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순 발매된 범-아이돌 신작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L.A.U, 리브하이, 강타, VAV, 방탄소년단, 배드키즈, 이효리, 페이버릿, 시크엔젤, 유승우x산들, 데이식스, 헤일로, 시우민&마크, PPL, 남태현(사우스클럽), 레드벨벳을 다룬다.
미묘: 데뷔곡 ‘남.사.못’이 다소 질척거리는 구석이 있었던 기억이 있는데, L.A.U의 두 번째 싱글은 훨씬 산뜻하다. 그 비결 중 하나는 이 흥청대는 곡에 배음이 강조된 베이스가 통통거리고 있기 때문일 듯하다. 비교적 근래의 트렌드에서 사운드요소를 끌어와 가요적인 맥락에 잘 섞어 넣은 예라고 해도 좋겠다. 전체적인 멜로디라인은 역시나 무척 가요적이지만, 여기저기 삽입된 장식적 사운드들이 아주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분위기를 살짝 스타일리시하게 꾸며낸다. 가창력 중심의 그룹이란 이미지인데, 적절히 기량을 보여주는 대목들도 챙겨가면서 너무 처지지 않도록 균형점을 잡은 듯하다. 그것이 (포지셔닝의 특성과도 맞물려) 흥행에 얼마나 힘이 되는지 재단하긴 어렵지만, 노래 잘하는 것을 강조하고픈 그룹이 뚝심이라 오해할 법한 지점을 살짝 비껴가는 점이 좋아 보인다.
랜디: 아이돌로지에서 리뷰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발매곡인 ‘해피송’부터지만, 2013년 여름에 ‘하쿠나마타타’라는 곡으로 데뷔한 리브하이는 벌써 4년을 꽉 채운 그룹이다. 90년대 히트곡인 ‘꿍따리 샤바라’는 원곡의 느낌이 워낙 원초적이고 단순해서 그 특유의 임팩트를 넘어서는 커버 곡이 나오기 쉽지는 않은데, 리브하이 버전은 편곡이 썩 나쁘지 않아서 이 여름에 들을 만하다. ‘해피송’부터 이어져 오는 ‘힐링을 표방하는 가사와 부적절할 정도로 섹슈얼한 안무’의 조합은 저예산 케이팝 걸그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성이나, 볼 때마다 이런 기획을 직접 수행해야 하는 걸그룹 멤버들의 곤란함을 함께 상상하게 된다.
햄촤: 그 유명한 클론의 ‘꿍따리 샤바라’를 걸그룹이 리메이크했다는 점만으로 흥미를 끌었지만, 결국 원곡이 얼마나 값진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 외에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흥’이 최우선이었던 원곡의 장점을 지워버리는 편곡과, 맥도 없고 임팩트도 없는 랩 파트 등 여러 가지로 아쉽기만 한 시도.
심댱: 게임 OST의 리메이크곡. 원곡은 여성 아티스트(이승연)의 단단한 보이스와 부드러운 반주가 돋보이는데, 강타 버전은 좀 더 유려하고 스케일이 큰 편이다. 게임 OST 컬래버레이션은 아티스트에게 신선한 이미지를 부여하고, 게임회사 입장에서는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윈-윈 게임으로 보인다. 추억의 가수가 부르는 추억의 노래는 확실히 차별화된 마케팅 같다. 인스트루먼탈마저도 근사한 발라드니, 게임을 몰라도 즐겁게 들을 수 있는 곡이다.
미묘: 늘 준수한 트랙을 선보이는 VAV. 올여름 ‘또’란 말을 붙이지 않기 어려운 트로피컬로 시작하는데, 프리코러스의 끝자락부터 뉴잭스윙, 그것도 무척 90년대스러운 스타일로 넘어가 버리는 것이 재미있다. 몇 번의 트랜지션이 상당히 능청스럽고 매끄러운데, 어쩌면 그런 매끄럽고 무해하며 깔끔한 점이 이 곡을 슬슬 잘 흘려버리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보컬 화성의 처리도 과하지 않게 산뜻하다. 역시, ‘준수’하다.
