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게 여성 비율이 높은 3월 중순 아이돌 신보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텐텐, 유주(여자친구)&선율(업텐션), 윤아(소녀시대), 치어콕, 김보형(스피카), 설린(비비드), 홀릭스, 마틸다, 레드벨벳, 효민, 헤리티지&종현, 프로듀스101의 새 음반을 다룬다. 햄촤가 퍼스트리슨 필진으로 합류했다.
미묘: 전작들에 비해 심기일전이 느껴진다. 트랩의 영향을 수용한 전개부, 갑자기 포근하고 명랑한 프리코러스, 예전의 일렉트로닉 '쎈언니' 스타일을 조금 애교스럽게 변주한 후렴이 결합해 있다. 각각이 조금씩 부족한 듯한 것도, 그 대조나 연결이 조금 더 타이트해질 여지가 있는 것도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음악에서 과감한 시도를 하는 점, 그리고 멤버들의 음색을 캐릭터로 잘 배치한 것이 적어도 후렴에서 나름 숨 가쁜 공기를 만들어내는 점에서 음악적 욕심과 성장이 엿보인다. 디지털 싱글의 보도자료에 크레딧 표기를 한 것 역시 이들에게 응원을 더하고 싶어지는 포인트.
돌돌말링: 두 사람 목소리의 합이 굉장히 좋다. 최근 들어 남돌 여돌의 듀엣 콜라보가 잦았는데, 그중에 눈에 띌 정도로 좋은 조합이다. 연초에 사랑받은 백현과 수지의 조합이, 장르도 그렇고, 멋진 남자와 예쁜 여자의 클래식한 만남 느낌이었다면 유주와 선율은 씩씩한 소녀와 애교 있는 소년의 라노베스러운 만남 같다. 두 사람 다 발음도 발성도 선명한 편인데, 유주의 속이 꽉찬 목소리에 선율의 미성이 어우러지니 자주 꺼내 듣고 싶은 노래가 탄생했다.
유제상: 이제 이런 형태의 듀엣곡은 더 안 나와도 좋지 않을까 싶지만 '썸' 같은 무지막지한 히트 사례가 쉽게 뇌리에서 잊혀지기도 어려울 것 같고, 일단 기존작들이 그렇듯 기본은 하니까 식상함 외의 문제를 찾기도 쉽진 않다. 물론 여자친구의 팬이라면 멤버의 신분 상승을 한 눈에 느낄 수 있을 테니 이 싱글이 반갑겠지만서도. 평자 입장에서 다른 건 모르겠고 그룹 활동으로는 캐치하기 어려웠던 유주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햄촤: 10cm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선택해 어쿠스틱한 사운드에 남녀 듀엣으로 방향을 잡은 건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보컬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다. 게다가 '봄'이라는 계절감까지. 필요한 계산은 다 해서 내놓은 싱글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내건 곡임에도 윤아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소극적이란 인상을 주는데, 후렴 부분에서는 권정열의 목소리 뒤에 거의 숨은 듯이 노래하는 느낌마저 든다. 무엇보다 노래 속에 윤아 목소리의 절대량이 모자라다. 드러날 수도 있는 약점을 감추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지만 동시에 장점을 내보이지 못한다면 과연 성공적인 전략일까. 윤아는 조금 더 목소리를 크게 내도 된다. 나는 그룹의 다른 보컬 멤버보다 윤아의 목소리로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노래가 있다고 믿는다. 누가 뭐래도 그녀는 9년 차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아닌가.
P.S. 이 곡을 듣고 나니 다음번엔 악동뮤지션의 이찬혁과 듀엣을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어른들의 사정이야 어쨌든 상상하는 것은 덕후의 마음이니까.
유제상: 치어콕은 여성 4인조 그룹. 네이버에는 데뷔가 2011년으로 되어 있던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여튼 '넘나 좋은것'은 옛 정취를 느끼게 하는 상당히 오래된 분위기의 곡으로, 특히 멜로디의 짜임이 90년대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보컬에 아주 미묘하게 성질을 깔짝깔짝 건드릴 만큼 오토튠이 걸려 있는데 이게 곡의 인상을 좋지 않은 쪽으로 확실히 몰고 가버린다. 아울러 첨언하자면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유행어를 곡 제목으로 쓴 것은 유감.
