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t Listen : 2015년 12월 중순

2015.12.1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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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분위기 가득한 12월 중순의 1st Listen. 솔라, 예지, 신지&앤씨아, 엔소닉의 제이하트, f(x),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의 서인국&빅스&박정아&박윤하, 다비치, 택연, 초아, Produce 101, M(이민우)&제라지다, 레드벨벳, 효린&범키&주영의 새 음반을 다룬다.
솔라
솔라감성 Part 2
RBW
2015년 12월 11일

   

마지막의 "그리움만 쌓이네"를 툭 내려놓는다든지, 몇 가지 명시적인 연출이 눈에 띈다. 몇몇 부분의 살짝 묘한 느낌을 제외하면 새롭거나 세련될 것 없는 구성의 편곡 속에서, 솔라 특유의 부피감이나 뭉근한 어택 같은 것들이 무리 없이 묻어난다. "솔라감성" 시리즈가 피상적인 "저만의 스타일..." 같은 접근만은 아님을 보여줄 수도 있는 단초들이다. 그러나 이런 추상적인 가능성을 구체화하는 데 있어서 이 곡은 무척 조심스러워 보인다. 유난히 레전드와 만신전 출석부를 좋아하는 한국에서 리메이크 연작을 통해 '솔라만의 감성'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번 곡 역시 솔라가 〈불후의 명곡〉의 바깥에서 이 작업을 진행해야 할 이유를 뚜렷이 제시하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그럼에도 이 트랙이 보여주는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 가능성들은, 제법 긴 시간에 걸친 증명의 조심스러운 첫걸음을 지켜보는 기대감을 준다.

오래된 친구가 옆에서 노래 불러주는 것 같은, 어쿠스틱 기타와 솔라의 목소리만으로 끌고 나가던 1절이 지나고 갑작스레 비트와 피아노가 등장한다. 솔라는 노래를 참 잘하고 '그리움만 쌓이네'는 참 좋은 곡이지만 노래방 반주에 딱 어울리는 비트가 곡의 감상을 상당히 방해한다.



예지
미친개
로엔트리
2015년 12월 11일

  

예지가 독하게 잘 써놓은 곡을 산이의 가사가 다 망쳤다. 사족보다 못한 피처링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사실상 곡과 정반대의, 올해 최악의 가사 중 하나. 입으로 뱉는 순간 주변 분위기 다 싸늘해지는 수준의 개저씨급 언어유희와 재미도, 의미도 없는 랩을 굳이 이렇게까지 언급하는 이유는, 반대로 예지의 가사는 한 번쯤은 생각해보게 하는 굉장히 주체적이고 힘 있는 랩이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트랙.

직접적으로 "미친"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하여 (가사에서 총 25번 등장한다) 내가 미쳤다고 피력하는 곡이 과연 설득력 있을지. 〈언프리티 랩스타〉의 애청자가 아니었던 사람은 프로그램을 통해 예지가 어떤 캐릭터를 획득했는지 알 길이 없고 오로지 곡으로만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산이의 피처링은 참담한 수준이고 예지의 랩은 '내가 미친개다'라고 우기기만 할 뿐, 큰 감흥이 없다.



신지, 앤씨아
얼마나 더..
제이제이홀릭 미디어
2015년 12월 11일

   

〈히든 싱어〉 신지 편에 앤씨아가 모창 능력자로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나온 싱글. 뮤직비디오를 보고서야 앤씨아가 부른 파트와 신지가 부른 파트를 구분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흡사한 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것은 앤씨아의 보컬이 갖는 호소력이 신지의 그것보다 뛰어나다는 점이다.