오요: 시원한 여름용 노래라기엔 아쉬운 점이 많다. 평이하게 흘러가 버리는 후렴구는 그닥 매력적이지 않으며 전체적인 사운드 톤과 악기의 선택에 동의하기 힘들다. ‘차라리 시원하게 지르는 보컬이라도 있었으면’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랜디: ‘Come Back Home’이 2017년에 나오면 이럴 것이다, 하는 기대를 그대로 재연해냈다. 원래부터 트랩 곡이었던 것처럼 적당한 옷이다. 서태지가 부르던 첫 버스(verse)를 제이홉이 특유의 톤으로 잘 살려내서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중간중간 원곡의 익숙한 라인과 멜로디가 새로 쓴 파트와 교차하며 즐거움을 준다. 방탄소년단의 초기작들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청소년에게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제의 노래를 골랐다는 것이 꽤 잘 어울리는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다만 그 메시지가 첫 번째 코러스 뒤에 들어오는 랩 버스로 흐려지는 기색이 있는데, ‘트로피’나 ‘가문의 영광’ 등 방탄소년단의 커리어적 성공을 연상하게 하는 가사가 원곡이 전달하던 계도적 메시지나 위로와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이런 점은 이들의 전작 ‘Not Today’에서도 관찰된 바 있다. ‘방탄 스왜그’를 어떡하면 더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겠다.
심댱: 서태지의 데뷔 25주년 기념 리메이크 프로젝트 “타임: 트래블러 (Time: Traveler)”의 첫 번째 곡, ‘Come Back Home’이다. 원곡 특유의 후렴구와 베이스라인, 비트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방탄소년단화’했다. 불안한 청춘을 노래하는 방탄소년단이기에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20세기에 갈 곳 잃은 분노를 쏟아내던 청춘은 21세기의 불안한 미래 속에서도 꿋꿋이 자기의 길을 걸어간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달라졌지만 곡의 화자는 그대로인 것 같다. 곡의 생명력과, 이 곡을 자기 스타일로 소화해 낸 방탄소년단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복잡한 감정을 참지 못하고 질주하는 한 사람, 그의 손안에 잡힌 카세트테이프가 인상적인 뮤직비디오도 볼만하다.
오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원곡과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사운드가 조금 더 세련돼졌다는 것 외에는 곡의 구성도, 전반적인 분위기도 비슷하다. 원곡이 대중음악사에서 기념비적인 곡으로 평가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이 곡이 발표되었던 시기가 1995년이라는 점, 그전까지 한국에 알려지지 않았던 갱스터랩이라는 장르를 거의 최초로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7년에 이 리메이크곡이 갖는 가치와 의미는 과연 무엇인지, 선뜻 파악하기 쉽지 않다.
미묘: 인트로 트랙의 총체적 어색함은 ‘Give It To Me’가 시작하면서 매우 “Brave Sound”처럼 들리는 “Badkiz!”가 들려올 때 납득된다. 올여름 우리 곁을 떠난 어느 그룹의 히트곡을 연상시키는 제목과 훅의 반복, AOA나 EXID 등에게서 매우 익숙해진 걸그룹 클리셰들. 다소 과하게 높은 음역을 잡은 몇몇 구간과, 변명의 여지 없이 삐걱대는 몇몇 요소들, 수만 번은 들었을 법한 “이 밤이 가기 전에” “내게 다가와” 류의 가사. 그러나 분명한 건 그 모든 것을 이렇게 꾸준한 자극과 (특정 취향의) 업리프팅으로 연결해낼 수 있는 것은 소형 기획사는 물론이고 웬만한 메이저 아이돌 프로덕션에서도 흔치 않다는 점이다. 이제는 서울 지하철 안전 캠페인에도 등장하는 이들의 ‘귓방망이’도 워낙 강렬했기에 참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배드키즈는 정말 만만치 않다.
