낸다. 거의 심신을 연상케 하는 'Fingertip'에 비해 다른 곡들이 갖는 '현재성' 또한 거기에 있다. (심지어 아무래도 훅 강박이 심상의 완결성과 곡의 세련미를 망친 "탕탕탕, fingertip" 같은 대목마저도, 여자친구보다는 제작진이 무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접근은 그간 멤버들의 노력과 안간힘이 세일즈 포인트였던 여자친구에게 있어 제법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요소가 되기도 하여 무척 긍정적인 인상을 남긴다. 수록곡 중 '나의 지구를 지켜줘'는 후렴의 마무리마다 감정선이 다소 흐트러지기는 하지만, 윤상과 걸그룹의 조합에서 대중이 기대하는 현실적인 것들-약간 서글퍼서 예쁜 멜로디, 기운찬 전개, '소년이 접근할 수 있는 소녀만화' 정서, 그리고 약간의 낡은 듯한 공기까지-을, 어쩌면 러블리즈보다도 잘 담아낸 셈이다. 감상적인 접근의 트랙이지만 세련미를 놓치지 않은 '봄비' 역시 놓치기 아까운 트랙.
돌돌말링: 이제까지의 여자친구와 앞으로의 여자친구를 적당한 비율로 담아낸 좋은 음반. 언제나처럼 일본 서브컬처, 그 중에도 아니메 OST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비슷하나, 레퍼런스를 내비치는 방법이 훨씬 세련돼졌다. 사실 일본 아니메 OST 장르라는 것도 지금이야 로킹한 사운드나 아련한 가사 등 어떤 전형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버블 시대부터 내려온 자유로운 음악 실험의 장이기도 했다. 이런 영향을 물려받은 듯한 여자친구의 이번 음반은, 서정성은 간직하는 동시에 이국적인 시도가 적소에서 발견돼 신선하게 들린다. 1번 트랙 '바람의 노래'의 집시 피들 같은 바이올린이나, 3번 트랙 '비행운'에 트로피컬한 향취를 보태는 스틸팬 사운드 등이 그 예. 타이틀곡 'Fingertip'도 훌륭하지만, 여자친구 특유의 스포티한 박자감은 마지막 트랙 '핑'에 좀 더 잘 드러나니 참고하시길.
햄촤: 여러 면에서 여자친구만의 스타일이 점점 정착되고 정리되어가는 인상을 주면서도, 타이틀곡 'Fingertip'은 전작 '너 그리고 나'와도 상당히 차별된 이미지로 변화를 추구했다. '바람의 노래'의 바이올린, 'Fingertip' 간주의 일렉트릭 기타 등, 여자친구에게서 대중이 기대하는 '약속된 사운드'는 여전히 만끽할 수 있으니 걱정은 접어두길. 그룹의 성장과 함께 보컬의 조화가 완성단계에 이르렀다는 느낌을 주며 전반적으로 감상하기 매우 편안한 앨범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핑'. 이 노래를 들으며 여자친구의 본격적인 뉴잭스윙 곡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묘: 보도자료의 "댄스홀 사운드"는 농담으로 넘기는 게 좋겠지만, '어떻게 말해'가 버스에서 프리코러스를 거치며 후렴을 향해 몰려 들어가는 경로는 꽤 준수하다. 후렴이 끝나고 2절이 시작되는 순간의 대비도 매력적. 다만 후렴은 데이식스에 대해 다소 불안을 갖게 한다. "Every Day6" 시리즈를 거치면서 어프로치가 점차 헤비해지고 있는데, 그것이 헤비해야 할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변신 강박이라 보긴 어렵겠고, 록 밴드니까 더 헤비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과거의 망령을 좇고 있는 것만은 아니길 빌어 본다. 데이식스의 등장이 유난히 반가웠던 것은 바로 그 망령에게 소금을 뿌리기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후렴의 "어떻, 게말, 해" 하고 끊어가는 훅은 두고두고 떠오르게 하는 힘을 지녔고, 그곳에 데이식스의 팝으로서의 훌륭함이 있다. 그것이 지금은 헤비한 사운드를 '보완'하기 위한 수비수로서 기능한다. 이 길의 끝에서는 그 감각이 공격수로서 빛날 수 있길 바란다.