제이하트
Here's To Youth
C2K 엔터테인먼트
2015년 12월 14일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다수의 성공적 아이돌 솔로 활동은 아래의 두 가지 필요조건을 충족한다. 하나. 본진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라있다. 둘. 멤버 개인의 개성이나 능력치를 어필하거나 그것이 힘들다면 자아실현이라도 돕는다. 엔소닉 제이하트의 데뷔작 "Here's To Youth"의 경우, 첫 번째 항목을 만족스레 달성하지 못한 채 두 번째 조항에 다소 성급히 들어선 인상이 강하다. 앨범에 수록된 세 곡 모두가 자작곡에, 박재범과 크러쉬 사이의 어딘가 착지하기 위해 앨범 내내 노력 중이라는 건 내가 잘 알겠...지만 단지 그뿐이다. 아쉬운 기반과 기시감 강한 노래가 만났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 지가 부끄럽도록 투명하게 담겨있다.

'첫차 타고가'는 의욕에 비해서는 느슨하다. 후반의 랩은 클라이맥스를 이루거나 전체의 무드를 유지하는 그 어느 쪽에도 훌륭히 부합하지는 못하고, 래칫 스타일에 실린 가벼운 보컬도 꼭 맞는 짝이 되기보다는 단순조합에 그친다. 보컬의 매력을 활용하는 면에서는 'Call My Name'과 'ㅅㄹㅎ'가 욕심을 보여주지만 곡 자체가 훨씬 안전한지라 강한 인상을 남기기보다는 무난한 곡으로 남는 편이다. 편안하면서 캐릭터를 보여준다는 측면을 높이 평가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조금 밋밋한 음반인 것도 사실이다. 의외로 듣고 난 뒤에 멜로디가 귀에 맴도는 점을 생각하면, 조금 더 힘을 주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f(x)
12시 25분 (Wish List)
SM 엔터테인먼트
2015년 12월 15일

  

신선하고 가뿐한 것이 시부야케이처럼 들렸다. 이후 공개된 레드벨벳의 곡이 다분히 클래식해서 누군가에겐 편안하게, 누군가에겐 지루하게 들릴 소지가 있다면, 이 곡은 적당히 새롭고 적당히 친숙해 누구나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다. 최근 쏟아져 나온 캐롤st. 싱글들 중에 가장 돋보인다. 키가 같아서인지, 멜로디에서 시부야케이의 뿌리쯤 되는 시티팝 장르의 명곡 오오타키 에이이치(大瀧詠一)의 '夢で逢えたら'를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 있었다.

너무 많은 요소를 한 곡에 집어넣어 산만한 곡이 되고 말았다. 'f(x)의 크리스마스 시즌송은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라는 강박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리드믹하면서도 세련되게 시즌 분위기를 잘 살려낸 팝인 후렴을 제외한 파트가 제각기 다른 장르(SM산 R&B, "Pinktape" 앨범의 사운드와 비슷한 글리치, 과도한 애드립)와 분위기를 선보인다. SM의 장기라고 할 만한 '코러스 목소리 쌓기'도 너무 과도하게 사용된 감이 없잖아 있다.



서인국, 빅스, 박정아, 박윤하
Jelly Christmas 2015 - 4랑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2015년 12월 15일

   

후렴의 Gm가 Edim로 내려가는 순간 등, 뻔한 듯 의표를 찌르는 코드진행이 예쁘다. Ab(VIIb)도 약간의 의외성을 주면서 기분 좋게 부유한다. 빈티지 신스 계통의 톤들도 예쁘다. 다채로운 보컬도 하나하나 매력적. 다만 그 총합으로서의 조화가 좋다고 하기에는 다소 어수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연말의 흥청거림 속에 듣는 번외 싱글로서, 여러 보컬리스트들을 나열하는 포맷으로서, 그만하면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음악적 토대가 탄탄한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의 릴리즈로서는 조금 아쉽다. 랩으로 시작해 보컬의 조합이 이어지면서 근사하게 날아오른 뒤 예쁜 후렴이 다시 변주를 거치는 구간은 참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다비치
D-Make
B2M 엔터테인먼트
2015년 12월 16일

  

어린 시절의 핑클이 불렀던 원곡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가사가 표현하는 섬세하고 여린 소녀 감성에 비해 다비치의 보컬이 지나치게 능숙하고 원숙하다는 것이 치명적인 단점으로 들린다. 심지어 중간에 들어간 박재범의 랩도 그다지 잘 어울린다는 인상이 없고, 그냥 없는 게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원곡이 90년대 국내가요 일반의 전형성으로 점철된 곡이었다면, 이 곡은 그것보다 좀 더 팝으로 다가가려다가 무리하게 된 느낌이다. 가창력에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는 순간.



