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중순의 아이돌 신작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지코, 라임소다, 아이돌학교, 우주소녀, 제타, 라임, 문현아, 엑소, 원포유, 정용화, 카드, 크나큰, 악동뮤지션, 스누퍼를 다룬다.
심댱: 자의식이 강하게 반짝거린다. 아티스트가 자기만의 세계를 보여줄 때 종종 청자를 소외시키곤 하는데 지코의 음악은 청자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자기 세계를 곧장 들이댄다. 그의 특징이라면 타인에게 향할 가시를 자기를 향해 돌리는 것처럼 보이는 강도 높은 자아 성찰이다. 발랄한 'Artist'보다는 그의 자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천재'와 'ANTI'가 더 진하게 남는 건 왤까? 자기의 재능이 오래 가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모습이 악동 같아 보이는 그의 진짜 모습인가 들여다보고 싶었다. 내면의 불안함마저도 음악으로 유려하게 다듬는 그의 다양한 얼굴을 보고 싶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20대, 그중에서 이렇게 솔직한 이야기꾼은 드무니까.
랜디: 〈케이팝 스타〉 시즌 6으로 존재를 알린 혜림이 소속된 신인 그룹. 현재까지는 혜림과 승지 두 명만 공개됐다. 현재 케이팝 아이돌계에 청소년 가수들의 숫자는 압도적이지만, 이들 대부분은 성인에 의해 대상화된 청소년으로서의 가사를 부르거나, 하다못해 청소년이 주체가 된다 해도 성인이 만든 체계에 반항하는, 다분히 성인을 의식한 노래를 부른다. ‘Z Z Z’는 아주 오랜만에 등장한, 어른에게는 아무것도 빚진 것 없는 듯한 노래다. 피처링으로 등장하는 MC 그리는 아마도 인지도 측면에서 도움받으려는 의도였겠지만, 꽤 오랜 시간 아동청소년 프로그램에 출연해온 그라 이런 ‘교육방송 청소년 드라마적’(이는 낮춰보는 의미가 아니라, 성인 없이도 문제없이 잘 굴러가는 세계관을 말하려 함이다) 느낌의 곡에 잘 어울렸다고 평할 수 있겠다.
햄촤: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통설(?)을 가사에 차용한 곡으로 ‘ZZZ’와 후렴구의 ‘잠꾸러기’의 반복되는 부분이 제법 인상적인 적당히 흥겹고, 적당히 흥미로운 노래. MC 그리의 피처링은 곡 자체의 맥락보다도 부족한 인지도에 화제성을 더해보기 위한 전략적 측면이 더 강한 인상이 든다.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당연히 5인조 걸그룹이라고 생각했는데 2인조라는 혼자만의 충격 반전. 알고 보니 싱글마다 멤버가 추가될 것이라 한다.
김윤하: 블랙아이드필승의 노래를 들을 때면 꽤 자주 ‘이래서 구매자들이 찾는구나’ 싶어진다. 기획사의 ‘이런 노래를 만들어주세요’하는 요구를 가장 정확하게 맞춰줄 것 같다는 얘기다. ‘예쁘잖아’도 그런 곡이다. 티 없이 높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목덜미에 송송 땀방울이 맺힌 소녀가 교복을 입고 어디론가 이유 없이 힘차게 달려가는 모습을 소리로 구현한 듯한, 그런 노래다. 그 자체로 유해하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그 노래가 인터뷰하는 얼굴 바로 옆에 실시간 순위가 뜨는 화면과 ‘은퇴 후에도 떳떳하게 훌륭한 아내와 어머니로 역할 하도록 뒷받침해야 한다’는 교장님 훈화 말씀과 로즈쿼츠와 세레니티로 꾸며진 내무반 위에 흐르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도무지 웃는 얼굴로 노래를 마주할 자신이 없다.