돌돌말링: 스피카는 보형과 보아 등 서로 다르면서 걸출한 보컬들이 공존하는 그룹인데, 그래서 그들 모두에게 한 번에 다 잘 어울리는 노래를 찾기가 특히나 힘들다는 인상이었다. 2000년대 미국 팝적인 노래를 하면 보아는 자기 옷 같은데 보형은 좀 올드한 느낌이고, 재지한 노래를 하면 보형은 걸쭉하게 착 달라붙는데 보아는 겉돌고... 그래서 솔로 작업물이 자기에게 잘 어울리는 노래를 만났을 때는 굉장히 반가운 기분이 든다. 보형의 창법과 진한 톤은 이런 대곡 스타일에 참 잘 어울린다. 이 노래가 듣고 싶어서 드라마를 보게 될 것 같다.
미묘: 상냥한 듯하면서 심지가 또렷한 음색이 매력 있다. 커플링 곡인 발라드 트랙 '소원'을 들어보면 컨트롤과 표현력도 있는 편이다. 다만 그것이 '좋은사람'의 버스(verse)에서만큼 후렴에서 결정적인 매력으로 꽂혀주지는 못하는데, 두 곡 모두 나무랄 것은 없으나 밋밋하고 낡은 분위기여서 목소리마저 구식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이름마저 '비비드'한 모그룹과의 밸런스를 의식했는지 조금은 댄서블한 트랙으로 타이틀을 잡은 배려는 호평하고 싶으나, 곡풍 선택의 폭을 조금 넓힐 수 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미묘: 이래선 안 된다. 트랙은 저역을 잘 잡아낸 것이 유일한 장점이고, 편곡은 옛날 게임 음악을 듣는 것 같다. (그래서 정겨운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작곡은 마치 '대중적으로 쉬운 음악을 해야겠다'는 만용의 결과인 것처럼 일차원적이다. 보컬은, 아무리 정석적으로 잘 부르는 게 아이돌의 전부가 아니라고는 해도, 스튜디오 적응조차 안 된 듯한 발성과 동요 같은 가창이 아무런 연출도 여과도 없이 담겨 있다. 정말 이래선 안 된다.
돌돌말링: 유튜브에 올라온 그룹 설명을 보면 '토탈 사커'처럼 전담 없이 전 멤버가 노래, 안무, 랩을 맡는다고 쓰여 있는데, 전담을 할 만큼 누구도 특출나지 않다는 말을 달리 써보았을 뿐인 것으로 보인다. 축구 하는 내 친구 말이, 선수들끼리가 아닌 동네 친구들끼리 놀면서 '토탈 사커' 라고 하면 그냥 전술 없이 공 하나 놓고 "와아 와아" 떼축구 한다는 뜻으로 알아들으면 된댔는데... 멤버진이 이럴진대, 음악은 기대보다 썩 괜찮다. 뽕끼와 적당한 중독성을 갖췄다. 행사 현장에서 많이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뮤직비디오에서 본 바가 맞다면 멤버들의 상당수가 치아교정기를 하고 있던데 혹시 모에 포인트로 노린 것인지... 일부러라면 상당한 니시 마켓 노림수가 아닌가 생각했다.
유제상: 이쪽은 여성 5인조. 시각적인 면은 여자친구에 대한 미투 전략을 취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그들과 흡사하다. 다만 타이틀 'U.lie'는 비트가 강한 트로트 풍 댄스 넘버이므로 메인이 되는 음원의 접근 방법론은 확실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들어도 2000년대 초반 채정안, 채연의 시대가 연상되는 뽕끼 강한 댄스곡을 교복 소녀가 부른다? 이 기이함이 이들의 개성이라면 개성일지도. 정공법을 택한 듯하면서도 괴작의 분위기가 강한 이들에게 주목의 의미로 디스커버리를 부여한다.