미묘: ‘덜어냄’과 ‘색다른 음악’을 동시에 추구하는 앨범. 대중적 측면에선 두 가지 모두 조금 격할 정도로 밀어붙인 셈인데, 마음의 향방이 덜 정리된 채로 마무리됐다는 인상이 강하다. 장식적 요소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확실하게 기능하는 것도 아니며, 필시 의도적으로 뻣뻣하게 연출된 보컬도 담백과 어색 사이를 종종 표류한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발을 내디딘 것도 의미 있지만, (수록곡들에서 더 안정적으로 매력을 전달하는 작곡과 편곡에 비해) 특히 가사는 너무 편안하게만 쓰여졌다는 생각이 든다. ‘화려한 과거의 나’와의 화해, 나이와 변화에 대한 부담 같은 주제들은 대중이 이효리의 송라이팅에서 당연히 가장 먼저 기대할 것들인 동시에, ‘미스코리아’에서도 설득력 있게 전개했던 것들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효리가 젊은 날에 대한 연민과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만을 자꾸 이야기하는 걸 듣는 것도 조금 마음 아픈데, 이를 정 다루겠다면 좀 더 멀리 나가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Black’에서 ‘검은 머리, 검은 눈’의 ‘나’가 ‘어두운 세상’과 대립-적대관계로 설정돼 있지 않다는 점만은 마음속에 길게 남는다. 마치 ‘세상도 어둡고 나도 어둡지만 그런 게 나’ 또는 ‘나도 어둡고 세상도 어두우니 OK’같은 긍정은, 이효리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낙천적인 단단함의 단초다.
심댱: 대중문화의 아이콘, 그리고 서울인이었던 이효리가 외부인의 시각으로 노래한다. 화려함으로 가득했던 공간과 시간을 벗어나 관조하는 느낌의 앨범이다. 키워드는 ‘Back to Basic’. 굳이 화려하게 보이려 하지 않아도 내면의 힘으로 반짝이고 있다. ‘예쁘다’의 멜로디에 자연스레 얹어낸 그의 목소리나 ‘변하지 않는 건’ 속 날카롭게 자기 생각을 남기는 모습 모두 이효리가 생각하는 이효리이며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화장과 염색으로 가려왔던 아티스트 본연의 모습이 드러난다. 내면이 단단해진 아티스트가 얼만큼 자신을 드러내는지 들여다볼 만한 앨범이다.
랜디: 신스 음과 음 사이 뮤트까지 해가며 들어가는 인트로, 그리고 기이한 동화를 배경으로 하는 A 섹션 가사가 잔뜩 기대감을 줬다가, 썩 후련하지는 않은 코러스로 흘러가는 곡이다. 기본 드럼 키트로 찍은 리듬이 빈약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소재의 참신함과 이국적인 요소의 차용이 (올바르거나 깊이 있지는 않으나) 이 곡의 분위기를 크게 캐리하고 있어서, 올해에도 쏟아지는 수많은 걸그룹 데뷔곡 중에 독특한 포지션을 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는 파자마 파티’라는 콘셉트가 ’Party Time’이라는 제목에서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를 슬쩍 비껴간 점에서 센스가 느껴진다.
햄촤: 오마이걸과 에이프릴의 동화적 분위기와 드림캐쳐가 지닌 음산함을 적절히 섞으면 이런 느낌이 날까. ‘Party Time’은 제법 인상적인 도입부와 전개에 비해 정작 후렴구의 평범함이 다소 실망스럽지만, 콘셉트와 대중성을 동시에 챙기려는 고민과 야심만은 느껴진다. 사운드와 전체적 구성에서 엿보이는 약간의 촌스러움은 오히려 곡의 지향점과 맞아 떨어져 설득력을 지니기도. 모두가 인상적인 면모를 남기면서도 무난하게 씬에 안착하려 하는 포화상태인 걸그룹 씬에서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데뷔곡.
미묘: 스틸 기타와 브라스, 피아노와 각종 퍼쿠션이 출렁이는 해변 분위기의 시즌송. 비교적 단순하고 가벼운 멜로디가 적당히 감상적인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흐른다. 정석적인 시도인 셈인데, 워낙 편성된 악기들이 많고 자잘하게 삽입된 요소들도 많아 모든 것이 한데 뒤엉켜 있다. 메인 보컬은 그나마 파묻혀 잘 들리지 않는 정도지만, 백업 보컬과 여타의 목소리들은 그냥 소리를 지저분하게 만들기만 하는 순간이 더 많다. 욕심이 과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정도의 편성을 과한 욕심이라 부르기엔 달리 욕심 내줬으면 하는 부분이 많다.
