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t Listen : 2017년 9월 상반기

2017.09.0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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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상반기에 발매된 30장의 음반 중 14장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이기광, 엑소, 준호, 신혜성, B.A.P, 펜타곤, 데이식스, MXM, 윤아, 정은지, 전지윤, 엘리스, 여자친구, 바비를 다룬다.
이기광
One
어라운드 어스
2017년 9월 4일

   

이기광이 무려 8년 만에 솔로곡 ‘What You Like’로 돌아왔다. 무대 위에서 발이 가벼운 그의 모습처럼, 보컬도 최근 몇 년간 큰 인기였던 퓨처 사운드 소스 위에 그저 살짝, 하고 가볍게 얹혀 있는 것이 좋다. 퓨처 장르의 넘버들이 빽빽한 편곡으로 무리하는 경우가 많은 것에 비해 이 곡은 편곡에서 그런 것을 최대한 덜어내려고 한 것이 눈에 띈다. 그러면서도 한국 가요적인 구성과 작법을 따르고 있어, 귀에 어렵지 않게 잘 들어오는 곡이다. 이기광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옷이라는 인상이다.

이번 회차의 추천작

그동안 도대체 왜 이 끼 많은 소년을 비춰주지 않았을까. AJ 이후 첫 솔로 음반임에도 처음부터 혼자 활동해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신의 무대를 충분히 채운다. 오히려 그동안의 그룹 활동으로 쌓아온 노하우까지 더해져 한층 더 완벽해졌다. 신인 시절의 서투름을 걷어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주목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애티튜드가 무겁지 않은 앨범의 색깔과 합쳐져 가장 아이돌스러운 빛을 발한다. 무엇보다도, 앨범 전반에 깔린 R&B 톤이 이기광에게 맞춤 의상인 듯 달라붙어 있는 게 무척 바람직하게 들린다. 남자 솔로 아이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을 보유한 앨범.



엑소
The Power of Music
SM Entertainment
2017년 9월 5일

   

LDN Noise가 재작년과 작년까지 의욕 있게 이어가던 레트로한 유로팝의 피날레 같은 편곡. 층층이 쌓은 신스 사이사이로 삐져나오는 여러 가지 소스가 뮤직비디오와 어우러져 신나는 아케이드 느낌을 물씬 낸다. 이전의 엑소보다 훨씬 가볍고 코미컬해진 인상. 그러나 현재 케이팝 씬에서는 유로팝의 유행이 작년 즈음 끝난 것 같아서, 작년에 발매되었다면 더 자연스럽게 들리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전작이었던 ‘Ko Ko Bop’부터 트렌드보다는 독자 노선을 가겠다는 의지를 크게 보인 바 있어 이런 경향은 앞으로도 지속되지 않을까 점쳐보게 된다.

엑소의 세계관이 리부트 되었음을 알 수 있는 앨범이다. 각 콘셉트를 평행세계로 치환해버리며 이야기의 무게를 덜어내고 게임 속 장면 같은 뮤직비디오 등으로 재미를 더했다. 저절로 부풀려진 세계관을 주무르며 다시 이야기의 키를 쥐려 한 기획이 아닐까 싶다. “The War”에 더해진 신곡 3곡은 트랙리스트에서 다소 이질적으로 들리는데, 이는 전작처럼 견고하게 짜인 기존의 이미지를 뒤흔드는 것처럼 보인다. 발랄한 톤의 ‘Power’로 반전을 보여준 엑소가 앞으로 어떤 콘셉트, 어떤 노래를 들고 올지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그들의 이야기는 역순행적 구조에 갇히기에 해석의 여지가 많은, 현재진행형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Ko Ko Bop’부터 ‘Power’까지 이번 엑소는 확실히 힘을 빼고 간다. ‘Power’만 해도 베이스와 비트는 최소한의 리듬감만을 확보해줄 뿐이며 “Power”란 단어를 반복해서 외치는 후렴에서도 과하지 않은 수준까지만 소리치고 만다. 여유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Power’란 제목을 생각해보면 다소 의아한 선택이다. ‘평행 우주’를 내세워 그간 다소 복잡하게 얽혀 있던 엑소의 세계관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초능력 콘셉트를 익살스럽게 풀어낸 기획이 인상적이었기에, 트랙 자체의 밋밋함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남을 수밖에 없다.