유제상: Dale a tu cuerpo alegria Macarena... 흠흠 이건 그냥 써보고 싶었던 거고, 유명한 '그 곡'과의 공통분모는 안무 일부의 오마주 정도? 노래는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만, 굳이 분류하자면 마마무 계열인데 멜로디의 매력이 약하다. 그냥 레트로한 분위기만 낼 게 아니라 훵키한 멜로디도 살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햄촤: 영화 〈레옹〉을 의식한 건지 모를 그룹명에 노래 제목은 한 때 빌보드 차트를 휩쓸었던 '마카레나'와 같다. 특정한 세대에게 어필하기보다는 단순히 단어의 익숙함에 기대려는 전략 같은데 이것이 어떤 효과가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언뜻 마마무가 떠오르는 분위기의 곡과 무대 매너를 선보이고 있는데, 단순히 벤치마킹이라 하기엔 그만큼 멤버들이 실력적인 면으로도 충분한 준비와 자신감을 확보했다는 인상을 준다. 좀 더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콘셉트만 찾는다면 좋은 찬스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맛있는 파히타: 이번 앨범에서 '벨벳'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내는 것은 힘들지만, 벨벳의 기조는 핵심에 R&B를 둔 것으로 보인다. 발라드곡이 타이틀이 되는 것은 분명히 이례적인 일이지만 '7월 7일'은 타이틀 곡이라는 무게감에 걸맞게 한 곡의 노래 안에서 리스너를 여기저기로 들었다 놓았다 하며 시간을 초월한 그리움의 느낌을 강렬하게 전달해준다. 리드믹하고 은밀한 'Light Me Up' 같은 사랑 노래도 너무 본격적인 R&B라고 할 만하고 트렌디한 'Cool Hot Sweet Love'는 메인스트림 팝 여성 R&B 그룹의 곡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나머지 곡들은 오히려 산만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최고의 앨범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미묘: 상당히 많은 악기를 효과적으로 배치해가며 만들어진 '7월 7일'의 고전영화 같이 포근한 사운드가 '벨벳' 콘셉트의 클래시한 성격을 잘 드러낸다. 리믹스 트랙들이 어느 버전도 생경하지 않은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메인 멜로디가 그만큼 뉴트럴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존에 비해 멜로디 자체는 보다 쉬워졌다. (물론 부르기에 쉬운 멜로디는 아니다.) 그런 균형조절을 통해, 어른스러운 곡을 다소 어린, 혹은 '아이돌스러운' 보컬로 소화하는 공기의 갭을 만끽하게 한다. 이는 'Cool Hot Sweet Love'에서는 때로 삐걱거리기도 하지만 (인트로의 어색함이나, 필경 의도하였을 프리코러스의 뻣뻣함 등) 짜릿하게 몰아치는 후렴이 모든 걸 보상한다. 'Light Me Up'도 피치시프트를 활용해 조금 미래적인 R&B를 시도하는 매력적인 곡. 그러나 '처음인가요'와 '장미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는 각각 90년대 SM산 비사이드 R&B나 90년대 김광진 발라드를 연상시키는데, 좋은 곡들이지만 앞선 세 곡의 진보성에 비추면 아무래도 격이 맞지 않는다 해야겠다. 댄스 음악이 충분히 다변화된 것에 비해 '벨벳' 콘셉트에서 소화할 수 있는 장르의 풀이 그만큼 좁다는 방증일까.
돌돌말링: 레드벨벳의 세계는 두 개의 반구로 이루어져 있다. 작년 'Dumb Dumb'이 드롭되고서 '이런 총천연색 (좋은 의미로) 착란적인 트랙의 거울상으로 대체 무슨 컨셉이 나올 수 있지?' 하고 궁금했었다. 이것이 그 답이라고 하면 으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설득력이 있다. 트랙리스트에서 '장미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같은 제목들을 보고 있으면 '이게 2016년작이라고?' 하는 기분이 들 만큼, 좀 낯설 정도로, 오래된 감성까지 담아냈다. '7월 7일'이 특출나게 좋은 트랙이란 생각은 들지 않지만, 서로 다른 버전으로 네 번씩이나 수록했다는 점은 곡 자체에 대한 자신감이라기보다는 '이 노래를 꼭 들어달라'는 호소로 읽힌다. 인터넷에서는 세월호를 추모하는 곡이라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앨범을 정주행하고 나면 같은 가사, 같은 멜로디를 연거푸 들은 귓가에 결국은 "우리 다시 만나"라는 울음이, 남는다.
유제상: 'Be Natural'과 'Automatic'을 낼 때만 해도 재지한 분위기는 다른 SM산 아이돌들이 그렇듯이 곡의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한 콘셉트의 일부라고 생각했는데 이 EP를 통해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동사의 선배들이 할 수 있는 것을 거의 다 해버린 지금, '레드벨벳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나름 대답과도 같은 EP. "그래도 저는 덤덤 덤덤덤덤 하는 레드벨벳이 좋은데요" 하는 당신. 유감스럽게도 이번엔 그런 곡 없다. 대신 서늘하고도 차분한 레드벨벳을 즐겨보시길.
