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하순의 아이돌 신작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임현식, 뉴이스트W, 라붐, 더이스트라이트, 마이틴, 장현승, 드림캐쳐, MXM (브랜뉴보이즈), 몬스타엑스, 소다밤, 샤넌, 알파벳, 이달의 소녀, EXO-CBX, JJ 프로젝트, 용국&시현, 레이나를 다룬다.
랜디: 멤버들의 악기 연주나 잼 영상들이 자주 바이럴을 탄 것을 보면 비투비는 분명 이른바 ‘음악성 좋은 그룹’으로 셀링될 수 있었는데, 그룹 활동으로 싱글컷 하는 곡에서는 그들의 취향이 무엇인지, 어떤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각 멤버가 연속적으로 솔로 싱글을 내고 있는 이 프로젝트에서, ‘그래서 비투비 안에 이런 음악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비로소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회사가 너무 오랜 시간 이들의 능력치와 표현력을 수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의심이 가는 부분이기도 하고, 이렇게나마 만나게 되어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2000년대 한국 가요계에서 모던록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사운드를, 더 부릴 수 있는 기교를 과감히 삭제하고 단정하게 담았다. 작사, 작곡뿐 아니라 편곡과 커버아트에도 참여했다고 하는 것을 보니 임현식 본인도 이번 기회에 정성을 많이 쏟고 싶었던 모양이다.
조성민: 아마도 임현식이 듣고 자랐을 90년대 말 ~ 2000년대 초 인디 록밴드의 사운드를 가져온 것 같다. 예스러운 사운드에 비해 임현식의 보컬이 상당히 세련됐는데, 안 어울릴 듯 잘 어울리면서도 자칫 너무 마이너하게 들렸을 수도 있었을 곡의 장르를 기어이 ‘케이팝’ 안에 끌어다 놓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뜻밖의 재능 발견.
미묘: 뉴이스트는 뭐니 뭐니 해도 음악은 늘 좋았고, 그것도 상당히 힘이 들어가 있는 편이었다. 일종의 번외작인 셈이지만 힘은 많이 뺀 싱글이다. 생활감 있는 내추럴 계통의 사운드와 착실한 비트는 특히 최근의 타이틀들을 생각하면 사뭇 느긋하게 들린다. (물론 여러 맥락에서 간절하게 들리는 가사의 내용과는 별개다.) 그렇다고 뉴이스트의 디스코그래피를 해칠 정도로 ‘맥 빠진’ 트랙은 아니다. 가성을 많이 활용하는 멜로디라인과 조금은 묵직한 랩이 페어를 이룸으로써 섹션과 섹션에 대조감을 부여하고, 귓가를 자극하는 질감의 디테일들이 마냥 나긋나긋하지만은 않은 분위기를 조성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꾸려진 듯한, 조금은 뮤지컬처럼 느껴지는 시간 감각도 지루함을 덜어준다. 〈프로듀스 101〉과 얽혀 전작들이 재조명되기도 한 시점에서, ‘봐라, 뉴이스트는 이런 걸 하는 팀!’ 같은 무시무시한 트랙을 떨궈줬으면 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으나, 조금은 숨을 고르고 가는 것도 나쁘진 않은 듯하다.
조성민: 씨스타나 걸스데이가 불러도 별로 위화감 없었을 곡인데, 두 팀보다 멤버별 캐릭터성이 약한 데다가 연기력도 부족해 능청스럽고 과감한 면은 떨어진다. 무난함도, 강렬함도 제대로 소구하지 못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건 중도적 안정감이 아니라 회색지대의 불안함이다. 데뷔 초 루키로 주목받던 시절이 그립다.
햄촤: 여름 시즌을 노린 댄스곡답게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멜로디와 그에 걸맞은 안무 등 클리셰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으나, 강약조절이 조금만 더 섬세하게 되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전체적 보컬에서 힘이 많이 들어가 경직된 인상을 주는 부분이 종종 있는 데다가 2절의 후렴구에선 고음의 애드립과 “둡바둡”을 반복하는 아카펠라 화음 뒤로 깔리는 사운드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무난한 여름 노래로 소비하기에는 조금 피로감이 느껴진다.