이들의 세계를 지탱해오던 백그라운드 스토리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자꾸만 유지, 보수를 거듭해줘야 하는, 어떤 족쇄, 혹은 애물단지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이는 엑소의 성장 서사와 ‘엑소 세계관’의 서사가 완벽히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데,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절충지대 안에서 존재해오던 아이돌을 현실 세계로부터 완벽하게 분리해내려던 실험이 실패해가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는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Power’는 그 삐걱거림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곡인데, 어딘가 공허하게 울리는 후렴의 코러스와, 아무리 단독 콘서트용 넘버라고 해도 지나치게 단선적으로 디자인된 퍼포먼스는 ‘전야’와 ‘Ko Ko Bop’으로 한껏 올려놨던 기대치를 맥없이 무너뜨린다. 정상급 아이돌로서 아무런 위력도 느낄 수 없는 곡의 제목이 ‘Power’여도 괜찮은 건지. 엑소에게 이 정도 기대도 해선 안 되는 건지.



준호
Canvas
JYP 엔터테인먼트
2017년 9월 5일

   

‘Canvas’는 퓨처 계통 사운드지만 담담하게 연출된 보컬과의 조합이 나른하고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구성한다. 심상과 비유가 많이 들어간 가사나, 때로 아슬아슬한 화성감, 애매한 결론을 도출해내는 표정 같은 블루노트도 이에 일조한다. 마치 ‘어른은 답을 쉽게 내지 않아’라는 듯한 느낌이랄까. 리듬감에 변화를 주면서 신스와 비트에게 발언권을 주는 듯한 후반부도 재미있다. 수록곡들은 로맨틱하거나, 매캐하거나, 낙천적인 감상들을 담고 있지만 이를 표현하는 기조는 대체로 유지되면서 음반이 선보이는 인물상을 확장한다. 이후 마지막 ‘어차피 잊을 거면서’가 가벼운 소품 느낌으로 입가심하듯 마무리한다. CD 수록곡들이 중간에 삽입돼 있는데, 미니앨범으로서의 완성도는 이를 제외하고 음원 트랙리스트에서 보다 매력적으로 드러난다 해야겠다.



신혜성
Serenity
라이브웍스 컴퍼니
2017년 9월 5일

   

신혜성은 ‘쿠세’가 워낙 많은 가수다. 콧소리도 있고, 벤딩도 깊게 하는 편이고, 기본적으로 바이브레이션도 많이 깐다. 그게 그의 목소리를 미성임에도 꽤나 ‘찐하게’ 들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타이틀곡인 ‘그 자리에’는 아무래도 별 기교 없이 부르는 버전을 상상하기 좋을 만한 어쿠스틱 발라드지만, 신혜성도 평소보다는 꾸밈을 덜어내고 곡에 임하고 있어 듣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이런 R&B스러운 기교의 보컬로 리얼 악기 발라드가 듣고 싶다면 도전해 보길. 앨범은 전곡이 일관된 톤을 유지하면서도 한 곡 한 곡이 서로 달리 잘 만들어졌다. 반가운 트랙은 ‘안부’. 비음과 특유의 감성이 섞인 고음 처리가 2000년대 그가 냈던 인기 발라드 트랙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다.



B.A.P
BLUE
TS Enter
2017년 9월 5일

   

B.A.P가 이렇게나 최신 트렌드를 그대로 흡수한 노래를 발표하는 것은 거의 처음인 것 같다. B.A.P를 대표하는 아주 어둡거나 아주 흥겨운 90년대의 댄스 가요 느낌이 거의 없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이들 사운드를 압도적으로 이끌던 기타가 뒤로 훅 빠지고, 트로피컬 하우스에 주로 쓰이는 신스가 전면으로 나왔다는 것. 이런 장르가 정말 인기이긴 하구나, 그 완강하던 음악관의 B.A.P까지 이걸 하는 걸 보면… 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후렴에 반복되는 테마가 중독적이다. 발매 시기가 조금 늦은 것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 여름 막바지에 즐기기 좋았을 곡.