미묘: 케이팝 씬에서도 보기 드물게 변태적인 곡이다. 플레잉타임 12초 만에 이 곡이 얼마나 엉망진창이고 악의적인지 알 수 있다. 딜레이 하나 걸어주기도 아깝다는 듯이 뻣뻣하고 납작한 “랄랄랄라” 말이다. 나는 정말 블랙아이드필승이 이 노래를 만들고 완성하는 데에 몇 분이나 걸렸는지 궁금하다. 방송의 콘셉트 상 ‘교가’라고 하지만 이건 그냥 유치한 노래다. 악기 연주와 편곡도 레디메이드에 다름없고, 편성과 구성에도 일말의 고민이 안 보인다. 브리지에서 오르갠과 스크래치가 등장해서 트랙 수가 조금 늘어난 것에 감동해야 할 정도다. 가장 나쁜 것은 보컬의 처리다. 자아가 없고 노래도 할 줄 모르는 인형들 같기만 하다. 아무런 생기도 다이내믹도 없으며, 심지어 사운드마저 노래방 마이크로 녹음한 뒤 EQ 하나 걸어주지 않은 것만 같다. 1년 사이에 ‘Pick Me’의 완성도에 감탄해야 하는 날이 오다니 환멸만이 남는다. 이런 걸 프로의 작업이라고 부를 수 있나? 상도덕이 있는가? 있겠지, 걸그룹 선발 오디션 방송에 걸맞게 출발점에 선 소녀들에겐 아무런 자질이 없는 것처럼 후려쳐야 한다는 변태 도덕 말이다.
랜디: 스타쉽이 씨스타로 누리던 여름 특수를 우주소녀를 통해서도 어떻게 해보려는(…) 야심이 느껴지는 디지털 싱글. 곡 전체에 걸쳐 들어가는 강한 일렉기타 리프가 확실히 통쾌하고 시원하긴 하다. 이렇게 기타가 전면에 등장하는 걸그룹 노래가 오랜만이라서, 2000년대 중반 카라 등이 부르던 노래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이런 곡이 우주소녀가 가장 잘하는 것이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가 나왔을 때부터 불안했지만, ‘비밀이야’를 부르던 우주소녀는 이제 다시 보기 힘들려나 보다.
미묘: 스타쉽이 은근히 CF 타이업을 잘하는 것 같다. 꽤 괜찮은 트랙들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번은 어쩐지 국내 CF 타이업 튠들이 많이 보여주는, 어딘지 모르게 조금 맥이 빠져 있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멜로디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보컬이 쉴 틈 없이 이것저것 노래하기는 하는데 팝송으로서의 선명함이 적어 어떤 의미에서 ‘가구로서의 음악’의 역할을 해버리다가 때가 되면 적당한 결론을 내버린다. 질감 좋은 기타 사운드가 선 굵게 찍어가지만 그것만으론 한계가 있어, 이 트랙에 다른 멜로디의 곡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뮤직비디오의 싱크가 안 맞는다.
미묘: ‘Poker Face’는 트리탑스의 반형문이 양준영과 함께 만든 곡으로, 1년 이상 전에 나왔던 첫 싱글을 재수록했다. 그건 나쁠 게 없는데, 이번 타이틀인 ‘Z.T.A’가 너무 수준 이하다. 편곡은 난잡하고, 보컬은 전작보다 실력이 떨어진 것만 같으며, 그나마도 밸런스가 엉망이다. 이러지 맙시다.