조성민: 변성기 이전의 소년의 목소리로 부르는 러브송을 듣는 심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저스틴 비버도 그렇게 틴 아이돌로 소비되었던 역사가 있었지만, 더이스트라이트만큼 아동 이미지로 연출된 적은 또 없었기 때문에, 어쨌든 콘텐츠 제작과 연출상의 윤리 문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가뜩이나 유아적인 체형에 의상까지 오버사이즈로 스타일링해 정말로 ‘아이’라는 점을 한껏 부각시켰다. ‘아이’가 대중문화 시장 안에서 어떻게 소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기 전에는 평가의 여지가 없으며, 평가를 보류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을 고수하고 싶다.
미묘: 음원으로 들었을 땐 준수하다는 정도로 다가오던 ‘어마어마하게’가 뮤직비디오에서 인상이 확 바뀐다. 음원에서는 삽입된 대사들에 비해 채 찌르지 않고 상냥하게 흐르는 보컬을 보완하기라도 하는 양 영상의 움직임을 크게 잡아 나가더니, 갑자기 공간감을 지워버리고 평면 기하학의 세계로 번쩍이는 브리지가 근사하다. 가요적이면서도 훵키 사운드에 매우 쉽게 결합하는 멜로디를, 자잘한 자극들과 함께 버무려 놓았다. 지금 아이돌팝에서 정석적인 접근이기도 한데, 그 배합이 썩 괜찮다. 꽤나 시원하고 즐겁게 반짝이는 세계를 들려준다. “답 없어”, “holic 됐어”, “문화 culture” 등 살짝 낡았거나 아직은 유효한 유행어들이 많이도 들어갔는데, 그것이 인스턴트 느낌을 줘서 산뜻하게 하기도, 살짝 촌스러워서 부담 없게 하기도 한다. 다만 ‘짜장면’까지 이르면 좀 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수록곡 중엔, 경쾌하면서도 따지고 보면 침착한 질감의 멜로디와 편곡으로 이뤄진 ‘이 동네 왜 이래’가 재미있다. 그냥 여자 밝히는 내용이지만 유머러스하고 밉지 않은데, 사실 여기까지 밸런스 조절이 가능했다면 “갖고 싶은 girl” 같은 몇 구절만 더 조심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미니앨범 전반에서, 담백한 질감이 주는 착실하고 단정한 인상과 준수한 프로덕션, 구석구석 꼼꼼한 노림수들이 좋은 조합을 보이는 데뷔작.
조성민: 타이틀곡 '어마어마하게'는 아무리 들어도 〈프로듀스 101〉의 경연곡 ‘Super Hot’의 멜로디가 생각나는데, 훵키한 사운드 위로 달리는 쨍한 보컬, 그리고 나지막히 읊조리는 투의 랩과 기합처럼 외치는 가사들은 세븐틴을 더 닮았다. 어찌 됐든 지향하는 바는 확실해 보이는데, 과연 쭉 끌고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슈퍼스타 K〉 당시에 기대했던 대로 송유빈이 아이돌 장르와 꽤나 잘 어울려서 다행인데, 이쪽도 어쨌든 경연 프로그램의 덕을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조성민: 돌아온 탕아의 뒤늦은 반성문. 너무 뻔한 레퍼토리인 데다가, ‘남자의 후회’가 대중에게 매력으로 다가오기란 무척 어렵다. ‘후회’는 무능과 무책임을 강하게 보여주는 행위이며, 쉽게 후회하는 사람은 반성이 없게 마련이다. 사람들이 남자에게 바라는 건 결국 후회가 아니라 반성임을 깨닫고, ‘후회 어필’은 이번으로 끝냈으면 한다.
조은재: 이들을 '흑자친구(흑화+여자친구)'라는 별명으로 부른다는 말을 들은 뒤로 자꾸 생각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제이팝 아이돌의 메탈 음악에 극동 지역의 감성을 자극하는 마이너 코드의 멜로디, 그리고 소녀성을 한껏 부각한 연출은 분명 여자친구와 공유하는 것이지만, 여기에 공포 영화의 필터를 장착하면 바로 드림캐쳐가 된다. 분명 새롭지 않은데, 무척 신선한 이 조합을 심지어 앨범 단위, 디스코그래피 단위로 뚝심 있게 밀고 나간다. 한두 번의 이슈 메이킹이 아닌, 그룹의 색깔로 다져가는 과정은 분명 주목받을 필요가 있다. 소녀가 사랑받기를 원한다는, 분명 흥행 공식이지만 어쩐지 따르고 싶지 않았던 명제를 ‘소녀는 사랑받기를 원했다’로 바꾸어 신선한 이야기를 만들고, 단지 장르를 비트는 것만으로 주류를 반박했다. 분명 흥미로운 지점이 있는 그룹. 더 주목받아야 한다.