랜디: 브라더수가 곡을 쓰고 노랫말을 붙였다. 이렇게 달콤한 분위기를 지향하는 이벤트성 콜라보 곡들은 대개 노림수가 과해서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곡들도 많은데, 이 곡은 연주나 보컬 퍼포먼스 등이 오버하지 않고 딱 적당한 선을 지키고 있어서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다. 이것은 이런 곡을 워낙 잘 만드는 브라더수 프로듀싱의 탁월성 덕택이겠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기억되던 산들을 유승우와 함께 듣자니 목소리에 의외로 금속성이 많았구나 하고 느껴지는 점이 재미있다. 한 가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하자면, 곡이 발매되기에 앞서 ‘오빠’라는 단어에 얽힌 연령 권력과 젠더 권력을 부적절하게 재생산하는 곡이 되지 않을지 우려하는 팬들이 있었고 브라더수가 SNS에 직접 메시지를 올려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다행히 뚜껑을 열어보니 그런 위계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노래는 아니어서 잘 마무리가 된 바 있다. 다만 ’오빠란 말에 환장하는 형들 이해 못 했는데’라고 말하는 노래 속 화자에게는, 그 형들을 다 믿지는 마시라고 말해주고 싶다…
미묘: 미세하게 변신의 기색이 느껴지는 두 곡. 오르간 연주 패턴을 비롯해 데이식스의 곡에서 지나치게 많이 들어온 요소들이 조금씩 있긴 하지만, 폴라리스(Polaris) 등의 일본 컬리지를 연상시키는 약간의 싸이키델릭함을 별스럽지 않다는 듯이 감싸 안는 ‘Hi Hello’의 설득력은 충분히 고개 끄덕일 만하다. 그러면서도 원래 데이식스의 말끔한 결이 살아있는 점을 보면, 정체성을 확실히 챙긴 채로 약간씩 방향타를 바꾸는 것으로 다른 색채를 보여줄 수 있는 밴드가 되어가고 있는 듯해 보기 좋다. 다만 ‘Be Lazy’는 데이식스가 씬에서 새로웠던 이유를 (그것도 그리 ‘lazy’하지 않은 방식으로) 부러 되돌려버리는 트랙처럼 느껴진다. 이런 트랙이 필요하다고 한다면야 그럴 수 있겠으나, 그 필요를 충족하는 방식은 그리 부지런하지 않아 보인다.
오요: 데이식스는 아이돌인가? 밴드인가? 인디 가요를 부르는 아이돌 밴드라는 답이 제일 괜찮아 보인다. ‘Hi Hello’도 그렇고 ‘Be Lazy’도 분명 깔끔하게 잘 만든 곡인 것은 틀림없다. 문제는 인디 씬에 이 정도의 음악을 들려주는 밴드는 충분히 많다는 점, 그렇다면 ‘아이돌 밴드’라는 밴드 고유의 정체성이 이 그룹의 음악을 뭔가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미묘: ‘여기여기’는 괜찮은 질감의 비트에 브라스가 쑤시고 다니는, 다소 낡은 듯한 인상도 없지 않은 곡이다. 사실 케이팝 보이그룹에게서 듣기에 놀라울 건 없는, 매우 익숙한 곡풍이기도 하다. 안정적인 스타일에 퀄리티를 기한다는 것은 보수적이지만 나쁘지 않은 선택. 그러나 보컬이 이 곡에는 상당히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레가토 중심의, 케이팝식으로 잘하는 보컬들이 비트와 브라스 틈새로 파묻혀 사뭇 산만하게 들린다. 비트감이 살짝 비틀린 구석이 있는 감상적 EDM인 ‘Flying’에서 헤일로의 목소리들은 훨씬 설득력 있다. 멤버들의 자작곡 두 곡이 이어지는데, 정형적인 곡풍(보컬과는 잘 붙는다)인 데다 아무래도 아마추어 작곡 티가 너무 나서 줌바스 뮤직의 두 곡에 연달아 듣기에는 조금 맥이 빠진다.
랜디: 오랜만의 정규 앨범 컴백과, NCT & ‘눈덩이 프로젝트’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엑소의 시우민과 NCT의 마크 두 사람이 만난 SM 스테이션 기획. 90년대 느낌을 내는 피아노를 전체적으로 깔고 뒤로 갈수록 퓨처베이스가 들어오는 구성이다.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 듣고 나면 ‘Young & Free’하기만 하고 ‘Wild’한 면 없이 가볍게 마무리되어 조금 허전하기도.
