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하반기 발매된 25장의 아이돌 음반 중 14장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방탄소년단, 서은광, 피규어, 에이프릴, 젝스키스, 니엘, 이달의 소녀 오드아이써클, 아이유, 유노윤호, 나다, P.O, 최강창민, 예빈&솜이, 데이식스를 다룬다.
랜디: 빌보드 수상 후의 첫 번째 발매반이다. 이전 앨범들이 ‘해외 트렌드를 로컬라이즈 해서 국내에 수입하는 것’을 의식하는 듯했다면 이번 앨범은 ‘케이팝을 미국 차트에 맞게 로컬라이즈 해서 차트인 하는 것’을 가장 신경 쓴 듯하다. 버스마다 대비가 뚜렷한 EDM곡들의 전반부와, 라틴 소스 인기가 한창인 글로벌 트렌드를 반영한 후반부가, 적절한 에너지 배분과 함께 무리 없이 흘러간다. 타이틀곡 ‘DNA’는 EDM 전반부 중에서도 한국의 청자에게 덜 낯설게 들릴 만한 휘파람이나 스타일리시한 기타 스트로크 소스로 시작하는 것이 가히 여태 방탄소년단이 만들어온 로컬라이징의 정수라 할 만하다. ‘Outro : Her’에서는 오랜만에 붐뱁 샘플링에 랩을 얹는 트랙을 선보인다. 지금까지 이들의 아우트로가 다음 앨범으로 이어지는 힌트였던 것을 감안하면 다음 발매반에서는 올드스쿨 힙합의 흔적을 좀 더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미묘: 많은 이들이 빌보드 수상 소감을 녹음한 스킷인 6번 트랙을 중심으로 앨범을 양분하는데, 조금 다르게 본다. 4번까지는 사랑으로 대변되는 팝송의 주제를 방탄소년단식의 거창함으로 제시하고, 5번부터는 슈퍼스타로서의 삶을 표현하며 논픽션과 모큐멘터리 사이에 모호하게 위치한다. (그렇다면 이 여정에서 빌보드 수상은 제법 앞부분에 배치돼 더 먼 미래를 내다보는 구성이 된다.) 이때 청자는 연인과 팬, 또는 연인이자 팬이 되고, 화자는 현실의 방탄소년단과 서사 속 슈퍼스타인 방탄소년단으로 나뉜다. 6번의 스킷이 일견 과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두 세계가 슬그머니 교차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 중 하나 역시, 청자와 화자의 관계가 약간의 모호함과 함께 방탄소년단과 팬으로 설정된 듯한 인상을 지속적으로 주기 때문일 것이다. 빌보드 수상이라는 극적인 이벤트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작품의 서사 속에 끌어안는 셈이다. ‘DNA’는 섹션이 바뀔 때마다 새로움을 주면서도, 다른 정답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적확한 다음 블록을 속도감 있게 쌓아 나간다. ‘Best Of Me’는 이를, 감상성과 댄스플로어의 차가움을 절묘하게 이어 붙임으로써 달성한다. ‘MIC Drop’이나 ‘고민보다 Go’ 역시 팀 특유의, 약간의 광기가 섞인 강렬한 에너지를 잘 보여주는 동시에, ‘빌보드 수상이 아니라면 케이팝에서 누가 이런 걸 보여줄 수 있겠나’하는 생각도 하게 한다.