타이틀 곡 ‘Honeymoon’은 따라 부르기 좋은 훅 멜로디라든가 전반적인 곡의 무드가 페스티벌에서 울려 퍼지면 알맞을 것 같은 EDM 앤섬(anthem)을 연상시킨다. 그 때문인지 넓은 공간감을 확보하려다 소리가 전반적으로 먹먹해지고 말았다. 아예 스타디움 사이즈의 공간을 상정하고 과감하게 소리를 만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회차의 추천작

그다지 복잡다단한 메시지나 스토리 없이 단지 색상만으로 주제를 이어간 “Noir”, “Rose” 그리고 이번 “Blue” 3부작은 마치 화면에 씌워지는 컬러 필터처럼 B.A.P의 본연의 형태를 그대로 전달하되 실루엣이나 디테일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도출해낸다. 이는 보컬 파트의 변화와도 관련 있을 듯한데, 메인 보컬 대현의 비중이 줄어들고 종업이 곡을 리드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 또한 주목할 점. 휘슬 사운드와 파도의 이미지가 겹쳐지는 뮤직비디오 또한 ‘Blue’ 이미지를 강렬하게 전달하는데, 드라마틱하게 구성된 곡의 진행과 파도를 연상하게끔 연출된 무대 퍼포먼스도 일관성 있게 기획되어 완결성을 주고 있다. 범람하는 ‘3부작’ 마케팅 안에서도 기어코 주목을 이끌어낸 싱글.



펜타곤
DEMO_01
큐브 엔터테인먼트
2017년 9월 6일

   

‘Like This’의 절제미에 ‘좋아요’를 보낸다. 체인스모커가 뿌린 e-발라더의 씨앗이 ‘그래도 달려야 하는’ 케이팝에 와서 변주를 이루고 있는데, 개중 가장 인상적인 결과물들 중 하나다. 그것은 펜타곤이 트랙을 시종일관 침착하게 억누르면서, ‘그래도 달려야 함’을 보컬을 통해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마저도 참 케이팝이다.) 후렴에서 백업보컬과 두어 겹의 솔로 레이어가 멜로디와 겹쳐지는 순간은 애절, 아득함, 서정으로 감정을 사방에 뻗쳐 보인다. (건들거리는 랩이 이어지는 대조도 즐겁다.) 그런 미덕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조금 해소되지 않는 아쉬움이 남기는 하는데, 이왕 이런 공식이라면 보컬이 좀 더 격렬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확실히 타이틀 곡 ‘Like This’는 준수한 EDM 트랙이다. 적당한 빌드업과 드랍, 비교적 친근하게 들리는 후렴 멜로디까지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차 B.A.P의 ‘Honeymoon’과 마찬가지로 사운드가 뻗어 나가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에서만 맴돈다. 하이 노트를 좀 더 시원하게 강조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타이틀곡과 마찬가지로 멤버들의 자작곡으로 앨범을 채웠는데 어쩔 수 없이 여러 기존 아이돌 그룹이 연상된다. 앞으로 펜타곤만의 색깔을 찾을 수 있을지, 기대하게 하는 앨범.

굳이 ‘Never’와 ‘Energetic’ 얘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지금의 펜타곤은 아쉬운 점이 많이 보이는 팀이다. 데뷔 후 1년간 확고해지지 못하고 자주 변한 팀 컬러는 같은 레이블인 CLC가 겪었던 패착을 답습하려는 것 같아 불안하기만 하고, 각각의 멤버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까지는 아직도 멀어 보인다. 특히 타이틀곡인 ‘Like This’는 멤버들의 매력을 곡을 통해 발산한다기보다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곡에 멤버들을 끼워 넣은 형태에 가까워 보인다. 멤버들 본연의 재능이 없는 게 아니고, 오히려 다재다능하고 매력 있는 팀이라는 것을 한 번 어필했던 팀이기에, 고민이 많은 만큼 노선을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데이식스
Every DAY6 September
JYP 엔터테인먼트
2017년 9월 6일

   

올 1월부터 한 달에 한 곡씩 꾸준히 작업물을 내고 있는 데이식스의 “Every Day6”, 그 9월의 싱글이다. 8월부터 뮤직비디오의 세계관이 학교로 옮겨와 멤버들과 배우 간의 우정과 애정 관계를 담아내고 있다. 그런 뮤직비디오의 배경을 의식해서일지는 몰라도, 음악도 스쿨밴드처럼 수수한 구성과 풀벌레, 휘파람 같은 자연스러운 요소로 진행되고 있다. (물론 퀄리티는 고등학생 밴드 레벨이 아니다.) 지난달의 넘치던 에너지는 간데없고 가을을 맞아 조금 멜랑콜리한 느낌을 입었는데, 이것도 대단히 잘한다. 한국 가요계에서 먹힐 만한 록의 문법 내에서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창작력을 다 발휘하고 있는 팀이라는 감상이다. 참고로 10월의 싱글이 추석 연휴를 꼈기 때문인지 조금 일찍 발매가 되어 있으니, 늦은 퍼스트리슨을 읽고 계신 지금 관심이 있다면 10월의 노래도 들어 보시길.