심댱: SM 스테이션 시즌2는 시즌1보다는 푸시가 적지만 꾸준히 좋은 콘텐츠를 보여주고 있다. SM 아티스트끼리의 컬래버레이션에서 이렇게 산뜻한 트랙이 나와서 반갑다. 그동안 그룹에 맞게 자기 색깔을 중화시켜 왔을 아이돌 그룹 멤버들에게 개성을 살릴 기회를 주는 것도 SM 스테이션의 기획의도 중 일부일 것이다. 비일상(非日常)을 다루고 있는 ‘Young & Free’는, 구김살 없이 맑은 시우민과 마크의 조합을 통해 자연스레 웃음 짓게 한다. 처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지도 않다. 여유 있고 가볍게 내딛는 발걸음, 산책보다는 더 먼 곳을 향해 가는 여정을 그리는 듯하다. 엇비슷한 이미지의 두 아티스트가 만들어낸 시너지와 함께, 콜라보를 제안한 데뷔 6년 차 시우민의 프로듀서적 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
오요: ‘90년대 느낌의 레트로한 피아노 연주와 모던한 퓨처베이스 사운드’라고 자신만만하게 소개할 때부터 대체 무슨 결과물이 나올지 의문스러웠다. 레트로와 퓨처베이스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조화롭게 연결하기 힘든데 (퓨처펑크라면 또 모르겠다만) 아니나 다를까 이도 저도 아닌 트랙이 되고 말았다. 특히 후렴 부분에 이르러 도저히 퓨처베이스라 할 수 없을 수준으로 수많은 전자음과 보컬 등이 뭉개져 갑갑하기 그지없다.
햄촤: 곡 자체보다는 멤버 조합의 특별함이 더 먼저 눈에 띄는 유닛이다. 무엇보다 두 멤버가 가진 장점과 개성이 무엇인지 잘 드러내 주는 노래. 가창력보다는 청량한 음색이 가장 큰 매력인 시우민과, 마크의 거침없이 매끄럽지만 한편으로 앳됨이 묻어나는 목소리의 랩이 어우러져 ‘Young & Free’라는 제목처럼 가볍고 시원한 이미지를 잘 전달한다. SM 스테이션의 존재 의의라면 곡을 발표하는 양보다는, 이번처럼 평소 그룹 활동만으론 접할 수 없는 의외성과 신선함을 전달하는 게 가장 크지 않을까.
랜디: 배드키즈의 ‘귓방망이’ 등을 만든 단디의 작품. 별 기대 없이 들었다가 의외로 캐치하게 잘 배치된 멜로디와 훅, 트랩 비트에 ‘어라?’하게 된다. 도입부를 가볍고 새침하게 시작해서 프리코러스에서 표정을 바꾸듯 마이너로 전조하고, 이후 따라오는 코러스는 적당히 설득력 있는 멜로디를 전달하면서 “Boom Boom (Shoot U)” 같은 훅으로 잽을 몇 번이나 날리는데 이게 의외로 즐겁다. 전체적으로 힘없이 처리된 멤버들의 보컬이 심각한 옥에 티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들을 만하다. 케이팝 여름 노래에 기대할 만한 것들이 다수 담겨있는 곡이다.
오요: 좋게 말하면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가며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 나가는 과정일 테고 다르게 말하면 그때그때 좋게 들은 음악을 시도해보는 과도기 정도에 있는 것 같다. 남태현의 음악에서 스쿨밴드 같은 인상을 계속 받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판단을 유보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계속 그래야 하는지도 이제는 약간 의심스러워진다.
랜디: ‘빨간 맛’은 올여름 나온 트랙 중에 가장 묵직한 임팩트로 여름과 정면승부하고 있는 곡이다. 코드 옮김이 거의 없는 A 메이저의 곡으로, 후렴으로 시작하는 첫 여섯 마디까지 A 베이스 하나만 놓고 리듬으로 때리다가 7번째 마디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코드워크가 F#m-E-D-A라는 초단순한 진행이다. 이런 무지막지함이 목소리를 쥐었다 놓는 레드벨벳의 보컬 처리, 그리고 코드 변화 직전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화성과 어울려 파괴력을 갖는다. 그러나 이전까지 레드벨벳의 여름이란, 청량함 가운데에도 약간의 기괴함을 섞어 서늘한 매력을 선보이는 면이 있었던 것을 기억할 때에, 이런 노골적인 여름송은 레드벨벳답지 않다고 여기는 팬들도 있을 법하다. SM의 A&R은 이 노래가 레드벨벳의 대표곡이 돼도 정말 괜찮은 걸까? 좋은 곡이지만, 꽤 중대한 방향 선회 같아서 속내가 궁금해진다.