햄촤: 사실 두 가지 극단적인 콘셉트를 오가는 것은 SM 아이돌에게 있어서 드문 일이 아닌데, 그럼에도 굳이 이 두 가지 성향을 나누어 활동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앞으로 더 파고들 여지가 있을 것 같다. 방향성이 확실해진 'Red' 콘셉트에 비해 'Velvet' 콘셉트의 노래들이 색깔이 다소 희미하다는 비판에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콘셉트의 강렬함이 멤버 각자의 개성보다 먼저 다가왔던 지난 앨범에 비해 멤버들 개개인의 목소리가 뚜렷이 들리기 시작한다는 면에서 개인적으로 의의를 갖는다. 아마 'Velvet' 콘셉트마저 '이것이 레드벨벳이다!'라는 찬사가 나올 정도로 완성도를 갖게 된다면 그때는 굳이 앨범을 나누어 발매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P.S. 넷 상의 논란(?)처럼 '7월 7일'이 세월호 사고에 대한 추모곡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지만, 앨범이 이미 끝난 것 같은 지점에서 같은 곡이 미묘하게 다른 사운드로 세 번이나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자꾸 생각해보게 된다. 이상하게도 곡이 반복될수록 점점 침잠하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데, 뮤직비디오의 해석을 보고 난 이후 생긴 심리적 효과인지 곡 자체가 주는 감정인지 아직 헷갈린다.
김윤하: 가끔은 천문학적인 숫자의 투자나 유명 작곡가의 곡보다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명확한 콘셉트'지만, 효민의 경우에는 그것이 매번 독으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최근 SM 아티스트들과의 좋은 협업으로 자주 회자되고 있는 작곡가 라이언 전을 중심으로 한 외국 작곡가들, 비스트의 용준형과 효민 자신까지 양팔을 걷고 나선 앨범은 일렉트로 사운드로 풀어낸 세련된 소울 트랙들로 가득하지만, 이를 둘러싸고 쏟아지는 이야기들은 장담컨대 '섹시함'의 수위 혹은 예의 지루한 비난 이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기운 빠지는 현실을 넘어서기 위한 해결책은 단 하나, 가수 자신이 이 모든 콘셉트 위에 군림하는 것이지만 아직 그 경지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효민의 잠재력이 못내 아쉽다.
미묘: 전작도 음악만큼은 좋았지만, 이번엔 듣기 전에는 믿기 어려울 수 있을 만큼 좋다. 그리고 막상 들으면, 좋지 않으면 더 이상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곡들은 묵직하거나('Gold'), 산뜻하거나('Road Trip'), '몽환적'이거나('Sketch'), 잔잔하거나('우리의 이야기를 우리만 모르는 채') 하지만, 하나 같이 듣는 재미를 확실하게 잡아주면서도 무척 세련되게 마무리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조금씩 스타일리시한 진보를 더하고, 무엇보다 웬만해서는 통속적인 과장으로 떨어지지 않음으로써 단단한 품위를 두른다. 그러면서도, 가볍고 예쁘장하면서 숨이 잘 섞이는 효민의 음색에 매력적으로 결합한 채로, 효민이 달콤하거나 애절하거나 색정적이거나 담담한 목소리를 차례로 선보이도록 안배한다. 'Road Trip'이 효민에게서 쉽게 기대할 수 있는 가장 기분 좋은 느낌을 잘 살린다면, 'Gold'와 'Sketch'는 비-발라드 트랙에서 그의 보컬 표현력을 아쉬움 없이 선보인다. 특히 놀라운 것은 MBK에서 많이 들어본, 록이 가미된 가요 발라드의 외형을 취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만 모른 채'인데, 공식으로 보면 당연히 주글주글해야 할 것 같지만, 통쾌할 정도로 일말의 찜찜함을 남기지 않고 우아하게 흐르며 짙은 여운을 남긴다. 이 프로덕션과 솔로 아티스트 효민에게 단숨에 큰 기대를 걸게 하는 음반.
유제상: 상황을 반전시킬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평자는 전작인 'Nice Body'를 상당히 즐겁게 들었고, 효민에 대한 호감도도 그때를 시작으로 상당히 올라갔다. 'Sketch'는 보도자료대로 '몽환 섹시(?)'를 표방하고 있는데, 굳이 기존의 사례와 비교하자면 '보름달'을 들고나온 선미와 흡사하다. 곡과 안무를 포함하여 추구하는 바가 대단히 선명하지만, 노래가 좋아서 계속 듣게 된다기보다는 효민의 이미지만이 뚜렷이 남게 되는 형국이라 호불호가 갈릴 듯. 여튼 정성스러운 일곱 곡이 담긴 EP이니 일청을 권한다. 여담인데 섹시 버전의 뮤직비디오가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다.
