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신작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누락되었던 홀랜드의 데뷔 디지털싱글(1월 22일 발매)을 포함해, 14U, 구구단, 헨리, 엔, 블랙식스, NRG, 세븐틴, 효린, 나은&진솔, 루나&혜다를 다룬다.
미묘: 오픈리 게이 ‘아이돌’을 표방했는데, 인디 프로덕션이다 보니 아이돌이라 부르기엔 애매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광의의 케이팝이 아이돌과 상호작용하는 흥미로운 예의 하나. 프로덕션의 완성도는 분명 아쉽다. 다만 네버랜드를 소재로 하면서 실은 네버랜드가 아닌 지금 이곳에 대한 희망을 (조금 쓸쓸하게) 노래하는 주제의식은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심은보(GDB): 과거 R&B의 요소를 어설프게 붙인 프로덕션과, 이와 비슷한 감상을 주는 홀랜드의 보컬은 아쉽다. ‘Neverland’라는 제목과 가사의 은유가 의미하는 바가 분명한 만큼, 흥미로운 지점은 존재한다.
서드: “넌 내 거”라는 말로 상대방에 대한 소유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거나 “예뻐지지 마”라며 간섭하는 일이 귀여운 애정표현으로 통용되는 시절도 이제는 좀 지나가야 하지 않을까. 뮤직비디오는 펀딩으로 제작된 듯 엔딩크레디트에 명예제작자인 팬들의 이름이 흘러나오는데, 예산의 규모와 무관하게 좀 더 뚜렷한 서사나 이미지를 보여줬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심은보(GDB): 예쁘고 귀엽게 보이고 싶은 모습과 상대를 소유하려는 욕망이 동시에 드러나는 가사가 이질감을 준다. 뮤직비디오 안 고등학생 콘셉트와 오브젝트가 드러내는 의미 또한 마찬가지. 곡과 그룹의 매력은 느껴지는데, 나머지가 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겉돈다. 여러모로 틀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
조성민: 연상하지 않으려고 해도, 파스텔톤의 화면과 소년미를 한껏 살린 보컬에서 세븐틴을 연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븐틴이 갖고 있던 ‘한 방’까지는 재현해내지 못한, 그 옛날 DSP의 ‘멤버+1’ 전략을 구사하는 것에 그친 듯한 순진함이 이 자연스러운 연상 작용의 원인일 것이다.
미묘: 잘 만든 곡이라기보다는 미덕이 있는 곡이라고 생각한다. 분절적인 곡 구성은 분절의 효과를 보다 잘 드러낼 여지가 있었다. 때때로 멜로디는 완벽히 수긍하기에는 다소 ‘채워 넣은 듯한’ 성김을 보인다. 그러나 후렴만큼은 매력적이고, 치대듯 귀에 감기며, 또한 노래를 듣는 내내 굉장히 ‘기다려진다.’ 내딛는 발꿈치의 힘을 연상하게 하는 제목과 이미지의 조화도 근사하며, 그것이 구구단에게 '멋짐'을 덧씌운다. 그것은 좋은 팝이다.
심댱: 청순에서 멋짐으로, 걸그룹 콘셉트가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탄으로 읽을 수 있는 구구단의 ‘The Boots’. 그 뒤에 이어지는 수록곡은 전형적인 걸그룹 트랙으로 채워져 있어 살짝 의아하다. 적어도 타이틀곡에 준 힘이 고르게 유지됐으면 더 근사했을 듯하다.
심은보(GDB): 구구단의 음악은 날이 갈수록 좋아지는 듯하다. ‘The Boots’도 이미지 변신과 청량감을 동시에 제공한다. 동화를 각색한다는 그룹의 콘셉트는 곡의 주제를 중구난방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는데, 이러한 우려를 멤버들이 가진 에너지로 상쇄하는 듯하다.
오요: 사실상 특별할 점 하나 없는 휘파람 라인을 곡 전반에 걸쳐 내세운 지루한 트랙이 될 수도 있었지만 화성으로 상승감을 한껏 끌어올리는 전주에 이어 단단하게 뻗어 나오는 후렴구의 멜로디가 그 모든 우려를 불식시킨다. 높은 음악적 완성도보다 더 인상 깊은 건 이 트랙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당당한 여성상을 제시하며 “너의 얘길 시작해, speak up”이라고 외치는 걸그룹은 실로 오랜만이며, 그렇기에 더더욱 가치가 있다.