돌돌말링: 디스커버리를 붙이기엔 이제 브레이브걸스라는 이름이 꽤 오래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멤버진에 또 변화가 있었으므로 조심스럽게 달아보겠다. 용감한형제의 노래를 들을 때면 획기적이거나 음악적으로 복잡하지 않은 곡이면서 '훅이 어쩜 이렇게 기깔날까' 하고 감탄할 때가 있는데, 이 동물적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된 곡이 브레이브걸스의 신곡 'Rollin''이 아닌가 싶다. 깊은 텍스트를 분석하거나 겹겹이 쌓아 올린 사운드를 귀담아듣는 것도 케이팝을 즐기는 한 방법이지만,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첫인상에 '어, 이 노래 괜찮네' 하는 느낌을 받는 '진짜 가요'를 발견하는 순간도 즐겁다. 브레이브걸스는 특히 민영을 필두로 한 날 것(生) 느낌 나는 보컬진이 특징인데 그 점이 이 곡과 아주 잘 어울린다. 지금까지 용감한 형제가 다수의 히트곡을 제공한 씨스타나 AOA에게서는 들을 수 없는, 시쳇말로 '날티'가 느껴지는 부분이 있고, 현재 케이팝 씬에서 이 느낌을 브레이브걸스만큼 듣기 좋게 소화하는 팀은 없다. 브레이브걸스만의 탁월함을 알아보는 이들이 더 많아지는 이번 활동이기를 기대한다.
미묘: 'Wake Me Up'은 화려하게 구성된 사운드 공간과 드라이브감 있는 진행이 매력적인데, 사실 곡 자체는 정석적이다. 일부 프레이즈는 다소 진부한 감도 없지 않다. 극단적인 이미지로 혁명 또는 폭동을 표현하는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이고, 그 주인공들이 겪는 것들이 피억압이라기보다는 환각에 가깝게 묘사된 것이 재미있다. 다만 드라마틱한 연출을 위해 삽입된 간주가 곡으로 돌아올 때 박자가 맞지 않게 끊기는 것은 정말 옥에 티. 오히려 수록곡인 'Diamond 4 Ya'가 충격적으로 귀를 사로잡는데, 퓨처베이스와 일렉트로 스윙을 오가는 새벽 같은 공간이 단단하게 빛나면서 무척 야하다. 동물적인 꿈틀거림을 껍질 벗겨놓은 듯한 베이스도 매력적이고, 날카롭게 갈아버린 일렉트릭 피아노가 치고 들어오는 순간도 절묘하다. 차갑게 출렁이는 비트의 곳곳에서 보컬과 반주가 박자를 비워버림으로써 만들어지는 낙차 역시 가슴이 철렁하다.
미묘: 로미오가 기존의 얄쌍하고 해맑은 이미지를 언제까지 가져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변신의 순간에 등판한 것이, 마치 걸그룹들이 섹시 노선을 선택하는 장면처럼, 용감한 형제라는 것이 재미있다. 그리고 그는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거칠고 선 굵게 귓전을 때린 뒤 대뇌를 휘감아버리는 곡 말이다. "죽을 것 같은데"라고 노래하면 절박하기보다는 술주정하는 것처럼 들리는 '용감한 형제의 신비'를 포함해서, 곡은 로미오에게 매우 현실적인 색채를 입힘으로써 이들을 '성장'시킨다. 더 재미있는 것은 수록곡들인데, (보도자료에 의하면 '어쿠스틱 팝'이라 소개되는 트랙마저도) 어느 한순간 트렌디한 사운드 요소들을 끌어들이지 않는 때가 없다. 그렇게 구성된 매캐한 공간이 로미오의 해맑은 표정을 '더럽힘'으로써 성숙을 담아낸다. '좋은 차, 좋은 집'이 부동산을 소재로 한 '허슬'-돈타령까지 할 때면, 정말 작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꽤나 욕심을 부리다 보니 다소 두서없게 느껴지는 부분도 없진 않지만, 케이팝의 무근본성을 감안하고 바라볼 때 나름의 조율된 세계관이 느껴진다. 그것이 중요하다. 로미오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모습이 로미오에게 기대한 표정으로 정리되고 있다. 적어도, 기존의 로미오에서 지금의 로미오로 이어지는 행보는 분명 아이돌 씬의 숙제 중 하나였고, 이들의 독자적인 연구의 결과이며, 그것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햄촤: 타이틀곡 '니가 없는데'는 제목부터 가사까지 예측 가능한 상투적 서사를 벗어나지 않지만, 캐치한 후렴구의 멜로디와 흥겨운 사운드 덕분에 그 단순함이 호소력 있게 다가온다. 그간 다양한 작곡가의 곡으로 활동해 온 로미오인데, 용감한 형제와의 조화가 의외로 썩 나쁘지 않다. 어느새 데뷔 2주년을 앞뒀지만 여전히 신인 같은 신선함에 여유로움이 한층 더해져 부담 없이 흥겨운 노래다. 봄을 의식한 탓인지 수록곡은 전반적으로 잔잔한 톤으로 이뤄져 있는데, 어쿠스틱 기타에 화음을 얹은 마지막 트랙 'Blue'가 뻔하면서도 괜히 마음에 든다.