미묘: 느긋하고 상냥한 질감이 타격감 좋은 비트와 결합해 상쾌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장점. 힙합 씬에서 ‘대중적인 접근’을 할 때의 클리셰에 가까운 나긋나긋함을 작품의 중심에 두고 적당한 인용구들을 가지고 들어와, 지리멸렬한 곡들이 될 준비를 갖췄지만, 미묘한 한 끗 차이로 함정을 비켜 간다. 고전적으로 들릴 정도의 버스-코러스 구조를 고집하면서 케이팝스러운 드라마틱함보다는 편안하게 흘러가는 기류를 선택했는데, 일견 (아이돌로서) 신선한 접근법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나?’ 하는 의문이 남기도 한다. 시동을 거는 단계에서 ‘화끈한 자극’을 주기보다는 설정집을 펼쳐 놓는 듯한 인상에 가까운데, 흥미롭게 지켜볼 만한 듯하다.
조성민: 브랜뉴 뮤직이라는 레이블에 대한 기대치를 배신하지 않는 싱글. 세븐틴, 인피니트H, 몬스타엑스, 예지(피에스타) 등 여러 아이돌과 협업해온 노하우가 집약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갓 연습생에서 벗어나 아직은 서툰 멤버들을 잘 만들어진 곡이 무척 훌륭하게 감싸주고 있는데, 부족함을 감추기에 급급한 연출이라기보다는, 부족함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 써서 스타일링 해준 느낌이다. 〈프로듀스 101〉 첫 회부터 지금까지 보여준 브랜뉴뮤직의 영리함을 주목하게 된다.
조성민: 지난번 앨범의 타이틀곡 'Shine Forever'는 다 좋은 곡에 힘없는 퍼포먼스로 기운을 빼더니, 이번 싱글은 또 다 좋은 연출에 곡이 멤버들과 안 어울려서 힘을 뺀다. 몬스타엑스의 모든 결과물이 항상 이런 식이었는데, 앨범 제작과 프로모션의 모든 과정의 주체가 한 곳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서로 맞물려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EDM을 부르기엔 너무 담백하거나 너무 가요적인 창법을 구사하는 멤버들의 목소리가 곡과 섞이지 못하고 서로 다른 결로 음악을 칠한다. 이 시점에서 굳이 이 곡을 발표하고 월드투어 길에 오를 필요가 있었을지. 모든 것을 다 잘하는 프로덕션이라는 게 이상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 자꾸 한 군데씩 아쉬워지기 때문에 더욱 완벽을 기대하게 된다.
미묘: 식스밤의 유닛인 소다밤의 첫 디지털 싱글. 파파야 등의 2000년대 초반 여름 시즌 댄스 가요를 연상케 한다. 그보다는 그 자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나이브하다 할 정도로 수수한데, 그간 모그룹의 행보가 워낙 극단적이었기 때문인지 오히려 신선하게 들리는 부분도 없지 않다. 특히 사랑이 시작하는 계절로서의 여름을 다룰 때 쉽게 떠올릴 만한 성 상품화 코드가 들어설 생각도 전혀 없이, (역시) 매우 수수한 연애담으로 채워 넣은 것도 편안하다. 보컬 연출 역시 수수한데, 그렇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곡을 끌고 간다. 확실히 이 곡을 들으며 탁월한 보컬을 느낄 일은 없겠지만, 무리하지 않고 평범하면서 담백한 음색을 중심으로 적당히 트렌디한 걸그룹 랩 톤이나 약간의 연극적 요소들이 가미되어 지루하지 않다.
심댱: 오디션 스타가 오디션 프로그램의 힘을 받아 다시 빛났다. 〈케이팝 스타 시즌 6〉의 종영 후 샤넌이 가져온 신보는 갓 데뷔한 가수의 출사표 같기도 하고, 부담감을 떨쳐내고 잔잔해진 누군가의 내면 같기도 하다. 타이틀곡 ‘Hello’와 함께 추천하는 트랙은 ‘Love Don't Hurt’다. 곡 안에 빽빽이 들어찬 사운드 속에서 인상적인 것은 역시 가사다.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을 용기 있게 끌어안는 화자는 쇼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샤넌과 많이 닮았다. 〈케이팝 스타 시즌 6〉에서 그의 성장기를 지켜보았다면, 그의 앨범과 노래가 더욱 크게 와 닿을 것이다. 다시 돌아온 하이라이트 조명이 그에게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대중의 반응에 불안해하지 않고, 자기의 강점을 꾸준히 밀어붙인다면 조명 없이도 무대 위에서 충분히 빛날 것이다.