햄촤: 효민이 어째서 섹스어필의 콘셉트를 계속 유지하려는지 모르겠다. 섹시 콘셉트로 화제성을 얻을 수 있는 시절도 이미 지나갔다. 오히려 적지 않은 이들이 콘셉트만 보고 음악에 대한 관심을 놓아버리지는 않았을까. 회사 차원에서 어떤 전략을 갖고 있든 간에 이대로 방향을 유지한다면 얻을 것보단 잃을 것이 더 많아 보인다. 허나 선입견을 버리고 앨범을 들어보면 의외로 듣기 편한 곡들로 앨범이 구성돼있는데, 오히려 타이틀곡인 'Sketch'만 애매하게 붕 뜬다는 느낌마저 든다. 차라리 'Gold'나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만 모르는 채' 같은 트랙을 통해 새삼스레 그동안 놓쳤던 보컬로서 효민의 매력을 엿볼 수 있는 앨범이다.
김윤하: 매주 신곡을 발표한다니 음원 차트 장악의 야욕인가! 소리쳤던 지난날이 무색하게도, 지금까지 SM 'STATION'을 통해 발표되고 있는 노래들은 대부분 소속 아티스트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을 존중하고 살리는 방향으로 전진해 나가고 있는 듯하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샤이니 종현과 헤리티지의 랑데부는 오히려 '너무 잘 어울려서 김이 새는' 수준. 빈틈없이 구현하는 빈티지 소울 사운드로 명성 높은 헤리티지와 소울 터치를 가미한 곡들에서 유독 훌륭한 결과물을 선보여 온 종현의 만남이 포근한 모타운 스타일 넘버 안에서 이루어진 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진다. 결과물도 출중하다. 사랑스럽게 쌓여가던 코러스에 눈치 없게 끼어드는 후렴구가 조금 신경 쓰이지만, 곡 전체의 감상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미묘: 아무래도 '24시간'이 가장 강렬하다. 취향 차는 있겠으나 클럽 튠(혹은 'K-EDM')으로서 단단하고, 보컬리스트들이 담당할 일이 별로 없다 보니, 음원으로서의 완결성은 이 음반에서 가장 높은 편. 'Pick Me'의 결과적 흥행이 이같은 이유와 엠넷의 역할이 조합된 것이었다고 한다면, 자수성가한_가요_힙합_스왝과 동일선상에 두기는 무리더라도 이 곡을 어떤 식으로든 마냥 우습게 볼 것은 아닌 듯하다. 'K-EDM'의 정체가 'EDM'에 아저씨를 결합한 것임을 확신하게 하는 선언적 트랙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Fingertips'나 'Don't Matter', 'Yum-Yum'는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출연자들의 스탠스가 그대로 담긴 듯, 현재 씬에서 레퍼런스가 선명하다. 음원으로선 퍼포먼스의 밀도가 다소 낮은 것도 그러한데, 시각 요소와 서사의 힘을 제외하고 감상하라는 작품은 아니니 여기까지가 적정선인 것도 같다. 프로그램 자체의 취지처럼, 사람마다 다른 취향에 맞춰 기본은 하는 곡들을 제시해주는, 그런 형태의 음반이라고 보면 되겠다. 오히려 진영 작곡의 '같은 곳에서'가 가장 이질적인 셈이다. (멜로디와 BPM의 궁합 탓인지) 밀도를 비교하라면 가장 덜 다듬어졌다고 해야겠다. 그러나 멋을 부리기보다는 아이돌 가요 혹은 가요 아이돌의 정취로 뽑아낸 것이 콘셉트와 맞아들어가면서, 듣는 이로 하여금 음악으로서 애착을 느끼도록 유도하는 점이 음악적으로 가장 정석적이라 하겠다. 이 곡의 여운이 남는 것은 마지막 트랙이라서만이 아니다.
유제상: 〈프로듀스 101〉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으로서뿐만 아니라 '음악 프로그램'이자 '음원의 제공자'로 기능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지만, 타이틀 '같은 곳에서'는 (여전히 바쁜 일정에 쫓겨 만든 듯한 결과물임에도 불구하고) 듣고 즐길 거리의 수준에 능히 올랐다는 점에 있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다. 적어도 'PICK ME'와 같은 (뒤랑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우글거림을 주진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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