랜디: 베트남에서 활동하는, 전 멤버가 베트남인인 ’케이팝’ 그룹. ‘케이팝’의 정의를 뭐라고 해야 할지는 한국 내 사람들보단 해외에서 더 잘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노래며 뮤직비디오에서 일정한 기조가 느껴진다. (한 가지, 메이크업만큼은 대만 계열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 같다.) 한국어로 발매한 음원도 발음이 몹시 좋아서 사전 지식 없이는 한국어 네이티브일 거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룹 프로필을 자세히 찾아봤더니 멤버 소개에 “Maknae” 등이 들어가 있는 것이, 정말 케이팝, 달리 말하면 한국식 아이돌을 장르 그 자체로 받아들인 2차 생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케이팝’은 무엇일까? 어떤 이들은 한국에서 만든 모든 가요의 총칭이어야 한다 하고 어떤 이들은 해외에 잘 알려진 아이돌팝만이 그렇게 불려야 한다고 하지만, 국내에서 이런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을 때 해외에서는 이미 한국 프로듀싱 인력으로 한국 밖의 케이팝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결과물을, 어떻게 케이팝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심댱: 속삭이는 목소리와, 몸을 맡기게 하는 공기 같은 사운드. 그의 에세이 〈스위트 리메디〉(알비)의 사운드트랙으로 접할 수 있었던 “Remedy Project”를 재해석했다. 'Remedy Take 2'는 칠 하우스 장르인 ‘Dream House’ 버전과 어쿠스틱한 원곡 두 가지로 즐길 수 있다. 밤새 열리는 파티장에서는 ‘Dream House’가, 무드등을 켜고 잠을 청하고 싶을 때는 원곡이 끌릴 것이다. 문현아의 목소리는 투명하게, 그리고 포근하게 다가온다. 새로운 장소로 이끌다가도 집에 돌아왔을 때의 안정을 함께 주는 목소리다. 자기만의 세계에 깊이 파고들어 가면서 영역을 확장해가는 그를 보면, 아이돌 출신 아티스트의 흔한 행보를 걷는다고 보기 어렵다. 짙은 개성을 대중에게 가볍게 건네는 그를 오래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김윤하: 무시무시한 음반판매량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 엑소는 마치 슬로건을 바꿔 달 듯 매해 음악적 방향성을 바꿔왔다. 2015년 ‘Call Me Baby’, ‘Love Me Right’으로 그루비한 훵키함을, 2016년에는 ‘Monster’와 ‘Lotto’로 일그러진 네오-SMP를 선보였던 이들은 2017년 ‘Ko Ko Bop’을 선택했다. 레게 사운드를 칠 아웃 풍으로 미끈하게 블렌딩한 노래는 그간 비교적 안전한 길을 걸어오던 그룹 역사를 고려하면 꽤 과감한 행보처럼 보인다. 자칫 삐끗할 수도 있는 상황, 언더독스, 런던노이즈, 켄지 등 익숙한 이름들과 어느덧 활동 5년 차에 접어든 멤버들의 능숙함이 균형을 잡는다. 타이틀 곡을 제외하면 다소 익숙한 수록곡들의 면면에서 오랜 시간 업계 정상을 누리고 있는 이들의 여유가 자연스레 묻어난다. ‘전쟁’이라는 호전적인 제목을 붙인 이유가 의문스러울 정도.
랜디: 엑소가 오랜만에 내놓은 정규 앨범. 타이틀곡 ‘Ko Ko Bop’은 치열한 여름 댄스 차트에 놀랍게도, 하나도 급할 것 없다는 듯, 리듬부터 하우스도 댄스홀도 아닌 정말 그냥 레게를 깔아 놓는다. 이렇게 칠링한 노래는 예상치 못했어서 한 번 놀라고, 그런 노래도 차트 꼭대기에 올려놓고 마는 그룹과 팬덤의 공력에 또 한 번 놀란다. 중견 그룹으로서, 이제 치열한 분위기는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여유를 점하려는 기획은 아니었을까 추측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넘치지 않으면서도 후텁지근한, 작년부터 이어온 여름 음악 트렌드를 잘 반영한 앨범이다. 타이틀곡보다는 좀 더 시원하고 청량한 노래를 듣고 싶은 사람이라면 ‘What U do?’를 들어보시라.