타이틀곡 ‘I Loved You’는 가요를 듣는 이들에게도 그다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스타일의 모던록으로, 90년대부터 가요를 들어온 이들이라면 익숙한 전개에 분명 ‘어라?’라든가 ‘오호?’와 같은 리액션을 하게 될 곡이다. 최근의 데이식스는 아이돌 팬들의 ‘만인의 차애 그룹’으로 사랑받고 있는 듯한데, 분명 록 밴드지만 가요, 특히 아이돌팝과 공유되는 지점이 없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작에 이어 멤버별로 스토리와 캐릭터를 부여해 연기하고 있는 ‘I Loved You’ 뮤직비디오는 이들을 충분히 아이돌적으로 보이게 하는데, 전통적인 형태의 밴드와 달리 멤버 대부분이 보컬 파트를 나누어 부르는 것 또한 아이돌 팬들에겐 무척 익숙한 문법이다. 어느새 상당히 흥미로운 팀으로 성장해 있음을 괄목하게 된다.



MXM
Unmix
브랜뉴 뮤직
2017년 9월 6일

   

〈프로듀스 101〉 시즌 2 참가자 임영민과 김동현으로 구성된 2인조, MXM의 데뷔 앨범이다. 제목 ‘Unmix’는 〈프로듀스 101〉 시절의 모습과는 다른 ‘온전한 우리만의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앨범을 다 듣고 나면 그런 의미보다는 ‘믹싱이 안 된’ 앨범 쪽이 더 적절한 해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급하게 기획된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하우스 (‘I'm The One’, ‘객관적인 시선’) 위주로 풀어가나 싶다가 갑작스레 트랩 기반의 R&B 트랙(‘일단 나와’)이 등장하고 이어 또 훵키한 댄스곡(‘오늘은 여기까지’)까지, 요새 유행하는 또 특히 신인 그룹이 많이 시도하는 장르란 장르는 다 모아 놨다. 어떤 음악과 스타일이 이 그룹에게 가장 잘 맞는지 또 그룹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결과물이다.



윤아
바람이 불면 (When The Wind Blows)
SM Entertainment
2017년 9월 8일

   
놓치기 아까운 음반

소녀시대가 동시대의 걸그룹 카라 등보다는 음역대를 낮게 설정하던 그룹이기는 해도, 걸팝을 부르는 팀이 나직한 저음을 전면에 선보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돌아보면 소녀시대의 활동곡 대부분은 중-고음역대를 힘있게 불러내는 튠이었고 그래서 윤아의 이런 목소리를 들어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별스러울 것 없는 기타팝이지만, 윤아 보컬의 발견만으로도 충분히 들어볼 가치가 있다. 실로 디스커버리라 할 만하다. 가을 날씨에 곁에 두기 좋을 트랙.

리드미컬한 질감이 살아있는 어쿠스틱 기타가 섬세하게 톤 변화를 보이면서 정조를 담아낸다. 곡의 흐름은 보컬이 주도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 질감이 상당히 넓은 공간에 퍼지며 떠도는 공기처럼 표현된다. 거의 챔버팝에 가까운 기분마저 드는 분위기가 보컬의 ‘예쁨’을 두드러지게 하면서 또한 공간감의 좋은 조화를 선보인다. 바람결처럼 연출된 드럼이 문득 빠져나가고 리듬 악기는 퍼쿠션만 남은 상태에서 약 1분이 지속되는데, 속도감의 변화에서 오는 공허하고 쓸쓸한 느낌이 매력적이지만 에필로그로서는 조금 길어 여운을 흐린다는 생각도 든다.