심은보(GDB): 방탄소년단은 여전히 적당히 팝하고, 적당히 트렌디하다. ‘Skit : Billboard Music Awards Speech’ 전후로 EDM과 힙합으로 나뉘면서 그사이를 디스코 트랙 ‘Pied Piper’가 채우는 것도 나름대로 구성에 신경을 썼다고 느껴진다. 전반부는 방탄소년단의 새로운 시도처럼 느껴진다. 랩보다는 보컬에 비중을 두고, 공격적이거나 꽉 찬 사운드 대신 최근의 케이팝을 간결하게 다듬은 느낌은 확실히 흥미롭다. 후반부의 힙합 트랙은 유행했던 힙합 싱글들의 맥락을 조금씩 빌려오지만, 어딘가 애매하고 부족한 프로덕션 때문인진 몰라도 조금씩 아쉽다. 여기엔 ‘Skit: Billboard Music Awards Speech’ 하나로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맥락을 연결하기 부족했던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오요: “화양연화 pt.1”과 “pt.2”, 그리고 “Wings” 앨범까지 방탄소년단은 힙합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오히려 전자음악과 훨씬 더 가까운) 사운드를 내세운 타이틀 곡들로 재미를 많이 봤다. 이번 앨범은 노림수가 더 명확하다. 확실히 최근 해외에서 무서운 기세를 보이는 그룹인 만큼 가장 최근 유행하는 (케이팝이 아닌) 팝 사운드에 집중한 모양새다. 앨범의 전반부는 굉장히 인상적인 흐름을 선보이는데 특히 멤버들의 장르 이해도와 지난 앨범들에 비해 한층 더 물오른 보컬이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가창력의 영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곡의 집중도를 몇 배는 더 끌어 올린다. 스킷 이후 힙합 트랙들이 이어지지만 (‘MIC Drop’, ‘고민보다 Go’, ‘Outro : Her’) 구색 맞추기에 불과할 뿐, 전반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심댱: 비투비의 솔로 프로젝트 “Piece of BTOB”의 마지막 주자, 서은광의 싱글이다. 공간을 잘 빚어내는 호흡과 화려한 테크닉, 그리고 청아한 고음은 드라마틱한 전개가 돋보이는 임창정식 한국 발라드에 어울린다. 안 그래도 타이틀곡 ‘이제 겨우 하루’는 임창정의 최근 활동곡을 작곡한 ‘멧돼지’가 참여했다. 다만 그보다 한층 투명한 보이스톤을 가지고 있기에 조금 순한 케이-감성을 느낄 수 있다. 도입부부터 강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그때’ 또한 들어볼 만한 트랙이니 일청을 권한다.
미묘: 일렉트릭 기타가 지글거리는 SMP 풍에 자신감 있는 가사, 터프한 톤의 래핑. 가사의 표현들이 썩 참신하진 않고 낯간지러운 면이 있긴 하지만 ("난 spotlight / 내게 비춰 alright / 이제 느낌 오니? / 내게 걸어 올인") 신인 걸그룹에게서 보기에 반가운 요소들이 많다. 꽤나 귀에 잘 들어오는 랩에 비해 보컬이 매우 둔탁해서, 사뭇 익숙한 멜로디라인임에도 멜로디와 가사 모두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 절정의 가창력이나 고음 같은 문제가 아니라, 가창자도 디렉터도 프로듀서도 모두 자신감과 의욕이 없는 듯이 들린다.
랜디: 보도자료의 소개말은 거의 달라진 것이 없지만 싱글 ‘손을 잡아줘’를 통해 전달하는 무드는 분명 달라졌다. 전작 ‘봄의 나라 이야기’ 등에서 짓던 약간의 처연한 표정을, 이제는 후렴 마이너 전조와 함께 록 드럼 리듬에 매칭해서 들려주고 있는데, 이로서 전보다 훨씬 AKB류의 음악에 가까워졌다. 국내 씬에서 이런 음악을 하는 타 그룹은 여기에 난이도 높은 안무를 매칭해서 선보이고 있지만 에이프릴은 그런 그룹은 아니라서, 무대에서 무얼 찾아야 할지 물음이 남는다. 애수를 담아내려 하는 후렴의 멜로디도 귀에 잘 꽂히는 쉬운 멜로디는 아니다. 수록곡의 가사관을 살펴보면 “남자(여자)는 다 그래”, “(오빠가) 나를 여자로 만들었어” 등 평면적인 스테레오타입형 캐릭터를 그리고 있어서 이 역시 재미가 없다. 아쉬움이 가득하다. 단 ‘Hey Yo Hey’’ 훵키함만큼은 강추. 소녀시대의 ‘Express 999’나 오마이걸의 ‘I Found Love’처럼 숨은 명곡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오요: 에이프릴은 항상 일정한 수준의 곡을 미니 앨범에 꽉꽉 채워 발표하는 ‘우등생’이라는 인상인데, 네 번째 미니 앨범 “Eternity”도 마찬가지로 준수한 트랙들로 꽉 찬 (총 여섯 트랙이다) 음반이다. 다만 아쉬운 건 이제 이런 류의 걸그룹 사운드는 지겹도록 많이 들었기에 아무리 준수한 곡이라도 색다를 것 없이 흘러가 버린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타이틀 곡 ‘손을 잡아줘’를 여자친구가 불렀어도, 러블리즈가 불렀어도 별다른 위화감 없이 고개 한 번 끄덕이고 지나갔을 거란 얘기다.