미묘: 귀엽고 엉뚱하고 상큼하고 부산스러우며 턱밑에서 손을 찰랑대는 외양이지만, 가만히 듣고 있자면 무척 선동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곡이 ‘빨간 맛’이다. 레드벨벳 특유의 CM송 분위기 속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을 선언하는 순간이 거의 위풍당당하다고 해야 할 정도다. 전작들의 한켠에서 가슴 철렁한 감성을 담아내던 일렉트로팝 기조는 댄스뮤직 전통의 클리셰들을 쭉쭉 끌어오는 ‘You Better Know’를 통해 이번엔 2번 트랙에서 보다 화려하고 자신감 넘치는 기색으로 터져 나온다. 나직한 목소리와 공간감 큰 화성이 여유롭지만 차르르 넘어가는 필름처럼 스피디한 ‘여름빛’도 인상적이다. 이런 트랙들이 의미하는 바는 “The Red Summer”가 단지 귀엽고 생기발랄한 걸그룹 레드벨벳의 여름 스페셜 앨범에 그치지 않고, ‘소녀적’ 외양 속에서 보다 당당하고 강렬한 퍼포머로서의 성숙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댱: SNS에서 ‘레드벨벳에 속아 여름을 좋아하지 말자’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로 “The Red Summer”는 여름의 낭만적이고 빛나는 부분만 선별해 담아 놓은, 매력적인 앨범이다. 그런데 이건 레드벨벳의 여름일까? 아니면 SM이 그리고 싶은 여름일까? 확신할 수 없다. 확실한 건 다채로운 리듬에 반짝거리는 SM의 포장지 속 레드벨벳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청 트랙은 ‘Zoo’와 ‘바다가 들려’다. 전자는 과일 맛 레드벨벳이 아닌 열대우림 속 그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낯선 공간 속에서 만난 사랑을 원초적인 감각으로 표현한다. ‘바다가 들려’는 더운 바람이 지나간 저녁 바다를 거닐며, 아른아른 발을 적시는 파도처럼 일렁이는 감정을 노래하는 화자가 보인다. 레드벨벳이 들려주는 잔잔한 로맨스를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걸그룹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산뜻하고 아름다운 여름 한 조각. 이 앨범과 함께라면 무더운 여름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오요: ‘빨간 맛(Red Flavor)’은 ‘이제 여름 하면 레드벨벳이다’라고 선언하는 것 같은, 상당히 의욕 넘치는 트랙이다. 확실한 리듬을 뼈대로 베이스를 부스터 삼아 끝까지 시원하게 뻗어 나간다. 앨범의 수록곡들도 준수하지만 확실히 ‘빨간 맛(Red Flavor)’만큼의 질주감과 짜릿함을 선사하지는 못한다. (어쩌면 이것이 수록곡의 미덕일 수도 있겠지만.)
햄촤: ‘빨간 맛’은 티저 때부터 드러난 비비드한 색감과 열대 풍의 이미지부터 데뷔곡 ‘행복’을 연상시켜 반가웠는데, 곡의 분위기 역시 기존 활동곡 중 이와 가장 유사한 인상을 준다. 쉴 새 없이 통통 튀면서 반복되는 반주 위에 팡파레마냥 울리는 다섯 명의 화음은 돌림노래처럼 곡의 여백을 끊없이 채워 넣으며, 후반부에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웬디의 고음은 단순히 기술로서의 가창력만이 아닌, 거침없이 써 내려 가는 노래 위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게 찍히는 느낌표다. 소녀시대의 ‘Party’나 f(x)의 ‘Hot Summer’에 이은 SM 걸그룹의 여름 시즌송 리스트에 넣기에 손색없으며, 앞으로 레드벨벳이 신흥 여름 음원 강자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마저 품게 만드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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