정은지
언제나 내겐 마음을 읽는 친구가 있었다
스페이스오디티
2017년 9월 9일

   

정은지는 참, 소리 없이 꾸준하게 신곡을 내고 있다. 사랑하는 친구에게 보내는 마음이란 주제의 가사는 서지음의 솜씨. 트렌디하기보다는 때로 레트로하고 촌스럽게 들리기도 하는 정은지의 보컬에 이런 가사와 함께 편안한 느낌으로 연출된 뮤직비디오가 어우러지는데 퍽 인간적인 곡이 만들어졌다. 귀여운 느낌을 의도한 듯한 금속성의 비브라폰 신스가 너무 곡 전체에 깔려 있어, 이 정도는 조금 과하지 않나 싶었다.

추억 언저리를 잘 부르는 보컬이 빈티지한 가사와 곡을 만나서 편안하게 들린다. ‘마니또’는 철없던 10대 시절을 연기했던 〈응답하라 1997〉을 연상시키며 적당한 무게감을 준다. 테크닉 때문인지 아니면 보이스톤이 따뜻해선지 종종 올드하게 들리곤 하는데, 이 정도의 어쿠스틱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처지지 않는 템포에 올망졸망하게 귓가를 울리는 이펙트가 부담스럽지 않게 들린다.



전지윤
저기요 (Hello)
Jenyer
2017년 9월 12일

  

솔로 싱어송라이터 선언 이후 다소 대중없이 다양한 스타일의 곡들을 조금씩 내놓고 있는 전지윤. 이번엔 ‘송라이터’의 자리를 프라이머리와 Taylor Parks에게 아예 내줬다. 방향성을 못 찾아서라기보다 솔로가 된 가벼움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특유의 낙천적인 이미지가 곡마다 담겨 있기 때문일 듯하다. 빈티지 신스들과 리듬 섹션이 가벼운 터치의 루프로 돌아가고, 훵키한 베이스가 보컬과 짝을 이뤄 곡의 흐름을 일군다. 랩과 보컬의 반복이 살짝 민망하게 느껴지는 바가 없진 않으나, 곡이 계속해서 모퉁이를 돌고 있다면 그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연극적인 이벤트 같은 효과를 준다. 산뜻한 분위기와 약간의 연극적 터치 속에 전지윤과 키썸의 씩씩함이 지루함 없이 리듬 타게 해주는 곡.



엘리스
Color Crush
로엔 엔터테인먼트
2017년 9월 13일

   
놓치기 아까운 음반

드디어 카라의 적장자가 나온 것은 아닐까? 멜로디나 악기 쓰임에 일본의 서브컬처적 색채가 있지만, 리듬을 세밀하게 만지는 케이팝적 특성을 가졌던 카라의 느낌을 이 신인 그룹에서도 느낄 수 있다. 전작에 이어 모노트리의 황현이 함께 한 ‘Pow Pow’는 기타 전주에 이어 곧 2000년대에 페퍼톤즈가 썼을 법한 산뜻한 멜로디를 뿌려 놓는다. 후렴까지 가는 빌드 방법도 트리플렛 리듬을 연속으로 몰아가다 ‘파바바밤’하고 터지는 것도, 꼭 그 시절 〈민트페이퍼〉 공연장에서 들렸을 법하다. 브라스로 최대한의 활기를 뽑아내면서 지루할 틈 없이 일렉 기타가 끼어 들어온다. 이런 노래는 의외로 계절을 가리지 않고 즐겁게 들을 수 있어서, 10월의 쌀쌀해지는 날씨는 감상에 별 방해물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놓치기 아까운 음반

은근히 팬층이 뚜렷한 듯한 엘리스. 전작들을 보면 레퍼런스를 가져오는 방식이 재미있는데, 사뭇 노골적이던 ‘나의 별’을 제외하면 장르 속으로 한 꺼풀 들어가 조금씩 가져와 어떤 ‘음악 취향’을 연상할 수 있도록 한다. ‘Pow Pow’는 80년대 소프트록을 가미해 ‘음악 좀 들었다’는 사람들에게 데자뷔를 선사하도록 구성됐는데, 같은 모노트리 작품이지만 이달의 소녀가 초기에 구사하던 것과는 꽤나 다른 방식으로 어필한다. 전작처럼 템포의 변화나 싱코페이션 등을 동원하며 쉴 틈 없이 자극을 몰아붙이는 것이, 복고와 취향을 ‘하이퍼액티브 케이팝’이라 불러도 좋을 어떤 경향성 속에 버무려 넣는다. 시각 요소들의 상대적인 매트함은 이를 보완하기 위함일까 싶을 정도로, 다소 정신없을 수 있는 곡이다. 뚜렷하게 귀를 찌르는 기타 릭(lick)과 명쾌하기 그지없는 후렴이 흐름을 잡아주고 있어 자극을 다루는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여자친구
Rainbow
쏘스뮤직
2017년 9월 13일