미묘: 이 앨범이 1년 정도 일찍 나왔다면 많은 게 달라졌을 것 같다. 앨범은 특정 사운드 요소만이 아니라 화성적인 차원에서도 YG 특유의 색채를 보다 가시적으로 드러내고, 15년의 세월을 끌어안아 성장한 느낌도 주려 하며, 동시에 과거 젝스키스를 사랑받게 한 가볍고 유쾌한 가요적 느낌도 섞어 넣는다. 세 가지 기조의 배합은 제법 설득력 있다. 재결성 이후 ‘아무튼 자극적으로’ 만드는 데만 신경 쓰는 듯하던 과거 곡 리메이크나, 단편적으로 우수에 치중함으로써 달성하려는 듯하던 성장의 표현에 비하면 매우 반가운 선택들이다. 대체로 우울한 감성을 많이 담고 있는 앨범이지만, 특히 중후반부에서, 가벼운 마음과 낙천성이 은근슬쩍 배어 있어 부담 없는 가요에 가깝게 완성되고 있다. 정작 더블 타이틀을 포함하는 앨범의 초반부는 상대적으로 전작들의 애매한 균형에 보다 근접해 있어 아쉽다. 차기작에선 보다 균형미를 기대해도 될까?
심은보(GDB): 뻔하고 또 재미없다. “이별 3부작”, “잘 지내?”라는 키워드만으로도 이 곡을 전부 설명할 수 있다. SNS를 살펴보며 헤어진 이를 다루는 내용과 최근의 퓨처베이스가 더해졌다는 소개에서 이미 곡의 모든 정보가 드러난다. 여기에 저스디스의 매력 없고 심심한 랩이 더해지면서, 곡의 무의미함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니엘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역시 음색일 텐데, 이 곡에서 니엘의 보컬은 있으나 마나 한 수준의 곡 구성이기에 더욱 아쉽다. ‘잘 지내’가 이별 3부작의 두 번째인 만큼, 세 번째는 어떤 곡이 나올까 궁금하긴 하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큰 기대는 되지 않는다.
오요: ‘퓨처베이스’를 표방한 케이팝 트랙은 이미 너무나 많이 나왔고 대개는 퓨처베이스를 흉내만 내는 데서 그치고 만다. 니엘의 ‘잘 지내?’는 언뜻 들었을 때는 꽤나 그럴싸하지만 여전히 바나나 향만 첨가해 놓고 바나나 우유라 우기는 것 같은 트랙에 불과하다.
랜디: 이달의 소녀 프로젝트의 두 번째 유닛 오드아이써클의 미니앨범. 이전 유닛 ‘1/3’이 선보인 일본 아니메적인 유함이나 서정성보다는 전자음악을 앞세운 세련미가 더 두드러진다. 국내에선 ‘Girl Front’를, 해외에서는 영어버전의 ‘Loonatic’을 프로모션 중이라고 한다. 특히 ‘Loonatic’이 한국 메이저 가요 씬에서 좀처럼 듣기 힘든 스타일의 곡이라서 주목할 만하다. 아예 보도자료부터 드림팝을 표방하고 있는 이 곡은, 보컬을 크고 깨끗하게 배치하기 위해 다른 소리를 깎는 보통의 한국 가요에 비해, 보컬 트랙을 가사가 거의 분간 가지 않을 정도로 리버브에 둘둘 감싸 하나로 악기로 취급한다. 그럼에도 정작 노래에서 가장 오버파워링한 요소는 복잡하지 않은 8비트 드럼이고, 멜로디도 아주 캐치해서 큰 거부감 없이 들을 수 있다. 2016년도에는 같은 레이블의 레이디스코드가 엘레강스함으로 회사의 포트폴리오가 되고 있었다면, 2017년의 이달의 소녀 프로젝트는 그들보다 저연령대에서 이룰 수 있는 거의 모든 서브컬처적 시도를 해보고 있는 것 같다. 니코동에서 텀블러까지 왔다. 다음은 어디일까?