김윤하: EDM 사운드를 기반으로, 101명의 목소리를 담아도 어색하지 않은, 군무가 가능한 곡을 만든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도전이다. 특히 '전편'에 해당하는 곡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상황이라면 후일담을 이어가야 하는 책임자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남자 연습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듀스 101〉 새 시즌의 주제곡을 담당한 라이언전은 이 부담감을 특유의 가볍고 서늘한 감성으로 어렵지 않게 뛰어넘는다. 다른 어떤 장르보다 규모로 압도하기 쉬운 프로그레시브 하우스를 힌트로 그는 101명의 목소리를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활용하며 몰개성의 크리피함을 마력으로 삼아버린다. 'Pick Me'에 이어 다시 한번, 하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아무렴 어때' 싶어진다.
미묘: 어느새 할머니 보쌈집 간판의 '원조'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핑미핑미"가 '이렇게까지?' 싶도록 들어갔는데, 브랜드로서의 연결점을 만든다기보다는 '원조'를 강하게 어필하는 것에 가깝게 들린다. 반복되는 "나야 나"도 그렇고, 전작이 수행했던 역할들의 연장선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열심히 잘 해내는 트랙. 긍정적인 점은, 긍정적이고 즐거운 걸그룹을 보여주던 'Pick Me'에 비해 축제적인 시간을 연출해낸다는 것이다. 그것이 보이그룹과 걸그룹에 제작진이 어떤 차이를 두고 있는지 고스란히 노출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간판의 할머니 얼굴처럼 굳이 들어간 브레이크의 한없이 어색한 연결과 보컬에 실린 과도한 리버브만큼은 꼭 이래야만 했을까 싶다.
미묘: 강하게 때리기는 정말 강하게 때린다. 최근 들어 이 정도로 몰아붙이는 곡을 들은 일이 얼마나 있었나 싶다. 하지만 결국 이 곡에서 가장 즐거운 곳은 댄스 브레이크로 기능하는 후주인데, 그 이유는 다른 부분들이 가진 흠결 때문이다. 록 밴드의 곡에서 일부의 기타를 신스로 대체하고 신스로 양념을 더한 듯한 구성이 댄스곡으로서의 기능성을 살리지 못하고, 보컬과 랩의 믹스와 기량 모두 아쉽기만 하다. 타이틀이자 훅인 "Perfect"를 너무나 한글로 적은 듯 "펄펙"이라고 발음하는 것은, 이들이 잘 활동하고 있다고 하는 일본에서 "파-훼크토"와 차이를 강조해 신선함을 주려는 의도?
김윤하: 노래가 의도하는 바는 명확하다. 다정하고 섬세하고 배려 깊은, 이제는 그의 그 어떤 노래보다 유명해져 버린 에릭남의 이미지와 꼭 들어맞는 계절 봄. 그 봄을 노래 한 곡에 어떻게 효율적이고 매력적으로 녹여낼 것인가. 어쿠스틱 기타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소미의 존재, 남녀 보컬이 서로 치고 빠지는 타이밍 하나하나까지 '유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들은 오로지 그 목표만을 위해 전진한다. 그 결과 우리 곁에는 청춘의 두 아이콘이 그린 맑고 깨끗한 가상의 봄이 남았다. 비록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 같지만 말이다.
미묘: 여성 아이돌과 페어를 이뤄도 안심할 수 있는 아티스트로 어느새 자리한 것 같은 에릭남. 곡은 에릭남X소미라기보다 에릭남 feat. 소미에 가깝게 들린다. 비중의 문제는 아니다. 청각적으로 명백히 곡의 주인공으로 자리하는 에릭남에 비해, 소미의 목소리는 뻣뻣하게 들리면서 곡에 좀처럼 녹아들지 않는다. 2절에서 특히 그런가 하면, 함께 화음을 맞출 때는 또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데, 진행에 따라 소미 보컬의 믹스가 다소 차이가 있는 걸 생각하면 결국 파트 분배와 배치의 문제로 여겨진다. 멜로디 자체도 쉴 새 없이 오르내리며 거의 수다스럽게 늘어놓는 곡인데, (그것이 기호적으로 소미의 이미지와 어울림은 차치하고) 두 보컬리스트를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쏟아부어 놓은' 느낌이다. 조금은 다듬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곡. 여담이지만 뮤직비디오 속 두 사람의 얼굴이 왠지 무척 1990년대 초반 연예인들처럼 보이는데, 기분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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