미묘: ‘원해’는 트로피컬 하우스의 (흔히 말하는) 청량함 뒤에 가려진 난잡함과 긴장감을 잘 잡아낸다. 그것이 상당히 많이 채워진 사운드에서 비롯되기도 한다는 점은 장르로선 약점일 수도 있겠지만, 케이팝으로서는 확실하게 덩어리진 매력일 수 있다고 본다. 브리지가 조금 맥이 빠지기는 하지만, 한껏 휘날리는 신스와 조금 건들거리는 듯한 합창에 대조적인 부드러움의 솔로가 교차하는 후렴은 상당히 시원한 쾌감을 안긴다. 후렴이 어딘지 “워너원”을 외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 점이 조금 얄궂은데, 혹시 노린 것일까?
랜디: 김립의 ‘Eclipse’와 진솔의 ‘Singing in the Rain’의 뒤를 잇는 이달의 소녀 컬러팀의 세 번째 멤버, 최리의 곡이다. 컬러팀은 전부 애시드한 느낌으로 갈 줄 알았는데 그도 아닌가 보다. 다소 평범한 캔디팝인가 싶다가도, 프리코러스의 화성 진행에서 다채로움이 천천히 추가되고, 코러스에서 청량하게 터뜨리는 멜로디가 좋은 여름 노래라는 인상을 준다. 간주에 갑자기 등장하는 얕은 트랩과 브리지는 왜 넣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에스닉한 느낌을 넣어서 그나마 요즘 팝 트렌드를 많이 반영하는 컬러팀 멤버로서의 구색을 챙기기 위함인가 싶기도 하다.
미묘: 기존 이달의 소녀 분위기와 ‘Eclipse’의 사이를 밸런싱하는 연작이다. ‘Singing in the Rain’이 새로운 흐름 속에 이달의 소녀의 (‘오오?’하는) 재지한 R&B 인플루언스를 섞어 넣었다면, ‘Love Cherry Motion’는 (‘상큼한’) 버블검을 시도한다. 작정하고 달콤하게 흘러버리는 멜로디가 보다 선명한 80년대풍과 어울려 약간의 복선이 깔린 듯한 긴장을 딛고 반짝거린다. 효과음처럼 사용되는 목소리 샘플들이 귀여움의 맥락에 위치하다가, 이국적인 브리지가 치고 들어오는 순간 급격히 섹슈얼한 분위기로 연결되는 것도 흥미롭다. 상반된 요소들이 멋진 공존과 대구를 보여주는 곡. 현을 뜯는 질감이 톡톡한 가운데 화려한 신스가 거창하게 침수되다가는 출렁이며 빠져나가는 ‘Puzzle’의 사운드도 매력적이다. 두 곡 모두 제법 까다로운 화학식을 감행하다 보니 멜로디가 적당히 묻히는 듯한 느낌이 나쁘진 않다. 하지만 역시 팝송으로서 조금 더 뚫고 나와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는 건, 물 흐르듯 담담해서 우아함을 더하기보다는, 자칫 주어진 화성에서 너무 당연한 인상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햄촤: 김립과 진솔 두 멤버가 앞서 공개된 멤버들과 차별된 콘셉트와 음악으로 이 기나긴 데뷔 기획에서 분위기의 반전을 노렸다면, 최리와 ‘Love Cherry Motion’은 그 중간에서 모두를 이어주는 브리지 역할처럼 보이기도 한다. 뮤직비디오에서 하슬, 여진과 함께 즐겁게 노는 장면과 꿈속에서 진솔 김립과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의 대비와 더불어, 곡 또한 경쾌한 팝 같은 분위기에서 이국적이며 무거운 사운드의 댄스 브레이크로 전환되는 구성이 조금은 갑작스럽지만 흥미롭다. 김립의 이미지 컬러가 빨간색, 진솔은 파란색이었다면 그 둘을 합한 보라색이라는 점도 막상 뜯어보면 별 거 없을지 모르지만 괜스레 이런저런 스토리를 상상하게 만드는 요소. 음색이 매우 매력적이다. 하슬과 더불어 팀의 보컬에서 중심 역할을 하지 않을까 기대되는 멤버.