옥택연
외로운 옥캣의 크리스마스 이벤트 2015
JYP 엔터테인먼트
2015년 12월 16일

  

택연의 최근 몇 년간의 행보를 보고 있노라면, 대중의 큰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이 그 사랑을 어떻게 여유롭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가에 대한 모범답안을 보는 것만 같다. 올해로 벌써 3년 차를 맞이한 "외로운 옥캣의 크리스마스 이벤트"는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택연이 팬들에게 바치는 크리스마스 자작곡 시리즈다. 2015 버전은 지난 곡들에 비해 좀 더 마니악해진 면모를 자랑하는데, 아카펠라 형식에 카톡 대화체를 가사에 과감히 도입하고, 상대방 여성 목소리 모사도 불사하는 식이다. 이쯤이면 이 시리즈에서 완성도를 따지는 일은 좀처럼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옥캣과 팬들이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



초아
불꽃
로엔 엔터테인먼트
2015년 12월 17일

   

원곡이 나온 지 벌써 10년이 됐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원곡을 분명히 아는데도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색달라진 곡의 느낌에 두 번 놀랐다. 원곡은 장혜진의 아름다운 허스키 보이스와 개리의 유려한 랩에도 그 당시 유행하던 미디움템포의 쿵쾅댐을 참을 수가 없었는데, 초아 버전에서는 좀 더 눌러주고 촘촘해진 비트가 곡을 세련되게 들리게 한다. 이 버전에도 랩피처링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봤는데 그것도 좋을 것 같다.

과거의 곡에서 랩 파트에 새 멜로디를 작곡해 리메이크한다는 프로젝트의 설명을 처음 접하고는 의문이 생겼다. 그것을 통해 무엇을 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랩이란 게 무엇이기에?' 같은 것 말이다. 장혜진 정도의 걸출한 보컬리스트를 추적거리는 랩 발라드의 게스트 디바로밖에 활용하지 못했던 2006년과 이 곡이 만들어내는 차이는 적지 않다. 아이돌 중에선 호소력 있는 보컬 축에 속하는 초아지만 장혜진에 비해 가벼운 톤이 여러 가지 기교에도 불구하고 담백한 분위기를 내주고, 편곡도 훨씬 많은 요소를 가득 채워 넣어 다소 어지럽지만 전체의 질감만은 현재적인 매끈함을 조금은 얻어낸다. 하지만 나의 의문은 하나도 풀리지 않는다.

이번 회차의 추천작

처음 듣는 순간부터 수 시간 동안을 푹 빠져서 돌려 들었다. 원곡의 랩 파트를 보컬로 바꾼 센스도 탁월하고, 당시에는 유행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조금 촌스러워진 '한국형 R&B'의 요소들 - 과장된 현악 편곡, 지나치게 '울고 있는' 기교, 리쌍 특유의 일상적인 가사 등을 쳐낸 것이 가장 먼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역시 초아의 보컬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겠다. 화려하게 몰아치는 현악과 폭풍우 속에서 소리치며 싸우는 듯한 장혜진의 보컬이 원곡의 맛이었다면, 2000년대 초중반의 촌스러움은 걷어내고, 훨씬 세련된 테크닉과 더 섬세해진 감정선으로 곡을 안정적으로 완성시키는 초아의 보컬은 확실히 곡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고 말하기에 충분하다. 다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전보다 담백해진 편곡이 초아의 보컬을 충분히 서포트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이 있다. 보컬만 떼어내서 들으면 충분히 격정적인데, 반주가 너무 평이하게 흘러가서 드라마틱함이 약간 죽은 느낌이다. 개인적인 취향에 의한 의견인지라 큰 단점이라고 말하긴 힘들겠지만, 원곡에서 보컬과 랩이 교차하면서 다이내믹했던 진행이, 랩 파트가 빠지면서 더 밋밋해진 것도 같아서 그 점도 아쉽다. 하지만 원곡을 생각하지 않아도 충분히 완성도 있는 리메이크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결론은, 초아는 정말로 노래를 잘한다.