미묘: SM이 자꾸, 여름 시즌 맞이 비정규작인 척하면서 진검을 내놓고 있다. 느긋한 듯하기도 하지만 상당히 기합이 들어간 앨범으로, 특히 엑소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몽상적인 공간감과 비현실적인 종류의 어두움, 무거운 비트, 그리고 보컬의 화성으로 화려한 광택을 내는 수법은 조합하면 엑소의 시그니처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엑소가 지금 내세울 수 있는 강력한 카드인 ‘까리함’을 만들어내는 공식이기도 하다. 또한 기획 방식이나 그룹의 기믹, 팬들의 성향과도 긴밀하게 연관된 것이라 웬만해선 따라 하기도 어려운 성질의 것이다. 자극적인 사운드와 낯선 선택으로 힘을 밀어붙이는 ‘Ko Ko Bop’ 외에도, ‘Love Me Right’ 등에서 보였던 밝은 화려함마저도 이번 앨범의 공식으로 구사할 수 있다는 증명 같은 ‘What U do?’, 자극적인 사운드와 드라마틱한 전개의 ‘소름’과 ‘내가 미쳐’ 등이 묵직한 걸음걸이로 느껴진다.
심댱: 트랙 구성이 미끈하게 잘 빠져 있는 준수한 앨범이다. 엑소만의 컬러가 뚜렷하게 느껴지는 앨범이기에, 단일음원을 듣기보다는 앨범 전곡을 듣는 것을 추천한다. 이번 앨범에서는 엑소의 잠재력을 살펴볼 수 있다. 첸과 백현, 찬열이 작사에 직접 참여하면서 '엑소가 해석하는 엑소'라는 컬러가 추가되었다. 멤버들의 스킬도 전체적으로 향상되어 그들이 해석할 수 있는 정서의 깊이가 더욱 깊어졌다. 이번에 눈에 띄는 보컬은 찬열과 카이다. 찬열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정확해진 발음과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메시지를 또렷하게 전달한다. ‘Forever’나 그가 작사와 랩 메이킹에 참여한 ‘소름’ 등에서 곡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그의 보컬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카이는 그룹의 컬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센터이지만, 랩과 보컬을 소화할 수 있는 멤버이기도 하다. ‘너의 손짓’에서 무드를 주도하는 그의 보컬을 들어보면 솔로로서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많은 5년 차 그룹이다. 지금 엑소가 증명하고 있는 것은 건재함보다는 그들의 역량일 것이다.
미묘: ‘VVV’를 듣기 시작하면 뭔가 좀 밋밋하다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후렴을 향해 진행되면서 점점 입체적이고 든든한 소리들로 바뀌어 간다. 그러고 보면 보컬에서 혹시 걸그룹 식의 뻣뻣함을 의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뮤직비디오는 꽤 와일드한 터치도 있긴 하지만, 고전 비디오 게임에 빠진 긱(geek) 소녀가 등장한다든가, 하필 테니스를 친다든가 하는 게 흥미롭다. 커플링 곡인 ‘Good Girl’도 아기자기한 사운드로 은근하게 끌고 나가는 훵키한 곡으로 어딘지 걸그룹 수록곡의 느낌이 난다. 이와는 별개로, ‘VVV’의 후렴은 착실한 사운드에 편안한 멜로디(그리고 담백한 보컬)를 얹어 제법 활기찬 이지리스닝을 구성한다. 편성 면에서 디테일이 많은데 대부분은 섹션 사이의 트랜지션을 담당하고, 그중 2절로 넘어갈 때의 피아노가 특히 듣기 좋다. 결국 이런저런 밋밋함들도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데뷔곡의 도입부가 그로 인해 조금 빈약한 듯한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은 전략 측면에서 괜찮은지 싶기도 하다.