조성민: 타이틀곡 ‘The Boots’는 뾰족한 포인트를 만들 듯 말 듯 듣는 이와 밀당하는 곡이다. 문제는 밀당 끝에 결국 청자를 끌어오는(hook) 부분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모처럼 박력 있게 구성한 댄스 브레이크마저 이렇다 할 카리스마를 발휘하지 못한다. 드라마가 제거된 곡 안에서 ‘극단’ 콘셉트가 무색해지는 순간.
심은보(GDB): 듣기 편하고 무난하다. 어쿠스틱 기타와 목소리 둘로만 이루어진 곡은 여러모로 익숙한 구성이다. 이는 반대로 심심하단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헨리가 지금껏 발표한 곡들을 죽 나열하고 들어보면, “이런 걸 할 때도 됐지”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요: 90년대 서양 보이밴드 앨범의 한 여덟 번째 트랙 정도에 딱 걸맞은 팝 발라드 곡인데 ‘굳이 편곡을 이렇게 단촐히 해야 했나’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괜찮은 멜로디가 있는데 그를 받쳐주는 소리가 거의 없어 다소 공허한 트랙이 되고 말았다.
미묘: 나른하고 섹시하며, 과장되지 않게 어른스러운 곡. 후렴의 촘촘한 멜로디가 수다스럽거나 리드미컬하다기보다는 조금 구차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다. 어쿠스틱 기타의 화성과 리듬이 주는 청명함이 이와 규형을 이뤄, 곡이 너무 무겁거나 낡게 들리지 않도록 거든다.
심댱: 엔의 처연한 보이스가 돋보이는 곡. 전원이 부른 원곡 ‘사보텐’보다 더 편안하게 들리는데, 자작곡이기 때문인 걸까. 귀를 편안히 잠재우는 멜로디가 마음을 놓이게 한다.
미묘: 멜로디는 다소 실용음악과 취향으로 안정적이고 매끄럽게 흐르는데, 이는 장점이다. 단점이라 하기에는 ‘힙합 베이스의 감미로운 곡’으로서 좀 흔한 공식을 따르는 편곡 구성 자체가 무난하기 때문. ‘무난해서 나쁜 곡’이라고 생각진 않는다.
오요: 뮤직비디오를 끝까지 본 다음 내린 결론: 이 뮤직비디오의 가치는 무대 구석에서 춤추는 수호랑이 귀엽다는 점뿐이다.
조성민: 평창 올림픽 헌정곡이지만, NRG가 늘 해오던 시그니처 피처, 즉 늘 해오던 함성 유도와 팔을 휘젓는 안무를 빼고 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평창 올림픽에 무엇을 헌정하고자 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미묘: ‘고맙다’는 세븐틴이 추구해 온 복합적 감성의 병렬을 멋지게 해낸다. 가요의 애절함을 확실히 내세우면서 이를 시원하고 날카로운 댄스의 맥락에 효과적으로 배치한다. 입체적이고 생생하게 몰입을 유도한다.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팀은 믿어도 좋다. ‘Thinkin’ about you’와 ‘지금 널 찾아가고 있어’가 더 아쉬운 건 그래서다. 각기 괜찮은 곡들이지만 장르를 가져오는 방식이 참신하거나 짜릿하진 않다.
서드: ‘울고 싶지 않아’가 변화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과도기였다면 ‘고맙다’는 좀 더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듯한 모양새다. 버스부터 코러스까지 가는 멜로디의 연계가 매끄러우며 세븐틴 특유의 불필요한 힘을 주지 않는 세련미가 잘 드러난다. 세븐틴다운 청량감이 살아있으면서도 록 사운드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지금 널 찾아가고 있어’에도 귀가 끌린다.