Produce 101
Pick Me
CJ E&M
2015년 12월 17일

   

힙합에서 EDM으로, 이제는 케이팝으로 타깃을 변경한 엠넷이 야심 차게 준비한 걸그룹 프로젝트의 첫 싱글치고는 실망스러워도 너무 실망스럽다. EDM의 클리셰를 덕지덕지 기워 입힌 곡도 곡이고 싸구려만 긁어모은 듯한 각종 효과음도 효과음이지만, 무엇보다 절망적인 건 오디션에 참여한 101명의 목소리를 대충 썰어 녹즙기에 넣고 짜버린 듯한 보컬 어레인징이다. 서울 근교 어딘가의 체육관에 101명을 동시에 몰아넣고 단파 라디오로 쏜 실시간 중계를 녹음한 듯 들리는 이 노래는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를 높이기는커녕 그나마 있던 기대조차도 사그러지게 만든다. 하기사 뮤직비디오 오프닝과 MC를 '근짱'에게 맡긴 것부터가 제작진이 이 프로그램을 어떤 프레임에 넣고 있는지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지만 말이다.

상식적으로 101명의 개성을 살리는 노래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10여 명이 되는 그룹도 각 멤버들이 나눠 받는 파트는 수 초에 지나지 않지 않는가. 101명을 무대에 올리는 것조차도 상식적인 일은 아니다. 두어 가지 케이스들이 떠오르는데 첫째는 이마와노 키요시로(忌野清志郎)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의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불렀던 108명의 프로젝트 그룹 번뇌걸스(煩悩ガールズ), 다른 하나는 2012년 AKB48 도쿄돔 공연 오프닝에서 무대가 열리며 드러나는 소녀들의 진열장이다. 그런 압도적인 숫자의 인원이 무대 위에 올라왔을 때 그 인원은 개인이 아닌 덩어리(mass)로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야말로 매스게임이 되는 것이다. 매스의 임팩트는 늘 강력하지만 덩어리 속에서 면면은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연습생들의 매스가 외치는 "PICK ME"는 개인의 꿈과 열망, 노력 등 엠넷이 보여주고자 하는 가치를 묻어버리고 시청자에게 전지전능한 권한을 넘긴다. 꿈을 위해서 모인 소녀들과 그걸 결정하는 시청자, 그리고 이들의 간절한 외침 "PICK ME", 이를 염려하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길 빈다.

신인 괴작에 헌정하는 Pick에 해당하는 스티커가 있었다면 이 곡에 3개월 치는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너 땜에 내가 정말", "터질 것 같아 심쿵심쿵", "Can you feel/touch/hold me", "나 어디로 갈지 몰라" 등의 가사는 걸그룹 가사의 전형성을 피상적으로 핥아먹고 내뱉은 라인들이고, "우리는 꿈을 꾸는 소녀들", "솜사탕처럼 부푼 내 마음" 같은 라인은 치졸하다. 문법에 안 맞는 영어 가사나 '아무튼 EDM!'이란 식의 사운드, 무작정-무한정 반복하는 "핑미핑미". 101명의 얼굴이 늘어선 바다 같은 풍경에 무작정 유니슨과 군무만으로 구성된 이 곡과 뮤직비디오가 참가자들을 '소개'한다는 명목에 부합하는지도 의문인데, 그런 생각 없음 혹은 의도와 결과의 어긋남까지. 바로 이런 류의 작품을 우리는 많이도 보고 들어왔다. 퍼스트리슨 코너에 수없이 등장한 초저예산 걸그룹들이다. "국내외 내로라하는 기획사에서 모인 101명"을 언더그라운드까지 포함한 업계 최저수준까지 떨어뜨려 놓고 그 절박한 사다리 싸움을 즐기라는 의도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아무렴, 그것은 "CJ가 가장 잘하는 것"이니.