미묘: ‘Girl Front’의 상쾌한 질주감이 인상적이다. 장면을 전환하거나 속도감을 이어가는 곡과 뮤직비디오의 몇 장면도 감탄스럽다. 다만 이번에도 유닛 활동곡의 집중력이 솔로 곡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의아하기만 하다. 세 멤버의 솔로 트랙들이 실연자와 감상자 모두에게 꽤 까다로운 곡들임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던 팽팽한 긴장이, 여기서는 자꾸 풀려버린다. 개인 취향의 함정을 감수하고 말해 보자면, 할 말이 너무나 많아서 쉴 틈 없이 순서대로 쏟아 부어버리는 ‘벽쿵감’ 같은 것을 살려야 했던 곡이 아닌가 싶다. 콘셉트를 디테일하게 직조해 넣는 것도 흥미롭긴 하지만 그 공간적 여유를 위해 지나치게 좌고우면하는 듯한 느낌이 템포를 떨어뜨리는 점이 아깝다. 우악스러운 반주와 바디감을 아예 날려버린 보컬이 매우 독특한 인상을 남기는 ‘Loonatic’, 밀가루 반죽으로 저글링을 하는 듯한 사운드의 꼼꼼함 위로 우아하게 흐르는 ‘Chaotic’이 놓치기 아깝다. 이만큼 특이하고 과감한 음악을 그것도 높은 설득력으로 걸팝에 이식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오드아이써클에 아직 더 기대해 보는 이유다.
심은보(GDB): 오드아이써클은 김립으로 00년대 R&B를, 진솔로 퓨처베이스를 선보이고, 최리로 루나와 섞일 수 있는 다리를 놓았다. 오드아이써클은 중간에 서 있다. ‘Girl Front’는 카와이 베이스를 이용하여 이달의 소녀 1/3과 연결되고, 이어지는 ‘Loonatic’과 ‘Starlight’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이달의 소녀 1/3으로 나아간다. 음반 안에서 오드아이써클에서만 보였던 스타일은 어떻게 보면 R&B 곡 ‘Chaotic’ 하나인데, 루나 전체로 봤을 때 좋은 카드로 남겨둘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립, 진솔까지만 해도 루나 전체와 섞일 수 있는가에 관한 우려가 있었는데, 오드아이써클은 이를 훌륭하게 지워낸 듯하다.
오요: 전자음악 앨범이라기엔 많이 어설픈 것이 사실이지만 케이팝 걸그룹 앨범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분명 새롭고 과감한 시도로 가득 찬 앨범이다. Pick!으로 선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퓨처베이스, 트랩 등 다양한 장르를 한 트랙 안에 섞거나(‘Girl Front’), 과감한 서브 베이스와 그에 대비되도록 아예 날려버린 보컬(‘Loonatic’), 한동안 걸그룹 앨범에서 듣기 힘들던 R&B(‘Chaotic’)까지 기존의 걸그룹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소리를 들려준다. f(x) 이후 듣는 재미를 주는 걸그룹 앨범이 드물었는데 오랜만에 음악 자체를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앨범이었다.
랜디: 전체적으로 미니멀하게 편곡되어 소품집 같은 느낌을 준다. 원곡들은 아무래도 대부분이 히트곡이었다 보니 훨씬 풍성하고 빵빵하게 편곡되어 있었는데, 그래서 그들과 일대일 평행으로 놓고 대조하며 듣는 것은 좋은 감상법이 아닌 듯하다. (해봤더니 그렇더라.) 그냥 원곡을 따로 찾아 듣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이 음반만 1번부터 마지막 6번 트랙까지 정주행을 하면, 트랙 사이의 유기성을 발견할 수 있어서 그 재미로 완주하게 된다. 전작 ‘Palette’의 가사나 그 외의 기회에 자주 밝혔듯 아이유 감수성의 다수는 레트로한 것에 빚지고 있고, 이런 프로젝트를 본인이 아주 즐기며 하고 있겠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이 기획이 2탄으로 미니앨범과 뮤직비디오가 나올 만큼 중요한 작업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래도 커버 곡이다 보니 앨범보다는 유튜브 커버 영상 같은 인상이 조금 있어서 말이다. ‘이지은’이라는 개인의 취향을 엿보는 것은 즐겁지만, ‘아이유’라는 기획된 커리어에는 조금 사족인 것 같기도 하다.