심은보(GDB): “2017 세븐틴 프로젝트의 마무리”라는 보도자료가 다음 세븐틴을 예고한다면, ‘고맙다’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고맙다”라는 단어의 의미 하나만으로 세븐틴은 같은 콘셉트를 수행하기에도, 새로운 이미지를 덧입히기에도 최적인 다리를 놓은 셈이다. 그러면서도 그룹이 가진 소년미나 댄스 역시 잘 녹여냈다. 음악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점이 다음을 향한 기대란 점에서 ‘고맙다’는 굉장히 좋은 프로젝트다. 그래도 슬슬 퓨처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오요: 보도자료 등에서 이 곡을 “청량한 기타 사운드 기반의 퓨처 베이스 장르의 곡”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우선 이 곡을 통틀어 등장하는 기타 사운드는 도입부와 후렴 직전 브리지의 배킹이 다인데 이 부분이 그렇게 사운드의 ‘기반’이 될 만큼 중요한 요소였는지 의문이며 평범한 기타 배킹 어디에서 ‘청량감’을 찾아야 할지도 황망할 뿐이다.
조성민: 이러니저러니 해도, 풍파를 겪은 아이돌은 성장하게 마련이다. 비록 매순간 항상 완벽하고 빛나진 않았더라도, 그 자리를 꾸준히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일말의 자부심과 자신감, 그리고 자존심이 느껴지는 앨범. 타이틀곡 ‘고맙다’의 허심탄회한 고백도 인상적이지만, ‘지금 널 찾아가고 있어’야 말로 데뷔 초부터 이어져 왔던 세븐틴만의 ‘순정만화’ 톤을 유지하는 어떤 ‘정수’라 할 만하다.
미묘: 효린이 할 수 있는 것들 중 대중적으로 가장 깊게 인식된 것들 중 상당수를 해내는 곡. 아슬아슬한 듯이 매끄러운 목소리로 구슬프게 노래하는 일이 그것이다. 곡의 구성이나 연주, 편곡이 모두 이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것을 지금 더 입증할 절실한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싱글의 제목처럼 ‘셋업’하는 시기로서 일종의 대전제라면야 납득할 만하다.
오요: 소유에 이어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한 효린의 첫 결과물인 ‘내일할래’는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거창한 포부나 야심을 담고 있지는 않다. 다만 담담하게 “왠지 피곤해, 좀 쉬고 싶어”라고 말하는 멜로디가 처량하게 들린다.
미묘: 사근사근한 분위기가 무난한 곡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후렴부터 훅까지의 감정선이 재미있다. 귀여운 로맨틱 코미디가 애절해졌다가, 아련하게 흐르다가, 다시 애매모호하게 마무리된다. 멜로디도 경쾌하게 시작했다가 너무 안정적으로 끝나나 하면, 이어지는 훅에서 분위기를 확 틀어버린다. 부담 없이 들을 수 있으면서도 뻔하지 않게 잘 조절된 곡.
서드: 봄을 미리 맞이하는 듯한 에이프릴다운 나긋한 발라드. 어느 멤버끼리 묶더라도 음색이 서로 잘 어울리고, 평균적으로 보컬이 안정적인 것이 에이프릴이란 팀이 지닌 강점 중 하나인데 나은과 진솔의 조합 또한 기대 이상으로 안정적이다. 다만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조금은 심심하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
미묘: 곡 자체는 리뷰라고 할 것이 없다. 이미 나온 곡이고, 좋은 곡이며, 그것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잘 찍은 노래방 어플 광고 같은 기획에는 회의감이 강하게 든다. 원곡의 짜릿함은 물론이고, 듀엣의 맛을 살리는 일조차 즐거워 보이는 두 사람의 얼굴에서나 이뤄지지 음악이나 음향이 일조하는 바가 없다. 음향기술 박람회 시연 비디오라면 모를까, 발매돼야 할 있는지 모르겠다.
심댱: 글로벌, 그리고 참여형 콘텐츠로 차별점을 둔 스테이션 시즌 2의 첫 번째 시도다. 그런데 왜 굳이 에브리싱이어야 했는지. 뮤직비디오를 보지 않으면 일반인이 SM에서 겪을 수 있는 환상적인 경험을 찾을 수 없다. SM이라는 브랜드만 건져져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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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ply on “1st Listen : 2018년 2월 초순”
구구단 호평이 많아서 의외네요. 조성민씨 의견에 동의해요. CLC도 같은 컨셉으로 나왔는데 비교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