어쩐지 캠페인송 같은 느낌이 든다. 보컬로이드 곡을 듣는 느낌도 있는데, 단순히 장르 탓만은 아닌 것 같다. 101명 모두에게 파트가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합창의 형태로 곡이 채워진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너무 안일하게 만들어진 곡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전체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까지도 사라지게 만든다.

여러모로 기이한 곡과 뮤직비디오 그리고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류의 대규모 인원을 동원한 프로젝트가 과연 시의적절한 건지 (당장 비슷한 선례로 거론되는 번뇌걸즈가 몇 년도 기획이었던가... 2005년이다) 그리고 101명 중 11명을 뽑아 고작 1년간 유효한 걸그룹을 만든다는 것이 (이 모든 것의 주체를 교묘하게 '국민 프로듀서'라고 포장하여 책임을 '국민'들에게 돌리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과연 올바른 일인지 등등 무수한 의문과 비판할 거리가 넘쳐나지만 다 차치하고 처음으로 101명의 소녀들을 선보이는 곡과 무대가 이따위인 것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몇 시간이면 뚝딱 만들 수 있을 법한 싸구려 EDM에 아무렇게나 붙인 가사, 의도불명의 뜬금없는 댄스브레이크, 교복을 흉내 낸 걸그룹 의상을 흉내 낸 의상까지 '저퀄'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101명의 소녀들을 어떤 식으로 엠넷이 바라보는지 너무 명확한 곡이고 무대여서 불쾌하기만 하다.



M, 제라지다
숨결 (Breathe)
투애니포 스트릿
2015년 12월 18일

   
이번 회차의 추천작

이번 회차 곡들 중 가장 즐겁게 들었다. 이민우 특유의 음색이 나른하면서 그루브한 튠에 잘 붙는다. 고의적으로 불빛이 웅성거리듯 깎아놓은 사운드는 헤드폰으로 들을 때 좀 더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다. 쿨케이가 작업했다는, 인물 실루엣에 네온 스트로크를 쳐놓은 뮤직비디오 역시 흥미로웠다. 다만 음원 사이트 댓글에 보니, 디스클로저(Disclosure)의 'Willing and Able'과 유사성을 지적하고 있었다. 프로파일의 연속 이미지를 투톤으로 처리한 부분이 그렇게 보일 수 있겠군, 싶기도 했다.

신화의 음악적 중축이기도 한 M은 가요계에서 소화 가능한 가장 멀리 나간 일렉트로닉을 꾸준히 욕심내고 있는 듯하다. 필터와 모듈레이션이 많이 활용되며 신스가 꿈틀거리는 가운데, 좀 더 달리고 싶은 욕심을 억누르는 듯한 비트가 섹시한 인상을 자아낸다. 다양한 사운드가 연달아 선보여지는 간주들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면이 있음은 분명하지만 음원만으로도 좀 더 타이트하게 납득이 가능했다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이렇듯 상당히 과감한 시도들을 담은 사운드의 운용 속에서, 후렴의 멜로디가 어딘지 '올드스쿨-SM-R&B' 같은 라인을 그리면서 부담을 덜어준다. 좋은 밸런스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숨결 (GERAGIDA Deephouse Mix)'가 딥하우스를 표방하는 것에 비해 상당히 복잡한 질감을 보여주는 반면, 상대적으로 M의 입김이 더 많다고 볼 수 있을 '숨결'이 더 차갑고 '딥'한 색채를 일관되게 내주고 있는 점 역시 흥미롭다.