심댱: 달콤하면서도 캐치한 멜로디가 돋보인다. 아름다운 이성을 향해 꾸준히 어필하는 곡은 대중적으로 통할 만하다. 세븐틴이 선점한 다인원 그룹의 장점을 벤치마킹한 것 같은데, 세븐틴과의 차별성을 찾기 조금 어렵다. 시원한 노래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무, 그 외에 14U가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당신을 위해 무엇이라도 되겠다'는 포부가 담긴 팀명처럼, 자기만의 개성을 점차 알려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심댱: ‘여자여자해’라는 제목과 가사를 보았을 때 당황스러웠다. 단어를 반복하는 것이 요즘 트렌드라지만 ‘여자여자’의 정체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 문제적인 노래를 듣지 않고 넘겼다면 좀 아쉬웠을 것이다. 가사보다 사운드에 집중하자면, ‘여자여자해’는 그루브를 타기 쉬운 여름 노래다. 겅중겅중 리듬 위를 타고 노는 정용화의 보컬은 에너제틱하고 유머러스하다. 그의 다양한 얼굴은 수록곡에서도 들을 수 있다. 스윗함이 두드러지는 ‘딱 붙어’, 감각적인 딥하우스 트랙인 ‘Password’, 담담한 메시지가 돋보이는 ‘Navigation’에서부터 ‘널 잊는 시간 속’까지 매끄럽게 이어지는 정서는 모두 정용화가 지금 보여줄 수 있는 카드다. 지금 대중에게 먹힐 만한 신선한 장르와 소재를 많이 고민한 앨범 같다. 그러니 콘텐츠 속 문제점을 비판하다가도 즐기게 된다. 상당히 길티 플레저같은 곡, 그리고 앨범이다.
김윤하: 리메이크곡 포함 총 여섯 곡의 수록곡 가운데 세 곡이 기발표 곡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듣기도 전에 이미 좀 질리는 게 아닐까 싶지만 천만의 말씀. 카드의 열대 마약 파티는 비록 그것이 이미 익숙한 라인업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다. ‘Oh NaNa’ 이후 ‘Hola Hola’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하락하는 뒷심이 아쉽기는 하지만 모든 곡들을 한데 모아 놓고 듣는 재미만으로 이 앨범의 가치는 충분하다. 머리 위 끝없는 물음표를 띄우게 만드는 리메이크곡 ‘난 멈추지 않는다’의 새삼스러움와 90년대적 의문의 들뜸의 정수를 갈아 넣은 마지막 곡 ‘Living Good’까지, 적당히 수치스러운 2017년의 MSG로 손색이 없다.
랜디: 케이팝 다크호스 카드가 드디어 정식 데뷔를 이뤄냈다. 남미에서 특히 반응이 뜨거웠던 그룹인 만큼, 정식 데뷔곡인 ‘Hola Hola’에서는 남미권을 의식한 제목과 가사임이 드러난다. 곡을 거듭해 발매할수록 멜로디가 점점 더 국제적인 트로피컬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는데, 세련된 느낌도 있지만 데뷔곡이었던 ‘Oh NaNa’의 멜로디를 기억하는 입장으로서는 조금 아쉽다. ‘Oh NaNa’가 워낙, 멜로디에 한국가요적인 통속성이 살아있으면서도 여름 분위기 신스와 하우스 비트를 적당하게 접목한 좋은 곡이었어서 말이다.
햄촤: 흥미로운 세 곡의 프리-데뷔 과정과 정식 데뷔 전 북남미를 비롯한 해외 투어라는 전대미문의 커리어를 거쳐 마침내 미니앨범을 발매한 카드의 ‘Hola Hola’. ‘Oh Nana’나 ‘Don’t Recall’에서 보여주었던 차갑고 예민한 이미지를 덜어내고, 한여름에 어울리는 사운드에 가볍고 흥겨운 분위기를 더해 좀 더 쉽게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이미지의 정식 데뷔곡이다. 그 옛날 DSP 대선배 격 그룹인 잼(ZAM)의 ‘난 멈추지 않는다’가 리메이크되어 실려 있는데, 너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 한 나머지 원곡이 지닌 에센스를 다 휘발시켰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마지막 트랙 ‘Living Good’은 데뷔의 기쁨과 그간의 소회를 담아낸 듯한 곡인데, 다소 사적인 가사임에도 불구하고 곡의 퀄리티는 여느 곡 못지않게 탄탄하니 카드에게 관심이 있다면 들어보시길.