   

2000년대 중반 즈음, 일본 서브컬처적 요소를 콘셉트와 음악으로 차용하는 것은 ‘뜨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았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구현한 애니 오프닝적 모먼트나 카라의 ‘Rock You’가 들려주던, 유희열의 이너 오타쿠를 깨웠던 동요스러운 멜로디와 록적인 기타 편곡 같은 것을 떠올려보라.) 이렇게 받은 코어한 관심을 토대로 인기를 쌓고, 결국은 팝의 세계에 돌입하는 식이었다. 여자친구의 최근 행보는 이 일본 서브컬처, 특히 일본 애니와 일본 아이돌의 세계로 대표되는 아키하바라의 사운드를, 단지 뜨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거 말고는 원래 다른 것을 할 계획은 없었던’ 것처럼 활용한다. ‘Fingertip’이 들어있던 “The Awakening” 앨범의 수록곡에서 선보였던 스펙트럼을 자꾸만 의도적으로 숨긴다. 스페셜 발매반을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평할 필요는 없는지도 모르겠지만, 같은 문법의 반복이 되고 있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 그렇다.

‘여름비’는 여자친구의 두 보 전진이 느껴지는 트랙이다. 클래식 샘플링을 선택하여 친숙하고 서정적인 이미지를 함께 끌어냈다. 또한, 손으로 꽃을 그려내며 돋보이는 춤선을 갖춘 안무는 ‘파워청순’ 이미지의 변주로 보인다. 노래를 가득 채운 스트링과 비트는 여자친구 특유의 컬러 그대로지만, 단순히 ‘여자친구의 가을 버전’이 아니라 보컬과 춤에 힘을 주지 않아도 여자친구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곡이다. 벅찬 감정을 노래하는 이미지 다음에는 어떤 모습을 가져줄까 궁금했는데, ‘여름비’가 그 단서 같다. ‘시간을 달려서’처럼 콘셉트 상의 졸업이 아닌 정말 새로운 이미지로의 탈피가 보인다.

신인 시절의 성공작 복제에 이어 이제는 자가 복제를 시도 중이다. 직전작인 ‘귀를 기울이면’과 멜로디의 유사성이 발견될 뿐만 아니라 ‘시간을 달려서’와 거의 바뀌지 않은 안무, ‘오늘부터 우리는’에서 사용했던 소재와 소품 등은 자신들이 성공작이었다는 상당히 강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리바이벌인데, 이것이 자신감인지 자만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한 듯하다. 정작 여자친구가 성공했던 이유는 그 자신감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지.



바비
Love And Fall
YG 엔터테인먼트
2017년 9월 14일

   

첫 두 곡을 들으며 이미 이번 회차의 ‘Pick!’을 결심했지만, 이어지는 곡들에서 내려놓고 말았다. 핸드백이나 ‘어장’, 트로피로서의 여성 등의 내용은 그 자체로도 불편하지만, 이 재기 넘치는 음반 속에서 빼놓기에 아까운 어떠한 참신함을 담은 구절들조차 아니다. 왜 ‘필수요소’라도 되는 양 여성혐오 코드를 그것도 아주 뻔하게 심어 넣지 않고는 못 견뎠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안타까움이 유난히 큰 건 그가, ‘솔직한’ 색정과 육욕을 우아하게 표현하는 ‘Firework’이나, 아포리즘을 연상시키는 구절들 속에 생각 많은 캐릭터가 그리움 앞에 모든 걸 내려놓는 ‘사랑해’ 같은 텍스트를 일굴 수 있는 아티스트기 때문이다. 앨범 속 바비의 목소리는 있는 힘껏 망가져버리는, 강렬한 취기 같은 공격성에서 사색적인 마초를 거쳐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감성까지 폭넓게 표현해낸다. 무엇보다 그것이 ‘우악스럽기에 진실함’이란 클리셰를 가뿐히 뛰어넘어 훨씬 속 깊은 인물상을 그려내는 점에 감탄한다. 트렌디한 요소를 적당히 가미하며 트렌드에 휘둘리지 않고, ‘목소리’를 들려주는 품격 있는 앨범이다.



Editor

Auth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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