의외로 국내가요 시장에서 '남자도 반할 만큼 멋진 성인 남자'의 역할 모델을 제시했던 케이스는 많지 않다. 그래서 신화 멤버들은 아마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 대체재 없이 이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진의 솔로에 이어서 신화를 주목하게 하는 싱글.



레드벨벳
세가지 소원 (Wish Tree)
SM 엔터테인먼트
2015년 12월 18일

  

크리스마스 이벤트 싱글로 남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그사이에 또 다시 성장한 레드벨벳의 보컬을 마음껏 즐기면서 감상했다. 근래에 SM에서 발매한 발라드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싱글. 레드벨벳은 사실 눈보다 귀를 더 즐겁게 하는 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드벨벳이 가진 보컬로서의 기량이 십분 발휘되는 발라드 넘버에서 느끼는 건, 역시 레드벨벳은 좋은 음색과 가창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첫 정규 앨범에서 선보였던 정도의 연출과 섬세함까지는 아니더라도, 힘과 섬세함을 적절히 배치하며 진행하는 보컬은 겨울 발라드로 딱 좋다는 생각이 든다.



효린, 범키, 주영
Love Line
스타쉽 엑스
2015년 12월 18일

   

'Love Line'은 최근 부쩍 늘어나고 있는 케이팝 아티스트들과 해외 유명 작곡가, 프로듀서들의 협력 작품으로, 해당 분야 전례의 전철을 성실히 밟는 싱글이다. (곡을 제공한 Da Internz는 시카고 출신의 작곡가 팀으로 저스틴 비버, 보이즈 투 멘, 나스, 존 레전드, 니키 미나즈, 리한나 등과 함께 작업해 온 베테랑이다.) 이러한 유행 아닌 유행은 쉽게 말하듯 그만큼 케이팝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높아진 덕분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기존 해외 작곡가들에게 지금껏 '해보고는 싶었지만 너무 이상할 것 같아' 시도해보지 못한 다양한 음악적 실험이 가능한 곳으로 한국이 주목받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곡 역시 평범하게 들리면서도 기존의 'A-후렴-B-후렴-브리지-후렴' 전개에서 벗어난 꽤 변칙적인 전개를 보여주고 있는데, 미디움 템포의 흔한 레트로 팝 전개 중간중간 등장하는 "난 너만의 radio / 들어줄래 나의 Stereo" 파트가 주는 묘한 균열의 쾌감이 꽤 오래 혀끝에 남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프로듀서 중 하나인 Da Internz의 곡이라 더욱 기대했지만, 효린 특유의 창법은 곡에 비해 과하게 느껴지고 주영의 보컬은 좋지만 디테일 면에서 조금 아쉽다. 곡에서 가장 적절하게 움직이는 사람은 단연 범키다. 과하지 않은 섬세함으로 곡 전체를 조율하고 뒷받침하는 듯한 그의 역할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빛을 발하는 듯하다. 여러모로 한동안 활동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라 아쉽다.

비트만 따지자면 근래 등장한 여러 R&B 곡들 중 가장 최신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그러나 '본토 음악에 가까운 정도'가 곡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본토의 최신 장르, 유행하는 사운드, 작곡가 등을 수입해 왔다는 것만으로 자랑이 되고 홍보가 되던 시기는 이미 끝났고 그런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 오히려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케이팝과 해외 음악 씬의 경계는 옅어지고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 장르 소화를 잘 해내느냐, 또 어떻게 장르의 문법을 가져와 새롭게 재구성할 것인가일 텐데 지난번 퓨처 R&B 트랙 "다크팬더(DARK PANDA)"도 그렇고 이런 점에서 당분간 효린을 능가할 보컬이 나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1st Listen 코너는 12월 말 한 회차를 쉰 뒤 1월 15일에 돌아옵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 행복한 새해 되시길 빕니다.
Editor

Auth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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