미묘: 앨범을 듣기 전 트랙리스트를 보면서 조금 시큰둥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특히 ‘비밀의 화원’의 인트로가 흘러나오는 순간 어쩔 수 없이 무장해제되고 말았다. 분명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나 ‘어젯밤 이야기’의 대부분의 시간, ‘매일 그대와’는 전작처럼 재기 넘친다고 하기보다는 ‘이런 셋업을 정말 해보고 싶었나 보다’하는 감상이 더 크다. 어찌 보면 앨범보다는 딩고 라이브에 더 어울린다고 할까. 그러나 ‘가을 아침’의 무반주에서 목소리의 공명이 쨍하게 찌르는 것을 필두로, 앨범은 간소하지만 좋은 울림을 전한다. 보다 과감한 것을 기대하게 되기도 하지만, ‘단지 하고 싶어서’ 하는 음악이란 인상을 또박또박 남기는 앨범도 간만이다.
심댱: 실로 오랜만에 듣는 클래식한 SMP다. 마치 유영진이 그간 마음속에 간직했던 세상의 부조리를 모아 모아 ‘Drop’으로 완성한 것 같다. 패악, 교과서, 유산, 면죄부 등 최근 아이돌 팝에서 듣기 어려웠던 단어가 한 곡에 쏟아지는 데다가 랩 브리지의 EDM 소스는 ‘Rising Sun’과 ‘오정반합’을 연상시키며 왠지 모를 친숙함을 불러일으킨다. SMP는 강렬한 비주얼로 설득되는 장르이기에 뮤직비디오를 접하는 것이 가장 좋다. 뮤직비디오 버전의 ‘Drop’은 음원보다 훨씬 더 큰 스케일에 치열한 편곡을 자랑한다. “새로운 국가가 시작됐다”는 내레이션을 들으면 동방신기를 향한 SM의 애정이 느껴지는데, ‘Drop’은 공백기를 메우고 그룹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가장 정석적인 트랙이 아닐까 싶다.
오요: 지난 7월 SM타운 콘서트에서 최초 공개되었던 곡이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 한 구석에서 이 곡에 맞춰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유노윤호를 보며,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케이팝에 열광하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Drop’은 확실히 음원으로 듣는 것보다는 무대와 함께 볼 때 훨씬 인상적이다. 화려하고 힘이 넘치는 퍼포먼스를 통해 완성되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케이팝에 무엇보다 충실한 트랙이라 할 수 있다.
랜디: 그룹 탈퇴 후 첫 싱글. 김도현이 프로듀싱을 맡았다. 비트는 좋게 말하면 실험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귀에서 튕겨져 나간다. 퓨처베이스에 하드 트랩을 거칠게 접목시킨 것이 흥미롭기는 하나 드롭까지가 설득력 있게 들리기보다는 호흡이 버겁다. 나다의 랩은 몇몇 라인이 니키 미나즈를 떠올리게 하는 아주 팝적인 플로우를 유지하고 있어서, 비트의 난해함과 충돌하는 면이 있다. 훅을 의도한 듯한 “미쳤어”의 반복은 훅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그냥 ‘반복을 하는구나’ 정도의 감상 밖에는 주지 못한다. 작년에 이벤트처럼 나온 ‘서래마을’은 그 납작함에 나다 특유의 위트와 스왜그가 오히려 키치한 맛을 살려줬는데, 이번 싱글 ‘Trippin’’은 가사의 톤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비트의 분위기가 그 스토리를 잡아먹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아쉽다.
오요: 비트에서부터 와썹과 결별하고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한 나다의 야심이 아주 잘 느껴지는 트랙이지만 결과적으로 그저 그런 힙합 트랙이 되고 말았다. 실험적인 비트라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높은 음악적 가치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며 “미쳤어”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훅은 단조롭기만 하다.