심댱: ‘Hey Mama!’가 첸백시가 만들어낼 수 있는 텐션의 최고치라고 가정해볼 때, ‘It's Running Time!’은 그 65% 정도인 것 같다. 애니메이션 〈런닝맨〉의 OST라고 하면 안정적으로 달리는 이 텐션이 적당하겠지만 음반 소개글에 비해 힘차고 신나는 곡은 아니다. 전력 질주가 아니라 마라톤처럼 들리는 노래. 오히려 인스트루멘탈이 더 흥겨운 것 같다. 뚜렷한 개성을 가진 첸백시보다는 ‘〈런닝맨〉 OST에 참여한 첸백시’가 더 두드러진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운 컬래버레이션이다.
미묘: 생각보다 담담하고 점잖은 앨범이란 것이 첫인상이다. 거칠고 조금은 변칙적이며 화려했던 2012년의 첫 싱글과는 사뭇 다른 색채다. 때론 비애를, 때론 희망을 말하는 미니앨범은 R&B의 화법이지만 적잖은 플레잉타임에 모던록의 향취와 힙합의 비트감을 가미하면서 사색적이면서도 당당한 공기 속에 독특한 멜랑콜리를 형성한다. 앤드류 최, Defsoul, RoyalDive가 함께 작업한 ‘Icarus’와 ‘Find You’가 서정 속에 단단한 자신을 유지하며 제법 스케일 크게 펼쳐내는 방법론이 아마도 이 EP의 표정을 대변한다고 하겠다. 개중 가장 ‘JYP 느낌’인 타이틀 ‘내일, 오늘’의 멜로디가 칭얼대는 듯하면서도 그것이 친근함으로 다가오고, 가장 여린 감성인 ‘Don’t Wanna Know’도 매끄러운 서정으로 마감된다. 포근하고 힘 있는 두 멤버의 보컬 역시 매력적으로 적시 적소에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어른스러운 케이팝’의 예를 찾으라면 매우 높은 순번으로 꼽을 수 있을, 장르의 믹스처를 세련되게 다뤄낸 풍성하고 우아한 팝.
햄촤: 국내에선 그리 흔치 않은 ‘병약/무기력 미소년’ 이미지의 두 멤버의 조합. 노래 역시 그런 캐릭터에 걸맞게 잘 만들어졌다는 인상을 주는데, 감정이 고조되고 비트가 어느 정도 빨라지며 곡이 절정으로 향한다 싶은 순간 다시 힘을 빼면서 절묘하게 밀당을 하는 구조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쿨한 톤으로 연출된 뮤직비디오와 계속 몸을 움직이면서도 정적으로 보이게 짜인 안무까지, 모두가 에너제틱하게 달릴 때 약간은 맥빠지는 콘셉트도 눈길을 끄는 전략 중 하나구나 새삼 깨닫는 기획.
미묘: 첫 트랙 ‘밥 영화 카페’를 듣고서 ‘한여름밤의 꿀’과 그 유사종들에 대한 피로감이 든다면, 의외로 이후의 트랙들도 차분히 들어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달콤하고 나른한 러브송으로 슬그머니 한 발을 들여놓지만, 이어지는 트랙들은 레이나가 소화할 수 있는 훨씬 많은 것들을 엿보게 한다. ‘맡겨줘’는 더 나른하고 더 달콤한 듯하지만 보다 표현력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작은 모노드라마 같은 흐름을 툭 끊어내고, ‘같이 있고 싶어’는 솔직한 감성적 접근이 좀 더 드라마틱한 연출 속에 자신감 있게 펼쳐진다. 각각 브라더수와 박기태가 레이나와 공동작곡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꽉 짜여진 팝송의 매력보다는 납작하지 않은 감정선과 인상적인 질감의 설정에서 향후에 대한 기대를 발견한다.
심댱: 남자들이 좋아하는 부드럽고 사근사근한 여자 이미지. 하지만 그 안에는 적극적이며 비슷비슷한 데이트에 대안을 제시하는 등 입체적인 면이 존재한다. 변화구를 던지면서 상대의 반응을 얻어내는 화자는 권태기를 겪는 연인이 되기도 하고, 세 번 정도 만나고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드러내는 여인이기도 하다. 레이나는 특유의 달달한 보이스톤을 활용해 일상적인 소재에 판타지를 노래하는 점이 특징인 아티스트다. '밥 영화 카페'의 예쁘고 현명한 여자친구 이미지가 부담스럽다면,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돋보이는 '맡겨줘'는 부담 없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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