랜디: ‘이런 곳에 브라스를?’ 할 만한 위치에 브라스가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그게 자칫 심심하고 울적하게만 들릴 수 있었던 곡을 예민하게 벼려 캐릭터를 부여한다. 루프로 돌아오는 것이, 발라드처럼 들릴 수 있는 곡을 좀 더 힙합스럽게 들리게 하기도하고. 비에 관한 마이너 멜로디 가요는 많지만, 이런 특징이 이 곡을 비 오는 계절 질리지 않고 듣기 좋은 노래로 만들어주고 있다.
심댱: 머릿속에서만 떠돌던 소소한 이야기를 멋드러진 음악으로 들려주는 악동뮤지션이 두 가지 시선을 들고 컴백했다. ‘My Darling’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악동뮤지션이라면, ‘Dinosaur’는 제목처럼 상상하지 못했던 악동뮤지션이 있다. 어릴 적 꿈속에서 공룡을 보았던 그때의 충격은, 악동뮤지션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어쿠스틱함-일상 속에서 찾아낸 재기발랄한 가사, 포근한 보컬 톤-과 투명한 EDM 사운드와의 만남으로 연결되어 신선함을 자아낸다. “사춘기” 이후의 악동뮤지션은 ‘가사는 담백하게, 음악은 특별하게’ 보여주려고 한다. 그들의 예민한 감각이 새로운 장르를 만나게 되면 어떤 새로운 합이 나올지 궁금하다.
햄촤: ‘Dinosaur’는 유년 시절 모종의 사건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한, 어떤 트라우마를 공룡에 비유한 듯한 가사가 인상적인 노래다. 누구라도 겪은 어린 시절 자기만의 어두운 경험에 대한 은유라고 봐도 좋은데, 악동뮤지션은 이 심플한 노래 한 곡으로 그 기억을 돌아보게끔 만들어준다. 리뷰를 하는 입장에서 무책임한 말이지만 악동뮤지션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항상 ‘아무렴 어때’라는 생각이 든다. 장점도 단점도 굳이 말하고 싶지 않도록 듣는 이를 게으르게 만들어버리는 힘이 있다고 할까. 혹자는 악동뮤지션 가사 속 세계가 ‘성장하지 않는다’며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이들의 음악 세계는 유년 혹은 사춘기에 머물러있고자 하기보단, 그 시절의 소중했던 감정들을 잊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기록해두는 과정에 놓여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묘: 전작 ‘Back:Hug’의 패러디-트로피컬을 리패키지에서 심화했다고 해야 할까. 장르에서 매우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을 서너 곡 분량 한 데 모아 쏟아부어 놨다. 예쁘지만 평범한 플럭(pluck)을 중심으로, 각기 조금씩 다른 위치에서 고음역이 찌르는 소리들이 덩어리를 이룬다. 그 질감이 매우 페티시하게 영롱한 빛을 만들어내, 몽상적인 공간을 근사하게 펼쳐낸다. 긴장의 구조는 차근차근 확실하게 밟아 나가고, 후렴과 포스트코러스는 깔끔하게 질주한다. 이쯤에서 뭔가 덧붙을 법도 한데 싶으면 보컬을 옥타브로 쌓아 군더더기 없이 치고 나가는 것도 센스 있다. 거기에, 이만하면 적당히 길게 뽑아낼 법도 한데 인정사정없이 짤막하고 간결하게 끊어내 버리는 스윗튠 특유의 멜로디 감각은, 스윗튠 최고의 멜로디라고 할 것은 아니겠으나 예쁘고 애착 가며 동시에, 의외로 담백하게 귀에 감긴다. 부담스럽지 않고 우아하면서도 가요의 매력도 놓치지 않는 좋은 팝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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