심은보(GDB): 케이팝에서 브루노 마스와 마크 론슨이란 어떤 존재인가 다시 고민케 한다. 피오의 랩은 케이팝에서 조금은 낯선 샤우팅에 가깝다. 그런데도 이 방식을 팝적으로 소화할 수 있었던 건 앞서 말했던 마크 론슨과 미스티컬의 ‘Feel Right’가 성공을 거뒀던 전례가 있기 때문. 챈슬러가 곡 안에서 사용되는 방식도 마크 론슨의 훵크 트랙과 비슷하다. 훵키한 팝의 성공 요인을 전부 다 넣은 만큼, 듣기에는 매우 좋다. 다만, 왜 인제야 이러한 곡을 솔로 프로젝트에서 해야 했는지다. 제임스 본드의 명대사를 뮤직비디오 안에 넣은 것도 나름의 유머였겠지만, 글쎄.
심댱: ‘동방신기 Week’ 두 번째 곡, 최강창민의 ‘여정’이다. 이번 달 상반기에 발매된 윤아의 ‘바람이 불면’처럼 잔잔한 어쿠스틱 팝 트랙이다. 한쪽은 늘 그렇듯 활화산처럼 파이팅 넘쳤다면 다른 한쪽은 물 흐르듯 여유로운 분위기라 대비가 돋보이는데, 왠지 동방신기 멤버의 캐릭터성과 연결되는 것 같다. 끝이 날카로운 고음도, 버스에서 고요하게 울리는 미성도 그대로다. 무엇보다 대중적인 감각이 두드러지는 작사 실력도 그대로라 안정감을 준다. 그룹의 컬러만큼이나 멤버의 개성도 변치 않았음을 알려주는 트랙이다.
심댱: 미디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아이돌 그룹의 마케팅으로까지 번져갔다. KBS2 〈더 유닛〉 출연을 위해 다이아를 잠시 떠나는 멤버, 예빈과 솜이가 유닛이 되어 곡을 발표했다. 아이돌 멤버가 프로그램 출연을 위해 팀을 이탈하고 종영 후 재영입하는 경우는 봤지만 이렇게 이탈 멤버로 유닛을 꾸리고 싱글을 낼 수도 있다니... 그것도 팀을 잠시 떠나야 하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담아 어쿠스틱 발라드로 부르다니 생경하다. 노래만 듣는다면 설악산으로 가는 추억여행을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풀어낸 로드무비 같다. 인트로에 등장하는 기차 소리, 간주의 하모니카 등 모든 요소가 스산한 가을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만 가사 중 “돌아가고 싶어져”는 왠지 본 그룹 다이아를 의미하는 것 같아 묘하다. 유닛의 운명을 생각하면 크리피하게 들리겠지만 나름대로 가을에 어울리는 트랙이다.
심댱: 조금 이르게 나온 데이식스의 프로젝트 싱글 “Every DAY6” 시월반이다. 썰렁해진 날씨에 울적한 마음을 묵묵히 도닥이는 드럼이 인상적인 ‘그렇더라고요’는 시즌에 잘 어울리는 트랙이다. 반면 ‘누군가 필요해’는 제 발로 우울의 소용돌이로 들어가는 것 같다. 계절의 변화에 맞게 포인트를 잘 잡는 밴드라는 인상이 잡혔다. 겨울 쯤에는 뭘 들고 올지, 그리고 학생물 뮤직비디오의 전개는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진다.
오요: 데이식스도 참 꾸준히 양질의 곡을 발표한다는 점에서 ‘우등생’이라 할 만하다. 밴드 사운드를 추구하는 아이돌이라는 점은 특이하지만 사실 매번 발표하는 곡 자체는 색다를 것 없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인디 팝이었는데 ‘그렇더라고요’는 그 와중에서도 귀에 오래 남는 멜로디가 인상적인 트랙으로 이제껏 데이식스의 곡 중 가장 즐겁게 들었다. 여전히 일본의 몇몇 밴드들이 연상되지만 동아시아인에게 가끔은 또 이런 감성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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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ply on “1st Listen : 2017년 9월 하반기”
젝키 음반은 진짜 작년 겨울에 저걸로 나왔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